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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인을 기다리며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74
J. M.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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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갱의 그림과 야만인이라는 제목의 단어에서 이 책 역시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과 같은 제국주의의 위선을 꼬집는 책이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했다. 그러나 화자가 제국의 변방에 있는 마을의 치안판사라는 점, 그 화자가 문명인에서 야만인으로, 종국에는 제3자인 경계인의 자리에 위치한다는 점, 야만인의 애환보다는 문명인의 왜소함을 부각한다는 점 등에서 이 책은 다른 책들과는 달랐고 얇은 두께와는 달리 묵직한 무언가를 던져주었다.

 


이 작품은 무엇보다도 배경이 불분명하다. 독자는 책을 읽으면서 소설의 역사적 배경을 염두에 두면서 상상하게 되는데 이 소설에서는 끝까지 보아도 그에 대한 단서가 없다. 흔히 야만인이 등장한다고 해서 당시 핍박받았던 아프리카를 생각하며 읽다가도 겨울이 오는 사계절이 있어 다시 아메리카로 넘어간다. 광활한 산과 대륙이 펼쳐지는 모양새만 제시될 뿐 어떤 제국인지, 어떤 야만인인지가 제시되지 않는다. 야만인들도 유목민이라는 단서만 있을 뿐 그들에 대한 어떠한 외적 묘사도 없다. 물론 저자의 조국인 남아프리카 공화국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 가서는 이 모호함이 작가의 의도였음을 깨닫고 작품 자체적으로만 즐길 수 있게 된다. 작가는 시대적, 배경적 모호함을 의도함으로서 우리 머릿속에 생기는 선입견을 배제하고 야만인과 문명인이 아닌 한 인간 대 인간으로서 바라볼 것을 주문하는 것이다. 또한 인종에 대한 어떠한 설명도 없다는 것은 편견을 심어주지 않은 채 그저 생활방식이 다른 유목민들을 야만인으로 규정하고 그들과 선을 긋는 인간 세계의 부조리함을 보여준다. 아울러 이 책에서 나타나는 핵심 구도인 야만 대 문명의 구도는 어느 한 지역, 어느 한 시기의 사건이 아닌 어디에서나 어느 때이든가 일어났던 보편적인 현상임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작가는 철저하게 이 작품에만 집중하게끔 만들어놓았다. 이런 점을 감안하고 작품속으로 들어가보자.

 


먼저, 이 소설 속에서 정의되어야할 핵심 개념은 아마도 야만인에 대한 정의일 것이다. ‘야만인이란 말은 제국주의가 번성하던 19세기나 20세기에 갑자기 생긴 말이 아니다. 중국인들은 예부터 자신과 다른 민족을 이족, 오랑캐 등으로 부르며 중화와 변방을 구별했고, 로마인들도 게르만족, 갈리아족 등 자신의 제국 밖의 사람들은 생김새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다른 종족으로 규정, 야만인이라 불렀다. 우리도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야만인이었고, 우리가 보기에 일본도 그러했다. 그만큼 야만인은 상대를 낮잡아 비하하며 문명의 수혜를 받지 못한 미개한 집단으로 규정하는 하나의 아이덴티티인 셈이다. 실제로 그들이 문명인인지 미개한지 여부는 차치하고 나와 다른 존재로 규정짓는 다는 점에서 야만인이란 용어의 유용성을 찾아볼 수 있다.

 


이 작품에서도 야만인들은 무찔러야할 적이며 괴롭혀야할 대상이다. 단지 제국의 수호와 확장을 위해..따지고 보면 이들은 제국인들에게 먼저 어떠한 해를 가한적도 없다. 그저 계절의 변화에 따라 자신들의 생활방식을 구현하며 살아갔을 뿐, 그들의 영역을 침범한 것은 제국인들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제국은 정착을 기조로 하는 자신들의 삶에 유목이라는 다른 생활방식을 야만으로 규정하고 문명 대 야만의 대립구도를 설정한다. 유목을 하는 이들을 미개로 규정하고 문명의 수혜를 받지 못한 끔찍한 적으로 상정함으로써, 정착민으로서 자신의 생활방식을 굳히려는 시도를 한다. 줄 대령의 군대 역시 제국의 영역 확보 정책에 의해 파견된 집단으로 보이지 않는 실체인 제국의 지령을 수행한다. 삶의 터전을 짓밟힌 것은 유목민들인데 그 터전을 제국의 것으로 여겨 수호하려는 비뚤어진 욕망이 야만인들에 대한 잔인한 고문으로 발현되는 것이다.

