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754 - 1
서명균 지음 / 작가와비평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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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표지에 씌어있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역사소설이라고 선입견을 내 맘대로 가지게 되었다.
출간 소식을 듣고, 호기심에 이끌려 펼쳐 들게 되었다.
 
작가와 비평 출판사는 얼마전 『신용우님의 명성황후는 시해당하지 않았다』 이 책을 우연히 보고 읽게 되어서 알게되었다 할 수 있겠다.
신용우님 책도 근·。 현세사를 기반으로 했고, 지금까지의 시각과 다른 견해로 풀어내신 책을 읽고 어쩌면 기존의 시각이 아니기에 부담이나 거부감이 들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그 시각에 통쾌함을 내면에 가득 채운채 책여행을 끝냈기에 출판사에 대한 신뢰가 조금 싹 튼채로 기억에 남아있었다.  한 출판사에서 출간되는 책들의 대부분 비슷한 견해로 출간되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이 책 역시 호의적으로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책을 읽는다기 보다 스펙터클( =spectacle)한 한편의 전쟁영화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그럼에도 과거의 시간속에 존재하는 현대와 가까운 시간적, 공간적 배경이 사건의 배경이었음에도 과거라는 생각보다 지금 어디에선가 일어나고 있을듯한, 뉴스에도 나오기도 하는 어느 나라의 내전이나 국가간의 전쟁을 묘사하고 있는 느낌이었고, 그 전쟁의 공간속에 존재하는 내가 느낀 느낌으로 다가올 정도의 생생함도 전해받았다.
 
이 책의 특징은 길지 않은 호흡으로 남성작가의 특유한 강함과 거침을 넘어선 섬세함까지 담겨 있는 세세한 묘사와 인물의 내면을 바라보는 시각..
그리고, 주고 받는 대화로 표현되어지는 부분 또한 사실적인 듯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역사적 사건이나 내용을 풀어내는 책에서 거의 열외가 없을 정도로 존재하며 자리매김하고 있는 일본 역시 이 책의 내용에서도 그들의 계략과 잔인함, 간계함이 포함되어 있어 보였다.
 
책 표지에 씌어있었다. 『2차 세계대전, 일본 왕실은 광대한 점령지에서 황금을 긁어 모았다.  하지만 급박한 전황으로 인하여
미처 일본으로 수송하지 못한 황금이 있었다.  그리고, 60여년 후 ……、 남겨진 황금을 차지하기 위한 21세기 최대의 대결이 벌어진다.』 라고..
 
시각은 세계대전 후의 현세로 넘어와서 표지에 적힌대로 3국의 쟁탈전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일을 배경으로 해서 전개된다.
전쟁에서 있을 법한 총격전도 등장하며 긴박한 전개로 풀어내는데...
 
 
저자의 말을 인용해 보려 한다. 『《홀로 754》는 일본 왕실의 숨겨놓은 황금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황금을 차지하기 위해 돌진하는 다충적 캐릭터들의 이야기다.  이야기의 박진감을 위해 물리적 시간을 3일로 한정했다. 
그리고, 여행 소설이라 해도 될 만큼 아시아와 유럽 곳곳이 공간적 배경으로 등장하고, 모험 소설처럼 사막횡단과 폭풍우 속 항해 등 난관을 극복하는 과정과 대규모 전투가 펼쳐진다.
또한 소설에서는 드물게 각주를 달아, 본문에서 묘사 또는 설명하지 못하는 것들을 전달하려 노력했다.  풍성한 각주로 인해 소설을 읽으며 수백억을 호가하는 호와 요트와 자가용 비행기에서부터 한 잔의 스파클링 와인(샴페인)과 커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지식과 상식을 담을 수 있었다.
- p.386 작가로 부터의 내용 중에서 - 』
 
이렇게 장황할 수 있는 부분을 그대로 인용한 이유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작가의 말에서 느낄 수 있듯이, 여러가지 시공간적 배경을 강조해서 극의 긴장감과 scale 을 표현하고 싶었다는 것은 이해가 되었다.
또한 작가는 각주를 달아 독자에게 그 시대에 존재했던 여러가지 사항들을 강조해서 지식적 전달을 통해 이해를 도우려 했다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이런 것들이 작가가 이 책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장점일 수 있으리라..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솔직히 내용에 집중하며 작가가 주인공에게 투영한 시각을 따라서 그 시대로 들어가서 여행을 하는데 적지 않게 여러 곳에서 몰입을 할 수 없었음이 느껴졌다. 
각주도 그러하다.  각주를 통해 시대적인 상황이나 도구등에 대한 설명을 읽어서 이해를 돕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페이지 마다 각주를 확인하지 않으면 안될 거 같은 그런 억지스런 당위성 또한 나란 독자에겐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로 탈바꿈되어서
괴롭히고 시선을 흐트러뜨리기에 충분했던 느낌으로 책 읽기를 하게 되는 여러 부분을 만날 수 있었다.
 
각주~ 중요하다.  당연히 설명을 첨가해 주셔서 여러가지 겪어 보지 못했던 시대적인 여러가지 모습을 간접적으로 받아들이며 이해할 수 있는 충분한 도구라는 것은 공감을 한다.  독자마다, 작가마다, 여러가지 표현을 통해 공감을 얻거나, 주는 방법이 다르겠으나, 중간 중간 몰아서 각주를 한꺼번에 달았음 어땠을까? 하는 약간의 아쉬움이 더해지는 부분이었다.
 
