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드 아틀라스 2
데이비드 미첼 지음, 송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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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의 목적은 구름위 만에 있는 것은 아니다.– 클라우드 아틀라스 (Cloud Atlas)

 

 

 

 

 

 

무엇을 이루고 무엇을 이루지 못했는가?

 

애덤 어윙은 나름 근면한 그리스도인임을 자부하고 신실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인간들의 보편 타당한 인간성을 믿으며 자신도 그것에 기반을 두고 살아왔지만 그가 방문한 야생(?)의 세계에서 인간은 동물에 가까웠다약육강식의 자연이론으로 밖에 설명할 수 없는 인간군상의 모습과 심지어 자신의 신뢰를 이용하여 자신을 도구화하는 친구(?)의 모습 등으로 죽어간다그리고 얼떨결에 구해준 한 오리모리족 청년을 통해 다시 살아나면서 인생이 살아가야 할 방향을 찾는다그가 꿈꾸던 노예해방은 현실의 역사에서 이루어 졌다.

 

로버트 프로비셔는 재능이 있지만 성실하지 못한 작곡가이다방탕한 생활(도박여자)로 재산을 탕진하고 네덜란드의 어느 시골에서 은둔해 산다는 은퇴한 작곡가를 찾아가 기생할 생각으로 그의 마지막 여정을 시작한다그의 새로운 생활에서 그는 자신의 선생의 재능과 자신의 재능을 살려내고 그가 원하던 방탕한 삶도 어느 정도 회복하는 듯 하다그러나 그를 도와주는 듯하던 노쇠한 작곡가가 실은 자신의 재능을 이용해 쇠락하던 자기의 명성을 살리려 한다는 것을 알았고 또 이미 회복하기 어려운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절망한다그런 와중에도 생의 마지막에 클라우드 아틀라스 6중주을 남긴다프로비셔의 삶을 세속적으로 성공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그 가 전에는 한 번도 완성하지 못한 작곡을 해 낸 것을 생각하면 그것은 성공이고 가난과 실연으로 생을 스스로 마감한 것은 비극이다.

 

루이자 레이는 프로비셔의 친구였던 식스 스미스 박사를 우연히 알게 되면서 원자력 발전소와 정부 권력자들이 은페 하고자 하는 원자력 사업의 문제에 대한 특종을 잡게 된다물론 이런 거대 기업/관료 조직을 상대로 한 싸움에서는 자신과 가족의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데 결국에는 자신만은 살아남고 원자력 발전소의 심각한 결함은 밝혀진다성공인가?

 

실패한 출판업자(인생?) 티머시 캐번디시는 폭력배들과 채무자들을 피해 도피를 하던 중에 동생이 예약해 준 호텔에 묶게 되는데 그곳은 실상 치매 노인들을 수용하는 요양원이었다평생 어떤 것에도 성실하지 못한 삶을 살아온 그는 요양원 탈출에 온 힘을 쓴다요양원에서 만나 친구들과 탈출을 하고 의도 하지 않았던 책이 인기를 끌면서 그이 말년에 꽃이 핀다이 것은 확실히 성공이다맞는가?

손미-451은 파파송 회사의 배양탱크에서 태어난 복제인간클론이다단순히 어떤 인간의 DNA를 복제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하기 싫어하거나 위험한 일을 대신 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대체물리프리컨트 중에 하나이다또한 단순히 강제로 일하는 정도가 아니라 시키는 일만 하다가 내구연한이 차면 해체해서 다른 자원을 재활용하는 말 그대로의 기계이다그녀가 어느 날 상승이라고 불리는 자각을 하면서 사건이 벌어진다권력이 짜 놓은 극적인 상황을 알면서도 순응하여 그녀가 결과적으로 얹은 것은 처형을 당하는 것이었지만 대신 인간들에게 자신이 겪었던 자각의 과정을 남겼다이 역시 실패인가성공인가?

 

시간을 알 수 없는 어느 시간인류문명이 사라질 규모의 전쟁 이후 외딴 섬에 사는 자크리는 어린 시절 자신의 부주의로 폭력적인 코나 족에게 아버지를 잃고 형을 노예로 끌려가게 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며 산다어느 날 전쟁 전 문명을 가진 메로님의 방문으로 인류의 조상들에게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를 알게 된다코나 족은 섬 전체를 약탈하고 결국 그는 가족을 지키지 못한다하지만 그는 다른 섬으로 탈출하고 생을 이어갔다성공인가실패인가?

