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엄마의 사교육 다이어트 - 아이도 엄마도 행복해지는
마이클럽닷컴 엮음 / 봄날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선영아 사랑해~' 라는 론칭광고로 파란을 일으켰던 마이클럽의 30대 주부게시판에서 뜨거웠던 육아와 교육문제에 대한 이야기들중 사교육의 문제와 그 해법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마이클럽의 CEO와 같은 회사에 다니는 아내의 책장에서 유연히 발견했다. 
 

대담-인터뷰, 게시물중 발췌 그리고 후반 부에 이 분야 전문가와 영웅(? : 필자가 영웅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책을 읽어보면 알것이다.)의 경험담으로 구성되어있다. 대담 형식으로 된 도입부와 게시글들을 편집한 부분을 보면 절망스럽기까지 하다.
15개월된 아기가 영어단어만 말한다고 문장을 외우지 못한다고 걱정하는 엄마의 이야기, 사교육에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자기 아이가 영재라고 자랑하는 어떤 엄마... 이런 엄마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가슴이 답답해 터질것 같고 확 때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여러 엄마들의 이야기들 들어보면 이런 엄마들도 각 개인의 취향이나 삐뚤어진 욕심이 문제라기 보다는 다 같이 몰려가는 분위기가 문제인 것이다. 결국 또 옆집 엄마의 기민한 정보력이 문제인 것이다. 스스로는 자신의 의지대로 가고자 하지만 주위에서 쏟아지는 시건망진 배려와 의도를 알기 힘든 과도한 걱정속에 다들 사교육 시장에서 피를 빨리고 있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없는 사회

요즘 저출산으로 국가가 나서 소극적이긴 하지만 출산 장례와 육아에 대해 쥐꼬리 만큼의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 동안 출산과 육아는 각 가정의 몫이었다. 기본적인 사회 구성원 유지를 의한 것들은 구성원에게 짐지우면서 각 구성원들에게는 국가를 위해 일심히 일해 줄 것으로 요구했다. 그렇게 열심히 일했어도 이제 각 구성원들은 아이들 낳아 기를 능력 아니 의지 조차 없어졌다. 그 이유는 모두 알다시피 과도한 경쟁으로 인한 육아 비용과 주거의 어려움 때문이다. 구성원들이 주거를 마련하고 결혼하여 육아를 하려면 돈이 필요한데 이제 막 사회로 내몰린 20대 들은 기초 생활을 겨우 면할 정도의 월급을 받는다. 보통 수준의 육아를 하라고 해도 남자 혼자 벌어서는 거의 불가능한다. 학자금, 주택자금을 융자하고 이제는 학교도 안간 아이의 양육비로 100만원 넘게 쓴다면 빚 없이 살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를 낳는다고 몇 십만원 지원해 주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될 것인가?

부모들은 이런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맞벌이를 한다. 엄마의 품에 안겨있어야 할 아이는 조부모(이 경우엔느 그나마 다행)나 보모, 그리고 어린이 집등에 맞겨진다. 엄마는 아이 문제로 회사에서도 늘 불안하고 아기도 안정적으로 성장하기 힘들어 졌다. 그나마 조부모가 맞아 키우는 경우에는 다행인데 그것은 가족이라는 연대의식 때문이다. 서로 믿을 수 있고 잘 아는 사이이기 때문에 아이의 성장에 대한 책임감 있는 자세를 가지기 때문이다.  다만 만혼으로 인해 손자를 보는 조부모의 나이가 많아지고 나이들서 싸지 육아를 해야 한다는 것에서 여간 죄송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만일 지역 공동체가 조부모 같은 역활을 할 수 있다면 어떨까?
옆집 노부부가 아이를 길러주거나 마을의 회관에 어린이 집에서 전업주부들이 직장에 다니는 엄마를 둔 아이들의 자신의 아이들과 함께 양육한다. 물론 각 가정에 따라 운영비는 적절하게 분배하고 마을 어른신들은 동네 아기들과 함께 보내며 무료하 시간이 없고 삶의 활력을 느낀다. 나이가 많은 언니, 오빠들은 동네 동생들을 돌보며 함께 성장한다. 이렇게 구성원들간에 유대가 생기고 나이가 많은 어른들 부터 아기들까지 이어지는 끈은 결국 공동체를 건강하게 할 것이다.

 

작은 영웅들

책의 말미에 작은 영웅들의 경험담은 앞서 이야기들로 두려워지는 필자가에게 작은 빛줄기를 주었다.
지역사회 문제와 공동육아로 하나, 둘 모인 엄마와 아빠들이 아이들을 공동을 양육하고 나아가 생활협동 조합을 만들어 마을 경제까지도 자주적으로 이끌어 나아간다. 또 운영이 어려웠던 도서관을 지원하고 스스로 도서관과 공부방을 만들어 운영하는 이야기들은 거의 영웅담에 가깝니다.

  
공공(공동)의 책임 

특히 마포 성미산의 공동체 이야기는 감동적인데... 

몇몇 엄마들이 모여 아이들의 공공육아를 시작하고 그것이 발전하여 어린이집을 설립하고 그 과정에서 모여진 역량으로 성미산에 설치되려면 유수지 사업을 보류시키고 나아가 공동출자로 자동차정비소를 설립한다. 이 것이 이어지면 마을주민 자치의 미용실도 마트도 만들 수 있겠다 싶었다. 

이 마을에서는 갑자기 일이 생긴 부모가 마을회관의 어른신들에게 아기를 맡기도 나갔다 와도 괜찮은 분위기이다. 옛날 우리 네 조부모 세대가 그랬듯 아이를 부모뿐 아니라 마을 전체가 키우는 것이다.
 
