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자존감 - 마더쇼크에서 벗어나 행복한 엄마로 거듭나는 모성 회복 로드맵
메그 미커 지음, 김아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목차
들어가는 글

1장 엄마로서 자신의 가치를 이해하라
2장 중요한 친구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라
3장 경쟁을 거부하라
4장 돈과 더 건강한 관계를 맺으라
5장 혼자만의 시간을 마련하라
6장 건전한 방식으로 사랑을 주고받으라
7장 단순하게 사는 방법을 발견하라

8장 두려움을 내려놓으라
9장 희망은 내가 결정하는 것이다. 이겨내라!
10장 믿음을 소중히 여기고 행하라

옮긴이의 글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과 또한 그 내용이 개인적으로 어떠한 영향과 울림을 전해줄지 단언할 수 없음에도 책의 출간 소식을 접하고는 어디서 솟는지 모를 신념? 믿음? 암튼 읽고 나서도 부정적인 느낌을 전해주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랄까? 근거 없는 자신감에 도취되어 자연ㅅ레 읽고 싶은 욕구를 피어오르게 만들었다 할 수 있었다.

여느때처럼 책을 선택할 때 외모를 훑어보는 개인적 성향을 물리치지 못한 것이 사실이었기에 이 책 역시 그러한 나의 선입견으로 인해 책의 가치를 정해버리고 읽는 습관적 행위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었으리라..

제목을 둘러봤다. 자존감.. 게다가 앞에 수식어가 하나 더 있다. 엄마의~ 즉, 『엄마의 자존감』이었다.

대충 의미를 알고 내면에 담아두긴 했지만, 이번 기회에 정확하고 확실한 의미를 알아두어야 겠다는 생각이 나를 에워싸는 것이 느껴져서 그 생각에 순응하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었다.

자신감(自信感) 이란 어떠한 것을 할 수 있다거나 경기에서 이길 수 있다 혹은 경기를 잘 할 수 있다는 등에 대한 자신의 느낌이다. - 스포츠 -

자부심(自負心) 이란 자기 자신 또는 자기와 관련되어 있는 것에 대하여 스스로 그 가치나 눙력을 믿고 당당히 여기는 마음

- 국어사전 -

이기심(利己心) 이란 자기 자신의 이익만을 꾀하는 마음 - 국어사전 -

자아존중감(自我尊重感, Self-esteem)이란 자신이 사랑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소중한 존재이고 어떤 성과를 이루어낼 만한 유능한 사람이라고 믿는 마음이다. 이는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기준이 아닌 사적인 판단이다. 간단히 자존감이라고도 부른다. 이 용어는 미국의 의사이자 철학자인 윌리엄 제임스가 1890년대에 처음 사용하였다. 이 개념은 자존심과 혼동되어 쓰이는 경우가 있다. 둘은 자신에 대한 긍정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세부적으로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대한 긍정과 경쟁속에서의 긍정이라는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 위키백과 -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거나, 사용하는 단어는 많겠지만, 몇가지만 먼저 찾아 옮겨 보았다.

사실 성장해서 성인이 되고, 어떤 방법으로든 이성을 만나서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고... 하는 모습은 인간이 세상에 와서 죽음이라는 단어와 마주할 때까지 보편타당하다 할 수 있는 삶의 과정을 순간 순간 표현하기 위한 단어의 나열일지도 모르겠다.

요즘에야 여러가지 정보도 많고, 교육수준도 높아지고 하니 가정을 이루기 전에 알아야 할것들, 해서 알지 못했던 것들이 드러나기 시작하면 갈등과 이혼의 수순을 밟는 경우도 비일비재하지 않을까 싶다.

부모가 되는것은 누구나 그냥 거쳐가는 과정에 불과하다고 단순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지금도 자녀의 양육이나 스스로 내면을 돌아보는 이들도 증가하고 있는 듯 하지만, 반대로 애들 뭐 그렇게 다 크는 거겠지? 다른 부모들이 학원 보내며 성적 유지한다고 하니까 그렇게 하면 되겠지 학원비를 충당하기 위해 경제적 능력을 갖춰 볼까? 뭐 이런 생각들?

사실 요즘 문제시 되는 것은 이런 가족내의 대화 없음과 가족은 형태는 함께 이지만, 내면을 들여다 보면 해체되어 있다고 비유하는 경우도 본 적 있다.

부모 되는 과정을 위한 자격 시험을 만들면 어떨까? 최소한 부모가 희생의 의미가 아닌 올바른 자녀 도우미로,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 조력자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객관적 심리적 규칙이랄까? 물론 학습을 한다고 모든 개개인이 다 다른 성품과 기질을 가지고 살고 있는데, 같은 관점으로 받아들이진 않겠지만, 그럼에도 출발하는 시작점의 모습은 어느정도 유사하다는 것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말도 안되어 보이는 이상향에 마음이 쏠리니 어찌해야 할까? 이젠 부모도 아닌 내 가정, 내 형제자매도 아닌, 나 하나만을 위한 시각으로 만들어지게 강요당하는 분위기로 염색물이 스며드는 옷이나 다른 도구들처럼 서서히 물들어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함께 피어오른다.

IT 기기와 교통수단의 발달, 문명의 발달로 인해 우리나라의 일일 생활권의 의미는 물론, 인근 국가들에 가서 업무 보고 하는 데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게 되고 있음을 보면, 울 아이들이 성장하고 자랐을 때는 분명 세대를 살고 있는 지구 어느 곳 사람들까지도 묶어서 생각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관계를 맺고 사는 사람들 범주에 포함시켜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팝업이 되어 만들어진다.

이렇게 보면,

사실 내 가정, 내 아이만 생각하고

내 아이만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만을 향해 무조건 달리는 모습을

어찌 바라보고 생각해야 할까? 이런 생각들이 불쑥 솟는데,

쉽게 떨칠 수 없음을 인정하고 만다.

개인적 생각의 옳고 그름을 나누어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님을 우선적으로 이야기 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언젠가 부터 우리나라 청소년들 분위기가 컴퓨터와 학교 폭력, 사회에 나오면 불특정 다수들을 향한 범죄들...이 기승을 부리는 모습을 마주하는 것이 어색치 않음이 느껴지게 되고, 과연? 아이들 지식적 능력만을 위해 경제력 증가를 위해 가정내에서 일을 하고, 또한 예전보다 교육수준이 높아져서 남녀 구별없이 자아 성장을 위해 전문직에 종사하며 능력을 증진시켜야 하겠노라는 관점들이 함께 공존되는 듯한 이 현실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가? 에 스스로 끈임없는 물음을 계속 되뇌이며 지내고 있었고, 지금도 그러하고 있기에~ 이 책의 내용은 가볍게 다가오지 않기도 했다.

외국작가들의 책이 아무리 육아와 양육을 중심으로 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고, 또한, 베스트 셀려의 대열에 합류해서 회자되고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킬 만큼 유명세를 타고 있는 책이라 하더라도, 개인적으로는 그에 비한 공감을 많이 얻지 못했던 경험과 마주함이 빈번했음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이 책은 외국 작가의 시선으로 씌어진 책이지만, 우리 현실의 이즈음에 나타나는 여러가지 상황과 맞물려 대처하고, 적용할 수 있을 듯 하다는 뭔가 이론만이 아닌 그런 내용이지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마 개인적으로 삶의 연륜이 쌓여서일지도 모르겠다.

목차에 포함된 소주제를 살펴보며. 생각했다. 10가지 소소해 보여 오히려 주의를 기울일 필요성이나 당위성을 배재한 채, 일상에서 간과하면서도 그것들의 중요함 조차 느끼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지나칠 정도로 당연하기에 말이다.

우리의 무의식 속에는 부모님께서 그들 자신의 모든 것들 보다, 우리에게 쏟아 부으신 생활 모습들이 스며들어 익숙해 있음을 인식하지 못한 채 나름 열심히 양육한다 자부하며 온 에너지 다 퍼부으며 나란 존재적 가치조차 안중에 두지 않고, 관심사에서 벗어난 지 오래임에도 그런거지 뭐. 하고

앞만 보며 달음질 치고 생활하며 나름 열심히 살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이즈음 휙휙 바뀌는 문화 현상 속의 성장하는 자녀들은 그런 부모의 관심과 정성을 고마워 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부담스럽고 짐이 된다 생각하며 잔소리라고 치부하는 것 조차 우리의 어린 시절 그 모습 행동과 달라진 것이 없다. 다만, 정도의 차이일 뿐인 듯 하다.

