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2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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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시절 방학 과제물로 모형 만들어 오기란 제목 하에 공작 숙제가 있었다.

그럴 때면 항상 당시 고등학교에 다니는 사촌 오빠가 집에 들렀다.

지금도 유행하는 광고 음료 상자를 약국에서 갖고 오면 먼저 연필을 잘깍고  하얀 종이에 대충 쓱싹쓱싹 연필로 그림을 그리고 여기저기 고갯짓을 하면서 생각을 하고, 그러면 어느샌가 하얀 종이는 그냥 하얀 백지가 아닌 하나의 건물이 우뚝 선 모습으로 변형이 된 종이로 되어 있었다.

그 옆에서 엎드려 오빠가  무엇을 그리는 것일까? 연신 오빠 쳐다보고 종이 쳐다보고....

 

잠시 한눈을 판 사이에 음료 상자는 2층 양옥집으로 변신을 한다.

위에 옥상이 있고 그 옥상에는 나무와 작은 채소밭이, 아래에는 층마다 빗물받이와 함께 창이 닫혀 있는 곳도 있으며 열려 있는 곳도 있고 마당에는 개와 개집, 그리고 쉴 수 있는 작은 마루 형태의 사각형 의자와 커다란 나무가 서 있었다.

한 순간에 변해버린 변신의 상자는 내겐 커다란 충격과 놀람이었고 그 이후에도 계속 공작 모형은 오빠의 손에 해결을 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때부터였을까?

결국 오빠는 건축학과에 들어갔고 졸업할 즈음엔 학교에 공모전에 당선이 되어 학교 건물에 이름을 올리게 됐고 그런 영향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사촌 아이도 지금 건축을 전공하고 있다.

 

당시의 연필이 스쳐 지나가면서 완성되어가는 설계도를 보아서였는지 모르겠지만 건축에 관한 노벨상을 누가 탔다더라, 아니면 여행 중에 보는 건축물에 대한 설명을 듣는 것을 좋아한다.

 

이처럼 눈과 귀로 보는 실제의 건축물은 기본이지만 책을 통해서 고스란히 그런 느낌을 받는다면 작가의 대단한 필치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앉아서 바로 그 지역의 건물을 보고 싶다는 유혹을 느낀다면, 저자로서의 기쁨은 무척 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랜만에 건축에 관한 책을 접했다.

그냥 전문적인 건축에 관한 책이 아닌 자연과 그 계절에 걸맞은 향기와 풀벌레 소리, 새소리, 창을 열면 환한 태양이 안으로 서서히 스며들면서 전체적인 채광을 밝게 해준다는 느낌을 고스란히 독자가 느끼고 받아들일 수 있는 책-

 

 

 

사실 이야기는 짐작해보건대 50이 약간 넘은 '나'가 23세에 처음 발을 들였던 건축 사무소 사장님이었던 노 건축가의 여름 별장에서 보낸 한 달 여남은 기간의 과거를 회상하면서 다시 30여 년이 지난 후에 이 별장을 찾아서 여러 감상에 젖는 이야기를 그린 책이다.

 

젊은 신입사원을 뽑지 않기로 유명한 건축 설계 사무소에 자신이 그린 설계와 신입사원으로서의 채용을 바란다는 내용을 보낸 이후 정말 놀랍게도 채용이 된 나의 이름은 사카니시 도오루다.

 

평소 존경하던 무라이 슌스케의 설계 사무소에 직원이 된 후 매년 여름 동안 사무실을 도쿄에서 여름은  가루이자와로 옮겨 설계에만 전념하는 이색적인 회사로 그려진다.

 

여름 별장에서 온 직원이 합숙을 하면서 일상에서 벌어지는 잔잔한 일들은 무라이 슌스케의 새벽 산보로 시작해서 도시보다 맑은 공기와 그 탓에 일찍 찾아오는 어둠과 가슴이 탁 트일 정도의 공기 냄새, 장을 봐오고 음식을 만들면서 설계에 관한 토의를 하는 일반적인 일들을 그리고 있지만 그 안에서는 사람 냄새 외에 건축가로서 건축을 바라보는 자세와 신념, 긍지, 하나의 건축물이 탄생하기까지의 전 과정이 그려져 있기에 건축에 문외한인 사람들이라도 하나의 걸작품이 만들어지는 데에 걸리는 노고와 여러 가지 보이지 않는 미세한 부분들을 경탄하면서 읽을 수가 있다.