나라에게 육아와 교육을 맏기기 힘들다면 지역 공동체가 나서는 것이 어떨까?
앞서 이야기한 마을 회관과 공동 어린이집, 그리고 내아이 네 아이 구분없는 공동 육아가 한 동안 더 험악해지는 우리사회의 육아와 교육 문제에 대한 최손의 해결책이 아닌가 하고 다소 급진적으로 생각해 본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공상소설 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을 이루고 이루어가는 영웅담(?)을 보고는 생각이 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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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6시그마
데이비드 실버스타인 외 지음, 김영한 옮김 / 포북(for book)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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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적으로 경영을 접근하여 기업의 구태 의연한 주먹구구식 경영에 의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시도는 1900년대 부터 각 회사들의 중요한 문제였다. 포드 공장의 시스템은 자동차의 대량생산이라는 획기적인 결과를 내면서 너도 나도 경영기법을 배우고 지금도 경영자나 회사에서 중요한 직책을 받을려면 필수록 배워하는 것이 경영기법이다.  


최근까지 가장 많이 쓰이고 일반에도 잘 알려진 기법으로 6시그마는 일반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기법이다.
또 제작시간 단축에 초첨을 맞춘 린기법이 제조업의 관심을 받았다. 품질에 대해서는 6시그마, 시간에 대해서는 린, 또 이 두 기법을 접목하여 6시그마-린 이라는 방법도 이용된다. 

포드나 도요타가 보여진 경영기법의 특정은 품질과 제작비용, 제작시간등의 개선이 목적이었다.
20세기 산업사회 초기에 대두된 문제로 인해 이 시대의 경영의 목표는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며 최소의 비용으로 최고의 제품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각종 기법의 시점은 기존 회사의 사업분야 안에서 제조된 제품에 대한 개선에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21세가 되면 산업사회는 쇠퇴하고 정보사획로 전이되는 과정에 있다. 18세기 말부터 대량생산으로 부를 창출하던 사회가 정보나 문화의 창출로 부를 도모하는 사회가 되어 가고 있다. 인간의 소비가 지속되는한 제품 생산은 계속되고 제조업이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기존의 제조업이라도 창조적인 사업이나 창조적인 방법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는 산업사회 관점에서 보면 혁신적인 것이다.

이 혁신이 요즘 경영기법에 꼭 필요하고 중요한 요소이다.  

 

혁신경영 

인텔은 1970년 후반부터 비메모리 반도체(CPU)와 계산소자(Processor)를 만들어 급성장한 회사이다. 앞으로도 컴퓨터의 수효는 줄어들지 않기 때문에 지금의 회사를 유지하고 개선만 해도 20-30년까지는 운영이 가능한 회사이다. 그런데 그들은 지금 태양전지를 개발한다. 반도체 완전히 동떨어진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회사가 태양전지를 만든다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석유를 채굴하고 정제하던 회사인 Shell은 바다에 수류를 이용해 전기를 만드는 연구를 하고 대양광 발전소를 건설한다. 이건 혁신이라고 불러야 한다.

그들이 혁신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앞으로 향후 50년을 내다보면 21세기에 20세기 방식으로 운영해서는 생사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대형 회사는 혁신이 필요하다. 물론 혁신적인 일련의 움직임이 다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자동차 회사가 남아도는 돈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 투자회사를 만들었다고 치자 그건 혁신에 준하다고 볼 수 있으니 노력 만큼은 좋다. 하지만 투자회사 특성상 쪽박과 대박이 난무하는데 투자회사의 결정권자는 자동차 공장에서 근무하던 사람을 앉혔다. 1만개의 부품을 공급하면 몇일 후에 자동차 하나가 완성되는 시스템에 익숙한 그가 1억 투자해 한달 후에 백만원 남는 상황에 대해 어찌 이해 하겠는가?

또, 최근의 도요타 문제를 보자. 도요타는 80년대 도요타 경영방식이라고 까지 말하는 경영기법으로 세계 최고의 자동차 회사가 되었다.

그런데 그 이후 타성에 젖었고 건강한 직업의 체질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없이(세습 경영등등...) 늘 하던 식으로 운영하다보니 썩어 버린것이다. 개선을 했어도 또 개선을 해야 하며 사회 분위기가 바뀌면 혁신도 필요한 것이다. 토요타의 경영기법은 시간이 지나자 오히려 그들의 발목을 잡았다.

 
트리즈 -창의적인 문제 해결이론 

이런 문제들은 혁신이 일부 경영자들의 머리와 입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는 전문가를 고용해도 해결되지 않는다.

경영자가 혁신의 본질을 충분히 이해하여야 하며 그런 의도를 말단 직원들에게까지 인지 시켜야 한다. 또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결정을 막기 위해서 매 단계에서 혁신의 기법을 이용하여 인간이라서 발생시키는 오류와 실수를 최소화 해야 한다.

 최근에 일반에 알려지기 시작한 트리즈는 러시아의 엔지니어 겐리히 알츠슐러가 200만건의 특허정보를 분석하여 문제해결사례를 연구하여  이들에게서는 패턴을 발견한다. 이 패턴은  40가지 발명원리와 76가지 표준해결책, 그리고 문제해결 프로세스인 `아리즈(ARIZ)'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들은 조합하면 방대한 문제 상황과 그에 대한 해결 방안이 나온다. 트리즈는 문제자체를 해결해 주지는 않지만 100년 동안 기술자들과 발명가들이 겪은 문제와 해결의 역사를 통해 현재의 문제상황과 비슷한 과거 문제가 어떤 식으로 해결 과정을 겪었는 가를 찾아서 그 과정을 도입해 보는 것이다.

 
책에서는 자가 발열 캔과 그 이후 다른 제품인 발열팩을 예로 들고 있다. 획기적인 제품이지만 발열체 간 격리와 반응시 나오는 불꽃과 열에 대한 안정성 문제로 개발은 벽에 부딪쳤다. 이 때 트리즈를 이용하여 시간과 공간의 문제라는 결론을 내고  두 반응체 사이에 격벽을 만들어 해결하였다.

