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그것만 생각해
카림 르수니 드미뉴 지음, 김혜영 옮김, 조승연 그림, 곽이경 해제 / 검둥소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내용 설명된 것을 읽고 극대화된 호기심으로 읽게 되었다.  역시 청소년 대상이어서 쉬운 어조로 두껍지 않은 페이지에 담겨 있었다.
그랬기에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고 책속 여행을 끝낼 수 있었고, 마지막 페이지와 무사히 만남을 가질 수 있기도 했다.
 
책을 덮고 불현듯 머리 속을 스치며 맴도는 생각들이 몇가지 있었다.
이 생각들을 쉽게 떨칠 순 없었다. 
 
'개인적으로 인연 맺고 지내는 지인 중에 책속 주인공처럼 성적 정체성에 대해 힘들어 하는 사람이 있다면 난 어떤 반응을 할까?' '사람은 이 세상에 나란 개인 하나만 존재하고 닮은 꼴이 있을 수 없고, 그렇기에 귀한 존재이고, 그 자체로 인정 받을 권리가 있구나.' 마지막으로는 '차이와 차별의 다름을 다시금 자극받고 인식할 수 있었고, 그 낱말들의 어감적 차이가 아닌 생활속에서 꼭 적용되었음 좋겠다.' 라는 것들이 그것이다.
 
 
주인공은 청소년기라는 소위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가며 성장통을 앓고 있다 해야 할까?  본인 스스로가 사춘기라고 생각하며 그시기엔 추상적 사고가 시작되어서 여러가지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 단어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 당연할 수 있지만, 주인공은 그런 스스로의 변화에 대해 당황스러음? 죄책감? 등등 어찌 보면 지나칠 정도로 예민해져 있는 듯 보였다.
이 틈을 놓치지 않고, 반 친구 하나가 주인공에 대한 성정체성을 운운하며 놀리기 시작한다.
많이 힘들어 하고, 내면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위축되며 의기소침해 지는 듯 일상을 보내고 있어 보였다.  그러던 중 담임 선생님도 성정체성 속의 소수자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사실을 떠 벌여서 아이들로 부터 선생님에 대한 시각을 완전히 바꾸게 만들고, 선생님을 존경하고 따르지 못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는 듯 보였다.
 
그럼에도 그런 선생님은 주인공과 주인공을 놀리는 아이에 대해서 알고 있고, 계획을 세워서 주인공을 도와주게 되는 반 분위기를 만들게 된다.
 
주인공을 놀리는 친구는 다시금 주인공을 놀리는 일을 하는 것으로 부터 멀어지게 된다.
 
이렇게 두껍지 않은 책 내용이 반 정도에서 끝나고, 이 책의 주제인 성 소수자들을 위해 일하고 있는 곽이경(해제)님이 성소수자들의 의미와 실 생활에서 그들과 관계 맺고 지낼 때 대하는 법등에 대해서 자세하게 쉬운 어체로 풀어내는 것을 뒷부분에 담아 책을 마무리 하고 있다.
 
물론, 이 책 내용이 청소년들에게 쉽지 않은 주제라고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럼에도 드러나지 않지만, 이런 주제들에 대해 청소년들은 기성세대가 모르게 숨길 수도 있겠고, 그들만의 기회를 만들어 이미 검색해 보고, 생각해 보면서 접하고 있고, 접한 경험을 소유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성에 대한 단어들을 기성세대만 하더라도 은밀한 것이고, 드러내고 입으로 말하고 표현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을 정도로 교육을 받아와서 이미 고착화 되어 있기에 이 책 내용만으로도 얼굴을 붉히며 어찌 이런 내용을 청소년 도서의 범위에 포함시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할 수 있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이즈음 청소년들은 어른들이 하지 말라고 해서 자제를 할까? 이미 기성세대의 통제 밖으로 벗어난 듯 보이는 자극적인 성적 충동이나 호기심을 향해 공격당할 것들이 우리 아이들 시야로 깊숙하게 파고 들어 이미 기성세대가 생각하고 있는 도를 벗어나 있다고 생각해보라 하면 억측이라 할 수 있겠지만, 이미 이런 이야기는 많이 들었었고, 지금도 기회있을 때마다 지나칠 정도로 들을 수 있는 상황들에 기성세대라 할 수 있는 나란 사람도 심하게 노출되어 있기에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감히 표현하고 싶다.
 
그렇다면 무조건 이런 주제에 대해서 쉬쉬하고 숨기고 음지속으로 밀어넣는다고 해결될 일은 아닌 거 같다.  책속에는 이런 소수자들은 이미 역사적으로 오래전에도 존재하고 있다고 말한다.
최근에 현대에 와서 급격히 늘어나고 드러나게 되는 것은 아니란 의미가 아니겠는가?
 
