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부당합니다 - Z세대 공정의 기준에 대한 탐구
임홍택 지음 / 와이즈베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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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서 세대마다 붙이는 명칭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떤 이유에서건 명칭을 붙인다는 건 대다수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또한 사회 구성원을 틀에 맞추고 구분한다. 이런 언어들은 정치적으로 사용되면서, 사회적 분열과 갈등을 조장한다. SNS나 모든 언론 매체에서 가장 많이 듣는 것은 MZ 세대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세태를 보여준다며 붙인 세 대라며, 이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많은 책들과 용어 설명에 대한 책들이 쏟아져 나온다. 늘 사회에서 젊은 세대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겹치는 시대를 경험했으며, 지금처럼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지는 않았지만 저작권 자유로 문화적 혜택을 온몸에 받았던 세대로 자라서 나서 맨 처음 성인이 되었을 때가 생각난다. 선배들에게 술잔 돌리는 것이 맘에 들지 않아서, 비 위생적이니 새 술잔으로 마시고 싶다고 했을 때 괴물처럼 바라보던 선배의 모습. 말 트자고 해서 말 텄더니, 버릇없다고 했던 선배들을 보면서 모순을 느꼈었다. 언제나 평등함을 주장하면서, 직설적으로 문제점을 이야기하곤 했던 나를 선배들을 껄끄럽게 생각했다.

사회 나와서도 상사들보다는 후배들과 더 친했다. 후배들에겐 내가 어떻게 보였는지 모르겠지만, 많게는 10살 이상 차이 나는 사람들과 함께 일을 했었다. 나중에 직장에서 일을 할 때는 늘 나보다 한참 어린 사람들과 일을 했었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입장에 공감이 많이 갔었다.

시대가 변하면, 많은 게 변한다. 요즘처럼 시대와 환경이 너무나 빠르게 변화되는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많은 혼란을 겪는다. 사회적으로 충돌과 갈등이 많으면, 더 큰 발전을 위한 역동적인 사회로 흘러가는 것을 뜻한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드러나지 않고, 문제를 숨기기에만 급급했던 시대를 지나왔기에 오히려 적절한 문제 제기는 발전을 위해서 긍정적이다. 디렉트로 이게 문제라고 정확하게 이야기하는 젊은 세대에게 오히려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언론에서 말하는 MZ 세대 말고 실제 MZ 세대와 대화해 봤는가?

이 책을 읽기 전에 MZ 세대가 아닌 사람들에게 질문해 보고 싶다.

같이 일하는 상대 말고 다양한 MZ 세대 말이다. 처음엔 나도 잘 몰랐다. 함께 일하기도 하고 경험해 보기도 했던 M 세대 말고 Z세대는 더더욱. 대화를 나누면서 너무나 다른 환경 속에서 자라왔음을 느끼게 되는 이 세대들은 그 어느 세대보다도 합리적이고, 현명하고 생활력도 강하다. 그럼에도 미래가 가장 불확실한 세대이기도 하다.

저자는 전작 <90년 대생이 온다>, <관종의 시대>에서 M 세대에 대해 자세히 분석한 책을 선보였었다. 세대 담론에 대한 책을 읽느니, 그 세대가 이야기하는 걸 직접 들어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전작들은 읽어보지 않았지만, 너무 많은 매체와 전 대통령이 청화대에 대대적으로 돌렸던 책이어서 어떤 내용인지는 알고 있다. 기성세대와는 다른 사회와 환경에서 성장한 90년 대생이 주목하는 것들,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

투자를 해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나 한정 판매 품목, 미술작품, 가상화폐 등등 기존과는 다른 곳에서 발전 가능성을 보는 그들. 과거엔 부정적 언어로 쓰이던 덕후나 관종을 긍정적 가치로 활용하는 90년 대생들이 다른 세대들에게 어쩌면 낯설게 보이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그만큼 사회는 급변해왔고, 나머지 세대들은 시대의 변화를 따르지 않으면 도태되어야 하는 위기 상황에 노출되었다.

전작들에 이어서 이번에도 이해하기 쉽게 사회적으로 뜨거웠던 담론들과 연결해서 Z세대가 생각하는 공정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드라마 우영우에서 주인공 우영우에 감정이입을 깊게 했었던 상황 속에서 논란이 되었던 부분을 다루고 있다. 권모술수로 동료를 비방하는 권민우의 캐릭터에 대한 항변을 이야기한다. 그가 제기했던 공정하지 않음, 부당함에 대해서 조목조목 설명한다.


 


 

©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권민우

책에서는 공정이란 무엇인가로부터 출발한다.

공평과 공정이 어떻게 다른지, 정치적 틀에 맞춰서 보면 어떻게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사실 모든 문제는 여기서 비롯되지 않나 싶다. 서로 다른 기준의 공정을 이야기한다면, 갈등의 폭은 줄어들지 않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매 정권마다 공정에 대해서 힘써왔지만, 우리 사회는 공정하다고 할 수 있을까?

저자는 공정이라는 단어 안에 담겨있는 이중성을 간파하지 못하는 한,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예로 평창 올림픽에서 아이스하키팀 남북 단일팀의 이슈를 이야기한다. 정치적으로 보기에 남북이 함께 하는 화해모드와 통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올림픽을 위해서 준비한 선수들에겐 기회의 박탈로 다가올 수도 있다. 한쪽에게는 공정할 수도 있는 문제는 다른 한쪽에서는 부당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M 세대가 가고 Z세대가 온다. 예전에 선호하던 공무원도 이제는 더 이상 선호 직장이 아니다.

4년 동안 무엇이 달라졌기에, 이렇게 변할 수 있을까?

