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방
알렉스 존슨 지음, 제임스 오시스 그림, 이현주 옮김 / 부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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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는 독자나 글쓰기를 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유명 작가의 집필실이 궁금하다.

작가의 문장과 작품이 태어난 공간에는 어떤 특별함이 있을까? 그들은 어떤 환경에서 작품을 작성하고, 어떤 습관이 있을까? 그런 궁금함 때문에 작가의 고향을 방문할 때면 관광지로 구경하기도 한다.

영화나 드라마 상에서 묘사한 집필실은 실제와 얼마나 비슷할까 늘 궁금했었다.

그런 궁금함을 해결해 줄 책인 <작가의 방>.

영국의 저널리스트이자 블로거인 작가 알렉스 존슨이 애서가 입장에서 섬세하게 작가의 방과 그들의 집필 습관, 소품 등을 묘사했다. 직접 모두 방문했는지는 모르겠으나(대신 방문 정보를 따로 정리한 정보가 책 뒤편에 나와있다.), 작가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는 것만큼을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책을 좋아하는 독자의 한 사람이며, 최근 목적에 맞는 글쓰기와 단어 선정에 대해서 통감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50인의 작가들의 창조적 영감이 탄생한 공간을 엿본다는 것 자체가 흥미로웠다. 국내 출판본은 예술가의 색인 자줏빛을 띄는 보라색에 포근한 공간 속의 그림책 작가 주디스 커의 방을 내세웠다. 비교해서 원서는 실비아 플라이스의 집필공간을 배경으로 좀 더 차분한 색깔인 민트 색인 점도 재미있다.




 

책은 오직 5가지의 방으로 작가를 분류했는데, 다음과 같다.

첫 번째 방 홀로, 영감에 귀 기울이는 곳

두 번째 방 추억과 개성이 가득한 공간

세 번째 방 온 세상이 나의 집필실

네 번째 방 자연이 말을 걸어오는 곳

다섯 번째 방 자신만의 스타일로 고집스럽게

작가의 방

제임스 오시스의 감각적인 작가들의 집필실과 서재에 관한 일러스트를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두근거린다. 각 작가들만의 개성이 뚜렷이 보이는 느낌이고, 어떤 상황 속에서 집중해서 글을 쓸 수 있었는지, 그들에게는 어떤 글쓰기 루틴과 생활 습관이 있었는지 정말 궁금하다.

글쓰기는 기본적으로 고독하다. 글쓰기를 배울 수 있고,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만, 누가 대신 내가 써야 할 글을 작성해 주지 않는다. 요령을 배운다고 해도 그것을 활용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문장과 단어, 덜어내야 할 표현은 어떤 건지 알아보기가 쉽지 않다.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들을 잘 붙잡아두기도 힘들어서, 그나마 팁이라면 핸드폰 메모장에다가 기록하거나 작은 수첩에 적어두는 정도인데 나중에 정리가 잘 안된다.

글쓰기가 취미에서 서서히 일적인 영역으로 다가오게 되면서, 좀 더 체계적으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이 책으로부터 작가의 영감을 나눠 받고 싶었다. 물론 좋아하는 작가의 습관이 나와 맞지 않는 경우도 있겠지만, 비슷한 습관이나 환경에서 글을 잘 쓰는 걸 보면서 공감을 느끼기도 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책을 읽을 때 순서대로 읽기보다는 선호하는 작가 순으로 읽었다.

주로 여성 작가의 방이 많았고, 무라카미 하루키나 로알드 달을 좋아해서 그들의 공간에서 온전하게 느끼는 시간을 가졌다.


 


영화 디 아워스의 집필실과 책 속 일러스트

누구보다도 작가들은 테이블 의자, 커튼, 카펫 같은 소유물을 자신의 이미지로 만들어 내며, 그곳에 지워지지 않는 정체성을 남김다.