이런 불편해 보이는 진실에 담긴 이질감은 부모의 마음을 갉아 먹는다.

세월이 흘러 고름이 묻어 나오고, 상처는 이미 커질대로 커져서, 약을 바르고, 노력해도 아물지 않는 그런 상태에 이르르게 되어서야.. 부모는 헷갈리기 시작한다.

과연 아이에게 시선을 올곧이 쏟아야 하나?

아님 부모인 나를 위해서? 뭔가를 해야 하나? 갈팡질팡 오락가락 하다가 죽도 밥도 아닌 그런 애매한 상황속에서 부모 나름의 심리적 아픔과 마주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수 있는데도 그 또한 인정하지 않으려 기를 쓰다가 자녀는 자녀대로 부모는 부모대로 동떨어진 생활에서 서로의 아픔만을 바라봐 달라고 소리없는 아우성을 신호로 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전혀 서로의 생각과 마음을 바라보려 하지 않고, 나만 바라봐 달라는? 내 생각이 맞으니 너는 분명 그렇게 해야해. 네 생각 따위는 중요하지 않고, 중요해서도 안되고, 정히 하고 싶으면 나중에~ 라며, 보기만 훌륭해 보이는 가이드 역할을 하며 아이들 생활 모든 곳을 체크하고 확인하려 하는 것을 이상해 하는 것이 특별한 사람으로 치부되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피어오른다.

이즈음은 삶의 모습들은 정말 행복한가? 내아이 잘되라고 무조건 공부 공부~를 외치며, 하나라도 더 해야 편히 살 수 있다고,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고 마음과 정신이 분리된 채... 물질적 풍요로움 앞에서 다른 아이들에게 뒤지거나 기죽지 않아야 한다는 대의 명분도 부모기준의 착각에서 비롯된 것임에도 오히려 아이들의 마음으로 다가가는 올바른 경로라고 목소리만 크게 하고, 우기고 있는 줄도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닌지? 하는 씁쓸함도 떠올려 본다.

나 또한 이런 왜곡되어 보이는 시선을 인정 못한 채, 자녀들에 대한 욕심의 높이를 줄이지 못하고 있었음을 알고 있다 되뇌이고, 다짐하지만, 언행 불일치적 내 모습에 자괴감이 얼씨구 좋다 하며 급습해도 힘없이 무너지고 있는 듯 하다.

완전히 다 줄여버려 오르기 편한 동네 뒷산의 민둥산의 모습... 누구나 편히 오를수 있고, 의견 나눌 수 있는 편한 장소의 언덕의 역할을 하는 부모가 되고 싶다고 호언장담 하곤 한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내면을 속속들이 살펴보면 아직 멀었다.

끝이 어디인지 모르는 곳에 덩그라니 혼자 서있는 느낌...떨칠 수 없음을 되뇌이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에 주저앉고 싶을 때와 마주하는 경험을 부인할 수 없겠기에 말이다.

그럼에도 부모이니 노력해야 겠다.

울 아이들은 세상에 한명, 나라는 자격없어 보이는 부모일지라도 유일무이하게 존재하는 한명이 아닌가?

아이들의 능력은 출생할 때는 무궁무진하게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부모라는 위치를 빌미로, 아이를 양육한다는 의미를 월권적으로 부여하기도 하며, 착각에 빠져 허덕이며 스스로 가고 있는 길이나, 이제껏 경험했던 것들이 왜곡되고, 편협하고, 오히려 부정의 의미들이 많음에도 모든 것을 인정하지 않고, 무조건 너희들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하며 원하는 방향으로 그들의 능력을 급속도로 제한하며 무기력하게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파고 드는 것 또한 쉽게 떨칠 수 없었던 이즈음의 스스로를 떠올린다.

다시 다짐한다.

부모는 아이를 만들 수 있는 자격이 없는 것이 아닐까?

- 양치기가 울타리를 만들어 놓고, 그 공간 안에서,힐끗 보기엔 하나하나 관찰하며 뒤따라 다니는 수고로움을 쏟아 붓지 않는다고 양치기의 순수한 의도를 의심하고 질책하며 힐난하는 어리석음(愚)를 범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오히려 그 양치기의 지혜로움 (=큰 울타리 안에서 자기가 보호해야 하는 무리들에게 적당한 거리를 두고, 그 공간안에서 잘 생활하고 먹이를 뜯으며 건강하게 지내고 있는 것 체크하며, 무리에서 이탈하지 않으면 자유로움과 허용을 부여해 주고 설령 양치기 기준에 어긋나는 모습이라도 여유롭게 바라봐 주고 있는 그런) 을 수용하려 하는 것이 아니고, 무의식적으로 배척하며 자녀들을 종용하고 공간 안에서도 더 작은 규제와 규칙을 제시하며 이 길이 올바르니 꼭 따라야 한다고 착각하며 지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

부모는 내 자녀들의 올바른 습관과 개성, 성향을 제대로 바라봐 줄 용기와 지혜가 필요할 듯 싶다. 내 자녀의 생활 모습이나 습관, 드러나는 소소한 행동들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하나하나 간섭하며 체크하기 바쁘고 시시비비만을 들춰내려 하고, 오히려 자녀들을 향한 믿음과 신뢰. 지지, 격려들은 커녕, 불신과 깎아 내림, 내 자녀만 할 수 있는 것들이 무한대 임에도, 현재도 잘하고 있음에도, 옆집, 옆동네, 학교 친구들이 가지고 있는 그것도 좋은 모습이 아니어도 무조건 좋아보이기에 내 아이들에게 얼토당토 하지 않게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 아이들이 부모 앞에서는 순종하는 척, 듣기 싫어도 괜히 대화라고 말해도, 통하지도 않고, 막무가내적 리액션만 되돌아 올 뿐, 무의미한 대화를 시도하지 않고 있음에도, 부모앞의 모습만이 내 아이의 모습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보는 습관을 유지하자.

- 다른 울타리의 양이 더 건강해 보인다고, 더 활동적이고 힘있게 걸어 다닌다고, 양치기가 내 울타리 안에 있는 양들과 전혀 다른 방법이 맞다고 먹이를 제공해서 배탈나게 하거나, 몸에 맞지 않는 것들을 먹이려고 노력하지만, 내 울타리 양들은 건강해지기는 커녕, 시름시름... 가라앉고 있음에도 제대로 상태조차 파악하고 있지 못하는지도 모르겠다. -

지나친 경쟁으로 내아이를 기름지고, 융숭하게 만들고, 다른 사람들보다 내 아이의 미래는 장밋빛일 거라고 호언장담하며 아이 기준이 아닌 부모 기준으로 특별해야 한다고 강제로 종요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라는 말이 떠오른다. 사촌이면 그럼에도 예전엔 비교적 가까운 친척이었다. 사촌이 잘되도, 기분 나쁘고 내 건강에 영향을 끼칠 정도일 수 있음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요즘 아이들에게 가족의 의미를 과장되게 표현하면, 부모와 나.. 조금 넓어야 형제자매라고 한다는 것을 들은 기억도 난다.

경쟁이 없어지지 않는 한, 나는 나이고, 울 아이는 울 아이인데...

소중한 능력과 모습을 가지고 살고 있는 진실을 인정하려 하지도 않으면서,

내가 다른 부모가 될 수 없음을 느꼈음에도 망각에 급습당한 채, 내 아이는 다른 아이보다 더 좋은 모습으로 자라야 한다고.... 강요하고 있기에 아이들에게 타인과 관계 맺는 법을 자연스레 마주할 수 없도록 단절시키면서, 한편으로는 아이들 사회성 없다고 문제 있다고, 일부러 만들어 주려고 시간, 경제적인 것들,무한한 정성과 에너지를 따로 할애하는 일이 자연스러움에 담겨 드러나고 있음도 눈에 띄니, 얼마나 모순인지? 갑갑하고 답답할 뿐이다.