뉴스에서 요즘은 예전보다 더 자주 열악한 직장 환경 속에서 스트레스와 업무 과다로, 혹은 조작 미숙으로 희생당하는 젊은 세대들을 보고 있다. 업무환경의 개선이 있지 않는 한, 퇴사율은 높아질 수밖에 없고, 저임금에 과거와 같은 무조건적인 복종을 원하는 고루한 직장에서 일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더 이상 젊은이들에게 눈을 낮추라는 말을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언젠가 면접 보러 다니면서, 기성세대인 분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학력을 낮추고, 적은 임금에서 시작하라는 말이었다.

대졸 적정 임금에 대해서 이야기했을 때 들었던 말도 생각난다. 당신 같은 사람 때문에 사회에 발전이 없다고.

종종 상대 협력사에서 자기 회사는 복지도 좋고 근무조건도 참 좋은데, 직원들이 왜 자꾸만 그만두는지 모르겠다고 말씀하셨던 상사분이 떠오른다.

조직 내에서는 왜 자신의 조직이 문제가 있는지 잘 모른다. 사람들만 그만둘 뿐.



 

이미 학창 시절부터 치열한 조별 과제 속에서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Z세대는 직장 내에서도 같은 상황을 겪게 된다. 조별 과제를 하면서 실은 나도 겪었었다. 손이 많이 가는 자료 조사나 정리는 후배들에게 주어지고, 선배들은 돋보이는 발표를 하면서 주목을 받았고, 학점은 공평하게 주어지지 않았던 것을 기억한다.

사회에 나와서도 그런 선배들이나 상사들은 많았지만, 감히 따질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오히려 요즘 세대들이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문제 제기를 하는 걸 보면서 속 시원함을 느꼈다면, 나는 왜 저렇게 하지 못했을까 생각했다면 이상할까?


 

 



언론에서 매스컴에서 젊은 세대를 자극적으로 다루면서 소비하는 행태가 몹시 안타깝다.

특히 선거나 특정 이슈가 있을 때마다, 세대 이론 혹은 요즘 젊은 세대들은 왜 그럴까를 넘어서 책임론을 제기하는 것이야말로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환경 속에서 어떤 교육을 받았느냐에 따라 사람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시대에 따라 가치와 사회적인 시각도 늘 변화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가치나 생각이 늘 변함없이 옳은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규칙에만 따르기를 강요하는 사회는 발전하지 못한다.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시각과 상대방의 상황을 읽어내고 공감하는 능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요즘이다.


 



저자는 대기업 신입사원 입문 교육과 소비자 팀 분석 업무, 브랜드 마케팅을 담당하는 등 다채로운 직무를 경험했던 것들 바탕으로 조직 내 새로운 세대와의 소통 방법을 다뤄왔다. 90년대 생이 온다며, 기존과는 다른 M 세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면 이번 책에서는 Z세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공정과 부당에 대해서 말하고, 젊은 세대를 무조건 비난하기 보다 이해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쓴 책이다. 책보다는 실제로 젊은 세대들과 소통하기를 무조건 겁내지 말기를 바란다. 일 외에 실제로 이야기해 봤을 때, 신선한 생각을 많이 하고 누구보다도 미래에 대한 걱정이 많으며 진지하게 고민하는 세대이기도 하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모든 생각들이 모두 와닿지는 않았지만, 낀 세대로 살아가는 사람으로 세대 구분이 뭐가 중요한가 싶다. 다 같은 혼란과 충격의 세계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인데 말이다.

사실 이런 책보다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들이 건강하게 함께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한다. 코로나로 인해 사람들과의 모임이 많지 않았던 지난 몇 년간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더 적어지면서 갈등이 더 심화되어 온 건 아닐까? 모임 자체도 함께하는 모임보다 세대별로 나뉜 모임들이 더 활발해지고 있는 요즘, 서로 간의 만남이 더 활발해졌으면 좋겠다.


 



이 글은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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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지옥에서 왔습니다 - 방송월드에서 살아남은 예능생존자의 소름 돋는 현실고증
김주형 지음 / 북폴리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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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본 순간 떠오른 크리스마스의 악몽

게임회사나 미술관에서 근무하면서 깨달았던 점이 있다.

타인의 즐거움을 위해서 일하는 건 고되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즐기는 게임회사에서 운영파트에서 일했던 나는 3교대 근무를 했었다. 루틴이 계속해서 바뀌는 상황은 몸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줬다. 미술관도 마찬가지, 남들 놀면서 데이트하는 모습을 빨간 날 없이 주 6일 근무해야 했다. 최저 임금을 받으면서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그나마 미술관을 빨리 닫는 동절기에는 좀 더 일찍 끝났지만, 덩달아 수입도 줄었다.

그렇다면, 재미를 추구하며 최신 트렌드에 민감해야 하는 예능 프로그램의 PD로 일한다는 건 어떨까?

평소에 노잼 캐릭터에다가 TV에서 가장 보지 않는 프로그램은 예능 프로그램이다.

주로 뉴스, 다큐멘터리, EBS 교육방송 애청자이고, TV로 지대넓얕의 지식을 쌓고 정보를 얻는 사람이어서인가. 예능을 보는 것이야말로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고, 인기 있는 드라마 정도만 간혹가다 본다. TV로 가장 많이 보는 콘텐츠는 영화 관련 프로그램 정도다. 사람들과의 대화에 끼기 위해서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나는 보지 않았다.

하지만 누구나 유튜버와 SNS, 음성 기반 플랫폼으로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되는 시대.

주로 글쓰기 중심 콘텐츠를 작성하지만, 그 외에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릴스, 틱톡으로 콘텐츠 제작이 기본이 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자신의 정체성과 기록이 브이로그로 대체하는 영상 시대 속에서 나만의 개성을 지닌 콘텐츠를 어떻게 제작할 수 있을지 다들 고민이 많다.

