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혼자가 되다
이자벨 오티시에르 지음, 서준환 옮김 / 자음과모음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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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읽은 로빈슨 크루소의 모험과 15 소년의 표류기는 미지의 세계, 그것도 무인도라는 섬에 정착했을 때의 무궁무진한 삶에 대한 일말의 희망과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데 부족함이 없었던 책이었다.

 

특히 로빈슨이란 인물이 홀로 남겨진 섬에서 스스로의 생활을 해나가는 과정은 그럴듯한 모습과 함께 누구라도 이런 식이라면 홀로 남겨진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은 없을 것이란 상상을 더해주는데 더할 나위 없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그런데 또 다른 방향의 제시를 해 준 책으로 인해 과연 로빈슨의 생활은 가능했었는지에 대한 해석과 관점을 달리 보이게 한 책이 있었으니 미셸 투르니에의 작품인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이란 작품이었다.

 

어쩌면 어린 나이에  동화를 통해 성장해 나가는 길목에서 던져줄 수 있는 희망과 긍지, 자신감과 꿈을 간직할 수 있게 해 주기 위해 읽은  글이란 점을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 싶기도 하지만 냉철한 각도에서 달리 받아들여지는 미셸의 책은 크게 인상이 남은 책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읽으면서 또 한 번 미셸의 책을 동시에 생각해 가면서 읽게 했다.

이 소설은 세계 최초로 혼자 배를 타고 세계 일주에 성공한 여성 항해사 이자벨 오티시에르가 쓴 장편소설로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 극의 상황에 몰리게 될 때의 인간의 선택을 통해 다른 사람들은 그 사람이 행한 행동에 대해 어떤 시선과 관점, 그리고 이러한 행위를 통해 어떤 판단을 내릴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을 던져 준 책이다.

 

서른을 막 넘긴 루이즈와 그녀의 남자 친구 뤼도비크, 두 사람은 동거를 하면서 살아가는 커플이다.

유머 넘치고 자유분방하며 쾌활한 퀴도비크의 계획에 따라 선뜻 내키지는 않지만 안식년을 이용해 배 항해를 시작한다.

돌고 돌아 남아프리카까지 가기로 결정한 그들의 계획은 남미 대륙의 끝인 파타고니아와 혼 곶 사이에 있는 천해의 자연보호구역인 어느 무인도에 몰아친 폭풍우로 인해 배는 종적을 감추게 되고 그나마  구명정만  간신히 건지게 된다.

 

이후 그들은 한때 고래잡이가 성행하던 시절  이 곳에 기지를 세우고  번창했던 사업을 엿볼 수 있는 각종 유물들을 보면서 이 난관을 헤쳐나가려고 애를 쓰게 된다.

 

변변한 옷이나 식량조차도 없던 그들 앞에 도사린 것은 굶주림과 변덕스러운 기상변화, 곧 불어닥칠 겨울의 추위로 인한 식량 비축까지....

 

책에서 익힌 지식들을 이용해보려 하지만 전혀 이용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하는 곳, 보호 동물인 펭귄을 잡아 털을 뽑고 말리다가 쥐에게 상납당하고 강치를 잡을 수밖에 없는 상황들은 급기야 서로에 대한 원망과 미움, 걷잡을 수 없는 절망을,  특히 그들 사이에 놓인 사랑마저 언제 했는지에 대한 기억조차도 물러서게 만든다.

 

둘이 의지하되 서로 혼자임을 느끼게 되는 과정, 관광 크루즈선이 보였을 때의 두 사람의 각기 다른 행동은 걷잡을 수없는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데....

 

미셀이 그린 책에 나오는  정반대의 크루소를 그리고 있는 점을 타당하다고 느끼게 해 주는 책,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저자의 경험과 생각이 고스란히 녹아있다는 느낌을 받게 하는데, 일종의 경고라고나 할까?

