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크릿 오브 주얼리 - 추억을 간직하는 보석 이야기
송경미 지음 / 시공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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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얼리’는 알겠는데 ‘앤틱 주얼리’는 무엇인가? 할 분들이 혹시 있을지 모르겠다. ‘앤틱’이라는 의미가 ‘오래된’ 이란 뜻이니 오래된 장신구 정도가 될까? 저자는 필자의 이런 구태의연한 이런 말 풀이에 ‘나는 반대일세!’ 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앤틱 주얼리’라는 개념은 제작연도로 구분하여 제작된지 100년 정도된 장신구 중에 희소성, 예술성, 제작에 사용된 보석들 자체의 가치 등을 따져서 대략의 기준 이상이 되는 장신구들을 말하는데 저자는 여기에 앤틱의 특성상 처음 제작된 이후 여러 사람들의 손을 거쳐서 현재의 주인에게 오기 때문에 내가 관심을 가진 주얼리가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 보는 것은 ‘앤틱 주얼리’에만 부여되는 가치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정서상 남이 쓰던 물건을 내가 쓰는 것에 대해서는 다소 부정적인 인상을 먼저 갖기 때문에 앤틱 주얼리에 대한 거부감이 다소간 있을 것이다. ‘집안에 어떤 것이 들어오면 집안에 우환이 생긴다.’ 라는 이야기처럼 어떤 이들에게 중요한 어떤 것이 나의 것이 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닌 것 같다. 앤틱 주얼리가 대략 100년 전후에 유럽에서 제작된 것들이 주류를 이루다 보니 프랑스 혁명 당시에 왕족, 귀족들이 소유했던 주얼리 중에는 그 주인이 처형된 경우가 종종 있어 이런 사연이 있는 주얼리에 대한 거부감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반면 패션에 대해서는 선진국이라는 서구 유럽국가와 미국에서는 한 동안 앤틱 주얼리가 일종의 유행을 타고 있다. 피자의 글에 의하면 최근 시상식 등에서 유명 연예인들이 최신 스타일의 메이저 주얼리 보다 엔틱 주얼리를 더 많이 사용한다고 한다.



이 책은

스크릿 오브 주얼리- 앤틱 주얼리에 대한 입문서이다.
필자는 이 책을 그냥 가볍게 읽자고 집어 들었다. 제목 만 봐서는 어떤 스타일의 책인지 알기 어려웠지만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전에 차례와 몇 페이지를 미리 보니 무거운 책이 아니라는 판단을 내려서 무거운 책 두 권을 읽은 후 머리를 식힐 요량이었다.

필자나 필자의 가족들은 주얼리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관심도 없는 사람들이라 보통의 여자들과 매우 스타일쉬한 일부 남자들이 주얼리를 대할 때의 느낌을 이해하기 너무 어렵다. 따라서 저자가 채의 초반과 결론으로 이야기한 것들(자신만의 주얼리 컬랙션을 가져보라는…, 특별한 주얼리는 만났을 때의 느낌….)에 대한 공감을 할 수 없다. 그런 느낌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세상에는 워낙 다양한 사람들이 사니까 같은 것에 대해 이런저런 다른 느낌을 가질 것이고 특정 분야에 대해 필자의 경우처럼 전혀 감흥이 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필자가 이 책을 읽으면서 도움이 되었던 부분은 2장에서 소개하는 근대와 근 현대의 주얼리의 개략적인 역사이다. 사실 필자가 이 책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이 책에 대해 바랐던 부분이 바로 이 것이었다.



고가 주얼리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

저자가 1장에서 자신이 앤틱 주얼러가 된 이유를 이야기한다. 우연치 않은 어떤 경험이 결국 자신을 앤틱 주얼러가 되게 했고 다른 사람들도 자신의 느꼈던 소중한 느낌들이 함께 하길 바란다고 말한다. 또 책의 결론에서는 주얼리 컬렉션을 장점을 이야기하면서 그 신비롭고 사랑스런 세계를 함께 경험하자도 한다.

저자는 주얼리에 대한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인식 부족을 말하는 부분에서 고급 주얼리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에 대해 이야기 한다. 부유층에서 고가의 주얼리를 구매하면서 다른 이들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비밀스럽게 구매하는 헤프닝을 소개하면서 이런 행태와 자기의 돈을 쓰면서 남의 눈치를 보는 이상한 분위기를 이해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 말은 사실이다. 자기 돈을 쓰면서 왜 그럴까? 국내에서 골프를 치러 다니면 이러쿵 저러쿵 말들이 많다고 동남아시아로 골프를 치러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국내에서 소비하면 우리나라 내수 진작에 도움이 되는데 왜 굳이 해외에 나가서 그래야만 할까? 그 대답은 이 책에서도 약간 다룬 고가의 미술품 수집 문제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필자의 바램처럼 미술품이나 주얼리의 가치를 알아보고 나의 마음에 쏙 드는 것을 구매해서 마음껏 사용하고 때로는 남들에게도 보란 듯이 자랑하면서 즐기는 것은 그 것을 빚을 내서 사던 말던 다른 이의 취향이나 경제 상황에 대해서는 참견 할 바 아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타인의 평가로 나의 존재감을 확인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자존 감이 약하다고 말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긍정적인 면에서는 내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라는 것을 생각한다는 점도 한 가지 이유이다. 내가 아무리 소중해도 보통의 사람들과 확연히 다른 무언가를 한다고 것은 쉽지 않다. 이런 두 가지 면이 긍정적으로 발휘가 되어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따른다면 무엇을 해도 당당하겠지만 우리나라의 많은 부자들(상당 수 졸부 포함)이 세속적으로는 ‘노블리스’인데 도덕적으로는 오블리제를 실행하지 못한다. 그러니 당당하지 못하니 이상한 행동들을 하는 것이다.


이 책은 주얼리에 대해서만 다루지 때문에 이상한 고가 주얼리의 거래 행태의 원인에 대해서 깊게 이야기 할 바는 아니지만 필자가 개인적으로 생각하면 문제에 대해 잠시 언급해 보았다.

막대한 기부를 하고 봉사활동을 위해 몇 달은 아프리카 오지에서 생활하기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고가의 사치품을 구입하고 개인이 소유하기 어려운 제트기를 구입하는 등 악마와 천사를 오가는 개인사를 보여주는 헐리우드 배우들의 삶을 보면 우리의 현실은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기도 하고 다르게 생각해 보면 영영 불가능한 이야기 같기도 하다. 우리네 부유층들 중에는 손이 큰 사람들은 많아도 마음이 큰 사람은 극히 드물다.

 

 

 

 

 

 

이런 우리의 현실을 생각할 때 고급스런 주얼리, 가치 있다고 판단되는 주얼리를 취급하는 시장이 커지고 대중화되기는 상당히 어렵다고 본다. 앤틱 주얼리도 일부 부유층 위주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앤틱 주얼리 샵을 운영하는 ‘주얼러 로서 저자의 좀 고민이 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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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투쟁 고전으로 미래를 읽는다 12
아돌프 히틀러 지음, 이명성 옮김 / 홍신문화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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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범에서 광기까지 - 아돌프 히틀러

 


2
차 세계대전은 인류에 역사에서 가장 넓은 범위에 피해를 입히고 가장 많은 물자와 인력의 손실을 가져온 전쟁으로 기록이 되어있다. 1차 세계대전이 유럽 대륙내의 전쟁이라면 2차 세계대전은 미국과 일본의 참전으로 범 지구적인 전쟁이 되었다그리고 대전 중에 전투원 못지 않게 민간이 사상자가 많았던 점에서도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전쟁의로 꼽히고 더구나 또 전투와 상관없이 유대인과 동구유럽인들에 대한 민족말살을 목적으로 한 구금강제노역과 대량학살로 씻기 어려운 상처를 인류에게 남기게 된다. 