요즘은 유명 유튜버가 오히려 방송국 콘텐츠를 제작하는 곳으로 팁을 전수하기 위한 강연을 가고 있다. 역으로 치열했던 방송국 예능 PD로, 일명 재미지옥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의 경험담은 콘텐츠 춘추전국 시대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아날로그 시절의 끝자락 무렵에 공대를 졸업하고 방송국에 입사해서, 엄청난 변혁기를 몸소 20년간 겪어왔다. 카메라 한대 들고 촬영하던 시대는 가고, 프로그램 하나 찍을 때도 여기저기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 시대가 왔다. 공중파 TV에서 케이블 TV 시대로, IPTV에서 OTT와 유튜브, 모바일 시대로 콘텐츠를 접하는 플랫폼도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그 모든 걸 겪으면서 살아남을 수 있는 노하우가 뭘까 궁금해졌다.


 


책을 막상 읽어보니, 노하우 전수에 대한 것은 아니었다.

대신 시시각각 변화하는 콘텐츠 시장에서 어떤 상황을 겪었고, 어떻게 헤쳐왔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방송 PD라는 직업과 방송국이라는 직장에서 어떻게 생존했는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뭔가 특별한 내용이 있을 거라 기대해서 처음엔 살짝 실망하면서 읽었다. 하지만, 읽으면서 어딘가 동질감이 느껴지는 내용이 많았다. 장소가 방송국이었을 뿐, 당시 직장을 다니면서 이직 아닌 전직을 했던 나의 험난한 직장 생활과 뭔가 많이 닮아있었다.

사수 없이 일을 혼자 배워서 자신의 자리를 알아서 잡아나가야 했던 상황들, 처음엔 잘 몰라서 경험하면서 배우곤 했던 기억이 난다. 배우고 가르침 받는 상황에도 한계가 있어서 목마른 알아서 공부하고 시행착오를 통해 터득해갔던 지식들. 초반에는 빨리 배워야 했기에 조바심이 많이 났지만, 버티고 반복하면서 실수를 점차 줄여나갔던 시간들이 기억이 났다. 요즘처럼 직장 생활 환경이 험난한 상황 속에서, 2000년대 초반의 방송국에서 버티면서 생존한 기록이 막 직장 생활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무엇보다 방송국이나 예능 분야, 내 콘텐츠를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참고할 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다 읽고 나서 들었다. 멱PD(멱살 잡고 싶은 PD)는 어떻게 방송국과 콘텐츠 시장에서 살아남았는지에 대한 담담하고도 상세한 자기고백 에세이다.


 

 



크게 3파트로 나누어져 있는 책이지만, 현재부터 과거까지 어떤 상황을 겪어왔는지와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콘텐츠 시장을 떠올려보면 2000년도 초중반쯤엔 공중파의 뉴스와 식상한 드라마와 예능 프로가 보기 싫어서 종합편성채널과 TVN으로 눈을 돌렸었다. 무엇보다 당시에 나는 공중파를 거의 보지 않고 미국 드라마와 영국 드라마에 푹 빠져있었다. 한국 드라마나 예능을 보게 된 계기는 종합편성채널과 TVN이 컸다.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공중파의 시청자들을 서서히 종합편성채널과 TVN으로 갔다. 아마도 공중파의 인기 PD와 인기 MC나 뉴스 진행자들이 간 게 처음엔 컸지만, 프로그램 자체도 공중파에서의 틀을 깬 작품들이 많아서 신세계를 본 기분이었다. 그 당시쯤 공중파 PD를 한다는 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결국 공중파에서도 기존의 틀을 깬 새로운 작품들을 서서히 선보이기 시작했던 것 같다. 드라마와 예능프로그램 모두 사전 제작이 되어 국내뿐만이 아닌 전 세계를 대상으로 전파되는 시대가 오고 있었다. 국내에서 안되면 해외로, 우리나라 프로그램이 잘 먹히는 다른 나라에 선보이기 시작했다.


 

 

© 컴퍼니상상

선배인 장혁진, 조효진 PD, 멱 PD란 별명의 김주형 PD

책은 2019년에 방송국에 사직서를 내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유는 번아웃이나, 힘들어서가 아닌 새로운 플랫폼에 도전하기 위해서였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사표를 내고 먼저 사표를 낸 선배들이 만든 회시에 정착해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려 했다. 여의도-목동이었던 방송 라이프는 상암으로 바뀌면서 중국으로의 더 큰 도전이 있었지만, 누구도 예상치 못한 변수인 한한령(중국인들이 한류 콘텐츠를 비롯한 각종 한류 문화를 금지시키기 위한 조치의 일환에 따른 금지령)으로 모든 프로젝트가 엎어질 상황이 되었다.

시작부터 이직 후 위기의 순간을 묘사하니, 앞으로의 상황이 얼마나 궁금해지겠는가. 책을 읽으면서 가장 감탄했던 부분은 확실히 타고난 스토리텔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떻게 되었을까?

우연히 퇴사한 방송국에서 만났던 인맥은 마침 넷플릭스에 다니고 있는 사람이었고, 그렇게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순발력으로 변화의 파도를 다시 갈아탈 수 있었다.


 

 

© 컴퍼니상상, NETFLIX

공중파 PD 안정적인 직장을 박차고 먼저 퇴사한 선배들이 만든 회사와

프로젝트에 합류해서 제작함 프로그램들.

현재를 이야기하다가 문뜩, IBM 입사가 꿈이었던 공과대생이 어떻게 방송 PD를 꿈꾸게 되었는지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으로 넘어간다. 방송국에서 PD로 일한다는 비현실적인 일을 생각조차 하지 않고 외국계 기업에서 유연한 근무를 하려고 했던 대학교 시절.

방송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고, 아침잠이 많아서 오전이 없는 자율 출퇴근을 하는 듯한 느슨한 분위기가 맘에 들었다. 국내에서 알아주는 대기업 해외 마케팅 부서에 합격했지만 입사까지는 1년이라는 시간이 남았다. 여기저기 가고 싶은 다른 곳에 입사지원서를 넣으면서 보냈던 대학교 4학년 봄. 우연히 듣게 된 주철환 PD의 취업특강 - 방송국 PD 되기가 결정적으로 운명을 바꿔놓았다.