무수히 많은 거대한 자연 앞에서 한낱 생명체에 지나지 않는 인간들은 너무나도 자만심이 가득하다는 사실, 거대한 빙산의 일각에도 전혀 손을 쓸 수 없고, 이성마저 마비시키는 굶주림은 아무리 사랑으로 맺어진 연인이라고 할 지라도 각개의 독립적인 고독과 혼자라는 자각을 여실히 느끼게 한다는 과정들을 통해 독자들로 하여금 다시 한번 자연의 위대함과 인간의 도전을 거부한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끼게 한다.

 

독자들은  루이즈가 기가 빠지고  절망, 굶주림에 빠진 뤼도비크를 남겨두고 홀로 섬을 탈출했을 때와 다시 돌아올 때의 기간 사이에 느꼈던 감정의 변화를 사실적으로 그렸다는 점에서 충격을 받는다.

어떻게 해서라도 구조의 손길을 찾고자 떠난 길이 자신이 찾은 기지에서의  아늑함,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드는 잠, 다시 원기를 회복했지만 다시 돌아가길 머뭇거렸던 행간의 의미를 통해 인간 각자의 삶에서 이성을 제치고 본능적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이행한 루이즈에게 차가운 눈길을 보낼 수 있는지를 묻는다.

 

 

 

 

 

 

책은 섬에서의 '저편에서'와 극적으로 구조된 루이즈의 세상 나오기 편인 '이곳에서' 통해 상반된 삶의 모습을 보인다.

 

보통의 우리들인  인간들이 갖게 되는 궁금증, 정말 그곳에서 로빈슨 크루소 같은 생활을 하고 구조된 한 여인의 경험을 그저 신기하고 호기심 어린 눈길로 바라보는 세태와 이를 이용한 매스컴의 보도와 기자의 눈에 비친 또 다른 영역 활동은 루이즈에게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하고 진실을 굳이 밝힐 필요는 없다는 사실 이면에 또 다른 망설임을 통해 인간으로 지닌 양심의 끝없는 가책을 보여줬단 점에서 저자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 살기 위한 본능, 그리고 그 안에서 어떤 상호작용을 해야만 공존된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경각심, 이성으로 돌아왔을 때의 겪게 되는 루이즈의 행동을 통해 결코 자연이 우습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줬단 점에서 이 책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생각을 해 본다.

 

자연은 그대로 그곳에 항상 있지만 인간들의 무분별한 행동과 자만으로 인해 세계 곳곳에서는 소리 없는 몸살과 아우성이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게 한 책이자 저자의 계절 변화에 따른 풍경 묘사는 인상적이면서도 초라한 인간의 모습을 제대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루이즈가 정신적인 충격을 딛고 일어서는 의지를 담고도 있는 책이기에 여러 면에서 생각할 거리를 던지게 한 책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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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탱고클럽
안드레아스 이즈퀴에르도 지음, 송경은 옮김 / 마시멜로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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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많은 춤들이 있지만 탱고만큼 정열적인 춤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탱고는 많은 사람들에게 익히 알려진 춤이다.

처음 이 책의 띠지에 대한 글과 글의 내용을 어림직작하건대, 어떤 이야기일지가 대강 짐작이 갔지만 책을 읽으면서 탱고에 대한 흥미를 다시 느끼게 되고 나도 모르게 탱고의 박자를 그리면서 읽게 된 것도 의외였던 책이다.

 

잘 나가는 컨설팅 회사의 초 바람둥이자 날라리, 가버 셰닝-

진지한 관계도 싫고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른 기분전환으로 유일한 취미인 탱고를 추는 것으로 낙을 삼는 남자다.

여기에 짝꿍 여인과의 하룻밤을 같이 보내는 것은 하나의 보너스!

오늘도 어김없이 같은 패턴을 유지하며 자신의 펜트하우스로 상사의 부인과 함께 지내기 위해 차를 운전하던 중, 아뿔싸 사고를 내고 말았다.

 

자전거를 타고 가던 한 노부인과의 접촉 사고는 이후 그에게 전혀 다른 인생의 척도를 가지게 하였으니, 바로 고소를 염려하던 그에게 노부인은 자신의 청을 들어주다면 이 모든 일을 없던 일로 해주겠단다.

