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의 성 스토리콜렉터 51
혼다 테쓰야 지음, 김윤수 옮김 / 북로드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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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묻지 마 살인에 대한 사회적인 사건들이 발생할 때면 도대체 어떤 인간들이기에 이런 잔학한 일들을 벌일 수가 있을까?

혹 흔히 대두되는 어린 시절의 불우했던 경험들이나 원만치 못했던 성장과정 속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반사회적인 성격이 형성되어 있어서 그럴까?

이런저런 말들이 오고 가게 되면서 사건의 잔학성을 보도하는 글들을 읽게 되면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가 없다.

 

사건의 발생에는 항상 원인이 있게 마련이지만 위의 경우처럼 아무런 원한, 동기도 없는 가운데 쉽게 ~그냥!~ 이란 말 한마디로 대변되는 범인의 진술에는 분노를 금할 수가 없는데 이 책, 참 뭐라고 말해야 할지,,,,

 

정말 난감하기만 하다.

평소의 스릴이나 추리소설을 접할 때면 잔학성을 드러내는 장면들이 들어있고 나도 모르게 푹 빠져서 그 이야기 속의 현장 속으로 뛰어들어가면 나름대로 사건 구성에 대한 전반부를 맞춰보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이 책처럼 대책 없이 읽어나가는 도중에 구토를 경험한 적은 처음이었다.

 

실제로 2002년 전모가 드러나 일본 전역을 충격에 빠뜨린 '기타큐슈 일가족 감금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글을 구성한 작가의 서술 능력도 대단하지만 정말로 이런 사건을 벌인 범인의 본마음 안에 들어있는 실체는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된다.

 

17세의 마야라고 불리는 소녀가 어느 날, 경찰에 휴대폰으로 자신을 구해달라며 도움을 요청한다.

온몸에 상처가 있는 소녀는 그녀의 진술을 토대로 하자면 1년 넘게 선코트마치다라는 맨션 403호에 감금되어 요시오라는 남자와 아쓰코라는 여자에게 학대를 당했다고 한다.

경찰은 즉시 그 현장에 가게 되고 마침 그 집에 있었던 아쓰코를 만나면서 그녀 또한 그녀 몸에 학대의 흔적을 발견한 경찰에게 자신도 마야와 같은 경험을 당했다고, 그러면서 이 사건은 아쓰코의 진술을 토대로 사건을 조사해 나가기 시작한다.

 

마야의 말에 따르면 자신의 아버지인 고다 야스유키가 두 사람에게 살해되었다고 하고, 아쓰코 역시 자신들이 그를 죽였다는 사실을 시인하면서 본격적으로 그 집에 있는 현장을 조사한다.

 

코를 찌를 듯한 냄새와 살균을 한 듯한 세제 냄새, 무엇보다 욕실에서 루미놀 반응을 보인 혈액 검사에는 다섯 사람 분의 DNA가 검출되고 이 혈흔 중 네 사람이 같은 혈연처럼 보인다는 사실,  그렇다면 두 사람 외에 또 다른 사람들이 있었는지에 대한 수사 방향과 과연 요시오라는 남자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조사를 착수한다.
 

 

한편 29살의 신고는 자동차 정비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건실한 청년, 24살의 세이코와 동거를 하면서 살아가는 와중에 어느 날 집에 와 보니 곰처럼 생긴 한 중년의 남자가 들어와 있다.

세이코의 친아버지란 사실을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고요하고 정적인 남자, 우연히 미행하게 된 신고는 그가 공원에서 바라보는 초점에 대해 더욱 의심을 하는데....

 

소설은 전혀 상관이 없을 것 같은 두 이야기가 한 데로 합쳐지면서 결말에 도달하게 되는 과정을 통해 인간의 본모습은 과연 몇 개가 존재하는지에 대해 궁금증을 유발한다.

 

인간이 자신이 살기 위해선 어떤 악조건 속에서 얼마만큼의 각오와 동물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인내심을 발휘하고 이겨낼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하는 이 책은 처음에 뭐지? 이러한 상황이 있었다고? 정말? 믿기지 않는 사실인데 정말 이럴 수도 있을까? 를 연신 스스로 묻고 답을 요구하는,  극도의 미칠 지경이란 이런 말이 아닐까 하는 분위기를 조장하는 책이다.

