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백 - 제16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혹지들이 이 책을 좋게 평했던 것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미 이 책속 주인공들의 시대를 지나가서 소위 기성세대라 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까?
 
일단 시점이 3인칭 시점 비슷한 분위기인 것이 어색했다.  또한 중간 중간 여주인공의 죽음 뒤에 발견된 잡기 라고 하는 것들 중에 내용을 선택해서 삽입해 놓은 형식으로 풀어나가고 있는 듯 보였다.
다른 바탕의 색에 한페이지 에서 두어페이지 정도 할애해서 일반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그 사이사이에 소단락별로 삽입해서 풀어내고 있는 듯 보였다.
 
나란 독자가 부족해서일까? 이 책의 형식이 내용 집중하는 데 쏟는 에너지를 감하는 느낌이 들었다.
 
내용 자체는 말 그대로 청춘 남녀가 이시대를 살아가면서 부딪히고 극복하고 경제생활을 위한 도구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가족들과 맞지 않는 이상으로 직면하기도 하고..
 
요즘 시대상을 반영하듯 예전 민주화라든지 등등 그런 것을 위한 에너지를 쏟는 모습보다 이성과의 관계, 직장 구하기, 아르바이트 찾아 생활비 벌기등 실랄할 정도로 현 세대를 표현해 나가고 있었다. 
요즘 모습이 이렇구나 싶으면 젊은 세대 이후에 경제를 꾸려나가는 중추 역할을 해야 할 터인데 작게는 가정경제, 크게는 나라의 경제를 이끌기 쉽지 않아 보였기에 참 씁쓸했다.
경제 분위기가 좋을 때 아끼고 노력하고 성실히 살아갈 수 있음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당위성이 부여된 듯하여 실행에 옮기는 것이니 말이다.
 
이 이야기 내면에 여주인공의 죽음으로 시작되고, 그 주위에 다른 여자친구가 있고, 그 여자와 관계를 맺고 지내는 여인이 있는데 이 여인은 죽은 여인과 친구이다.  그 수준이 심해서 일반 그냥 친구로 보이지 않는다.
죽음을 맞이한 여인은 생전에 또 다른 여인에게 생활 속에서 자신과 함께 많은 것을 하도록 요구했었고, 사후에도 이 여인과 관계를 맺고 지내는 남자와 사이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했었나 보다.
동성연애?  아무튼 이야기 내내 현 세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의 모습을 그려낸 것에는 공감할 수 있었고, 이견을 가질 수 없었지만, 세부적인 이야기 전개 속에는 눈살 찌푸러들고, 그들의 대화나 생활 모습을 통해 전해지는 느낌으로 공유할 것들이 많아 보이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각자 잘 극복하고 성실히 살아가려 노력하려는 것? 이 점은 높이 평가하고 싶다.
 
뜬금없는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불현듯 이시점 뇌리를 스치는 무언가가 있다.
표백과 그냥 백색의 의미를 떠올리게 되었다.
말 그대로 표백은 수동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듯 하다.  누군가에 의해서 그 상대가 하얗게 되는 것을 윈하기에 그렇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 아닐가?
요즘 세태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표백세대라고 비유가 되어지는 것을 보고 생각해 보게 된 것이다.
 
IT 발달도 그렇고, 점점 자기 생각을 소신있게 말하는 것보다 오히려 스마트폰이나 등등을 꺼내 놓고 아예 만들어 놓은 정답을 찾아 그것을 확인하는 습성들과 문화들이
속속 팽배해져서 아예 토론문화는 점점 사그러 들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 섞인 이야기를 농담 섞어 멘트 하는 MC의 말을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것을 들은 기억이 있다.
 
물론 이것저것 편리해져서 그럴 수도 있고, 바쁜 생활을 영위하다 보니 여유롭고 한가험울 줄기며 식사조차 하지 못하는 그들을 이렇게 부르는 것에 대한 반박을 제시하려는 것도 아니가.
또한 그네들의 문화를 비판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냥 표백의 의미를 떠올려 본것이다.
 