 

 

서로 다른 배경들과 다른 서로 사건들과 거기에 구술 방법과 문체 마저도 상이한 이 6가지 이야기에서 주인공은 실패하기도 하고 성공하기도 했다인생이 늘 그렇듯이 성공이다실패다갈라 말할 수 없는 삶을 살았다더욱 혼란스러운 것은 윤회가 된 대상이 어떤 이야기에서는 주인공이 아니거나 누군 인지도 불분명하다는 것이다애초에 이 단락을 시작하면서 6명의 주인공들이 어떤 이유로 윤회의 굴레에 빠진 것이라는 전제를 생각해 보면 이런 전개는 이해하기 쉽지 않다굳이 나열해 보자면 윤회의 주체들인 어윙프로비셔레이캐번디시손미메로님인데 캐번디시에서는 윤회를 의심해(?) 볼만한 증거(?)인 혜성 모양의 모반의 존재 여부나 이전 생의 기록을 본 순간 느낀 깊이를 알 수 없는 슬픔도 느끼지 못한다그리고 마지막 이야기의 화자이며 그 어떤 목적으로 다가가는 주체인 자크리는 정작 윤회의 증거인 모반을 가지고 있지 않다오히려 그와 함께 이야기를 진행 가는 메로님이 그 모반을 가지고 있다윤회( 윤회가 그 윤회라면)라는 개념을 좀 더 확장하여 해석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결국 필자가 생각해 건데 이들의 겪는 윤회의 굴레는 우리가 아주 표피(表皮)적으로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불교적 윤회와는 다르다는 것이다전생에 이루지 못한 열반 또는 쌓은 업보를 완성하기 위해 다음 생을 사는 것이라기 보다서로 다른 공간과 시간을 넘나 들며 어떤 목적을 이루려는 흐름이 이들 사이를 흐르기 때문에 표면적이거나 심상적인 동질성이 부여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좀 더 현명한 해석이 아닐까 한다.

 

 


 

인류의 구름 끝에는 무엇이 있길래?

 

저 구름의 길을 따라가다 보면 어딘가에 내가 찾는 그 곳그 것이 있지 않을까꽤 철학적인 명제로도 보인다또 종교적으로 볼 때도 큰 의미가 내포된 듯해서 보고 듣기에 좋다하늘을 물로 보고 구름을 하늘 물위에 뜬 징검다리로 본다면 유대교의 교리와도 비슷하고 건너가보면 그것이 있다라는 식으로 해석하면 불교의 교리인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와도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듯 느낄 수도 있다.

 

인류가 찾아야 할 것 즉 구름 길을 따라 건너 건너 가서 봐야 할 것이 무엇인지는 손미 451이 유일회에게 체포되기 직전에 완성하고 재판에서 선언한 교리에 정리가 되어 있다그리고 그것은 어웡의 일지 마지막에 저자가 어웡의 입을 통해 주저리 주저리 풀어서 실천 과제로 말하고 있다인류가 선사시대에도 과거에도 늘 평안(평화안녕 등등)하게 방법이 무엇인가 고민을 해왔다인류에게 평안만이 바로 행복이기 때문이다그리고 찾아낸 방법이 배부르고 따뜻하게 사는 것이었다생물학적으로 약한 신체구조를 가진 인류는 역사 이전 시대에는 포식자나 먹이 감을 죽이는 방법을 찾아내면서 그 행복과 평안추구 했고 생물학적 한계를 뛰어 넘는 뇌를 가진 후에는 물질과 권력을 쌓으면서 그것을 평안으로 추구했다.

 

친구의 신뢰를 이용해 친구의 가방에서 돈을 훔치려고 위험한 항해와 불편한 거짓 행동까지 하고 같은 처지임에도 자기 보다 약한 원주민을 정복하여 자신의 평안(?)을 위해 상대를 희생시키며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는 타인의 약점을 이용하고 자존심을 짓밟았다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정당화 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까지도 속였다그리고 더 커진 평안에 대한 목마름은 이제 자신의 동족과 자신의 삶의 터전도 팔아버릴 기세로 달려든다결국 어느 날 동족을 노예로 부리는 것도 성이 안 찼는지 동족을 죽여 내 배를 채우기까지 할 것이다.그렇게 멸망으로 치닫다가 문득 잠시 돌아보면 주위에는 아무도 아무것도 없는 공포스런 고요의 시간이 찾아올 것이다.

 

문명이 거의 사라진 전쟁 후 외딴 섬에서도 작은 희망의 씨앗까지도 당장에 먹고 마시고 싸버릴 것으로 소모하는 코나 족이 있는 것을 보면 구름 끝에 무엇이 존재할지 두렵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고 외치는 이가 광야 있다면 아직 희망이 있다그들은 작고 약한 존재이지만 그들은 가슴 속 깊이 아직 희망을 가진 어떤 이들의 마음을 열 힘을 가지고 있다그래서 그들이 하나라도 있다면 아직 희망이 있고 불씨를 다시 살릴 기회가 있는 것이다그 업보 때문에  어윙프로비셔레이캐번디시손미매로님자크리 가 그들의 힘겨운 삶을 열심히 살다가 죽은 것이다그리고 그들 사이는 어떤 경로 이건 희망이라는 끈으로 이어져 있는 것이다그 들이 같은 존재가 아니더라고 구름의 길을 보면서 누군가 그 길을 걸어왔을 것이고 내가 걸어갈 길이고 또 누군가 걸어갈 길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그 것들을 느낄 수 있다그 들은 우리 중에 어떤 이었을 것이고 어떤 이 이며 어떤 이 일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인류는 결국 하나에서 시작된 개별적 존재이면서 하나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류는 지속 가능한가?