   


트리즈는 앞에서 이야기 했듯이 개선이 아닌 혁신을 염두해 본 기법이다.
따라서  트리즈를 도입함에 있어서 기존 방식에 연연한다면 기존 개선 방법과 다를 것이 없다. 아마도 대부분의 기업들은 트리즈를 일부 작은 규모의 프로젝트나 세부사항에만 적용하려고 할 것이고 6시그마-린 같이 기본 개선 기법과 혼용할 가능성이 많다. 그렇게 함으로써 기존 질서와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할 것이고 인텔의 태양전지 사업과 같은 혁신 사례를 당분간은 드문 사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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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사교육 - 내 아이를 학원에 보내고 싶지 않은 학부모를 위한 교육 필독서
이범 외 지음 / 시사IN북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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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어떤 학생의 유고시집에 나오는 시구절에 지하철에서 살짝 눈물이 났다.
고등학생이 쓴 시인데 유고시집에 실렸다. 그 친구의 유언대로 부모가 출판한 시집이다.

봄이라고 봄바람 살랑거리고 여름이라고 덥고 가을이라고 형형색색 세상은 변하고 시간은 가는 우리의 아이들에게는 계절의 변화가 없다. 단지 하나의 계절을 보내고 있다. '공부의 계절'
 

대학가서 놀기

필자도 입시를 치뤘다. 고2, 고1, 중3 이렇게 일찍 시작하지는 않았다. 고3 10여 개월만 바짝 공부를 했다. 아~ 물론 2학년 2학기 부터인가 부터 방학떄 보충을 듣긴 했다. 학교는 소문난 돌머리 학교(학교가 화강암으로 지어졌고 공부잘하던 친구들고 졸업할 때는 돌이 된다고 해서... 자율적인 학생활동을 중시했다.)에서 그런지 공부에 대한 중압감은 없었다. 집에 늦게 가는 야자가 싫긴 했지만 공부하는 시간 만큼은 집중했던 것 같다. 그러나 스트레스는 거의 없었고 지원할 학교를 선택할 때 고민이 심해졌다.

내 성적으로는 멀리 지방대 밖에 갈 때가 없었다.


그 떄는 집안 형태로 생각치 않았지만 지방의 사립대로 갔다면 등록금에 생활비까지 어머니가 무척 힘드셨을 것이다.

그러다가 겨우 찾아낸 학교는 춘천의 강원대 중에서도 공대중 가장 낮은 점수의 학과였다. 필자가 대학을 가던 시절만 해고 공대나오면 원만한 과라면 취업걱정이 없었다. 웬만한 과는 아니었지만 점수때문에 지원했고 막상 원서를 접수하러 기차타고 춘천을 가는데... 왜 그리도 먼지... ㅋㅋㅋ 죽을 맛이었다. 

같이 간 친한친구 9중에 나만 붙었다. 학교에서는 내가 붙은 사실을 몰랐다. 지방대다 보니 정보 입수가 안되었던 모양이다.


159명에 내가 하나더 추가해서 160명이 전기에 붙었다.(그런 학교다. 그 정도 보내면서 무슨 공부가르치냐 하겠지만 그 학교 나름 매력있다.) 졸업증명서 발급받으로 갔더니 그런 상황이었다. 그런데 의외가 하나있다. 그과에 붙을지도 장담 못한다고 걱정하시던 담임 선생님이 기뻐하셨다. 물론 나도 기뻤고 어머니고 기뻐했다. 장학생이 된 것이다. 사립대의 반 밖에 안되는 학비에다 또 반 만 내면 된다.


내자랑 할려고 한 이야기가 아니다.

난 어떤 재능(그림과 사진 빼고)도 없고 잘놀지도 못하면서 공부는 늘 중간이었다. 그런데 큰 시험은 잘보았다.
고등학교는 전교 130등으로 들어가서 첫 시험에서 반에서 45등을 했고 졸업할 때는 적어도 전교에서 160등안에는 들었다.
공부는 못하는데 대학은 장학생으로 갔다. 지방국립대의 별볼일 없는 과에 장학생이 뭐가 대수냐 하겠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대학을 가기전과 1학기 지난 후에 내게 엄청난 변화가 생긴걸 스스로도 발견했다.

난 어눌해서 4-5명만 보인 자리에서도 말도 잘 못하고 뭔가 내어놓고 잘하는 것이 없었다.
그런데 대학에서 1학기를 보내고 난 후 완전히 나서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자신감이 넘쳤다.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지역 방송국도 들락거리고 행사에 쓸 비용 모금을 위해 기부금도 뻔뻔(?)하게 모집하고 학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게 되었다.

 
돈벌러 대학가니?

대학을 가야 하는 이유는 이런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현재 우리 아이들의 과반수는 대학을 가는 이유가 한가지이다.
나중에 남보다 더더더더 부자가 되려는 것이다. 인생에 대한 모든 관심이 돈과 관련되어 있다. 이건 어른들. 특히 부모가 책임이다. 부모가 아이에게 남보다 잘나고 남위에 군림하라고 가르친 것이고 그것이 도구가 돈이 때문이다.

가계가 거널 날 정도로 사교육에 지출이 심하고 사교육 때문에 왜 못난다. 가족 부양하기 힘드니 결혼 안한다는 망국의 신내림이 사람들 사이에 전염된 것도 이런 삐뚤어진 사고 때문이다. 그럼왜 모두가 복사한 듯 이런 사고를 하고 있을까?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에게 현재 뭐가 고민이고 앞으로 인생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하냐고 물었더니... 조사대상 중 55%가 대학에 가는게 지금은 가장 큰 문제이고 앞으로 돈을 많이 벌고 싶다고 했단다. 이웃나라 일본고등학생들 중에는 자신의 강점과 단점이 고민이라는 응답이 대학가는 것과 비슷(약갼 적게) 나왔고 중국 학생들도 돈이나 입시에 대해서는 우리나라 학생들 보다는 덜 차지했다. 미국 학생들에서는 입시에 대한 고민은 10% 정도 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중에서 가장 충격적인 것은 고등학생이 생각하는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돈이란다.

틀린말은 아니다 돈 없으면 개고생이고 돈없으면 천대 받는 사회 맞다.

