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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자존감 - 마더쇼크에서 벗어나 행복한 엄마로 거듭나는 모성 회복 로드맵
메그 미커 지음, 김아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목차
들어가는 글
1장 엄마로서 자신의 가치를 이해하라
2장 중요한 친구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라
3장 경쟁을 거부하라
4장 돈과 더 건강한 관계를 맺으라
5장 혼자만의 시간을 마련하라
6장 건전한 방식으로 사랑을 주고받으라
7장 단순하게 사는 방법을 발견하라
8장 두려움을 내려놓으라
9장 희망은 내가 결정하는 것이다. 이겨내라!
10장 믿음을 소중히 여기고 행하라
옮긴이의 글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과 또한 그 내용이 개인적으로 어떠한 영향과 울림을 전해줄지 단언할 수 없음에도 책의 출간 소식을 접하고는 어디서 솟는지 모를 신념? 믿음? 암튼 읽고 나서도 부정적인 느낌을 전해주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랄까? 근거 없는 자신감에 도취되어 자연ㅅ레 읽고 싶은 욕구를 피어오르게 만들었다 할 수 있었다.
여느때처럼 책을 선택할 때 외모를 훑어보는 개인적 성향을 물리치지 못한 것이 사실이었기에 이 책 역시 그러한 나의 선입견으로 인해 책의 가치를 정해버리고 읽는 습관적 행위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었으리라..
제목을 둘러봤다. 자존감.. 게다가 앞에 수식어가 하나 더 있다. 엄마의~ 즉, 『엄마의 자존감』이었다.
대충 의미를 알고 내면에 담아두긴 했지만, 이번 기회에 정확하고 확실한 의미를 알아두어야 겠다는 생각이 나를 에워싸는 것이 느껴져서 그 생각에 순응하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었다.
자신감(自信感) 이란 어떠한 것을 할 수 있다거나 경기에서 이길 수 있다 혹은 경기를 잘 할 수 있다는 등에 대한 자신의 느낌이다. - 스포츠 -
자부심(自負心) 이란 자기 자신 또는 자기와 관련되어 있는 것에 대하여 스스로 그 가치나 눙력을 믿고 당당히 여기는 마음
- 국어사전 -
이기심(利己心) 이란 자기 자신의 이익만을 꾀하는 마음 - 국어사전 -
자아존중감(自我尊重感, Self-esteem)이란 자신이 사랑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소중한 존재이고 어떤 성과를 이루어낼 만한 유능한 사람이라고 믿는 마음이다. 이는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기준이 아닌 사적인 판단이다. 간단히 자존감이라고도 부른다. 이 용어는 미국의 의사이자 철학자인 윌리엄 제임스가 1890년대에 처음 사용하였다. 이 개념은 자존심과 혼동되어 쓰이는 경우가 있다. 둘은 자신에 대한 긍정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세부적으로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대한 긍정과 경쟁속에서의 긍정이라는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 위키백과 -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거나, 사용하는 단어는 많겠지만, 몇가지만 먼저 찾아 옮겨 보았다.
사실 성장해서 성인이 되고, 어떤 방법으로든 이성을 만나서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고... 하는 모습은 인간이 세상에 와서 죽음이라는 단어와 마주할 때까지 보편타당하다 할 수 있는 삶의 과정을 순간 순간 표현하기 위한 단어의 나열일지도 모르겠다.
요즘에야 여러가지 정보도 많고, 교육수준도 높아지고 하니 가정을 이루기 전에 알아야 할것들, 해서 알지 못했던 것들이 드러나기 시작하면 갈등과 이혼의 수순을 밟는 경우도 비일비재하지 않을까 싶다.
부모가 되는것은 누구나 그냥 거쳐가는 과정에 불과하다고 단순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지금도 자녀의 양육이나 스스로 내면을 돌아보는 이들도 증가하고 있는 듯 하지만, 반대로 애들 뭐 그렇게 다 크는 거겠지? 다른 부모들이 학원 보내며 성적 유지한다고 하니까 그렇게 하면 되겠지 학원비를 충당하기 위해 경제적 능력을 갖춰 볼까? 뭐 이런 생각들?
사실 요즘 문제시 되는 것은 이런 가족내의 대화 없음과 가족은 형태는 함께 이지만, 내면을 들여다 보면 해체되어 있다고 비유하는 경우도 본 적 있다.