적절한 시기에 멘토의 역할이 중요한 것처럼, 방송국 PD 면접을 볼 때 주철환 PD의 조언이 큰 도움이 되었다. 필기시험까지는 개인의 능력이니 도와줄 수 없지만, 면접에 대해서는 조언을 해줄 수 있다고 한 이야기를 듣고 찾아가서 도움을 요청한 것이 결국 예능 PD의 길로 인도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시작된 방송 라이프와 실제 방송의 세계는 학생 때 막연히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다.

아침잠이 많아서 자유로운 제작 환경을 좋아했지만, 실은 전날 늦게까지 작업을 해서 아침 일찍 출근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언젠가 막연히 게임회사에 대한 로망만 품고 입사했다가 큰코다쳤던 기억이 떠올랐다. 막연히 꿈꾸던 직업에 대한 환상은 현실과 너무나 다르다.

예능국에서 시작하고 싶었지만, 맨 처음 가게 된 곳은 아침 프로그램인 SBS 모닝 와이드였다.

모닝 와이드하니까 <굿모닝 에브리원>이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망해가는 아침 뉴스 프로그램에 입사하게 된 PD가 프로그램의 폐지를 막고자 끌어올리겠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갖은 애를 쓰는 모습이 너무나 눈물겹지만, 현직에 종사하시는 분들은 아마 보면서 가슴이 울렁울렁했을 것 같다.


 



예능 프로그램을 하고 싶었지만, 교양국에서 일하게 되었고 3년 차 되었을 때 사표를 카드로 방송국과 딜을 해봤지만 결국 옮기게 된 것은 예능에 가까운 교양 프로그램이었다.

한때 대체할 영화 관련 정보는 독보적으로 가져왔던 <한밤의 TV 연예>에서 일했었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는 챕터가 PD님께는 너무 죄송하지만, 영화팬의 입장에서는 가장 재미있었다.

제시카 알바가 출연하는 <판타스틱 4> 호주 정킷 행사 취재에 대한 에피소드 중 그녀와 마주치는 순간에 대한 회상이 가장 부러웠었다.


 


 

© SBS

교양국에 있던 시절 몸담았던 프로그램

책을 읽다 보면 느껴지는 점이 있다. PD님은 상황에 결코 안주하지 않았다는 점.

같은 상황이었다면, 아마도 그 현실에 안주하면서 그저 그런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자리 유지만 했을 나와 달리 PD님은 끊임없이 예능국 PD의 꿈을 놓지 않았다. 방송국에서는 교양국에서 예능국으로 옮기는 건 쉽지 않다면서 <한밤의 TV 연예>와 <동물농장>쪽으로 보냈지만, 멱 PD님은 굴하지 않고 결국 입사 5년 만에 예능국 PD로 일하게 된다. 아이러니하지만, 예능을 잘 보지 않는 나는 <한밤의 TV 연예>와 <동물농장>은 참 열심히 봤었다. 요새도 <동물농장>만큼은 유튜브 영상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책 속에서 가장 재미나게 봤던 챕터였다.


 


그렇게나 꿈꿔왔던 예능국 PD가 되고 나서는 수월했을까?

교양국 PD에서 일하다가 와서 겪어야 했던 적응 시기, 빠른 변화 속에서 맡게 된 차례차례 맡게 된 프로그램들의 이야기가 주옥처럼 담겨있다. 또한 프로그램을 하면서 만났던 연예인들과 주요인물들과의 관계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적혀있다. 연예인이지만 결국 사람이고, 책에서는 사람과의 관계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예능국 PD로 일하면서도, 역시 변화를 추구했다.

인기 프로그램이자 주력 프로그램인 런닝맨에 몸담았고, 중국판 런닝맨도 성공적으로 이끌어나갔지만, 김주형 PD는 만족하지 않았다. 새로움과 신선함을 추구해야 하는 성향일 텐데, 프로그램에 너무 오랫동안 묶이는 것 자체가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왔을 것 같다.

예능 프로그램이란 게 참 기구하다. 잘되면 정말 좋다.

좋긴 한데, 잘 되는 경우에는 끝이 없다.

워라밸 따위는 가슴에 품고 기약 없는 노동 쳇바퀴를 굴려야 한다.

죽어야 끝나는 예능 프로그램의 운명.

손뼉 칠 때 잘 떠나는 것, 꼭 방송 일이 아니더라도 모든 일에서 일하는 자들이 꿈꾸는 것일 거다. 그러나 보통 예능 프로그램들의 운명은 그렇지 않다. 손뼉 칠 때는 절대 떠나지 못한다. 그 박수가 없어지고 사라질 때 외로이 떠난다.

재미지옥에서 왔습니다. - 166-167P


 

 


 


 


예능국으로 오면서 몸담았던 프로그램들

그리고 가장 대표작이 된 작품들

PD라는 직업 자체를 처음부터 꿈꾸지 않았고, 외국계 기업에서 일하고 싶었던 공과대생의 생뚱맞은 선택의 연속을 보고 있자면, 어쩐지 예전 취업 시기를 앞뒀던 내가 떠오른다. 졸업 후 동기들과 통화하면서 게임회사에서 일한다고 하면, 의외로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전공을 살려서 취업하는 경우보다 그렇지 못했던 경우가 더 많았던 시대를 살았었고, 문송합니다의 문과에서 전공과는 전혀 다른 분야에서 일했던 과거도 떠올랐다.

이 책은 아마도 모든 콘텐츠 제작자들이 읽어야 할 책일지도 모른다.

또는 PD나 콘텐츠 기획자의 꿈을 막연히 꿈꿔왔던 사람들, 진로를 그쪽으로 잡고 있는 학생들이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책이다. 처음엔 노하우가 궁금해서 읽게 되었지만, 어찌 보면 자신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은 인생과 직장 생활 속에서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잘 알려주는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살짝 안도한 부분도 있다. 변혁의 시대를 지나가면서 예능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도 혼란과 방황을 겪었었구나.