그럼 돈이 없는 어른이 되면 어떨까? 그건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다. 그들이 그러는 이유는 자신들의 가정 때문이다. 부모가 돈 떄문에 힘들어하고 심지어 목숨도 끓는다. 그걸 보고 자란 청소년이 생각하는 돈은 엄청난 힘이다. 그 힘을 가지고 싶은 것이다. 심지어 부유한 가정의 자녀들 사이에서 돈이 중요하다. 그들의 풍요로움가 가정의 안정이 돈이 기초한다는 것을 아이들은 이미 알아보렸다.

대학입시가 사생결단 전쟁터가 된 것은 이 돈, 우리의 사회의 중심이자 목표인 이 돈을 벌기 위한 준비단계인 것이다.

SKY 대학을 나와야 그룹계열의 월급 짱 많이 주는 S들에 갈 수 있다. 설혹 자기의 다른 능력이 떨어져도 S대 붙고 보자는 것이다.
부모들은 아이들의 관심이나 능력을 떠나서 S대에 보내고 싶고 그들이 S사들에 들어가 억 소리나는 연봉으로 떵떵거리며 살기를 원한다. 왜? 왜 그렇게 생각할까?
 

개천에서 용난다.
 

개천에서도 용이 나던 시절이 있었다. 다소 비아냥 스런 말이긴 해도 한편으로 용이 나온 개천에서는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개천에서 난 용들이 타고 올라간 것은 공부라는 여의주였다. 당시 서울대에 입학하는 학생의 대부분은 가난한 집안 출신이라는 이야기가 회자되었다. 그 이유는 서울대의 학비가 저렴하기 떄문에 가난한 집안에서 대학을 보내려면 공부 열심히 해서 서울대라도 가면 학비 부담이 줄기 때문이었다. 부자집 아이들은 서울대 갈 성적이 안되면 연고대, 이화여대를 가면 되었다. 서울대의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이 된 것은 국립대의 힘이 아니다. 학비 싼 대학을 가야 헸던 용들 덕분이다. 악착같이 공부한 수재들이 모인 서울대의 평균 성적이 높은 것은 당연했다. 그들은 학교에 와서도 악착같이 공부하였고 사시, 행시. 외시와 의사시험을 통해 신분상승을 하였다. 그들이 70~90년대 우리나라의 성장을 이끌었다. 우리의 아버지, 큰 형님 세대에서는 학교에서 공부하는 공부에 자신의 피나는 노력을 더하면 공교육 범위에서도 대학 입학은 물론 신분상승이 가능했다.

그런데 지금도 그럴꺼라는 생각은 착각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해 치열했던 그 시절을 그리는 자수성가한 사람의 시대 착오이다.

일단 대학 학비가 물가 인상률을 고려해서 천중부지가 되었다. 특히나 전액 장학금인 포스텍이나 카이스트를 제외하고 국립대의 등록금도 일년에 400~500만원 선이다. 그러니 사립대는 말할 것도 없다.  필자는 90학번이다 국립대, 공대 등을 고려해 필자의 동기들이 낸 입학금은 80만원 이었고 마지막 낸 등록금 고지서의 원 청구액은 83만원 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220만원 정도 한다고 한다. 


물론 소득 규모는 분명히 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는 공교육 만으로 대학가기가 힘들어졌다.

필자의 조카는 공부에 취미도 없고 공부를 잘하지도 않지만 친구들과 함께 보습학원을 다닌다. 학교 진도를 따라가기도 힘들고 다들 다니는 학원을 안다니쟈니 부모도 본인도 불안한 것이다. 이런 상황이 대부분의 중, 고등학생을 둔 가정의 사정이다.  

 

망국의 징조

사교육 시장의 급성장과 사교육 관련 기업에다 학원 재벌까지 주식시장에 상장되는 마당이다. 아이들의 상황이나 실력에 상관없이 한달에 단돈 10만원이라도 사교육 쓰지 않는 집안은 인간문화재 취급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올곶은 생각으로 아이를 학원에 보내지 않는 엄마도 옆집 엄마의 주제 넘은 내정간섭(?)에 손발을 들고 아이들은 학원에 가야 친구를 사귈 수 있다.골목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귀해졌다. 아이들은 학원에 가야 만날 수 있다.

놀이방 > 유치원 > 초등학교 > 중학교 > 고등학교 > 대학교 최소 12~13년간 아이들은 교육기간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그것도 모자라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마자 영어학원에 음악, 미술, 체육학원에 다닌다. 고학년이 되면 중학교 과정의 선행학습에 본격적으로 영어학원에 다닌다. 고2가 되면 이젠 죽어라 입시준비다. 이때 쯤 되면 학교에서도 0교시에 야자, 주말과 일요일까지 보충수업을 한다. 헛소리라고? 최근에는 우등반 아이들 수업에 외부 강사를 데려다가 수업하는 학교가 있다는 괴담(?) 돌고 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입시에 시달리고 부모들도 같이 입시전쟁이다. 열성적(?)인 부모들은 아이의 공부 포트폴리오를 직접짜기도 하며 생활비의 반 이상을 사교육에 투자한다. 옆집이 그러니 가랑이 찢어지는 우리집도 똑같이 따라 한다. 사교육비가 생활비를 넘어가고 월 100단위의 빚을 져가면 사교육을 시키는 집 이야기도 방송이 되었다.

보통 가정의 수입은 45세 전까지는 늘다가 이후에는 한 동안 정체되다가 50세가 되기전에 줄기 시작한다.

회사의 중역까지 가더라도 언제 해고될지 모르니 잠시 급격히 상승하더라고 언제 급격히 떨어질지 모르니 든다고 할 수 없다.
하물로 일반적인 직장이라면 45세 쯤 되면 눈치보면 회사에 남아있거나 독립하거나 월급이 작은회사로 옮겨야 한다.

일찍 아이를 낳아 45세에 아이가 고등학생이라고 한다면 이 시기가 수입의 정점인데 많은 돈을 아이의 교육비로 지출한다. 월급으로는 부족하여 모아든 돈까지 사용하는데 짧게는 1년, 길게는 4-5년전 부터 집중 지출을 했다면 아이가 대학에 들어간 후 부터 재정적인 문제가 생긴다.