반대로 백색의 의미를 생각해 봤다.
백색은 능동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 원래 부터 하얀색이었고, 거기에 어떤 색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가져다가 섞어서 예쁘게도 만들 수 있고, 우울하게도 만들 수 있는 무한 잠재력을
담고 있는 색이라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보면,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이미 만들어진 모습에 자신들의 할일이 없어서 힘들다 되뇌이고, 결국엔 자기 조절능력도 부족해서 스스로 목숨을 담보로 삶과 바꾸는 모습들..
뭔가 수동적인 생각이나 사고가 아닌 보다 적극적이고 능동성을 가지려고 의지적 노력을 한다면 물론 쉽게 이루어지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이즈음 보다 못한 모습으로 변하는 것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말도 안될 수 있는 억지 생각이 잠시동안 뢰롭혀서 힘들었다.
 
이 책의 내용이나 이시대를 판단하고 시시비비를 따지는 것은 절대 아니고, 그냥 독자로서 책을 접하고 난 느낌을 풀어낸 것임을 강조하고 싶다.
 
얼른 이렇게 힘든 현실속에서 생활하는 젊은이들이나 그 이후 세대들이 보다 편하고 자신의 능력과 끼를 맘껏 발휘하며 청춘을 누릴 수 있는 시기,
백색으루 가득 채춰진 젊은이들의 각각에 담긴 능동성이 발휘되기를 원하는 것이 망상이고 억측이 아니길 간절함에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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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의 별 마음이 자라는 나무 27
이현 지음 / 푸른숲주니어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로봇이라는 단어에 대한 선입견과 선뜻 접하면 막연히 어려울 거라는 느낌이 강해서 이 책 또한 내용이 청소년 도서여도 난해할줄 알았다.
게다가 저자의 중성적 분위기를 드러내는 이름 역시 로봇은 과학 관련이고, 남성작가의 전유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떨치지 못한 채로 읽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은 단순한 독자로서의 내가 가지고 있는 단순한 착각이라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내용 또한 쉬운 어조와 전개 역시 지루하지 않은 듯 보여서 하드커버로 합본되어서 왠지 묵직한 외모의 모습과는 다르게 비교적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이즈음 IT 산업의 발달은 극대화되어서 여러가지 로봇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간혹 매체들을 통해 들려오곤 한다.
더불어 지구에서 살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태양계 지구와 비슷한 별들을 탐색한다는 소식도 간혹 들은 기억이 난다.
 
이 책 내용을 보면 그런 현실이 완전한 상상속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막연함이 아닌 구체화된 사실로 느끼게 해주기에 충분한 듯 하다.
 
또한 색다르고 높이 평가하고 싶었던 점은 우리나라 작가이긴 하지만, 로봇의 이름이나 배경 펼쳐지는 중심 이야기가 우리나라의 느낌이나 색채보다는 이국적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역시 모든것을 대할 때 선입견을 가지고 아예 결론을 만들어 두고, 접근하면 안된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기도 했다.
 
더불어 흥미를 가지고 많이 읽던 분야의 내용은 아니지만, 여러가지 상황으로 인해 읽게 되었기도 했다.
 

 로봇 세가지 종류가 중심 등장인물로 소개되는데,

인간보다 더 지능이나 기능이 우수하여 마치 인간처럼 의인화되어 살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 종류는 나로  5970841, 아라 5970842, 네다 5970843 이다

이 세종류는 세계를 통틀어서 같은 모델이 더 없고 각각의 모델에서 유일하게 하나인 것이다.

 

책 이야기는 로봇이 화자가 되어 풀어내는 헝식이다.

 

로봇과 공존하는 삶에 대해 이야기 되어지며 로봇이 사는 별에 대한 설명이 첨가되는 내용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이 있었다.

 

생각보다는 적어도 책속에서는 무겁지 않았고, 싸움과 권력 그리고 공격성만 존재하는 것은 아닌 듯 보여서 희망과 순수함을 담을 수 있었다.