서두에 적어 본 것처럼 나란 독자도 이 책의 내용에 100% 공감하고 부끄럼 없이 청소년들에게 내뱉으며 자연스레 주제화 시켜서 간단한 이야기라도 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미 우리네 문화 속에 하나의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면, 무조건 부인하고, 배제한다고 해결될 것은 아니라는 것에는 동의를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렇다고, '자유로이 쉽게 동의하고 공감하며 아~ 그렇구나 그럴수 있겠구나. '라고는 못하겠다.
내 주위에 연관있는 청소년들이 훗날 이런 성 소수자가 되고, 배우자도 그런 시각으로 선택해서 결혼이라는 인륜지대사를 하겠노라 하거나 아니면 사랑하고 있다고 하는 말을 해서 내가 듣게 된다면? 아직 솔직히 이론과 실제는 다르고, 말로나 글로는 쉽게 쓸 수 있으나, 내 지인들의 문제가 된다면 그것은 쉬운 문제가 아닐테니까...
 
단일민족이라는 굴레가 무너지고, 여러가지 다문화적 요소들이 우리 삶과 문화에 스며들어 다양성을 요구하고, 그쪽으로 변화를 해야 할 당위성을 부여받고,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모습들도 종종 접할 수 있기에 이제는 이미 의미로 고착화 되어지고, 편견이라 할지라도 나와 다름을 인정하지 않았던 생활 방식과 내면의 생각들을 깨야 할 시기들이 가까워 오고있음을 절절하게 느끼게 된다.
 
이 책은 쉬울 수도, 어려울 수도 있는 주제를 담고 있지만, 나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시각을 어찌 하고 그들을 수용해서 함께 공존해야 하는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음에 의의를 두고 싶고, 차별이 아닌 차이가 존재함을 의식적으로 꼭 되뇌이며 생활속의 실천을 해야 겠다는 부분에 대해 다시 자극을 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된 듯 싶다.
 
어느 한 개인의 노력만으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면 우리 사회는 '소위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겠지...
그럼에도 사람은 혼자 독불장군으로 살 수 없고, 모든 일들이 기계화 되어서 사람의 힘이 필요하지 않을지라도, 분명 개개인이 할 수 있는 일들은 다 다르고, 저마다 그 능력을 발휘해서 그 분야에서 일을 해야 함께 어우려져 도움도 받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은 떨쳐 버릴 수 없는 사실이기에~
이제는 나만 튀는 세상이 아닌 함께 공존하는 세상으로 기계화되어 빠름이 팽배해 있지만, 그에 맞는 인간미로 채워져 넘쳐 흐르는 사회로의 빠른 변화를 기대하는 것이 헛되지 않음을 담아 간절히 소원할 수 밖에~
 
분명 강조하고 싶은 것은 '차별'이 아닌 '차이'만 존재할 필요는 있다는 것이다.
쉽지 않아도 이런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지고 쉬운 일은 아니지만 노력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길 바라는 것이 부질 없음이 아니었음~~~
바스락 거리는 낙엽 떨어지는 소리에 담고 싶다.
 
 

"'정상' 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아요! 

이곳에서 정상인 것이 다른 곳에서는 아닐 수 있고,

당신에게 정상인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비정상일 수도 있다고요.

- p.2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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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자유롭니? 탐 청소년 문학 3
이오인 콜퍼 지음, 김민석 옮김 / 탐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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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책의 분류가 청소년 분야였고, 뭔가 삶의 가치에 대한 의미랄까? 그런 것들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는 근거, 출발점을 만들 수 있을 듯 싶어서 읽게 되었다.

 

넌 자유롭니? 뭐가 자유롭다 하는 걸까? 어떤 의미의 자유로움을 확인하려고 제목을 이렇게 정한 걸까? 궁금증은 살포시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한편이 아닌 여러편, 그것도 일반 단편집이 아닌 인권이라는 동일한 주제를 담고 있는 이야기가 실려 있었음을 알게 되었고, 그 글을 완성한 이들도 각각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한편 한편 읽어 내려갔다.  가볍지 않은 주제를 아이들 시각으로 풀어내서일까? 생각보다는 쉽게 읽을 수 있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덮고 나서는 뭔가 쳐지고 떨칠 수 없는 묵직함이 전해옴을 느꼈다.

 

이런 주제로 청소년들이라면 한번쯤 생각해 봄직하다. 

우리 현실에서 이런 생각을 해보고, 나름의 가치관을 확립하며 스스로 뭔가 느끼고, 가슴에 담고, 앞으로 세계관을 가지고 어찌 살아갈까? 에 대해 생각해 보기도 하고...

 

글쎄, 구태의연하고 속물적 시각이라 할 수 있겠지만, 청소년 시기를 겪고 있는 우리아이들의 입장이라면 이런 시간에 투자하는 것보다, 학원가서 기계적으로 외우고, 암기하고 습득하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아니 기성세대라고 하는 부모들이 이렇게 만들어 관심과 사랑이라는 이유로, 그래야 어른이 되서 더 잘살 수 있다는 합리화적 덧옷을 아이들과 전혀 맞지 않아도 덧입히고, 끼워넣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겹쳐진다.