대체로 최근 영화화 되거나 드라마로 표현되는 것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책의 내용은 간단한데,  책에 없던 내용을 다른 시각으로 고증을 통해 풀어내서 첨가시켜서 내용을 늘게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은 책 내용이 워낙 치밀하고, 섬세하고 사실적이어서 전혀 책을 보는 느낌이 아닌 다른 관점으로 자연스레 돌려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기 때문에 책으로 매끄럽게 표현되는 것의 한계랄까? 극복하지 못한 무언가가 아쉬움으로 첨가되서 자리매김 한다.
 
물론, 서론에서 언급했듯
역사소설이라 지칭한 표현은 없었다.
하지만, 시대적 배경이나 상황을 보면 역사적 소설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다른 역사적 관점의 허구를 다룬 소설이나 사실에 근거한 소설들과 다른 표현법과 관점으로 읽을 수 있었기에 색다른 느낌과 설렘 흥분을 맛볼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분명 그러하다.
하지만, 책으로 풀어내기엔 부족한 뭔가가 책을 덮고 나서도 흐릿하게 영상화 되어 스쳐감에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그 감정에 순응하려는 맘이 더 강하게 일어남은 부인하고 싶지 않다.
 
이 모든 것들은 부족한 나란 독자의 시각이니 확언도 할 수 없겠고, 작가나 책 내용을 비판할 수 있는 능력부족의 독자이기에 더욱 그러하나
책 읽고 난 후의 나란 독자에게 전해져 퍼지는 여운이며 울림이기에 나는 존중하고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싶을 뿐이다.
 
영화나 드라마로 이 작품을 만난다면 어떤 다른 형태로 전해질까?
꼭 그런 형태로 만나고 싶은 생각이 강하게 울려옴도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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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은 누구의 것이 될까? - 철학 교수가 들려주는 지혜 이야기 마음이 자라는 나무 28
제브데트 클르츠 엮음, 이난아 옮김, 박혜림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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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이 단어를 머리에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복잡하고, 어렵고, 답답하다 라는 막연한 생각이 함께 스치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보는 순간도 그랬으니까.

 

책 두께나 내용에 담긴 문장의 양이나 글씨체나 크기등은 부담스럽지 않아 보인다.  청소년용으로 출간되었기에 그러할까?

한장 한장 넘기면서 조금은 생소한 내용일지도 모르고, 어쩌면 지나치게 당연해서 흘리듯 넘겨버리며

어떤 형태와 상황이든 의식, 무의식적 상황에서 접할 수 있는 단어들이 소주제로 눈에 들어온다.

 

바로 『배려, 관계, 지혜, 기회, 선택, 사랑』 이렇게 여섯 단어가 그것이다.  

이 여섯개의 단어를 주제로 삼아, 큰 단락으로 나누고, 그 각각에 해당하는 생각할 수 있는 글,

철학이라 해서 어렵다는 선입견을 버릴 수 있는 그런 편안함과 차분함으로 채울 수 있는 그런 글들이

5~10개 전후로 소제목을 선두로해서 자리매김 하고 있는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요즘 공부공부 하고, 공부법이나 창의력등등을 내용으로 하는 책들이 많이 출간되기도 한지라,

이런 책 읽을 시간이 어디있느냐고~ 반문하며 멀리 치워둘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아예 이 책은 철학이라는 단어만 보고 펼쳐 살펴볼 엄두조차 내지 않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란 독자도 그런 선입견을 버리고 이 책을 펼쳐들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펼쳐보니 그 선입견은 쉽게 나란 독자로부터 멀어져 갔다.  생각보다 쉬운 내용으로 짧게 이루어진 예화중심의 내용속에서 여러가지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물론, 책을 읽고 꼭 무슨 생각을 얻어야 하고 그런 과정을 거쳐야 하는 당위성을 가지고 책을 만나면 싫증나고 지루하고, 짜증나서 제대로 읽을 수 없을 듯 싶다.  하지만, 다른 관점의 견해가 머리속을 스물스물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그건 바로 논술이다.  요즘 수능이 끝나고, 논술시험대비로 여러형태로 논술 학원이 우후죽순 늘어나는데, 불법이 대부분이라 한다.

논술... 전에 강의 들었을 때 강사님께서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자기도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오래해왔지만, 기본적으로 중학교, 그 이전부터 서서히 조금씩 준비하며 고등학교 입학하고, 고등학교 1학년, 2학년때도 간단하게라도 논술에 대비한 여러가지 기본 활동을 해 오고 나야 수능 마치고 바짝 총정리 할때 효과가 시너지의 힘을 발휘해서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고 말이다.

맞다.  논술을 위해서 어려운 내용으로 신문이나 사설, 정치, 시사뉴스를 읽어보고 내 생각정리 하는 활동들 당연히 필요하다.  논술문제 자체가 그런것들을 요구하며 변별력을 포함하려 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그러나 어렵고 복잡한 것들을 싫어하고 지루해 하고 꾸준히 지속시킬 수 없는 학생들이라면 이 책의 내용이 쉬운들 어떠하리? 쉬운 내용읽고 자신이 능력에 맞는 생각으로 전환시켜 맘껏 기량을 발휘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선물은 누구의 것이 될까?』  책 제목이다.  저자는 분명 제목에 주어를 한정짓지 않았다.  이 책을 읽는 독자 모두 즉 불특정다수의 독자에게 말하고 있는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요즘 공부위주의 학업중심적 현상들이 팽배해 있기에 책에 담긴 말들의 가치조차 생각하는 것이 사치처럼 보일 정도로 촌각을 다투며 책과 씨름하는 청소년들이 범람하고 있는 것 또한 다시 말해도 변함없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나중에 사회라는 곳, 아니 지금 겪고 있는 학교라는 곳도 아이들이 사회를 경험할 수 있는 소집단일진데, 이런 가치를 기본으로 관계 맺는 법을 배워야 함이 필요할텐데 점점 신경쓰지 않고, 부지불식간에 소홀히 해버리는 그런 소소한 단어의 하나로 퇴색해 버리는 것이 아닐지? 씁쓸하고 안타까웠다.

