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서 온 아이
에오윈 아이비 지음, 이원경 옮김 / 비채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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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동화책을 집어 들게 되는 경우가 있다.

어린 조카에게 읽어 줄 책을 고르다 보면 어린 시절에 즐겨 읽었던 책들이 눈에 띄게 되고 머리 속에 간직했던 당시의 설렘과 두근거림, 그리고 이제는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유명 동화가 주는 이야기들은 오랜 시간 동안 사랑을 받는 이유를 알 수 있을 만큼  내용들이 훌륭함을 다시 느끼게 된다.

 

이 책은 어른들을 위한 동화처럼 읽힌다.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은 백설공주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그와는 조금 다르게 설정이 되어 있는 내용들, 저자가 실제 알래스카란 지역을 잘 알고 있는 만큼 책 전체를 아우르는 배경의 묘사가 추운 날씨를 싫어함에도 매혹적으로 이끈다.

 

잭과 메이블, 이 부부는 갓 태어난 사내아이를 잃고 주위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알래스카로 왔다.

1920년대가 배경인 책의 풍경은 지금처럼 비행기라든가 철도, 기차, 자동차라는 이기 문명의 혜택이 없었던, 기껏 이용할 수 있는 것 정도가 철도, 막 광산의 개발 붐으로 인해 추운 계절이 닥치면 광부로서도 일하는 사람들을 받는 곳이다.

 

메이블은 잭을 사랑하고 자신의 뜻에 따라 알래스카로 이사를 왔지만 잃은 자식에 대한 그리움, 주위의 교류가 없는 단조로움에 자살까지 시도해보게 되지만 이내 집으로 돌아온다.

 

첫 눈이 내리던 날, 부부는 밖에 쌓인 눈을 이용해 눈사람을 만든다.

모자, 옷, 장갑까지 모두 걸쳐 입은 여자아이 눈사람, 그 눈사람은 하루 밤새에 자취를 감추고 이내 한 여자아이가 소리도 없이 그들 주위에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 어느 때는 죽은 토끼가 집 앞에 있을 때도 있었고 그 소녀의 발자취를 따라 쫓아가 보려 하지만 이내 소녀의 행방은 오리무중, 그 와중에 끈질기게 그 아이에 대한 접근은  아이가 서서히 경계의 벽을 허물면서  친근감을 만들게 된다.

 

파이나-

소녀의 이름이다. 봄, 여름, 가을을 산속에서 지내는 아이, 추운 겨울이 오고 눈이 내릴 때쯤이면 이들 부부를 찾는 아이는 그렇게 그들 부부 사이에 소리 없이 가족이란 의미로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그 아이로 하여금 얘깃거리가 생기고 대화가 이루어지며,  이웃과의 소통을 통해 그 소녀에 대한 수소문을 하지만 모두가 모른다는 말, 설령 그 소녀의 존재가 있다 하더라도 보지 못한 사람들이기에 이들의 말을 믿지 않는 진기한 풍경이 이어진다.

 

이 책의 특징은 한없이 넓게 펼쳐진 알래스카란 땅을 배경으로 각 계절마다 피어나는 꽃들과 열매, 농경지 개간을 위해 말을 사용하고 블루베리를 이용한 잼 만들기와 파이 굽기, 닭을 키우고 한 겨울을 나기 위한 양식으로 사용할 무스를 사냥하는 모습들이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 점이 한 폭의 그림처럼 느껴진다는 점이다.

 

지금의 매연과 이기 문명이 하루라도 단절이 된다면 겪게 될 불편한 사항들을 감안한다면 요즘의 슬로 시티란 개념의 말이 무색할 정도의 당시 생활상들의 모습이 추운 계절에만 찾아오는 그 소녀의 이미지와 그 소녀를 기다리면서 한 해를 살아가는 부부의 모습들의 겹쳐지면서 잔잔한 동화의 이야기처럼 들려준다.

 

파이나를 보면서 메이블은 어린 시절 아버지가 들려주었고 소장하고 있는 동화책 속의 이야기가 실제로 자신들과 파이나에게 닥쳐올 것처럼 두려움에 떨지만 파이나 자신의 삶은 그녀 스스로 결정하는 것, 이 책의 전개 과정은 눈이  내리는 알래스카의 풍경과 더불어서 아름답고  쓸쓸하면서도 시린 이야기를 그린다.