 

 

 

 

 

 

여기에는 물론 로맨스도 들어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나'란 인물의 인생을 관통하고 있는 하나의 과정 중에 있는 있다는 점과 실제 문무 장관의 부탁으로 국립현대 도서관 설계 공모전에 응하기 위해 설계를 하는 과정에서부터 모형 제작을 통해 부족한 점들을 보완해 가는 절차들이 그려져 있기에 이 책에서 보이는 건축과 그 건축물 안에서 실제 사용하는 인간과의 관계를 들여다보노라면 작은 소품처럼 다뤄지는 문고리 하나라도 어디까지나 인간 중심으로 맞추려는 노 건축가의 의지를 엿보는 점들이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책 속에 나오는 스톡홀름 시립도서관과 숲의 묘지는 그런 점에서 인간과 자연과의 조화, 도서관 이용자들의 실용성과 호감을 이끌만한 군데군데 요소적인 부분들이 건축물이란 이름 하에 어떻게 건축이 되는지에 대한 새롭게 '앎'이란 이런 재미구나 란 것을 느끼게 해 준다.

 

일본인다운 노년의 건축 설계사무소를 마무리 짓는 과정도 그렇지만 다시 돌아와 느끼는 중년의 '나'가 다시 느끼는 여름 별장의 의미, 독자들은 이 책을 집어 든 순간 벌써 그 여름 별장으로 달려가 있을 것이란 확신을 들게 하는 책이다.

 

건축학을 전공하고 있거나 건축에 관심이 있는 독자, 굳이 아니더라도 이 책을 통해서 건축이란 인간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여름의 풀벌레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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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는 것들
셀레스트 응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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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디아는 죽었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 이 사실을 모른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평범하게 보이는 한 가정에 일어난 커다란 파문을 , 그 파문의 여파 속에는 저마다의 가슴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던 비밀들이 해제되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린 책이다.

 

저자의 이력을 보니 홍콩에서 이주한 아버지 때문에 미국에 정착하고 살고 있는 이민자의 후손이다.

그래서 그랬을까?

 이 책에서 보이는 설정들의 주인공들은 혼혈아,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이다.

1950년대의 미국은 지금은 거의 없어졌다고들 하지만 여전히 인종 차별적인 정치적인 일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다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소설의 배경인 1950년대는 인종차별적인 시선이 더 심했을 것이란 짐작이 간다.

그랬던 만큼 동양인 아버지 제임스와 백인 어머니 메를린 사이에서 태어난 세 아이들은 아들 네스와 막내 한나만 빼고 둘째인 리디아만 백인적인 특성을 지닌 아이로 태어난다.

학교에서 잘못한 것도 없지만 왠지 모를 왕따 비슷한 것을 겪었던 아이들, 그런 둘 사이에서의 남매애는 특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리디아의 눈에 비친 엄마가 자신에게 거는 기대치는 엄청 중압감을 느꼈을 것이다.   

 

자신의 이런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던 한 사람인 오빠 네스마저 아빠 자신이 시대적인 인종차별에 맞서지 못하고 자신이 하고 싶었던 행동들을 기대하는 중압감을 견디면서 살아왔기에 오로지 대학 입학으로의 탈출만이 희망적이었던 가족의 분위기-

 

당시만 해도 드물었던 여 의사란 직업에 대한 희망을 안고 하버드에 입학했지만 제임스와의 사랑에 빠지고 네스를 임신하는 바람에 주부로서 안착할 수밖에 없었던 엄마는 리디아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데, 한 번 집을 나갔던 엄마의 부재는 리디아에게 커다란 충격이었고 그런 기대치에 부응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던 힘겨웠던 리디아의 삶을 반영한다.

 

이들 가족에게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리디아의 죽음이라는 문제의 시점에서 시작한 이 소설은 리디아가 호수에서 시체로 발견이 되고 본격적으로 그 이후의 남겨진 가족들의 사이를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보여준다.