 

예전에 인권을 보호받지 못한 세계의 어린이들을 주제로 한 이야기들을 몇권 읽어본 기억이 난다.

성적 억압이나 노예들..

물론 우리나라 아이들을 생각하면 이런 문제들은 어쩌면 부모들의 과보호 속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서 별 문제가 없어 보일지도 모르겠다.  과연 그럴까?

 

인권이라 하면 매우 거창하고 무게 있는 주제이고, 우리와는 상관 없는 이야기일 수 있겠다 생각할지 모르는 우를 범할 여지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거창하지 않아도, 우리네 이즈음 청소년들에게 『넌 자유롭니?』라는 질문을 했을 때, 과연 긍정으로 대답하는 확률이 얼마나 될까? 하는 막연한 의문이 들기도 했다.

아마, 우리 아이들은 그렇게 대답할 것이다.  공부, 경쟁, 학원으로 부터 자유로웠으면 좋겠노라고...

말도 안되 보이는 대답으로 일관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쉽게 떨칠 수 없음이 안타까움과 함께 울림으로 전해짐도 느꼈다.

 

인권... 책 속 이야기는 우리나라와는 전혀 다른 상황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들 환경에서 있을 법 하거나, 일어나는 일을 묘사하고 있어서 공감하기 힘들고, 나와 상관 없는 이야기라고 치부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이 작가들이 이렇게 이야기 하고 책으로 담아낸 데는 의식하거나 인지하고 있지 않은 이 시각에도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 인권유린이 되어지는 상황들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함께 할 수 있었다.

TV 방송에서 인권 유린 되는 아이들 이야기, 심지어는 노인들 이야기를 다루는 것들이 비일비재하게 보여지고, 그런 횟수들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자유』 이것은 분명 모든이들에게 누려야 할 기본 권리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자유에 책임을 질 수 없는 것은 자유가 아닐것이다. 그렇다고 그 자유를 말 그대로 자유롭게 누리지 못하도록 통제하고, 억압하는 것도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앗아가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물론 자유를 누릴 수 있을 만큼 성장해야 그에 따른 책임을 소유하며 맘껏 누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지나칠 정도로 자유를 위해서 부모들이 나서는 것도 아닌 듯 싶기 때문이다.

이즈음 모습을 보면 기성세대들이 모든 것을 다 해주는 것이 그들이 성장해서 누릴 자유를 기다리며 잠시 저금하듯 미뤄두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는데, 이것이 올바른 자유라 할 수 없지 않은가? 말이다. 

성장과정에서 그들이 성장해서 누릴 수 있는 자유에 대한 올바른 시선을 확립할 수 있도록 가는 길을 제시해 주고, 그 길로 올바로 가고 있는지 그 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정도로 보호막을 쳐주고, 테두리만 정해 주고, 그져 곁에서 눈을 떼지 않고, 지켜 보는 가운데 성장하며 정말 누려야 할 시기에 올바른 시각으로 자기것을 받아들이고, 채울 수 있는 시각을 확립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올바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내면에 만들어 주게 되는 것이고, 그것이 올바른 도우미로서 청소년들의 성장기에서 누려야 할 인권을 소유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스쳐간다.

 

비록 작가들이 우리나라 생활가 동떨어진 생활을 묘사하며 이야기를 이끌어 냈어도, 우리나라 아이들에게도 적절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사람다운 권리는 부여되어야 함을 무시할 수 없다면...

이 책의 내용이 조금 더 사실적으로 다가올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또한, 함께 떠오르는 생각은 부모들은 내 아이들의 인권과 권리만을 주장하고, 내 아이만 잘나면 되고... 그런 시각으로 다른 사람의 입장이나 환경등을 생각할 여지조차 주지 않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다.. 분명 인간은 어울려 살아야 할 존재들이다.  그렇다고, 내 의견 모두 굽히고 죽이고, 비굴할 정도로 상대 의견만 따르라는 것은 아니다.  내 의견 제시 명확하고, 분명하고 지혜롭게 제시하고, 타인의 장점과 좋은 의견을 수용할 수 있는 그런 지혜를 겸비한 후에 누릴 수 있는 자유를 주장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싶다.

 

솔직히, 여러가지 것들을 생각해 보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사람다운 권리도 누려야 한다는 귀한 진리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지나치리 만큼 많은 소주제를 담은 작가의 이야기가 니열되어 있어서, 산만한 느낌을 떨칠 수 없었고, 한 이야기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데 호흡이 짤리는 느낌도 있었고, 어떤 이야기들은 호흡이 길어서 공감하기 지루한 이야기도 있었다 할 수 있겠다.