 

딸이 아버지를 죽이고 동생이 언니를, 조카를 엄마와 이모가 죽이게 되고 그 사체를 유기하는 과정을 상세하게 다룬 장면들은 얼마 전에 읽은 '넥스트 도어 킬러'란 책에서 나온 장면들과 흡사 유사하게 그려졌지만 그 책과 확연히 다른 점은 범인의 동기가 빠져있다는 점이다.

 

아쓰코의 진술을 토대로 그려지는 이야기의 진행 과정 속에 범인의 왜? 란 것이 빠진 상태에서 순전히 아쓰코의 진술과 마야의 진술만을 가지고 수사를 벌여야 하는 경찰의 모습들은 아쓰코의 두 갈래의 진술처럼 보이는 행보 때문에 조사를 하는 경찰들 마저도 도저히 이런 일들이 실제 벌어졌다고 믿지 않는 대사들이 나오는 이야기의 구성들은 인간이 아닌 한 마리의  짐승 그 자체를 보는 듯하다.

 

왜 갇혀있던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대로 도망칠 생각을 못했을까? 설마 사회적인 법에 어긋난 행동을 했을지라도 차라리 처벌을 받고 다시 사회에 나가는 편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을 들게 하지만 인간이 한 인간을 동물처럼 길들이고 세뇌시키는 일련의 조련사처럼 행동을 연속적으로 벌이게 되면 갇힌 인간의 의지는 '의지'그 자체의 말이 있다는 사실도 잊어버린 듯 수동의 자세로 변해가는 과정들이 정말로 안타깝게 다가온다.

 

저자는 동물과 확연히 다른 인간이 학습의 범주에 이상한 궤도를 겪게 되면 인간의 본성 안에 도사린 어떤 행동들이 나올지, 나조차도 결코 인간다운 행동을 끝까지 지킬 수 있을까를 묻는다.

 

- "녀석들은 다른 사람들을 동족으로 생각하지 않아요. 단순히 먹잇감으로 보죠. 사랑도 하지 않고 동정하지도 않아요. (중략) 최악의 경우에는 죽여서 버리죠. 그게 녀석들이 살아가는 방법이에요. 더 나쁜 건 녀석들이 인간 사회의 규칙을 숙지하고 있다는 거예요. 절대 머리가 나쁘지 않아요. 그저 그 규칙을 따를 생각이 없는 거죠. 그 정글에서 인간을 먹잇감으로 해서 자신만 살아남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 놈들이 분명히 있어요. 사람의 탈을 쓴 짐승 말이에요. 하지만 사회는 슬프게도 그걸 인식하고 있지 않아요."-p352~353

 

너무나도 강렬하다 못해 다시 읽어보기가 힘든 책인 만큼 아주 센 스릴을 좋아하는 독자가 아니라면 고려해봐야 하지도 않을까도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작가의 냉철한 표현의 서술이 오히려 극대화를 시킨 작품인 만큼 인간의 본성을 이만큼 제대로 그려낸 책도 없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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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홍천기 세트 - 전2권
정은궐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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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기다리고 기다렸던 작품이 출간이 됐다.

출판사 홍보의 날짜로부터 손꼽아 기다렸던 만큼 이 저자의 기대감도 컸고 특히 전 작품이 모두 대히트를 쳤던 만큼  원작과 드라마를 다시 읽고 보아도 여전히 재미가 있다.

 

이번의 제목인 홍천기,,

처음 표지가 공개되고 나서 짐작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기에 주인공 이름인 것을 알았을 때는 기생 이름인 줄 상상도 해봤다.

 

하지만 드라마에서도 나왔었던 화공이란 직업을 가진 여 주인공의 파란만장하고 가슴 설레게 하는 로맨스는 여전하다.

아니 , 오히려 천방지축의 대명사라고 불려도 될 만큼 남자 동료들과 스스럼없이 손찌검을 해가며 어울리는 모습들은 마치 선머슴을 연상시킨다.

 

조선 초, 백유 화단의 오직 하나뿐인 여 화공인 홍천기, 아명인 반디란 이름을 가진 화공이다.

화마에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긴 채 미쳐버리고 거리에서 그림을 그려준답시고 종일 앉아 있는 아버지, ‘붉은 하늘의 기밀(紅天機)’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이름을 지어준 아버지 이건만 그런 아버지는 자신을 기억조차 못하는 가운데 유전은 속일 수가 없는지라 타고난 그림 실력을 갖추고 있는 천기다.