 

제국은 역사 속에 존재하고, 역사에 반해 음모를 꾸미도록 운명 지어져 있다. 제국의 속마음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만 있을 뿐이다. 어떻게 하면 끝장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죽지 않고, 어떻게 하면 제국의 시대를 연장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 219p

 

여기서 화자인 주인공의 시점과 생각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데, 그는 자신을 문명인으로 보면서도 유목민들을 야만인으로 보지 않는 시선에서 시작한다. 초반에 그는 줄 대령의 군대가 가하는 야만인들에 대한 고문을 아프게 느끼지만 적극적인 저지는 하지 못하는 방관자의 입장을 취한다. 그러다 그가 변하게 되는 계기는 그때 고문을 받고 혼자 남아 구걸하는 신세가 된 한 야만인 여인을 통해서이다. 노예와도 같은 그 여자에게 야릇한 감정을 느끼고 잠자리를 기피하면서 그녀에게 고통을 주면서도 또 사랑하는 모습을 보인다. 여기서 치안판사라는 그의 지위는 그가 그 문명세계에서 무시할 수 없는 자리에 위치해왔다는 사실을, 노인이라는 설정은 그의 연륜과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음을 은연중에 보여주는 저자의 의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그가 하찮은 여인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고 그녀를 자신과 함께 살게 해주고 또 고향에 데려다 주기 위해 몇 주간의 위험천만한 여정을 떠나게 된 사실은 야만인을 진정한 한 인간존재로 보기 시작하는 하는 계기가 된다. 그녀를 사랑해서 그녀가 자신의 세계에서 자신과 함께 하길 바라지만, 동족에게 가겠다는 그녀의 선택을 존중해 갖은 고난 속에서도 그녀를 데려다주게 된다. 목숨을 건 시도로 인해 그는 돌아와서 갖은 고초를 겪는다. 감방에 수감되고 고문을 당하고 능욕을 당하게 된다. 야만인과 내통했다는 혐의를 받고 그는 최고의 문명인에서 야만인으로 처지가 전락하게 된다. 문명인도 목을 매달 위기에 처하면 목숨을 구걸하는 야만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줌으로서 야만과 문명의 경계가 따로 없음을, 애초부터 똑같은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작가는 이야기한다. 야만인 여자를 집으로 데려다가 자신의 욕정을 채우면서,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가 고문 받았던 사실을 기억해내려 애쓰면서 화자는 자신의 모순과 위선을 자각하지만 그 후 자신이 고문받는 처지가 되자 야만인과도 같은 처지가 되었음을 절감한다. 후에 자유가 주어지고 문명인으로 복권된 그는 야만인도 문명인도 아닌 회색지대의 사람이 되는 모습을 보인다. 유목민도, 마을 사람도 아닌 어촌인들이 유목민의 습격을 피하기 위해 마을로 들어와 잠시 피해있을 때 주인공도 그들과 같이 했듯 야만인이 되어본 그는 야만인에 대한 동정이나 연민 이전에 똑같은 사람임을 자각하고 자신을 어디에도 규정시키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인간종은 수렵·채집시대에서 농경시대로 넘어갔지만 이것이 꼭 문명의 발전을 의미하지는 않음을 시사했다. 생산량이 많아지고 농경생활을 영위함으로서 소유가 많아지고 안정성은 높아졌지만 이것이 사람들의 삶의 질 향상이나 행복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닌 것처럼 유목민과 정착민은 생화방식이 다를 뿐 이들을 상하관계나 역사의 발전단계에서 하위 단계에 속한다고 규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 생활방식에 익숙해지면 전의 생활방식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것이 역사의 법칙이고 필연이라고 주장했다. 이 책에서도 그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야만인들이 빵맛을 보게 되면, 오디 잼이나 구스베리 잼을 바른 갓 구운 빵을 맛보게 되면, 우리가 사는 방식에 끌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평화로운 곡물을 재배하는 방식을 아는 남자들의 숙련된 기술과, 온화한 과일들을 활용하는 방법을 아는 여자들의 기술 없이는 살아가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255p