 

리디아의 죽음의 원인이 처음엔 잭이란 불량 청년에게 용의자로 지목이 되는 과정에서부터 시작이 되지만 이것을 하나의 과정의 일부분이면서도 가족 전체에게는 리디아의 죽음이란 해결을 풀기 위한 가족 전체에 짊어진  과제였다.

 

이 책은 인종차별이란 설정하에 뛰어난 실력임에도 교수직을 맡지 못하고 보스턴을 떠나 오하이로로 이사 갈 수밖에 없었던 제임스란 인물을 통해 이민자로서 주류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를 썼던 사람들의 모습을, 엄마 메를린은 여성이란 이유로 차별적인 사회적인 인식에 도전에 성공하지 못했던 시대상을 반영하면서도 가족이란 이유로 무엇하나 제대로 터놓고 대화를 하지 못했던 소통 부재에서 온 아픈 과정들을 그리고 있는 책이다.

 

부모들은 자신들의 삶보다 더 나은 삶을 바라기 위해 자녀들에게 무한의 기대치를 걸게 된다.

자녀들의 인생은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서의 삶이란 생각을 하면서도 쉽사리 그들의 인생에 손을 떼기가 쉽지 않은 상황들이 마치 우리나라의 부모들의 모습을 본 것 같기도 하고, 이런 자녀들의 아픔을 부모들은 자신들의 생각에 갇혀서 제대로 아이들이 무엇을 힘들어하고 외로워하며, 그들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알고자 하려는 노력이 없었단 사실이 서글픔을 전달해준다.

 

처음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리디아의 죽음의 범인은 누구일까? 어떤 식으로 밝혀질까를 염두에 두고 읽어나갔지만 결국 이 책은 리디아의 죽음을 둘러싼 한 가족의 분열과 해체, 그리고  다시 복원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책이기에 여타 다른 책들과는 다른 아픔과 안타까움을 전해준 책이기도 했다.

 

책 제목인 내가 너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는 것들...

정말 내용에 부합되는 제목이란 생각이 든다.

가족이기 때문에 나를 이해해주겠지, 내가 힘들어한다는 것을 알아주겠지, 내가 이런 말을 해도 가족이니까 이해하고 넘어가겠지....

 

이 모든 것을 너무나도 간과하고 지나쳐버렸던 한 가족의 모습을 통해 진정으로 가족이란 무엇인가? 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 아닌가 싶다.

 

말하기 싫어서 말을 안 했던 것이 아닌 말할 수가 없어서였단 사실이 책을 덮고서도 떠나지 않게 하는 아픈 감정을 지니게 하는 책, 뭣보다 책을 통해 내 가족과의 관계를 더듬어서 생각해 보게 책인 만큼 한 번 읽어봐도 좋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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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 죽이기 - 엘러리 퀸 앤솔러지
조지프 러디어드 키플링 외 지음, 엘러리 퀸 엮음, 정연주 옮김, 김용언 해제 / 책읽는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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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작가의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독자의 입장에서 무척 큰 재미와 흥미, 그리고 저자가 쓴 내용들을 통해서 다양한 배움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작품들은 주로 장편들을 읽게 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긴 장르 속성상 인물들의 독특한 개성과 부연의 행동들을 통해서 더욱 그 진가를 느낄 수가 있는데, 아쉽게도 이러한 좋아하는 작가들의 작품들을 한꺼번에 한 권에 담아서 읽기란 그 기회가 쉽지가 않다.

 

그런데 이름만 들어도 귀가 솔깃한 작가들의 글들만을 추려서 나온 책을 접하게 된다면?

그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고란 말이 떠오르지 않을까?

 

이름만 들어도 아는 작가, 특히 그들의 작품을 읽는 독자라면 더욱 반가울듯 싶은 엘러리 퀸이 직접 고른 12명의 작가의 작품집, 앤솔러지를 읽는 즐거움을 그야말로 다른 책들을 접하는 것 이상으로 기쁨을 준다.

자신들의 전공답게 12명의 노벨문학상과 퓰리처상 수상자들이 남긴 범죄. 탐정. 미스터리. 서스펜스 소설들을 추려서 내놓았기에 더욱 이런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기분 좋을 듯할 것이다.

 

첫 장에서부터 다뤄지는 정글북의 저자인 리디어드 키플링의 '인도 마을의 황혼'은 당시의 시대상을 드러낸 작품이다.