 

각 이야기 마다 인권조항이나 작가의 의견을 덧붙여 앞 이야기를 정리하는 느낌? 환기 시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은 괜찮은 구성으로 여겨졌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 책이 청소년 도서로 분류되어 있다는 관점에서 덧붙이면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어른 세대를 준비하면서 읽어야 된다고 봤을 때

우리 아이들이 읽기엔 조금은 동떨어진 주제고, 이런 책으로 생각을 이끌어 내는 시도를 한다는 필요성과 의무감을 부여해야 한다면, 시기상조가 아닐까 하고 단언일지라도 나름의 결론을 내리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무리 중요한 논제가 있고, 그것을 꼭 생각하고 곱씹어 보고 의미를 부여해야 할 만큼의 주제가 담겨 있고, 몸에 마음에 필수불가결한 요소라 할지라도~

책이 분류되어 읽어야 할 독자가 선택해서 읽고 그 내용에 몸서리칠 정도로 공감할 만한 꺼리를 어떤 형태로든 제공해 주지 못할만큼 임팩트 있게 다가가고 울림을 줄 수 없다면

뭔가 부족함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개인적으로 끝끝내 맴돌고, 떨쳐지지 않았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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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실격 외 세계문학의 숲 5
다자이 오사무 지음, 양윤옥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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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제목에서 주는 느낌이 긍정적이지 못했기 때문에 이 책의 출간과 비례하듯 증가하는 호평담긴 서평을 접하면서도 상관없이 읽으려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계속 서점에서 기회있을 때 마다 여러가지 분류법에 의해 나눠진 책의 자태는 이곳저곳에서 자리매김하며 뽐내기를 하고 있었고, 그 모습을 여러차례 목격하게 되고는, 읽어야 하나? 하는 막연함만을 담아두고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책들 중 하나였다.
그렇지만, 그것도 잠시 읽고 싶은 마음의 강세에 의해 펼쳐들기에 이르렀으니.~
 
사실 제목에서 느껴졌던 것은 바로 이러했다.
인간이라고 하면 비하적인 단어가 아님에도 왠지 사람 모두를 통틀어 비하하는 느낌으로 일컬을 때 사용되는 듯 했고, 실격이라는 말은 자격 없다. 아니면, 탈락이야. 라는 부정적 의미의 선입견이 책을 일고자 하는 욕구를 무참히 짓눌러버리기에 이르렀으니 당연히 읽을 기회를 만들지 않았을 수 밖에~
 
책의 저자에 관해 간단히 적혀 있는 안쪽의 책 날개를 살펴본 순간,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저자는 이즈음의 작가인줄로만 알았다. 아니 예전의 고전에 속하는 책이니 비교적 최근의 인물이지 않았을까? 하는 당연할지 모르는 막연함?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꽤 오래전 출생했고, 삶도 길지 않은 기간동안 살았던 것을 알게 되었다.
표지의 간략한 설명에서도 그의 내면이 어떠했는지 맛보기 정도로 엿볼 수 있었다.
 
책을 펼쳐 들었다.  역시 생각했던대로, 아니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묵직함이 느껴졌다. 
『인간실격』이 제일 처음에 자리하고 있었고, 몇편의 단편이라고 하는 이야기들이 이어져 내용을 만들고 있었다. 
책 내용엔 저자의 생각이나 사상들이 담겨질 수 있음을 감안한다면, 그의 내면이 어떠했을지? 가히 첫부분 조금을 읽고도 알게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할 수 있다.
스스로 참 나약한 존재고, 가족과 지인들과 살아가는 삶조차 쉽지 않게 연명이랄까? 그렇게 어찌보면 그냥 살아야 하는 의무감? 그런것에 의해 이어가고 있는 듯 보이기도 했다.  이런 감정이 비약일지라도 말이다.  참 어둡고, 나약하고, 불안해 보이기까지 하는... 세상과 대항해서 적극적으로 사는 모습이 아닌 뭐랄까? 인간 삶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담고 있는 그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쉽게 할 정도로 길지 않은 중단편의 이야기에 담긴 그 어떤 장편소설보다 묵직하게 존재하고 있는 어둡고, 칙칙한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고 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런 작가의 작품이 왜? 고전이고, 유명한 걸까? 말도 안되는 궁금증이 모순적으로 치밀어 오르는 것을 막을 수 없었고, 많이 못살게 굴어서 읽는 내내 개인적으로 나란 독자는 힘들 수 밖에 없었다.
고전에 비해 가벼워 보이는 책 두께와 무게의 유혹으로 비교적 쉽게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을 가지게 된 스스로가 의문이 들 정도기도 했다.
 