 

과연 파이나는 어디로 갔을까?

아직도 파이나가 돌아오길 기다리는 사람들을 파이나는 알기나 한 걸까?

 

책 속의  파이나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대화체 따옴표가 없다.

그래서 더욱 신비하게 느껴졌던 파이나란 소녀의 존재는 동화 속에서 나온 인물처럼 여겨지기도 했던 것이 아니었나 하는 착각과 함께 사랑하지만 자신의 일부분들을 버리고 떠나야만 했던 발자취가 여전히 궁금증을 불러일으킨 이야기, 연일 무덥고 습한 날씨에 추운 설원의 나라를 배경으로 읽는다는 것도 무더위를 날려 줄 시간이 되지 않았나 싶다.

 

러시아 설화 스네구로치카의 '눈 소녀'에서 이야기를 착안해 이 책을 썼다는데, 그러고 보니 러시아가 알래스카를 미국에 팔아넘긴 아픈 사연이 있었네.~

 

2013년도 퓰리처 상에 노미네이트 되었던 작품인 만큼 대중성을 제대로 겸비한 책이란 생각이 든다.

 

눈에서 와서 눈으로 돌아간 파이나, 책 묘사처럼 실물로 보고 싶단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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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하이든
사샤 아랑고 지음, 김진아 옮김 / 북폴리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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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지닌 인격 중에서 자신 스스로도 몰랐던 품성을 지니고 있다면?

아마도 사이코패스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 패턴과 그 실행에 있어서 커다란 일을 저지르게 됨을 볼 때면 어떻게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게 된다.

 

완전범죄는 없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완전범죄란 말은 아마도 심증은 있으되 어떤 결정적인 단서나 물증이 없이 미완결의 상태로 남아 있는 미제사건이 다른 말로도 쓰일 수 있는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책을 접했다.

 

 

헨리는  유명한 소설가다.

그의 작품은 영화로도 판권이 팔릴 만큼, 유명 인세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현시점에서 아내 마르타와 같이 살고 있다.

하지만 그에겐 말 못 한 비밀을 간직한 채, 몸을 사리고 살아가고 있기도 하다.

소설가로서의 평판에 걸맞은 그의 글 솜씨는 소설가로서 책을 출판했다는 사실 자체가 어불성설이며 그 까닭은 그의 작품 모두 아내 마르타가 쓴 것이기 때문이다.

 

은둔형에 가까운 마르타-

 자신은 오로지 글을 쓰는 것에 만족한 삶을 영위할 뿐, 작가로서의 길을 걷는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으며 이는 결과적으로 출판사에 작품을 보낸 헨리가 졸지에 소설가로서 행세를 하게 된 것으로 인생역전의 길을 걷게 되는 계기가 된다.

 

두 부부 사이에 합의는 묵언적으로 그렇게 실행이 됐고 출판사 편집부에서 일하는 베티와는 어느덧 불륜의 사이로 발전, 뜻하지 않게 임신이란 소식을 듣게 된다.

 

마르타를 사랑하는 헨리, 아내에게 말을 해야겠다는 결심 하에 베티를 죽이려는 결심까지 하게 되고 베티를 절벽에 위치한 곳에서 만나기로 한다.

 

그 장소에서 차를 몰고 온 베티를 멀리에서 본 순간 차를 밀어버리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정작 죽은 사람은 아내 마르타란 사실을 알고 경악을 하게 된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졌을까?

 

자신과 베티와의 불륜을 알고 있던 마르타가 베티의 차를 타고 만남을 약속한 장소로 갔던 것이 불행을 자초한 결과로 이어진 사건은 이후 헨리의 교묘한 전략에 의해 경찰 조차도 범인으로서 생각을 하고 있지만 결정적으로 그를 옭아맬 증거가 없기에 난항을 거듭하는 과정이 스릴의 맛을 즐기게 한다.

 

헨리는 그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해 비밀에 싸인 남자,  마르타는 그를 그렇게 부부로서 사랑을 해 왔고 베티 또한 자신의 임신을 알고 행동을 보인 헨리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사건의 진행을 지켜보지만 헨리의 전략에 또 하나의 희생물로서 이용을 당한다.