 

지금은 알 수 없다나라는 작은 존재로는 인지 할 수 없다만일 내가 하루 하루의 먹을 것과 입을 것과 남과의 비교에서 우위를 차지하라는 생각으로 산다면 언젠가 내 주변은 내가 배설한 분비물과 내가 죽인 것들의 흔적만이 남아 침묵의 세상이 될 것이다반대로 내가 나의 친구들과 나의 자녀를 위해 나의 배 채우기를 조절하며 산다면 인생들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연장할 수 있지 않을까내 가내 가족이 내 민족이 그렇게 한다면 그 지속 시간은 조금 더 조금 더 연장될 것이다그 후에는그 후에 어찌 될지 내가 어찌 알겠는가내 생각 밖의 것까지 고민하면 살기에는 인생은 너무 짧고 그래서 아름다우니 그 인생을 즐기는데 그 시간을 써야 할 것 같다.

 

지금 남들이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남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내 안에 탐욕이 있다는 증거이다남과의 비교에서 만족할 만한 사람은 하나도 없기 때문에 비교 후에는 반드시 절망하고 욕망한다그리고 그 결단(決斷)은 남을 밟고 올라서서 기어이 내가 꼭대기에 서서 나보다 높은 이가 없게 하고자 할 것이다욕망으로 사느냐 아니며 남겨두고 외치며 사느냐의 선택은 스스로 할 수 있지만 그 결과에 대해서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그 책임이 언제 지워질 지 그것이 어떤 것인지는 사람들은 알 수 없다사람들은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류가 스스로의 유한성을 인정하고 그것을 삶에서 실천하는 것은 인류의 지속 가능성에는 가장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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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드 아틀라스 1
데이비드 미첼 지음, 송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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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의 길을 따라가다 보면 만나게 되는 것 – 클라우드 아틀라스 (Cloud Atlas)




 

인생의 목적은 무엇일까?

 

인간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라는 물음은 너무나 오래되고 심각한 질문이다어느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자신의 본질과 가치에 대한 물음이다인생(人生)들은 이 물음에 대한 답이 없이 보낸 기간이 너무나 길었는지 이제는 잊어져 버린 듯도 보인다이 해묵은(?) 질문은 필자의 어린 시절에는 필자를 무척이나 괴롭혔었다과거완료형이다필자도 이제는 이런 질문으로 스스로를 괴롭히지는 않다는 말이다그런데 이 어렵게 무서운(?) 질문을 다시 끌어내 머리 속에 담는 일이 발생했다.

 

작년 국내에서는 인기 있던 축은 아니지만 좀 특이한 이력으로 알려진 배두나’ 가 뜬금 없이 워쇼스키’ 남매(?)의 신작 클라우드 아트라스에 주연급으로 출연헀다는 이야기가 국내에 소개된다캐나다에서 열린 어떤 영화제 소식이었는데 요즘 우리나라 배우들도 헐리우드를 들락거리는 판에 그런가 보다’ 했다그리고 작년 말에 그 영화가 국내에 개봉 되고 배두나의 출연 등으로 반짝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필자도 이 시기에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았던 것 같다필자가 주목했던 부분은 배두나가 영화에 분한 손미451 이라는 코드명을 가진 클론리프리컨트에 대한 팬들의 반응이었다. ‘Sonmi451’ 이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해 나가는 과정에서 클라우드 아트라스의 팬들 중에 대다수가 손미 451’의 팬이기도 하다는 점이었다. Sonmi451이라는 프로젝트 명으로 음반을 지속적으로 내는 아티스트도 있었다.

그런 계기로 얼마 전에 클라우드 아틀라스를 읽었는데 영화를 통해 접한 본 작에 대한 얕은 정보에서의 요점은 윤회 (輪廻)사상’ 이었다윤회사상을 다른 영화라 ㅋㅋㅋ 어린아이 수준의 기독교인이라면 그 영화 보지마’ 할 이야기 이다그런데 막상 본 작을 다 읽고 난 후에 드는 생각은 다르다주로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라는 것은 성불(成佛)’해탈(解脫)’, ‘니르바나(Nirvana)’에 이르지 못한 인생이 전생의 업보를 떠 앉고 다음 생을 살아가는 것으로 그 업보에서 벗어나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 교리(敎理)이다즉 윤회는 세속적인 관점에서 어떤 이가 다음 생에서 다른 삶을 살아간다는 영생(營生)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 자체가 고통스러운 인생의 굴레라는 것이다그렇게 보자면6가지 다른 이야기에서 감추려는 듯 살며시 그들이 같은 윤회의 생을 살아가는 어쩌면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암시는 어떤 의미일까?