가버는 의외의 걱정을 덜어볼 생각으로 선뜻 응하게 되는데, 다름 아닌 노부인 자신이 교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특수학교의 아이들에게 춤을 가르쳐주란 부탁에 난감해한다.

 

교육의 일이라곤 전혀 무관했던 그에게 과연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책은 가버란 인물의 자신이 자라온 환경과 특수학교, 정확히 말하면 학습 인지능력이 떨어진 다양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다니는 5명의 아이들의 사연을 함께 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그들의 일에 끼어들게 된 한 남자의 좌충우돌 이야기를 그린다.

 

곧 회사에서의 큰 프로젝트 성사의 결과에 따라 경영 파트너로서의 자격을 갖추게 될 그의 원대한 꿈은 견제해 오는 또 다른 동료와의 보이지 않는 경쟁을 이루는 가운데 점차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고 살아갔는지에 대한 회상, 자신 또한 어려웠던 가정의 분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해왔던 일종의 경험들을 통해 각자의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깨닫고 이를 행동에 옮기는 과정이 다른 영화나 글에서도 일맥상통하는 장면들을 보인다.

 

 

다만 심장병으로 죽어가는 아이와의 대화와 죽음에 초연한 듯 그 과정을 받아들이는 한 장면 한 장면, 대사를 통해 일말의 유쾌함을 주는 듯싶다가도 한순간 뭉클하고 먹먹한 감정을 쏟아 내기에 충분한 글의 흐름으로 인해 나름대로 유쾌하게 그리면서 해피엔딩을 예상했던 나의 짐작과는 달라서 이건 반칙성의 책이 아닌가 하는 나름대로의 항변을 해보게 된 책이기도 하다.

 

답답한 자신의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자신의 취미로 할 수도 있는 탱고란 춤에 대한 저자의 동작 표현은 문득 영화 '여인의 향기'를 연상하게 했다.

세상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모든 것을 가리지 않고 뛰었던 한 남자의 가슴에 진정으로 따뜻한 물결이 일어나게 만들었던 아이들의 행동과 말들은 오히려 그에게 또 다른 인생관을 심어준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천방지축, 어디로 날뛸지 모르는 아이큐 85의 아이들이 점차 춤에 동화되어 파트너와 한 몸으로 춤의 표현을 통해 자신들 또한 세상으로 나아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한 동기를 부여해 준 이 책은 어른이되 아이의 성장에서 멈췄던   한 남자에게는 또 다른 인생의 참 의미를, 소외되고 자신감이 없었던 아이들에겐 사회 적응이나 또 다른 학업에 대한 열정을 심어주었다는 점에서 진한 감동을 전해 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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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 1 - 5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5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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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의 제5부인 <카이사르 1>이다.

이미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의 연속적인 발간으로 인해 이야기의 흐름은 여전히 흥미와 역사적인 재미를 충족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지만 시오노 나나미가 애정 하는 카이사르에 대한 이야기를 집중해서 다룬 것을 보더라도 카이사르란 인물은 정말 매력적으로 다가오게 하는 사람임은 틀림이 없다.

 

정치에서는 아군도 적도 없다는 말이 있듯이 필요에 의해서 자신의 뜻을 이루고자 한다면 서로가 반목된 결점들이 있더라도 한 수 접고 동지애를 발산시키는 체제이다.

그렇기에 이미 카이사르는 자신의 딸인 율리아를 폼페이우스와 결혼시킴으로써 정치적인 동지애를 장인과 사위라는 혈연관계로 끈끈하게 맺게 되지만 이 책의 처음 시작처럼 안타깝게도 딸 율리아는 출산 도중 사망했다는 비보를, 더군다나 자신의 정신적 지주였던 어머니 아우렐리아의 부고 소식을 듣게 된다.

엄청난 비보였을 텐데도 군인은 군인인지라 애도의 기간을 거친 후에 카이사르는 본격적인 브리타니아와 갈리아의 여러 부족을 분개 별로 무너뜨리며 정복의 기쁨을 느낀다.