부모 되는 과정을 위한 자격 시험을 만들면 어떨까? 최소한 부모가 희생의 의미가 아닌 올바른 자녀 도우미로,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 조력자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객관적 심리적 규칙이랄까? 물론 학습을 한다고 모든 개개인이 다 다른 성품과 기질을 가지고 살고 있는데, 같은 관점으로 받아들이진 않겠지만, 그럼에도 출발하는 시작점의 모습은 어느정도 유사하다는 것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말도 안되어 보이는 이상향에 마음이 쏠리니 어찌해야 할까? 이젠 부모도 아닌 내 가정, 내 형제자매도 아닌, 나 하나만을 위한 시각으로 만들어지게 강요당하는 분위기로 염색물이 스며드는 옷이나 다른 도구들처럼 서서히 물들어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함께 피어오른다.
IT 기기와 교통수단의 발달, 문명의 발달로 인해 우리나라의 일일 생활권의 의미는 물론, 인근 국가들에 가서 업무 보고 하는 데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게 되고 있음을 보면, 울 아이들이 성장하고 자랐을 때는 분명 세대를 살고 있는 지구 어느 곳 사람들까지도 묶어서 생각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관계를 맺고 사는 사람들 범주에 포함시켜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팝업이 되어 만들어진다.
이렇게 보면,
사실 내 가정, 내 아이만 생각하고
내 아이만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만을 향해 무조건 달리는 모습을
어찌 바라보고 생각해야 할까? 이런 생각들이 불쑥 솟는데,
쉽게 떨칠 수 없음을 인정하고 만다.
개인적 생각의 옳고 그름을 나누어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님을 우선적으로 이야기 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언젠가 부터 우리나라 청소년들 분위기가 컴퓨터와 학교 폭력, 사회에 나오면 불특정 다수들을 향한 범죄들...이 기승을 부리는 모습을 마주하는 것이 어색치 않음이 느껴지게 되고, 과연? 아이들 지식적 능력만을 위해 경제력 증가를 위해 가정내에서 일을 하고, 또한 예전보다 교육수준이 높아져서 남녀 구별없이 자아 성장을 위해 전문직에 종사하며 능력을 증진시켜야 하겠노라는 관점들이 함께 공존되는 듯한 이 현실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가? 에 스스로 끈임없는 물음을 계속 되뇌이며 지내고 있었고, 지금도 그러하고 있기에~ 이 책의 내용은 가볍게 다가오지 않기도 했다.
외국작가들의 책이 아무리 육아와 양육을 중심으로 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고, 또한, 베스트 셀려의 대열에 합류해서 회자되고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킬 만큼 유명세를 타고 있는 책이라 하더라도, 개인적으로는 그에 비한 공감을 많이 얻지 못했던 경험과 마주함이 빈번했음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이 책은 외국 작가의 시선으로 씌어진 책이지만, 우리 현실의 이즈음에 나타나는 여러가지 상황과 맞물려 대처하고, 적용할 수 있을 듯 하다는 뭔가 이론만이 아닌 그런 내용이지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마 개인적으로 삶의 연륜이 쌓여서일지도 모르겠다.
목차에 포함된 소주제를 살펴보며. 생각했다. 10가지 소소해 보여 오히려 주의를 기울일 필요성이나 당위성을 배재한 채, 일상에서 간과하면서도 그것들의 중요함 조차 느끼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지나칠 정도로 당연하기에 말이다.
우리의 무의식 속에는 부모님께서 그들 자신의 모든 것들 보다, 우리에게 쏟아 부으신 생활 모습들이 스며들어 익숙해 있음을 인식하지 못한 채 나름 열심히 양육한다 자부하며 온 에너지 다 퍼부으며 나란 존재적 가치조차 안중에 두지 않고, 관심사에서 벗어난 지 오래임에도 그런거지 뭐. 하고
앞만 보며 달음질 치고 생활하며 나름 열심히 살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이즈음 휙휙 바뀌는 문화 현상 속의 성장하는 자녀들은 그런 부모의 관심과 정성을 고마워 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부담스럽고 짐이 된다 생각하며 잔소리라고 치부하는 것 조차 우리의 어린 시절 그 모습 행동과 달라진 것이 없다. 다만, 정도의 차이일 뿐인 듯 하다.
이런 불편해 보이는 진실에 담긴 이질감은 부모의 마음을 갉아 먹는다.
