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다 - 김영하에게 듣는 삶, 문학, 글쓰기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산문집 삼부작의 전작 <보다>에 비해 훨씬 낫다. `말보다는 글의 세계를 더 신뢰하며, 그 안에서 내 생각이 더 적확하게 표현될 수 있다고 믿는다`라고 김영하는 말하지만, 내가 이 책에서 느끼기엔 김영하는 글보다 말을 훨씬 조리있고 재미있게 하는 작가다. 그 간의 강연과 대담, 인터뷰를 모은 책인데, 김영하가 글쓰기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소설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고백하는 대목이 퍽이나 인상깊다. 오죽하면 완성한 소설을 오롯이 자기만의 것으로 하기 위해 J.D. 샐린저처럼 출판하지 않고 자기 서재 금고 속에 넣어 간직하고 싶다고 할까. 지금까지 김영하의 소설을 몇 권 읽어봤지만 큰 감흥은 없었는데, 나머지 작품들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무용한 것이야말로 즐거움의 원천이니까요.

서재는 일을 하지 않는 공간이예요. 서재에 들어가면 책으로 둘러싸이게 되는데, 책이라는 것은 지금 것이 아니잖아요? 책은 제아무리 빠른 것이라도 적어도 몇 달 전에 쓰인 것이거든요. 더 오래된 것은 몇백 년, 몇천 년 전에 쓰인 것이고요. 그래서 서재에 들어간다는 것은 아주 오랫동안 살아남은 목소리들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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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는 책을 읽는다는 것, 그 중에서도 소설을 읽는다는 행위에 대한 깊은 고찰을 여섯 꼭지의 강연으로 풀었다. 소설을 읽는 강렬한 경험을 통해 내 자아의 일부가 해체되고 다시 재구축된다. 그러한 경험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나의 내면엔 나만의 고유한 작은 우주가 건설된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이 물질만능의 시대에 맞설 수 있는 존엄성과 힘을 가질 수 있다. 김영하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짧은 생물학적 생애를 넘어 영원히 존재하는 책의 우주에 접속할 수 있는 것, 이것이야말로 독서의 가장 큰 보상이라고.

독서는 왜 하는가? 세상에는 많은 답이 나와 있습니다. 저 역시 여러 이유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독서는 우리 내면에서 자라나는 오만(휴브리스hubris)과의 투쟁일 겁니다. 저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와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을 읽으며 ‘모르면서도 알고 있다고 믿는 오만’과 우리가 고대로부터 매우 발전했다고 믿는 자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독서는 우리가 굳건하게 믿고 있는 것들을 흔들게 됩니다. 독자라는 존재는 독서라는 위험한 행위를 통해 스스로 제 믿음을 흔들고자 하는 이들입니다. 비평가 해럴드 블룸은 <교양인의 책 읽기>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독서는 자아를 분열시킨다. 즉 자아의 상당 부분이 독서와 함께 산산이 흩어진다. 이는 결코 슬퍼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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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이상하기도 하지. 제주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닐 때엔 제주에 사는 게 그렇게 싫었다. 꽉 막힌 좁은 섬에 갇혀 사는 삶이 너무 답답했으니까. 그래서 대학에 와서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도 별로 외롭지 않았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있노라니 도로 제주에 가서 살고 싶어진다. 그렇게나 도망치고 싶던 곳인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국민학교 때 학교 뒷산에서 메뚜기 잡고 열매 따먹던 시절의 기억이 참 그립다. 이렇게 말하니 내가 아주 시골에서 큰 것 같은데, 우리 집은 나름 제주시내 한복판에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러니 아파트 좁은 놀이터에서 놀 수 밖에 없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제주에 가서 사는 게 어떨까 싶기도 하고...
이 책에서는 제주에서의 삶과 제주인들의 교육 철학을 아름답게 그려내지만, 내가 경험했던 학창시절은 이 책의 내용과는 좀 거리가 있어서(물론 내가 제주를 떠난 사이 많이 변했겠지만), 읽다보면 의구심이 드는 부분도 많다. 당장 먹고 사는 터전이 여기 있으니 제주에서 사는 것은 이루어지지 않을 꿈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아이들을 이 삭막한 아파트 숲에서 경쟁의 한복판에 밀어 넣으며 사는 건, 아이들에게 너무나도 미안한 일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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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주노 디아스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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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천국의 한 조각을 삼킨 기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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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주노 디아스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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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주인공 오스카는 SF와 판타지, 만화에 집착하는 전형적인 Nerd, 오타쿠다. 도미니카에서 미국으로 온 이민자 출신 집에서 태어난, 140kg의 비대한 몸을 가진 흑인. 작가의 말에 따르면 소설의 주인공으로는 지극히 매력이 떨어지는 인물이다. 제목과 달리 오스카의 삶은 전혀 놀랍지 않다. 끝까지 외로운 Nerd의 삶을 살았던 보잘것없는 오스카. 사실 이 책의 진정한 주인공은 오스카의 엄마 벨리시아이다. 도미니카의 유력자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아버지가 독재자 트루히요의 눈 밖에 나서 가족이 철저히 피괴되고 삶이 엉망으로 망가진 벨리시아. 중남미의 전형적인 독재의 단면들이 소름끼치게 묘사된다. 이 책의 진정한 가치는 문장들에 흘러넘치는 끝모를 생명력이다. 천명관의 <고래> 이후로 이렇게 에너지가 가득 찬 소설은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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