더 내려놓음 -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은혜 이용규 저서 시리즈
이용규 지음 / 규장(규장문화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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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규- 

그는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학부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도미 유학, 하버드대학교에서 '중동지역학 및 역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학위를 받자마자 안락한 미래의 보장과 인간의 기대를 전부 내려놓고 척박한 땅인 몰골 선교사로 헌신하여 '이레교회'의 담임사역자로 몽골인들을 섬겼다. 그는 현재 몽골의 크리스천 대학인 '몽골국제대학교'의 부총장으로 봉직하고 있다.   

   

책을 펼치자마자 뒷 날개의 저자의 사진을 보며 젊고 맑은 인상에 요즘 한국 내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깨끗한 인상이라 선뜻 책을 구입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서 저자에 대한 소개를 자세히 보니 괜한 짓을 했다 싶게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해졌다.이유는 경상북도 포항에 있는 한 신설대학의 총장을 소개할 때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 역시 푸근한 인상에 백발의 머리가 교계 내에서는 트레이드마크가 되다시피 한 인물인데 그를 소개하는 멘트는 앉아서 그에게 박수를 치는 청중들을 몹시도 불쾌하게 만들었다.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에 유학, nasa(미 항공우주국)에서 연구원으로 안락하고 보장된 과학자로서의 삶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척박하고 외진 포항에 와서 총장이 되어 봉사하고 있다.'   

 

모두들 예수그리스도처럼 '하늘 보좌 버리고 이 낮고 천한 땅에 오신 귀하신 분들'이란 이야기는  결코 겸손과 섬김을 가장 기본으로 하는 성경적 태도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기독교인들이 내는 책 들 가운데는 그가 걸어 온 삶 속에서 만난 하나님의 은혜나 사랑, 역경 속에서도 결코 버릴 수 없었던 믿음에 대한 기록보다는 이 줄세우기 왕국에서 자신이 얼마나 뛰어난 엘리트인가, 남들보다 학력이 높은가, 집안과 배경은 얼마나 좋은 지를 앞 서 자랑하기에 급급한 것이 안타깝다. 물론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예수를 통해 이 세상에서 잘 살아보려는 '욕심' 많은 교인들에게 설득력있게 다가가고 싶은 마음에서 이런 저자에 대한 설명이 보편화 된 것 같은데 이런 점은 기독교를 더욱 세속적이고 출세지향적으로  '타락'시키는 것임을 이제라도 알고 바로 잡았으면 한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누가복음 15장에 등장하는 유명한 비유- 일명 탕자의 비유를  재해석했는데 주일날 듣는 설교로도 다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과 가려움을 정확하게 짚어 준 것 같다. 큰 찔림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기애(愛)와 자기의(義)로 대표되는 작은 아들과 큰 아들의 모습을 영적인 통찰력으로 실제 자신이 몽골국제대학에 몸 담으면서 겪은 부정적이며 드러내기 창피한 일화를 예로 들면서까지 이 문제로 고민을 하는 이들을 위해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특히 자기애(愛)의 문제를 다룰 때 디스커버리채널에서 본 '황제펭귄'의 이야기는 내 마음을 울렸다. 

 

 왜냐하면 나 역시 몇 달 전 동물의 왕국을 가족과 함께 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 저자가 말한 바로  그 프로그램을 보았다. 겨우 바다표범의 사나운 입에서 구사일생으로 육지로 돌아 온 펭귄은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절뚝절뚝거리며 균형을 잃고 한 참을 걸어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그런데 곧 화면에 비친 것은 그 새하얀 펭귄의 가슴에 너무나 선명하고 섬뜩한 붉은 피가 온 가슴과 배까지 적시고 있는 참담한 장면이었다. 바로 거기서 숨 죽이며 펭귄의 무사귀환을 소망하시던  어머니께서는 차마 더 못 보겠다며 방으로 들어가셔서 자리에 누워버리셨다.  