2
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자가 누구인가 묻는다면 대부분의 사람이 지목하는 인물이 바로 아돌프 히틀러이다역사에 대한 건전한 고찰이 있는 사람이라면 역사의 큰 사건들이 어떤 개인 하나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으로 잘 알기에 모든 책임을 히틀러 한 명에게 그 죄를 물을 수만은 없다하지만 히틀러의 대한 평가는 그 것이 자체에 대한 논하기 조차 어려울 정도는 확고여 재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한편 지난 세기의 세계대전을 겪지 못한 세대가 많아지면서 히틀러에 대한 악몽(?)은 사라져 가면서 최근에 그에 대해서 좀 더 학구적인 평가를 시도하기도 했지만 아직은 그에 대한 평가는 전혀 변함이 없어 보인다기존과 좀 다른 시각의 평가라면 그가 미술에 소질이 있었다는 것과 최근에 와서는 그가 사랑했던 여인을 대한 이야기 등이다.


부담(?)이 되는 책

필자는 오래 전부터 꼭 읽어보고자 했던 책들이 몇 권이 있었다어린 시절부터 익히 들어왔지만 선뜻 잡기에는 망설여지는 이유는 두꺼워서’, ‘구하기 어려워서’ 등으로 대 부분은 읽기 쉽지 않은 책들이었다그 예를 들면맹자돈키호테유토피아체 게바라 평전 등인데 최근 들어서  매 년 2권 정도를 소화해 내고 있다가장 최근에 읽은 것이 바로 이 책  아돌프 히틀러의 나의 투쟁이다.  이 책은 국내에는 양장본을 찾아보기 어려워서 문고판으로 읽게 되었다악마로 지칭되는 히틀러가 쓴 책이 있다는 사실은 고등학교 역사 수업시간에 들었던 것 같다당시에 이 책의 존재(?)을 일깨워준 선생님이 부연 설명을 하긴 했지만 히틀러가 쓴 책이라면 당연히 쓰레기 일 것이라는 생각을 먼저 했었다.

성인이 된 이후 히틀러가 독일국민들의 광기로 몰아갔던 소위 ‘선전’이라는 것이 어떤 것일까 하는 궁금증은 결국 이 책을 입수하게 된 것이다.





병적인 집착

어린 시절 아돌프 히틀러는 또래에 비해 조숙했고 일찍부터 그림에 소질을 보였다고 한다그러나 그의 소질을 키워줄 만큼 부유한 가정도 아니었고 그의 부모특히 아버지는 비실용적인 예술을 공부하라고 배려할 정도의 안목을 가지 부모는 아니었다자신이 어렵게 얹은 공무원의 안정된(?) 삶을 이어가길 원했기 때문에 부자간의 갈등은 계속되었다결국 자신의 의지대로 미술공부를 하게 되었지만 여러 가지 여건은 녹녹하지 않아서 배고픔과 외로움을 겪으며 현실을 비판하는 의식이 높아졌다성인이 되기 이전에 그는 자신의 정체성과 자신이 속한 독일민족의 문제에 대해 나름의 생각을 정리하는 등 사고능력도 남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그는 아버지로부터 독립(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하여 미술공부를 시작하지만 경제적으로 고아와 같은 그의 인생에서 그나마 위안이던 미술실력도 그의 열악한 환경에는 큰 위안이 되지 못한다그 저 밥벌이 도구 일뿐이었다그는 그가 처한 불우한 환경의 원인을 독일민족의 위기 때문으로 인식하게 된다독일민족의 문제를 소위 권력층부르주아 층합스부르크 왕가의 부패와 무능함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어린 시절에 이미 내려버린 이 결론은 그의 일생 동안 그의 가치 판단의 기준으로 자리 잡게 된다.

인종차별 또한 그의 청년기 이후 그의 모든 행동에 묻어나는 집착 중에 하나였다.

그가 정립한 인종차별의 근거는 바로 아리안 인종이 선택 받은 인종이라는 관점으로부터 시작된다그의 독일민족(게르만족)은 아리안족 중에서 가장 도덕적이고 우수한 종족이라는 것이다그의 인종론은 더 넓게 아리안족의 우수성과 순수성 까지 말하지만 결국 그가 말하는 인종의 우수성이라는 것은 편협한 국수주의이며 경제적으로 약자인 그가 부르주아와 유대인 부자들을 심판(?)하기 위해 만든 변명일 뿐이다.

 
아리안족은 유럽뿐 아니라 인도인까지 포함하는데 이 책의 곳곳에서는 아리안족인 인도인은 물론이고 황인종에서는 유일하게 그 우수성을 인정한 일본인들에 대해서도 결국에는 유색인종은 미개하고 추악하기 때문에 백인 아리안족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혐오했던 유대인에 대해서 학살이라는 종국의 방법으로 분노를 표출한다..

 

 

그의 주장처럼 유대인들은 경제력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생존권을 유지해왔고 유대인들은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세계 지배를 노리고 있다세계의 돈 흐름을 쥐고 있는 유대인들은 마음만 먹으면 세계지배의 꿈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이 보인다. 20세기 초에도 상황은 동일했던 것 같다강한 독일 민족의 부흥과 세계 지배자를 꿈꾸던 그에게 경제력으로 권력의 뒤에서 국가를 쥐고 흔드는 유대인들은 당연히 제거해야 할 대상이었다유대인의 특성역사적인 사실들 이런 모든 것들을 열거하여 유대인을 제거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말하지만 사실은 권력과 돈이라는 추악한 의도를 포장한 것뿐이다대부분의 독재자나 비뚤어진 권력자(정치인)이 그랬던 것처럼

 

 


대중 선동과 선전


 이 책은 그가 이끌던 독일사회주의노동당(이 당이야 말로 보수가 말하면 보수좌파이다.)이 대중의 지지를 받자 혁명(쿠테타)을 우려한 기득권 세력과 집권자들에 의해 당은 해체되고 감옥에 투옥이 되었던 시기에 그의 청년시기의 생각들과 입당한 후 선전활동에 전념했던 시기 그리고 정치활동 후에 확고해진 그의 민족관세계관을 비롯한 그의 가치관 전반을 기록한 책이다


히틀러는 스스로 인정했듯이 연설을 통해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선동가이지 저술가는 아니었다그러다 보니 그의 저술은 다소 난해하며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도 상당히 나타난다.

 

필자가 이 쉽지 않은 책을 들게 된 이유가 바로 히틀러가 늘 주장하던 대중선동에 대한 그의 생각을 읽고 싶었다.

 

필자는 지금하고 있는 일을 하면서 잠깐 아마추어로 광고관련 일을 했었다물론 지금도 같이 일하는 분들 중 많은 분들이 광고회사 분들이라 전혀 동떨어진 분야는 아니지만그 때 광고쟁이들이 나치의 대중선동 방법에 대해 연구하고 그것을 광고기법으로 받아들이거나 받아드리려고 시도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괴벨스는 나치의 대중선동 책임자인데 그의 지휘아래 독일국민과 일부 친 나치 세력동맹국을 대상으로 나치의 활동과 이념을 선전하여 동조하게 만드는 일을 했다그 들의 선전선동 방법은 매우 정교하고 과학적이었다고 한다.

