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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 호시스 ㅣ 슬라우 하우스
믹 헤런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26년 8월
평점 :

첩보원의 태생이 원래 자신의 존재 자체가 없는, 그림자 신세면서도 존재가 드러날 때에는 과감히 등장할 수 있는 캐릭터란 점에서 각 특징 있는 인물들이 절로 떠오르게 하는 작품.-
영상에 보인 뛰어난 신체와 감각적인 매력이 넘치며 적재적소에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해 임무수행을 깔끔히 마치는 주인공들은 이 작품에서는 찾아볼 수없다는 것이 이색적이다.
일명 슬로호시스라 불리는 '느린 말들'이 모인 슬라우 하우스에는 각기 개인적인 실수나 사정에 의해 좌천된, 일명 패자들이 모인 근거지라고 할 수 있다.
좌천된 이들이 바라는 한 가지가 있다면 다시 정상 본부에 올라가는 것, 그러나 한번 내려간 이는 예전처럼 갈 수 없는 경우의 수가 희박하다는 것과 무엇 때문에 일을 하고 있는지조차 모르면서 하고 있는 잡다한 서류정리 및 각 개인별 친근함마저 없는 각자도생의 상태에서 수장인 잭슨 램이 이끄는 이들의 모습은 영웅이란 말과는 거리가 있다.
어느 날, 영국 이민자 가정 출신의 무슬림 청년을 납치, 곧 참수를 진행하겠다는 극우 단체의 영상이 퍼지면서 이들은 사태에 휩쓸려 사건에 뛰어들게 된다.
과거 첩보전이 한 개인으로 출발해 그의 능력을 십분 발휘해 사건 진행을 마무리한다면 이들의 행보는 따로 또 같이란 형태로 사건 해결에 나선다.

냉전시대를 거치면서 몸소 겪은 경험이 세월의 흔적처럼 몸에 각인된 잭슨 램이 보인 추레한 모습 뒤에 감춰진 상부와의 대결은 시대의 흐름을 타고 비즈니스 성격으로 발전해 서로가 윈윈 하는 방식에 접근하는 전환의 방식, 부하 사랑에 대한 일말의 감정조차 내비치지 않는 그가 수장으로서 적어도 최소한의 희생은 막아보려 한 노련한 대결은 통쾌한 부분이 있는 반면 현장요원과 관리자 요원 간의 관점 차이를 엿보게 된다.
자신의 실수를 무마하고자 부하의 실수로 덮어버리려는 수장의 실태가 정치적인 내막 속에 감춰진 은밀한 계획 속에 그것조차 모른 채 희생당하고 그 희생조차 이용하려 하는 세태는 램이 지적하듯 누구나 자신의 안위를 앞서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본성을 보여준다.
좌천의 이유를 알지 못하는 램의 비밀들, 전후세대들 간의 실전 경험에 대한 차이와 이를 실제 현장에서 전두지휘하는 램이란 캐릭터는 존 르카레가 선보인 주인공들과도 겹쳐 보이기도 하고 마르틴 베크 시리즈를 떠올려보게 된다.
특출한 능력을 지닌 이들이 없는(호가 그나마 컴에 능한 정도?) 이들이 모여 서로의 생각과 그간의 경험을 모아 인질을 추적하는 과정도 그렇지만 상대의 비밀을 쥐고 있어야만 나의 안위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믿음에 대한 불안감들이 상하 직위를 막론하고 거스를 수 없는 첩보의 세계를 드러낸 장면들은 누구를 끝까지 믿어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들을 해본다.

빠른 전개도 없고 그렇다고 어느 한 명으로 대표될 수 있는 캐릭터라고 굳이 뽑는다면 램 정도로 생각할 수 있는 이들의 단합이 현대전에서 보인 첩보의 세계와 비교할 때 답답한 면도 없지 않아 있지만 그런 만큼 고전 첩보의 세계를 살짝 엿볼 수 있는 장면들이 적절한 유머와 함께 추리의 맛을 느껴볼 수 있다.
게리 올드만 주연의 영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시리즈라고 하니 원작과 비교하면서 봐도 좋을 듯 한 작품, 차후 시리즈 발간이 계속된다면 램의 활약이 기대되는 첩보스릴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