나란 독자의 생각은 책의 저자와 옮긴이의 관점에 100% 맞는다 생각하고 책을 읽지 않았지만, 머리말과 옮긴이의 말에 담긴 내용을 보니 책을 읽고 난 독자들이 어찌 생각을 해야 하는지 그 관점에 비끄므레하게 다가간 듯 싶어서 다행이란 생각을 하면서

계속 읽어내려갔다.

 

책속의 선물은 누구의 것이 될까? 이 선물들은 모두다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가질 수 있는 기회도 공평하게 부여받고 있다. 단지, 가치기준에 따라 중요한 순위를 어디에 두고 있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닐까?

아무리 공부, 학업이 중심이라도, 인간 본연 삶의 가치기준을 무시한다면 가슴은 콩알만해지고, 머리만 큰 그런 성인만 늘어날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다.  요즘은 공부로 채워진 지식의 습득에 대한 과부화로 아이들 머리만 커지지만, 용량이 초과된 아이들 어른들 할것없이 가슴이 아프고, 머리와 가슴의 부조화로 고생하는 경우도 비중이 점점 증가세로 치솟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해서 인지하고 있는 중이다.

덧붙여보면, 사실 삶을 이루며 살아가기 위해선 지식이 중요하다.  그러나 지식으로 다 해결될까?  우리네를 가르치고, 이 나라를 발전시키며 고생하셨던 어른들은 제대로 배우시지 못하셨어도, 우리가 알 수 없는 삶이라는 세월의 댓가를 지불하고 얻게 된 그분들 만의 생각들 무시할 수 없는 경우를 종종 봐왔기 때문이다.  그것이 개인적으로 지식이 아닌 지혜라고 정의하고 믿고 있었다.

 

이 책에서 주는 선물은 바로 지혜 그것을 내 안에 가득 채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것을 알아차리고, 내것으로 받아들여 재생산해서 나만 가질 수 있는 비법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이런 과정은 특히 청소년기에 꼭 한번씩 스스로 해봐야 하는 과정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 후에 성인으로 나이든다면 삶이 조금 더 다채롭고 대처할 방법의 다양성을 이미 소유하고 있기에 어떤 상황에도 힘들거나 어려운 것들을 마주했을 때 최소화 시키는 아픔으로 승화시켜 성숙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게 될 테니까...라고 단언하고 싶어지기도 했다.

 

그런면에서 말도 안되는 주제로 출간되어 읽어야 할 필요조차 부여받지 못하고 사그라질지도 모르겠지만, 나란 독자의 관점에선 호의적인 울림을 읽는 내내 채울 수 있었고, 덮고 나서도 그러했다.

 

한번 쯤 시간내서 읽을 필요 있는~ 아니 대중교통 타고 다니면서 그것도 안된다면 아침저녁으로 화장실에 들어갔을 때 두고 한단락씩 읽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책이다.  시간이 없어 이 책을 못읽겠다는~ 그런 책 읽을 시간이 어디 있냐?~는 말은 의미가 없어 보였다.  시간은 각자의 관리법으로 우선순위를 정해 자리매김시켜서 규칙적으로 꾸준히 행동으로 옮기는 개인의 의지가 바탕이 되어야 만들어질 수 있는 신기한 녀석이기에....

말이다.  시간이 없다는 말은 곧 자기의 능력이 없다는 말로 억지긴 하지만 그렇게 맞물려지는 것으로 생각이 되니 말이다.

 

방송에서 『외국의 청소년들은 자신들이 읽을 책을 직접 구입해서 읽고, 토론하는 문화여서, 출판사들도 그 취향에 맞게 출간하는 책들이 많은데

우리나라는 부모님들이 구입하는 소비자이기에 어른 관점으로 출간되는 책들이 많아서 책읽기에 익숙하고 스스로 생각하고 말하고 쓰는 연습이 필요한 아이들~ 그래야 말 그대로 창의적인 사고능력이 자연스레 습득되는데 그럼에도 아이들 관점으로는 재미없을 수 있는 책들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출간되어 안타깝다』는 말을 패널로 나온 노년의 아동작가분이 하시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 책 역시 자기계발서적 느낌이 강해서 이 책을 읽으면 뭔가 당위적으로 해야할 거 같은 기분이 꼬리를 물고 채워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즈음 출간되는 자기계발서의 책들보다 그런 성향이 덜하다고 느꼈다.  그냥 자연스레 읽어보고 꼭 그자리에서 독후활동이 아닌, 그 후에라도 그 책 내용이 생각날때 다시 되새김질 하는 소처럼 차분히 앉아서 꺼내보며 생각정리해도 될 듯 했기 때문이다.

(어차피 주제가 다르고, 예화도 각각 나눠 있으니 처음부터 죽 한번에 다읽어도 되지만, 시간이 없다면 중간 중간 필요하고, 끌리는 부분을 먼저 선택해서 읽는 효율적인 자신의 방법을 찾아 읽어도 효과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끝까지 끌림이 없으면 읽지 말고 책을 덮어도 되지 않을까? 한다.