 

아마도 나치가 선동선전에 탁월했던 것은 아돌프 히틀러와 연관이 있다고 보았다지금은 터무니 없어 보이는 그의 생각들이 1차 대전과 2차 대전 사이에 독일국민 사이에는 엄청난 동감을 얻어냈다. 1차 대전 후 작은 정치모임이 독일을 독재하는 당으로 커진 것에는 히틀러의 대중 선동의 몫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대중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인지하고 그들이 좋아하는 말로 자신들에 정치입안에 동조하며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따르게 하는 기술그것이 대중선동이고 히틀러는 강력하고 거침없는 대중연설을 통해 이를 실행하고 얹고자 하는 바를 가질 수 있었다히틀러의 연설은 지금 독재자들의 모델이 된 것 같다현존하는 독재자들의 연설 방식과 다르지 않다자극적이고 선동적인 문장들 말초를 자극하는 막말도 서슴지 않았다.

 

 

 

비틀어지고 곪아 터짐

 

히틀러는 독일이 강해지기 위해서는 국민들을 먹여 살린 추가적인 국토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그것도 다른 대륙이 아닌 근접한 유럽에서 새로운 영토를 확보하자고 했다.  전쟁을 피하(전쟁은 가진 자들에게는 어떤 이유에서건 달갑지 않을 것이다.)고 싶었던 바이마르 공화국/부르주아들은 경제 정책을 통해 국민을 먹여 살릴 수 있다고 하여 다른 나라의 교역 등을 확대했는데 히틀러는 이 정책의 배후에는 유대인들의 숨은 의도가 있고 대외 교역은 결국 경제적으로 낙후한 독일을 주변 강대국들의 식민지가 될 것이라는  주장을 했다.

 

더욱 어려워진 정국에 다시 복귀한 히틀러는 구체적으로 적들을 공격할 준비를 한다당시의 독일 사정으로는 군비는 몰론 이고 프랑스나 영국을 상대할 최신 군수품을 마련할 길이 없었다.

이때 그의 삐뚤어진 욕망에 기름을 부어준 이들이 있었다유대인들은 잃어버린 약속의 땅’ 즉 가나안 지역에 유대인 국가를 세우길 원했다그리고 유럽각지에 흩어진 유대인들을 팔레스타인으로 이주시키려 한다이때 가장 반대가 컸던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 게르만 계열의 나라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었다방법을 물색(미국의 정보기관이 이 일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하던 중 히틀러가 눈에 뜬 것이다유대인의 돈을 쓰는 것은 그의 주장이나 가치관에 대치되는 것이었지만 그의 가치관이나 그가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했던 강령은 결국 목적을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다미국은 당장에 돈이 궁했던 히틀러에게 거액을 대주고 심지어 그의 요청을 들어주어 당시에는 최신 첨단 기술들까지 이전해준다그 때 제공된 자금과 기술은 장갑차잠수함 등 연합군을 혼란에 빠트린 최신의 군사장비를 만드는데 사용이 되었다.

 

욕심쟁이들과 미친놈이 합작을 하니 결국 일이 터지고 말았다.

사실상 독일을 장악한 나치는 국민들을 선동하여 극단의 국수주의를 퍼트리고 그 도구의 일부로 유대인을 이용한다집단적인 따돌림폭력/협박에 이어 재산몰수강제수용소 그리고 학살에 이루게 한다대외적으로 폴란드 침공을 시작으로 프랑스와 주변 국가를 점령한다심지어 소련의 모스크바까지 침공 하는데… 히틀러의 위험성을 무시하고 그의 움직임을 독일만의 문제로 생각하던 주변 국가들은 역사상 최악의 전쟁과 대면하게 된다이 후 늘 그렇듯이 미국은 키우던 개에게 물리게 된다.

 

 

 

미친놈이었다.

 

히틀러가 미술에 상당한 소질이 있었다’ 라던가, ‘의외로 감성적이었다거나 그런 걸 바라보고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또 대중선동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가라는 의문도 사실은 처음부터  부정적이었다결론을 말하자면 히틀러가 생각한 조각 조각들의 생각 중에는 훌륭하다고 할만한 것들도 분명히 있다나름 독특하며 도덕적이기도 하다또 종교적인 논조로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그러나 이런 것들은 결국 독일 민족의 이익이라는 것이 대입되면 여지없이 왜곡이 된다.

 

그가 일찍부터 국가와 민족의 문제에 나름의 판단과 그 미래에 대해 가치 판단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비범함 때문이지만 왜곡의 도를 넘어서는 순간 광기가 되어 간다.

 

결국 그는 역사가 말해 주듯이 인류 역사상 최고(?)의 미친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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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사교육 - 내 아이를 학원에 보내고 싶지 않은 학부모를 위한 교육 필독서
이범 외 지음 / 시사IN북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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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은 필자가 2010년 2월에  굿바이 사교육 를 읽고 쓴 글을 읽어 보고 엄청난 오타와 이상한 부분을 정리하면 재 구성하고 내용을 보강한 글이다.



 밖은 봄이고 여름인데...



어떤 학생의 유고시집에 나오는 싯구절에 지하철에서 살짝 눈물이 났다.

고등학생이 쓴 시인데 그의 유고시집에 실렸다그 친구의 유언대로 부모가 출판한 시집이다.

 

봄이라고 봄바람 살랑거리고 여름이라고 햇볕은 아른아른 거리며 가을이라고 형형색색으로 세상은 변한다시간은 자연이 정한 순리를 따라 제대로 가는 우리의 아이들에게는 계절의 변화가 없다단지 하나의 계절을 보내고 있다. '공부의 계절'




대학가서 정말 해야 할 일

 

필자도 입시를 치뤘다. 고2, 고1, 중3 이렇게 일찍 시작하지는 않았다. 고3, 단 10여 개월만 바짝 공부를 했다. 물론 고 1때부터 방학 보충수업을  듣긴 했다. 학교는 소문난 돌머리 학교(학교가 화강암으로 지어졌고 공부 잘하던 친구들도 졸업할 때는 돌이 된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 / 특이하게도 자율적인 학생 활동을 중시 했었다.)에서 그런지 공부에 대한 중압감은 없었다. 집에 늦게 가는 야자가 무척 싫긴 했지만 공부하는 시간 만큼은 집중했던 것 같다. 다만 성적이 워낙 낮아서 지원할 학교를 선택할 때 고민이 꽤 심해졌다.

 

내 성적으로는 서울 외의 소위 지방대 밖에 갈 때가 없었다. 그 때는 집안 상황은 전혀 고려치 않았지만 이제 생각해 보면 지방의 사립대에 입학 했다면 등록금에 생활 비까지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겨우 찾아낸 학교는 춘천의 어느 국립대 그리고 공대 중 에서도 가장 낮은 점수의 학과였다. 필자가 대학을 가던 시절만 해도 웬만한 공대 출신이라면 취업걱정이 없었다. 지원한 학교와 과는 그 웬만한 곳은 아니었지만 점수 때문에 지원했고 막상 원서를 접수하러 기차를 타고 춘천을 가는데... 왜 그리도 먼지... ㅋㅋㅋ 죽을 맛이었다.

 

같이 간 친한 친구 9중에 나만 붙었다. 학교에서는 내가 붙은 사실을 몰랐다. 지방 대이다 보니 정보 입수가 안되었던 모양이다. 159명에 내가 하나 더 추가해서 160명이 전기에 붙었다.(그런 학교다. 그 정도 보내면서 무슨 공부 가르치냐 하겠지만 그 학교 나름 매력 있었다.) 졸업증명서를 발급 받으러 갔더니 그런 상황이었다. 그런데 의외의 결과가 하나 더 있다. 그 과에 붙을지도 장담 못했던 터인데 시험 보러 갔을 때(당시는 선지원 후시험제도로 지원한 학교에서 정해진 시험장에서 시험을 보았다.) 도와주신 다른 대학교 교수님을 통해 합격은 물론이고 장학생이 된 것이다. 사립대의 반 밖에 안 되는 학비에다 또 반 만 내면 된 것이다.