 



인생에 정답은 없듯이, 방송도 그렇다.

누가 제대로 알려주고 가르쳐주는 게 아니라, 자신이 습득해나가고 찾아나가야 하는 것이다.

무수한 기획과 실패, 시청률에 오르락내리락 요동치는 마음, 그 속에서 정신줄을 놓지 않고 안주하지 않는 것. 더 나아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기획하고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도전을 멈추지 않는 것.

그것이 지금의 김주혁 PD가 있게 한 모든 것이 아니었을까?

PD님의 마지막 조언을 남겨본다.

모든 것을 새롭게 할 수는 없다.

그래서 단 한 가지 만이라도 새롭다면, 아마도 성공한 기획이다.

이곳은 재미있지만, 지옥이다.

이 지옥행 열차에 오르고 싶은 분이 있다면 말씀드리고 싶다.

진부한 조언으로 들릴 수 있지만, 평소 다양한 경험을 많이 쌓으시라.

얕고 넓게, 그게 더 좋다. 대중의 취향은 너무나도 다양하며 예능 소재는 그 한계가 없다.

'즐기는 사람 못 이긴다'라고 했다. 이곳은 딱 그런 곳이다.

즐길 수 있도록 지금 무엇이든 경험하고, 체험하고 느꼈으면 좋겠다.

재미지옥에서 왔습니다 - 177P

더불어 방송국에서 일하는 PD 님들이 보기 싫을 영화 리스트도 소개해 본다.

굿모닝 에브리원 : 지역 방송 PD가 시청률 최하 모닝쇼의 시청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왓챠, 티빙, 웨이브)

레이트 나이트 : 심야 토크쇼 진행자 캐서린은 떨어지는 시청률로 하차할 위기에 처한다. (왓챠, 티빙, 웨이브)

더 인터뷰 : 북한 지도자를 인터뷰하러 떠나는 토크쇼 제작진에게 암살 제의가 들어오면서 벌어지는 소동 (넷플릭스)


 

 

방송국 PD가 보기 싫을 영화 리스트 굿모닝 에브리원, 레이트 나이트, 더 인터뷰

이 글은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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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방
알렉스 존슨 지음, 제임스 오시스 그림, 이현주 옮김 / 부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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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는 독자나 글쓰기를 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유명 작가의 집필실이 궁금하다.

작가의 문장과 작품이 태어난 공간에는 어떤 특별함이 있을까? 그들은 어떤 환경에서 작품을 작성하고, 어떤 습관이 있을까? 그런 궁금함 때문에 작가의 고향을 방문할 때면 관광지로 구경하기도 한다.

영화나 드라마 상에서 묘사한 집필실은 실제와 얼마나 비슷할까 늘 궁금했었다.

그런 궁금함을 해결해 줄 책인 <작가의 방>.

영국의 저널리스트이자 블로거인 작가 알렉스 존슨이 애서가 입장에서 섬세하게 작가의 방과 그들의 집필 습관, 소품 등을 묘사했다. 직접 모두 방문했는지는 모르겠으나(대신 방문 정보를 따로 정리한 정보가 책 뒤편에 나와있다.), 작가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는 것만큼을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책을 좋아하는 독자의 한 사람이며, 최근 목적에 맞는 글쓰기와 단어 선정에 대해서 통감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50인의 작가들의 창조적 영감이 탄생한 공간을 엿본다는 것 자체가 흥미로웠다. 국내 출판본은 예술가의 색인 자줏빛을 띄는 보라색에 포근한 공간 속의 그림책 작가 주디스 커의 방을 내세웠다. 비교해서 원서는 실비아 플라이스의 집필공간을 배경으로 좀 더 차분한 색깔인 민트 색인 점도 재미있다.




 

책은 오직 5가지의 방으로 작가를 분류했는데, 다음과 같다.

첫 번째 방 홀로, 영감에 귀 기울이는 곳

두 번째 방 추억과 개성이 가득한 공간

세 번째 방 온 세상이 나의 집필실

네 번째 방 자연이 말을 걸어오는 곳

다섯 번째 방 자신만의 스타일로 고집스럽게

작가의 방

제임스 오시스의 감각적인 작가들의 집필실과 서재에 관한 일러스트를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두근거린다. 각 작가들만의 개성이 뚜렷이 보이는 느낌이고, 어떤 상황 속에서 집중해서 글을 쓸 수 있었는지, 그들에게는 어떤 글쓰기 루틴과 생활 습관이 있었는지 정말 궁금하다.

글쓰기는 기본적으로 고독하다. 글쓰기를 배울 수 있고,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만, 누가 대신 내가 써야 할 글을 작성해 주지 않는다. 요령을 배운다고 해도 그것을 활용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문장과 단어, 덜어내야 할 표현은 어떤 건지 알아보기가 쉽지 않다.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들을 잘 붙잡아두기도 힘들어서, 그나마 팁이라면 핸드폰 메모장에다가 기록하거나 작은 수첩에 적어두는 정도인데 나중에 정리가 잘 안된다.

글쓰기가 취미에서 서서히 일적인 영역으로 다가오게 되면서, 좀 더 체계적으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이 책으로부터 작가의 영감을 나눠 받고 싶었다. 물론 좋아하는 작가의 습관이 나와 맞지 않는 경우도 있겠지만, 비슷한 습관이나 환경에서 글을 잘 쓰는 걸 보면서 공감을 느끼기도 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책을 읽을 때 순서대로 읽기보다는 선호하는 작가 순으로 읽었다.

주로 여성 작가의 방이 많았고, 무라카미 하루키나 로알드 달을 좋아해서 그들의 공간에서 온전하게 느끼는 시간을 가졌다.