 


쿳시가 노벨상 작가라는 것을 이 책을 접하면서 알게 되었다. 이 작품은 여러모로 노벨상이라는 타이틀에 걸맞는 작품이다. 인종과 차별에 대한 어리석음을 꼬집으면서도 인간보편 정서인 그 어리석음을 또 보여주는 수작이다. 주인공의 극적인 신분변화와 고통은 몰입감과 함께 고통을 동시에 독자에게 전해준다.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나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처럼 고문 부분에서는 차마 더 읽어 내려가지 못하게 만드는 면이 있다. 특히나 고문을 방조하던 위치에서 고문을 받고 치욕을 당하는 노판사의 감정과 고통에 이입되어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이런 고통을 가할 권리는 어디서 오는가에 대한 생각과 함께 인간의 잔혹함은 어디까지인가를 생각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우리 안에 죄악이 있다면, 우리는 그걸 우리 자신에게 가해야 한다. 241p

 

이 책의 힘은 바로 거기에서 온다. 인간 평등에 대한 공허한 슬로건을 외치기보다는 이런 책이 던져주는 메시지가 더 강렬하고 와 닿는 법이다.

 

나는 역사의 바깥에서 살고 싶었다. 제국이 백성들에게 강요하는, 아니 사라져버린 백성들에게조차 강요하는 역사의 바깥에 살고 싶었다. 나는 야만인들에게 제국의 역사를 강요하는 걸 원치 않았다. 이것이 치욕의 원인이라고 내가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254p

 


이런 점에서 책을 덮으며 다시 생각에 잠긴다. 제목에서 야만인을 기다리는 이유가 무엇일까야만인은 제국인들이 경계하고 오지 못하게 할 적인데도 주인공이 야만인을 기다리는 이유는 제국의 모순적인 면모에 환멸을 느끼고 오히려 자신을 해방시켜 줄 야만인을 기다리는 것이 아닐까.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더 이상의 문명과 야만의 구별은 없는지, 또 다른 제국을 구축하기 위해 필요악이자 희생자인 야만인을 양산해내고 있진 않은지 계속해서 자문하게 된다. 이것이 이 소설의 힘이고 서사의 강점이다. 우리에게 우리를 인간이게 해주는 무언가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우리를 해방시켜줄 우리안의 야만인을 기다려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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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한 불꽃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77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김윤하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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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 책은 상당한 진입장벽이 있으며 만만치 않은 작품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읽기 시작하면 좋을 것 같다. ‘나보코프의 가장 완벽한 소설이라는 출판사의 홍보문구는 이 험난한 여정을 거쳐서 완독한, 나보코프의 지적 게임에 참가해 완주한 일부 독자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 혹시 몇몇 리뷰를 읽어보고 이 책에 도전하고 싶다는 독자들은 더 이상의 리뷰는 읽지 말고 아무런 사전지식도 없이 바로 읽을 것을 권한다.

 