책을 읽을 때는 내 감정이 소중하고 존중받아야 하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런 주제를 다룬 책을 읽으면 꼭 읽고 나면~해야 한다. 읽을 때 내게 ~를 하라고 지시하는 느낌이라 읽기 싫다..

이런 생각을 없애버리기 어렵다면, 최소화 시킨 후에 책을 펼쳐 읽기를 개인적 관점에서 권하고 싶다.

 

 

 

배려, 관계, 사랑, 행복 등의 가치는 오늘날 그 본래의 의미가 상당 부분 퇴색된 것이 사실이다.

나는 이러한 가치들에 담긴 긍정성을 논의의 대상으로 삼아, 우리 삶의 일면들과 만나게 해 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지혜'라는 한마디로 함축한 것이다.

 

- p. 6 엮은의 말중에서 -

 

 

 

 

이 책에 담긴 이야기들이 여러분의 인생을 더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껏 살아온 삶을 돌아보고 앞으로 살아갈 미래를 그리며 몇 가지 중요한 질문을 하게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것이 이 책이 담고 있는 의미이자 가치라고 믿는다.

이 책은 거대한 담론이나 지혜를 찾기 위한 책이 아니다.

사실 지혜를 찾는다는 것은 너무 거창하다는 생각도 든다.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 한 발 두 발 지혜를 향해 나아간다는 말이 더 옳을 거 같다.

결국 지혜란 거대한 관념이 아니라, 일상의 작은 경험을 서로서로 나누고 받아들이는

과정 중에 피어나는 꽃이 아닐까?

부디 이 책이 여러분의 인생에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물이자 햇빛이 된다면 좋겠다.

- pp. 182~183

옮긴이의 말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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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설헌 - 제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최문희 지음 / 다산책방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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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인물 그것도 여성의 삶을 주제로 한 내용ㅇㄹ 담고 있는 소설이기에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유독 개인적으로 역사소설은 여성작가님들의 작품을 읽으면 가볍다 하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힘있고, 시원하게 내용전개를 이끌어 내서 통쾌하다 이런 느낌도 아닌 것이

소위 요즘 유행하고 있는 방송의 어느 한 코너를 대표하는 줄임말 처럼 애매한 느낌이 들어서 웬만하면 읽지 않으려 한다.  이 책도 사실 그러했다. 

작가님에 대해선 선지식이 없었지만, 강한 임팩트로 오랫동안 여운을 남겼던 『덕혜옹주』 를 출간한 곳과 동일한 출판사에서 제작한 책이라는 점과 역사소설이라는 점이 나란 독자를 유혹하기 시작했다.

 

기회를 얻어 책을 펼쳐 들었다.

 

초반부의 난설헌의 함을 받을 당시 묘사를 시작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부분을 읽으며 드는 생각이 있었다.  참 부드럽고, 여성적으로, 완만한 한옥의 처마나 궁궐 용마루 등등의 곡선이 머리에 떠오르며 한줄 한줄 읽을 수 있는 느낌이었다.  필체 또한 생각보다 길지 않은 호흡으로 간결함이 보이지만, 역시나 여인을 둘러 싸고 있는 환경과 분위기를 묘사해서인지 부드럽고 완만하다.

 

한장 한장 읽어내려갔다.  혹시나 하며 완만함과 부드러움으로 묘사되어 약간은 무게감도 있어보였던 처음의 만남에서 풍겼던 인상을 떨칠 수 있을까? 기대반 설렘반으로 말이다.

 

이 책이 혼불문학상을 받아서였을까? 허난설헌 삶도 비극의 운명을 지고 이 세상의 짧은 생을 살다 가려고 태어난 여인이었고, 그녀의 삶을 풀어내기 위해서일까?

마치 어두컴컴한 수풀 우거진 깊은 골짜기를 빛없이 거닐며 주위 연못으로 인해 안개 희뿌옇게 내려앉은 듯한 모습이 연상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느낌으로 내면에 퍼지면서 책여행을 계속했다.

 

조선시대, 유교사상이 팽배해있고, 남아선호사상도 존재했음을 알고 있고, 또한, 여인으로서 태어나면 평범한 집에서는 이름도 가질 수 없었고, 책을 가까이 할 수 없음도 어렴풋이 알고 있긴 했지만,

책 속에 난설헌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일들이 사실이었고, 개연성 있는 일들을 엮어서 허구화 시켰다면?  대답 대신 짜증과 목메임 가슴먹먹함이 자리매김을 했다.  어쩔 수 없이 그것들에게 처절하게 무너질 수 밖에 없는 나란 독자와 만나야 했던 것도 피할 수 없었다.

 

어찌 그런 가문에 결혼을 했을까? 게다가 시댁에서는 아들보다 며느리인 난설헌의 학문적 지식과 인품, 외모에서 품어지는 여러가지 기운들을 못마땅하게 여기다 못해 아예 입에 담기조차 어려운 시집살이를 시키는 시어머니~의 모습은 아무리 시대적 배경이 그러하다고 맘을 다잡고 눌러도

어찌 이럴 수 있을까?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시어머니도 여자의 삶을 살았을진데, 며느리가 호의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해도, 두 아이를 어찌 엄마에게서 떼놓을 수 있었는지?

(물론, 아이들도 그러한 운명을 타고 났을지도 모르겠으나.) 떼어 놓고 봐줄 요량이었으면 정성스러이 최선을 다해 돌보고 뒷바라지를 해주든지~ 그리 어린 아이를 속절없이 떠나가게 만들고 말았을까?