이 책에서 다뤄지는 모든 글들이 저자가 쓴 당시의 시대상을 드러내 놓고는 있지만 특히 이 작품은 영국이란 제국이 식민주의로 삼은 인도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즉, 영국인이 보는 시각에서 다룬 살인사건의 원인이  문화적인 차이에서 왔다는  허무함을 드러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세일즈맨의 죽음'이라는 너무나 유명한 연극 작가인 아서 밀러가 쓴 '도둑이 필요해'는 마치 시트콤 같기도 하고 한편의 짧은 콩트 속에 허를 찌르는 인간들의 욕심을 도둑맞은 돈을 통해서 돈을 찾기도, 포기하기도 어려운 인간 심리를 예리하게 표현한 작품이 아닌가 싶다.

 

T. S. 스트리블링의 '한낮의 대소동' 은 다른 작품에 비해서 분량이 짧긴 하지만 범죄심리학 교수인 포지올 리가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그려낸 작품이다.

 

책의 표지 제목인 맥킨레이 캔터의 '헤밍웨이 죽이기'는 처음엔 정말 작가 헤밍웨이를 다시 드러내어 또 다른 시선으로 그려 본 이야기인 줄 알았지만 여기선 온갖 나쁜 짓을 저지른 헤밍웨이란 범죄자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된 경찰들의 사투를 벌이는 이야기를 그린 내용이다.

정확하게 어떤 범죄를 저지르고 경찰과 대치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생략된 채 신참 형사 닉 글레넌과의 한판을 벌이는 장면은 조금만 이야기의 살을 덧대어 붙인다면 한 편의 멋진 영화로도 탄생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게 한다.

 

'여성 배심원단'은 남편을 살해했다는 용의자로 지목된 라이트 부인의 집에 현장조사를 하러 떠나는 남편들을 따라나선 부인들이 남자들이 미처 밝혀내지 못한 정황상의 증거들을 통해 살인사건 단서들을 찾아내지만 당시의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상황의 처지를 보여줌으로써 같은 여성으로 느끼는 살해 용의자에 대한 수습을 하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너무나도 유명한 버트런드 러셀의 작품인 '미스 X의 시련'은 우연찮게 들은 결사단의 비밀 때문에 휴가에서 돌아온 후 변해 버린 여비서의 태도를 보고 사건의 실체를 헤쳐나가는 이야기를 그린  환상적인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이밖에도 헤밍웨이 죽이기와 함께 또 다른 영화로도 만난다면 좋을 작품인 윌리엄 포크너의 '설탕 한 스푼', 싱클레어 루이스의 ''버드나무 길', 마크 코넬리의 '사인 심문', 스티브 빈센트 베네의 '아마추어 범죄 애호가'.....

 

모두가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드러낸 작품인 만큼 짧지만 강렬한 인상들을 모두 심어준 작품이기에 어느 것 하나 모자람이 없는 다양한 스릴의 세계와 반전의 맛을 모두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 아닌가 싶다.

 

자연스러운 흐르는 물에 흘러가듯 삶의 여러 가지 투영된 모습들을 통해 당시의 시대상이나 문체, 대화법들이 지금과는 다르게 받아들이면서 읽는 과정 또한 고전체를 엿보는 듯한 느낌도 주는 책이기에 이 책 한 권을 통해서 여러 작가들의 작품을 대한다는 것도 좋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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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 밀리언셀러 클럽 147
야쿠마루 가쿠 지음, 박춘상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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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의 양상을 다룬 책을 읽다 보면 예전보다는 확실히 가해자와 피해자의 시선을 따라가는 책들이 많아짐을 느낀다.

 

굳이 양분을 하자면 남겨진 자들의 생활, 특히 한국소설에서도 다루는 범위의 폭이 넓어졌음을 알게 해 주는 피해자들의 가족들 삶을 다룬 부분을 읽노라면 갑갑하기도 하고 법의 체계 안에서 다루는 일이지만 이 또한 인간이 만든 '법'이란 한계성을 지니고 있기에 어떤 확실한 이러한 제안이 좋다는 것을 말할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짐을 책을 접하면서 느끼곤 했다.