 

그들이 윤회의 굴레에서 서로 연이 닿은 또는 같은 운명을 타고나고 전생에 이루지 못한 것을 완성하기 위해 환생한 존재라면 그들의 극적인 삶의 목적은 무엇일까생각을 해 본다.

 

 

 

 

 

윤회가 답인가?

 

앞서 이야기 했듯이 6개의 삶이 그들의 몸에 난 같은 모양의 모반과 의식 바닥에 깔려 있다가 전생과 연관된 것들을 접하는 순간 알 수 없는 기억이 살아나는 듯한 느낌으로 그들이 다음 생을 살기 위해 환생한 같은 존재라고 결론을 내보면 그 존재는 이루지 못한 생의 어떤 목적(目的)이 있기에 다시 인생을 살게 된 것이다적어도 불교의 교리에 의하면 그렇다그렇다고 가정해 보고 애덤 어윙로보트 프로비셔루이자 레이티머시 캐번디시,  손미 451, 자크리이 들이 공통적으로 살아간 삶의 그 목표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물론 이들의 삶아간 삶의 교집합과 합집합이 바로 이 작품의 주제일 테니 필자가 주저리 너스레를 떨 필요가 없어졌다.(괜히 머리만 아플 뻔 했다.)

 

클라우드 아트라스의 주제는 마지막 에피소드 즉 애덤 어웡의 항해일지 마지막에 친절하게도 정리되어 있다그것은 지겹도록 들어온 인류애 대한 이야기 이지만 단순히 서로에게 잘해야 한다거나 그것이 보편적인 인간들의 삶이라고 말하는 것 보다는 좀 더 현실적으로 정리하고 있다.즉 인류가 최대한 오래 지속하려면 자원을 공평하고 공정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인류의 삶에서 나타난 거의 모든 문제가 바로 이 자원의 불균형과 부족에서 나왔다고 본다면 이 결론은 페부를 찌를 듯이 정확한 것이다.

 

이것을 가지고 6가지 이야기들의 내용을 살펴보면 6가지 이야기가 거의 같은 이야기로 결론이 난다인간이 인간을 지배하고 착취하는 것결핍과 착취의 문제인류 전체에 까지 영향을 끼치는 위험한 진보목적을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도 정당화 되고 미화된다는 점 등등… 각 주인공들이 처한 절명의 상황에서 악한 세력(인간의 욕망 위에 선 권력)과 맞선다는 점결국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여기서 잠깐 윤회는 이루지 못한 해탈에 기인하는데 그렇다면 이 들이 윤회를 거듭한 것이 이들이 이루지 못한 어떤 것또는 전생에서 만든 업보 때문이라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하지만 소설의 결말에서는 이들은 고난의 상황에서 우뚝 솟아 소기의 목적에 가까워져 있음을 암시하지 않았는가?

이에 필자는 이 들의 관계가 단순히 윤회의 굴레’ 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무엇을 이루고 무엇을 이루지 못했는가?

 

애덤 어윙은 나름 근면한 그리스도인임을 자부하고 신실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인간들의 보편 타당한 인간성을 믿으며 자신도 그것에 기반을 두고 살아왔지만 그가 방문한 야생(?)의 세계에서 인간은 동물에 가까웠다약육강식의 자연이론으로 밖에 설명할 수 없는 인간군상의 모습과 심지어 자신의 신뢰를 이용하여 자신을 도구화하는 친구(?)의 모습 등으로 죽어간다그리고 얼떨결에 구해준 한 오리모리족 청년을 통해 다시 살아나면서 인생이 살아가야 할 방향을 찾는다그가 꿈꾸던 노예해방은 현실의 역사에서 이루어 졌다.

 

로버트 프로비셔는 재능이 있지만 성실하지 못한 작곡가이다방탕한 생활(도박여자)로 재산을 탕진하고 네덜란드의 어느 시골에서 은둔해 산다는 은퇴한 작곡가를 찾아가 기생할 생각으로 그의 마지막 여정을 시작한다그의 새로운 생활에서 그는 자신의 선생의 재능과 자신의 재능을 살려내고 그가 원하던 방탕한 삶도 어느 정도 회복하는 듯 하다그러나 그를 도와주는 듯하던 노쇠한 작곡가가 실은 자신의 재능을 이용해 쇠락하던 자기의 명성을 살리려 한다는 것을 알았고 또 이미 회복하기 어려운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절망한다그런 와중에도 생의 마지막에클라우드 아틀라스 6중주을 남긴다프로비셔의 삶을 세속적으로 성공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그 가 전에는 한 번도 완성하지 못한 작곡을 해 낸 것을 생각하면 그것은 성공이고 가난과 실연으로 생을 스스로 마감한 것은 비극이다.

 

루이자 레이는 프로비셔의 친구였던 식스 스미스 박사를 우연히 알게 되면서 원자력 발전소와 정부 권력자들이 은페 하고자 하는 원자력 사업의 문제에 대한 특종을 잡게 된다물론 이런 거대 기업/관료 조직을 상대로 한 싸움에서는 자신과 가족의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데 결국에는 자신만은 살아남고 원자력 발전소의 심각한 결함은 밝혀진다성공인가?

