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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티켓
조 R. 랜스데일 지음, 박미영 옮김 / 황금가지 / 2022년 3월
평점 :

희망을 상징하는 밀레의 봄 그림을 올려보았다.
서부극은 영화도 잘 보지 않았다.
서부 개척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를 보지 않는 이유는 지루하고, 마초적인 성격의 작품이 많기 때문이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 여성과 약자의 인권은 철저히 무시된 작품들을 보면 어딘가 모르게 마음속이 불편해지곤 했었다. 하지만, 나의 취향과 무관하게 무한 경쟁, 질병과 변혁 속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현대인에게 척박한 이야기는 잘 와닿나 보다. 최근 몇 년간 서부극 영화가 다양한 장르와 혼합되어서 제작 중이다.
오늘 소개할 빅티켓 외 몇몇 작품을 제외하고, 서부 개척기를 배경으로 한 소설은 어릴 때 읽었던 <초원의 집>이 유일했었다.
작가와 정보에 대한 정보도 없이 이 책을 읽게 된 가장 큰 계기는 영화화된다는 점, <왕좌의 게임>, <시라노>의 피터 딘클리지 주연으로 제작된다는 점이었다. 영화 원작 소설에 관심이 많고, 평범한 서부극이 아니라 서스펜스, 스릴러와 결합된 서부극은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다.

이미지 출처 : 구글 검색, 피터 딘클리지 이외에도 찰리 플러머(잭), 소피아 릴리스(아마도 롤라), 노미 라피스, 케빈 지거스 등 원작의 이미지를 잘 살린 배우들이 대거 캐스팅되었다.
작가 조 리처드 랜스데일은 미국의 작가 겸 무술 강사이며, 서부, 공포, 공상과학, 추리, 서스펜스 등 다양한 장르의 산문 작가로 만화책과 시나리오를 썼다. 그의 소설들 중 몇 권은 영화와 텔레비전으로 각색되었다. 브리티시 판타지상, 아메리칸 호러상, 에드가상, 브람 스토커상 등의 수상자다.
직업도 독특하다고 생각했지만, 검색해 보니 서부극 외에도 DC 애니메이션 각본을 쓴 경험도 있었다.
생각보다 쓴 작품들도 많았고, 국내에 <밑바닥>이라는 작품도 출간되었다.
영화도 <콜드 인 줄라이>라는 작품이 개봉했었고, 현재 왓챠에서 서비스 중이다.
작품들의 대다수가 텍사스를 배경으로 하는 서부극이자 모험극인데, 컬트 클래식 소설로 독자들에게 자리 잡은 모양이다. 그의 작품적 특성은 예상 밖의 모순이나 부조리, 이상하고 황당한 상황에 처한 주인공이 등장하는 것이다.