이즈음 우리나라에서도 내면의 아픔과 상처로 인해 스스로가 힘들어지는 단계를 넘어서고, 가장 가까운 가족의 범위를 벗어나서, 사회로 드러내며 관계 없는 불특정한 다수에게 공격성으로 화살을 들이대고, 범죄라는 무서운 가면인지도 모른 채 마구 내면의 아픔을 제시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이런 이즈음 정신적 치료를 받는다 해서 무조건 차별적 시각으로 바라봐야 하는 걸까? 예전에 속된 표현, 쉬운 말로, 저 사람 돈거 아냐? 미쳤구나? 이렇게 쉬운 말로 그들을 일컫는 우를 범하는 시기는 이미 넘어선 듯 싶기 때문에 뭔가 차별적 시각이 아닌, 그들을 사회의 일원으로 보듬고, 쓰다듬고, 함께 어울려 사는 사회적 동물인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어찌 보면, 작가처럼 내면에 약함과 아픔을 담고 있지만, 스스로 표현하기 쉽지 않고, 그 감정에 억눌려 살아가야 한다면.. 게다가 주위에서 그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고, 인정해 주는 것이 아닌 색안경을 끼고, 나와 차별적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손가락질 하며 소위 왕따라는 잣대로 그룹을 지어 무리 밖으로 밀어낸다면... 그건 아닐 듯 싶다.
 
오히려 내면의 상처나 아픔은 타인들에게 아니 가까운 가족에게 조차 보여지지 않기에 더 그 아픔을 공감해 줄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긴, 신체적 장애를 가지고, 원래 나와 다르게 태어나 성장하고 생활하는 사람들 바라보는 시각도 무참할 정도로 차별적인데...한 개인의 내면 스스로에게 있는 아픔도 올바로 바라보려 하지 않고, 감추고, 쌓아두고, 곪아터진 후에라도 알게 되면 다행이지만, 힘들게 평생 가져가는 사람들이 주위 시선이 두려워 평생 가져가는 사람들도 많을텐데 말이다.
 
눈이 나쁘면, 안경이나 렌즈라는 보조기구를 사용해서 촛점을 올바르게 조정해서 잘 분명하게 정확하게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처럼 마음이 아프다면 그에 맞는 보조기구 마음의 안경을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그냥 아 저사람은 맘이 아프구나 하는 평이한 눈으로 아니 오히려 의식하지 않고 그냥 두기만 해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내내 해왔고, 이 책을 읽는 동안에도 저자의 시선으로 따라가다 보니 거침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이라는 형태로 나를 옭아매는 것이 느껴졌다.
 
물론, 이런 생각이 저자의 책속에 담긴 시선을 올바르게 공감했다고 단언할 수 없고, 단언하고 싶지도 않다.  책이란 것은 읽는 사람의 마음에 와 닿는 대로의 느낌이 소중하고 귀하다 느끼기에 말이다.
 
저자의 아픔이 그대로 드러나고, 그렇게 오래 전에 저자가 삶을 누렸을 그 시기에도 사람은 나름의 내면의 아픔과 약함과 불안함을 담고 이어갔을 거라는 막연함이 다가오니..
예나 지금이나 인간이라는 것은 아무리 뛰어나고, 젠체하고 남을 짓밟고 살고, 남보다 위에 서야 한다는 강압적 경쟁에 짓눌려 앞서 나가려고 용틀임을 하고 쉴새 없이 달려간다고 해도
내면에 가지고 있는 감정이라는 녀석의 동질성이 느껴지고, 잘나서 앞서 가는 사람들도 그냥 다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행복해 보일 뿐이라는 생각도 들고...
 
개인적인 나란 사람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존재고, 오히려 단점보다 나만 가지고 있는 장점이 더 많겠구나 하는 긍정적 생각으로의 전환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었던 거 같다.
 
말도 안되는 생각이 문득 떠오른다.
방송에서 뽀로로를 만든 사람이 나와 이야기 하는 것을 들었다.
뽀로로의 외모에 대해 설명하는데
“뽀로로는 펭귄이고, 날수 없는데, 스스로는 날고 싶어 한다.  그래서. 비행기 조종사처럼 고글도 끼우고, 헬멧도 쓰게 했다.  하지만, 펭귄은 날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뽀로로는 우연히 바닷 속에 들어가 헤엄을 치는데, 등장인물들 보다 더 능숙하게 잘하는 것을 뽀로로 스스로가 알게 된 적 있다.
그렇다 누구나 모든 것을 다 잘하고, 능숙하게 하며 살 수는 없다.  뽀로로를 보고 우리 아이들이 모든 것을 다 잘할 수 없어도, 자신만이 잘 할 수 있는 것은 분명히 가지고 있으니 그것을 발견하고 계발해서 행복하게 살았음 좋겠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었다.
 
맞다. 이 책의 제목  『인간실격』 인 것처럼 누구나 내면엔 喜 怒 哀 樂 의 감정을 다 가지고 출생해서 성장하고 삶을 유지해 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출생당시는 좋은 것이 더 많이 있는데, 살면서 주위 환경에 의해서 더 아프고, 속상한 것들을 많이 인식하게 되어, 기질에 따라 그 약함과 아픔을 많이 받아들여 내면에 채워가고, 그 기질을 확실하게 드러내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한가지 분명한 것은 내 안의 감정 중에서 이왕이면 나를 행복하게 하고, 즐겁게 만들고, 긍정적 에너지와 맞물려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나를 극대화 시키고, 나만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살아가는 날들동안 즐겁게 누리며 극대화 시키고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의지적으로 자기 암시를 강하게 주는 훈련과 연습을 한다면,  인간실격이 아닌, 인간승리의 감정을 소박하게 누리며 값진 삶을 살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말도 안될 수 있는 것들이 가득 채워짐을 느꼈다.
 