 

그러던 어느 날, 동짓날 밤, 하늘에서 떨어진 남자를 자신이 구해주게 되는데, 하늘에서 이런 행운이 있을 줄이야~~

 

그의 이름은 하람, 두루두루 본다는 뜻의 이름이지만 정작 그는 진정으로 자신의 눈을 통해서 세상을 보지 못한다.

붉은 눈동자를 지니게 된 이후부터 가족들에게도 접근을 불허받은 자, 대과에 급제하고도 경복궁 터줏대감이란 별칭답게 오로지 궁 안에서만 지내는 그는 왜 이런 사연을 가지게 되었으며 오히려 눈을 가진 자들보다 더 하늘을 잘 보는 서운관이란 자리를 갖고 있으니....

 

그림과 엮여서 그런지 여기서는 우리들이 역사 속에서 뛰어난 그림과 글을 남긴 안평대군을 만날 수가 있다.

천기와의 같은 또래로서 왕의 아들이란 신분에 맞지 않게 장난이 많으면서도 예술에 관한 한 그 누구의 욕심도 따라갈 수 없는 집요한 광증적인 태도를 보이는 가운데 천기와 하람 사이에서의 미묘한 신경전도 벌이고, 이런 가운데 저자는 예술의 타고난 열정과 자신의 이런 열정을 어떻게 다스려야 진정한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고뇌를 함께 그려낸다.

 

전 임금이었던 태종의 어진을 둘러싼 그림을 그린 자에 대한 추적과 이 사건을 추적하는 서운관 시일 하람과 천기, 안평대군의 활약이 긴장감과 함께 재미를 함께 느끼게 해 준다.

당시 거울이 발달되지 않았던 터도 있지만 정작 자신의 얼굴은 타인에 의해서 그려질 때에만 비로소 볼 수 있었다는 그 시대의 초상화에 대한 관점, 문인들이 그린 그림과는 달리  전문적인 화공들이 그린 그림들을 천대 시 하면서 한 꺼풀 덮인 채 예술을 운운하는 사대부들의 알량한 지식을 꼬집기도 한다.

 

자신의 몸 안에 들어있는 마(魔)와 자신의 눈을 빌려간 자는 누구인지, 왜 그 자신에게만 다가와서 오랜 세월 동안 힘든 세상을 겪어야만 하는지에 대한 하람의 의문이 섞인 모든 진행 과정은 솔직하다 못해 과감하기까지 한 홍천기의 사랑 법과 함께 스스로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고 사랑을 느껴가는 하람이란 남자에 푹 빠져버릴 수밖에 만든다.

 

성균관 유생의... 잘금 4인방이 있다면 여기엔 기해년에 태어난 화공 3인방이 있었으니 천기와 함께 하는 동료들의 치고받고 당하는 우정과 스스로의 재능에 의심을 품으며 뛰어난 스승 앞에 모든 것을 알고자 하는 진정한 예술인의 자세도 들어 있어 신분의 차이를 뛰어넘는 두 주인공의 사랑도 예쁘지만 이러한 주변인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것도 재미가 있다.

 

경복궁의 지신 호령, 마, 화마가 등장하고 천문의 지리를 이용해서 이 모든 이야기의 정점을 이뤄나가는 저자의 실력은 여전하단 느낌과 함께 겉으로 보기엔 철도 없고 아무런 생각조차도 없을 것 같았던 홍천기의 내면은 그러하지 않았단 사실, 동짓날 세화(歲畵)를 찾으러 오는 의문의 흑객 때문에 자신의 아비와 마찬가지로 자신 또한 미쳐버리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느끼는 대목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앞에 두고 영원히 잊지 않으려는 순간순간의 소중함을 느껴가는 한 여릿한 아가씨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소설이라서 그런가?

현실적으로 당시의 풍습상으론 신분의 차이 때문에 이뤄지기 힘든 두 사람의 결실도 그렇고 환타지성의 귀신들이 등장하는 장면도 그렇고,,

 

저자가 그동안 그려온 여 주인공들의 활약을 생각해보건대, 아마도 저자는 여성이 아닌지,,

또 이런 생각도 해보게 만든 책이다.