 

예나 지금이나 부부는 물론 인연이 닿아야 만나서 가정을 이루고, 부부가 되어 백년해로 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인 듯 했고, 부부 서로의 관심사와 언어습관, 사고방식의 차이가 없어야 될 거 같단 생각을 했다.  물론 공감대나 여러가지가 일치되고 공유한다고 불행한 삶이 행복하게 바뀌는 것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또한 남자라면 여자를 보듬고 품을 수 있는 더구나 자신의 부모로 부터 방어막이 되어줄 수 있을 정도의 강함과 곧음 또한 소유하고 있는 것이 기본 덕목이 아닐까? 싶었다.

난설헌의 남편은 내면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난설헌이 원망하며, 잔소리를 퍼붓지 않고 그냥 대화나 삶 속에서 뱉는 말들을 통해서도 스스로 자격지심을 가지며, 스스로를 구렁텅이로 빠져들게 하는 듯 보였고, 난설헌의 주위에 있는 다른 남정네와도 질투를 했나보다.

(이 부분에선 의아해했다. 맘에 품은 자와 다 결혼을 할 순 없었겠지만, 왜 하지 못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고, 조선시대가 아닌 현세에서 살아갈 수 있음도 행복감이 되어 뜬금없이 전해진다.)

난설헌이 설령 맘에 그 남자를 품었다 해도, 그 사실을 드러내지 않을 뿐더러 그렇게 드러내선 안된다는 것도 알고 있을 만큼 지혜로운 여인이었음이 느껴졌는데 말이다.

어찌 이리 남편의 위치에서 부인의 마음을 어루만지지 못하고, 오히려 시어머니에게 휘둘려 함께 부인을 힘들게 할 수 있는지? 일부러 그렇게 하라고 해도 쉽지 않아 보였다.

아무리 조선시대라 할지라도 말이다.

 

난설헌과 허균과의 관계는 상식으로 알고 있었는데, 책속에서 느껴지는 것도 남매가 아닌 친구보다 더 가깝고 의지하는 사이였나 보다.  하긴 그러했겠지. 난설헌의 학문적 소양을 인정해 주지 않는 시댁에 조선시대라는 사회에서 어떻게 드러내며 지낼 수 있었을까?

어느 역사서를 읽어보아도 학문적 소양이 높고, 식견을 고루 갖춘 가문일수록 주위 시선에 자유롭지 못하고, 이간질에 당하고, 시기질투에 당해서 가문의 패가망신을 당하는 것이 비일비재하게 비쳐지는 내용이 많았었는데 난설헌의 친정도 그랬나 보다.

아버지, 아들들, 사위, 난설헌에 이르기까지~ 여러가지 부족함 없는 가문이었으니 다 요절하는 불운을 겪을 수 밖에~ 난설헌도 그러하지만, 난설헌의 외조모와 어머니 또한 녹록한 삶을 살아내지 못했나 보다.  조선시대 여인이라면 다 그러했을 운명적 삶? 이라고 단정짓고 넘길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만약, 난설헌이 남자로 태어났더라면? 다른 역사적 인물로 한획을 그으며 조금 오래 살 수 있었을까?  이미 흘러가버린 시절의 일을 거스를 수도 없는데 만약이라는 미사여구를 사용한다 한들 뒤바뀔 수 있으랴만은~ 정말 심하게 짜증이 난다.

난설헌의 죽음이 그려진 뒷부분은 서정성이 담긴 아름다운 그림의 영상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고,

먹먹함과 화남, 분노, 속상함~이 물밀듯 치밀어 오름이 느껴졌고,

같은 여자로 바라봐도 게다가 서른도 채 되지 않아 맞이한 죽음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그녀의 뒤안길을 올곧게 응원하며 수채화적 색채의 아름다운 영상이야 라고 감탄만 내뱉으며 바라볼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내용은 한번 쯤 생각해 봐야 할 인물의 삶을 그려냈기에 충분하다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필체나 내용전개에서 이루어지는 흐름들 속에서 개인적으로 지나친 지루함과 완만함, 긴박감 없는 그런 전개~로 집중하기 쉽지 않았었기에 그다지 높은 평을 할 수 없었음을 말하고 싶다.

사실 책 내용의 옳고 그름, 훌륭함을 평가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  단지, 개인적으로 여성작가님들이 출간한 역사서를 잘 안었던지라, 이 책을 읽으면서도 내내 지루하고, 긴박함 없어 보이는 전개는 책 내용에 몰입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부분도 없진 않았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나서 생각을 바꿀 수 있었다.

한 여인의 기구한, 절절한, 처절한... 삶을 그려내기 위해서는 이런 표현을 사용하고, 이런 전개를 사용하는 것이 당연했으리라 하는 자연스러이 고개를 내미는 꼬리 무는 생각이 내면의 자리매김을 위해 용틀임하는 것을 수용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묵직한 분위기의 차분함이 지나치리 만큼 담겨 있고, 시야를 가려서 끝이 어디인지? 아니 한치 앞이 얼만큼 앞인지도 분간함을 방해할 정도의 짙은 안개가 뭉개뭉개 피어오르는 후미진 길을 걸어나오는 느낌으로 시작헀던 책읽기~

책을 덮었는데도 아직 안개길의 끝은 어디인가? 만나고 싶어도 찾아낼 수 없고, 확인할 수 없음이 안타깝지만, 순응해야 함을 알아채는 순간 그냥 그대로 파고들어 자리매김을 한 그것을 토닥여 본다. 