세월이 흘러 고름이 묻어 나오고, 상처는 이미 커질대로 커져서, 약을 바르고, 노력해도 아물지 않는 그런 상태에 이르르게 되어서야.. 부모는 헷갈리기 시작한다.
과연 아이에게 시선을 올곧이 쏟아야 하나?
아님 부모인 나를 위해서? 뭔가를 해야 하나? 갈팡질팡 오락가락 하다가 죽도 밥도 아닌 그런 애매한 상황속에서 부모 나름의 심리적 아픔과 마주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수 있는데도 그 또한 인정하지 않으려 기를 쓰다가 자녀는 자녀대로 부모는 부모대로 동떨어진 생활에서 서로의 아픔만을 바라봐 달라고 소리없는 아우성을 신호로 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전혀 서로의 생각과 마음을 바라보려 하지 않고, 나만 바라봐 달라는? 내 생각이 맞으니 너는 분명 그렇게 해야해. 네 생각 따위는 중요하지 않고, 중요해서도 안되고, 정히 하고 싶으면 나중에~ 라며, 보기만 훌륭해 보이는 가이드 역할을 하며 아이들 생활 모든 곳을 체크하고 확인하려 하는 것을 이상해 하는 것이 특별한 사람으로 치부되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피어오른다.
이즈음은 삶의 모습들은 정말 행복한가? 내아이 잘되라고 무조건 공부 공부~를 외치며, 하나라도 더 해야 편히 살 수 있다고,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고 마음과 정신이 분리된 채... 물질적 풍요로움 앞에서 다른 아이들에게 뒤지거나 기죽지 않아야 한다는 대의 명분도 부모기준의 착각에서 비롯된 것임에도 오히려 아이들의 마음으로 다가가는 올바른 경로라고 목소리만 크게 하고, 우기고 있는 줄도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닌지? 하는 씁쓸함도 떠올려 본다.
나 또한 이런 왜곡되어 보이는 시선을 인정 못한 채, 자녀들에 대한 욕심의 높이를 줄이지 못하고 있었음을 알고 있다 되뇌이고, 다짐하지만, 언행 불일치적 내 모습에 자괴감이 얼씨구 좋다 하며 급습해도 힘없이 무너지고 있는 듯 하다.
완전히 다 줄여버려 오르기 편한 동네 뒷산의 민둥산의 모습... 누구나 편히 오를수 있고, 의견 나눌 수 있는 편한 장소의 언덕의 역할을 하는 부모가 되고 싶다고 호언장담 하곤 한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내면을 속속들이 살펴보면 아직 멀었다.
끝이 어디인지 모르는 곳에 덩그라니 혼자 서있는 느낌...떨칠 수 없음을 되뇌이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에 주저앉고 싶을 때와 마주하는 경험을 부인할 수 없겠기에 말이다.
그럼에도 부모이니 노력해야 겠다.
울 아이들은 세상에 한명, 나라는 자격없어 보이는 부모일지라도 유일무이하게 존재하는 한명이 아닌가?
아이들의 능력은 출생할 때는 무궁무진하게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부모라는 위치를 빌미로, 아이를 양육한다는 의미를 월권적으로 부여하기도 하며, 착각에 빠져 허덕이며 스스로 가고 있는 길이나, 이제껏 경험했던 것들이 왜곡되고, 편협하고, 오히려 부정의 의미들이 많음에도 모든 것을 인정하지 않고, 무조건 너희들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하며 원하는 방향으로 그들의 능력을 급속도로 제한하며 무기력하게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파고 드는 것 또한 쉽게 떨칠 수 없었던 이즈음의 스스로를 떠올린다.
다시 다짐한다.
부모는 아이를 만들 수 있는 자격이 없는 것이 아닐까?