아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나 기질을 발휘하게 하는 것이 더 좋을진데, 그런 긍정 에너지 찾고 끌어내며 즐겁게 살아가기도 버거운 한번 뿐인 부모와 자녀들의 인생이며, 삶인데...

되지도 않은 명분으로 다른 사람 닮아가기 위해 전전긍긍하며 애 쓰고, 내 자녀들까지 힘들게 하며 지내왔고, 지금도 그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책 마지막장에 이르렀을 때는 두렵기 까지 하다.

물론, 부모도 청소년기를 겪으며 성장하고, 성인이 되어, 다시 자녀를 키우고 있다.

나도 안했으면서, 못했으면서, 할 수 없었기에 부모와 숱한 마찰과 갈등을 일으키며 성장한 기억속 경험들이 생생함에도 내가 언제? 적어도 내 자녀는?

이런 생각의 끈을 자르려 하지 않고 유야무야 흐지부지 다른 사람도 다 하니까~

이러는 동안

부모와 자녀의 간격은 더 넓어져서 끝과 끝이 보이지 않는 원뿔의 아래 부분의 원의 둘레가 되지 않을까 싶다. 출발할 때는 분명 저 목적지, 결승점에 가면 만나자~ 두주먹 불끈 쥐고, 사이좋게 출발했던 것 같은 어렴풋함이 피어오르는데,

이제는 평행선 정도 되어 옆으로 시선을 돌리면 아이의 위치를, 또는 아이가 부모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거리는 언제 벗어났는지 모른 채, 결승점도 어디인지 알 수 없다.

그나마 결승점에 도착해서 확인했을 때의 부모, 자녀의 위치가, 판매되고 있는 바나나 맛 XX 의 모양처럼 중간 부분 불룩해 보기 어색할지라도 아래쪽으로 가면 비교적 가까운 곳에서 일치될 수 있어도 절반의 성공이 아닐까 싶다.

결승점에 도착해도 서로의 위치가 어디인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벌어진 원뿔의 밑둘레 호라는 모양도 부지불식간에 떨쳐 버린채, 서로 보이지 않는 방향을 바라보며 애타게 빨리 가까이 오라고 손짓 발짓하며 안타까움을 토로해 본들.... 돌이킬 수 있을까? 돌이키려고 시도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이고, 가능하고, 그런 행동에 에너지 들이는 것이 현명한 것일지... 후회하고, 안타까워하기 전에... 더 멀어지기 전에

얽힌 실타래를 풀고, 부모 내면에 담을 수 있는 자존감...을 극대화 시키는데 에너지를 할애하려는 시도를 품을 수 있는 지혜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노력하는 일이 선순위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는 것은 지나침 없어 보인다 말하고 싶다.

부모가 내 모습 그대로 가치를 인정하고, 씩씩함과 당당함으로 삶을 영위하는 것을 유지한다면, 그 모습을 바라보며 성장하는 자녀들은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생활속에서 자연스러이 내면에 자존감을 담으며 꾹꾹 채우고, 넘치게 까지 하는 것을 어려워 하지 않을 듯 싶다.

단, 자존감과 이기심의 차이는 분명 같을 수 없음을 잊으면 안될 듯 싶다.

나의 모습과 상황에 대한 만족, 감사... 내아이에 대한 만족...을 올곧게 할 수 있는 부모는 없을 듯 싶다. 상대적으로 훨씬 더 높은 위치에 있어 보여도, 개개인은 주관적 가치기준과 생각에 지배되어 스스로의 모습을 깍아 내리고, 갉아 먹는 것에 익숙한 생쥐가 아닐까 싶다.

이제는 갉아 먹는 습관을 다 떨쳐 버릴 수는 없어도....

예전보다 속도와 양을 줄이려는 시도를 해야 하지 않을까? 오히려 갉아 먹었던 부분, 현재도 갉아 먹고 있는 행동들에 대한 자책, 자괴감, 상실감에 퍄묻혀 자폭하는 것이 아닌...

이미 뚫려져 버린 구멍에 오히려 자존감의 씨를 뿌려서 성장할 수 있도록 생각의 전환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면, 그 구멍은 더 확대되지 않을 것이고, 앞으로는 이즈음 땅이 가라앉는 싱크홀적.... 위험하고 겁나는 모습이 아닌, 마음의 땅에 벌어진 틈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자존감의 뿌리에서 성장한 긍정과 즐거움, 건강함, 밝음....표현으로 갈음할 수 없는 아름다운 것들이 울창하게 가지로 뻗어져서 마음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게 될 듯 싶다.

이것이 무모한 착각이고, 억측이고, 실현불가능한 일이라도....

나 혼자만 힘든 레이스를 펼치는 마라톤 선수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라도...

더 이상 포기하고 싶지 않은 부분이고, 포기될때는 더 마음을 굳게 다잡고, 되뇌이고.... 노력해 봐야 겠다고..... 확신하며 고이고이 새겨본다.

더 늦기 전에~ 더 되돌릴 수 없기 전에..

내 자녀들이 미래로 걸어가는 모습을 가깝지 않지만, 그럼에도 시야에서 바라볼 수 있는 위치를 유지하는데 의미를 두는 것에 만족할 수 밖에 없을지라도...

Right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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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는 갈색머리로 태어나고 어떤 이는 외롭게 태어난다
타오 린 지음, 윤미연 옮김 / 푸른숲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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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랬듯이 책을 손에 올리고, 겉표지 등등 외모라 할까? 생김새? 내용 아닌 다른 것들을 살펴보기 시작한다.

어찌보면 책은 생물이 아니기에 일방적 시선에 어색해할지도 모르겠다는 말도 안되는 생각도 뇌리를 스치지만, 언제나 그랬던 것을 쉽게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이유로 내세우며 말이다.

인터넷 서점과 기타 다른 곳에서 책에 대한 선지식이랄까? 그 부분중에서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과 작가의 이름을 보니 약간 동양적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이 자연스러울 수 있겠다는 것이다.

제목의 느낌은 여러 기질과 모양, 외모를 가진 이들의 기본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그대로 다름을 인정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느낌도 내면에 담을 수 있었다.

표지의 색은 따뜻한 색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차가운 색이라 하긴 밝기? 채도? 명암? 등등이 어두워 보이지 않았기에 내용이 생각보다 어둡다거나, 가라앉는다거나, 칙칙하달까? 삶의 아픔? 고민? 등을 많이 드러내지 않을 듯 싶다는 생각도 더부어 포함시키기도 했다. 아니 이것은 개인적으로 단편에다 어두운 내용 읽는 것 자체에 호의적이지 않은 개인적 성향을 버리지 못하고, 아마도 스물 그렇다고 조금 강하게 인정했던 것일지도...

다독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이제껏 접했던 책들이 대체로 유럽이나 소위 말하는 서양이랄까? 지리적 위치의 동양에 상반되는 개념의 단어 서양 문화에서 성장한 작가들의 그것을 다수 마주할 수 있었기에 동양적 분위기를 풍기는 책의 저자에 대한 생소함을 없애려 했지만, 이 또한 쉽지 않았기도 했다.

이런 책의 주제를 담은 내용은 어찌 분류를 해야 하나? 성장소설? 일반 단편집?
어느것이든 염두에 두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왠지 그냥 전해오는 느낌으로 성장소설? 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이기적 선입견을 함께 담은 채로 책읽기를 시작했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문화적으로 물질적으로 발달한 국가에서는 바쁨과 다양성, 다변화 속에 IT 기기의 급속한 발전 속도로 인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명제 하에 여러 분야에서 관계를 맺고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럼에도, 사람들 사이에 피고드는 마음의 고요와 소통의 부재로 인해 오는 소외로 쌓이는 묘한 느낌들...

쉽게 떨치고 회복하지 못해서 크게 확대되어 단순한 아픔이 아닌 간단하게는 외로움~ 심해지면 우울증 등등

스스로 통제하지도 못하는 부정적 기운에 야금야금 잠식 당한 채 어느새인가 돌아보면 그것들의 노예로 옭아매져 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보고 어색해 하며 당황해 하며 속상해 하기도 하고, 힘들어 하기도 한다.