 

내 자랑이 되었지만 자랑을 하려고 시작한 이야기가 아니다. 정말 중요한 반전은 입학을 하고 나서 일어난다. 지금도 그렇지만 난 특별히 두각을 보이는 재능(그림과 사진 빼고)도 없고 잘 놀지도 못하면서 공부는 늘 중간이었다. 그런데 큰 시험은 이상하게 잘 치뤄냈다. 고등학교는 전교 20%로 입학해서 들어가서 첫 시험에서 반에서 45등을 했고 졸업할 때는 적어도 전교에서 10% 안에 들었다. 공부는 잘 못하는데 대학은 장학생으로 갔다. 지방 국립대의 별볼일 없는 과에 장학생이 뭐가 대수냐 하겠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대학을 가기 전과 1학기 지난 후에 엄청난 변화가 생긴걸 스스로도 발견했다.


난 어눌해서 4-5명만 보인 자리에서도 말도 잘 못하고 뭔가 내어놓고 잘하는 것이 없었다. 그런데 대학에서 1학기를 보내고 난 후 완전히 나서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늘 자신감이 넘쳤다.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지역 방송국도 들락거리고 동아리 행사에 쓸 비용 모금을 위해 기부금도 뻔뻔(?)하게 모집하고 다녔고  학내 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게 되었다. 요즘 대학은 취업 준비를 하는 곳이 되었는데 사실 대학은 공부를 하는 곳이고 공부뿐 아니라 다양한 사회 경험을 미리 해 볼 수 있는 좋은 기간이다. 그 특권을 못 누리는 요즘 젊은이들이 참으로 안타깝다. 또 그 기회를 박탈해 버린(본의던 아니던 간에…) 사회와 어른들의 책임이 크다.

 



돈 벌러 대학가니?

 

대학을 가야 하는 이유는 이런 소중한 경험을 하고 스스로 변화를 준비하고 또 실행하여 당당한 사회 구성원이 될 준비를 해야 함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현재 우리 아이들의 대부분은 대학을 가는 이유가 매우 현실적이고 형이하학 적이다 그 목표는 나중에 남보다 더 부자가 되려는 것이다. 인생에 대한 관심이 돈과 관련되어 있다. 이건 어른들 특히 부모가 책임이 크다. 부모가 아이에게 남보다 잘나고 남 위에 군림하라고 가르치거나 적어도 그렇게 느끼게 생활한다. 그 도구는 잘 알고 있듯이 바로 돈이다.

 

가계가 거덜 날 정도로 사교육에 경쟁하는 듯 지출을 하다 보니 가정이 행복하기 어렵다. 모든 우선 순위가 아이의 교육이고 수입의 만은 부분이 교육에 우선 지출이 되다 보니 다른 가정 생활에 필요는 무시된다. 가정은 행복을 이루는 곳이 아닌 교육에 필요한 자금을 공급하는 곳으로 전략한다. 그러니 사교육에 대한 경제적/심리적 부담감으로 애를 가지는 않겠다는 부부들이 많아지는 그 현상까지 생겼다. 더 나아가 가족을 부양하기 힘들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지 못할 바 에야 아예 결혼 안 한다는 병리적인 사회 현상도 늘어나고 있다. 망국의 신 내림이 사람들 사이에 전염된 것도 이런 삐뚤어진 사고방식과 행동들  때문이다. 그럼 왜 모두가 복사한 듯 이런 사고를 하고 있을까?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에게 현재 뭐가 제일 고민이고 앞으로 인생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하냐고 물었더니... 조사대상 중 55%가 대학에 가는 것이 지금은 가장 큰 문제이고 앞으로 돈을 많이 벌고 싶다고 했단다. 이웃나라 일본고등학생들 중에는 자신의 강점과 단점이 고민이라는 응답이 대학가는 것과 비슷하게 나왔고 중국 학생들도 돈이나 입시에 대해서는 우리나라 학생들 보다는 덜 차지했다. 미국 학생들에게서는 입시에 대한 고민은 10% 정도 밖에 나오지 않았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고등학생이 생각하는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돈이라는 것이다. 공부도 돈을 위한 도구이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나 누구를 위한 삶은 돈이라는 욕망에 다 가려져 있다는 느낌에 필자는 섬뜩하기까지 했다. 

 

현실적으로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돈 없으면 개 고생하고 돈 없으면 천대 받는 사회가 지금은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럼 돈이 없는 어른이 되면 어떨까? 그건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다. 그들이 그러는 이유는 자신들의 가정 때문이다. 부모가 돈 때문에 힘들어하고 심지어 목숨도 끓는다. 그걸 보고 자란 청소년이 생각하는 돈은 엄청난 힘이다. 그 힘을 가지고 싶은 것이다. 그 힘이 있어야 행복도 사고 가정도 지킬 수 있다고 착각을 하는 것은 어찌되면 당연한 결과일 수 도 있다. 심지어 부유한 가정의 자녀들 사이에서도 돈은 역시나 중요했다. 그들의 풍요로움과 가정의 안정이 돈이 기초한다는 것을 아이들은 이미 알아버린 것이다.

 

대학입시가 사생결단 전쟁터가 된 것은 이 돈, 우리의 사회의 중심이자 목표인 이 돈을 벌기 위한 준비 단계로 대학을 보기 때문이다.

명문대학을 나와야 좋은 회사(돈 많이 주고 덜 힘든…)에 취업할 수 있다는 설정에 맞추어 이 후의 일생의 계획을 획일화 시킨다. 제 아무리 좋은 인성을 갖고 좋은 분위기의 가정에서 살아도 일단 이 일류 병에 빠지면 너나 할 것 없이 한 방향으로 달려 가게 된다.

 

 


개천에서 용 난다.

 

개천에서도 용이 나던 시절이 있었다. 용이 나온 개천에서는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지만 개천 출신 용들은 나름 우리사회에 이바지 한 바도 인정된다. 개천에서 난 용들이 타고 올라간 것은 공부라는 여의주를 물었기 때문이다. 서울대에 입학하는 학생의 대부분은 가난한 집안 출신이라는 이야기가 회자되었다. 그 이유는 서울대의 학비가 저렴하기 때문에 가난한 집안에서 대학을 보내려면 서울대에 입학하여 학비 부담이라도 줄여야 했다. 부자 집 아이들은 서울대 갈 성적이 안되면 연/고대, 이화여대를 가면 되었다. 소위 명문 사립대이고 이 학교 출신들도 미래가 보장(?) 되어 있었다. 선택이 폭이 넓으니 굳이 서울대를 고집할 이유가 적었다. 서울대가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이 된 것은 국립대의 힘이 아니다. 학비 싼 대학을 가야 했던 용들 덕분이다. 악착같이 공부한 수재들이 모인 서울대의 평균 성적이 높은 것은 당연했다. 그들은 입학 후에 더 악착같이 공부하였고 각종 등용문(사시, 외시 등등…)통해 신분상승을 하였다. 그들이 70~90년대 우리나라의 성장에 큰 힘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우리의 아버지, 큰 형님 세대에서는 공교육 범위에서도 대학 입학은 물론 신분 상승이 가능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돈이 성적을 낳고 투자한 돈이 연봉을 낳는 시대이다. 일단 대학 학비가 물가 인상률을 고려한다고 해서  천정 부지라 할 정도로 열심히 인상 되었다. 전액 장학금인 포스텍이나 카이스트를 제외한 국립대의 등록금도 일년에 400~500만원 선이다. 그러니 사립대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필자는 90학번이다 공대임을 고려해도 필자의 동기들이 낸 입학금은 평균 80만원선 이었고 필자가 마지막 낸 등록금 고지서의 원 청구액은 83만원 이었다. 당시의 사립대 등록금은 약 두 배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 필자가 다녔던 국립대의 등록금은 220만원 정도 한다고 한다. 물론 소득 규모는 분명히 달라졌다. 문제는 이제는 공교육 만으로 대학가기가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공교육에 들어가는 비용 이외에 초등학생 때부터 사교육 비용을 들이고 그래야  적절한(?) 수준의 대학에 입학을 할 수 있다.