 

이 책의 특징은 악인은 악인으로서의 행동만이 아니라 그 안에 또 다른 품성을 지니고 있는 하나의 인간을 보는 재미를 준다는 데에 있다.

헨리의 행동을 보면 악인은 분명한데, 그 안에 내재해 있는 또 하나의 착한 심성을 가진 또 하나의 자아가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읽게 되는 과정이 독자들로 하여금 혼란에 빠뜨리기 때문이다.

 

죽은 사슴이 고통 없이 빨리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나 자신을 미행해 온 보육원 동기생을 죽음에 몰아넣을 수도 있었을 상황에서 그를 구해주고 오히려 그가 헨리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되는 상황을 연출하는 장면에선 의도적으로 행하지 않은 행동이 오히려 사건의 해결에 도움을 주는 격이 되어버리는 타이밍의 여건이 작가의 촘촘한 구성의 틀에 짜여서 빈틈을 보일 수가 없게 만든다.

 

그도 알고 있다.

자신이 언젠가는 범인으로 밝혀질 것임을, 그러기에 그는 생각한다.

비밀을 간직하며 살아간다는 것과 진실 안에 거짓이 들어감으로써 어떻게 사람들을 혼돈에 빠뜨리게 되는지를....

 

- 거짓말쟁이들은 잘 알겠지만 거짓말이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으려면 아주 약간의 진실이 들어 있어야 한다. 한 방울만 들어가도 충분할 때가 많지만 중요한 것은 거짓말 속의 진실은 마티니 속의 올리브와 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결코 자신의 행동의 차후의 결과까지 생각해서 보인 행동들은 헨리란 인물에 대한 탐구를 하게 만들고 완전범죄로 가기 위해 그가 실행한 일련의 일들은 대사와 대사의 맞물림이란 톱니바퀴가 어떻게 맞부딪쳐 돌아가는지, 그것을 따라 읽어가는 독자들을 현혹시키고 이런 맛에 책을 읽는다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 "비밀이 있다는 게 얼마나 괴로운 건지 자네는 모를 걸. 그건 마치 기생충과 같은 거야, 영양분을 빨아먹으면서 점점 크게 자라지. 급기야는 심장을 갉아먹고 이제 밖으로 나오려고 해. 까딱하면 입 밖으로 튀어나오고 눈 위로 기어 나온다고.!" -p 51

 

 


- 체포되어 무거운 벌을 받게 될 가능성이 거의 백 퍼센트에 육박하는데도 범죄자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아마도 검거율이 '거의' 백 퍼센트이기 때문일 것이다. 통계란 어디까지나 내 얘기가 아니라 남의 얘기니까. 그리고 통계라는 것이 '드러난' 범죄를 다루기 때문이리라. 드러나지 않은, 말하자면 들키지 않고 '성공한'  범죄는 비공개의 천국에 머문다. 여기서 도출할 수 있는 결과는 내년에도 올해만큼 많은 범죄와 복수가 발생하리라는 것이다.그래서 우리는 불길한 예감을 떨칠 수 없다.

 

범인이 잡히지 않고 유유히 사라지는 것을 생각해 보니 문득 '유주얼 서스펙트'란 영화가 생각이 난다.

천연덕스럽게 형사와 마주 앉아 강심장을 드러내며 조목조목 일련 하게 알리바이를 성사시키는 주인공의 허를 찌르는 마지막 압권을 결코 잊을 수가 없는 장면 중에 하나이기에 이 책에서 나오는 헨리의 심리를 따라가 보면 자신의 죄를 인정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저지르게 된 살인, 정확히 말하면 사고로 시작해서 그럴 듯 하게 구렁이 담 넘어가듯 계획하에 저지르는 행동들이 범인은 실제 가까이 있지만 주위의 사람들이 오히려 피해를 입게 되는 상황들이 그럴듯 하게 그려진다는 점에서 완전범죄의 성립의 가능성도 있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우리는 살면서 항상 바른 말, 참된 진실만을 얘기하고 살아간다면 더할 나위 없는 삶이겠지만 때때로 뜻하지 않게, 아니면 상황에 맞춰서 고의적인 거짓말을 하게 된다.