 

그럼에도 책 마지막 페이지와 만나는 책 여행을 잘 마무리 했다고, 스스로 격려하고 응원을 보내는 것을 먼저 행하고 싶은 마음도 일어난다. 

 

모든 내안의 생각들을 존중하련다.

 

가지마다 달려있던 나뭇잎들을 내려 놓으며 계절의 변화에 순응하며 훗날을 기약하는 그것들의 지혜를 바라보며 가슴 먹먹한 한켠에 고이 새겨보고 싶다.  이 멋진 가을날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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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열일곱 살 - 어른들은 알지 못하는 10대들의 심리학
이나미 지음 / 이랑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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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 난 순간 머리를 스치며 떠오르는 섬광처럼 메시지가 개인적으로 괴롭혔다.
' 아이들을 위한 책, 아이들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 일 수 있겠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었다.  그거에 추가로 드는 생각은 ' 불특정 다수의 어른에게도 필요할 지도...' 약간은 막연하고 애매하지만, 그런 생각을 쉽게 떨칠 수 없었다.
 
어른이 성장하기 전에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고 스스로에 대해 생각해 보고 그 모습을 관찰하고 그것과 직면해서 씨름도 해보고.. 이런 과정을 하고 나서 어른이 되어도, 쉽지 않은 역할을 감뇌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 어른의 삶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스스로의 방법으로 겪어보지 못하고, 어른이 되었을 땐 소위 말하는 '피터팬 증후군' 을 시작으로 몸은 어른이지만, 생각은 아이에 머무르는 어른 아이? 그런 모습으로 살 수 밖에 없을테니까 말이다.  그나마 이 사실을 인지하고 그때라도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고 고민하고 씨름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면 지혜로운 어른이라 하겠다.  그나마도 그런 사실조차 인지못하고, 아니 자신의 내면과 직면하는 것을 거부한 채 살아간다면, 결혼이라는 관문을 통과한 후엔 미쳐 되돌아 보지 못한 스스로의 모습이 몇배의 괴력을 지니고, 겉잡을 수 없는 나락의 터널로 추락시키게 되는 것도 보아왔고, 개인적으로 또한 그런 생각에 공감을 한 적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선 이 책은 성인에게도 적합할 수 있다고 감히 개인적으로 언급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나미 선생님의 책은 청년기에 다른 작품으로 만났었다.  그 후로 관심있게 바라보긴 했지만, 쉽게 접하지 못했고, 이 책의 출간 소식과 더불어 주저 없이 선택해서 읽게 되었다.  선생님의
다른 책 《오십후애사전》도 읽어볼 계획이다.  전에 방송에 나오셔서 인터뷰 하시는 것을 들었는데
인생을 마감하며 중년 이후의 삶에 도달하면 모두 허탈과 헛웃음...그리고 허무에 빠져들 수 있는데, 그럴 필요 없다 하셨다.  그런 내용을 중심으로 인생 말을 어찌 마무리 하며 각자의 도화지에 의미있고 예쁜 그림으로 채색하고 마무리 해야 하는지에 담겨 있을 내용을 설명 하셨고,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이 책의 주제로 돌아오면, 아이들이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서 각 단락에는 상담실에서 일어났던 사례를 간단히 적으시고, 그에 따른 적합한 조언을 해주시는 내용이 몇페이지씩 할애되어 담아져 있다.  일단 10대를 위한 책이어서인지, 쉬운 어체로, 어찌보면 심리를 다루는 내용 자체가 지루하고 식상할지 모르는데, 그마저도 떨쳐 버릴 수 있을만큼의 쉬운 풀이로 담겨 있어서 읽는 동안 어렵지 않게 쉽게 선생님의 시각을 따라 책 여행을 즐기고, 끝페이지와 만나는 행복감을 얻을 수 있었다 하겠다.
 
단, 아이가 어리다면 부모가 먼저 읽고 준비하고, 그 아이가 여러가지 심적 변화를 내면에 만나는 기운이 느껴지면, 살짝 건네 주고, 읽어보길 권해도 좋을 듯 싶다.  물론 아이에 따라 책 속 내용 모두를 다 이해하리라 생각하진 않는다.  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이 있었다.  관련 있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부분을 따로 복사하든지 아니면 한글 파일로 다시 발췌해서 문서로 재작성해서 건네주어도 좋을 듯 싶다는 생각을 했다.  만약 책 잘읽는 아이들이라도 심리학이나 어찌 보면 자기계발서일 수도 있는 이 책을 쉽게 읽어내지 못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도 했다.
당연히 책과 친하지 않은 아이들은 쉽게 읽어 내려가기 힘들지도 모른다는 막연함이 들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어느 아이들이라도 이 책을 읽어보면 도움이 될 거 라는 것을 절실히 인식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기회가 있다면 아이들에게 필요한 부분을 위의 방법으로 각각 맞는 내용을 발췌해서 권하고, 읽기를 독려할 것이다.
 
청소년기에 접할 수 있는 여러가지 심리적 변화에 직면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며 책을 읽는 동안 나란 독자의 기억 속 청소년기로의 여행을 하며 내면과 즐겁게 때로는 아프게 만나며 나름 의미있고 행복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 또한 나란 독자와 관련 있는 청소년기의 아이들에게 선뜻 권해주고 싶은 간절한 욕구가 머리를 쑤욱 내밀었다.
 