 

사람의 편의를 위해서 사람 시키는 대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에 의해 조종되며 살아가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으며 행동으로 옮겨지는 모습에서

이런 분위기의 로봇과 동행하는 삶이라면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힘들어 허덕이며 서로 헐뜯고 상처받고 살아가는 것보다 백배 아니 그 이상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한편으로 솟아 오르는 노파심에 깔린 생각을 지워버릴 수 없었다.

아무리 인간이 세상을 지배하고 여러가지 것들을 다스리며 살아가게 정해져 있고, IT 기계들 역시 인간의 편의를 위해서 만들어지고 발전되고 업그레이드 되어 가는 것을 알고 있지만,

로봇과 동행하는 삶은 이미 영화나 다른 것들을 통해서 익히 보고 듣고 익숙해져 있는 요즈음

이들에게 오히려 지배 당하는 것이 인간이 되지 않을까? 하는 황당무계한 비약적인 생각이 책 읽는 내내

읽고 나서 덮은 후에도 한동안 떨쳐지지 않아 생각정리 하기기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절망이 희망을 앞설 수 있음은 일어나지 않은 일들을 미리 걱정하는 것에 대한 어리석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즈음 한나라 전세계 도처에서 동시대의 동질감이라는 테두리 속에 살아가고 있는 인간들이 다 죽고 그 이후를 살아가는 다음 세대들이

다스리며 살아가게 되는 시대에는 분명 서로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무언가가 표현되어질 것이라는 희망을 강한 바램과 함께 담아 보고 싶다.

의지적으로 그렇게 생각을 마무리 하길 원했을지도 모르겠다.

 

로봇이 반란을 일으켜 책 속 이야기처럼 자신들만의 세계를 만들고, 인간들을 역으로 이용하려 하기 전에

책속에서 드러나는 로봇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잘 다독여 함께 공존하며 살 수 있는 세상이 도래할 수 있길 바라는 것이

억지가 아니길 바래본다.

 

 로봇 세가지 종류는 각자 처한 위체에서 로봇이 가질 수 없는 감정 또한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정말 사람보다 낫긴 하다는 생각을 자연스레 할 수 있었다. 

나로는 엄마 태경을 사랑했고, 친구를 위하는 마음을 가득 담고 있는 아라, 주위의 친구와 동생을 위해 힘든 상황도 마다하지 않은 네다.

 

인간이 이시점에서 비록 생각없고, 편의를 위해서 만들어낸 무생명인 로봇이지만 이런 마음은 높이 사고 마음에 새겨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로봇의 새로운 장소인 로봇의 별처럼 인간이 살아가면서 이룰 수 없는 일일지라도 희망이라는 단어에 자신만이 바라볼 수 있는 무언가를 담고 살아가는 것도 훌륭하지 않을까? 싶었다.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과학을 주제로 풀어낸 이야기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해 살짝 엿보며 미루어 생각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고 감히 적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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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
마광수 지음 / 책마루 / 2011년 9월
평점 :
품절




 

그 옛날 마광수 교수님의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라는 책을 접했을 때는 파격적인 느낌이었다. 어? 하는 의지와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감탄사의 출현에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던 기억이 새록 흔적없는 구석 기억 창고에서 머리를 삐죽 내밀려 노력하는 것이 느껴진다.

 

오랜만에 마광수 교수님의 책이 재개정판으로 출간되었다는 소식에 읽어볼까? 하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어 펼쳐 들었다.

역시 책의 저자만이 할 수 있는 소재와 내용으로, 전혀 거리낌 없이 풀어내는 이야기들은 선뜻 지금도 자연스레 읽어내려갈 수는 없었다.

다만 오랜 시간이 되고, 세월의 흐름에 몸을 맡기며 함께 여러가지 변화가 있었기에 예전보다는 아주 조금 자연스러워 졌다 할 수 있곘다.

 

저자의 성에 대한 생각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이야기들 속에서 여러가지 눈살도 찌푸러지고, 겉으로 표현되지는 얼굴 변화를 자제하느라 쉽지 않은 책읽기임에 분명했다.