 

다양한 그림의 세계를 넘나드는 화풍의 세계와 그림 하나를 얻기 위해, 아니 정확히 말하면 예술작품의 안목을 제대로 갖추고 볼 줄 알았던 안평대군 같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화공들의 자질이 그나마 인정받지 않았을까도 생각해 보게 되는 정은궐 표의 로맨스는 바로 이런 맛에 읽는 것이다!라는 것을 다시 느껴가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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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마리 여기 있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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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들이 책 표지가 연작처럼 떠오르게 출간된 점이 눈에 띈다.

그만큼 이 작가를 애정 하는 독자들에겐 반가울 수밖에 없는 것이지만 이 작품에서도 여지없는 작가의 면모를 발휘하면서 읽게 되는 책이다.

 

청소라면 일가견이 있는 브릿마리 여사.

40년 동안 동네를 벗어난 적 없이 과탄산소다로 집안 구석구석을 청소하는 것은 기본이요, 오로지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가정에 충실한 삶을 목표로, 그리고 여기에 이웃에게까지도 친절하단 인상을 주는 것을 추가로 붙여서  살아가는 그녀다.

그런 그녀에게 자그마한 행복이라면 바람 부는 발코니와 가끔 무뚝뚝한 남편으로부터  인색한 수고를 알아주는 것 정도를 감사히 여기며 살아갔지만 어느 날 남편의 배신을 알고 나서 난생처음 '운전'이란 것을 통해 무작정 차를 타고 나온다.

 

내연의 여자가 있다는 사실을 안 순간 자신을 위해 살겠다는 결심, 여기에 “여자들은 이케아 가구도 조립할 줄 모르잖아”라고 말한 남편에게 보란 듯이 이케아 가구 조립을 스스로 하기 위해 떠나온 것이 계획성이 없다 보니 처음부터 혼란에 빠진다.

 

직업을 구하기 위해 직원으로부터 받는 질문에 십자말 퀴즈를 잘 풀기 때문에 괜찮다고 말하는 얼렁뚱땅 답을 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된 유머는 지금부터 정작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를 고민하는 과정까지, 온, 냉탕을 오가는 노련미를 보인 작가의 글은 여전하단 생각을 들게 한다.

 

이 책을 통해 경력단절로 인해 사회생활을 하고 싶어도 어려움을 겪는 주부들이 애환을 들여다보는 듯하는 느낌을 주면서 가족만이 아닌 자신만을 위한 일들은 무엇이 있을까도 생각해보게 되는 책이다.

 

 

집에서만 살림하다 바깥세상에 나온 브릿마리의 좌충우돌 겪는 직업 구하기와 자신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행동들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 느끼는 혼란과 그 안에서 차츰 자신만의 특기인 마음을 열고 같이 살아가는 과정들이 특유의 웃음과 여전히 가슴 뭉클함을 동시에 전해주는 책이기도 하다.

 

믿었던 사람으로부터의 배신을 뒤로하고 나이에 연연하지 않고 새로운 자신만의 인생을 개척하려는 브릿마리 여사의 삶을 통해 독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브릿마리를 응원하게 된다.

 

전작인 오베.. 와 할머니가... 를 통해 여전히 그 위력을 발휘하는 작가의  주특기인 인물들의 성격 묘사 속에 발견된 따뜻한 인간미 넘치는 설정, 여기서도 여전한 까칠하고 솔직하다 못해 상대방에게 무안함을 선사하는 성격 뒤에 사랑할 수밖에 없는 매력을 함께 보이는  등장인물들을 통해 훈훈한 마음까지 함께 느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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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유언
안드레이 마킨 지음, 이재형 옮김 / 무소의뿔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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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본이 참 특이한 책을 오래간만에 접해본다.

보통의 책처럼 책 기둥이 완전히 둘러싸인 방식이 아닌, 처음에는 혹시 불량이 온 것인가도 했었던, 그래서 손으로 쓸어보게도 된 책이다.

 

우선 책 제목이 신간 코너를 통해 알게 됐을 때 무척 읽고 싶었던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저자의 출생에 관한 관심이 있어서였다.

저자는 러시아 출생이지만 프랑스어도 구사한다.

이유는 바로 외할머니 때문이고 외할머니가 프랑스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면 그다지 신기할 것도 없지만 당시 할머니가 살아온 시대의 흐름을 연상한다면 쉽게 이루어질 수는 없었을 어떤 이국적인 고난을 연상시킨다.