쉽게 보이지 않는 마음의 아픔을 치료하는 병원이 있다 하나, 다른 나라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곳에 대한 지나친 선입견으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동안 마음은 황폐헤지고, 피폐해져서, 아예 아무것도 자랄 수 없는 사막인 것처럼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물, 양분등등을 쉽게 소유하지 못하는 상태로 수직하강해서 암울하게 자기 스스로를 스스로의 방에 가두어 버리고, 나오려고 시도조차 해볼 에너지마저 고갈된 채로 어영부영 세월의 흐름앞에 쓰러지고 말지도 모르겠다.

사실, 처음에 태어날 때 외모적 형태나 등등이 구분되어지게 이루어져 삶을 시작한다는 것은 일반적 상식선에서 알고 있긴 헀지만, 외롭게 태어난다~ 라는 책의 제목을 보고는... 어? 외로운 사람도 아예 정해져 있는 거야?

물론, 책 제목은 상징성의 명제에 의해 작가가 선택한 것이겠으나, 아무튼 그런 느낌으로 순간 의아함도 담을 수 있었다. 설령 외롭게 본디부터 소유하고 다르게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 있기에, 스스로의 외로움도 감당하기 힘들어 관계 맺고 살아가는 이들의 외로움조차 바라보려 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떠올렸다.

원래 나는 그러니까? 이런 생각으로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하고, 계발하며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시시비비로 이분론적 수단으로 갈라 놓을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고, 나는 왜 이래? 왜 나만? 하는 비슷한 느낌이긴 하지만, 보다 더 부정적 어조가 강한 기운을 가득 채운 채 살아가는 이들도 있을 텐데... 이것 또한 개인 내면의 문제일 수 있으니 왈가왈부를 쉽게 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아무리 개인적 성향이 다르게 만들어져 살아간다 해도, 아직까지는 사회적 관계를 무시하지 못하고 살아갈 수 밖에 없는 보편 타당한 분위기를 간과할 수 없다면, 설령 개인의 내면에 우울하고 외롭다는 것은 누가 뭐라 하지 않겠지만, 가깝게는 그 외로움으로 인한 부정적 요소나 기운들이 가족, 지인, 친척들에게 영향을 끼치게 되고, 그러면서 관계가 소원해질 수도 있을 듯 싶고... 그러다 보면 개인의 문제ㅏ 아닌 어찌 보면 사회적 문제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비약적 생각도 하게 되었다.

모두다 외롭고 쓸쓸하고, 아무리 친한 지인이라도, 가족이라도 나는 세상에 한명이고, 혼자 삶을 살아가고, 죽음을 맞이하는 마무리를 하는 일정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리라...

그렇지만, 스스로 조금 내면에 밝은 기운과 적극적 기운을 담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면, 주위의 외롭고 우울함을 풍기는 이들에게 먼저 손내밀고, 다가가는 것은 어떠할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외로움도 분명 삶을 살아가는 속에 필요한 감정적 요소일 수 있겠지만, 방치하면 스스로는 그 굴레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묘한 힘을 가진 녀석인 듯 싶기 때문이다.

굳이 오지랖 넓게 타인의 삶과 사생활을 간섭하라는 것이 아니다. 살아가면서 말은 참 많이 한다.하지만, 대화, 진심에서 나오는 말을 사용한 그것을 가까운 가족들에게도 하루 얼마나 실행하고 살고 있는지?

되돌아 보면, 참 나 스스로 외롭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듯 싶다.

그럼에도, 톱니가 맞물려 돌아가야 하는 것처럼 모두 다 같을 순 없지만, 내가 부족한 것은 타인의 도움으로, 타인의 부족한 모습엔 내가 많이 있는 것을 나눠주며... 뭐 이렇게 살수 있는 마음이 기본 바탕에 존재하길

바라는 것은 역시 이기적 욕심인걸까?

모르겠다. 잘 살고 있다 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아직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명제 하에 독불장군이 되어 홀로 꿋꿋하게 사는 것이 아닌 유기적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피드백을 주고 받는 연결고리 내에서 얽혀 살아가야 함은 분명한 듯 싶다.

다시 말하지만, 외롭게 태어나는 사람이 나라는 개인 주위에 가까이에서 생활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나라는 개인의 오지랖적 그릇된 간섭으로 말할 수 없는, 아니 말해서도 안되는, 순수한 진정한 도움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옆에 있는 그들을 바라볼 때 별일 없어 보이고, 평온해 보이고, 특이해 보인다는 지극히 주관적 관점에서 얻을 수 있는 시선으로 전해 받은 왜곡되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극구 부인하며 그 자체를 합리화하고 인정하고 그냥 바라보고 있는 모습으로 지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주위에서 살고 있는 누군가는 외롭고, 맘이 아프고, 허전하고, 쓸쓸해서 누군가 자신에게 발걸음을 돌려 가까이 다가와주길 바라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상대의 처한 상황을 잘못 알고 있으면서 그냥 그대로 나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간과하고, 시선 돌려야 할 필요도 느끼지 못하고, 손을 내밀어야 할 가치와 중요성을 인식하지도 못한 채 마냥 방치하듯, 내가 살아야 하니까 라는 본능적 이유로 무마해 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뜬금없을지도 모르는 생각을 했다.

여러가지 현실적 상황에서 국가 내이든, 국가 밖으로 세계라는 공간에서 연결되어 살아가는 국가간의 상황을 고려해 봐도, 한정된 자원이나 여러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경쟁이라는 단어를 배제할 수 없음을 당연시 여기게 되는 듯 싶다. 그렇기에 더구나, 나를 제외한 타인에 대한 긍정적 시선 돌리는 것은 그저 에너지 낭비일 뿐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 이상한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반응이지 않을까? 하는 자체도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럴 수 밖에 없는 현실이 되어 가는 듯 하여 많이 속상하고 씁쓸하다.

앞으로 우리 나라의 모습? 세계와 유기적으로 살아가야 하는 상황들이 어떤 모습으로 급격하게 바뀌게 될지는 예측할 수 없기에, 함부로 단언할 수 없을 수 있지만,

그럼에도, 개인과 개인 사이에 다르게 드러나는 모습들을 바라보고, 왜곡되게 맘대로 판단하고, 손가락질 하며, 뒷담화의 소재로 사용하기도 하고, 나랑 다르니까 하는 차별적 시선으로 대하고 살아가는 것이 아닌

의도적이라도, 혼자 살 수 없음을 되뇌이고, 반복해서 확인하고, 인식하기도 하며...

함께 어울려 톱니바퀴 맞물려 돌아가야 제대로 기능과 역할울 하듯 나랑 차별된 모습으로 내 모습만 중요하고, 소중하고 가치있다 생각하는 것이 아닌, 나 혼자 할 수 없는 또 다른 모습이나 기능, 역할을 타인이 소유한 능력으로 채울 수 있음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확대되었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내것만 최고, 나랑 다르니까 넌 잘못이고, 필요없는 거야.. 라고 차별적 시각이 아닌, 다른 모습, 외모적 모습- 갈색 머리라면 - 눈으로 확인 가능하기에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면 용이하게 찾을 수 있을 듯 하다.

뿐만아니라, 내면의 모습 - 외로움을 가지고 태어나서 지금도 외로움으로 아파하고 있는 사람은 쉽게 알 수 없을지 모르지만, 조금 감정적으로 여유있는 사람이 먼저 - 을 제대로 인식하려는 이타적 시선을 소유하려고 노력하면 어떨까?

서로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음을 부인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연결고리에 꾸준히 쏟아 붓는 에너지가 헛되지 않도록, 관점을 소유하고 일상에서 살아가면, 현재 사회의 문제인 소통의 부재로 비롯되고, 야기되는 극단적 부정적 모습을 한꺼번에 바꿀 수는 없을지라도, 지금보다는 조금 덜 삭막한 서로에 대한 기본적 배려가 존재하는 삶 속에서 숨을 쉴 수 있는 여유가 존재하는 그런 따뜻한 기운이 차고 넘치는 분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담아 보게 되었다.