하지만, 단지 성을 나누는 모습에 집착하고 묘사한 것이 아니고, 약간 심리학적 기재를 접목시켜서 저자의 머리 속에 있었던 생각들을 펼쳐내고 있는 듯 보였다.

 

저자를 그대로 투영한 듯한 외모 묘사를 통해 설마 사실은 아니겠지? 실제 있는 일은 아닐거야? 라는 착각이 들정도의 늪으로 빠져들어가기도 했다.

 

한가지에 편력적인 집착을 보이는 남주인공은 자신에게 맞는 여자 상대를 자주가는 스탠딩 술집에서 우연을 가장했다 보일만큼 그런 상황에서 만나게 되고, 맘을 열게 된다.

 

머리속 생각들이 뒤 얽힌 채로 읽어 내려가고 있는 나란 독자에게 남겨진 메시지는 무얼까? 이런 적나라한 이야기를 어찌 받아들여야 할까? 라는 자문도 끊임없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기도 했다.

결론은 예술의 바탕이라고들 하는 성에 대한 표현의 자유로움을 선택한 저자의 용감성? 그리고, 이즈음 예전보다 조금 개방적이 되어진 사회 모습?

이런 것들의 조화로우면서도 부조화적인 세태에서 출간할 수 있다는 자체를 높이 평가하고 싶었다.

 

저자의 권태적 성향은 성에 대한 한가지 집착으로 번지게 되고, 그것을 통해 본인의 욕구 충족을 하는 듯 보였다.

반대로 드는 생각은 현시대를 살아가는 남자, 가장으로서 한 가족을 책임지고 있는 남자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투영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자신의 여러가지 취약점을 드러내지 않고, 겉으로는 남자라는 이유로 강함을 드러내고 살아가기에 자신에게 시선을 투영시켜 내면을 드러나 보는 일 조차

억압속에 안된다고 합리회 하며 그저 흐르는 강에 몸을 맡기듯 흘러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에게로 쏟아 부은 에너지와 시선으로 스스로를 바라봤을 때 가지고 있는 것조차 허름하고 내세우지 못하고 오히려 심하게 부패되어 있고 문드러져 형체조차

없어졌는지도 모르는 여러가지 상처들...

어디엔가 풀고 싶지만 자신이 필요로 할때는 존재감 없이 발 내딜틈조차 가족 내에는 없어 보이고, 자신이 그토록 지키고 목숨걸었던 가족의 울타리는 가장에게는 힘없이 형체도 없오 보이는 모습으로 무의미한 채 남아 있는 것은 아닌지 하고 말이다.

그런 에너지들을 안에서 쏟아 부을 수 없기에 권태를 풀기 위해 스스로에게 있었던 시선을 밖으로 분출하려다 보니 약간 어색하고 아직은 손가락질의 대상으로 비난받아 마땅해 보이는 책속 주인공의 모습으로 표현되어 지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아직은 아니 앞으로도 계속 가족이라는 기본틀을 이루고 사는 이상, 그 틀은 지켜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또한 함께 들었다.

이 관점 또한 개개의 가정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이고, 불가능 하다면 사회적 복지제도의 틀 안에서 이들의 연결고리가 되어질 수 있도록

징검다리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무언가의 형성이 시급해 보이기도 했다.

 

저자의 책속 내용을 옹호할 수 있는 전문적 지식도 없고, 그렇다고 어설픈 개인적 사견으로 시시비비를 논할 수 있는 여지 또한 가지고 있어 보이지 않았다.

이 책의 이면에 깔려 있는 저자의 생각이 무엇일까? 하는 것에 대한 독자로서의 강한 호기심이 생기게 되었지만, 그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없는 상태로 책읽기를 끝냈다고

말하는 것 이외에는 나란 독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지 않았나 싶다.