버지니아 울프 <위인들의 집>

작가들에게는 글을 쓰기 위한 의식이 있다고 한다. 글을 쓰기 위해 특별한 장소, 온전히 혼자가 되고 집중할 수 있고 편안한 공간을 조성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그중에서도 버지니아 울프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책은 "자기만의 방"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여성에게는 정말 혼자만의 공간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미혼이든 기혼이든 여성은 혼자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있기 쉽지 않다. 버지니아 울프의 <위인들의 집>에서 집과 방은 사람의 성격에 큰 영향을 미치니 누군가를 자세히 알고 싶다면 전기를 여러 권 읽는 대신 그가 살던 집을 한 시간 둘러보라고 했다고 한다. 작가의 공간을 방문하는 것은 곧 작가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한다. 여행을 자주 갈 수 없기에, 영상에서 봤었던 작가의 공간을 글과 그림으로 느끼는 상황이 너무 편안했다.

당신이 쓰고 싶은 것을 쓰는 것, 중요한 것은 오직 그뿐이다.

그것이 오랫동안 가치 있을지,

아니면 몇 시간 만에 사라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버지니아 울프

위대한 작가들이 글을 쓰던 공간에서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 작가는 서문에서 3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 오두막이든 침실이든 도서관이든 차 안이든, 쉽게 방해받지 않을 공간을 확보한다.

둘째, 활용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최대한 활용한다.

셋째 어디서든 오전에 쓴다.


 


추리 소설 작가 중 가장 좋아하는 애거사 크리스티의 서재가 맨 처음으로 나와서 반가웠다.

흔들리지 않는 책상과 타자기를 필요조건으로 뽑은 그녀의 집필실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 아무래도 피아노다. 그냥 작성할 때는 탄탄한 책상 역할을 하는 피아노이고, 타자기로 작성할 때는 편안한 안락의자를 선호했다고 한다. 남편과 여행을 다니면서, 혹은 목욕을 하면서 틈틈이 아이디어 노트에 자료를 작성해서 나중에 그것을 모아서 작품으로 썼다.


 

나는 나만의 스타일을 고수하고 나만의 방식대로 계속 써야 한다.

그렇게 해서 다시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반드시 실패한다고 확신하니까.

제인 오스틴

제인 오스틴의 집필실 그림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 확실히 티포트와 찻잔이다. 그리고 하루 종일 글을 쓰기에는 너무나 작은 테이블과 의자가 눈에 띈다. 과연 그 작은 곳에서 얼마나 글을 썼는지 모르겠지만, 영화 속에서 혼자가 되는 시간대에 조심스럽고 비밀스럽게 글 작성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당시에 여성이 글 쓰고, 돈을 번다는 건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었기에 더욱 몰래 쓰지 않았을까 싶다. 책에서는 이사 와 이동으로 글쓰기를 제대로 하지 못했던 에피소드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우울증이라는 원인도 있지만, 바뀐 환경으로 글쓰기 루틴을 무너뜨리고 글을 쓸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나중에 다시 글쓰기 루틴을 회복하는 걸 보여주는 에피소드도 있다.


 

조용한 열정에서의 에밀리 디킨슨

사교생활의 분주함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싶어서 침실 속에서 스스로 은둔하면서 글을 썼던 시인인 에밀리 디킨슨. 침실 속에서 거의 나오지 않고 자기만의 세상 속에서 글과 언어로 사람들과 교류했던 그녀다움이 묻어나는 방이다. 세상 속에서 온전히 떨어져서 고요한 상태로 글 쓰는 데만 몰두한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한 번쯤 체험하고 싶은 공간이었다.


 


미스 포터에서의 비아트릭스 포터

이야기의 첫 문장을 쓰는 것은 어딘가 달콤하다.

다음 문장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비어트릭스 포터

세상 모든 동물과 식물들을 유심히 관찰했던 호기심 많은 동화 작가답게 밝고 환한 채광과 알록달록함이 느껴지는 비아트릭스 포터의 집필실. 방문자들이 자기가 잠시 자리를 비운 것처럼 생각하길 바란다며, 살아있을 때의 상태를 유지해 주길 바랐다고 한다. 그래서인가 앉아서 기다리고 있으면 어디선가 나타나서 농장을 안내해 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집필실이다.


