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는 갈색머리로 태어나고 어떤 이는 외롭게 태어난다
타오 린 지음, 윤미연 옮김 / 푸른숲 / 2012년 2월
평점 :
품절


언제나 그랬듯이 책을 손에 올리고, 겉표지 등등 외모라 할까? 생김새? 내용 아닌 다른 것들을 살펴보기 시작한다.

어찌보면 책은 생물이 아니기에 일방적 시선에 어색해할지도 모르겠다는 말도 안되는 생각도 뇌리를 스치지만, 언제나 그랬던 것을 쉽게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이유로 내세우며 말이다.

인터넷 서점과 기타 다른 곳에서 책에 대한 선지식이랄까? 그 부분중에서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과 작가의 이름을 보니 약간 동양적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이 자연스러울 수 있겠다는 것이다.

제목의 느낌은 여러 기질과 모양, 외모를 가진 이들의 기본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그대로 다름을 인정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느낌도 내면에 담을 수 있었다.

표지의 색은 따뜻한 색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차가운 색이라 하긴 밝기? 채도? 명암? 등등이 어두워 보이지 않았기에 내용이 생각보다 어둡다거나, 가라앉는다거나, 칙칙하달까? 삶의 아픔? 고민? 등을 많이 드러내지 않을 듯 싶다는 생각도 더부어 포함시키기도 했다. 아니 이것은 개인적으로 단편에다 어두운 내용 읽는 것 자체에 호의적이지 않은 개인적 성향을 버리지 못하고, 아마도 스물 그렇다고 조금 강하게 인정했던 것일지도...

다독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이제껏 접했던 책들이 대체로 유럽이나 소위 말하는 서양이랄까? 지리적 위치의 동양에 상반되는 개념의 단어 서양 문화에서 성장한 작가들의 그것을 다수 마주할 수 있었기에 동양적 분위기를 풍기는 책의 저자에 대한 생소함을 없애려 했지만, 이 또한 쉽지 않았기도 했다.

이런 책의 주제를 담은 내용은 어찌 분류를 해야 하나? 성장소설? 일반 단편집?
어느것이든 염두에 두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왠지 그냥 전해오는 느낌으로 성장소설? 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이기적 선입견을 함께 담은 채로 책읽기를 시작했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문화적으로 물질적으로 발달한 국가에서는 바쁨과 다양성, 다변화 속에 IT 기기의 급속한 발전 속도로 인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명제 하에 여러 분야에서 관계를 맺고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럼에도, 사람들 사이에 피고드는 마음의 고요와 소통의 부재로 인해 오는 소외로 쌓이는 묘한 느낌들...

쉽게 떨치고 회복하지 못해서 크게 확대되어 단순한 아픔이 아닌 간단하게는 외로움~ 심해지면 우울증 등등

스스로 통제하지도 못하는 부정적 기운에 야금야금 잠식 당한 채 어느새인가 돌아보면 그것들의 노예로 옭아매져 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보고 어색해 하며 당황해 하며 속상해 하기도 하고, 힘들어 하기도 한다.

쉽게 보이지 않는 마음의 아픔을 치료하는 병원이 있다 하나, 다른 나라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곳에 대한 지나친 선입견으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동안 마음은 황폐헤지고, 피폐해져서, 아예 아무것도 자랄 수 없는 사막인 것처럼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물, 양분등등을 쉽게 소유하지 못하는 상태로 수직하강해서 암울하게 자기 스스로를 스스로의 방에 가두어 버리고, 나오려고 시도조차 해볼 에너지마저 고갈된 채로 어영부영 세월의 흐름앞에 쓰러지고 말지도 모르겠다.

사실, 처음에 태어날 때 외모적 형태나 등등이 구분되어지게 이루어져 삶을 시작한다는 것은 일반적 상식선에서 알고 있긴 헀지만, 외롭게 태어난다~ 라는 책의 제목을 보고는... 어? 외로운 사람도 아예 정해져 있는 거야?