 

필자의 조카는 공부에 취미도 없고 공부를 잘하지도 않지만 친구들과 함께 보습학원을 다닌다. 학교 진도를 따라가기도 힘들고 다들 다니는 학원을 안 보내 자니  부모와 본인 모두 불안한 것이다. 이런 상황이 대부분의 학생을 둔 가정의 사정이다.

 


 

망국의 징조

 

사교육 시장의 급성장과 사교육 관련 기업/학원 재벌까지 주식시장에 상장되는 마당이다. 아이들의 상황이나 실력에 상관없이 한 달에 단돈 10만원이라도 사교육에 쓰지 않는 집안은 인간문화재 취급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올곧은 생각으로 아이를 학원에 보내지 않는 엄마도 옆집 엄마의 주제넘은 내정간섭(?)에 손발을 들고 아이들은 학원에 가야 친구를 사귈 수 있다. 골목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귀해졌다. 아이들은 학원에 가야 만날 수 있다.


놀이방 > 유치원 > 초등학교 > 중학교 > 고등학교 > 대학교 최소 12~13년간 아이들은 교육기간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그것도 모자라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마자 영어학원에 음악, 미술, 체육학원에 다닌다. 고학년이 되면 중학교 과정의 선행학습에 본격적으로 영어학원에 다닌다. 고2가 되면 이젠 죽어라 입시준비다. 이 때쯤 되면 학교에서도 0교시에 야자, 주말과 일요일까지 보충수업을 한다. 최근에는 우등 반 아이들 수업에 외부 강사를 데려다가 수업하는 학교가 있다는 괴담(?) 돌고 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입시에 시달리고 부모들도 같이 입시전쟁이다. 학교도 대학진학 성적으로 서로 경쟁을 한다. 그러니 외부 강사를 몰래 데려다가 아이들의 시험 보는 기술을 강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열성적(?)인 부모들은 아이의 공부 포트폴리오를 직접 짜기도 하며 생활비의 반 이상을 사교육에 투자한다. 옆집이 그러니 가랑이 찢어지는 우리집도 똑같이 따라 한다. 사교육비가 생활비 보다 많아 월 100만원 단위의 빚을 져가면 사교육을 시키는 집 이야기도 방송이 되었다.

 

보통 가정의 수입은 45세 전까지는 늘다가 이후에는 한 동안 정체되다가 50세가 되기 전에 줄기 시작한다. 회사의 중역까지 가더라도 언제 해고될지 모르니 잠시 급격히 상승하더라고 언제 급격히 떨어질지 모르니 결국 수입은 중년기부터 점진 적으로 준다고 할 수 밖에 없다. 하물며 평균적인 대한민국의 부모들이라면 45세쯤 되면 추가적인 비용을 감당할 능력이 이미 없다고 보는 것은 과장이 아닐 것이다. 45세에 아이가 고등학생이라고 한다면 이 시기가 수입의 정점인데 아이에게는 이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교육비가 들어가니 월급으로는 부족하여 모아둔 돈까지 사용하는데 짧게는 1년, 길게는 4-5년 전부터 집중 지출을 했다면 아이가 대학에 들어간 후부터는 재정적인 문제가 생긴다. 아이가 대학에 입학했다고 부모의 고난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7번의 등록기간이 남았다. 사립대 기준으로 하면 학기에 400원이 넘기 때문에 등록금 이외 비용까지 하면 4~5000만원은 더 들어간다. 거기에 해외연수라도 다녀오면 한 회당 최소 4-500만원은 더 들어간다. 이게 다가 아니다 대학을 졸업했다고 해도 1-2년은 취업을 위해 또 공부를 해야 한다. 취업을 했다고 해도 1-2년은 100만원도 안 되는 월급을 받고 혹시 등록금을 대출 받았다면 이제부터 긴 기간을 갚아나가야 한다. 이제 끝이야~ 아니다 또 산이 남아있다. 30대 안되 결혼을 한다면 비용은 부모가 대주어야 한다. 전세금 대출에 결혼비용까지 줄줄이다.

 

조기교육이 빠르면 빠를 수록 가정이 아이를 결혼시키기 까지 드는 비용이 어마 어마해진다.. 필자가 12년 전 처음 재정 컨설팅을 받으면서 제시 받은 자녀 양육비는 대학졸업까지 1억 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대충 계산해봐도 3-4억이 나온다. 이런 에너지와 돈을 사교육에 쏟아 붇고 있다. 자녀를 대학에 보내고 나면 그 가정은 빚더미에 앉는다. 그 빚을 자녀가 사회에 나와 다시 갚아야 한다. 그런데 많은 자녀들이 취업하지 못하는 지금의 상황에서 또 취업을 해도 88만원을 받는다는 '88만원 세대'에 그 동안 들어간 교육비는 갚지 못할 사채 같은 것이다.

 

 교육 관련해만 생각해도 대책이 없을 가정이 많은데 우리나라 개별 가구에는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 많은 가구가 이미 빛을 내어 집을 사둔 상황이다. 적게는 몇 천에서 많게는 4-5억 이르는 빚을 내어 더 큰 집을 마련하였다. 집값이 오르면 그 차액으로 빛을 갚겠다는 꿈을 가지고…

 

가장 큰 문제는 국가가 끝이 보이는 이 광풍에 부채질을 했다는 것이다.





교육의 빈익빈 부익부

 

현재 학교의 서열화를 통해 공교육을 강화하고 학생들의 학력 저하를 다시 끌어올리겠다는 정부와 보수적인 교육계의 생각에는 커다란 착각이 자리잡고 있다. 그 중에 하나가 앞에서 이야기한 '교육불패'의 신화이다. 우리나라는 50년도 안 되는 고도 성장 중에 세계최고의 교육열에 힘입은 바 크다. 그 공로를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한 세대가 지난 시절의 성공신화가 과연 통할까? 그 시절에 통하던 기술, 이론은 거의 다 새로운 것을 바뀌었다 그리고 누구나 다 인정하듯이 산업사회는 마감되고 정보문화의 시대이다. 우리가 마구 성장하던 산업, 제조시대에는 배운 대로 하면 한 대로 결과물이 나왔다. 하지만 이제는 무엇을 가르치는 것도 쉽지 않고 그걸 배운 대로 해서는 새로운 정보와 문화가 나오지 않는다. 정보와 문화의 수명은 매우 짧아 그 것을 가르치겠다고 교과서를 만드는 동안 철이 지나 버린다. 패션 유행을 생각해 보라 지금 유행하는 것을 보고 그것만 만드는 공장을 짓기 시작한다면 그 공장은 어떻게 될까? 짓지도 못하고 부도가 난다. 공장을 지을 것이 아니라 디자이너가 직접 재봉 틀을 잡고 고객 하나가 원하는 고가의 옷을 주문 생산해야 한다. 빠른 대응을 하기 위해 가내 수공업으로 대응한다. 구시대의 생각으로 보면 가내 수공업은 퇴보이지만. 이제는 그런 식의 대응을 해야 하는 시대이다.  전시대에는 가내 수공업은 가난한 나라에서는 하는 것이고 대량생산으로 왕창 돈 버는 것이 살길이었다.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아도 획일화 교육에는 일가견이 있다. 그런데 이제 고등학교와 중학교 때부터 공부 잘하는 놈, 그저 그런 놈으로 갈라놓고 따로 가르치려 한다. 원래 잘하는 아이들을 좋은 대학 보낸단다. 대학생들의 학력이 낮아진 이유가 평준화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대학에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보내면 대학생들이 학력이 다시 높아진다는 단세포적인 생각이다.   정말로 뭘 몰라서 이런 주장하는 것일까? 이상하지 않은가? 공부할 놈들만 공부 시키고 공부 못하는 놈들은 노동력만 이용하겠다는 것인가?