접해보지 않은 동양적 시선을 소유한 작가의 시선이 처음엔 새롭고 어색이란 말로 갈음할 수 있었던 듯 해서, 쉽게 가까이 하기엔 멀리 떨어진 당신인 듯... 멀뚱멀뚱 멀찌감치 간격을 둔 채로 책속 엿보기로 시작했다가, 책을 덮는 순간에 그나마 (물론, 개인적 시각에 올곧게 기초를 둔 생각임도 알고, 왜곡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아하~ 이거구나~! 하는 내면의 작은 울림이 되어 파고드는 소소한 반향을 느낄 수 있었음에 만족하고 싶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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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세계경제원론 03 : 경제 주기 내인생의책 청소년을 위한 세계경제원론 3
바바라 고트프리트 홀랜더 지음, 김시래.유영채 옮김, 이지만 감수 / 내인생의책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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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과목에 포함되는 주제들의 다양성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불변하는 것임에도 학교 재학시절에 공부했을 때는 연관지어 생각하지 못했고, 단순히 각각 과목에서 느껴지는 생각들 그대로 의미부여 하지 않고, 어렵다, 쉽다, 그저그렇다...

이렇게 개인적인 나눔의 범주를 정해두고 공부했던 듯 싶다.

이즈음 나오는 여러가지 정보를 담은 책들이 각각의 특성만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유기성에 의해 관련되어 상호보완적 내용을 포함하고 있음을 진작 의식하고 알았다면... 조금 쉽게 공부했을까?

설령 그렇다 해도, 다른 사회과목에 해당하는 내용은 모르겠지만, 경제, 경영에 대한 내용에 대한 학습 하는 시간들을 다시 할애한다 해도 별반 즐기며 할 수 있게 되지는 않을 거 같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주제임에 분명하다.

이 책은 얇은 두께의 양장본으로 시리즈로 출간되고 있고, 이미 기출간된 것도 있다고 알고 있다.

1권은 역시 경제 부분에 대한 전반적 내용을 다루고 있기에 기본적 개념을 언급하며 간단한 설명을 첨가하는 수준으로 지루하지 않게 이해하고 내용에 대해 확인할 수 있었다.

2권 이후 다른 책들도 그러하리라 생각을 하고, 2권과 3권을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기에 고민하다 3권 부터 우연히 펼쳐들게 되었다. 출간된 순서대로 꼭 읽어야 할 당위성이 없기도 함을 합리화 하며 말이다.

TV등 다른 매체를 통해 전해지는 용어들을 굳이 설명해 주려고 하지 않아도, 우연을 탐한 기회로 위장해서 우리의 청각을 자극하는 횟수 또한 비일비재함을 부인할 수 없을 듯 싶다.

사실 경제? 라면 일단 용돈관리부터 시작을 해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인해 더 넓혀지지 않는 시각으로 참 많이 스스로 옭아매어 두고, 힘들게 했지 않았나 싶을 정도이다. 그렇다고, 용돈관리에 대한 쳬계적 습관을 어려서부터 터득할 수 있는 경험을 마주한 기억도 희미한지라... 그다지 경제는 지금 이순간 까지 개인적으로 호의적으로 대하지 못하는 주제임에 분명하다.

어찌 보면 모든 부모들의 공통된 숙제며 당면 과제로 생각하는 부분들이 본인은 학창시절에 못했으니 자녀나 등등 관계 맺는 지인들에게는 꼭 익히는 것을 권유해야 하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는 듯 강조하는 것이 특별해 보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마냥 두서없이 강제로 말 그대로 닥치는 대로, 되는대로, 주먹구구식으로, 중구난방... 무조건 정보에 귀를 열어두고, 시선을 두고, 노력을 쏟으라 한다면, 요즘처럼 바쁨이 강조되는 시국에 참 어리석은 행동을 권한다 어찌보면 실없는 어른이 될 수 있는 위험에 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요즘은 부모들의 높은 교육열 덕분인지 다양하게 여러 출판사에서 같은 주제를 중심으로 책을 출간하는 양이 어마어마해 짐을 자연스레 느낄 수 있게 되었기에, 조금 쉬운 관련 주제의 책을 선택해서 기초 자료 습득을 위한 자료로 할용하면 보다 짧은 시간에 용이한 방법으로 많은 정보나 자료들을 내것으로 만들 수 있는 행운을 거머쥘 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 것일 수 있겠다. 무조건 강요하는 것이 아닌 체계화 된 내용으로 출간된 책들을 권하며, 청소년들이나 기초 개념에 약한 어른들에게 기회 제공 할 수 있게 된다면, 서로 공감할 수 있는 거리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장점을 근거로, 대화의 폭을 넓힐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3권의 주제를 보면 경제주기에 대한 이론이나 원리, 개념등을 설명하는 것을 주요 흐름으로 삼고 있는 듯 싶다.

목차를 먼저 살펴보자.

1. 경제 주기ㆍ6
2. 경제 지표ㆍ10
3. 경기 호황ㆍ27
4. 경기 침체ㆍ37
5. 공황과 대공황ㆍ53
6. 신용 순환ㆍ60
7. 호황과 위기ㆍ66
8. 요약ㆍ80
최근 세계 경제 위기의 연대표ㆍ84
용어 설명ㆍ87
재미있는 인터넷 사이트ㆍ90
찾아보기ㆍ92
풀어가는 과정은 1권이나 2권과 다를 바 없고, 유사함이 많이 담겨 있다.
내용도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 다만, 1권은 기본 개념서이니 그것을 읽고 난 후에 다움 권 부터는 겉표지의 소주제를 참고 해서 본인이 필요한 부분이 정해지면, 그에 맞게 취사 선택을 하면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었다.
아무래도 각각 쉽게 내용을 전한다 해도, 1권보다 다음 권부터는 한가지 주제를 정해서 더 세분화해서 다루려 하기 때문이라는 간과할 수 있는 소소함을 배제해선 안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리 쉬운책이라 해도, 경제 부분에 대해 친숙함이나 친근감 없이 어려워~라는 막연함을 떨치지 못한채 소설책 읽듯이 밤낮 관계 없이 초집중해서 읽기를 시도한다 한들, 효율적일 수 있겠으며, 경제에 포함되는 모든 것들이 소설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기승전결을 가지고 이야기 하며 언급할 수 있는 논제이기엔 뭔가 모순적이어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용어 설명을 쉽고 다양하게 풀어놓았다 해도, 조금 더 전문지식에 대한 지적 호기심을 소유한 독자에게는 뭔가 아쉬움과 부족함이라는 단어조차 비유되기 애매한 상황일 정도로 알차다 할 수 없을 듯 싶은 부분도 있어 보였다.
개인적으로 아무리 경제에 호기심을 극대화 해서 이 책 시리즈들을 읽고 싶은 마음을 그득 꾹꾹 눌러 담아 채운 후에 접할 기회를 얻는다 해도, 역시나 처음부터 소설책 읽듯이 하는 것에는 그다지 호의를 둘 수 없음이 아쉬워 평가를 높이 하지 못하게 되었다. 책 내용에 대한 시시비비를 따지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분명 쉽게 경제에 대한 상식을 증가시켜줄 수 있는 유용한 자료로 역할을 감당하고도 남을만한 가치가 있음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개인적 기질이나 관심도에 따라 소설책도 그럴 수 있지만, 이렇듯 자료나 정보를 제공하는 책들을 접하고 활용하는 방법이나 결과에 따라 가치가 달라질 수 있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이랄까? 그런 것들이 존재할 수 있음을 끝끝내 배제하지 못한 나라는 독자에게 주어진 몫이기 때문이라고 갈음하며 마무리 한다.

 

 

[네이버 책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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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kg 마음이 자라는 나무 29
비르기트 슐리퍼 지음, 유영미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남녀노소 거의 아름다움(美)에 대해 관심을 배제하며 살아가는 경우는 적은 듯 싶다. 먹을 것이 많아서 비만이 당연시 되고 있는 이즈음에도 먹으면서 다이어트를 하며, 날씬해진다고 여러 방법으로 노력하고, 또한 음식조절과 운동을 하다 못해 원래 날씬한 이들이 더 살을 감량한다고 노력하며 심지어는 식이장애와 체중미달과 근육량미달등 오히려 영양실조가 아닌지 의심을 받을 정도로 지나친 정도로 추구하는 경우도 있다고 여러 매체를 통해 간접적으로 마주한 기억이 난다.