작가의 이번 작품인 빅 티켓, 작가의 다른 작품인 밑바닥

조 R. 랜스데일의 작품들
이번에 읽게 된 빅티켓의 경우만 봐도, 시작부터 인정사정없다.
천연두로 부모님을 잃고 고아가 된 16세 소년 잭은 여동생 롤라와 함께 할아버지 손에 이끌려 친척 집으로 향하게 되는 그 순간부터 모든 인생이 꼬였다.
이 모든 순간의 시작은 천연두였고, 질병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이후 상황은 사정없이 흘러간다.
아직은 어린 두 남매를 데리고 캔자스에 있는 고모할머니의 집으로 천연두의 전염을 피해 급하게 이동하게 된다.
할아버지가 오셔서 나와 여동생 롤라를 데리고 나룻배를 타러 간 그날,
이미 우리에게 벌어진 것보다 더 나쁜 일에 곧 얽혀들고 총질하는 난쟁이와 노예의 아들, 크고 성난 돼지와 친해지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더군다나 내 진정한 사랑을 찾게 되고 내가 사람을 죽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일은 바로 그렇게 흘러갔다.
빅티켓 - 11P
19세기 말경 천연두가 전염병으로 빠르게 퍼지는 묘사는 마치 최근의 팬데믹 상황과 비슷하다.
이제는 엔데믹으로 흘러가고 있지만, 여전히 죽음은 우리 바로 곁에 있고, 늘 예고 없이 찾아온다.
혼돈의 시기, 빠르게 이동하려던 할아버지는 무법자 같은 악당과 사소한 말다툼으로 싸움이 붙고, 갑작스러운 돌풍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마치 머피의 법칙처럼 좋지 않은 일들은 한꺼번에 차례차례 일어난다.
부모의 죽음부터 마음 정리를 하지도 못했는데, 할아버지는 눈앞에서 돌아가시고, 동생은 악당과 함께 사라졌다. 자신의 마음을 추스르기도 전에 소년 잭은 동생 롤라를 악당으로부터 구출해야 할 상황을 생각해야 한다.
동생과 함께 사라진 악당들이 지나간 마을은 이미 보안관이 죽었고, 은행은 털리고 엉망진창이다.
보안관 사무실에서 악당들의 신상명세는 확인했지만, 실질적으로 아무런 도움도 얻지 못한 잭은 평소 자신의 신념과 너무나 다른 사람들과 마주치게 된다.
기독교인이자, 신을 믿는 잭에게 이미 사형 당한 사람의 시체를 훼손하는 것, 돈과 정장을 얻기 위해서 죽은 자의 무덤을 파는 사람들과의 마주치는 것은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가치관의 충돌은 이제 막 시작이었을 뿐이다.
부모님의 죽음 이후 점점 불안정해지는 상황 속에서 소년이 믿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상황에 대한 빠른 판단과 생존, 동생의 구출이라는 목표였다.
할아버지가 준 땅문서로 쇼티와 유스터스를 고용해서, 악당을 추적해 동생을 구출하려고 한다.
이 상황에서 잭과 쇼티와 유스터스의 입장이 다르다.
동생만 구출하고 굳이 사람을 죽이지 않아도 된다는 잭과 악당들을 죽이는 것까지 생각하는 쇼티와 유스터스.

소설을 읽다 보면, 옳고 그름의 경계가 점차 모호해진다.
종교적 믿음이 충실한 잭이었지만, 훗날 오히려 믿었던 사람이 저질렀던 모순과 과오는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온다. 겉보기엔 그럴듯해 보여도 속으로 무슨 생각 하는지 알 수 없는 문명인에 대한 이야기도 상식을 넘어선다.
그러던 와중에 동생을 구출하기 위한 여정 중에서 만나는 쇼티와 유스터스,윈튼 보안관이 겪었던 이야기나 사연을 듣게 된다. 난쟁이로 태어나서 험난한 인생을 살아온 쇼티, 원치 않는 혼혈로 태어난 유색인종인 유스터스, 코만치 부족에게 부인과 딸을 잃은 윈튼 보안관.
특히 쇼티와 잭의 첫사랑이 되는 지미 수는 삶의 지혜를 전수해 준다.
백인이 인디언에게 비참하게 죽임당한 일과 백인이 인디언을 죽인 일들은 상대적으로 어떤가?
상황을 바꿔서 질문하기도 한다.
악당 일당들이 휩쓸고 간 자리에 죽은 자들과 생존해도, 단지 살아가는 상황만 남은 사람들은 결국 믿음을 등지게 된다. 소설은 상황의 반전과 빠른 진행, 선과 악이 불분명해지는 상황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기가 얼마나 힘든지 보여준다. 정당방어로 살아남기 위해 살인을 저질려야 하는 상황, 악당을 죽였다고 하더라도 그 행위 자체는 잘못된 것이 아닌가.
작가는 모순된 상황에 대한 질문을 독자들에게 계속한다.

살인의 상황에 익숙해져가는 모순점에 대해서 그리고 있다. 정의란 과연 무엇일까.
쇼타는 인생의 경험이 아직 부족한 잭에게 멘토의 역할을 해준다.
사랑의 충고, 상황의 판단에 대해서 자신이 겪어왔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가끔은 순수한 잭을 아빠 미소로 바라본다. 난쟁이여서 겪었던 인생의 험한 경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들을 듣고 있노라면, <왕좌의 게임>에서 피터 딘클리지가 연기했던 캐릭터가 떠오를 정도로 작가가 그를 염두에 둔 것 같다.
과거로 되돌려서 전부 다시, 다르게 할 수 있다면 좋겠지.
하지만 불가능해.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기 위해 자신에게 하는 거짓말 같지
하지만 너와 나의 차이는 난 그게 거짓말이란 걸 알고 있단 점이야.
빅티켓, 쇼타 - 267P
첫사랑인 지미 수를 만나게 되었지만, 그녀는 원치 않던 상황 속에 있었다.
그녀를 만남과 동시에 여동생 롤라가 당했을지도 모르는 끔찍한 일들을 알게 된다.
악당들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와 생존한 사람들이 당한 일들, 동생 구출을 위해서 함께 가게 되는 일행들에게 듣는 말은 너무 절망적이다. 동생의 생존 가능성은 점차 낮아져 간다.