 

하지만 이러한 자신의 영역 활동에 있어 카이사르는 주도면밀하게 본국의 정세 또한 놓치지 않고 있었고 이는 사위였던 폼페이우스가 비로소 자신의 위치를 넘어선 로마 만민의 인기를 차지하고 있던 카이사르에 대해 견제의 눈길을 돌리면서 본격적인 공화정 말기의 정세를 그려낸다.

 

확실히 저자의 필치는 세밀하고 노련하다.

많은 방대한 로마의 이야기였기 때문일까?

주요 등장인물들이 나올 때마다 독자들에게 기억력 회생을 시켜주는 친절성, 비록 야만족이라고 칭했던 갈리아의 한 부족과의 싸움에서도 상대 부족장의 전쟁 옷을 묘사한 부분들은 철저한 고증의 자세와 성실성에 그저 감탄할 뿐이다.

 

냉철하자면 끝없이 냉철하다가도 유머와 지성, 뭇 여성들과의 염문에도 그 흔한 원망조차 듣기 어려웠다던 카이사르의 처신은 이제 본국에서의 핏줄이라고는 전혀 없는 상태, 이제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혼미한 공화정을 뒤엎고 자신이 꿈꾸는 세상으로의 진입을 마칠 준비를 하려는 자의 정신적, 육체적인 자세가 냉혹하게 그려진다.

 

서로가 서로가 취하는 바를 원하는 것이라면 한 눈은 지그시 감고 한 눈은 매의 눈으로 섭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어떤 작은 소도구라도 쓸모가 있는 법, 카이사르에게 오랜 원한을 품고 있는 보니 파의 카토와 비불루스와 폼페이우스의 연합, 드디어 로마로 복직해 원로원에 입성한 부투스의 존재는 이후 루비콘 강을 건너기까지의 긴박한 상황들과 이후 정국을 어떻게 그려낼지 다음 편이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역사 속에서 만일은 없지만 항상 생각하는 상상이 있다.

카이사르의 계획대로 자신이 초대 황제에 오르고 차근차근 로마 제정으로의 초석이 다져졌다면 과연 로마제국은 어떤 모습으로 지금의 유럽 정세를 변화시켰을지, 읽으면서도 내내 여전히 그의 죽음이 안타깝게 여겨질 뿐이다.

 

카이사르에 대한 평, 이 문장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 "카이사르에 관한 한 술책은 습관이 되지 않아. 불가피한 것일 뿐. 폼페이우스는 누구를 속이려 할 때 스스로 거미줄 속에 뒤엉키네. 그래, 그가 거미줄들을 잘 다루기는 하지. 그래도 거미줄은 거미줄이야. 그에 반해 카이사르는 태피스트리를 짜지." -p. 349~350

 

자, 이제 판은 정해졌고 얼만큼의 정교한 태피스트리를 통해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로 진격할지 독자들은 여전히 목마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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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이웃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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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모두 읽고서 한참 동안 어떻게 써야할지 기준이 잡힐 질 않았다.

<뿌리 깊은 나무>, <바람의 화원> 등의 작품을 통해 익히 알려진 작가가 그리는 1987년 6월은 어떤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왔는지에 대한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 보는 시간을 갖게 한 책이었기 때문이었다.

 

 

저자의 오랜만에 나온 출간작의 배경이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이야기는 1984년 서울대 프락치 사건을 모티프로  출발한 만큼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시대를 다룬 이야기가 아니었기에 제목만 보고서 내 나름대로의 착각을 한 점도 한몫을 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선한 이웃, 말 자체의 어감은 부드럽게 다가오지만 이  책에서 다뤄지는 이야기들은 누가 선한 이웃이고 누가 악한 이웃인 지 조차도 모호할 정도의 판단력의 기준에 혼동을 불러일으킨다.