물론, 책 제목은 상징성의 명제에 의해 작가가 선택한 것이겠으나, 아무튼 그런 느낌으로 순간 의아함도 담을 수 있었다. 설령 외롭게 본디부터 소유하고 다르게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 있기에, 스스로의 외로움도 감당하기 힘들어 관계 맺고 살아가는 이들의 외로움조차 바라보려 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떠올렸다.

원래 나는 그러니까? 이런 생각으로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하고, 계발하며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시시비비로 이분론적 수단으로 갈라 놓을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고, 나는 왜 이래? 왜 나만? 하는 비슷한 느낌이긴 하지만, 보다 더 부정적 어조가 강한 기운을 가득 채운 채 살아가는 이들도 있을 텐데... 이것 또한 개인 내면의 문제일 수 있으니 왈가왈부를 쉽게 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아무리 개인적 성향이 다르게 만들어져 살아간다 해도, 아직까지는 사회적 관계를 무시하지 못하고 살아갈 수 밖에 없는 보편 타당한 분위기를 간과할 수 없다면, 설령 개인의 내면에 우울하고 외롭다는 것은 누가 뭐라 하지 않겠지만, 가깝게는 그 외로움으로 인한 부정적 요소나 기운들이 가족, 지인, 친척들에게 영향을 끼치게 되고, 그러면서 관계가 소원해질 수도 있을 듯 싶고... 그러다 보면 개인의 문제ㅏ 아닌 어찌 보면 사회적 문제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비약적 생각도 하게 되었다.

모두다 외롭고 쓸쓸하고, 아무리 친한 지인이라도, 가족이라도 나는 세상에 한명이고, 혼자 삶을 살아가고, 죽음을 맞이하는 마무리를 하는 일정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리라...

그렇지만, 스스로 조금 내면에 밝은 기운과 적극적 기운을 담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면, 주위의 외롭고 우울함을 풍기는 이들에게 먼저 손내밀고, 다가가는 것은 어떠할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외로움도 분명 삶을 살아가는 속에 필요한 감정적 요소일 수 있겠지만, 방치하면 스스로는 그 굴레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묘한 힘을 가진 녀석인 듯 싶기 때문이다.

굳이 오지랖 넓게 타인의 삶과 사생활을 간섭하라는 것이 아니다. 살아가면서 말은 참 많이 한다.하지만, 대화, 진심에서 나오는 말을 사용한 그것을 가까운 가족들에게도 하루 얼마나 실행하고 살고 있는지?

되돌아 보면, 참 나 스스로 외롭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듯 싶다.

그럼에도, 톱니가 맞물려 돌아가야 하는 것처럼 모두 다 같을 순 없지만, 내가 부족한 것은 타인의 도움으로, 타인의 부족한 모습엔 내가 많이 있는 것을 나눠주며... 뭐 이렇게 살수 있는 마음이 기본 바탕에 존재하길

바라는 것은 역시 이기적 욕심인걸까?

모르겠다. 잘 살고 있다 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아직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명제 하에 독불장군이 되어 홀로 꿋꿋하게 사는 것이 아닌 유기적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피드백을 주고 받는 연결고리 내에서 얽혀 살아가야 함은 분명한 듯 싶다.

다시 말하지만, 외롭게 태어나는 사람이 나라는 개인 주위에 가까이에서 생활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나라는 개인의 오지랖적 그릇된 간섭으로 말할 수 없는, 아니 말해서도 안되는, 순수한 진정한 도움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옆에 있는 그들을 바라볼 때 별일 없어 보이고, 평온해 보이고, 특이해 보인다는 지극히 주관적 관점에서 얻을 수 있는 시선으로 전해 받은 왜곡되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극구 부인하며 그 자체를 합리화하고 인정하고 그냥 바라보고 있는 모습으로 지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주위에서 살고 있는 누군가는 외롭고, 맘이 아프고, 허전하고, 쓸쓸해서 누군가 자신에게 발걸음을 돌려 가까이 다가와주길 바라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상대의 처한 상황을 잘못 알고 있으면서 그냥 그대로 나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간과하고, 시선 돌려야 할 필요도 느끼지 못하고, 손을 내밀어야 할 가치와 중요성을 인식하지도 못한 채 마냥 방치하듯, 내가 살아야 하니까 라는 본능적 이유로 무마해 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뜬금없을지도 모르는 생각을 했다.