 

이 책은 저자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들어 있는 소설이다.

러시아 청년을 만나 러시아로 가게 된 할머니, 러시아에선 프랑스인이었기에 태어난 고국에서의 생활방식을 버릴 수 없었던 어려움도 갖고 있을 터, 바로 어린 시절의 회상을 통해 이야기를 그린다.

 

어린 시절 누나와 함께 방학이면 할머니가 사시던 곳으로 가서 생활하게 된 당시의 회상은 가정에선 프랑스어를 사용하지만 이내 학교와 사회에 돌아오면 러시아어를 구사하는 이중적인 생활, 거기에다 학교에선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차이, 사상교육을 통해 전혀 상반된 성장기를 겪는 화자의 삶이 그려진다.

 

할머니로부터 들었던 파리에서의 생활은 러시아에서 생활하던 화자에게 또 다른 새로운 미지의 세계를 동경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고, 이후 엄마의 아픈 병이 진행되고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자세한 내막도 알지 못한 채 이 모든 원인이 할머니 때문일 것이란 분노와 원망이 자리하는 시기를 그리는 장면들은 이중적인 언어를 쓰는 화자 자신의 삶의 모습을 투영하는 듯도 한 느낌을 받게 한다.

 

오랜 시간이 흘러 돌고 돌아 프랑스에 정착하지만 러시아에서 느꼈던 이방인적인 느낌은 할머니의 나라 프랑스에서도 여전히 다른 존재의 대접을 받는다는  느낌마저 들게 되는 저자와 화자의 삶이 동일한 듯 그려지는 소설, 때문에 이 책을 읽어나가는 동안 화자의 이야기가 실제론 할머니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그대로 구술되어 있다는 사실을 느끼는 점들, 그러면서도 서로 상반된 두 체제를 고스란히 답습하며 살아왔던 저자이자 책 속의 등장인물인 화자의 삶을 통해 시대와 역사, 그 안에서 벌어진 전쟁의 희생으로 개인의 삶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들여다보게 되는 책이란 생각이 든다.

 

프랑스 3대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답게 글의 문체는 산문 같기도 하면서 시적인 느낌이 많고 차분히 화자의 분열된 두 나라의 이중성의 삶을 통해 저자 자신의 인생 전철을 다시 느껴보게도 되는 '문학'이란 느낌을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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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사회 - 타인의 공간에서 통제되는 행동과 언어들
김민섭 지음 / 와이즈베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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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직이 교수도, 학생도 아닌 경계인'이란 표현을 한 지방대 시간 강사로서의 현실을 이야기한 저자의 신작인 '대리 사회'다.

 

8년 동안 오로지 집과 학교, 연구 논문을 쓴다는 것에 집중을 했던 그가 왜 그동안 쌓아왔던 경력을 그만두고 제 발로 대학을 나오게 되었는지, 그 이후 대리기사로서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 살게 된 르포르타주 형식의 이야기를 접한 지금 마음의 한편이  씁쓸함을 남긴다.

 

타인의 눈에 비친 대학강사란 직업이 주는 외면적인 형태는 그저 학식이 쌓인 사람, 강단에 서 있고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는 사람으로 생각되기 쉬운 현실이지만 이것도 알고 보면 교수와 학생 간의 대리 사회란 점, 강사로의 현실적인 생활의 형태는 4개월 비 정규직 계약직이라는 자리, 의료보혐증 조차도 발급되지 않는 상태에서 아이의 탄생은 그를 제 발로 대학이란 자리를 떠나게 만들었고 이후 맥도널드에서 일하는 것을 시작으로 대리운전기사를 하게 되면서 느낀 전 사회적으로 흐름을 타고 있는 '대리'란 것에 주목해서 쓴 글이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하나의 온전한 주체로서의 '나'가 대리기사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자신의 주체는 이미 없어지고 오로지 운전자 석에 앉은 대리의 자격으로 변하게 되고 운전을 맡긴 차량 운전 주인이 주체로서 변하게 되는 통제된 현 상황을 묘사하는 장면부터가 잊을 수가 없게 한다.