 

이 책 또한 어설픈 관점으로 단지 저자의 관점과 생각들을 만나고 싶어 펼쳐들고 싶다면 물론 독자마다의 생각과 가치관 담아 낼 수 있는 그릇의 크기와 넓이 깊이가 다르기에 딴지를 걸 수 없겠으나 굳이 읽고 싶다면 심호흡을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양으로 들이마시고 내뿜고 한 후에 펼쳐보길 권하고 싶다.

그렇다고 다시 강조하지만, 책 내용에 대한 시시비비를 덧붙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색다른 전혀 만나기 쉽지 않은 책속 여행을 통해 나름 새로운 심리학적 시각과 기재들을 통해서 자극을 받을 수 있었고, 생각 또한 많이 할 수 있었음에 의의를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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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일요일들
은희경 지음 / 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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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 작가님 초기 데뷔작인 <새의선물>을 읽고 그 후에 <소년을 위로해줘> 와 개정판 <새의선물> 출간 소식을 듣고도 접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지만...
 
그후로 이 책의 출간 소식을 들었을 때도 소설인 줄 알고 아예 읽어보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아서 한동안 접어두고 있다가
소설이 아닌 운율을 담은 짧은 글로 이루어져 있다기에 읽게 되었다.
 
요즈음 여러 신인작가들이 등단하고, 장편보다는 단편위주의 소설이 유행처럼 번지는 이즈음
작가님의 필체에 대한 기억이 제대로 남겨있지 않아 이즈음 유행하는 글 종류처럼 에세이나 사진이 담긴 산문집 정도라고 오해를 했었던 것 같다.
 
짧은 운율을 포함하고 있는 글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았고, 짧은 운율을 담았다고 하기엔 길어 보이는 듯한 글들도 만날 수 있었다.  역시 하는 감탄을 자아낼 수 있었던 것은 이즈음의 간단한 신변잡기를 늘어놓으며 생각할 거리가 그다지 포함되지 않은 글들, 여타의 자기계발서에 담긴 글들을 보면 거의 같은 주제로 다른 제목으로 출간하는 책들과 비교할 수 없는 느낌을 담고 있어 보였다.
 
제목을 보면서 생각을 했다. 일요일이라 하면 쉴 수 있는 여유로움을 가지고 나만의 공간과 시간 속에서 여러가지 것들을 할 수 있는 자유를 만끽할 수 있지 않나 싶다.  만약 일요일이라고만 했다면 조금 가벼워 보일 수도 있었겠다.
제목 앞에 생각의~ 란 평범해 보이는 단어를 첨가해서 뭔가 내포하는 함축 의미를 강하게 제시하고 있는 듯 보였다.
 
책을 보면서도 마찬가지 생각을 했다. 언급한 대로 짧은 글이기에 가볍고, 쉬워서 생각할 거리조차 없어보일 때도 있는 이즈음의 책들과는 다르게 내용에는 여러 주제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거리 제공은 물론, 작가님의 시선을 통해서 간접 경험을 할 수 있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여성 작가들의 특유랄까? 늘어져 보이면서 식상할 수 있는 주제를 담아내는 분위기가 아닌 약간 묵직함이 담겨 있는 생활속 소소한 부분 엿보기를 할 수 있을 듯 보였고, 그 시선을 독자 내면으로 돌려서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듯 싶었다.
 
그냥 편하게 여유롭게 펼쳐 들기엔 조금 무거울 수 있지만, 그럼에도 짧은 운율 섞인 글들이기에 그런 상황에서 편히 읽을 수 있어 보이는 것은 사실이었다.
 
이 책을 통해서 예전에 작가님에 대한 독자로서의 편견이나 선입견을 떨쳐 버릴 수 있었던 듯 싶었고, 만약 다른 책이 출간된다면  그런 아집을 버리고 일단 책속 여행을 예전보다 가볍게 시작할 수 있는 맘과 용기를 얻을 수 있었던 데 만족하고 의의를 두고 싶다.
 
한번 보는 책이 아닌 맘의 편함과 여유를 누리고 싶을 때 차와 친구 하며 조용히 않아서 독자로서의 내면을 성찰하고 싶을 때마다 수시로 펼쳐보고 싶은 책임에 분명한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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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추억
이정명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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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정명 작가의 <뿌리깊은 나무> 책에 관심을 가지기만 했고, 읽을 기회를 미루다 이제껏 시간만 끌고 있었다.