- 양치기가 울타리를 만들어 놓고, 그 공간 안에서,힐끗 보기엔 하나하나 관찰하며 뒤따라 다니는 수고로움을 쏟아 붓지 않는다고 양치기의 순수한 의도를 의심하고 질책하며 힐난하는 어리석음(愚)를 범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오히려 그 양치기의 지혜로움 (=큰 울타리 안에서 자기가 보호해야 하는 무리들에게 적당한 거리를 두고, 그 공간안에서 잘 생활하고 먹이를 뜯으며 건강하게 지내고 있는 것 체크하며, 무리에서 이탈하지 않으면 자유로움과 허용을 부여해 주고 설령 양치기 기준에 어긋나는 모습이라도 여유롭게 바라봐 주고 있는 그런) 을 수용하려 하는 것이 아니고, 무의식적으로 배척하며 자녀들을 종용하고 공간 안에서도 더 작은 규제와 규칙을 제시하며 이 길이 올바르니 꼭 따라야 한다고 착각하며 지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
부모는 내 자녀들의 올바른 습관과 개성, 성향을 제대로 바라봐 줄 용기와 지혜가 필요할 듯 싶다. 내 자녀의 생활 모습이나 습관, 드러나는 소소한 행동들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하나하나 간섭하며 체크하기 바쁘고 시시비비만을 들춰내려 하고, 오히려 자녀들을 향한 믿음과 신뢰. 지지, 격려들은 커녕, 불신과 깎아 내림, 내 자녀만 할 수 있는 것들이 무한대 임에도, 현재도 잘하고 있음에도, 옆집, 옆동네, 학교 친구들이 가지고 있는 그것도 좋은 모습이 아니어도 무조건 좋아보이기에 내 아이들에게 얼토당토 하지 않게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 아이들이 부모 앞에서는 순종하는 척, 듣기 싫어도 괜히 대화라고 말해도, 통하지도 않고, 막무가내적 리액션만 되돌아 올 뿐, 무의미한 대화를 시도하지 않고 있음에도, 부모앞의 모습만이 내 아이의 모습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보는 습관을 유지하자.
- 다른 울타리의 양이 더 건강해 보인다고, 더 활동적이고 힘있게 걸어 다닌다고, 양치기가 내 울타리 안에 있는 양들과 전혀 다른 방법이 맞다고 먹이를 제공해서 배탈나게 하거나, 몸에 맞지 않는 것들을 먹이려고 노력하지만, 내 울타리 양들은 건강해지기는 커녕, 시름시름... 가라앉고 있음에도 제대로 상태조차 파악하고 있지 못하는지도 모르겠다. -
지나친 경쟁으로 내아이를 기름지고, 융숭하게 만들고, 다른 사람들보다 내 아이의 미래는 장밋빛일 거라고 호언장담하며 아이 기준이 아닌 부모 기준으로 특별해야 한다고 강제로 종요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라는 말이 떠오른다. 사촌이면 그럼에도 예전엔 비교적 가까운 친척이었다. 사촌이 잘되도, 기분 나쁘고 내 건강에 영향을 끼칠 정도일 수 있음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요즘 아이들에게 가족의 의미를 과장되게 표현하면, 부모와 나.. 조금 넓어야 형제자매라고 한다는 것을 들은 기억도 난다.
경쟁이 없어지지 않는 한, 나는 나이고, 울 아이는 울 아이인데...
소중한 능력과 모습을 가지고 살고 있는 진실을 인정하려 하지도 않으면서,
내가 다른 부모가 될 수 없음을 느꼈음에도 망각에 급습당한 채, 내 아이는 다른 아이보다 더 좋은 모습으로 자라야 한다고.... 강요하고 있기에 아이들에게 타인과 관계 맺는 법을 자연스레 마주할 수 없도록 단절시키면서, 한편으로는 아이들 사회성 없다고 문제 있다고, 일부러 만들어 주려고 시간, 경제적인 것들,무한한 정성과 에너지를 따로 할애하는 일이 자연스러움에 담겨 드러나고 있음도 눈에 띄니, 얼마나 모순인지? 갑갑하고 답답할 뿐이다.
아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나 기질을 발휘하게 하는 것이 더 좋을진데, 그런 긍정 에너지 찾고 끌어내며 즐겁게 살아가기도 버거운 한번 뿐인 부모와 자녀들의 인생이며, 삶인데...
되지도 않은 명분으로 다른 사람 닮아가기 위해 전전긍긍하며 애 쓰고, 내 자녀들까지 힘들게 하며 지내왔고, 지금도 그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책 마지막장에 이르렀을 때는 두렵기 까지 하다.
물론, 부모도 청소년기를 겪으며 성장하고, 성인이 되어, 다시 자녀를 키우고 있다.
나도 안했으면서, 못했으면서, 할 수 없었기에 부모와 숱한 마찰과 갈등을 일으키며 성장한 기억속 경험들이 생생함에도 내가 언제? 적어도 내 자녀는?