일 년 전만 해도 내가 당한 상황이 불공정하다는 생각을 계속했어.
그러다가 딱 깨달음이 오더라. 인생은 딱 그래. 전혀 공정하지 않지.
빅티켓, 지미 수 -258P, 259P
얼마 전 EBS에서 본 코엔 형제의 <더 브레이브>가 문뜩 떠올랐다.
14세 소녀가 아버지를 살인한 악당에게 복수하기 위해 보안관을 고용하고, 현상금을 노리는 특수 경비대원까지 가세해 추격했던 서부극 영화.
처음부터 복수를 생각하기보단 동생의 구출이 가장 큰 목적이었던 잭이었지만, 일행과 함께 겪는 상황들 속에서 서서히 변해간다. 세상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했던 기준과 다른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존재하고, 각각의 기준은 너무나도 달랐다.
선악에 대해서 판단하기 보다, 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과연 선인가의 질문이 작품 전반에 나타난다.
야만의 시대를 다룬 작품인지라, 영화화되면 과연 볼 수 있을까의 장면들이 잔인하고 상세하게 표현되었다.
텍스트는 상상만으로도 너무 괴로웠다.
독실한 기독교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살아왔던 잭은 과연 일행과 함께 동생을 무사히 구출하고 악당들에게 복수할 수 있을까?
빅티켓은 텍사스 남동부 삼림이 무성한 지역을 가리키는 말이다. (원제는 The Thicket : 덤불)
악당들이 숨어든 빅티켓으로 점차 다가갈수록, 기독교적 세계관과 멀어지게 되는 잭의 상황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악당들을 쫓아가게 되면서 겪는 가치관의 혼란과 모순은 신의 존재와 의미는 무엇인지 떠오르게 한다. 서부 개척기 시대, 자신의 가치관을 지키려는 잭이 겪는 인생의 회오리 돌풍은 현재 우리가 겪는 일과 다르지 않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야만의 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삶의 지혜를 알려주는 책이다.

잔인한 장면의 묘사도 생생했지만 무엇보다 <퍼스트 카우>처럼 서부극에서 볼 수 있는 먹방의 묘사도 탁월했다. 고구마와 우유, 커피와 스콘, 옥수수빵, 당밀 등등이 자꾸만 떠올라서 나중엔 비정하지만 유머러스하기도 한 서부극은 지워지고 먹을 것에 대한 묘사만 각인되었다.
보통 방금 만든 따끈한 스콘과 옥수수빵을 생각하지만, 며칠 동안 다니면서 비축해야 할 식량으로 양동이에 가득 채웠다는 모습. 너무 딱딱해져서 이빨이 나갈 정도로 커피와 당밀에 적셔서 부드럽게 만든 후 먹는다던가, 보온기에 데워먹는 모습이 아른아른했던 소설이었다.

책 보고 보고 생각나는 서부극 추천 4편.
더 브레이브 - 아버지 살해한 무법자에게 복수를 위해 연방보안관, 현상금 사냥꾼과 함께 추격전을 펼치는 14세 소녀 매티
슬로우 웨스트 - 아버지와 여자 친구 로즈를 만나기 위해서 스코틀랜드에서 미국 중서부 콜로라도로 향하는 16살 소년 제이와 동행하는 현상금 사냥꾼 사일러스
다크 밸리- 알프스 산을 따라 정체불명의 카우보이가 마을에 도착하고, 마을 사람들을 향한 복수의 총을 뽑아 든다.
퍼스트 카우 - 마을의 유일한 젖소의 우유를 훔쳐 빵을 만들어 돈을 벌기로 하는 두 남자의 이야기
다음 영화

더 브레이브, 슬로우 웨스트, 다크 밸리, 퍼스트 카우
이 글은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