확실한 것은 청소년기에 위에 언급한 대로 스스로의 내면과 친구되고 만나서 그 안의 또다른 나와 마주할 필요 있음은 당연하다 믿고 있기에 이 책은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그 시기를 놓쳤다 생각해서 아쉬워 하지 말고, 어른으로 가기 전에 더 늦기 전에 이 책을 읽어볼 수 있는 기회를 누군가에게 권해 주어도 좋을 듯 싶다는 생각 또한 강한 임팩트가 되어 여운으로 남길 수 있었다.
 
『괜찮아 열일곱 살』 이 책에서 언급하는 나이는 단지 상징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 시기 전에 있는, 그 시기를 지나고 있는, 그 시기를 지나쳐 버려서 그 시기에 행했어야 할 것들과 마주하지 못해 아쉬워 하고, 힘들고 오히려 더 어려운 성인기를 마주하고 있는 모든이들에게 간단한 지침서로 유용할 거 같다는 내면의 생각을 존중하고 싶어졌고, 그 생각에 충실해서 삶 속에서 활용서로 사용하고 싶어졌다.
 
언급을 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  말 그대로 10대 청소년들을 위해 출간되어진 책이어서인지, 두께도 얇고, 내용도 어찌 보면 간단명료해 보인다.  이 책으로 깊이 있는 주제 탐독을 하고 싶어 이 책과 마주한다면 어찌 보면 이 책의 단점이 될지 모르는 겉모습으로 인해 실망을 할지 모르겠다.
 
이 책을 가볍게 읽고, 심리학이나 교육학은 計數(계수)할 수 없을 만큼 권수도 분야도 다양하니
다양성에서는 거의 지존의 위치라고 생각할 수 있으니 그런 책들을 독자 개인의 취향에 맞게 선택해서 읽고 보충하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라고 권하고 싶다.
 
나란 독자는 심리학이나 교육학에 관심이 있어서 어느 정도의 선지식은 알고 있다.  하지만, 깊게 들어가거나 파헤치는 것과 직면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면이 많기에 가벼워 보여서 에? 이게 뭐야? 라는 반론을 제기할 수 있는 이 책의 내용과 두께에 말할 수 없는 공감과 만족을 했음을
살랑 부는 희뿌연 가을 하늘과 한해를 마무리 하며 내년의 성숙과 아름다움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떨어뜨리는 낙엽, 땅에 뒹구는 그 소리들에 귀기울이며 살포시 내면에 아로새겨 본다.
 
참 행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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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먼저 - 서울여상, 그 놀라운 성공의 비밀
이윤우 지음 / 살림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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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여상~

이 학교는 지금의 중년인 기성세대는 물론이고 우리의 부모님 세대에서도 거의 사회로 진출하려면 이 학교를 나오면 취업률 보장이라는 선입견을 부여할 정도의 인지도 있는 학교였음으로 기억하고 있다.

 

지금의 중년시대에는 대학으로의 우리네 부모님들의 교육열로 인해서 어찌보면 실업계 학교라는 약간 천대시 하는 분위기가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던 듯 싶지만, 그럼에도 다른 학교는 몰라도 이 학교는 그런 천대시 하는 시각에서 예외적인 학교였음으로 기억하고 있다.

 

막연하지만 이즈음 교육시장이라고 일컬어지는 분야의 현실에 식상하고 신물날 정도의 느낌이 자연스레 내면으로 파고 들고 있다는 느낌을 부인할 수 없었기에 이 책의 제목은 나란 독자의 호기심팽배해진 공격을 벗어날 수 없었으리라~ 여러가지 이유로 펼쳐 들었던 책이라고 하고 싶다.

 

『운전면허증 같은 대학졸업장을 위해 4년을 낭비할 것인가?  평생 나를 먹여 살릴 실력으로 4년 먼저 앞서갈 것인가?』 라고 겉표지에 씌어진 문장들은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고, 온몸이 쭈뼛거릴 정도로 소름돋게 했고, 정신이 확 들 정도의 시각적 충격에 휩싸이게 했다.

 

일자리란 일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생계수단이지만

일을 주는 쪽에서 보면 인적자원에 대한 사회적 수요이기 때문이다.

한쪽에서는 일자리가 부족하다고, 취업이 안 된다고 난리인데

다른 쪽에서는 사람이 없다고 한탄하고 있다면 이것은 교육이,

인재양성시스템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필요한 인재를 기르지 못하고 불필요한 인재들을 양성하는 쳬계에서

교육복지의 확대를 주장한다면

사회적으로 재원이 낭비되는 결과밖에 가져오지 못할 것이다.

- 프롤로그 P.5 -

 

이 책을 쓰면서 여러 부류의 독자들을 상정했다.

일단은 취업이냐 진학이냐를 놓고 진로를 고민하는

학생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마찬가지로 자녀의 교육과 미래에 대해 고민과 걱정이 많은

학부모들도 이 책을 읽으시기를 바란다.

이 책을 함께 읽고 반드시 대학에 가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본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그리고 기업의 CEO들과 인사담당자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한다.

관행처럼 자리잡은 학력차별에 대해 돌아보고

고졸과 대졸 사이의 차별이나 승진상의 불이익을 없애는 작은 기폭제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 프롤로그 p.7 -

 

 

 

나란 독자는 책 내용을 읽기 전에 이 저자의 생각이나 견해가 담긴 프롤로그만 접하고 나서도 한쪽 가슴이 뻥 뚫리는 쾌감을 맛보고 느끼며 순간이나마 행복할 수 있었다.

'정말 이런 사회였음 어떨까?' 라는 무의미할지도 모르는 맹목적인 헛되보일 지 모르는 망상적인 희망을 담아 보며 말이다.