나 역시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롤리타의 나보코프만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책이 시였나?’ ‘또 주석이 달려있네? 이건 뭐지?’ 계속 읽다보니 , 나보코프가 어떤 시인의 시에 주석을 단 형식을 취하는 소설이었구나를 깨닫게 된다. 첫 번째 경탄. 이건 정말 20세기적인 소설이며 나보코프는 천재라는 생각이 들 무렵 또 다시 의문점이 이어진다. ‘주석이 왜 이러지?’ ‘이게 시 구절과 무슨 상관이야? 참고 읽어야하나?’ 무언가 미심쩍지만 나보코프를 믿고 일단 계속 읽어보기로 하자. 킨보트가 의도한 대로 나는 시와 주석을 넘나들며 자연스럽게 시를 또 읽고 있다. 그런데 점점 킨보트의 주석에 빠져든다. 그의 이야기가 궁금하고 어쩌면 시보다 그의 이야기에 더 매료된다. 마지막에 책장을 덮을 때에서야 이 창백한 불꽃의 진가는 완성된다. 정말 완벽한 소설이며 독자를 끊임없이 도전하게 만드는 매력적인 소설이다. 그 매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먼저 이 소설의 파격적인 형식에 있다. 시에 대한 주석집의 형태를 했다는 자체가 우리가 흔히 접하기 힘든 실험적인 메타픽션 형식의 소설이며 또 그 안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구현되는 액자구성이라 새로운 이야기가 계속해서 펼쳐진다. 주석에서 킨보트가 펼치는 세 가지 이야기의 층위는 마지막 한 장면에서 수렴되며 서로 잘 어우러져 한 편의 새로운 킨보트 만의 시가 완성되는 것을 보여준다. 이렇게 탄탄한 구조와 다층적인 이야기는 독자가 독자로서의 위치를 자각하면서도 나보코프의 의도대로 따라가다 마지막엔 무성한 의문만 자아내게 되어 흥미를 배가시킨다. 여기에 이 소설의 두 번째 매력이 있다.

 


석연치 않은 결말. ‘이제까지 내가 읽은 것은 무엇이었나?’가 독자들이 마지막에 갖게 되는 주요한 의문이다. 킨보트는 무소불위의 주석가이다. 자의적인 해석을 하며 관련 없어 보이는 시구에 자신만의 스토리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좋든 나쁘든 최후의 말을 하는 이는 주석자다’(36p)는 킨보트의 말처럼 그는 죽은 쉐이드를 대신해 그의 시를 재구성한다. 중간중간에 그의 편견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을 정도로 나보코프는 킨보트를 무언가 믿기 힘든 사람으로 보여준다. 쉐이드 부인이나 학교 동료들의 평을 간간히 흘리는 것도 독자에게 킨보트는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는 사람임을 은연중에 암시하는 것이다. 그런 그가 망명한 젬블라의 왕 카를 크사베리였고 그라두스는 그를 시해하려 했던 암살자였으며 쉐이드는 그에 엉뚱하게 희생된 피해자라고 한다. 이 대목에서 독자는 한켠에 갖고 있던 킨보트=젬블라 왕이라는 의심이 해소되는 기쁨과 함께 또다시 이것이 사실일까?’라는 의구심을 동시에 떠올리게 된다. 결정적인 대목은 바로 킨보트의 주석 마지막에 있다.


세 명의 주역, 즉 상상 속의 왕을 죽이려는 미치광이와 자신이 왕이라고 상상하는 또 다른 미치광이 그리고 우연히 사선으로 굴러 들어와 두 허상간의 충돌로 죽는 저명한 노시인이 등장하는 시대에 뒤떨어진 신파극을.(371p)’


킨보트의 이 말은 그가 사기꾼일 가능성을 높여준다. 그럼에도 모든 것은 안개 속에 있으며 판단도 결론도 결국의 독자의 몫이다.

 


독자의 해석. 여기에 이 소설의 마지막 매력이 펼쳐진다. 이 소설에는 킨보트의 해석이 계속해서 등장하지만 마지막에 이 시를 다 읽고 이 이야기를 해석하는 것은 결국 독자의 몫이다. 이 시가 진짜 쉐이드의 시인지, 킨보트의 시인지..시가 999행으로 끝나고 마지막 1행을 다시 첫행으로 재배열한 킨보트처럼 우리도 우리만의 1행을 만들어볼 수 있는데서 이 소설의 묘미를 발견할 수 있다.