  

나는 계속 앉아서 그 불쌍한 펭귄의 결말을 보고 있었다. 피 흘리는 펭귄은 동료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했다. 펭귄 주변으로는 계속 부리가 날카로운 갈매기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보아 펭귄을 쪼아  그나마 있는 힘을 빼고 있었음에도 건강한 펭귄들은 단 한마리도 그 펭귄을 죽도로 방치하고 있는 처참한 모습이었다. 이 잔인한 장면을 그저 카메라에 담기 위해 손가락 하나 까닥 안 하고 있는 인간의 잔임함에 ,너무나 닮은  인간 세상의 비정함을 느끼며 어느새 나는슬픔을 넘어 분노까지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피를 너무 많이 흘려 곧 죽을 펭귄이 간 곳이 바로 자기의 새끼가 있는 곳이었다. 찢어지는 듯한 소리로 부르고 또 부르고 해서 마침내 어미가 새끼를 부르는 그 소리를 듣고 서로 상봉하는 장면에서 나는 눈을 감고 말았다. 언제 고였는지 뜨거운 눈물이 흘러서 앞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머니께서 이 장면을 보지 않고 방으로 들어가신 것은 어쩌면 어머니는 어머니로 살아오시면서  이 펭귄 같은 마음을 많이 느끼셔서가 아니었을까!  제 목숨보다 제 고통보다 마직막까지 새끼를 보호하고 그 입에 마지막 먹이를 넣어주는 그 모성애를 보며 어쩌면 인간도 아닌 동물에게 저런 깊은 사랑이 있을까라고 마음이 시원해질때까지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난다. 

둘째아들이 이런 아버지를 버리고 떠난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과 달리 자식은 부모의 통제가 없는 세상에 대한 동경이 훨씬 강함을  저자는 지적하고 있다. 하나님의 자식에 대한 사랑이 어느 정도인지 아는 사람이라면 자기애를 내려 놓으라는 것은 절대 '고통의 멍에'가 아니라 좀 더 쉽게 인간의 타락한 본성을 버릴 수 있을 것이다. 

  

내게 있어서 사실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자기의(義)였다. 워낙 논리적인 학문을 오랫동안 하다보니 어느새 설명이 불충분하다거나 부정확한 말에 대해, 그리고 참과 거짓(眞僞)을 판단하는 데에 '도사'가 되어 있었다. 그 때문에 가족들 간에도 나로 인해 불편함을 많이 주었고 심하게 다툼이 일어난 후엔 좀처럼 마음을 다시 열고 대화하기에 여간 힘이 드는 것이 아니었다. 나도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지만 참 아팠다. 가장 가까운 사람마저도 나를 비난하는 것 같아 참담했다.  

  

옳은 것을 옳다하는 나의 태도가 잘못되었다니 도저히 용납할 수 없어서 옳지 않은 자들과 소모적인 논쟁을 자주 벌였고 예리한 말로 그들의 잘못된 태도를 지적해 주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오히려 인신공격과 언어폭력이었다. 무엇이 잘못 되었단 말인가!  

이 책을 읽으면서 비로서 하나님의 자리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판단자=재판장의 위치에서 주변사람들의 잘잘못을 명확하게 가리고 있는 나를 보게 되었다. 분명히 내가 옳아도 사람들은 그들의 잘못을 고치지도 않았고 오히려 아픈 곳을 들킨 수치심에 나를 공격하고 무리를 지어 괴롭히기까지 했다.  

 

자아의 짐을 내려 놓으라는 그의 말은 상당히 아프면서도 설득력이 있다. 그래서 그렇게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을까! 내려놓으라는 의미가 '포기'나 '방관'하라는 뜻이 아니라 주권자이신 하나님께 맡기고 내 마음을 통째로 그 분께 드리라는 의미라는 것을 반복해서 일깨워 주고 있다. 이렇게 이성과 자아가 시퍼렇게 살아 독야청청한 내가 내려놓을 자아의 짐은 얼마나 될까! 아무리 생각해도 혼자 힘으로는 어림도 없다. 내 안에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오시기를 그래서 간절히 기다린다. '주님, 제 안에 오셔서 저를 다스려 주시고 참 인간의 형상을 회복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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