실패한 출판업자(인생?) 티머시 캐번디시는 폭력배들과 채무자들을 피해 도피를 하던 중에 동생이 예약해 준 호텔에 묶게 되는데 그곳은 실상 치매 노인들을 수용하는 요양원이었다평생 어떤 것에도 성실하지 못한 삶을 살아온 그는 요양원 탈출에 온 힘을 쓴다요양원에서 만나 친구들과 탈출을 하고 의도 하지 않았던 책이 인기를 끌면서 그이 말년에 꽃이 핀다이 것은 확실히 성공이다맞는가?

 

손미-451은 파파송 회사의 배양탱크에서 태어난 복제인간클론이다단순히 어떤 인간의 DNA를 복제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하기 싫어하거나 위험한 일을 대신 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대체물리프리컨트 중에 하나이다또한 단순히 강제로 일하는 정도가 아니라 시키는 일만 하다가 내구연한이 차면 해체해서 다른 자원을 재활용하는 말 그대로의 기계이다그녀가 어느 날 상승이라고 불리는 자각을 하면서 사건이 벌어진다.권력이 짜 놓은 극적인 상황을 알면서도 순응하여 그녀가 결과적으로 얹은 것은 처형을 당하는 것이었지만 대신 인간들에게 자신이 겪었던 자각의 과정을 남겼다이 역시 실패인가성공인가?

 

시간을 알 수 없는 어느 시간인류문명이 사라질 규모의 전쟁 이후 외딴 섬에 사는 자크리는 어린 시절 자신의 부주의로 폭력적인 코나 족에게 아버지를 잃고 형을 노예로 끌려가게 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며 산다어느 날 전쟁 전 문명을 가진 메로님의 방문으로 인류의 조상들에게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를 알게 된다코나 족은 섬 전체를 약탈하고 결국 그는 가족을 지키지 못한다하지만 그는 다른 섬으로 탈출하고 생을 이어갔다성공인가실패인가?

 

 

서로 다른 배경들과 다른 서로 사건들과 거기에 구술 방법과 문체 마저도 상이한 이 6가지 이야기에서 주인공은 실패하기도 하고 성공하기도 했다인생이 늘 그렇듯이 성공이다실패다갈라 말할 수 없는 삶을 살았다더욱 혼란스러운 것은 윤회가 된 대상이 어떤 이야기에서는 주인공이 아니거나 누군 인지도 불분명하다는 것이다애초에 이 단락을 시작하면서 6명의 주인공들이 어떤 이유로 윤회의 굴레에 빠진 것이라는 전제를 생각해 보면 이런 전개는 이해하기 쉽지 않다굳이 나열해 보자면 윤회의 주체들인 어윙프로비셔레이캐번디시손미메로님인데 캐번디시에서는 윤회를 의심해(?) 볼만한 증거(?)인 혜성 모양의 모반의 존재 여부나 이전 생의 기록을 본 순간 느낀 깊이를 알 수 없는 슬픔도 느끼지 못한다그리고 마지막 이야기의 화자이며 그 어떤 목적으로 다가가는 주체인 자크리는 정작 윤회의 증거인 모반을 가지고 있지 않다.오히려 그와 함께 이야기를 진행 가는 메로님이 그 모반을 가지고 있다윤회( 윤회가 그 윤회라면)라는 개념을 좀 더 확장하여 해석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결국 필자가 생각해 건데 이들의 겪는 윤회의 굴레는 우리가 아주 표피(表皮)적으로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불교적 윤회와는 다르다는 것이다.전생에 이루지 못한 열반 또는 쌓은 업보를 완성하기 위해 다음 생을 사는 것이라기 보다서로 다른 공간과 시간을 넘나 들며 어떤 목적을 이루려는 흐름이 이들 사이를 흐르기 때문에 표면적이거나 심상적인 동질성이 부여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좀 더 현명한 해석이 아닐까 한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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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 구약 모세오경 - 일상의 언어로 쓰여진 성경 옆의 성경 The Message 시리즈
유진 피터슨 지음, 김순현 외 옮김, 김회권 감수 / 복있는사람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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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 피터슨 목사의 역작 메시지 성경의 한국어판이다. 

우리나라에서 사용되는 성경은 천주교와 개신교가 공동 번역한 것이 그나마 조금 읽기 쉽게 현대어에 가깝게 번역이 되었을 뿐 특히 개신교에서 사용되는 대부분의 한글 성경은 50~70년대 번역한 문체와 단어들을 사용하고 있어서 현재를 살아가는 한국인들에게는 다소 난해한 점이 있다. 거기다가 히브리어/히랍어 -> 라틴어 -> 영어 -> 한국어 등 여러차례 번역을 하는 과정에서 잘못 번역이 된 경우가 많아 이해하기 더욱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영어 대역본 성경에서 같은 구절을 영어로 보면 그 뜻이 한글과 다른 경우도 종종 발견이 될 정도이다.