책 속 저자의 시선은 참 힘들어 보이고, 아파보이고, 연약해 보여서 안타까운 면도 떨칠 수 없었지만,
이즈음 시대보다 앞서 삶을 영위한 인생 선배로서, 책 내용에 담아 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물론, 저자가 책을 출간할 때는 자신의 이야기가 유명해질 지도, 가치있게 대우받게 될지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후세에 이렇게 여러가지 관점에서 삶 속에 공존하는 인간의 감정들을 다시금 꺼내보고 생각하고 되새길 수 있다면 그걸로 훌륭한 일 아닐까?
 
어찌 보면 이 책의 유명도에 대해서 의아해 할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럴 수 있겠다는 것에는 완벽한 공감을 할 수 있다.  처음에 책을 덮고 나서도 의아한 감정을 떨칠 수 없었으니 말이다.  이렇게 쓰는 느낌을 모든 이에게 공감이라는 합리화를 빌미삼아 강요하고 싶지는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이 느낌을 보고 에이 말도 안돼 라고 내뱉을 수 있을 만큼 억측이고, 앞뒤 이치가 안맞을 수 있을 만큼 비약이라는 것도 알고 있으니 말이다.
 
책을 읽는 내내, 덮고 나서 머리를 맴돌고, 내게 울림이라는 상자 문을 살포시 두드리는 귀한 친구같은 생각들을 그저 소홀히 하고 싶지 않았기에 끄적여 본 것이기에 말이다.
 
여러가지 내 안에 담겨 있는 의미들을 자극하게 되었고, 끄집어서 다시 되새김질하며 정리하고 꼼꼼하게 살펴 볼 수 있었음에 의미를 두고 싶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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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박석무 엮음 / 창비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실학자라고 칭하는 정약용 또한 국사를 접한 사람이라면 아니 상식으로라도 알고 있는 역사의 위인에 포함되는 인물일 것이다.  하지만, 역사책을 접하고 읽기란 더욱 원문에 가까운 원역본으로 읽기란 쉽지 않음은 모순일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쉽게 부인하기도 어려울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창비에서 출간된 책이라는 것이 눈에 띄었다.

덧붙이면 청소년 문학의 중심에 서서 여러가지 책들을 출간한다 알고 있었던 터라

이번엔 꼭 기회를 놓치지 않으리라 맘먹고 그 호기심 없어지기 전에 읽어야 겠노라 다짐하며

책을 펼칠 수 있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유배지에서 써 내려간 편지글을 내용으로 담고 있는 책이다.

기행문이나 서간문은 쉬워 보이는 글 형식이기에 만만하게 보일 수 있지만, 그 이면엔 쉽게 표현하기 어려운 형식적 특징을 꼭꼭 숨기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 하고 싶다.

대체로 서간문이나 기행문을 쓰려는 시도는 하지만, 형식에 맞게 작성하기는 쉽지 않은 느낌으로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책의 내용은  한줄 한줄 눈을 크게 만들정도로 어색하지 않고, 말하는 듯이 대상을 정해서 정약용 자신의 생각을 펼쳐내고 있었던 것 만으로도 서간문 작성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기 충분했다.

 

역시 조선시대의 문인이었기에, 역사적으로 획을 그을만한 인물이었기에~ 라는 감탄을 자아내기까지는 얼마의 시간이 걸리지 않을 정도였다.

조선시대 역사를 살펴보게 되면 당연시 될정도로 시대적으로 드러나서 유명한 인물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그들이 처한 상황이나 위치에서 성과물이 뛰어나보이면 가차없이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된다 할까? 손바닥 뒤집듯 시기하고 질투하며 눈 밖에 났다 할까? 그렇게 보여지면  임금에게 단점을 크게 부풀려 상소를 올려서라도 도성으로 부터 먼곳에 보내려 하든지, 아니면 사약을 내리게 하여 죽음을 맞게 만들어 버리는 이야기들을 비일비재하게 주제로 담아 역사와 접목시킨 허구적 소설이든, 팩션소설이든 많은 부분에 담겨 있는 것을 접해 왔다.

 

정약용 또한 그랬던 듯 싶다.  그렇게 임금에게 눈에 띄어 여러가지 것들을 지금도 전해오는 것들을 만들어 내고, 역사적 유물로 후세에 기억될 정도로 이루었으니 안그랬을 리 없을 것이라는 것은 가히 짐작하고 남음이 있으리라..~

그럼에도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선비로서, 꼿꼿함과 자신의 학문적 주관을 확실히 세우고, 스스로 삶 뿐 아니라 후배 양성과 자신의 자식들에게까지 그 뜻을 전하고자 했던 듯 싶다.