 

책은 운동권의 실세로 지목된 미지의 인물인 최민석이라고 불리는 자를 잡기 위해 당시 흔하게 벌어졌던 대학생들과 경찰들의 대치상황을 통해 이 작전에 투입된 김기준이란 인물, 그리고 연극 연출가인 이태주와 배우를 꿈꾸는 여인이자 이태주의 페르소나인 김진아란 여인, 그리고 김기준의 상사인 관리관의 시선으로 이야기는 그려진다.

 

이태주는 연극으로서 줄리어스 시저에 대한 공연을 올리기 위해 자신이 번역한 대본을 수정하고 배우들을 캐스팅하면서 무대에 올리지만 한 줄의 번역을 바꾸면서 이내 연극이 끝남과 동시에  경찰에 끌려가게 된다.

자신과 동료 배우들이 서로 다른 대우를 받았다는 눈초리는 이내 연극계에서 외면당하고 그 자신 또한 미행의 두려움을 느끼며 재기를 노리던 중 진아를 만나게 되고 그는 진아를 내세워 엘렉트라 란 연극을 올릴 계획을 세우게 된다.

 

언뜻 보면 전혀 상관없을 듯한 세 사람의 조합과 만남은 국가의 철저한 계획과 통제하에 길러긴 정보요원 길들이기와 시대의 흐름에 상관없이 자신의 맡은 바대로 임무를 충실히 했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김기준이란 인물이 실패한 작전에 대한 만회를 위해 최민석 잡기에 올인하는 과정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보여준다.

 

 

- 빨갱이를 잡고 좌익분자를 색출하는 일은 정치적 신념 때문이 아니라 그의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최민석을 쫓기 위해 일한 것이 아니라 일을 하기 위해 최민석을 쫓았다. 그냥 일을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일에 충실했고 최선을 다했다. 그것이 제대로 일하는 방식이었다._144쪽

 

정부가 원하는 방향대로, 그 시대를 살아남기 위해서 자신의 양심대로 행동했을 뿐인 결과로써의 참혹한 사실들을 접하는 과정에서의 독자들은 한 대 맞은 듯한 느낌을 받게 되며 이후 반전의 결과물을 또 한 번 접하면서 국가와 개인 간의 관계, 생존 때문에 악이란 것에 자신도 모르게 발을 내딛고 살았다는 자각마저 느끼지 못할 정도의 국가 개입을 통한 한 개인의 인생을 망치는 과정들이 여전히 시대의 아픔을 전달해준다.

 

 

자신의 인생을 자신의 주도권 하에 살아가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라 할지라도 당시 시대의 흐름은 이토록 쉬운 일도 하기 어려웠다는 사실, 철저한 강약 공세을 쥐고 두 사람을 쥐고 펴락 했던 관리자란 인물이 생각했던 그 나름대로의 선의의 정치는 과연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해 보게 된다.

 

 

책은 연극 작품을 통해 은유의 문법을 통한  이태주의 주장이 섞이면서 몰입도는 힘들게 하지만 한쪽에선 여전히 본 적이 없는 실세 최민석을 잡기 위해 모든 설계도에 그려진 것처럼 착착 옭아매기 위해 조여 오는 김기준과 또 다른 쪽에선 연극에 대한 논쟁으로 그려진 반대의 상황을 통해 과연 이 설정을 통해 진정한 나 자신은 무엇인지를 헷갈리게 한다.

 

- "범죄를 규정하는 건 의도가 아니라 결과야. 강요에 따랐든 자발적이었든 간에 거짓말은 거짓말이고, 범죄는 범죄야, 선의의 거짓말도, 어쩔 수 없는 범죄도 없어. 진실을 감추고 사람들을 속이는 것은 그냥 악일 뿐이라고."-p 246

 

 

의도한 바는 아닌 선한 행동으로 인한 결과물이 결국 악으로 인식되었을 때의 태주처럼 과연 우리들은 선한 이웃이었을까? 아니면 악한 이웃이었을까?

30년이 흐른 지금의 우리들 모습을 통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선한 이웃은 어떤 기준으로 불렸을 때의 모습이었을지를 다시 돌아보게 만든 작품이 아닌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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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증명
도진기 지음 / 비채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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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도진기란 이름의 작가를 대한 것이 바로 '악마의 증명'이란 책이었다.