 

언젠가 어느 분께 서울시 교육감 문제가 붉어졌을 때 흘러가는 대화 속에 대학 학력의 필요성에 대해 언급하면서 들은 적이 있다. 말씀하시길 "전 세계가 다 그럴거예요. IT 발달과 컴퓨터의 발달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자동화라는 이유로 점점 줄어드는데, 학력을 낮추면 될까요? 안될걸요?" 라고 하셨다.

글쎄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의 풀리지 않은 문제 제기고, 탁상공론이 될 수 있겠지만, 기초부터 대학을 위한 지식전달의 맹목적인 교육이 아니고, 사회에 나왔을 때 학연, 지연의 분위기가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실력으로 승부할 수 있다면~ 나아지지 않을까?

꼭 대학을 나온다고, 기계를 다루고 전문적인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이것저것 올바른 시각을 제시해주고, 그 길로 끊임 없이 나아갈 수 있는 비젼을 제시해 주는 사회 분위기였다면~ 조금 나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무조건 대학을 가지 말아야 한다. 대학은 없어져야 한다. 라고 이분법적 논리를 제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이즈음 고개를 내밀고 있지만, 대학도 구조조정의 과정은 분명 필요해 보인다. 정말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공부를 계속할 수 있을 정도로 그들만 배출해 내는 전문적 지식 습득 기관으로서의 훌륭한 역할을 감당하는 대학은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믿고 있다.

하지만, 100% 모두 다 대학을 가야 하는 건 아닐까? 에 대한 회의적 의문이 사그라들지 않으니 이것은 어찌 해결되어야 할까?

 

물론, 선진국을 무조건 답습하고 따라하자는 것은 아니다.  교육적 사례의 프로그램에서 언젠가 0교시 수업을 없애자~라는 주제로 선진국의 고등학교의 모습을 방송해 주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들은 고등학교때 까지는 자유롭게 자기 스스로의 생각을 정립하고, 진로도 생각하며 자율적으로 직업을 위한 학교로 진학도 정할 수 있고, 그러다가 정말 그 후에 대학을 가서 공부하겠으면 그 목표를 위해 선택해서 노력하는 모습이 존재하고 있음을 막연히 본 순간...~ 입만 벌린 채 말을 잇지 못하고 넋을 놓고 본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고등학교 때까지 모든 욕구를 자의가 아닌 거의 타의에 의해서 고3 이후 수능 이후로 미루고 미루고 미뤘다가 마치 한 여름날 땡볕에 캔 하나를 두고, 열에 의해 팽창될 대로 극한 상황까지 이르르다가 고3이라는 시기에 동시에 펑~하고 터져 버리는 것을 연상시키게 된다.

그랬다가 대학이라는 곳에 가면 물론 요즘은 취업이라는 딜레마에 빠져서 이래저래 대학 생활을 누리지 못하는 모습들이 많지만, 그럼에도 자율이라는 명분하에 스스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는 기쁨 하나로 이미 공부는 뒷전인 대학 가서 열심히 공부하는 선진국의 모습들과는 상반된 분위기가 존재하는 듯 싶어 안타깝다. 그렇게 들어간 대학의 전공이 맘에 들지 않아서 우왕좌왕하고 포기하고 반수를 하든지 편입하는 학생들 또한 있다고 알고 있다.

이렇게 대학이라는 그렇게 생각했던 누릴 수 있는 자유를 얻을 수 있음에도 그조차 맘대로 누리지 못하고 방황하는 시간에 직면하게 된다면 그 이유 또한 무얼까?

 

청소년 시기에 가치관 확립도 하고, 인생의 진로도 생각해 보고, 나름의 삶의 가치와 목적에 대해 고민하고 아파하고 그런 시간들을 누리며 보내야 하는 부분도 있을 듯 싶은데

전혀 그런 생각조차 하면 그럴 시간이 어디있냐고 그럴 시간에 영어단어 외워라 수학공식 외워라 하는 구태의연한 억압적 틀 속에 갇히게 되는 우를 범하고 말게 되니 갑갑해 보였다.

 

이 책의 내용을 하나하나 적으려면 공감되는 부분들이 많아서 끝도 없을 듯 싶어서 굳이 적고 싶지 않은 마음에 자연스레 순응하는 것을 선택했다.

 

하지만, 나란 독자 하나는 이 책의 내용 대로 따라 하고 싶어도 계란으로 바위치기일 수 밖에 없다는 온갖 합리화를 -위에 기술한 내용에 이율배반적일 수 있지만, -하고 책 내용대로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표현하고 싶다. 이런  자체가 비열해도 유치해도 어쩔 수 없다.

 

막연하고 얼토당토하지 않지만, 실현 불가능한 헛된 망상일지 모르겠지만, 책 속 내용이 현실화 되었음 하는 바램을 저자의 시선을 빌어 간절히 바라는 수 밖에 없을 듯 싶다.

 

이런 사회가 더 이상 길지 않은 시간안에 많은 사람들의 자의 아닌 타의적 희생이 최소화 되어지고, 현실화 되었음 하는 아주 간절함을 담아서 책속 저자의 시선에 응원을 담는 것이 개인적인 나란 독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자체 또한 짜증나고 스스로 무기력하고 무능력해 보여서 속상하고 받아들이기 싫지만 그럴 수 밖에 없음에 순응하는 것이 지혜라고 말해야 하는 내면의 울림을 부인하고 싶지 않음에 마음을 맡긴다. 힘을 빼고, 물 흘러가는 방향대로, 속도대로 함께 스며들어 흘러가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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