 

이 책 또한 가해자와 피해자 가족들의 이야기를 다룸으로써 '악당'의 이미지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게 한다.

 

연작 단편집으로 구성이 되어 있고 총 일곱 개의 사건들이 연결이 되는, 그러면서도 독립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에 책은 술술 읽힌다.

 

아버지의 직업을 이어받아 이발사로서의 생활을 생각하고 있던 15살의 사에키 슈이치는  자신의 생일날 누나를 동네 청소년들에게 잔혹하게 폭행과 강간을 당한 후 목숨을 잃는 아픔을 지닌, 현재 30살의 장년이자 사립 탐정 일을 하고 있다.

 

경찰로서 일하다 뜻하지 않은 자신의 행동 처신으로 퇴직을 한 이후 사설탐정을 하고 있으면서 누나를 죽인 범인들의 그 이후에 대한 궁금증을 품고서 살아가고 있는 처지-

 

어느 날 아들을 살해당한 노부부의 청탁을 의뢰받게 되는데, 범인이 출소 이후 잘못을 뉘우치고 제대로 인간답게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조사해 달라는 것-

조사 결과 가해자는 여전히 그럴싸한 유령 회사를 다니면서 살아가고 있고 이 일은 그 후 가해자가 다시 피해를 입게 되면서 하반신 불구로 살아가는 결과를 낳는다.

 

이 일에 뛰어들었으면서도 여전히 자신 때문에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답을 줄 수 없다는 한계에 부딪치면서도 여전히 자신의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증오와 복수, 그리고 만일 누나를 죽인 범인들을 찾게 된다면 어떻게 복수를 해야 할 지에 대한 막연한 생각조차도 못하고 살아가는 사에키라는 인물의 동요는 피해자 가족으로서 남겨진 사람들의 애환을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웃음조차도 죽은 망자를 생각하면 그럴 자격조차도 없다는 자신의 파괴적인 비애감과 가족들 간에 멍든 가슴을 후련하게 해줄 해결이란 것이 고작 법에서 형량을 내리는 판결에만 만족해야 하는 현실, 그렇다면 과연 가해자는 자신들이 저지른 과오를 철저하게 뉘우치고 평생토록 잊지 않을 십자가로서의 마음가짐으로 살아갈까? 아니면  법의 형량대로 제대로 죄 값을 치렀기에 피해자에 대한 죄의 명목은 상쇄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범죄 피해자가 가장 괴로운 순간은 가해자가 행복하게 살고 있음을 알았을 때다. 가해자가 자신이 저질렀던 범죄를 눈곱만치도 반성하지 않았음을 깨달았을 때다. 그럴 때는 증오의 불꽃에 기름을 들이부은 것처럼 마음속이 격렬하게 날뛴다.-p 75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떠오른 것은 영화 '밀양'이었다.  

주인공이 가해자를 용서하기까지의 번민과 고뇌를 통해 비로소 용서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범인을 대면했을 때 오히려 범인은 신앙을 갖게 됨으로써 이미 용서를 받았다는 식의 전개 상황은 당시 영화를 보면서 과연 진정으로 용서를 해주는 자와 받으려는 자 간의 관계 성립은 어떠한 기본이 있어야 서로가 서로에게 다치지 않는 방법으로 할 수  없는 것일까를 생각하게 했다.

 

 

이처럼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들도 영화 '밀양'과는 배경이 다르지만 피해자의 가족으로서 겪게 되는 고통을 수반한 전반적인 아픔들이 살아가는 동안 결코 없어지지 않는 현실이란 기반 아래,  전반적인 의뢰인들도  피해자들의 가족이지만 가해자 가족으로서 겪은 고통 또한 그려진 부분이 있기에 그들 나름대로 가산탕진을 기본으로 세상에서 던진 멸시와 눈초리를 고스란히 받고 쥐 죽은 듯이 살아가야 하는 비참한 생활상의 모습도 보여주고 있기에 가해자와 피해자의 남겨진 가족들의 현실은 그리 만만치 않은 실정을 보여준다.

