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의 혜택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29
크누트 함순 지음, 안미란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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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과 보리가 자라네 밀과 보리가 자라네
밀과 보리가 자라는 것은 누구든지 알지요

농부가 씨를 뿌려 흙으로 덮은 후에
발로 밟고 손뼉치고 사방을 둘러 보네

친구를 기다려 친구를 기다려
한사람만 나오세요 나와 같이 춤추세

랄랄라 랄라 랄라 랄라 랄라 랄라
랄라 랄라 랄라 랄라 랄라 랄라 랄라


 

 

책을 접하면서 떠오른 동요다.

어릴 적 많이 듣고 배웠던 노래, 참 오래간만에 동심으로 돌아간 듯한 시간을 준 책이자 자연에 대한 그 어떤 경외심을 불러일으킨 책, 바로 이 책으로 마음으로나마 한껏 전원생활을 해본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크누트 함순-

192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노르웨이의 국민 작가 크누트 함순의 대표작으로서 그의 전성기 때의 필치를 가장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책이란 생각이 든다.

 

 황야를 지나 숲으로 통하는 기나긴 길. 그 길을 낸 것은 누구였을까? 이곳에 처음으로 왔던 남자, 그 사람이었으리라. 그가 오기 전에는 길이 없었다. 그가 다녀간 후로 이런저런 동물들이 습지와 황야에 찍힌 그의 희미한 발자국을 따라가며 그 길을 한결 또렷하게 만들었으리라.-P.9

 

첫 구절로 시작되는 위 문장으로 시작되는 이 책은  저자가 왜 '땅의 혜택'이란 제목을 지었는지에 대한 의미를 함축했다고 느낄 수가 있다.

 

한 남자가 위의 황무지 길을 여러 갈래의 길을 통해 발로 두드려보고 다져보고 확인 끝에 자신이 머물 곳을 정하는 데서 시작하는 이 소설의 주인공은 이사크다.

어느 출신인지, 부모는 있는지, 형제는? 그 어떤 궁금증도 일체 배제한 채 그의 전 일생은 오로지 황무지 개간과 함께 시작되는 긴 생애다.

 

처음에 신혼살림을 장만할 때 모든 것을 갖추고서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하나씩 하나씩 자신들의 돈으로 장만하는 기쁨을 누리고 사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읽어나가는 동안에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되는, 자신의 노력의 부산물이 하나 둘 늘어가는 기쁨을 누리는 이사크를 통해 절로 신이나게 하는 책이다.

 

처음에 시작되는 황무지 개간을 시작으로 풀을 뽑고 돌을 캐내면서 개간을 하기 시작하는 그는 어느덧 소와 양도 거느리게 되고 새끼가 탄생하면서부터 살림이 불자 집도 늘리게 되고, 헛간, 우리까지.... 자신의 일을 도와줄 여인의 손길이 필요함을 느끼게 된다.

그렇다고 이런 척박한, 아무도 없이 홀로 사는, 오로지 새소리와 울창한 숲, 그리고 말도 없고 수레조차도 생각할 수없는 곳에 그 누가 올까?

그러던 차, 어느 날 잉에르란 몸집이 크면서 언청이인 여인이 하룻 밤 묵게 되고 하루가 이틀, 사흘...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그와 같이 살게 된다.

아들도 둘씩이나 순풍 낳아주고, 자신의 몫을 확실히 하는 그녀, 이사크는 오로지 자연이 준 그 선물에 묵묵히 보답한다.

 

때가 되면 씨를 뿌린 곳에 거둔 수확, 우유나 치즈를 시내에 나가 필요한 물건을 바꿔오는 생활 속에 말과 수레도 갖추게 되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초원의 집을 연상시키는 장면이 물 흐르듯 계절의 변화를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흐른다.

 

이 소설 속에서는 급박한 스릴이 없다.

요즘으로 치면 답답할 정도의 시간상의 변화를 보여주지만 굳이 요즘 말로 생각한다면 슬로 시티란 말이 어울릴까?

이마저도 잠시 바쁜 현대의 생활 속에 한 템포 늦추고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준 책이라고 느낄 만큼 오랜만에 '월든'과 동급을 이룬는 책이란 생각을 하게 됐다.

 

한 장정이 자신의 힘만으로 우직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천성과 부지런함, 자신과 잉에르에게 닥친 불행을 겪게끔 한 올리네를 집 안에 들일 수밖에 없었던 상활 속에서도 얼마든지 그녀가 한 행동에 대한 결과로 따질 수도 있었을, 그 전반적인 모든 상황의 시작점, 그리고 그녀를 내쫓을 수도 있었을 충분한 조건임에도 그저 입을 다물고 사는 성격 앞에선 답답함도 전해주지만, 그는 이에 순응까지 하면서 땅 위에 자신의 발을 내딛고 움직일 줄 모른다.

 

국가로부터 땅을 사들이고 구리가 나오면서 각층의 사람들이 몰려드는 시대가 접어들어도, 자신의 첫 아들인 엘레세우스가 자신의 뜻을 저버리고 도심으로 갈지라도 그는 언젠간 돌아올 날을 기다리는 희망사항까지, 골수까지 농부에 삶을 바친 사람으로 나온다.

 

이런 그에게 자연은 때론 가뭄과 비의 혜택을 적절히 섞어가면서 시련을 주기도 하지만 부지런하고 땅은 속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그에겐 아내인 잉에르, 둘째 아들 시베르트, 딸 레오폴디네, 레베카까지 그 삶에 충실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셀란로 농장의 지주이자 영주인 이사크로 대변되는 그 광활한 황무지 개간의 토대를 발전이란 말로  이루는 과정들이 사회 변혁기를 거치면서 드러나는 여러 가지 모습들을 통해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사회가 발달하고 모든 것이 인간의 편의 위주로 발전해 가는 시대 속에 작가 자신이 주장하는 자연에서 얻는 수확의 뒤엔  노동이란 노력과  그 결실의 보상, 노력한 만큼 자연은 인간에게 그만큼의 자비를 베풀어 준다는 의미를 느낄 수 있는 이 책은 인생의 어려운 시련을 겪어가면서도 꿋꿋이 자신만의 삶의 철학을 관철시킨 이사크란 남자를 통해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를 다시 재조명해 보게 하는 책이 아닌가 싶다.

 

 

자급자족의 풍요로운 생활, 돈이 필요 없고 필요한 것만큼 취해가면서 살아가는 생활, 문득 귀농을 하는 사람들, 또 삼시 세끼란 프로를 통해 한가롭게 보여도 쉴 틈 없이 부지런히 인간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농작물의 관리를 보면서 작가가 그리고자 한 세상, 그리고 일관되게 주장하는 자연으로 돌아갈 필요성을 느끼게 해 주는 곳곳의 여러 사건들과 사람들을 통해 우리들에게 전해주는  자연과 인간과의 조화로움을 간결하면서도 뜻깊게 전해 준 책이 아닌가 싶다.

 

 

 

풀 한 포기 하나라도, 소중히 다루는 이사크의 삶을 통해 바라본 당시의 시대상황의 변화 감지를 그의 자식들의 행동을 통해서, 그리고 약삭빠르게 변화하는 세태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가는 다른 사람들의 행동과 비교해 보는 재미도 있고, 천천히 모든 것을 자신의 뜻대로 자연에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그의 삶이 무척 부럽기도 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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