 

책 주인공도 성장기를 겪으며 살고 있는 청소년 중의 한명인가 보다. 아예 식이장애로 인해 병원에 입원해서 주위 병실의 다른 입원환자들과 관계 맺고 지내는 일상속에서 벌어진 일들을 풀어내고 있는 듯 하다.

 

 

모르겠다. 사춘기여서 당연히 짜증스럽고 날카롭고 예민하고 귀찮아 하는 것일까?

책의 주인공 시선을 따라 읽어가면서 내내 밝아 보이지만 그렇지 않은 우울과는 좀 다른 짜증 화냄 등 그런 느낌을 가지고 있는 주인공의 맘을 전해 받는 듯 했기에 설령 내 생각이 그릇되었다 해도, 맘은 그다지 기쁘고 밝고 해맑은 느낌으로 책 속 공간을 따라 움직이며 주인공을 따라다닐 수만은 없었다 할 수 있다.

 

 

책을 출간한 저자가 유럽쪽 출생이고, 그 지역 문화를 습득하고 성장했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그다지 여러 분야의 책을 선입견 없이 섭렵하려 노력하지만, 쉽게 떨칠 수 없는 거대한 벽으로 뭔가 방해요소로 작용하는 점을 감안할 때

이 책 역시 유럽 문화가 포함되어 있기도 하고, 작가의 필체에 묻어나는 전개 방법이나 표현등에 집중이 되지 않아 처음에 책을 보고 전해 받은 얇고 간단할 것이라는.... 속단을 했던 자신을 원망해 가며 겨우 끝페이지와 만남을 경험하게 되었고, 각고의 인내 끝에 얻은 결과이기에 스스로 만족을 담아보려 한다.

 

 

주인공 넬레는 15세이다. 말 그대로 우리나라의 성장기로 치면 사춘기...

자신의 몸무게가 뚱뚱하다 느낀 주인공은 다이어트를 하고자 그 여정을 시작하는 것으로 이야기의 첫 매듭이 풀리는 듯 했다.

 

어찌보면 지나치리라 할 정도로 과하게 다이어트 목표인 몸무게 45kg 에 도달하기 위해 스스로 온 에너지를 쏟아 붓고 있는 듯 보였다. 당연히 부모님 입장에서는 안스럽고 속상하고 걱정되는 것은 명명백백한 일일 것이다.

 

이런 모습으로 책속 부모님의 마음을 올곧게 공감할 수 있었고, 완전한 공감을 할 수 있었다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그럼에도 희망적이었던 것은 어떤 시각이든, 그것이 부모으 일방적 관심을 표현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자녀에게 시선을 향하게 하고, 소통하려고 하는 모습인 듯 싶어서 개인적으로 긍정적 시선을 담아 부모님을 응원하며 함께 책속 여행을 위한 발걸음을 떼었지만...

책을 읽으면서.... 마지막 페이지와 마주하는 경험을 하게 되니, 부모님의 관심이 그다지 아이에게는 긍정적이지 않아 보였달까? 물론, 스스로의 특이함을 담은 편협한 시각이긴 하지만 그런 생각을 떠올리게 되고 말았다.

그냥 그랬다.

정말 페이지를 넘겨 가면서 변하지 않았던 것은 넬레의 관점에서 풀어지는 다이어트 과정을 함께 따라가기를 지속하는 일이 쉽지 않았고, 지루하다 못해, 뭐랄까? 늘어지는 문체 속에서 전해 받을 수 없는 긴박감...등등이 책 내용에 대한 호기심도 앗아가고, 집중해서 차분히 읽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는 점이다.

 

넬레와 부모님, 그리고 모범생이었던 오빠의 삶의 방향전환을 시도하는 상황들... 같은 다이어트를 시도하다 거식증을 경험하는 또래 집단 카페 달안개...를 소재 삼아 이야기를 이어가는 과정에서

 

오히려 부모이긴 하지만, 넬레의 마음에 더 힘을 실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불현듯 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기도 했다.

 

물론, 청소년기에는 성장을 해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고, 여러가지 영양분을 체내 축적해 두는 시간들을 많이 할애하고, 스스로의 몸을 소중히 다루며 아끼고 보호하는 것이 우선시 되어야 하고, 최상위에 두어야 할 의무적 과제라 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사실 외모 지상주의를 만들어 냈달까? 그런 것들을 우선시 하도록 조성했달까? 하는 것.... 이 자체도 어른들이 이루어 가는 과정에서 보여지는 결과물이 아닐까? 하는 비약이라 하더라도 그런 생각을 하게 되기도 했다. 이런 관점에서 지나치긴 하지만, 책속 주인공의 다이어트 도전에 대한 열정, 관심, 노력...등을 무조건 배제하고, 그것은 올바른 방법이 아니라고 막무가내적 어른들 시선으로 병원으로 데려가서 입원하고 치료하게 만들어 버리는 천편일률적인 부모의 모습이 아니길 바랬다.

그것이 말도 안되고 형언할 수 없는 일이라 해도 말이다.

 

어쩌면 넬레의 마음 속의 진실한 소원은 다이어트가 아닌, 주위 부모님과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을 수 있는 진심이 담긴 관심과 공감, 격려? 가 아니었을까?

 

이 부분을 읽으면서 역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른은 어른일뿐, 아이들의 무한한 능력을 소유하고 출생해서 자라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그 능력들을 계발해 줄 수 있는 지혜를 조력자 입장에서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닌,

지시적이고, 봉건적인.... 자신들이 살아오면서 편협해 지고, 자신없어 하는 기질에 의해 타성으로 굳어진 여러가지 삶의 지혜들을 오히려 시시비비 논하지 않고, 아이들에게 강요하고 있는 천편일률적인 부모라는 위치의 어른들의 관점에 대해 확인할 수 있었기도 했다. 이런 부분들은 책속 주인공보다 더 짜증났고, 속상했고, 억울하기도 했다.

 

오죽했으면... 자신의 욕구를 다이어트에 분출하려고 그 열정과 에너지를 쏟고 말았을까?

그 열정과 에너지를 다이어트에 대해 시시비비를 논하는 것은 아니고, 그 보다 조금 더 생산적이고 긍정적인 주제에 아이의 목표를 삼을 수 있도록 방향전환할 수 있게 도와줬음 어땠을까?

 

그러면서 성장하는 것이 자아형성하는 과정이고,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겪을 수 있는, 겪어야 하는 당연한 과정일 뿐이라고 단언하며 이야기 한다면 할 말은 없다.

 

그렇지만, 아이들 시대에는 잘 몰라. 어른 되서 후회하면 뭐해? 우리도 그때는 그 소리 들었어도 몰랐을 거야..

라고 쉽게 이야기 하며 내뱉으며 할애하는 에너지를 뿜는 어른들의 무의식적 행동을 하는 동안...

 

아이들은 어느 그늘에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싶긴 해도, 자존감 없어서... 자신감 없어서.... 긍정적 모습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몰라서..... 주춤거리며.... 오히려 왜곡된 호기심의 자극에 이끌려 잘못된 길로 수직하강하게 되고, 아예 회복되기 어려운 길로 이미 방향전환을 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기 전에, 부모와 아이가 동행을 하며 평생 옆에 서서 가고만 있는지? 확인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옆에 서서 가는 것은 당연히 그냥 영원히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을 가고 있는 건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차라리 그냥 간격 변화없이 평행선을 가기라도 하면 나을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처음보다 더 벌어지는 마치 원뿔의 밑부분처럼 넓게 퍼지는 부채꼴의 모습으로 넓은 간격으로 벌어지는 것도 인지하지 못한 채, 그냥 마냥 앞만 보고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ㅜㅜ

 

최소한, 아이들이 답답해 할때 귀 기울여 주는 시도라도 하면, 평행선에서 시작했다 해도, 앞으로 점점 거리가 좁혀져 원뿔의 꼭지점이 되어 언젠가 만날 수 있을ㅈ지 모르는 희망과 가능성이 남아있지 않을까?