헨리의 심리를 따라가다보면 일말 그의 행동에 왜 그런일들이 벌어져야했으며 고도의 두뇌게임을 벌이는, 그러면서도 영화 리플리를 연상시키는 듯 하지만 다른 패턴의 구성들이 촘촘하게 그려진다.

 

 

'한 번도 혼자인 적이 없는 것보다는 항상 혼자인 것이 낫다'란 문구로 대표되는 그의 작품 속의 문장, 정확히는 아내 마르타가 쓴 구절이기도 하지만 헨리의 인생을 대변해 주는 말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의 악몽으로부터 살기 위한 인생의 길을 간파한 그 답게 나머지 인생의 길도 여전히 혼자이니 말이다.

 

 

악인은 그 형량에 맞는 벌을 받은 것이 마땅하지만 때론 정의가 보통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돌아가지만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책이기에 색다른 스릴을 읽길 원한다면 실망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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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이수현 옮김 / 비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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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집을 처음 접한 것을 뒤로하고 이번에 장편소설을 통해  작가를 다시 만났다.

처음 접한 작품이 SF를 다룬 소설집이었기에 이 책에 대한 기대도 커짐을 느끼면서 읽기 시작했는데, 느낌이 참 좋다.

 

가끔 방송에서 연예인들이 나와,  만일 타임슬립을 이용할 수 있다면 어느 시대, 어떤 장소, 누구로 경험해보고 싶은가 하는 질문들을 던지고, 각 개인들마다 내놓는 기발한 답들은 나도 모르게 현실에선 비록 어렵지만 공상적으로나마 상상을 해보곤 하던 시간이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나게 했다.

 

아인슈타인은 머지않아 인간이 시간을 정복할 날이 올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그렇다면 과연 타임머신을 이용해 과거의 어느 시대로 가 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예측한 이론의 근거들에 비추어보면 가상의 이야기라 할지라도 과학의 발달로 인한 앞날은 그 누구도 장담할 수는 없는 법, 그렇기에 방송 드라마에서도 이런 장치를 이용한 극들을 보고 있노라면 허구지만 재미를 느끼는 것이 아닌가 싶다.

 

배경은  1976년 6월 9일이다.

이날은 흑인 여성 다나의 생일이자 약혼자인 케빈과 새로 살 집에 이삿짐을 정리하게 되면서 시작이 된다.

갑자기 현기증을 느끼는 다나, 깨어나보니 케빈과 새 집은 온데간데 없고 어느 숲 속에 자신이 있다.

이 곳은  1815년 메릴랜드 주의 숲. 왜 자신이 이상한 과거의 장소로 와 있는지도 깨닫기도 전에 호수에 빠진 한 소년을 보게 되고 본능적으로 그 소년을 구하게 된 다나, 하지만 소년의 엄마는 흑인이 자신의 아들을 구한 사실을 알고 경악을 하게 된다.

 

이러한 시간의 역 이동은 순간적으로 반복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현재인 1970년대와 과거 백인이 소위 말하는 흑인 노예를 다루던 시대를 오가며 겪게 되는 일들을 다나란 여인을 통해 보여주는데, 다나란 흑인 여성이 처한 당시 1815년의 시대를 살아갈 때는 오로지 그 당시에 맞추어 살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현대적인 의식 속에 살아가는 현재의 흑인 여성 다나는 노예를 하나의 소모품으로 생각하는 백인들의 시선에서 이상하게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 도망 다니다 잡혀오면서 매 맞고 다시 노예의 생활을 하는 다나의 모습을 통해 작가는 자신의 뿌리와 인종적인 차별, 그 안에서도 힘없는 여성이란 존재가 지닌 연약함을 무방비로 강간하고 이용가치가 없을 시에 다시 팔아버리는 행위를 하는 백인들의 행동을 보여준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얼마 전 케이블에서 방영한 뿌리 4부작이 생각났다.

아주 어릴 적 보았던 알렉스 헤일리란 작가의 뿌리는 무척 길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방영된 것은 진액만 뽑아서 만든 것인지 좀 짧다는 아쉬움을 주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쿤타킨테의 딸이 주인집 딸의 때로는 친구로서, 때로는 장난감이란 존재로서 동거하다 끝내는 팔려가고 팔려간 백인 주인에 의해 강간을 당하고 아이를 낳는 장면들, 백인 감독관들의 무차별적인 흑인 노예를 길들이거나 총살하는 장면들은 흑인의 역사를 보는 듯한 느낌과 울분, 통탄을 다시 느끼게 해 준 드라마였다.