그런 그의 생각과 주관들을 유배지에 가서까지 상대를 정해 하나하나 조근조근 꼼꼼하게 말하듯 풀어낸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 바로 이책이다.

 

물론, 윈본은 아니지만, 어려운 역사적 이야기를 쉽게 현대의 문체로 바꾸어 청소년들의 시각에 맞게 담고 있기에 더 쉽게 접할 수 있는 장점을 담고 있다 할 수 있겠다.

 

모든 책들이 그러하듯,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다르게 전해 옴을 알고 있다.  이 책도 마찬가지일 듯 싶다.  이 책에 담긴 정약용 선생님이 표현한 이야기를 어찌 한번 읽고 다 받아들이고, 기억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선조의 사상이 모두 다 옳다고 그대로 답습할 필요는 없을테니, 그때 그때 읽어보고 울림에 전해지는 그대로, 느껴지는 그대로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공감하고, 생활에 적용되면 그 또한 표현되는 그대로 물 흐르듯 두면 될 성 싶다.

 

바람 살살 불고, 한해를 마무리 해야 하는 겨울을 맞을 준비를 하고, 뭔가 생각하며 알차게 마무리 해야할 듯 싶은 가을 이즈음

무거울 수 있는 역사적 주제가 담긴 책을 쉬운 어조로 담고 있는 이 책을 만나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의 여행을 할 수 있었고, 지혜와 혜안 엿보기를 하고 나니,

스산하고 차분하고 어두울 수 있는 계절적 요소에 굴하지 않고, 오히려 내년의 따뜻한 봄오르의 여행을 하면서 내면의 활기를 불어넣은 듯 해서 만족한 시간이었음을 살포시 부끄러운 새색시의 불그레 한 볼처럼 새침스레 고백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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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멘트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1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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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글라스 케네디의 전작 『빅픽쳐』 가 출간되었을 때 많은 호평이 담긴 회자되어지는 상황을 지켜보았음에도 개인적으로 많은 끌림이 없어서 어영부영 시간의 흐름과 함께 셀수없이 쏟아지는 신간의 홍수를 핑계삼아 묻어버리고 지나치게 되었다.

 

그럼에도 그 후에 『위험한 관계』 라는 책이 새로 출간되었지만, 기억속에 파묻혀 버린 작가로의 관심을 이끌어 내기엔 역부족임을 이유로 이 책 역시 묻어 버렸다.

 

최근 『모멘트』 이 책의 출간소식은 스물 피어오르는 개인적 관심을 떨치게 하지 못하고, 뇌리를 맴도는 호기심의 승리로 끝나게 되고, 결국 펼쳐들게 하고 말았다.

제목의 뜻인 순간? 과연 어떤 순간일까? 어떤 상황이 벌어진 순간? 을 묘사한 내용일까?  표지와 제목은 개인적으로 책속 여행의 유혹을 하기 시작했고, 여행으로의 동행을 기꺼이 자처하고 나섰다.

 

전작들을 읽어보지 못해서 비교와 비유는 할 수 없겠지만, 읽어 내려가는 내내 작가의 길지 않은 필체와 호흡만으로 다행으로 여길 수 있게 되었고, 계속 읽어 내려갔다.

음~ 작가의 특성을 언뜻 언뜻 만날 수 있는 행운도 누리면서 말이다.

 

책 내용이 사랑을 다룬 로맨스를 주제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순간에 만난 상대와 이루어진 사랑을 바탕으로 풀어내는 이야기. 하지만, 밝은 화사한 봄날의 햇살 느낌처럼 가볍고 따뜻한 그런 사랑이 아닌 가을날 차분하게 내려앉은 안개속에 한잎 두잎 떨어지는 낙엽이 스산한 바람결에 사람들 발에 밟혀 바스락 거리는 소리를 들었을 때의 뭔가 어둡고, 칙칙하고, 무거운? 그런 사랑? 에 비유하면 될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하게 하는 내용이라고 말하고 싶다.

 

저자의 시선으로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 토마스는 현재 결혼생활의 식상함? 늘 그저그렇듯한 사랑이라는 가면을 쓰고, 내면을 보여주기 싫어하는 위장술이라는 결혼이라는 옷 속에 구태의연하게 자리잡아 버린 삶을 정리하게 된다. 

 

그 후에 우연히 우편물을 받게 되는데...

현재는 착각에 사랑이라는 운명을 믿으며 살아온데 식상함을 느껴 생활을 정리했지만, 그럼에도 그 시절 그는 영원히 만나지 못했던, 바로 운명적 사랑을 만났던 시기였던 것을 떠올리게 된 듯 싶었다.  바로 자신의 과거 삶속의 그 순간에..~

 

결혼을 정리하고 그 유일한 순간이었던 그시절로 가고 싶은 갈망은 그로 하여금 베를린으로 떠나게 만들어 버렸던 것이다.