이런 생각의 끈을 자르려 하지 않고 유야무야 흐지부지 다른 사람도 다 하니까~
이러는 동안
부모와 자녀의 간격은 더 넓어져서 끝과 끝이 보이지 않는 원뿔의 아래 부분의 원의 둘레가 되지 않을까 싶다. 출발할 때는 분명 저 목적지, 결승점에 가면 만나자~ 두주먹 불끈 쥐고, 사이좋게 출발했던 것 같은 어렴풋함이 피어오르는데,
이제는 평행선 정도 되어 옆으로 시선을 돌리면 아이의 위치를, 또는 아이가 부모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거리는 언제 벗어났는지 모른 채, 결승점도 어디인지 알 수 없다.
그나마 결승점에 도착해서 확인했을 때의 부모, 자녀의 위치가, 판매되고 있는 바나나 맛 XX 의 모양처럼 중간 부분 불룩해 보기 어색할지라도 아래쪽으로 가면 비교적 가까운 곳에서 일치될 수 있어도 절반의 성공이 아닐까 싶다.
결승점에 도착해도 서로의 위치가 어디인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벌어진 원뿔의 밑둘레 호라는 모양도 부지불식간에 떨쳐 버린채, 서로 보이지 않는 방향을 바라보며 애타게 빨리 가까이 오라고 손짓 발짓하며 안타까움을 토로해 본들.... 돌이킬 수 있을까? 돌이키려고 시도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이고, 가능하고, 그런 행동에 에너지 들이는 것이 현명한 것일지... 후회하고, 안타까워하기 전에... 더 멀어지기 전에
얽힌 실타래를 풀고, 부모 내면에 담을 수 있는 자존감...을 극대화 시키는데 에너지를 할애하려는 시도를 품을 수 있는 지혜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노력하는 일이 선순위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는 것은 지나침 없어 보인다 말하고 싶다.
부모가 내 모습 그대로 가치를 인정하고, 씩씩함과 당당함으로 삶을 영위하는 것을 유지한다면, 그 모습을 바라보며 성장하는 자녀들은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생활속에서 자연스러이 내면에 자존감을 담으며 꾹꾹 채우고, 넘치게 까지 하는 것을 어려워 하지 않을 듯 싶다.
단, 자존감과 이기심의 차이는 분명 같을 수 없음을 잊으면 안될 듯 싶다.
나의 모습과 상황에 대한 만족, 감사... 내아이에 대한 만족...을 올곧게 할 수 있는 부모는 없을 듯 싶다. 상대적으로 훨씬 더 높은 위치에 있어 보여도, 개개인은 주관적 가치기준과 생각에 지배되어 스스로의 모습을 깍아 내리고, 갉아 먹는 것에 익숙한 생쥐가 아닐까 싶다.
이제는 갉아 먹는 습관을 다 떨쳐 버릴 수는 없어도....
예전보다 속도와 양을 줄이려는 시도를 해야 하지 않을까? 오히려 갉아 먹었던 부분, 현재도 갉아 먹고 있는 행동들에 대한 자책, 자괴감, 상실감에 퍄묻혀 자폭하는 것이 아닌...
이미 뚫려져 버린 구멍에 오히려 자존감의 씨를 뿌려서 성장할 수 있도록 생각의 전환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면, 그 구멍은 더 확대되지 않을 것이고, 앞으로는 이즈음 땅이 가라앉는 싱크홀적.... 위험하고 겁나는 모습이 아닌, 마음의 땅에 벌어진 틈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자존감의 뿌리에서 성장한 긍정과 즐거움, 건강함, 밝음....표현으로 갈음할 수 없는 아름다운 것들이 울창하게 가지로 뻗어져서 마음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게 될 듯 싶다.
이것이 무모한 착각이고, 억측이고, 실현불가능한 일이라도....
나 혼자만 힘든 레이스를 펼치는 마라톤 선수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라도...
더 이상 포기하고 싶지 않은 부분이고, 포기될때는 더 마음을 굳게 다잡고, 되뇌이고.... 노력해 봐야 겠다고..... 확신하며 고이고이 새겨본다.
더 늦기 전에~ 더 되돌릴 수 없기 전에..
내 자녀들이 미래로 걸어가는 모습을 가깝지 않지만, 그럼에도 시야에서 바라볼 수 있는 위치를 유지하는데 의미를 두는 것에 만족할 수 밖에 없을지라도...
Right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