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돼지를 잡아라 - 세상을 배우는 작은 책 16 세상을 배우는 작은 책 16
한정기 지음, 황보순희 그림 / 다섯수레 / 2004년 11월
평점 :
품절


猪 突(저돌)

①(멧돼지처럼)앞뒤를 헤아리지 않고 불쑥 돌진(突進)함

②앞일을 생각지 않고 맹목적으로 일을 처리(處理)함

이란 뜻을 갖고 있다.

 

3 전 교통사고로 왼 쪽 다리를 잃은 동식이는 교실에서도 말이 없고 자신이 떨어뜨린 물건을

주워주려는 친구의 호의를 버럭 화를 내는 것으로 안간힘을 쓰며 자존심을 지키려한다.

친구들이 운동장에서 축구를 할 때면 그런 분노가 더욱 심해져서 화가 난 얼굴로

혼자서 교문을 나서기가 일쑤이다. 이런 외톨이 동식이의 친구가 되는 아이는 아이러니하게도 

반에서 축구를 가장 잘 하는 민수다.  언뜻 보아 어울리지 않는 이 두 아이가 서로에게 특별해

지는 계기가 된 사건은 바로 민수가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다가 그만 팔을 타쳐서 양팔에 깁스를

 하게 되어 체육시간에 동식이와 단 둘이서만 교실에 남게되면서부터였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작가가 말하고 싶은 바가 무엇인지는 금세 알겠는데도 불구하고

분명하게 아쉬운 점이 있었다. 바로 동정과 우정을 분명하게 구별할 수 있는 조숙한고 예민한

동식이의 마음을 여는 방법이 안타깝게도 기대했던 것보다는 서툰 점이었다.

 단지 캠프를 가서 밤 중에 멧돼지의 습격을 받아 민수가 다치는 것에 충격을 받은 동식이가

"나, 나는 니가 죽는 줄 알았다. 민수야, 정말 미안하다. 내, 내가 잘못했다. 엉엉......" 하며

사과를 하는데 이것은 흔히 드라마에서 자주 보는 의외의 사건이 터져서 얼떨결에

그 간의 모든 갈등이 일순간에  봄눈 녹듯이 해결이 되는 비약적이며 공감을 하기 어려운

설정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나이가 어려도 한 육체에 그 인격과 정신이 담겨져 있는 귀하고 신비스런 존재인 까닭에

누구나 존중을 받고 싶어하고 사랑을 받고 싶어하며 가슴 깊이 우러나오는 진심이 아닌

잠깐의 눈속임과도 같은, 적선과도  같은 가벼운 친절 뒤에 슬쩍 흘려버리는

'나는 너보다 우월하기 때문에 너를 돕는다'는 자기만족감은 비수처럼 도움을 받는 상대의

그 마음에 와서 꽂히게 된다.

작가는 바로 그 점을 간과한 것 같다.

동식이는 민수를 사고 후 자신의 유일한 친구라고 여기고 마음을 열어 아버지와 함께 가는 밤낚시에도 초대한다. 그러나 민수가 자신과 친하게 지내면서 한 편으론 반 아이들에게 따놀림을 당하고 급기야  축구경기에서 소외되자 민수가 자신과의 관계를 힘겨워하며 부담스러워하는 것을 눈치채곤 얼른 마음의 문을 다시 닫아 걸어버렸다.

동식이는 민수가 장애를 갖고 있는 자신의 맘과 같아질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서는 민수의평범안 제안에도 순순히 응한다면 자신이 열등하니까, 장애를 가졌으니까 복종할 수 밖에 없다고 피해의식을 갖게 된다. 동식으로서는 비굴하게 살지 않기 위해서,그 부서지기 쉬운 연약한 마음을 보호하기 위해서 차갑고 공격적으로 민수를 대하는데 이에 대한 민수의 반응은  자신의 호의와 더 나아가서는 그 좋아하는 축구도 못하면서 까지 동식이의 친구노릇을 하는 희생을 감수하는 자신에게 감사할 줄 모르는 동식이에 대해 분노하고 미워하게 된다. 

나의 경험에 의한다면 영구적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과 친구가 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분명했다. 물리적으로 가방을 들어주고 말을 걸어주고 점심시간에 같이 밥 먹는 상대가 되어준다해서 마음을 열지 않았다. 오히려 긴장감이 흐를 정도의 거리감은 시간이 가도 좁혀지지 않았었다. 내 쪽에서 '너를 위해 지금 내가 무엇인가를 해 주고 있단 말이야!' 라는 생색이 없어지지 않는 한 언제나 평행선을 가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가장 곤경에 처했을 때 제일 먼저 그 친구에게 찾아가서 나의 어려움을  털어 놓고 울었을 때, 나의 이야기를 듣던 그 친구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았다.그리곤 이렇게 의미있는 한 마디를 했다." 도움을 받아보지 않은 사람은 남을 도울 수 없어, 네가 지금 남의 도움을 거절한다면 나중에 도와주어야 할 사람을 만나도 그냥 지나쳐버리고 말껄!" 

그 후로 냉정하고 너무나 이성적으로만보였던 그 친구의 표정이 나와 함께 있을 때는 한결 부드러워지고  내 앞에서 절뚝이는 자세를 고치려고 노력하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 느릿느릿 걸었다. 그제서야 우리는 이제 진짜 친구가 되었구나라는 것을 서로 확인할 수 있었다.

성난 멧돼지처럼 몸이 성한 친구들에게 공격적으로 행동하는 장애아 동식이를 이해하고 진정한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동식이를 다른 친구와 마찬가지로 좋아하고 존중할 만한 점을 볼 줄 아는 안목을 가진 아이만이 가능하다는 점도 기억하면 좋겠다.

같은 반에 있는 장애를 갖은 친구를 이해하고 사랑하자고 따스한 목소리로 가르침을 주고 있는 작가의 이야기가 실제 경험이 바탕이 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남지만 반 친구를 단지 내가 물리쳐야할 경쟁자로 밖에 여기지 않는 요즘 세태로 볼 때는 무척 의미있는 시도로 보여진다. 똑똑하고 재능있는 아이는 여기저기 눈에 띄지만 온전하고 아름답게 자라나는,정말 기대되는 인간이 되겠구나싶은 아이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 멧돼지를 잡아라를 통해 우리의 어린이들이 세상에는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그 내면에 들어있는 인간의 연약함과 그 속에서 피어나고 있는 가능성을 동시에 발견할 수 있는 깊은 안목을 가질 수 있기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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