아이가 대학에 입학하면 부모의 고난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7번의 등록기간이 남았다. 사립대 기준으로 하면 학기에 400원이 넘기 떄문에 등록금 이외 비용까지 하면 4~5000만원은 더 들어간다. 거기에 해외연수라도 다녀오면 한 회당 최소 4-500만원은 더 들어간다.

이게 다가 아니다 대학을 졸업했다고 해도 1-2년은 취업을 위해 또 공부를 해야 한다. 운좋게 취업을 했다고 해도 1-2년은 100만원도 안되는 월급을 받고 혹시 등록금을 대출 받았다면 이제부터 긴 기간을 갚아나가야 한다. 이제 끝이야~ 아니다 또 산이 남아있다. 30대 안되 결혼을 한다면 비용은 부모가 대주어야 한다. 전세금 대출에 결혼비용까지 줄줄이다.

조기교육이 빠르면 빠를 수록 가정이 아이를 결혼시키기 까지 드는 비용이 어마 어마해졌다.

필자가 12년전 처음 재정 컨설팅을 받으면서 제시 받은 자녀 양육비는 대학졸업까지 1억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대충 계산해봐도 3-4억이 나온다. 이런 에너지와 돈을 사교육에 쏟아 붇고 있다. 자녀를 대학에 보내고 나면 그 가정은 빚더미에 앉는다.

그 빚을 자녀가 사회에 나와 다시 갚아야 한다. 그런데 많은 자녀들이 취업하지 못하는 지금의 상황에서 또 취업을 해도 88만원을 받는다는 '88만원 세대'에 그 동안 들어간 교육비는 갚지 못할 사채 갚은 것이다.

 

교육의 빈익빈 부익부

현재 학교의 서열화를 통해 공교육을 강화하고 학생들의 학력저하를 다시 끌어올리겠다는 정부와 교육계의 생각에는 커다란 착각이 자리잡고 있다. 그중에 하나가 앞에서 이야기한 '교육불패'의 신화이다. 우리나라는 50년도 안되는 고도 성장에서 세계최고의 교육열에 힘입은 바 크다. 그 공로를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한 세대가 지난 시절의 성공신화가 과연 통할까? 그 시절에 통하던 기술, 이론은 거의다 새로운 것을 바뀌었다 그리고 누구나 다 인정하듯이 산업사회는 마감되고 정보문화의 시대이다. 우리가 마구 성정하던 산업, 제조시대에는 배운대로 하면 배운대로 결과물이 나왔다. 하지만 이제는 무엇을 가르치는 것도 쉽지 않고 그걸 배운대로 해서는 새로운 정보와 문화가 나오지 않는다. 정보와 문화의 수명은 매우 짧아 그 것을 가르치겠다고 교과서를 만드는 동안 철지나 버린다. 패션 유행을 생각해 보라 지금 유행하는 것을 보고 그것만 만드는 공장을 짓기 시작한다면 그 공장은 어떻게 될까? 짓지도 못하고 부도가 난다. 공장을 지을 것이 아니라 디자이너가 직접 재봉틀을 잡고 고객 하나가 원하는 고가의 옷을 주문생산해야 한다. 가내수공업이다 전시대에는 가내수공업은 가난한 나라에서는 하는 것이고 대량생산으로 왕창 돈 버는 것이 살길 이었다.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아도 획일하 교육에는 일가견이 있다.

그런데 이제 고등학교와 중학교때부터 공부잘하는 놈, 그저 그런놈으로 갈라놓고 따로 가르치려 한다. 원래 잘하는 아이들은 좋은 대학 보낸단다. 대학생들의 학력이 낮아진게 평준화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대학에 공부잘하는 아이들을 보내면 대학생들이 학력이 다시 높아진다는 단세포적인 생각이다. 잠깜~ 이게 과연 뭘 몰라서 주장하는 것일까? 이상하지 않은가?

이유는 부자와 집권층 자제들을 처음부터 분리하여 부와 권력의 세습을 위한 장치들이다. 앞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이제는 공부만 열심히 공부한다고 해서 신분상승이 되는 사회는 아니다. 공부도 정보 싸움이고 대학의 입학시험도 실력과 정보력을 요하는 시험방법을 채택하고 있다. 따라서 고등학교 부터 서열화되면  그 다음 행보는 뻔하다.


족쇄를 부셔라~
사교육의 족쇄를 빨리 부셔버려야 한다.
본인과 자녀 그리고 나를 부축이던 옆집 아줌마 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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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웹 기획
조슈아 포터 지음, 황현수.유상은 옮김 / 인사이트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사람을 꼬이게 하려면 그들이 무엇을 할지 부터 고민을 해야 한다. 

 

소셜네트워크... SNS라 불리는 그것이 요즘 웹에서는 관심사다.

Web 2.0 어쩌구 저쩌구 하는 이야기가 쏙 들어간 이 시점에서 눈에 띄는 이바닥의 화두는 당연히 SNS다.
2.0에서도 그렇고 SNS에서도 그렇고 사실 그 이야기들은 웹 초창기에 이 분야 선구자들이 이야기 했던 내용들이 그것을 계속 끄집어 내어 써먹고 써먹는데 결국 소위 말로 먹고 사는 이들의 밥벌이를 위한 이야기가 아닌가 의심이 될 정도이다. 

Web2.0이 시끄러울 때 여기저기서 강좌니 모니 열리고 책도 많이 출간되었다.
그런데 그 이야기의 골자는 웹초기로 돌아가자였고 그 때도 소셜네트워크의 이야기가 나왔다.

웹이란 것 자체가 정보를 자유롭게 공유하는 장으로 또는 인간대 인간이 비접촉으로도 상호작용을 하자는 취지였다고 보면 이미 W3C 이전의 아르파넷을 이용하던 대학의 연구소들 간에도 이미 SN은 구축이 되어 있었다. 필자가 책에서 말하는 이론적인 이야기들은 이미 Web 초창기에 선구자들의 입에서 나온 것들이다. 그러니 이 책이 쓰레기냐? 