소재 자체도 신선했지만 저자의 이력면에서 더욱 흥미를 이끌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 외국처럼 자신의 활동분야에서 주 전공은 전공대로 활동하되 또 다른 번외의 외전처럼 제2의 창작활동이란 전혀 상반되면서도 연관성이 있는 소재를 통해 독자들과의 만남을 모색했다는 점이 눈에 띄었기 때문일 것이다.

 

현직 판사로서 그가 그동안 쌓아왔던 장편들을 대하면서 한국적인 주 무대를 그린 점, 그런 가운데 법정에서 자신의 일을 보다 상세히 다루고 그 안에서 오고 가는 여러 정황들을 보통의 인물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토로하는 상황들이 또 다른 한국적인 맛을 느끼게 해 준 덕에 그의 작품에 대한 기대감 또한 갖게 했다.

 

이번에 그동안 각 출판사에서 내놓았던 작품들과 미처 발표하지 못했던 작품을 한 권의 책으로 발표한 저자의 작품들은 여전히 다시 읽어도 당시의 흥분과 느낌을 되새기게 한다.

 

특히 '악마의 증명'같은 경우는 쌍둥이란 점을 이용해  한 사람의 범죄를 증명한다는 기막힌 설정 때문에 내 기억 속에는 여전히 최고의 작품으로 꼽는다.

그런 이 작품을 여러 개의 이야기들 속에 첫 번째 주자로 내세운 점은 나만이 아니라 독자들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동감의 감정을 느끼게 해주기에 첫 주자로 내세운 것이 아닐까 하는 나름대로의 생각도 해보게 된다.

 

 

저자의 글들은 하나의 성격을 이어가는 형태의 글이 아닌 다양한 문학적인 시도를 한 작품들이 섞여있다는 점이다.

 

읽으면서 섬뜩했던 '죽음이 갈라놓을 때' 란 작품에서 전혀 도진기 작가의 작품이란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의 냉혹함을 보였던가 하면 남편을 죽인 여인의 정당방위 주장을 위해 혈기 넘치는 변화사의 활약을 그린 '구석의 노인' 같은 작품은 법 안에서 이루어지는 결정적인 증거물과 정황들을 가지고 판결을 내린다고 해도 그 결정이 오랜 인생을 살아온 한 노인의 눈에 비친 인생의 또 다른 면을 통해 들여다보는 방향 전환점과는 달리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그 인간의 생각과 행동을 제대로 알고 이런 법 진행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인간사의 새옹지마와 같은 느낌을 여실히 보여줬단 점에서 두 번째로 좋은 작품 대열에 꼽아본다.

 

또한 시간의 연속성의 되풀이로 인한 환상을 곁들인 '시간의 뫼비우스'는 당시 읽었을 때의 느낌이 다시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짜릿함을 느낄 수가 있었고, 그 밖의 작품들 또한 분위기가 전혀 다른 내용들을 전해 주기에 지루함을 모르게 한다.

 

이제는 현직 판사라는 법복을 벗고 본격적인 소설가로서의 길을 택한 도진기 작가가 과연 다음 작품에선 자신의 신분과 활동에 힘쓰면서 썼던 작품과는 어떻게 다른 작품을 선보일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특히 책 말미에 저자가 쓴 내용 중 개인적으로도 궁금했던 '악마의 증명' 이란 작품의 표절 문제로 방송매체와의 대립을 두었던 결과물의 저간 사정을 짧게나마 알게 된 것이 좋았다.

창작자로서의 자신의 자식처럼 여겨진 작품에 대한 당시의 고통을 약간이나마 느낄 수 있었단 점에서 차후 이러한 소설도 좋지만 단편을 통해서 한국적인 추리 스릴의 장르를 개척할 수 있다는 노력과 의지를 느낄 수 있었던 책인 만큼 외국의 소설과 비교해 읽어도 좋은 책이란 생각을 해 본다.

 

도진기 작가의 건필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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