최근 이 책을 읽을 기회를 갖게 되어서 우연히 읽게 되었다.

 

추리소설일까? 악의추억? 무슨내용일까?

책을 펼치니 한국작가임에도 주인공과 여러가지 상황이 발생되는 공간적 배경 또한 우리나라가 아닌 것을 발견하게 되었고, 더 호기심이 자극되어 읽어 내려갈 수 있었다.

 

살인은 일어나고, 그것도 연쇄 살인이 계속 발생되는데..

 

사건을 조사하는 형사계는 미궁속으로 빠져들어가는 듯 보이는 사건들을 하나하나 추적하게 된다.

그 중심에 있는 매코이 형사와 라일라 심리분석관의 사건 해결을 풀어가는 시선들이 돋보이고, 그 시선들을 따라서 한 사건 한 사건 숨을 죽이며 따라가며 책속 여행을 펼치게 되었다.

 

중간 중간 퍼즐게임이 사건 실마리로 제공되기도 하고, 다른 소설들 그것도 한국작가의 소설속에 드러나는 플롯이라기엔 조금 독특해 보이는 것들이 여러가지 내재되어 있는 듯 했다.

 

누가 범인일까? 궁금증은 늘어가고, 도대체 누가 범인인지 알지 못하는 미궁으로 이끌어가는 내용은 나란 독자로 부터 답답함이란 선물을 제공하기 충분했다.  쉽게 범인이 드러나지 않았으니 말이다.

 

중반? 중후반?쯤 전개되었을 때 생각지도 못했던 인물에게 범인이 아닐까~라는 촛점이 맞춰지기 시작한다.

이것을 알게 되었을때 설마하는 생각을 담게 되었다.

 

하지만, 설마가 진실로 변해가며 범인이라는 단정을 할 수 있는 정황들이 속속 드러나게 되는데...

 

결국 생각지도 못했던 인물이 범인이 된다.

스스로 플롯을 짜고, 계획하고 드러나지 않기 위해 다른 범인을 앞에 내세우고, 실제 본인은 뒤로 빠지는 등

어찌 보면 억측이고 비약인 듯 보이는 여러가지 과정을 담아서 그대로 실행에까지 옮기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범인 자신 속에 과거에 내재되어 있던 상처를 해결하려 했나 보다.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범인이었다는 사실에 한번 놀랐다.

그 인물이 계획했던 범죄들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그 인물을 추적하며 범인으로 생각했던 가까이 있었던 주변인물들의 추리력에 놀랐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심리속에 내재되어 있던 사실들을 마치 자신이 범인인 것처럼 착각에 빠져서 범행을 행동으로

옮기면서 그 주변 인물들에게 범인의 실마리를 최대한 감추며 함께 수사에 동행했던 범인의 심리상태를 알게 되고 나서 놀라고 말았다.

 

말도 안되는 내용이고 우연을 가장한 필연 속에 드러나는 이야기들이 억측스럽긴 하지만, 한국작가의 생각속에서 만들어진 이야기라는 사실만으로 개인적으로는 높이 평가하고 싶었다.

 

범인의 심리 상황을 통해서 개인 내면속에 치료되지 않은 상처로 인해 말로 표현하기 힘든 살인이라는 범죄로 공격성을 드러낼 수 있고, 자신 스스로를 파멸로 몰고가는 극한 상황으로까지 치닫게 만들고, 내몰 수 있다는 것을 보고

심리적 요인과 그 상처들이 치료되는 것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이 작가의 책 <뿌리깊은 나무> 에도 관심이 생겼고, 늦지 않은 시일 내에 읽고 싶은 욕구가 생기게 되었다. 같은 작가의 전혀 다른 주제로 풀어낸 책에서는 어떤 시선으로 풀어냈을까 궁금했기 때문이고, 한 책을 읽고 작가의 관점을 판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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