그것은 아니다. 물론 이 책의 내용은 필자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다.
이 책을 구입하면서 내용이 무엇인지 잘 몰랐거나 새로 사는 책인데 내가 아는 내용이 많다고 생각하기 싫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현재 시점에서 바라본 SNS는 분명히 필자가 작년에 알던 것과 또 그 이전해에 알던 것과는 다르다.
SNS가 중요해진 것 만큼 웹 환경은 빨리 변화기 때문에 같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라도 2008년과 2009년의 이야기안에는 달라진 것이 있다.

이 분야 기획자라면 작은 그 변화 때문에 비슷한 내용은 책들을 사모아야 한다. 작은 변화 때문에 자신의 사이트 기획을 접거나 접어둔 것을 펼칠 기회를 얹기도 한다. 
 

왜 지금 SNS인가? 

선구자들은 SN의 필요와 이후 전개될 상황을 그리고 있었다. 하지만 SN이 일반 사용자들에게도 익숙해지기 까지는 기술적 문제 뿐 아니라 사회전반의 변화가 필요했다. 1990년 www가 웹에 대한 선언을 한 후 3년까지는 웹이라는 바다에는  일부 선구자들이나 그들이 만든  배만 떠다녔다. 이렇다할 섬은 몇 개 안되었다. 5년이 되기전에 섬들이 생기도 배들이 엄청나기 늘어나기 시작했다.

홈페이지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해봐야 링크를 클릭하여 다른 페이지로 이동하는 정도였고 홈페이지의 콘텐츠는 빈약하여 따로 스크랩하고 퍼갈 것도 없었다. 공유의 대상은 홈페이지 주소, 즉 URL이 전부였다. URL을 모아둔 북마크는 편집하여 메일로 전달이 가능했다. 북마크의 중요성 때문에 북마크가 홈페이지가 되는 경우도 많았다. 딜리셔스 같은 SNS는 지금고 북마크를 공유한다. 다만 엄청 세련되었다는 점만 다르다. 

 

개인의 취향이 정보가 되다. 

북마크는 일종의 개인 컬렉션이다. 북마크 하면서 분류도 가능했는데 그 분류의 기준은 순전히 북마킹하는 개인의 취향이다.

북마크는 굥유한다는 것은 북마크를 한 개인의 취향이 정보로 공유가 되는 것이다. 지금은 북마크 공유의 의미가 적다. 검색이나 포털 서비스가 잘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자는 분명히 기억한다. 동료에게 주기적으로 북마크를 보내 달라고 요청하던 시절이 있었다.

북마크는 링크자체도 중요했지만 각 링크를 분류하는 개인차로 인해 공유하면서 개인별로 가치가 달라지는 살아있는 정보가 된 것이다.

이런 견지에서 보면 지금은 공유물 들을 보면 정보이긴 하지만 그 내용은 기사/매우 사적인 이야기, 객관적사실/왜곡된 시각, 글/동영상 등으로 그 내용과 논점과 사실여부와 질... 모두에서 다양하고 광범위하게 표현되고 공유된다. 더나가 콘텐츠 자체 뿐아니라 내 포스르를 정기적으로 보러오는 이웃이나 일촌도 정보로 인지될 정도이다. 공유된 것들은 또 공유가 되어 정보는 자연스럽게 분류되고 포장된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시스템이나 서비스 관리자의 개입 없이 불특정한 집단들이 정보를 유통시키는 과정에서 스스로도 모르게 일어난다.

이것인 SNS의 매력이며 웹 서비스 기획을 하는 사람들이 주목할 바이다.

 

 

공간과 놀꺼리를 만들라 

그러면 노는 아이들은 찾아온다.놀이터를 만들고 놀꺼리를 만들면 지나가던 아이도. 주변 아파트에서 공사과정을 지켜본 아이도 놀러 올 것이고 맘에 들면 이웃동네 친구도 불러와 함께 논다. 이웃동네 아니는 친구가 없어도 혼자 놀러와 다른 아이들과 친구가 되기도 한다. 일단 놀이터에 아이들이 모이면 놀이터를 만들 사람은 개입할 필요가 없다. 단지 놀이기구가 문제가 없는지 관찰하고 고쳐주면 된다. 

SNS 놀이터에 온 아이들은 심지어 놀이기구가 어디가 불편한지도 관리 사무실에 말을 해준다. 어떤 더 똘똘한 아이는 이런 놀이기구 만들어 달라고 그려오기도 한다. 

무조건 놀이터만 있으면 아이들이 모이느냐? 꼭 그렇다고 볼 수는 없다. 아파트 단지에 놀이 공원을 만들면 아파트의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모인다.

좀더 세분해 보자.  놀이터 안에 철봉과 시소가 있다고 하자 관리인이 점심시간에 놀이터 옆 벤치에 앉아서 살펴보니 아이들은 시소에는 몇분 씩 줄서서  기다렸다가 시소를 타는데 철봉은 처음에 좀 큰 아이들 몇이 매달리더니 이 후에는 한 아이도 메달리지 않는다. 뭐가 잘못된 것일까?

그 아파트 단지의 큰 아이들은 학원을 다니느라 놀이터에서 놀 시간이 없고 놀이터의 아이들은 6살 이하의 유아들이었다. 그러니 철봉이 연기가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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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담 후세인 평전 - 복수의 정치학
사이드 K. 아부리쉬 지음, 박수철 옮김 / 도서출판 자전거 / 2003년 1월
평점 :
품절


저자, 사이드 K. 아부리쉬는 이 책을 다음과 같은 말로 마무리한다.

이 책을 이라크의 고통받는 어린이들에게 마친다.
나는 겸허하게 경의를 표하여 너희들의 옷자락에 입을 맞춘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매일 밤 눈물을 흘린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매일 밤 눈물을 흘린다.
이 것은 저자가 이책을 쓰면서 자신의 과거 행적을 반성하며 느낀 감정을 고백한 것이다.

저자가 책 앞과 본문중에도 자주 이야기 하지만 아부리쉬는 아랍 출신으로 영국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는 사람이며 서방에 적을 둔 아랍인이라는 장점으로 후세인의 대화창구를 맏은 에이전트들 중에 하나이다. 아부라쉬 이외에도 수백명의 에이전트들이 후세인의 손발, 눈과 귀가 되어서 서방과 이라크를 연결했다. 