 

특히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들의 전개를 보면 여성의 필치답게 흑인 여성인 다나의 시선과 행동을 통해 인종과 노예란 제도, 특히 젠더란 문제를 공상이란 장치를 이용해 결합해서 시도한 점들이 상당히 어색하지 않게 그려졌다는 점이다.

 

흔히 말하는 공상 속의 시간으로 들어가 이미 과거의 결과물을 알고 있는 주인공이 위험에 닥쳤을 때 어떤 행동을 하면 위기를 모면한다는 식의 모험극이 아닌 인간이 이룬 사회란 토대 위에서 벌어졌던 각 역사 속의 인식 문제를 소설이란 장치를 통해 극명하게 보여줬단 인상이 기억에 남게 하는 작품이다.

 

이 책 속에서 나오는 힘없이 당하고 사는 흑인들의 삶은 저자 자신들의 조상의 일들을 그린 것이었고, 지금은 많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인종 용광로란 이름을 달고 사는 미국이란 나라의 독특한 정치와 인종들 간의 불화는 이미 일찍이 이런 점을 느끼고 있었던 저자의 생각을 드러내 보인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500페이지가 넘는 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속도감이 좋게 읽힌다.

이 말은 다음 장면에 대한 기대심을 증폭시키는 저자의 구상력과 필치, 그리고 소설이라고는 하나 인간 사회에서 벌어진 인류학적인 문제점과 사회적으로 바르지 못한 처사에 대한 일들을 풀어낸 저자의 역작이었기에 가능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역사 속에서도 신분차별이 있던 시대가 있었던 만큼 이 책을 통해서 우리나라의 역사도 생각나게 만든 작품, SF계의 ‘그랜드 데임’이란 이름을 받을만하다는 생각이 들게 한 작품이 아닌가 싶다.

 

윈제인 KINDRED를 한국식으로 드러내 책 제목으로 삼았으면 훨씬 좋았겠단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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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드차일드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이수현 옮김 / 비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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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SF계열의 소설가들을 꼽으라면 대표적인 작가들이  아이작 아시모프, 아서 클라인 , 로버트 하인라인, 스티븐 킹이 생각나는데, 이 작가의 이름은 처음이었고 따라서 작품도 처음 접해본다.

 

 알고 보니 일부 이 작가에 대한 작품이 아는 사람들 사이에선 유명한 것이었고 절판되다시피 했던 작품들과 더불어서 처음으로  작가의 단편집과 저자의 에세이 두 편을 포함한 것으로 책이 출판이 되었다.

 

저자는 흑인이다.  흑인이면서 여성, 더군다나 SF계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남성 위주인 것으로 생각하고 또 대부분 그런 작품들을 대해왔기에 이 작품은 어떤 다른 점이 도드라져 보이는지 궁금증이 일었다.

 

한마디로 정말 독특한 시선, 생각과 사고력, 그에 따르는 작가의 흑인이면서 여성이란 범주에 머물지 않는, 소개면을 보지 않았다면 여성의 작품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처음부터 빨리 읽히는 작품은 아니었다.

기존의 판에 박혀있는 듯한 설정과도 약간 다르고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와 이해가 가지 않았던 부분들을 다시 들춰보게 만드는, 여기에 덧붙여 작가의 해설 부분들을 접할 때와 그렇지 않고 읽을 때 받아들이는 느낌들이 완전히 다르다는 점이 이 책에 대한 소장가치를 더해준다.

 

여러 내용들 중 책의 제목인 블러드 차일드가 아무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다.

각종 상을 휩쓴 작품인 만큼 인류에 대한 가치와 그에 따른  먼 미래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읽어도 무방할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배경은 인간이 숙주의 몸으로서 살아가게 되는 설정인데, 여성이 아닌 남자 주인공의 몸에 자신의 종족을 심어 퍼트리는 트가토이란 외계 생명체와 그들이 보호하고 보살펴주는 대가로 자신의 몸을 빌려주는 일을 하는 지구인들의 삶을 그린 이야기다.