 

개인적 생각이기에 강요할 수 없고, 강요해서도 안된다는 것도 알고 있다.

 

왜? 공부만 해야 아이들이 편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왜? 외모에 치중을 하면 무조건 안된다 말하는 것이 올바른 판단인걸까? 물론, 자신을 계발하고 긍정적으로 생산적으로 만들어가기엔 사람의 성장과정에서 청소년기까지 모든 것들이 인체에서 빨리 빨리 이루어지고, 효율성도 극대화 시킬 수 있기에 그 시기에 노력을 쏟아 부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도 알고 이다.

 

하지만,

왜 모든 아이들이 공부 다 잘하고, 울 아이는 분명 1등하고 말거야? 라는 허울 좋은 착각과 망상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로 확산되어서 아이들이 숨쉴 수 있는 여유와 틈을 어른의 잣대로 그건 올바르지 않은거야... 라고... 단정지어 버리고, 면죄부 발행하듯, 모두 몰아서 청소년 문제라고 단언해야 하는 걸까?

 

조금은 내 아이만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을거야. 암~ 세상에서 내 아이는 하나이고, 특별하고, 소중하게 태어난 내 아이들... 얼마나 사랑스러운가요? 그런 아이들을 조력자로 성장과정 동안에 보호하고 지켜줄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받은 것이 행운이 아닐까요?

 

다른 부모는 이 아이를 보듬어 줄 수 없어. 나~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특권이야.

내 아이가 잘 할 수 있는 것이 뭘까? 하고 싶은 것이 무얼까? 에 귀기울이며.... 그것들을 위한 착각과 망상을 자유로이 품고, 기대하며 펼칠 수 있는 능력을 담게 되는 부모가 많아지길 바라는 것 자체가 무모할지 모르겠지만...

 

책 마지막과 마주하고, 책을 덮은 순간.... 올곧게 넬레의 시선에서 씌어진 책 내용을 살피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애잔한 마음 또한 나를 순식간에 지배하고 사로잡아 포로로 만들어 버림을 느꼈다.

 

아이의 시선에서 아이가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물론, 이런 시각으로 아이를 이끌어 주고, 이 아이가 성장했을 때 그 결과물이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고, 보편타당하지 않기에, 부모로서 아이 양육을 어찌 했지? 라는 손가락질과 야유를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개인적으로는 아이를 돕는 방법으로 지금까지 선택했던 것을 유지하고, 더 계발시켜서 아이를 독려하고, 삶을 즐기며 사는 방법을 터득하는 아이로 성장할 수 있기를 소원하는 마음을 내면에 그득 채워 담을 수 있는 소중한 결실을 전해 받을 수 있었음에 행복하고, 소중한 시간이었다.

더불어 지루하며 늘어지는 책 내용에 집중하지 못하는 아쉬뭄을 인내라는 아름다운 겉포장으로 감싸며..기를 쓰고 끝까지 읽을 수 있는 스스로에게도 칭찬을 듬뿍 해주고 싶다.

 

우리나라 작가의 시선이 아니고, 특이할 수 있는 주제의 성장소설이긴 하지만, 이런 색다른 시각을 통해서 부모로서 자녀와 공감하고 소통할 때 어찌해야 하는지 재차 확인했다 할 수 있다.

스스로에게 격려를 하고, 용기를 채울 수 있고, 긍정적 에너지를 듬뿍 전해 받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기에 귀한 시간이었다고 하고 싶다.

 

 

 

 

 

[푸른숲 출판사 청소년 도서 평가단으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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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사 피너맨 지음, 이경진 옮김 / 동네스케치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사회의 다양성과 삶을 추구하고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욕구 또한 다변화되어서 수없이 많은 모습으로 드러나고, 쉽게 사라지고, 다시 만들어지고...

바쁘다 바빠라는 단어로 일상을 표현하기 조차 식상할 정도의 바쁨속에서 헤매고 있는 이즈음

사람들과의 관계 또한 복잡해지고, 많아지는 것은 자연스러울 터.. 그럼에도 만남을 대신하는 놀랍다 못해 현명한? 바로 IT기기를 들고 다니며 이동가능하다는 점일 것이다.

이렇게 뭔가 만족스럽지 않으면 이상하리만큼의 분위기에서 왜 사람들은 정신건강을 헤친다고 하고, 스트레스로 인해 마음의 병이 든다고 할까? 그럼에도 더구나 우리나라의 유교적 가치관이 아직 스며있는 분위기를 살아가는 이즈음 마음 치료를 하러 간다면 역시나 색안경 끼고 바라보기 일쑤, 보편타당하지 않은 개인의 왜곡된 잣대로 손가락질하며 뒷담화 또한 쉽게 이루어지고 있으니 참 아이러니라고 해야 할까?

그럴수록, 남녀노소 누구나 말할 것 없이 자신의 정신건강관리의 필요성 또한 즁요시되고 있기에 이런 주제를 다룬 책들의 출간의 횟수가 많아지는 것 또한 어색한 것은 아니리라..

마인드 리셋~

왠지 마음을 다시 셋팅하라~ ㅠㅠ 무슨 로보트 마음을 열어서 구조를 변경하고 기능을 바꿔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사람의 몸은 아무리 내거라 해도 직접 보고 확인할 수 없기도 하고, 병원에 가본다 해도, 시야로 확인하고, 판단하고, 쉬워 보일 수 있는 진단을 내릴 수 있지 않은 것이 아픈 사람 특히 마음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과정일 것이다.

그런 마음은 요즘 비일비재하게 각각 개개인의 허락없이 붕괴랄까? 스스로 가출하는 어린아이처럼, 혹여 사춘기 청소년처럼 쉽게 맘을 조절할 수 없는 상태로 흥분이나 분노 좌절 우울을 의지 상관없이 무기력하게 만들고 쥐도새도 모르게 가라앉게 만들어 그것들의 노예처럼 마음의 그늘과 어두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든다.

물론, 개인은 부모님의 태를 통해 세상에 나와서 삶을 시작하지만, 어느정도 성장해서는 부모님으로부터 의지적으로라도 독립을 해야 하는 시기와 마주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마마보이, 피터팬 증후군 처럼 이즈음 마음을 표현하는 말들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스스로의 마음은 각자 조절해야 할 듯 하지만, 그럼에도 그 자신의 마음까지 어느새 조절 능력을 잃어버리는 마음의 성장을 멈춰버린 그런 성인으로의 과정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싶기도 하다.

책 제목이 거창하고, 내용이 어렵다 생각할지 모르겠다는 느낌 또한 쉽게 떨칠 수 없었다.

그럼에도 개인적으로 지나치고, 과하게 확대 해석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름 각자의 정신줄 놓치지 말고, 꽉 잡고, 내 삶의 모습을 최선을 다해서 채워 가면 진짜 성공적인 나만의 1% 로 사는 것이다 (- pp.9~10 -) 라고 서두에 언급한 저자의 관점을 100% 공감하지 못했다 해도, 어느정도 공감하고 충분히 전해지는 묵직한 무엇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세상에서 승자는 아니지만 최선을 다한 경쟁자들은 어떻게 될까?

모두가 알고 있듯이 그저 아무것도 아니다.

(중략)

현실이 이렇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성공을 정의할 때, '99%가 아닌 1%에 속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진짜 성공적인 삶은 '나만의 1%로 사는 것이다. - pp.9~10 -

(중략)

최고의 삶을 산다는 것은 완벽한 인간이 된다거나 남들보다 잘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바로 나만의 전망을 세우는 것, 자신에게 중요한 분야에서 성장하는 것이다.

또한 마음가짐을 완전히 바꾸어 내면에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 p.11 -

이렇게 서문의 내용을 할애해서 생각을 풀어낸 곳과 진지하게 만남을 하다 보면, 마인드 리셋에 대한 실천방법이나 어떤 것을 포함하고 있는지 그렇게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게 될 듯 싶었다.