 

비커밍 아스트리드에서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스웨덴의 국민작가이자 삐삐 롱스타킹의 저자인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집필실은 어딘가 모르게 스웨덴의 "라곰"(LAGOM)이 떠오른다. 소박하고 균형 잡힌 생활과 공동체와의 조화를 중시하는 삶을 의미하는 단어처럼 일상과 일의 균형이 잡힌 공간이 돋보이는 집필실이다. 아침에 침대 속에서 연필로 머릿속 생각을 글로 적은 뒤에 타이핑을 빠르게 했었다고 한다. 작가의 직업이 속기사이자, 타이핑을 칠 수 있었기에 비교적 빠르게 작성할 수 있었다고 한다. 오전엔 작가, 오후엔 출판사 편집자의 삶을 살았다는 그녀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했을 것이다.


 


 



그 외에도 굉장히 부러운 작가들의 집필실이 너무나 많았지만, 멋진 카페에서 해리 포터를 완성한 J.K. 롤링, 재즈가 가득한 모던한 집필실이 돋보이는 무라카미 하루키, 안락의자에 가장 편안한 간의 탁자를 두고 열심히 글을 작성했다는 로알드 달, 침실에서 반려견과 함께 글을 쓴 이디스 워튼 등 많은 작가들의 영감을 공간을 바라보면서, 쉽게 글 쓸 수 있기를 바랐다. 현실에서는 물론 쉽게 글을 쓸 수 없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어디든 글 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세 번째 장 "온 세상이 나의 집필실"이 가장 공감 갔다. 그중에서도 마거릿 애트우드의 집필 방식이 가장 맘에 들었다. 최근 그녀의 에세이를 읽고 있어서인지 더 관심이 가기도 했다. 1일 1글쓰기, 1일 1그림 그리기를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경우가 많고, 매일 써야 루틴이 유지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꾸준히 하는 건 중요하지만, 안 써지고 스트레스 쌓일 때는 일단 생각을 비워내야 한다. 애트우드는 하루에 1000~2000단어를 쓰는 걸 목표로 하지만, 그 시간은 짧아지기도 길어지기도 한다. 집중을 하기 위한 수단으로 커피와 음악을 들으면서 작업하지 않고, 트위터를 좋아하기에 글 쓸 때는 하루 10분만 하는 걸로 제한한다는 규칙들도 유용했다.


 


 



글 중간에 이렇게 작가들의 글쓰기 루틴이나 생활 습관, 중요하게 생각했던 도구들이나 팁을 정리해놓은 부분을 보면서 나의 루틴은 어떤가 돌아보게 된다. 글쓰기 이전에 방 정리가 참 시급하다고 생각되는 요즘이지만, 도무지 시간이 나지 않아 늘 정글 속에서 글을 쓴다. 글을 쓰는 시간을 잘 분할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건, 점차 루틴 없이 생활한다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자신을 위한 시간을 쓰는 게 적어진다. 하루의 할 일을 계획해도 종종 함께 하는 가족과 다른 일이 갑작스럽게 터지면 바로 여유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글쓰기에 무엇보다 중요한 건 건강한 심신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글쓰기는 길고 긴 작업이다.

체력적으로 많이 고단하고, 글을 쓰다가 한없이 다운되기도 하고 슬럼프가 자주 찾아온다.

이럴 때, 활발한 신체활동을 하거나 다른 활동을 하면 기분이 맑아지면서 잘 집중할 수 있다.

좋지 않은 생각이 나 스트레스를 털어내고 글에는 그런 느낌을 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책에 적혀있는 말들은 아니지만, EBS E 클래스에서 대통령의 글쓰기로 유명한 강원국 작가님이 글쓰기 전 어떻게 시작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신 적이 있었다. 얼마 전 책 축제에서 참여했을 때, 정유정 작가님이 꾸준히 운동하시고, 될 수 있으면 아침 시간에 글을 쓰기 시작한다고 말씀하셨었다. 장강명 작가님은 집필 실없이 부엌의 식탁에서 작성하신다고 들었다. 작가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창작의 영역은 역시 작가분들에게도 어려운 부분이구나를 실감하게 되어서 위안이 된다.

책을 읽으면서 왜 글쓰기가 어려운가에서 곰곰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글을 좀 더 짧은 시간에 효율적으로 작성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만큼 작가들의 공간과 루틴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이 글은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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