 


영화 디 아워스의 집필실과 책 속 일러스트

누구보다도 작가들은 테이블 의자, 커튼, 카펫 같은 소유물을 자신의 이미지로 만들어 내며, 그곳에 지워지지 않는 정체성을 남김다.

버지니아 울프 <위인들의 집>

작가들에게는 글을 쓰기 위한 의식이 있다고 한다. 글을 쓰기 위해 특별한 장소, 온전히 혼자가 되고 집중할 수 있고 편안한 공간을 조성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그중에서도 버지니아 울프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책은 "자기만의 방"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여성에게는 정말 혼자만의 공간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미혼이든 기혼이든 여성은 혼자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있기 쉽지 않다. 버지니아 울프의 <위인들의 집>에서 집과 방은 사람의 성격에 큰 영향을 미치니 누군가를 자세히 알고 싶다면 전기를 여러 권 읽는 대신 그가 살던 집을 한 시간 둘러보라고 했다고 한다. 작가의 공간을 방문하는 것은 곧 작가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한다. 여행을 자주 갈 수 없기에, 영상에서 봤었던 작가의 공간을 글과 그림으로 느끼는 상황이 너무 편안했다.

당신이 쓰고 싶은 것을 쓰는 것, 중요한 것은 오직 그뿐이다.

그것이 오랫동안 가치 있을지,

아니면 몇 시간 만에 사라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버지니아 울프

위대한 작가들이 글을 쓰던 공간에서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 작가는 서문에서 3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 오두막이든 침실이든 도서관이든 차 안이든, 쉽게 방해받지 않을 공간을 확보한다.

둘째, 활용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최대한 활용한다.

셋째 어디서든 오전에 쓴다.


 


추리 소설 작가 중 가장 좋아하는 애거사 크리스티의 서재가 맨 처음으로 나와서 반가웠다.

흔들리지 않는 책상과 타자기를 필요조건으로 뽑은 그녀의 집필실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 아무래도 피아노다. 그냥 작성할 때는 탄탄한 책상 역할을 하는 피아노이고, 타자기로 작성할 때는 편안한 안락의자를 선호했다고 한다. 남편과 여행을 다니면서, 혹은 목욕을 하면서 틈틈이 아이디어 노트에 자료를 작성해서 나중에 그것을 모아서 작품으로 썼다.


 

나는 나만의 스타일을 고수하고 나만의 방식대로 계속 써야 한다.

그렇게 해서 다시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반드시 실패한다고 확신하니까.

제인 오스틴

제인 오스틴의 집필실 그림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 확실히 티포트와 찻잔이다. 그리고 하루 종일 글을 쓰기에는 너무나 작은 테이블과 의자가 눈에 띈다. 과연 그 작은 곳에서 얼마나 글을 썼는지 모르겠지만, 영화 속에서 혼자가 되는 시간대에 조심스럽고 비밀스럽게 글 작성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당시에 여성이 글 쓰고, 돈을 번다는 건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었기에 더욱 몰래 쓰지 않았을까 싶다. 책에서는 이사 와 이동으로 글쓰기를 제대로 하지 못했던 에피소드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우울증이라는 원인도 있지만, 바뀐 환경으로 글쓰기 루틴을 무너뜨리고 글을 쓸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나중에 다시 글쓰기 루틴을 회복하는 걸 보여주는 에피소드도 있다.


 

조용한 열정에서의 에밀리 디킨슨

사교생활의 분주함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싶어서 침실 속에서 스스로 은둔하면서 글을 썼던 시인인 에밀리 디킨슨. 침실 속에서 거의 나오지 않고 자기만의 세상 속에서 글과 언어로 사람들과 교류했던 그녀다움이 묻어나는 방이다. 세상 속에서 온전히 떨어져서 고요한 상태로 글 쓰는 데만 몰두한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한 번쯤 체험하고 싶은 공간이었다.


 


미스 포터에서의 비아트릭스 포터

이야기의 첫 문장을 쓰는 것은 어딘가 달콤하다.

다음 문장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비어트릭스 포터

세상 모든 동물과 식물들을 유심히 관찰했던 호기심 많은 동화 작가답게 밝고 환한 채광과 알록달록함이 느껴지는 비아트릭스 포터의 집필실. 방문자들이 자기가 잠시 자리를 비운 것처럼 생각하길 바란다며, 살아있을 때의 상태를 유지해 주길 바랐다고 한다. 그래서인가 앉아서 기다리고 있으면 어디선가 나타나서 농장을 안내해 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집필실이다.


 

비커밍 아스트리드에서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스웨덴의 국민작가이자 삐삐 롱스타킹의 저자인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집필실은 어딘가 모르게 스웨덴의 "라곰"(LAGOM)이 떠오른다. 소박하고 균형 잡힌 생활과 공동체와의 조화를 중시하는 삶을 의미하는 단어처럼 일상과 일의 균형이 잡힌 공간이 돋보이는 집필실이다. 아침에 침대 속에서 연필로 머릿속 생각을 글로 적은 뒤에 타이핑을 빠르게 했었다고 한다. 작가의 직업이 속기사이자, 타이핑을 칠 수 있었기에 비교적 빠르게 작성할 수 있었다고 한다. 오전엔 작가, 오후엔 출판사 편집자의 삶을 살았다는 그녀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했을 것이다.