현재가 어떻든 나만의 1%를 시작하라. - p. 17 -

서문의 한 부분에 씌어있는 소단원의 주제로 제시된 제목이다. 맞다. 대부분 나만의 무엇인가를 만들기 위해 시작하라~고 하면 대부분 이제껏 해온것도 없는데, 자격증 따지도 않았는데, ... 참 개인적으로 이유가 많이 수반되어질 수 있음이 자연스러워 보이는 것은 왜일까?

우리 삶에서 이런 제안을 받으면 대부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는 상황을 마주하는 것이 어렵지 않아서 일까?

책의 내용을 담고 있는 목차와 마주하며 저자의 관점을 살짝 엿보기를 시도해 보자.

파악하라 , 창출하라 , 실행하라

이렇게 큰 단원의 주제가 제시되어 있고, 그 주제마다 세가지 의식을 소주제 삼아서 자신의 삶과 마음을 다시 만들어 보기 위해 어렵지 않게 실천하며 만들어 가는 방법을 자세히 담고 있어 보였다.

내 스스로가 어느 회사에 취업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회사를 경영한 것도 아니지만, 책에서는 스스로의 CEO가 되어라 라고 첫 단락 처음 시작하는 소주제로 제시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일단 무엇이든 자신을 살피고 체크하고 돌아보는 과정을 거치기 위한 계획을 세울 때는 내면을 바라보는 것이 가장 최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임이 분명하고, 그만큼 모든 상황을 바라보고, 문제점 파악하고, 여러가지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어 다시 시작하려면 나 스스로를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게 되었다. 나라는 회사의 경영자는 내가 아니면 안되는 것이니까 ~

그 후에 수반되어야 할 것들은 긍정적으로 스스로 사랑하고, 용기를 스스로에게 듬뿍 담아줄 수 있는 그런 사람, 스스로 잘 할 수 있는 것들을 먼저 생각하고 할 수 있는 능력을 가득 채우려 노력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기본인가보다.

사실 우리나라는 예전에 겸손과 양보의 미덕을 담고 표현하는 민족이라 칭하기도 했었던 듯 싶다. 하지만, 요즘엔 가족 숫자도 많이 줄어들고, 관계 맺는 것도 많이 하지 않게 되고, 가족이나 친척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는 더 살벌하달까? 그렇게 변하면서 겸손과 양보의 미덕은 어디로 자취조차 사라져 버리고, 오로지 다른 사람을 밟고 일어서야 한다는 경쟁적 분위기에서 이 세상 출발을 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그 순간에도 마찬가지 분위기 속에서 가히 편해보이지 않는 삶이라는 행위를 벗어버리고, 아예 현실과 분리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준비하며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개개인의 삶을 보면 태어나는 순서는 있지만, 죽음을 경험하는 순서는 정해져 있지 않다라고들 한다. 솔직히 내 앞에 남아 있는 삶의 기간이 얼마나 오래가 될지 모르면서, 스스로 에너지를 지나치게 소모가 아닌 허비, 낭비라고 할 수 있는 그런 행위를 하고, 필요 이상 힘들어하고, 스트레스 받으며 맘의 병까지 얻어 행복하지 못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길지 않은 내 앞날의 삶 속에서 굳이 다른 사람과 경쟁해서 그들의 젤 위에 있는 1% 자리에 올라서면 그것이 인생의 최종목표는 아니라 생각한다. 각자 맞는 생활과 할 수 있는 능력을 올바르게 파악하고, 바라보고, 그 능력들을 발휘할 수 있는 적합할 때와 마주하기 전, 미리 알차게 나만의 능력 발휘를 하며 나 스스로를 위한 1%가 되기 위해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자연스레 할 수 있었다.

지금 청소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 다 상관없을 듯 싶다. 왜냐면 다른사람과 비교되고 평가되는 인생의 나이라는 그래프가 아닌 내 스스로를 위한 삶의 그림이 필요한 것이니까 말이다.

지금 현재 어디에 있는지 어? 벌써 반 이상 왔네? 에휴 얼마 안남았네... 지금 해봤자.... 이런 생각보다는 그래 지금이라도 쉽지 않지만, 할 수 있어. 해봐야지... 라는 생산적, 긍정적 생각을 한사람 한사람 내면에 채우는 것들이 작은 불꽃처럼 우리나라 전체에 확 퍼져서 활활 타오르는 모습이 되길 간절함을 담아 보게 되었다.

왜냐면, 다시 말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목표로 하는 90%가 아닌 1%를 위해 앞만 보고 달려가도 욕심이 버려지지 않는한, 만족과 감사가 담겨지지 않는다면, 설령 개인 스스로가 다른 사람들이 바라볼 때, 인정받을 수 있을 만큼 능력도 겸비하고, 여러가지 위치고 1%내에 안정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어도, 스스로는 자신을 둘러 싸고 있는 모든 것들을 만족하지 못할테니 말이다.

자기 보다 높은 곳에 있는 모든 것을 생각하고 바라보는 것이 아닌, 스스로 자족하는 삶을 살며, 긍정적 마인드를 담는 것을 연습하다 보면, 삶의 남아 있는 기간이 얼마나 될지라도, 그 마지막 순간에 도착해서 지난 시간을 거꾸로 되돌려 보면 그럼에도 만족한다 라는 말을 자신있게 내뱉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조건 내 스스로를 바라보고, 긍정이 아닌 부정의 모습과 마주한 순간, 앞으로 나아갈 힘도 잃고, 제자리 주저 앉는 것이 아닌, 아예 뒷걸음질 치거나 수직하강해서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으려면 스스로 내면의 생각들을 꼭 붙잡고 그것들을 다룰 수 있는 유연성이나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는 능력 또한 함께 겸비하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삶에서 나만의 1%를 위해 주도적으로 적극적으로 나아가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그 안에 포기할 줄 아는 지혜와 하고 싶은 것들을 잘 분별해서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은 물론,

그 정해진 목표나 성과물을 얻기 위해 성실하고, 몰두하고, 꾸준히 노력하는 열정을 담을 수 있는 그런 에너지도 이미 채워진 사람일 것이리라.

아무리 강한 의지를 담아서 다짐하고 새로운 모습을 만들기 위해 나아간다 해도, 주위 예기치 못한 상황들은 불시에 개인이라는 회사를 공격해서 무너뜨리려 기회를 노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이야기 한다.

『삶의 균형을 잡는 것은 한 가지를 택했을 때 다른 것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여러 사항을 두고 끊임없이 조정해야 한다. 마치 한 발로 땅을 딛고 서서 균형을 잡는 것처럼 말이다. -p.214-』

이 글에 적합하게 비유되지 않을 수 있겠지만,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나이가 들면, 책이나 문자 지식으로 배울 수 없는 것들을 알 수 있다 라고...

아마도, 마인드 리셋을 잘해서 나만의 1%를 찾으려 하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스스로 쌓이는 삶의 연륜에 동떨어지지 않고, 소위 말하는 나잇값을 하는 사람들의 지혜로운 삶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막연한 생각말이다.

사실 책을 읽기 전에도 읽으면서도 드는 생각이 있다. 뭔가 하고 싶은데, 어? 벌써 이만큼 와서 달리기 도착점이 저 앞에 보일정도네? 이제 하면 얼마나 할 수 있겠어?

라며 스스로 주저 앉아 있으려 했던 시간들이 많이 있었음을 떠올리게 되었다.

물론, 뭔가를 하려면 요즘은 특히나 경제적인 할애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불가능할 수 있겠다 단언 할 수 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듯 싶다.

그럼에도, 더 늦기 전에 나 스스로를 위한, 내가 할 수 있는, 나만의 고유능력 속의 1%가 무엇인지 진중하게 할애해서 살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음에 만족한다.

물론 다른 사람은 인생 전체를 통해서~ 아니 성인이 된 후부터 이미 1%를 위해 노력하며 알차게 만들어가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이 순간에 그런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지 못하고, 제자리에 주저 앉아 있는 사람들처럼 넋놓고 정지화면인 양, 멍~하고 있는 모습을 최소화 하고, 생산적인 시도를 노력하는 시간들을 많이 만들어야 겠다는 의지와 의욕을 불태우며 담았기에 소중한 시간이었던 듯 싶다.

 

 

[네이버 책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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