나만의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나는 킨보트의 마지막 말을 따르기로 한다. 그라두스는 젬블라 왕을 시해하는 과정에서 계속해서 우둔함을 보여준다. ‘저렇게 허술한 존재가 과연 한 나라의 망명한 국왕을 무사히 시해할 수 있을까?’가 그라두스를 보는 독자의 관전 포인트라면, 킨보트는 과연 젬블라왕일까라는 의문이 킨보트를 보는 관전 포인트가 될 수 있다. 죽이는 쪽은 언제나 그 희생자보다 열등하다. (287p)’는 킨보트의 편견이 내재한 점을 감안하더라도 그라두스는 진정 열등한 쪽이다. 어쩌면 미션 완수는 처음부터 불가한 목표였던 것이다. 킨보트로 돌아와서, 젬블라 왕국 자체가 북유럽의 가공된 국가이기 때문에 더더욱 킨보트의 말을 신뢰할만한 근거는 없다. 그가 젬블라의 왕이 아니라도 적어도 한 가지 탁월한 이야기꾼임에는 틀림없다. 킨보트에게 속아도 아니면 그의 말을 믿어도 독자가 즐거울 수 있는 이유이다. 시인에 의해 정화된 진실은 아무런 고통도, 아무런 해악도 끼치지 않아요. 진정한 예술은 거짓된 명예를 넘어서지요. (264p)’ 주석에서 펼치는 킨보트의 이 말은 진정한 예술을 만끽한 독자에게 주는 나보코프의 메시지인 것이다.

 


한편, 킨보트의 화려한 주석을 읽느라 자칫 시 자체의 작품성에 대해서는 간과하기 쉽다. 그러나 시만 따로 떼어놓고 읽어도 인상적인 작품임을 부인할 수 없다. 특히 자신의 인생을 일대기처럼 축약해서 제시한 이 시는 딸의 죽음 대목에 가서는 부부와 딸의 상황이 각각 한 화면에 두 개의 사건이 일어나듯이 펼쳐지고 있다가 수렴되는데, 이 부분이 킨보트의 주석 이야기가 마지막에 하나로 합쳐지듯이 그런 효과를 극적으로 구현하고 있다. 독자로서는 긴장과 흥미를 놓을 수 없는 장치인 것이다. 그밖에 쉐이드의 자전적 요소와 느낌들이 가미되어 시인지 산문인지 에세인지 정체불분명하고도 모호한 이 시 자체만으로도 감상할 가치가 충분한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독자로 하여금 한 소설에서 여러 가지 재미를 느끼게 해주는 고차원적인 지적 유희를 만끽할 수 있게 된다.

 


밀란 쿤데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인생에서의 모든 것은 사연 없이 올라가는 딱 한번 시행하는 연극이라고 했다. 어쩌면 우리가 소설을 읽는 궁극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나보코프는 한 소설에서 여러 개의 인생을 펼쳐 보여주며 독자들을 유혹했다. ‘이래도 동참하지 않을래?’ 이것이 바로 내가 소설을 읽는 이유이며 나보코프의 이 매력적인 소설에 후한 점수를 줄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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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폴리스 - 지도로 본 도시의 역사
제러미 블랙 지음, 장상훈 옮김 / 산처럼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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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도시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공간이며 상징이다. 인류 문명이 시작된 이래로 도시의 역사도 시작되었다. 이와 함께 지도 제작 기술 역시 발전해오게 되었다. '정신적, 경제적, 정치적 힘의 중심인 도시는 지도 제작의 가장 중요한 중심이었'(12p)기 때문이다.


이 책은 도시의 역사와 지도의 역사를 조명한다. 이 책의 두께와 무게가 말해주듯 풍부한 사진 자료가 이 책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래서인지 사진만 보아도 지도와 도시의 발전상을 가늠해볼 수  있다. 이 책은 1450년 르네상스 시대부터 시작하는데 새로운 투시법과 정확성으로 이전과는 다른 기술로 지도를 제작했다는 특징을 볼 수 있었다. 또한 17,18세기에는 신세계가 개척되고 새로운 도시들이 발전하면서 파리와 런던 등지에서는 도시계획도 세워지게 된다. 3장 제국의 시대는 18~19세기 제국주의를 바탕으로 다른 도시까지 확장해나가며 약탈하는 도시의 모습과 그에 따른 수요로 지도가 발전한 측면을 다룬다. 19~20세기에는 산업화, 도시화의 영향으로 좀더 복잡해진 도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20~21세기는 세계화의 시대로서 국가간의 국경이 무의미하며 오히려 도시의 발전으로 인해 벌어지는 범죄나 위생 등 사회적 문제가 대두되는 것을 본다. 아울러 구글 어스를 비롯한 실사지도와 함께 정치, 군사적 목적으로 발전해온 지도의 기술을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인식지도나 도시계획지도와 같이 미래의 새로운 지도 형태를 예측해보며 마무리 하고 있다. 지금은 GPS에서 도출된 3차원 컴퓨터 상호 반응형 지도까지 나오는데 지도라는 영역이 더이상 발전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하지만 도시도 지도도 시대마다 다른 형태를 띠고 존재해왔던 만큼 미래의 모습도 환경에 맞추어 또 달라질 것 같다.