 


 



그 외에도 굉장히 부러운 작가들의 집필실이 너무나 많았지만, 멋진 카페에서 해리 포터를 완성한 J.K. 롤링, 재즈가 가득한 모던한 집필실이 돋보이는 무라카미 하루키, 안락의자에 가장 편안한 간의 탁자를 두고 열심히 글을 작성했다는 로알드 달, 침실에서 반려견과 함께 글을 쓴 이디스 워튼 등 많은 작가들의 영감을 공간을 바라보면서, 쉽게 글 쓸 수 있기를 바랐다. 현실에서는 물론 쉽게 글을 쓸 수 없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어디든 글 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세 번째 장 "온 세상이 나의 집필실"이 가장 공감 갔다. 그중에서도 마거릿 애트우드의 집필 방식이 가장 맘에 들었다. 최근 그녀의 에세이를 읽고 있어서인지 더 관심이 가기도 했다. 1일 1글쓰기, 1일 1그림 그리기를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경우가 많고, 매일 써야 루틴이 유지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꾸준히 하는 건 중요하지만, 안 써지고 스트레스 쌓일 때는 일단 생각을 비워내야 한다. 애트우드는 하루에 1000~2000단어를 쓰는 걸 목표로 하지만, 그 시간은 짧아지기도 길어지기도 한다. 집중을 하기 위한 수단으로 커피와 음악을 들으면서 작업하지 않고, 트위터를 좋아하기에 글 쓸 때는 하루 10분만 하는 걸로 제한한다는 규칙들도 유용했다.


 


 



글 중간에 이렇게 작가들의 글쓰기 루틴이나 생활 습관, 중요하게 생각했던 도구들이나 팁을 정리해놓은 부분을 보면서 나의 루틴은 어떤가 돌아보게 된다. 글쓰기 이전에 방 정리가 참 시급하다고 생각되는 요즘이지만, 도무지 시간이 나지 않아 늘 정글 속에서 글을 쓴다. 글을 쓰는 시간을 잘 분할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건, 점차 루틴 없이 생활한다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자신을 위한 시간을 쓰는 게 적어진다. 하루의 할 일을 계획해도 종종 함께 하는 가족과 다른 일이 갑작스럽게 터지면 바로 여유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글쓰기에 무엇보다 중요한 건 건강한 심신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글쓰기는 길고 긴 작업이다.

체력적으로 많이 고단하고, 글을 쓰다가 한없이 다운되기도 하고 슬럼프가 자주 찾아온다.

이럴 때, 활발한 신체활동을 하거나 다른 활동을 하면 기분이 맑아지면서 잘 집중할 수 있다.

좋지 않은 생각이 나 스트레스를 털어내고 글에는 그런 느낌을 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책에 적혀있는 말들은 아니지만, EBS E 클래스에서 대통령의 글쓰기로 유명한 강원국 작가님이 글쓰기 전 어떻게 시작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신 적이 있었다. 얼마 전 책 축제에서 참여했을 때, 정유정 작가님이 꾸준히 운동하시고, 될 수 있으면 아침 시간에 글을 쓰기 시작한다고 말씀하셨었다. 장강명 작가님은 집필 실없이 부엌의 식탁에서 작성하신다고 들었다. 작가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창작의 영역은 역시 작가분들에게도 어려운 부분이구나를 실감하게 되어서 위안이 된다.

책을 읽으면서 왜 글쓰기가 어려운가에서 곰곰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글을 좀 더 짧은 시간에 효율적으로 작성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만큼 작가들의 공간과 루틴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이 글은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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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지옥에서 왔습니다 - 방송월드에서 살아남은 예능생존자의 소름 돋는 현실고증
김주형 지음 / 북폴리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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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닝맨pd분이 쓰신 에세이라니 내공과 컨텐츠 제작하는 기술이 궁금합니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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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이지 가드너 4
마일로 지음 / 북폴리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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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망의 마지막! 솜이 인형은 덤!

크레이지 가드너의 마지막 권을 읽으면서, 맨 처음 접했던 마일로 작가님의 극한견주가 떠올랐다. 읽으면서 이분 정말 뭔가에 진심이라고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넘치는 에너지로 집중해서 좋아하는 걸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면서, 귀차니즘의 절정인 나는 부럽기도 했다. 극한견주를 보면서 대형견에 대한 로망은 일찌감치 버렸지만, 주변 견주들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견주들은 참 부지런하구나, 그러니 부지런하지 못한 나란 인간은 애당초 견주는 꿈에도 꾸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명체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작가의 마음은 전해져서 나도 모르게 길냥이를 한동안 열심히 돌봐줬던 기억이 있다. 웹툰의 진심이 전해져서 나 같은 귀차니즘의 소유자를 움직이다니 놀라운 경험이었다.

크레이지 가드너를 보면서 어떤 영향을 받을까? 생각해 보면, 작가님을 통해서 식테크라는 분야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고, 식물 똥 손의 자신감을 뭔가 시도해 보게 하는 쪽으로 유도해 주셨다. 일찌감치 포기하고 있던 식물 키우기에 대해서 작가님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시도해 볼까를 생각해 보게 했다. 무엇보다 주변에 존재했던 식덕인 아빠와 친구의 마음과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이해하게 되었다. 식물이 엄마와 나보다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아빠가 은근 서운하기도 했는데, 그렇게 피우기 힘들다는 난이 꽃피웠을 때 환하게 지으시던 미소가 아직도 생생하다. 아빠가 식물을 가꾸면서 찾았던 건 마음의 평온이었나 보다.



 


 

이번 작품에서는 식덕 생활 중수를 넘어 고수로 넘어선, 꿀팁들이 수록되어 있었다. 키우기 까다로운 식물들을 여럿 저세상으로 보내면서 직접 터득한 지식과 소위 장비 빨 지식에 대해서 상세하게 나와있다. 검색만으로는 알 수 없는 팁과 장비를 개조할 정도의 고수로 능수능란해진 작가 마일로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요즘처럼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이상한 정보는 어떻게 골라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차근차근 알려주고 있다.

설마 호기심으로 직접 다 해보신 건 아니겠지? 떨어진 입이나 나뭇가지나 정보를 모르던 시절엔 그냥 버렸지만, 살릴 수 있다는 걸 알고부터 증식시키다가 감당할 수 없어진다. 인류의 문명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데, 농업의 발견을 이제서야 하기에 문명에서 뒤떨어진다고 생각하는 작가. 하지만, 그것 아시는가? 디즈니 애니메이션 <월-E>에서처럼 인류의 문명의 시작은 농업으로부터 시작된다는걸. 식량 위기와 자연재해와 질병 속에서 생명공학이 유망직으로 떠오르는 것처럼 농업은 모든 것에 기초다.