 

성경이 문체가 어렵게 느껴지기는 미국인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유진 피터슨은 목사로서의 사역 중에 신자들이 성경을 읽기 어렵다는 많은 의견을 이야기 했기에 성경을 현대어로 써야 한다는 의지를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유진 피터슨 역시 기존 성경을 기반으로 표현(도량 형 등등...)들을 현대적으로 바뀐 것이라 기존 성경과 다른 이야기를 하거나 그 뜻이 바뀐 것은 아니다. 한국어판 역시 기존 한글 번역 성경을 기반으로 피터슨의 메시지 성경을 번역한 것이라 마찬가지이다. 즉 성경의 본 뜻을 완벽하게 강해하지는 못하는 한계가 여전하다.

 

다만 문체나 단어가 어려워 성경을 멀리하던 사람들에게는 쉽게 읽힐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특히 연구와 설교 인용 목적으로 나누어 졌던 장과 절은 읽기 쉽게 편집이 되어 있어서 구독 시 끓김이 적어졌다는 것은 기술적으로 메시지 성격이 가지는 중요한 부분이다.

 

모세 5경은 기독교와 유대교가 공통으로 인정하는 구약이다.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로 특히 많은 신자들이 어려운 단어, 난해한 문체, 내러티브가 없는 전개, 많은 설명과 묘사, 많은 나열 등으로 시작부터 고전하는 하는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는 메시지 성경으로 읽으면 좀 더 쉽게 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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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 내 아버지의 선물 - 캠핑의 참맛을 담은 공감 에세이
김현수 지음 / 시공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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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레저의 대세는 역시 캠핑인 것이 확실하다. 내 주의를 돌아봐도 취미 생활을 캠핑으로 전환한 사람들이 많다. 내 주위에는 사진촬영이 취미인 사람들이 많았다. 필자 역시 사진과 여행을 꽤 열심히 하던 사람 중에 하나였다. 그런데 사진을 같이 하던 친구들이 대거 캠핑으로 돌아섰다. 심지어 가장 소중한 재산이던 카메라와 렌즈를 팔아 캠핑 장비를 사는 것을 보면서 역시 대세구나 생각했다.

필자도 등산을 1년 정도 열심히 하다고 1년 정도 캠핑을 열심히 했다. 그리고 지금은 일체의 레저생활을 못하고(안하고) 있는데 책장에 꽂힌 이 책을 선뜻 잡지 못하다고 최근에 3일만에 읽어버리고 이 글을 쓰게 되었다.




몰려서 이동하는 이유

사람들이 아웃도어 레저에 몰린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우리나라처럼 취미생활도 대세에 따라 변하는 곳에서는 이런 쏠림 현상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인라인 스케이트에서 자전거 바뀐 이유는 인라인 스케이트가 무척 고되고 다칠 가능성이 많은 스포츠이고 거기다가 고 난이도 기술을 연마하는데 시간이 많이 들기 때문이었다. 이에 반해 자전거는 난이도의 선택사항이 많고 집에서부터 타고 나가 실력에 상관없이 어디서나 탈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다시 등산으로 몰리게 되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자전거가 꽤 지루한(?)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1시간이고 2시간이고 비슷한 길을 묵묵히 달리는 것에 비해 등산은 지형에 따라 난이도가 다양하고 때로는 죽겠구나 싶을 정도로 숨이 차다가 좀 쉬면 몸이 개운해지는 정말 역동성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자연 안에 들어가서 자연을 직접 즐기며 산행 중에 언제라도 동료들과 이야기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등산 못지않게 유행하는 레저가 바로 오토캠핑이다. 등산을 미친 사람처럼 하는 부류에서는 소위 ‘비박’이라고 해서 산에서 텐트를 치고 자기도 하는데 이 때 모든 장비를 등에 지고 산행을 해야 하기 때문에 무척 힘들다. 그러나 오토캠핑은 말 그대로 차에 모든 장비를 싣고 넓은 공간에 차와 텐트를 치고 심지어 캠핑 장에서는 세탁기와 샤위부스까지 설치되어 있다. 오토캠핑은 야외에서 자기는 하지만 사실상 집에서 누리는 거의 모든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가족들과 함께 하기 좋은 레저이다. 이런 점 때문에 캠핑이 가족 단위의 레저로 대세가 된 것 같다. 





아파트에는 없고 캠핑에는 없는 것

요즘 사람들의 대 부분은 좁은 집에서 산다. 아파트는 생활은 몸은 편하지만 창 밖으로 보이는 같은 모양의 아파트들과 산이 막혀 보이지 않는 답답한 도시에서 산다. 매일 매일 일터로 나가는 과정과 일터에서의 환경도 마찬가지이다. 어린 시절 도시에도 자연이 있었고 골목에서 아이들과 자라며 방학에는 시골의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서 보낸 추억이 있는 30대 중반 이상의 사람들에게는 아무리 편한 도시 생활에서도 자연을 그리게 된다.