이미 알려진대로 후세인 통치하여 이라크는 매우 페세된 사회였고 서방의 제제조치에 따라 후세인 말기에는 봉인된 국가였다.

또 후세인은 그의 제멋대로인 정책과 매우 사적인 국가운영으로 다른 국가와의 직접 소통이 어려운 인물이었기 때문에 에이전트가 꼭 필요했다. 또 다른 국가들, 전인류가 원치 않던 이들은 꾸미다 보니 대리인 꼭 필요했다. 

 

이들 대리인들이 정상적인 이성과 합리적인 교육을 받은 엘리트임에도 후세인을 도왔던 이유에는 돈이외 어떤 이상 때문이었다고 필자는 말한다. 어찌보면 변명으로도 들리지만 그들이 후세인이 요청을 받아들인 이유에는 제국주의 수준으로 아랍을 쥐고 흔들려고 하는 영국과 미국의 압제에서 당당할 수 있는 인물이 바로 후세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글르 돕는 것이 아랍을 미제국주의에서 구하는 것이라는 매우 고무적인 생각을 가졌었다고 한다. 물론 저자의 개인 생각일 것이다. 대부분이 돈이 목적이었을 것이다. 초창기 이들이 보기에도 후세인은 속을 알수 없는 위험성을 다분히 내포한 인물이었을 것이다.

생각이 어찌 되었건 이들의 도움으로 후세인은 부도덕하고 반인류적이며 정신병에 가까운 괴물이 되어간다.
 


 
미국과 영국의 이중생활 

영국과 미국은 결국 후세인을 축출하고야 만다.
그런데 이들은 20세기 초부터 이라크에 대해서 비 이성적인 정책을 퍼고 그 결과 엉뚱하게 진행이 되었다.

이 책에서 저자는 후세인이 어떤 인물인가를 이야기 하는 것과 같은 비중으로 미국과 영국이 얼마나 잔인하고 비이성적인 정책으로 이라크와 후세인을 오염시켰는가를 이야기 하고 있다.
 

이라크는 고대의 문명 발상지로  바그다드난 아주 오래된 문화유산과 아라비안 나이트와 같은 인류 최고의 문화를 발생시킨 곳이다.

또 오랜 세월 여러 민족의 지배하에서도 잘 견디고 후세인 집권 시절에도 아랍민족의 대표를 자처하던 나라이다.

그런데 1차 대전에서 승리한 영국이 오스만에게서 뺴앗은 이라크를 식민지로 경영하면서 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물론 식민지 경영자체가 문제이지만 그 방법론에 있어서 아랍 민족의 특성상 실리보다는 체면을 중시하는 것등에 대해 무지한 서방세력은 식민지 운영의 편의를 위해 엘리트 계층인 수니파의 일부를 허수아비를 세운다. 이는 오스만이 이라크를 지배하면서 매수한 계층인데 영국도 그것을 답보한다. 이것은 마치 미국인 한국을 군정하는 기간에 일본에 충성한 관료나 기득권층을 대거 영입하면서 실리를 취한다고 했던 것과 같은 것이다.  이것은 당장에 운영에서는 편리했는지 몰라고 오랜 분쟁의 씨. 즉 다수인 시아파를 소수의 수니파가 지배하는 불안정한 구조로 인해 이후 계속적인 문제로 남게 된다. 좀 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이슬람 윈리주의인 시아파는 국가라는 개념보다는 이슬람이라는 종교에 기반을 두었기 떄문에 국가보다는 같은 이슬람 민족들간의 통일이라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에 반하는 국가 권력의 수립이나 이교도인 서방의 개입은 원칙적으로 반대하고 잇었다. 이에 반해 수니파는 소위 실리적인 노선으로 종교보다는 국가라는 체제와 부자이고 발달된 서방의 도움이라도 받아 국가를 발전시키자는 사고를 가졌다. 또 수니파는 민족이나 종교보다는 자신들의 군력 쟁취가 더 시급했다. 권력이 없다는 소수인 자신들은 제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서방, 딱 꼬집어 미국과 그의 추종인 영국은 이라크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석유의 확보를 위해 쉬운 방법으로 이라크 문제에 접근한 것이다. 이런 멍청한 정책은 대륙 건너편의 한반도와 일본, 동남아시아, 남미에서도 그대로 재현이 된 것들이다.

서방이 아랍과의 이익을 취하려고 보다 신중한 접근을 취하고 상호 존중의 정신을 가졌다면 그들의 민족성과 문화, 종교에 대해 충분히 공부하고 이해를 바탕으로 접근하여 협상을 통해 또는 사업수단으로 적절한 이윤을 취했어야 했다.

그러나 섣부른 욕심으로 접근한 아랍문제에서 특히 최근에 나타난 문제에서 이라크에 대한 그들의 정책은 치졸함과 멍청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그들은 아랍의 민주주의를 이야기했지만 그들의 지원은 독재자에게 돌아갔고 그러면서도 독재자를 제어하고자 반대파에게 지원을 했다.

그들의 의도는 아랍지역에서 경제적인 이익을 취하면서 비난을 받지 않는 것이었고 그러기 위해는 말 잘듣는 대리인을 세운 후 그에게 악역을 시키고 뒤에서 조정한 후 필요없으면 갈아치우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런 이중적인 정책을 실행하면서는 매우 어리석은 가벼운 행동으로 일을 그르치기가 일쑤였다.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이 똥찬 머리를 굴려 배를 채우는 동안 대상 국가의 국민들이 죽어갔고 또 서방국가 집권층의 놀이판에 각 국가의 국민들의 비싼 세금을 내면서 그들 지도자들의 어설픈 국제정치 놀이에 기만 당한다는 것이다.
 

 

후세인의 이중생활
 

후세인은 시아파 중에서도 별볼일 없던 부류인 베드인족 그리고 이라크에서도 변두리인 티크리트 지방에서 태어난다.