 



그래서인가, 작가의 꿀팁 중에 과일 씨앗들을 심어서 예쁜 화분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 확 와닿았다. 지난 작품들 속에서도 집과 텃밭에서 키울 수 있는 채소나 과일의 노하우를 알려줄 때마다 쏙쏙 들어온다. 최근 과일과 야채 가격이 너무 많이 올라가니까 자급자족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작가가 공유하는 찐 정보 등을 읽고 있노라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기에, 이렇게 친절하게 공유하는 것일까 싶다.

그냥 버리기만 했던 과일씨들, 버리지 말고 다른 화분에 심어서 새싹이 자라면 소분하면 된다는 팁까지 알려준다. 지속 가능한 환경을 위해서, 자원의 재활용에 대해서도 알뜰살뜰하게 알려준다. 먹던 물이나 수조 속의 물의 재활용부터, 화분의 흙의 뒤처리 방법까지 꽤 실용적인 부분을 상세하게 설명해 준다.


 


 



작가가 식덕으로 살아가면서 변화하게 된 상황들도 재미나게 감상했다.

윤종신의 환생이라는 노래 가사처럼 식덕이 된 이후의 세계는 너무나 다르게 보였다.

예전엔 무심하게 봤던 풍경들도, 실은 애써서 누군가 가꿔놓은 공간이라는 걸 알아서 감동받기도 한다.

식물원에 가서는 집에서 키우는 식물들과 달리 큼직큼직한 모습에 감탄하기도 한다.

여행 갈 때도 동선에 있으면 보고, 아니면 생략했었던 예전과 달리 이제는 집 앞에 새로 생긴 식물원은 꼭 방문해 보게 되었다. 커다란 식물원을 보면서 꿈을 꾸기도 하고, 식물에 좋은 환경 조성도 눈여겨본다. 아는 만큼 더 보인다고, 식덕이 되어 본 세상은 모두 아름답기만 하다.


 

 




다시 태어난 것 같아요

내 모든 게 다 달라졌어요

그대 만난 후로 난 새사람이 됐어요

관심도 없던 꽃 가게에서 발길이 멈춰져요

주머니 털어 한 다발 샀죠 오늘은 아무 날도 아닌데

오 놀라워라 그대 향한 내 마음

오 새로워라 처음 보는 내 모습

매일 이렇다면 모진 이 세상도 참 살아갈 만할 거예요

윤종신 - 환생


 

 




꽃 선물을 이해하지 못했었던 나도 최근엔 예쁜 꽃을 구독해서 매주 다른 꽃을 꽂아두고 싶다.

한동안 꽃 구독 서비스에 잠시 혹했었던 기억이 난다. 주변 지인 중에 양재동이나 고속터미널에서 꽃을 부지런히 구입하시고, 꽃 클래스를 진행하시는 분도 있다. 예전엔 관심이 제로였지만, 요즘은 관심이 간다. 삶이 퍽퍽하고, 안 좋은 일들이 주변에서 자주 일어나서인가 아름다운 것들을 곁에 두고 보면서 마음을 힐링 시키고 싶다. 예쁜 것들을 눈에 담으면, 마음도 덩달아 정화되는 기분이 들어서일까? 산책이나 공원을 가서도 예쁜 꽃들을 보면 자꾸 사진을 찍어오게 된다.


 

 



식물로 꽉꽉 찬 상황 속에서도 계속해서 식쇼(=식물쇼핑)하고 싶은 식덕의 깊은 마음까지는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좋아하는 것에 푹 빠진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나도 다른 취미 생활로 덕질을 하고 있으니까. 작가의 식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작품 전반에 절절하게 그려져 있어서, 숨은 잔재미를 선사한다.

같은 식덕이신 분들은 십분 공감하실 내용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확실히 사람들이 식물을 좋아하는 이유는 계속 이야기해왔듯이 마음의 평온을 얻기 위해서가 클 것이다. 사람에게도 충분한 광합성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광합성을 하지 못한 인간들은 어딘가 모르게 몸과 마음이 서서히 고장 나는 거 같다. 최근 그래서 사회적 문제가 커지는 게 아닐까 싶다.

이럴 때일수록 자연 친화적인 공간을 가까이하거나, 마음의 평화를 위해 집안에 아름다운 식물들로 가득 채워보는 것이 어떨까? 비록 물시중 드는 것 쉽지 않고, 식물을 잘 키우기 위해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할지도 모르지만. 식물을 키운다는 것만으로도 지구를 구하는 위대한 첫걸음 아닐까?


 

 



일명 영화 <튤립 피버> 속 상황도 설명해 주시는데, 현재의 코인이나 블록체인 시장과 다를 께 뭐가 있는가. 도박처럼 하루아침에 알거지 되는 상황을 영화 속에서 보았는데, 상당히 무서웠다. 일확천금을 바라는 세속에서 멀어지면서, 식물나라에 푹 빠져보자. 그러다가 또 식테크도 해보고, 요샌 좋아하는 덕질로 나름 재테크도 겸사겸사한다고 하니 대단하다.


 



마지막으로 작가님의 한마디가 마음속에 확 와닿았다. 왜 식물 이야기하다가 인간관계에서의 교훈을 얻게 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딘가 뼈 때리는 한마디였다.

이번 편에서는 웹툰에는 없었던 완결 기념 특별 에피소드까지 수록되어 있다고 하니, 팬분들은 어서어서 구입해서 읽어보도록 하자. 마감을 끝난 작가를 기다리고 있던 건 과연 무엇일까?

궁금하시다면, 꼭 읽어보시길.

작가님은 존 윅을 흉내 내 신 걸까? 레옹을 흉내 내 신 걸까? 궁금하다.

이 글은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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