거기에 5세~6세 과정 이야기에서는 그 속내가 들어난다. 부모가 맞벌이를 하는 등 가정 형편상 아이를 키우기 어렵다 하니 아이들을 1-2년 일찍 취학 시킨다는 것이다. 그런데 앞에서 필자가 주장 했듯이 이렇게 되면 교육비가 늘어난다. 그 늘어난다. 학교를 일찍 들어간다고 해도 저학년 들은 일찍 귀가 하기 때문에 결국 누군가 오후 시간에 아이를 돌봐야 한다. 더 힘든데 교육비는 더 든다. 이런 뻔한 상황인데도 강력하게 주창했던 그 이유가 무엇일까 매우 궁금해진다.

 

필자가 생각하는 이유는 이렇게 이런 제도들은 결국 부자와 권력층 자제들 즉 왕자/공주님들을 처음부터 분리하여 부와 권력의 세습을 위한 장치들이다. 앞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이제는 공부만 열심히 공부한다고 해서 신분상승이 되는 사회는 아니다. 돈이 돈을 벌고, 부모의 학력이 자제의 학력이 된다. 즉 부모의 사회적 지위가 다음 세대에 물려지면서 계층이 계급이 될 위험성이 높은 사회로 가고 있다. 눈에 보이는 현상들과 눈이 보이지 않는 힘들이 그런 사회 분위기를 더욱 공고히 하려고 한다. 대학의 입학시험은 대학에서 인재를 키우기 보다는 실력과 정보력을 요하는 시험방법을 채택하여 대학에 이바지 할 인재를 뽑는다. 이건 대학이라는 기관이 인재를 키우는 곳이라는 개념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실제로 우리의 대학 입시는 이미 공부 잘하고 취업되기 쉬운 인재들을 뽑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을 그 파도에 태워서 아슬아슬한 서핑을 시키고 있다. 파도는 점점 높아지고 거칠어 진다. 어떤 아이들은 파도를 멋지게 타고 해변으로 돌아오지만 어떤 아이들은 파도가 치기도 전에 물에 빠져 버린다. 파도를 보자 마자 물로 뛰어드는 아이들이 종종 TV를 통해 우리를 아프게 한다.




족쇄를 부셔라~

 

사교육의 족쇄를 빨리 부셔버려야 한다. 본인과 자녀 그리고 나를 부축이던 옆집 아줌마 까지도... 심판의 날이 멀지 않았다. 최근에 어떤 모임에 갔다가 서울대 생인데 1년을 취업 못하고 있던 어떤 학생의 이야기를 들었다. 공부는 잘해서 서울대는 갔지만 가난한 집안 때문에 아르바이트 하느라 학점이나 영어 같은 간판을 못 갖춘 학생이다. 안타까웠다. 지금 세상이 이렇다. 집안이 가난하니 서울대 간판을 가졌어도 대기업 취업이 안 된다. 이 학생은 2년의 방황 끝에 대기업에 취업이 되었다. 물론 이 학생이 기대 치를 많이 낮추었다면 취업은 훨씬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서울대 생이 삼수를 해서 대기업에 입사했다는 이야기는 우리의 상식에서는 난감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이 학생에게 눈을 낮추어라 말한 자격이 없다.

 

우리가 할 일은 썩어빠진 교육을 거부하고 아이들이 스스로 공부하며 자신의 진로에 대해 걱정하며 인생을 개척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첫 번째 파도가 친 후에 서핑보드를 놓칠 것이다. 그리고 다음 파도는 더 거셀 것이다. 파도를 이기고 보드를 타고 해변으로 돌아오는 서핑은 좋은 스포츠이지만 우리의 아이들은 지금 스포츠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힘든 상황을 잘 이기고 있다고 대견해 하고 있는 부모가 있다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자신도 알고 있듯이 아이들은 매우 힘든 상황에 있고 이 상황이 대학만 들어가면 끝나는 단기 전이 아니라 인생을 끝에서 아이들 스스로 평가할 그들의 인생이라는 점을 그리고 우리가 교육관련 재벌이나 권력이 만들어 놓은 공포 속에서 인생의 본질에 대해 생각할 겨를 없이 그냥 앞만 보고 달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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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별 여행자
무사 앗사리드 지음, 신선영 옮김 / 문학의숲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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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별과 사막별

 

현대의 많은 사람들이 도시 안에 살고 있다. 그것의 규모와 상관없이 일정 공간 안에 밀집하여 거주하며 특정한 재화의 생산 능력이 있다면 기초적인 삶의 도구, 예를 들면 식량 생산능력이 없어도 자신이 생산한 재화와 교환하여 살아가는 곳. 바로 도시에 살고 있다. 현대화된 나라들에서는 아직 자연에 의존하는 삶을 살아가는 농촌, 어촌들 조차도 도시에 연관되어 살아간다. 도시에서의 삶은 몇 가지의 중요한 것에 집중하여 살 수 있고 내가 싫어하는(?) 일이나 관계를 유지하지 않아도 살아가는데 하등의 문제가 없고 능력만 된다면 내 욕망대로 살아갈 수 있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점점 도시로 몰리고 도시는 팽창하였다. 이 것이 지난 세기 내내 진행되던 도시화와 도시이주 문제의 원인이었다.

 

 

도시화, 지속되는 문제들

 

인류는 지난 세기 말과 이 세기 초 그리고 지금도 남유럽에서 진행 중인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가치관의 혼란을 겪었다. 물론 지난 세기 초에도 이와 비슷한 맥락의 대공황이라는 것을 겪었다. 하지만 세계 대 공항과 그 뒤의 세계대전 끝에 인류는 고도의 산업화와 막대한 부가가치의 창출이라는 방법으로 고통을 해소할 방법을 찾았고 그로 인해 이 후 수십 년 동안의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이 부유한 삶(매우 편향적인)을 이루었기에 대 공항과 세계대전의 아픔은 잊혀져 갔다. 그러나 금융위기라는 새로운 형태의 경제공항은 모든 것이 풍부하다고 생각하였기에 환란의 조짐 조차도 철저히 무시되어 엄청난 파급효과를 만들었다. 90년 중반부터 삐걱거리던 지구 경제는 금융위기 이후 개선의 여지가 없이 여전히 힘들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경제문제만 존재하는가? 정신 건강적인 문제는 각 개인의 차원을 넘어서 사회현상으로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 이 문제야 말로 터지면 정말 무서운 문제들인 것이다..

20세기 동안 이룬 인류의 부가 송두리째 사라질 위기감까지 고려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지난 세기 우리의 삶에 무엇이 문제였던 가를 살펴볼 여유를 가져야 한다.

 

 

그럼, 과거 돌아가라 말인가? 

