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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빛
마이클 온다치 지음, 아밀 옮김 / 민음사 / 2023년 4월
평점 :
영화 '잉글리시 페이션트'의 원작소설을 쓴 저자의 작품으로 아마도 영화를 보거나 작품을 읽은 독자라면 이번 작품에 대한 느낌 또한 남다르게 다가올 것 같다.
2차 세계대전이 막 끝난 시점인 1945년, 영국의 14살 너새니얼은 부모로부터 일 때문에 누나 레이첼을 남겨 두고 떠나야 한다는 말과 함께 영국에 남겨지고 이들을 보살펴줄 별명이 '나방'이라고 그들 남매가 부르는 세 들어 살던 남자와 함께 살게 된다.
부모가 떠난 후 각자 기숙사에서 살게 되지만 적응을 못하면서 나방의 도움으로 다시 집에서 통학하게 된 남매는 여전히 그의 존재가 의심스럽고 그를 만나러 오는 사람들의 존재조차도 의심스럽기만 하다.
그를 찾아온 사람들마다 지닌 자유분방함, 여전히 베일에 싸인 나방의 존재는 그를 통해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그의 지인인 전직 권투 선수였던 별명이 '화살'이라 불렸던 남자와의 만남과 그 외의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부모를 기다린다.
책은 1, 2부로 나뉘어 1부는 너새니얼의 사춘기를 포함한 누나의 이야기를 그린 성장이야기라면 2부는 부모의 일과 연관된 납치 사건 이후 누나와 그 외의 사람들과 헤어지고 어른이 된 후 영국 정보국에서 일하면서 본격적인 부모의 일을 추적해 가는 과정을 그린다.
부모의 보살핌을 한창 그리워할 때 사라진 존재에 대한 막연한 기다림, 그 속에서 뚜렷한 각인은 없지만 부모가 무언가 중요한 일들을 하고 있었다는 생각은 그가 엄마와 다시 만나고 엄마가 해오던 일들이 무선 정보원으로서 전쟁이 끝났음에도 여전히 활동했었다는 조각들의 모음을 찾아가는 여정과 엄마의 인생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던 한 사람의 실체를 알게 된 반전이 전지적 시점의 액자처럼 그려진다.
여기에 어린 시절 부모를 대신해 가까웠다고 생각했던 이들의 실체가 당시 남매들을 둘러싼 비밀들이 담긴 내용들을 통해 한때의 좋은 추억으로 남았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들은 과거이야기를 더 이상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현실 안착에 대한 기대감들이 전후 당시의 상황을 통해 다가적으로 보여준다.
전쟁을 통해 각기 달리 받아들여진 그때의 기억들, 그 기억들이 한 소년과 한 소녀에게 영향을 주었고 그 소년 또한 의도치는 않았지만 누군가에겐 잊지 못할 상처로 남았을 수도 있었겠다는 의미를 보인 부분들이 많은 아련한 감정의 빛으로 이끈다.
내가 알고 있었던 부분 부분의 기억들이 사실적인 기억이었는가?
저자는 이런 시대가 주는 상실감 속에 성장하는 주인공의 시선을 통해 잃어버린 연결고리를 찾으려는 파편의 기억들과 그 기억들을 통해 확신을 갖고팠던 인간의 본능을 스파이 추리소설, 로맨스, 그리고 이를 뒤에 남겨둘 수밖에 없는 기억에 대한 망각을 서서히 다가오는 한줄기 뿌연 빛처럼 그린 부분들로 인상 깊게 그려냈다.
개인적으로 쉽게 읽힌 문장은 아니었다.
저자가 담고 있는 문장문장 하나하나가 거시적 시선에서 점점 미시적 시선으로 렌즈를 좁혀 그려냈기에 원 제목인 'War light' (전시 상황에서 등화관제가 실시되어 사방이 칠흑처럼 캄캄할 때, 길을 밝히기 위해 쓰이는 희미한 빛을 가리킴)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상실과 진실, 아련함이 곳곳에 묻어난 시린 감정이 연일 사라지지 않았던 작품, 시간이 된다면 재독 하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