또 자연이라고 해야 놀이공원의 숲이나 인위적으로 조성된 도심의 공원의 추억이 거의 전부인 10대 들에게는 몸으로 체험하는 자연은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신기한 체험이 된다.

이런 점에서 캠핑은 설마 요즘의 그것이 과연 자연친화적이냐 하는 의문에도 불구하고 당연한 매력을 지니게 된다.

사람들은 텐트나 타프(천막) 그리고 공동시설(수도, 화장실 등등…)을 사용하면서 자신의 생활이 개방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일상에서는 이런 것이 불쾌하고 불편한 것이지만 캠핑 장에서는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라 캠핑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대부분의 여성)이라도 대부분은 금세 익숙해진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런 개방된 환경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심적으로도 개방이 되어 평소에는 금기시하던 것들도 이 곳에서는 다르게 인지하고 행동한다. 

이 책에서 저자가 쓴 글 중에 어떤 아이의 이야기에서 그런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평소에는 ‘옆집 아이들과 놀지 못하게 하던 엄마는 옆 텐트의 아이들과 노는 것을 나무라지 않는다.’

‘흙 장난을 하면 많이 혼나는데 여기서는 엄마도 화를 내지 않으신다.’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된다.’
‘마음껏 놀 수 있다.’



어른도 마찬가지이다.
집에서 멀리 나와있고 야외이다. 꼼꼼히 챙긴다 해도 놓고 온 긴요한 물건들이 있다. 팩을 막을 망치를 잊었다거나 가져온 ‘렌턴’이 너무 어둡다면 정말 곤란하다. ‘버거’가 말을 안 듣는다면 밥을 못 먹을 상황이 된다. 이럴 때는 이웃집의 도움이 절실하다. 많은 이웃 텐트 중에는 반드시 도움을 줄 사람이 있다. 그리고 이런 개방된 곳에서는 이웃의 어려움이 쉽게 발견되고 선뜻 도움을 줄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나 역시도 마음이 풀어지고 삶의 무게에서 쉽게 벗어나지 않겠는가?




남들이 한다고 나도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앞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쏠림에 대해 이야기 했다. 캠핑에서도 이런 병리현상이 보이고 있다. 아무리 대세라고 해도 요즘 캠핑은 많은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에 섣불리 시작할 것은 아니다. 어린 시절 여름휴가로 갔던 계곡야영이나 해수욕장 야영에서는 버너, 코펠과 텐트만 있으면 되었다. 나머지는 집에서 사용하던 것으로 바리바리 싸가면 되었지만 요즘의 오토캠핑은 텐트에서는 장비준비만 해도 무척 부담스럽다. 자칫 장비 병(카메라 장비만 모으고, 1-200만원선의 자전거에 고가의 액세사리로 치장하는 행동)에 걸려 가산을 탕진(요즘 국내 장비들도 수요 증가에 따라 고가정책을 쓰고 수입브랜드는 말할 것도 없이 꽤 비싸다.)할 수도 있다. 그리고 가족캠핑은 당연히 가족의 동의가 먼저이다. 특히 남편이라면 아내의 동의를 구하고 협조를 구하는 것이 먼저이다. 가족을 위해 시작한 일이 자칫 남편 혼자만 신나서 가족의 불화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준비는 어렵지만 일단 시작하고 나면 그 매력에 빠질 수 밖에 없는 것이 캠핑이다. 준비과정에서의 어려움이나 경제적인 부담을 모두 날려버릴 만큼 신나는 마음의 평화가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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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대화법 - 아이의 숨은 잠재력을 끌어내는
전도근 지음 / 지식채널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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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육아에서 엄마 따로 아빠 따로 분리하지는 않는다. 다만 여전히 아빠는 출근하고 엄마는 집에서 가사와 육아를 하는 가정이 많다 보니 아빠의 육아를 따로 분리하여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현실적이며 인구통계학적인 원인뿐만 아니라 아빠의 적극적인 육아가 아이에게 미치는 발달학적 이 점 때문에 아빠의 육아 문제는 최근에는 이전과 다른 다른 시각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적극적인 아빠 육아의 장점

엄마의 뱃속에서 엄마와 한 몸으로 자라기 때문에 아이는 유아기까지도 엄마와 자신을 동일시 하거나 나라는 범주 안에서 인식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잘 놀다가도 다치거나 낯선 사람이 등장하면 엄마에게로 달려간다. 잠투정을 하거나 몸이 아플 때 엄마가 엄마 품에서라면 안정을 취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에 반해 아빠는 아이의 인생에서 가장 먼저 접하는 세상이다. 엄마와 나를 분리하기 시작하면서 아빠라는 존재는 신기한 존재이다. 엄마만큼이나 오랜 시간을 친밀하게 보내지만 아빠는 나와 다른 존재로 인지된다. 나의 바깥세상의 존재이기 때문에 엄마와 비해서는 덜 친근한 존재이지만 자라면서 알게 되는 바깥 세상 중에서 가장 친밀한 존재가 아빠이다. 이 때 아빠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아빠를 통해 바깥세상과 다른 존재에 대해 긍정적으로 접한 아이들은 세상을 살면서 부딪히는 사건들과 사람들에 대해 적극적이며 긍정적인 삶을 살아갈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반면 아빠와 관계가 친밀하지 못할 경우 사회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물론 부모 일방에 의해 결정될 사항은 아니지만 아빠와의 관계가 사회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가에 대한 의미 있는 결과이다.