흔히들 옛날은 아름다웠다고 말한다. 과거의 삶은 추억으로 우리에게 남아 힘들고 지칠 때 꺼내보면서 힘을 얹는다고 말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향, 어린 시절 같은 과거의 일들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받는다. 힘이 되거나 위로 받지는 못한다고 해도 적어도 잠시 쉴 수 있는 여유는 제공해 주기 때문에 아무리 그 효과를 줄여 본다고 해도 최소한 인간에게도 좋은 영향을 주는 것 만은 확실하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점은 과거에 죽을 만큼 힘든 기억도 그 것에서 멀어지고 시간이 지나고 나면 긍정적으로 기억하게 된다는 것이다. 힘들었던 것, 나빴던 것들 조차 담담하게 그 것을 이야기 할 수 있게 된다. 시간이 약이라는 옛말처럼 말이다. 시간이 지났다고 그 문제가 자연히 해결되거나 평가가 좋아지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당당히 바라보고 입에 올리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

미화가 된다. 

배고팠지만 행복했던 시절, 다리는 아팠지만 새로운 모험이 가득했던 등굣길

정말 과거로 돌아가면 우리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미래도 과거도 우리에게는 관념으로 존재한다.  과거로 돌아간다 던지 미래에는 어찌 하겠다는 이야기는 결심이나 휴식으로는 의미가 있을지 몰라도 현실 문제에서 만은 절대 그렇지 않다. 우리에게 가장 현실적인 것은 바로 지금의 내 행동과 단지 몇 시간 앞을 위한 준비뿐이다.

 

여기 우리와 다르게 인생을 바라보는 청년의 이야기가 있다. 그는 그가 어린 시절 했던 주장대로 어린왕자의 동생이라도 된 것처럼 사막 별에서 지구별로 날아온 우주 여행자이다.

 

 

사막별의 어린왕자 도시별로 여행을 떠나다.


무사는 사막에서 태어나고 지금까지 살아온 그의 생의 과반수의 시간을 사막에서 보냈다. 그는 지금 프랑스에서 학업을 마치고 직업을 가졌으며 방송등에 출현하는 다소 알려진 엄연한 프랑스 사람이지만 아직까지 그는 사막에서 온 사람이라고 불리고 있다. 그의 원류인 사막을 잊지 않고 살아가고자 하는 그의 의지는 그가 출생한 사막 족 특유의 푸른 베일을 입고 다니고 사막의 생활을 자랑스럽게 이야기 한다.

 

책의 서문에서 밝혔듯이 그는 어린시절 우연히 선물 받은 어린왕자를 보고 책의 저자 생텍쥐베리를 만나기 위해 프랑스에 갈 생각을 가지게 된다. 막연히 책의 저자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은 그를 그의 가족과 선조들과는 좀 다른 길을 걷게 한다.

 

그의 가족들은 대대로 사하라 사막 주변을 이동하는 유목민으로 지금도 많은 수가 국적이나 주거지 없이 아주 오래 전의 전통의 방법을 살아간다. 국적이 없으니 당연히 여행을 할 수가 없고 현대식 교육을 받을 기회도 없다. 시골 학교를 다니는 일조차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그는 결국 생텍줘베리가 살거라 믿었던 프랑스로 떠나고야 만다.

 

 

도시별  충격과 공포

 

무사는 프랑스에 도착하자 마자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된다. 자동으로 열리는 문, 곳곳에서 시선을 자극하는 전광판과 모니터들 그러나 공항에서 받은 충격은 시내에서 받을 충격과 그가 세계적인 도시인들, 아마도 서구화된 대부분의 현대인들이 아무렇지 않게 느끼는 그런 일들에서 느끼는 절망감과 괴리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도시 별에서는 무엇이든 넘쳐나서 물까지도 아무렇지 않게 흘려버린다. 그 뿐만 아니다. 늘 풍족하고 사람들로 넘쳐나지만 사람들은 혼자이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돈 주고 사람을 만나고 어디서나 미혼의 남녀가 넘치지만 결혼을 하기 위해서는 결혼정보 회사에 등록을 해야 한다. 사막 별에서는 사람과 자연 그리고 신의 관계는 늘 자연스러웠고 평등하면서 늘 서로를 존경했다. 하지만 도시 별에서는 사람도 자연도 심지어 신도 어떤 틀 안에 넣어서 구별하여 버려서 서로 다른(?) 것들이 만나기 위해서는 벽을 넘거나 어떤 출입문(?)을 통해서만 교류가 가능하다. 자연스러운 어떤 것도 그대로 남지 않아서 교류라는 것이 어려운 곳이 바로 도시별이다. 사방 어디에도 담이나 문이 없던 사막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더더욱 충격적인 것은 바로 사람들이 스스로를 물성화하고 상품화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자신을 남들에게 더 가치 있게 보이고자 하는 많은 시도들로 인해 결국 더욱 고독해지고 그럴수록 자신이 아닌 것으로 자신을 치장하여 그 뒤에 숨어서는 더욱 외로워 하는 도시별 사람들

 

 

도시별에도 희망은 있었다.

 

무사가 도시에 와서 충격만 받은 것은 아니다. 도시별의 기술은 무사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였고 그는 그것을 충분히 즐기게 되었다. 처음 테제베를 탔을 때 창 밖의 모든 엄청난 속도에 나무도 들판도 초원 위의 소도 하나로 뭉개져 버리는 것과 무서운 속도에 질려버린 무사는 공포심에 구토증세까지 일으킨다. 하지만 결국 그는 이 무서운 속도 즐기기 시작한다. 이 엄청난 문명의 이기는 사막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거리를 빠르게 이동하여 무사가 원하는 곳으로 이동해준다. 이 기계의 도움으로 아이들에게 자신의 별, 사막 별 사람들의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알릴 수 있는 기회도 얻게 된다.

 

도시 별 사람들 사이에 살면서 그 자신의 뿌리인 사막별의 삶을 자랑스러워 하고 도시별의 역동성을 즐기며 희망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도시별 사람들이 각자의 삶에서 자신 안에 부끄러워 숨어있는 희망을 발견하도록 돕고자 한다. 그 노력의 결과로 바로 이 책이 도시 별 사람들에게 소개 된 것이다.

 

 

 

황무지에서도 꽃은 자라는 법

 

우리가 사는 도시  인류의 삶은 점점 더 피페 해진다. 사막별도 이제는 예전 같지 않다. 도시 별이 물질적 풍요 가운데 사람들의 마음에 멸망의 씨가 자라고 있었고 사막 별은 점점 더 더워지고 사막에는 풀 한 포기 자라기 어려워진다. 사막별의 삶도 더 이상 사막별의 모습으로는 살아남기 힘들어졌다. 사막 별 사람들도 도시별의 삶을 살아가야만 한다. 그들도 언젠가는 도시별의 어딘가에서 우리와 구분 없이 살 것이다. 아마도 무사가 그랬던 것처럼 경악하고 무서울 것이다. 하지만 무사가 도시별의 황페 함 속에서 희망을 꽃을 보았듯이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키울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도시별 사람들은 도시 밖에 다른 별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가고 그 별에는 그 별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별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으로 인정하고 살아야 한다. 더 나아가 나와 가족 또는 그 어떤 넓이라도 나와 관계된 관계사회를 벗어난 사회와 사람들을 적극적인 살펴야 할 것이다. 우리 인류는 지구라는 작은 섬 안에 함께 살고 있다. 지구 안에 다른 별로 바로 이동 가능한 장소가 있어 다른 별과 수시로 교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결국 우리는 지구별 안에서는 하나의 삶으로 같이 살고 같이 죽을 것이기 떄문이다. 좋은 방안에 누군가 고통으로 신음한다면 조만간 그 영향이 나에게도 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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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 - MBC 느낌표 선정도서, 보급판, 백범 김구 자서전
김구 지음, 도진순 주해 / 돌베개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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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를 아는가?