 

여성이 아닌 남성의 몸에 기생하고 여성처럼 임신한 몸으로 변해가는 남성들의 변화, 어떤 반기를 들 생각조차 못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일인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지구인들의 삶을 그린 이 책은 비록 가상의 소설이긴 하지만 인간의 오만에 가득 찬 세상을 비판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

 

슈왈제네거가 출현한 영화가 문득 생각난다.

그 영화는 코미디에 가까운 영화였지만 역시 남자가 임신한 상태를 그린 영화였던 기억이 남는데, 여성들이 겪을 수 있는 갖가지 임신 증상과 점점 불러오는 임산부들의 상태를 여러 상황에 맞춰 그렸다는 점에서 당시엔 웃으면서 봤지만 이 책 속에서 그려지는 인간 남성 숙주들의 삶은 그렇게 밝지만은 않게 그려진다.

 

흑인이면서 여성이기에 그런진 몰라도 책 중간에 나오는 대사들을 보면 자신의 조상들의 삶을 투영하는 듯한 대사들을 통해 외계 종족이 지구 인간들을 다루는 부분들은 형식만 SF를 빌려 왔을 뿐 작가가 드러내 보여주고자 하는 부분들을 나타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게 한다.

 

 

이밖에도 DGD특정 인자를  가진 화자가 등장하는 저녁과 아침과 밤, 가족이란 단어를 새삼 돌아보게 만드는 가까운 친척. 버스 안에서 난투극이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넘어감, 이 외에도 다른 내용들을 다룬 것들도 마찬가지로 디스토피아의 어두운 세계를 조명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미래는 디스토피아로 가는 것이 아닌 오로지 인간들이 어떤 방향으로 이끌고 나가는지에 따라 미래의 모습은 달라질 수도 있음을 느끼게 해 준다.

 

휴고상과 네블러상을 동시에 수상한 저자다운 이력을 느끼게 해 준  작품들을 통해 작가의 새로운 발견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고,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자전적인 에세이  두 편, 또한 작가의 생각을 알 수 있게 하는 것이기에 단편이지만 중,장편 같은 느낌들을 받을 수 있는 책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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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관의 조건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0
사사키 조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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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들마다 선호하는 장르가 있듯이 그 안에서도 시리즈로 출간하는 작품들이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경찰관이나 형사가 주인공인 시리즈가 많은 것을 보면 독자들의 호기심과 주인공들의 활약이 그만큼 활력이 있게 그려진다는 뜻이란 생각이 든다.

 

일본의 대표적인 경관 시리즈로 이름을 알린 사사키 조-

그동안 출간한 작품인 '안조 시리즈'란 이름으로 각인이 될 만큼 경찰관들의 세계를 가장 내밀하게 그려낸 작가가 아닐까 싶다.

 

오랜 공백을 깨고 출간한 시리즈가 바로 이 책, '경관의 조건'이다.

전 작인 '경관의 피'에 이은 세월의 연결 고리로서 안조 가즈야가 등장한다.

안조 가즈야의 할아버지, 아버지의 대(代)를 이은 경찰관 신분은 책 전체에 짜릿한 스릴과 흥분, 그리고 점점 조여 오는 실체들과 마주하게 되는 구성들이 지칠 줄 모르는 독서력의 힘을 뒷바침 하게 해 준다.

 

아버지가 각성제 과다복용으로 인한 인질 살해범에 의해  현장에서 순직 한 후인 9년이 흐른 시점에서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아들 안조 가즈야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경찰관이란 신분을 달게 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타 동료들에 비해 월등히 뛰어난 수사력과 범인 검거망을 자랑하는  가가야 히토시 밑에서 일을 배우게 되는 그는 사실 상부의 지시에 따라 가가야의 행동에서 경찰관으로서 어긋나는 점을 포착하라는 지시를 받고 있는 상태다.

아무리 뛰어난 실적을 자랑한다지만 타 경찰관들에 비해 경찰과 범죄 조직 사이를 넘나드는 그만의 특화된 친화력이 오히려 경찰 내부에선 감찰의 대상으로 바뀌게 된 것.