자신이 통제를 쥐고 있는 것이라야 핸들, 브레이크, 엑셀 이외에는 건드리면 안 되는 '행위'의 통제, 차주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말'의 통제, 스스로 판단하지 않고 영혼 없이 운전만 하는 '사유'의 통제를 통해 비로소 운전석을 내리고 나서야 나 자신의 주체를 찾게 된다는, 그러면서도 여전히 삶의 생활권이 주는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을 느끼는 과정들은 체감지수가 올라가게 만든다.

 

 

 

 

가끔 택시를 부를 때면 이용하게 되는 카카오 택시의 서비스 체제를 들여다보는 계기, 대리 기사님들의 애환들을 알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 주기도 하지만 이 안에서도 기존 업체와 신 업체 간의 경쟁과 치열한 기사들 간의 다툼 조차도 대표자인 책임자는 뒤로 물러나 있고 정작 공생을 같이해도 모자랄 판인 같은 '을'의 존재들이 '을'과 '을'의 대립으로 번지는 양상들은 사회 속에서 여전히 만연되고 있는 '갑'질의 묘사들을 보는 듯하다.

 

 

 

 

이 책의 대리 사회는 그런 점에서 우리는 과연 주체성을 가진 온전한 나로서 존재하고 있는가, 저자 자신이 스스로 대학의 교육 체제에 대한 현실을 그린 책을 출간했을 때 자신이 생각했던 위의 압력은, 오히려 같은 처지의 선배나 후배들에게 왜 그랬냐는 질타를 듣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다는 대목들이 같이 일하고 있을 때는 동료이지만 일단 한 발 물러나 위의 자리에 머물게 되면 이미 '을'의 생각은 과거로, '갑'의 세계로 들어서는 순간 이미 저 멀리 남의 이야기라는 질타에 수긍을 하게 된다.

 

 사회적인 일반 현상에 대한 쓴소리도 같이 들을 수가 있는 현실적인 문제점들을 그린 책이라 책 곳곳에 넘치는 가벼운 이야기로 한 템포 여유를 주는 센스, 진상 손님과 좋은 손님, 부부와 불륜의 자리 배석을 통한 감별을 하게 되는 대리기사로서의 느낌, 가장 무서운 손님은 브레이크가 제대로 듣질 않는 차를 가진 주인.....

 

곳곳에 푹 하고 웃음도 나지만 아내에게 주는 대리기사를 하고 받은 돈이 물건을 장만하면서 이름을 붙이게 된다는(이것은 제 1 대리로 번 돈, 이 물건은 제 2 대리로 번 돈...) 대목엔 부부로서의 같이 살아가는 삶에 대한 애정과 애환을 같이 느껴 보게 되는 책이기도 하다.

 

 

'힐링'이라는 단어의 소멸 이후 '분노'와 '혐오'가 우리 사회를 뒤덮었다. 개인들은 이제 더 이상 아프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을 둘러싼 구조에 문제가 있음을 알았다. 'N 포 세대'로 대변되는 허무와 고독, '노오력'이나 '헬조선'이라는 비아냥과 냉소는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차근차근 임계를 향하던 개인의 감정들이 최근에 이르러 실체를 드러냈을 뿐이다. 하지만 대리사회의 괴물은 여전히 개인들이 그 분노를 온전히 발산할 수 없게 만든다. 대신 대리만족의 기제를 계속 내보내면서, 행복하지 않은 개인에게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여기에 마취되고 나면 개인의 분노는 자신을 둘러싼 구조, 그 괴물에게 향하지 않는다. 대신 주변의 개인이나 스스로를 혐오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더욱 자극적인 마취/환각제를 원하게 되고, 그에 따라 점점 더 강한 쾌락의 기제가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아주 잠시 즐겁고, 오래 외롭다. -p213

 

 

 

여전히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삶은 고달픈 가운데 때론 행복이란 것이 있기에 참고 나아갈 수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여기저기 경쟁에 치이기도 하는 자본주의 시대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 '나'란 주체는 대리 인간으로 밀려날 것인가, 스스로 물러서고 다시 나아가는 주체가 될 것인가의 직면한 문제를 자신만의 경험을 토대로 그려낸 책이기에 더욱 나 자신과 주변부를 살펴보는 계기가 된 책이기도 하다.

사회 전반부에 흐르는 나, 너 할 것 없이 모두 대리 인생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진정한 '나'의 주체를 가지고 노력하는 삶의 모습이 필요하단 느낌을 준 책, 한 번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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