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 없이 해피엔딩 - 김연수 김중혁 대꾸 에세이
김연수.김중혁 지음 / 씨네21북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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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좋아하고 잘 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그 일을 잘 아는 동종업계의 죽마고우가 있다면 참 행복하지 않을까. 소설가 김연수가 고향친구이자 마찬가지로 소설가인 김중혁과 매주 번갈아가며 씨네21에 연재한 영화컬럼을 엮은 책이다. 둘은 초등학교 때부터의 오랜 친구라 그런지 컬럼 분량을 둘의 농담따먹기로 채우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뭐 불성실하거나 한 건 아니고(불성실하면 1년이나 연재를 못 했겠지), 그저 부러울 뿐이다. 오랜 친구 사이라 가능한, 지극히 유쾌하고 은근한 농담과 디스를 보고 있자면 말이다. 누구나 죽마고우는 있지만, 나와 같은 직업을 갖고 나와 비슷한 가치관과 관심거리를 갖는 경우는 흔치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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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필입니다! - 만년필 사용자를 위한 입문서
박종진 지음 / 엘빅미디어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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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이자 현재까지는 유일한 만년필 전문 서적. 을지로에서 만년필연구소를 운영하는 저자의 만년필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애정이 책 곳곳에 묻어있다. 하지만 `만년필 사용자를 위한 입문서`라는 부제에 어울리지 않게 내용이 어렵다. 이는 편집의 문제로 보이는데, 관련 지식은 풍부하나 책을 써본 경험이 없는 전문가에겐 출판사의 편집자가 적절한 집필 방향과 내용을 제시해야 하는데 이런 게 전혀 없었던 것 같다. 책을 펴면 처음부터 만년필의 역사가 나오는데 여기 등장하는 전문 용어들에 대한 설명이나 주석이 해당 장에는 전혀 없다. 책 내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만년필의 역사가 끝난 다음에야 간단하게 만년필의 구조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 정도다. 순서가 잘못되도 한참 잘못 됐다. 거기에 여기저기 속출하는 비문 때문에 책을 읽기에 짜증날 정도다. 저자분이 제대로 된 출판사와 손잡고 개정판을 내줬으면 싶다. 어디 가서 찾아보기 힘든 귀중한 자료들을 정리한 책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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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 사회적 트라우마의 치유를 위하여
정혜신.진은영 지음 / 창비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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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 정혜신과 시인 진은영이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사회적 트라우마를 치유할 방법에 대해 논한 대담집. 광주민주화운동 피해자, 고문 피해자, 쌍용차 해고노동자, 세월호 유가족 등 우리 사회가 안긴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를 말한다.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트라우마를 마음을 강하게 먹으면 극복할 수 있는 생채기 쯤으로 생각한다는 것. 정혜신은 트라우마를 자기 존재보다 더 큰 상처를 홀로 떠안고 견디며 살아갈 상처이지 극복이 되는 상처가 아니라고 말한다. 흔히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라고 하지만, 트라우마는 `아픈 만큼 파괴되는 것`이다. 트라우마는 `삶의 전반적인 판이 다 깨어지는 것`이고 `인간이 통제 가능한 영역 바깥에 있는, 인간의 의지나 한계를 벗어나는 것`이다.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들은 피해를 입은 사건 당시에 일생의 시간이 멈춰 있기 때문에 `이제 그만 하고 돌아와라`라는 주위의 권유가 쓸모없다. 세월호 유가족에게 봄은 아이와 함께 했던 추억이 날아와 가슴에 박히는 `봄꽃이 총알이 되는` 계절인 것이다.
정혜신은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한 방법으로 치유 공간을 제안한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를 위한 `와락`, 세월호 유가족을 위한 `이웃`을 세워 피해자들이 일상을 복원할 수 있도록 돕는다. 최신 기법을 동원해 심리치료를 하는 게 아니라, 따뜻한 밥을 먹이고, 뜨개질을 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하여 이들이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서서히 치유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치유된 사람들이 다른 트라우마 피해자들을 도울 수 있는 `상처입은 치유자`가 될 수 있게 돕는다. `상처입은 치유자`란 상처를 입어 본 사람이 그 상처를 치유받아 본 경험을 바탕으로 최고의 치유자가 된다는 개념이다. 고문 피해자들이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의 치유를 돕고, 쌍용차 피해자들이 세월호 유가족을 돕는다.
트라우마가 제대로 치유되지 않으면 너무나 큰 충격 때문에 마음의 문을 닫고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지 경향이 있다고 한다. 여기서 박근혜에 대한 흥미로운 분석이 도출된다. 박근혜는 아버지가 암살되는 거대한 트라우마를 제대로 치유하지 못해서 세월호 유가족을 만나도 그토록 냉담했다는 것이다. `나는 당신들보다 더한 고통 속에서도 나 혼자 힘만으로 여기까지 왔다. 당신들 정도의 고통이면 충분히 견딜 수 있는 거다. 엄살떨지 마라.` 이 정도면 트라우마를 이해하고 치유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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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 숟가락 하나 - MBC 느낌표 선정도서, 개정판
현기영 지음 / 실천문학사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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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에 집에 내려가서 책 정리하다 발견한 책. 현기영 선생의 책은 대학 1학년 때 읽은 <순이 삼촌> 이후 두 번째다. 장편 소설이라고 표지에 떡하니 박혀 있지만 사실 작가 본인의 유소년 시절 회고록에 가깝다. 제주라는 섬의 정서, 조금은 쓸쓸하고 우울하나 선명한 아름다움과 강건함이 깃들어 있는 곳에서의 삶을 날 것 그대로 묘사한다. 4.3과 6.25를 거치면서 무너지고 망가지는 민초들, 그렇지만 어쨌든 삶은 계속되어야 하기에 사람들은 슬프고 고통스러운 나날들을 견뎌낸다. 아마 이 책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건 제주에 살았던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종종 등장하는 제주 사투리의 독특한 뉘앙스를 이해해야 글 속의 상황을 선명하게 상상할 수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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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주노 디아스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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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주인공 오스카는 SF와 판타지, 만화에 집착하는 전형적인 Nerd, 오타쿠다. 도미니카에서 미국으로 온 이민자 출신 집에서 태어난, 140kg의 비대한 몸을 가진 흑인. 작가의 말에 따르면 소설의 주인공으로는 지극히 매력이 떨어지는 인물이다. 제목과 달리 오스카의 삶은 전혀 놀랍지 않다. 끝까지 외로운 Nerd의 삶을 살았던 보잘것없는 오스카. 사실 이 책의 진정한 주인공은 오스카의 엄마 벨리시아이다. 도미니카의 유력자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아버지가 독재자 트루히요의 눈 밖에 나서 가족이 철저히 피괴되고 삶이 엉망으로 망가진 벨리시아. 중남미의 전형적인 독재의 단면들이 소름끼치게 묘사된다. 이 책의 진정한 가치는 문장들에 흘러넘치는 끝모를 생명력이다. 천명관의 <고래> 이후로 이렇게 에너지가 가득 찬 소설은 처음이다.

마치 천국의 한 조각을 삼킨 기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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