 

범인을 잡기 위해 각성제를 보유한 혐의는 곧 안조의 고발에 의해 검거가 되고 이는 각성제 불법 소지죄로 체포되었지만 법정에서 범죄조직의 이름과 경찰관과의 관계를 폭로하지 않은 채 경찰 조직에서 쫓겨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마약밀매에 대한 조직들의 변화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경찰로서 파악하는데 한계를 느끼던 차, 서로 다른 부서 간의 정보 교환 실패로 현장에서 경찰관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만다.

 

경부 시험에 합격한 후 조직범죄 대책부 제1 과 제2대책 계장으로 발령받은 상태에서 안조가 행동한 결정은 타 부서의 부하 죽음으로 결말을 맺게 되었고 이는 같은 경찰관이란 조직 내에서도 서로 원망과 불만, 질타의 시선을 느끼는 신세가 된다.

 

고심 끝에 다시 가가야를 불러들인 경찰은 그를 예전의 경부라는 계급으로 역시 조직범죄 대책부 제5과의 계장으로 복직시키게 되고 이후 두 과는 같은 목적을 두고 다른 방향을 통해 밀매조직에 대한 검거를 위해 조사를 해 나간다.

 

언뜻 보면 자신을 고발한 부하에 대한 원망 때문에 안조에 대한 사사건건 불만에 싸인 가가야의 모습을 기대할 수도 있었을 글의 구성은 전혀 달리 흐른다.

 

안조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정통적인 수사기법대로 지휘를 하면서 범인을 색출해나가는 과정을,  여전히 독단적인 개인행동으로 그의 예전 실력을 발휘하는 가가야의 행동은 녹슬지 않은 그의 연결고리 답게 뒷골목 세계 두목들과 뒷 배의 다른 정보원을 통한 범인 색출 방법이란  상반된 면을 갖고 있기에 읽는 독자들은 어떻게 한 지붕 아래에 두 가족이 한 곳에 모이게 되는지를 때때로 안조의 생각으로, 다른 한편으론 가가야의 행동과 말, 시선으로 같이 들여다볼 수가 있는 점이 재미를 돋운다.

 

뒷골목 세계의 룰을 알고 그에 따른 상응 법을 이용해 범인을 색출하는 방법이 과연 경관이란 직업을 가진 자로서 올바른 수사법인가? 아니면 안조처럼 경관으로서 지닌 모든 정보와 직감을 이용한 것을 토대로 범인 조직을 잡는 것이 옳은 방법일까?

 

책은 이 두 갈래 길에 들어선 스승과 제자의 관계처럼 보이던 두 사람 간의 처신과 방법들을 보여주지만 책을 읽으면서 어느 누가 바른 방법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범인 잡는 목적은 같되, 경관으로서 지닌 사명감만은 분명 두 사람 사이엔 다른 의견은 없을 테니까...

 

호루라기, 그것은 경관으로서 지녀야 할 하나의 몸에 지니고 다니는 필수품이지만 같은 경찰 조직 내에서의 경쟁 심리는 같은 사건을 두고 서로가 명예심과 성취도를 먼저 이루려는 점 때문에 여러 번 결점을 드러낸 점, 가가야처럼 경쟁 심리가 아닌 오로지 자신이 뜻하는 목적을 이루고자 했을 때처럼 행동했더라면 결말들은 어떻게 달라졌을까를 생각해보게도 된다.

 

동료들부터는 범죄 조직과 연관을 맺고 있다는 의심을 받은 남자, 하지만 그는 뼛속까지 경관이었단 점을 드러낸 부분들이 눈물을 쏟게 만들었다.

 

일본 아마존 독자평 전원 별 다섯이란 신화의 책 띠지가 정말 와 닿을 만큼 시각적으로나, 청각적으로나, 모두가 실제처럼 느끼게 만든 저자의 섬세한 표현들이 마치 실제 경관이란 직업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을 들게 할 정도로 철저하게 그들만의 세계를 표현해냈다.

 

오랜 시간 끝에 나온 책인 만큼 독자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게 한 저자의 책을 기다려온 독자라면 꼭 읽어보길 바란다. 

 

경관의 조건, 책 제목이 의미하는 것처럼 가가야 히토시, 그는 진정한 경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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