떠나기 전에 작가로서 터를 만들고 자신의 위치를 세우기 시작한 그는 베를린에서도

에세이를 출간하려고 하는 맘을 가지게 되었고, 떠나기에 이르렀다.

 

그는 그곳에서 생활 터전을 마련하게 되고, 자신이 해왔던 작가일을 기반으로 방송일을 하면서 지내려고 고군분투하는 삶의 모습이 표현되고, 이야기로 만들어지는 내용이 주를 이루는 듯 보였다. 

우연이라고 표현하긴 어불성설로 보이는 상황... 그 앞에 여인이 등장한다.

결혼이라는 생활을 영위하면서 사랑은 존재하지 않음을 느꼈었지만, 그녀를 본 순간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사랑을 부인하는 마음도 그녀 앞에선 더 이상 그의 내면에 존재 가치를 잃을 정도로 무기력하게 만들어 버렸던 것이다.

그녀를 한눈에 반한 느낌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성장했던 그녀의 나라, 동독은 현재 이즈음과 다른 소위 이데올로기라고 했던 시대, 냉전의 시대였으니, 그 둘의 달콤한 사랑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미국인이었던 남자 주인공이 살았던 시대적 상황과 그녀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은 마치 물과 기름을 한곳에 부어 놓고 섞으려 해도 섞이지 않는 그런...

둘은 섞이고, 자유롭고 싶고, 사랑을 하고 싶지만.... 의지 상관없이 그냥 둥둥 뜰 수 밖에 없는... 맘은 아니어도, 그냥 두면 섞일 수 없는 그런 운명이랄까?

 

시대적 차이는 그 현재 둘의 사랑으로 채우는 순간에 바로 걸림돌이 되어 짠~하고 등장해서 둘 사이를 아프고 힘들게 후비게 되었다고 할까? 그래 보였다.

 

사랑이 주제로 등장하는 내용이지만, 왜 그렇게 달콤하지 않을까? 왜? 하는 생각은 꼬리를 물고, 긴 행렬로 뇌리를 괴롭히기에 이르르고 말았다.

 

단지, 서두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얇아 보이지 않는 책 두께를 가득 채운 내용의 이야기를 자세하고 섬세한 묘사로 서술형의 문체로 어찌 이렇게 잘 표현했는지 이점은 높이 평가하고 싶었다.

하지만, 뭔가 우리 문화 속에 녹아든 성향과 달라서 일까? 책 내용의 그 냉전의 시대를 살아보지 못하고, 머리속 상상으로만 공감을 해야 하는 상황이어서일까?

전작을 읽어보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개인적으로는 이 작가에 대한 호평으로 채워진 회자됨의 이즈음 상황들에 공감하기는 쉽지 않았다 이야기 하고 싶다.

 

놀람 속에 읽어 내려갈 수 밖에 없었던 그의 필체와 문체속에 스며든 책 이야기 속 여러 인물들간의 관계를 유지하며 이끌어 가는 작가의 능력에는 의아함을 담게 될 만큼 높이 사고 싶기도 했다.

사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도 있듯이, 독불장군으로 살아갈 수 없고, 서로 어울려 살 수 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예나 지금이나 제일 쉬우면서도 어렵다 감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얻어지는 피드백적 결과들로 인해 유치할 정도로 울고, 웃고... 좌지우지 될 수 밖에 없고, 정신적 피곤과 피로를 가득 채우게 되고, 스트레스 지수를 가득 차고 넘칠 수 있게 만드는 괴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절절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찌 그런 관계를 장황하게 묘하면서도 알듯 말듯 드러날 듯 아닌 듯, 그리 섬세하게 유지하면서 이야기를 지속시킬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을 만들기에 충분할 정도로 그의 책 내용속에 담긴 인물들 간의 관계를 묘사하는 문장들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책을 덮고 나란 독자의 공감 박스에 담겨지는 울림에 대해서 찬찬히 생각을 해봤다.  몇 곳에서 칭찬을 담고, 높이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을 발견했지만, 떨칠 수 없는 아쉬움이 있었으니... 사실 읽는 내내 짧은 호흡을 담고 있는 문체이지만, 강한 임팩트를 담고 있는 클라이막스랄까? 그런 것을 얻지 못했다.  극적으로 쾌감을 느끼게 하는 마치 둥산을 하며 정상이나 어떤 하나의 봉우리에 올라서서 아래를 바라보며 느낄 수 있는 짜릿한 느낌? 그런 것을 얻을 수 없었다 할 수 있겠다.

 

그렇다고 어떤 작가이든 마찬가지로, 한권을 읽어보고 작가의 성향이나 등등을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이 작가의 작품 하나를 읽고 완벽한 결론으로 표현하긴 어려울 터... 기회가 되면 다른 작품을 읽고 난 후로 미룰 수 밖에 없겠다는 구태의연해 보이는 나름의 결말로 마무리 할 수 밖에 없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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