가난이 말도 못하는 집안 형편에 아버지도 모르는 사생아 이고 구타가 일상화된 양아버지 밑에서 자란다. 



그런 그가 고단한 생을 이겨 나갔던 에너지는 단 하나 그의 자존심이었다. 놀림과 배고픔 그리고 늘 꺽이는 자존심으로 그의 내부에는 분노의 에너지가 쌓여갔고 성공에 대한 왜곡된 에너지와 타인에 대한 불신은 이후 그의 행동에서 나타는  정신병적인 이중성의 원인이다.

다행인지 모르지만 어머니와 삼촌은 그의  생에 전환점으로 마련한다. 반란에 연류되어 지방 한직 교사였단 삼촌 밑에서 자라게 된 후세인을 초급 교육을 받게 되고 삼촌의 지인들을 통해 반체제 조직의 끄트머리를 잡게 된다.

청년시절 후세인은 뺴어낸 외모와 강렬한 카리스마로 주목을 받기는 하지만 그의 출신상 선입견과 이기적 성격, 돌출 행동으로 바트당 당원으로도 거부된다. 하지만 그는 늘 튀는 행동을 하고 결국 정치깡페로 반역행위에 가담하였다면 추방을 당한다. 이집트에서 망명 기간동안 그는 매우 세련되어 지면 자신을 포장하는 법을 배우고 바트당의 하부 조직의 책임자를 맡는다. 또 바트당 중요 인물의 신뢰를 얻어 이라크로 돌아가면서 당내에서의 서열 상승을 하게 된다.

후세인은 30이 되기 전에 이미 바트당에서 상당한 권력을 쥐게 되는데 그것은 그의 세련된 외모와 예의바르고 당당한 품행, 굳은 의지로 인한 것이었다. 그는 이라크를 근대적이며 아랍권의 지도국가가 되리라는 위상을 가지고 자신의 신념에 매우 당당했으면 윗사람들에 대해서는 깍듯한 예의를 갖춘 청년이었다. 하지만 그의 겉 모습과 달리 그는 폭력적이며 권모 수술에 응하면 자신이 이끌러 청치깡페 조직을 운용하여 반대 세력을 제거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또 이집트 망명시절 자신의 힘만으로는 권력 쟁취가 불가능했다고 판단해서인지 CIA와 접촉하기 시작했다. 이는 그가 늘 말하던 아랍민족의 통일과는 반대되는 행동이며 이라크 민중의 이익과는 거리가 만 행동이었다.

바트당에서 그의 위치가 높아질 수록 그의 이런 이율배반적인 행위는 점덤 심해진다.

심지어 그는 그의 친구이면서 정치적인 동반자라고 불리는 바트당 동료들까지 살해하는데 그 미망인을 방문하여 눈물을 쏟으면 몇일을 집무실 갇혀 울고 나온것은 그를 이해하기 힘들게 하는 행동들이다.  


70년 이전의 이라크의 전반적인 상황을 보면 민주주의라는 관점을 배제하면 후세인의 독재에서 일반 국민이 손해를 본 것은 없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이 기간에 이라크는 아랍국가중에서 가장 큰 경제 발전을 했고 국방력에서는 이스라엘을 제외하고 중동에서 가장 최강이었다. 또 아이러니 하게도 이 기간주에 이라크의 국가 청렴은 아랍국가중에서는 최고였다. 지금도 거의 모든 아랍국가의 권력과 경제가 왕족에게 몰려있고 이들의 부정부페는 당연히 여겨질 정도인데 이라크에서는 다른 서방국가에서도 당시에 공공연하던 수수료 관행까지도 처형의 대사일 정도로 청렴했다. 후세인 자신도 이에 대해서는 철저히 지켰으니까... 그의 성격상 관료들의 부정부페는 쳐죽일 일이었다. (걸프전 전후로 그와 그의 가족이 보여진 부정부페와 엽기적인 행각은 참 아이러니이다. 이것은 후세인이라는 인물을 구성하는 이중성이 결말이라고 보아도 무방해 보인다.)

 후세인의 이중성은 정신병적인 해석까지 가능할 정도인데 미국과의 관계에서도 그의 이중성은 극에 달한다. 그는 미국에게 상당히 의존하고 미국으로 부터 상당한 지원을 받는다.

미국이 그토록 치를 떨었던 핵무기나 생화학 무기 프로그램도 미국의 지원없이는 불가능했다. 후세인의 말기 행보의 대부분은 미국과 관련된 것으로 1차 걸프전이나 쿠웨이트 침공 때도 후세인은 미국의 눈치를 살폈고 미국은 애매한 태도를 내비치면서 사실상 후세인의 행동을 조장했다. 이렇게 미국에게 의존하던 후세인은 한편으로는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조치들을 펼친다. 그는 미국이 필요했지만 미국의 의도에 따르고 싶지 않았고 언젠가는 미국을 배제한채 독자 노선을 가려고 했다.

어찌 보면 악마 후세인은 영국에 의해 태어나고 미국에 의해 길러졌다고 볼 수 있다.

 

 

결국 

후세인은 사실상 제거되었다.

미국은 후세인을 제거하고 그 자리에 좀더 입맛에 맞는 독재자를 앉히고 싶어했다.

자신들이 말에 좀더 고분고분 했다면 후세인 만큼 알맞는 독재가 없을 것이다. 폭력적이며 국민들에게는 강하고 서방에는 약한 그런 독재자가 필요했다 그래서 후세인은 적임자였는데 딱 하나 맘에 안드는 구섯이 있었는데 그것이 서방을 배제한 독자적인 아랍국가의 완성이라는 그의 이상은 애초부터 미국과는 맞지 않았지만 미국은 섣부르게 판단한 것이다.

40년 전에 독재 권력을 겪었고 그 권력자에 대한 평가가 아직 엇갈리는 우리, 작은 반도안에 북한이라는 또 다른 독재 국가와 대치하고 있는 우리... 다른 여러나라들 처럼 미국의 영향아래에 있고 미국의 군대가 주둔하고 있는 상황인 우리에게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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