500년간 발전해온 지도와 지도 속의 도시를 살펴보니 지도와 도시는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삶도 많은 과정을 거쳐 변모했음을 볼 수 있었다. 단, 도시가 있는 한 지도도 계속 존재할 것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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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호킹의 블랙홀 - BBC가 방송하고 이종필이 해설하다
스티븐 호킹 지음, 이종필 옮김/해설 / 동아시아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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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호킹이 블랙홀에 대해 강연한 내용을 소개하고 뒤에 이종필 교수가 블랙홀에 대해 설명한 책이다. 먼저, 호킹의 강연은 ‘1. 블랙홀은 털이 없을까?’를 통해 블랙홀은 오직 질량, 회전 상태, 전기 전하 세 성질만을 가지고 있어 바깥에서 블랙홀 안에 무엇이 있는지 모른다는 사실을 밝힌다. 그리고 두 번째 ‘2. 블랙홀은 흔히 블랙홀이 칠해져 있는 것처럼 검지 않다를 통해 블랙홀에서의 정보 보존 문제를 다룬다. , 블랙홀 바깥으로 물건들이 빠져나올 수 있는 가능성을 탐구한다. 호킹 박사는 블랙홀에 관한 특징을 집약해서 쉬운 설명으로 풀어준다. 그런데 2부 이종필 교수의 블랙홀 해설에 이르면 우리가 이해한 호킹의 블랙홀 이론이 실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음을 자각하게 된다. 먼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제대로 이해한 후 블랙홀 열역학도 뛰어넘어야 한다. 그리고 블랙홀에 관한 핫 이슈인 정보모순문제 해결에도 동참해야 한다. 결국 호킹의 항복선언을 통해 블랙홀로 들어간 정보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결론을 도출하긴 했지만 아직 학계의 논쟁이 정리된 것은 아닌 듯 보인다. 덧붙여 덧차원과 마이크로 블랙홀까지 우주과학계의 난제들은 아직도 산적해 있다.

 

그럼에도 왜 우리는 블랙홀을 생각해야 할까? 이에 대한 답은 이종필 교수의 에필로그에서 볼 수 있듯이 블랙홀은 흥미로운 현대물리학의 주제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모순을 가지고 있고 사고실험을 통해 성질을 파악할 수 밖에 없는 블랙홀은 많은 과학자들에게 도전과제이다. 과학자가 아닌 일반 독자라도 이러한 사고실험을 통해 우주의 풀리지 않는 신비를 경험하며 과학적 사고를 해보는 것도 꽤 쏠쏠한 재미를 선사할 것이다. 얇은 분량이지만 결코 얇지 않은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몸의 장애를 극복하고 인류의 과학 발전에 큰 기여를 한 호킹 박사의 넓은 생각을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다소 엿볼 수는 있어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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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은 인간을 어떻게 진화시켰는가
애덤 윌킨스 지음, 김수민 옮김, 김준홍 감수 / 을유문화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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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장류와 같은 사회적 동물들이 사회적 압력에 영향을 받듯이 얼굴도 그러하다는 전제를 충분한 예시와 논증을 통해 입증해 놓았다. 생물학적 진화 뿐 아니라 사회적 환경이 얼굴의 진화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를 시대별로, 사례별로 철저하게 탐구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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