여러가지 현실적 상황에서 국가 내이든, 국가 밖으로 세계라는 공간에서 연결되어 살아가는 국가간의 상황을 고려해 봐도, 한정된 자원이나 여러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경쟁이라는 단어를 배제할 수 없음을 당연시 여기게 되는 듯 싶다. 그렇기에 더구나, 나를 제외한 타인에 대한 긍정적 시선 돌리는 것은 그저 에너지 낭비일 뿐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 이상한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반응이지 않을까? 하는 자체도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럴 수 밖에 없는 현실이 되어 가는 듯 하여 많이 속상하고 씁쓸하다.

앞으로 우리 나라의 모습? 세계와 유기적으로 살아가야 하는 상황들이 어떤 모습으로 급격하게 바뀌게 될지는 예측할 수 없기에, 함부로 단언할 수 없을 수 있지만,

그럼에도, 개인과 개인 사이에 다르게 드러나는 모습들을 바라보고, 왜곡되게 맘대로 판단하고, 손가락질 하며, 뒷담화의 소재로 사용하기도 하고, 나랑 다르니까 하는 차별적 시선으로 대하고 살아가는 것이 아닌

의도적이라도, 혼자 살 수 없음을 되뇌이고, 반복해서 확인하고, 인식하기도 하며...

함께 어울려 톱니바퀴 맞물려 돌아가야 제대로 기능과 역할울 하듯 나랑 차별된 모습으로 내 모습만 중요하고, 소중하고 가치있다 생각하는 것이 아닌, 나 혼자 할 수 없는 또 다른 모습이나 기능, 역할을 타인이 소유한 능력으로 채울 수 있음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확대되었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내것만 최고, 나랑 다르니까 넌 잘못이고, 필요없는 거야.. 라고 차별적 시각이 아닌, 다른 모습, 외모적 모습- 갈색 머리라면 - 눈으로 확인 가능하기에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면 용이하게 찾을 수 있을 듯 하다.

뿐만아니라, 내면의 모습 - 외로움을 가지고 태어나서 지금도 외로움으로 아파하고 있는 사람은 쉽게 알 수 없을지 모르지만, 조금 감정적으로 여유있는 사람이 먼저 - 을 제대로 인식하려는 이타적 시선을 소유하려고 노력하면 어떨까?

서로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음을 부인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연결고리에 꾸준히 쏟아 붓는 에너지가 헛되지 않도록, 관점을 소유하고 일상에서 살아가면, 현재 사회의 문제인 소통의 부재로 비롯되고, 야기되는 극단적 부정적 모습을 한꺼번에 바꿀 수는 없을지라도, 지금보다는 조금 덜 삭막한 서로에 대한 기본적 배려가 존재하는 삶 속에서 숨을 쉴 수 있는 여유가 존재하는 그런 따뜻한 기운이 차고 넘치는 분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담아 보게 되었다.

접해보지 않은 동양적 시선을 소유한 작가의 시선이 처음엔 새롭고 어색이란 말로 갈음할 수 있었던 듯 해서, 쉽게 가까이 하기엔 멀리 떨어진 당신인 듯... 멀뚱멀뚱 멀찌감치 간격을 둔 채로 책속 엿보기로 시작했다가, 책을 덮는 순간에 그나마 (물론, 개인적 시각에 올곧게 기초를 둔 생각임도 알고, 왜곡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아하~ 이거구나~! 하는 내면의 작은 울림이 되어 파고드는 소소한 반향을 느낄 수 있었음에 만족하고 싶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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