백범 김구를 모르는 대한민국 사람이 있을까독립운동가이면서 대쪽 같은 민족주의자로 평생을 자기 목숨과 자기영위(가족의 생계와 목숨까지…)를 돌보지 않고 평생 옳은 일에 매진한 고집스런 분으로 알려져 있는 그 분을 모르는 우리나라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이 우매(?)해 보이는 질문에 아니다’ 라고 답하기 어려운 시절이 되었다필자나 필자의 선배들 그리고 동년배들은 자세히는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근대사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배워서 알고 있었다다소 왜곡되고 누락된 부분은 많았지만 백범 김구 선생은 우리의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이고 그의 개인사나 성품을 보아도 어느 누구보다 본받을 만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윤리(도덕), 역사(국사세계사과목은 소위 선택과목이라 분류해 두고 아이들에 시간되면 들어봐!’ 이런 식으로 방치해 두고 있으니 김구 선생을 아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을 하기 애매해졌다.

 

역사는 변하고 변하여 어느 사실이나 인물을 당연히 알아야 한다는 법은 없다하지만 우리의 근대사는 어는 민족의 역사 못지 않게 파란 만장하였고 더구나 아직도 친일이니 반일 하는 테제들이 우리와 가까이 있고 근대화 이후 우리와 앙숙에 가까운 경쟁관계가 된 일본에 대한 의식이 일본제국의 식민지 지배시기와 한국전쟁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는 젊은이들에게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마당에 50여 년 전 일을 옛날에는 그런 일도 있었다 더라’ 할 정도로 가볍게 여길 일은 아니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역사의식을 가지고 있는가아니면 그저 돈과 권력만 추구하며 사느냐를 생각해 보자후자를 경우를 희화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시쳇말이 있다. ‘ 아무 생각 없어….~’ 세상은 점점 더 고도로 조직화된다심지어 물건을 팔거나 어떤 조직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개인의 사고까지도 조정하려고 하는 사회이다권력이나 이익집단은 물론 개인들도 상대보다 우의를 점하기 위해 고도로 조직하는 사회가 되었다이런 사회에서 무 개념(?)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결과는 입에 담기도 무섭다.

앞으로 우리는 점점 개념(?)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개념 있게 산다는 것

 

개념이란 무엇인가개념이란 단어를 간단하게 정의하기는 어렵다워낙 광범위한 의미를 지닌 것이기 때문인데앞의 단락에서 말한 생각이 있고 없고 와 연결해 보면 의외로 쉬워진다.

평소에 늘 행동보다 생각을 더 먼저더 많이더 깊게 하며 사는 것이다우리는 TV를 보면서 엄청난 광고에 노출이 된다.보고 싶은 TV프로그램의 중간에 그냥 입 벌리고 멍청히 아무 생각 없이 보는 광고에도 고도의 생각조정 개념이 들어가 있다광고를 보고 나면 그 내용이 보이지 않지만 나중에 광고에서 본 제품을 사게 되는 것은 무서울 정도로 엄청난 효과이다하루에도 몇 십 건씩 보는 광고에도 이런 엄청난 조작이 들어가 있는데 직장정치권 등에서 오죽할 것인가?

 

벌써 오래(?) 전 이야기가 된 홍수아의 개념시구을 생각해보자 그녀의 시구가 개념 시구가 된 이유를 이해 한다면 개념 있게 사는 것이 무엇이면 왜 중요한지 보다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이전의 시구는 그 사람이 누가되었건 간에 그냥 공을 포수 쪽으로 던지는 것이었다평소 야구공 한 번 안 만져본 사람이 시구 10~20분전에 야구장에 와서 몇 번 연습을 하고 던지니 공이 포수의 캐처미트에 도착할 리 만무하다그런데 그녀의 시구는 동작에서 부터 달랐다무게 중심이동을 위해 하게 되는 다리를 하늘로 올리는 동작부터 이전의 시구 자들과 달랐다.  공이 높이 뜨긴 했지만 캐처미트까지 정확히 도착했다공이 땅에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평소 야구를 전혀 하지 않는 심지어 야구경기를 볼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인 그녀가 시구를 위해 꽤 많은 연습을 했다는 것이다실제로 그녀는 몇 주 전부터 지인을 통해 야구 선수에게 조언을 받았다고 한다이 건 매우 중요한 변화인데 한 번에 시구를 위해 몇 날 몇 일을 연습했다면 다른 일에서는 어떨까?

 


진지한 삶에서 배운다.

 

백범 선생의 삶은 개념있는 인간이란 이렇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당시 상황이 사람들을 강하게 만든 것은 사실이지만 단순히 열정만으로 살아간 삶도 아니었고 젊은 날의 미숙함과 노년의 완숙함까지 다양한 인간의 특성을 보여주는 가운데 평생 하나의 신념을 지니고 불의에 굴하지 않으며 살아온 선생의 삶을 조명해 보는 가운데 우리가 남은 생을 살아가는데 어떤 자세를 가지고 어떤 인간이 되어야 하는 가를 배울 수 있다.

 

지금은 몸을 내어 던져 민족을 위할 일도 없고 그럴 사람도 없는 시대이다다만 작은 것이라도 자신의 일에 열심히 일하거나 타인을 위해 작은 것 하나라도 양보하면서 나름의 소신을 가지고 갈아가는 사람마저도 귀한 세상이다.  개인화된 사회의 특성으로 관심의 범위가 내 주위로 축소되었기 때문이다이런 시대에도 자기 목숨을 내어 타인이나 나라를 위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그들의 가치는 매우 소중하다그 가치에도 불구하고 그런 희생은 매우 드물고 그것에 대한 파급효과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많은 사람들이 놀라며 감동하지만 그 것뿐이다
그래서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작지만 꾸준히 하는 어떤 것들이다.

 

사회국가세계가 주는 대로 받아먹고 남들이 하는 데로 살면서 그냥 돈이나 펑펑 써보자!’하며 산다면 나 자신 스스로 뒷걸음 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어려워 진다사람이 사람인 이유는 동물과 다르기 때문이다먹고자고싸는 것즉 본능 중심으로 살다 보면 그것이 동물의 삶인 것이다보다 높은 가치를 지향하는 인간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삶의 모든 순간에 진지해야 한다이건 머리 아프다’, ‘복잡하다라며 간단히 무시할 사안이 아니다.

 

우리가 위인들에서 배워야 하는 것은 그들의 불꽃 같은(고난까지 포함한삶의 결과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그들이 겪었던 고통과 그것을 딛고 일어선 후의 성숙이다.

 

 

백범 선생을 단순히 독립투사임시정부 주석민족주의자 정도로만 알고 있다면 그가 왜 어려운 삶을 택하고 늘 괴로운 자리에 서있었는가를 알게 될 것이다그가 어떤 의식을 가지고 살았기에 늘 당당하며 무서울 정도의 강건함을 지닐 수 있었는지 안다는 것은 더욱 험난해 지는 사회를 살아갈 우리에게 작지만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다이 책을 통해 어린 시절 국사시간에 얼핏 들었고 위인전(지금 생각해보면 많은 위인전이 그 분들 하나 하나를 제대로 알고 쓴 것이 거의 없다차라리 위인 프로필’ 전집 같은 것이 있다면 그걸 외우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을 통해 알던 것을 제대로 고쳐 알게 된 기회가 되었다.

 

최근에 여러분(‘사담 후세인’, ‘체 게바라’ …)의 평전을 읽었는데 이렇게 본인 스스로 쓴 회고록이 있다는 것은 남다르다.선생 스스로 이렇게 기록을 남겨두시다니 참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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