아빠 육아 – 자존감 높은 사회 구성원의 탄생

아빠의 경우 엄마에 비해 아이와의 감성적 연대가 약한 편이다. 이것은 남녀의 특징 때문이기도 하고 사회적 역할 차이에 기인하기도 한다. 엄마는 정서 부분에서 아빠는 사회성 부분에서 특화된 특징을 가진다.

우리나라처럼 가부장적인 사회에서는 아버지가 자녀의 교육은 몰라도 육아에 신경을 쓰는 일이 매우 드물었다. 특히나 다른 나라에 비해서는 그 예를 찾아보기 힘든 고속성장 속에서 일에 내몰린 아버지들은 자녀에 대해서는 아예 신경을 쓸 수 없는 기경까지 이른다. 아버지의 무관심이 자녀의 성공적인 대학입시의 3대 조건이라고 하는 이야기가 실제로 회자되는 이런 사회에서 윤택한 교육환경을 가진 서구 유럽에서 아빠육아에 대한 연구의 진행과 실제 사회가 아빠의 적극적인 육아에 대해 매우 적극적으로 수용한다는 이야기는 우리의 상황을 더욱 서글프게 한다.

필자의 주변에도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아버지와 친밀하고 대화가 잦은 사람에게서는 매우 높은 자존 감을 느낄 수 있다. 대인 관계에서는 적극적이면 당당하고 자신의 일에서도 자긍심이 높으면 따라서 업무 성취도도 높게 평가된다. 이런 사람들은 직급, 지위 여하를 떠나서 남들이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특히나 아빠와의 관계가 돈독한 여아들의 경우에는 자라면서 남자들과의 관계에서 주도적이며 다른 여아들에 비해 월등한 성취도를 보인다. 나아가 성인이 되어서도 조직에서의 성취도가 높고 결혼 생활의 만족도가 높다. 또한 자녀 양육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아빠 – 세상

앞에서 이미 이야기 했듯이 아이에게 아빠는 세상이다. 남아들이 흔히 ‘커서 아빠처럼 될꺼예요’. 여아들이 ‘커서 아빠 같은 사람과 결혼 할꺼예요’ 라고 하는 말은 쉽게 지나칠 말이 아니다. 
아이들은 엄마를 떠나 아빠에게 온다. 이것은 자라나서 부모의 품을 떠나 독립하는 과정의 축소판이다. 아이들은 경제적 독립을 하기 전까지는 아빠를 통해 세상을 본다.




세상의 아빠들은 아이들이 자기를 통해 세상을 보고 세상에 나아가기 위한 준비를 해 간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자신이 느끼듯이 세상살이는 녹녹하지 않다. 그러기 부모는 아이를 사랑과 좋은 음식으로 키워야 합니다. 더불어 세상풍파에도 굳건한 마음과 몸을 키워줘야 합니다.





육아에서도 드러나는 삐뚤어진 우리의 의식 세계

대학 들어가면 사라지는 대기업에 취업했는데도 여전히 뭔가 모자란…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되어서도 여전히 부족한 그런 것이 아니라 자녀가 죽을 때까지 자기 것으로 지니고 살아갈 것을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육아는 본능적으로 알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배웠기 때문에 잘못된 육아를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스스로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 육아방식에 아이가 엇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즘처럼 부모와 아이들에게 필요 없이 스트레스가 심한 세상에서는 이렇게 무식한 상태로 아이를 키우는 것은 죄악입니다.
문제가 생기면 전문가에게 상담해 볼 수 있습니다. 세상 참 좋죠 이런 문제도 해결해주는 전문가들이 있으니까요? 이 것은 결국 육아 문제도 돈으로 해결하는 것이 됩니다. 이런 의식이 거의 모든 사람의 기저에 깔려있다는 것은 큰 재앙입니다.

세상이 변하면 모든 것이 변합니다. 아이들도 변하고 부모의 역할도 변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아이들이 자라서 살아갈 사회도 구성원들에게 바라는 바가 변합니다. 그것은 미리 예상하기는 어렵지만 부모는 변하지 않는 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그게 무엇일까요? 

공부하세요~~~~~


고맙게도 세상에는 전문가들이 쉽게 정리해둔 지식이 많습니다. 단돈 1~2만원짜이 육아 서적 하나만 제대로 읽고 실천하면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이런 책 안 읽어도 원래 잘하는 분들이 있기도 합니다. 이런 분들~~~ 축복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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