 

 

누나의 죽음을 눈 앞에서 본 그 순간 이후 사에키의 인생은 그 당시로 막을 내렸다는 사실로 진실된 사랑조차도 할 수 없는 마음의 두꺼운 벽은 누나를 죽인 범인들의 결과를 보게 되면서 자신도 모르게 또 다른 악당으로 변해가려는 그 찰나의 마음의 동요된 모습을 그려나가는 작가의 글이 인상적이다.

 

 용서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악당은 그 사실을 아주 잘 알아. 그래서 용서라는 성가시기 짝이 없는 걸 구하지도 않고, 바라지도 않아. 악당은 자신이 빼앗은 만큼 무언가를 잃는다는 것도 잘 알아. 그래도 기어코 나쁜 짓을 저지르고 마는 인간, 그게 바로 악당이라는 거다.-p 243

 

악당이란 의미, 누구나 될 수 있다는 경고를 저자는 사에키의 행동과 여러 사건의 경우를  통해서 보여주려 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책을 덮으면서도 여러 가지 생각을 두고두고 하게 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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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티야의 여름
트리베니언 지음, 최필원 옮김 / 펄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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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몇 권의 책이 출간이 된 작가지만 이 작품은 그야말로 베스트셀러에 드는 작품이다.

제목 자체가 여성의 이름이 들어가면서, 특히 여름이 상징하는 계절에 맞는 이 시기에 출간이 되다 보니 더욱 흥미를 끌 수밖에 없을터~

 

배경은 1차 세계 대전 발발 직전의 여름, 프랑스 바스크 지방의 한 작은 마을에 바스크 출신인 의사 장 마르크 몽장의 젊은 청춘의 시절을 그린다.

인턴 생활을 마치고 그로 박사 밑에서 일하던 중 카티야 트레빌이란 여성을 만나게 된 마크는 그녀의 신비로운 모습과 당시로서는 엄두도 못 낼 해박한 해부학과 정신의 세계를 다룬 프로이트를 공부한 적이 있는 그녀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고 그녀의 동생인 폴의 다친 팔을 치료하기 위해  집을 방문하게 되면서 그녀와 가까워지게 된다.

 

때론 순박한 처녀의 모습으로, 때론 몽환적인 시선처리와 눈빛으로, 시시각각 그녀에게 점차 빠져드는 자신에게 그녀의 쌍둥이 동생인 폴은 결코 누나와 가까이하지 말 것을 경고한다.

 

그녀와 폴, 아버지가 살던 파리를 떠나 이 외진 곳에 살게 된 경위는 작은 마을에 돌고 도는 소문 속에 그 진위를 알아가게 되지만, 왜, 폴이 그토록 자신의 누이 곁에 가까이 가지 말 것과 아버지의 눈에 그런 모습을 보이지 말라고 하는지에 대한 의구심은 마크에겐 오히려 카티야에 대한 사랑만 깊어지게 할 뿐이다.

 

 

가족의 관계란 무엇일까?

서로가 진실을 각기 다른 관점에서 알고 있으되  진심을 숨기고 살아간다면, 그토록 아버지 곁을 떠나지 못하는 쌍둥이들의 슬픈 사연과 더불어서 독자들의 뒤통수를 치는 반전의 이야기는 트레빌 가(家)의 비밀과 함께 작가가 그리는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 특히 카티야란 인물이 그리는  정신세계의 아픔은 독자들로 하여금 흠뻑 빠지지 않을 수가 없게 만든다.

 

특히 이 책은 카티야가 관심을 두었던 프로이트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듯한, 인간의 정신분석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만큼 급박한 스릴이 아닌 인간 심리의 스릴에 초점을 두고 그린 책이기에 각 등장인물들이 생각하는 느낌과 대사, 감정들, 시대적인 상황들을 따라가면서 읽는다면 훨씬 반전의 묘미를 느낄 수가 있을 것 같다.

 

반세기가 지나 다시 찾아온 의사 마크의 회고식으로 그려진 이 책의 배경인 바스크 지역의 독특하고 폐쇄된 역사적인 배경과 더불어 그곳에서 벌어진 축제의 현장을 그린 대목은 인상적이다.

 

그녀와 함께하지 못했던 25 살의 청년 마크에겐 그 당시의 여름은 결코 잊지 못할 하나의 인생 이야기란 생각이 드는, 아련하고 쓸쓸한 기억으로 남을 추억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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