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랑은 왜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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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군수의 딸 아랑이 그녀에게 음심을 품은 관노에게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여 대밭에 버려져 원혼이 된다. 새로 부임하는 군수들은 내려오는 족족 하룻밤을 넘기지 못하고 죽어나가고 아무도 밀양 군수직에 지원하지 않게 된다. 한 배짱 좋은 사내가 자원하여 군수로 부임한 첫날 밤, 아랑의 원혼이 나타나 억울한 죽음을 호소하고 군수는 그녀의 원한을 풀어주리라 약속한다. 관노를 잡아 엄벌하고 아랑의 시체를 찾아 고이 장사지내자 그 후로는 아랑의 원혼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이야기. 이것이 우리가 흔히 아는 아랑의 설화다.
<아랑은 왜>는 이 아랑의 설화를 바탕으로 한다. 하지만 이 책을 과연 소설이라 할 수 있을지... 아랑 설화를 가지고 어떻게 차근차근 소설로 만들어가는지를 보여주는 소설 작법이라고 하는 게 맞겠다. 설화에 나오지 않는 허구의 인물들을 등장시켜 아랑의 이야기를 재구성하고, 아랑 설화에 짝을 맞춘 현대의 인물들의 이야기를 짜맞춘다. 작가가 허구의 인물 역할을 맡은 사람들의 오디션을 보고 인물의 성격을 설명하는 구절을 보고 있으면, 김영하가 이 책이 소설처럼 보이지 않게 하려고 애를 쓴 흔적 같아 웃음이 나온다.
조선 명종조 아랑 살인사건과(사실 이 이야기의 전말에서 아랑은 중요하지 않다) 1997년 서울의 이야기를 번갈아 보여주며 플롯을 어떻게 짤지, 결말을 어떻게 정할지 독자와 대화하듯 써나가는 게 참으로 색다르다. 설화라는 전근대의 이야기를 근대적 추리소설로, 합리적인 탈근대 소설로 변주하는 김영하의 상상력과 글솜씨가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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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족의 역사 - 몽골초원에서 중국, 중동, 러시아를 넘어 유럽으로 역사 모노그래프 1
데이비드 O. 모건 지음, 권용철 옮김 / 모노그래프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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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페이지에 가까운 각주와 참고문헌, 딱딱한 제목 때문에 굉장히 읽기 어려운 역사서처럼 보이지만, 걱정했던 것 보다는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주된 내용은 징기스칸과 그의 아들들, 손자들, 후손들이 어떻게 몽골제국을 세우게 되는지의 과정을 서술한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원나라 대신, 중앙아시아와 페르시아, 러시아를 지배했던 일칸국, 킵차크칸국, 차가타이칸국의 역사가 펼쳐진다.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고 했지만 사실 꽤나 학술적인 책임은 틀림없다. 그러니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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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의 밥도둑
황석영 지음 / 교유서가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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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3대 구라 중 한 명이라는 황석영 선생의 산문집. 선생이 걸어 온 험난한 삶의 길 위에서 경험했던 음식에 대한 이야기다. 고교 시절 집을 나와 남도를 떠돌고, 입대하여 월남으로 파병가고, 군사정권 하에서 옥고를 치르고, 방북하여 김일성을 만나는 와중에도 선생의 먹거리에 대한 관심은 끊이지 않는다. 선생이 맛보았던 수많은 음식에 대한 세밀하고 맛깔난 묘사를 보고 있노라면 `이 사람은 정말 먹는 걸 좋아하는구나!`라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더불어 선생의 까다로운 미각과 고집까지. 그 성정 덕분에 인생의 파고가 높지 않았을까 싶다.
맛난 것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도 높아 음식에 대한 컨텐츠가 넘쳐나는 지금이지만, 남북을 넘나들며 근현대를 살아온 선생의 글만큼 깊이있는 것은 없으리라 장담한다. 사람의 미각에 한 인간의 삶의 궤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음을 증명하는 좋은 예가 아닐까 싶은 책이다.

무엇보다도 음식은 사람끼리의 관계이며, 시간에 얹힌 기억들의 촉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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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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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소년이 있다. 80년 5월의 광주에. 자기 집에 세들어 살던 동급생 친구가 시위 현장에서 실종되자 친구를 찾아나섰다가 상무관에서 시체들을 수습하는 일을 맡은 열 다섯 소년. 엄마와 작은 형의 만류를 뿌리치고 고등학생이라 우기며 그 날 도청을 떠나지 않았던 소년. <소년이 온다>는 이 소년, 동호와 동호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한 장 씩 할애하여 들려준다. 학살과 고문, 모욕과 감시로 점철된 시대를 견뎌내고 저항하며 상처입은 영혼들의 이야기를.
요즘 <채식주의자>가 한강의 대표작처럼 거론되고 있으나, 이 책 <소년이 온다>야말로 그녀가 다시는 쓸 수 없을 걸작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40년이 다 되어 가지만 이 시대를 사는 우리는 여전히 80년의 광주를 되새기고 기억해야 한다. 어떤 숭고한 의식이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그렇게 해야할 것 같아서` 행동했던 동호 같은 사람들을.
아니 되새기고 싶지 않다 해도 금남로에서 11공수여단의 시가행진을 계획한 악마들이 있는 한, 우리는 여전히 그들의 잔인함에 몸서리치며 분노할 수 밖에 없다. 아직 민주주의는 이 땅에 뿌리내리지 못했으니까.

그러니까 형, 영혼이란 건 아무것도 아닌 건가.
아니, 그건 무슨 유리 같은 건가.
유리는 투명하고 깨지기 쉽지. 그게 유리의 본성이지. 그러니까 유리로 만든 물건은 조심해서 다뤄야 하는 거지. 금이 가거나 부서지면 못쓰게 되니까, 버려야 하니까.
예전에 우린 깨지지 않은 유리를 갖고 있었지. 그게 유린지 뭔지 확인도 안해본, 단단하고 투명한 진짜였지. 그러니까 우린, 부서지면서 우리가 영혼을 갖고 있었단 걸 보여준 거지. 진짜 유리로 만들어진 인간이었단 걸 증명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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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뇌 - 독서와 뇌, 난독증과 창조성의 은밀한 동거에 관한 이야기
매리언 울프 지음, 이희수 옮김 / 살림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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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은 우리의 뇌가 독서라는 행위를 수행하는 원리와 아이에게 어떻게 독서를 익히게 해야 하는지, 디지털 시대에 독서가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지 정도일 것이다. 첫 번째에 대해서는 책 분량의 대다수를 할애하며 꼼꼼히 설명하고 있으나, 나머지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전공자가 번역하였으나 문장이 지나치게 전문적이고 난해해서 `번역 참 구리게 했다`는 생각을 했는데, 읽다보니 원래 책이 어려운 거였다. `문식성`, `화용론` 같은 학술 용어들이 난무하고, 설명을 위한 삽화의 대부분이 뇌 그림이어서 내용 이해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대중을 위한 과학서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어려워서 평범한 학부모들에게 추천하긴 힘들다. 그러나 한 가지 건진 게 있다면, 독서라는 행위로 인해 우리 뇌에 기존에 없던 새로운 회로가 만들어지면서 사고가 확장되고 분석, 기획, 통찰하는 능력이 키워진다는 것과, 아이는 적절한 때에 적절한 독서 발달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평생 제대로 독서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유아기에 저녁 밥상에서 부모와 나누는 대화가 아이의 언어 발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을 보면 `저녁이 없는 삶`을 사는 우리 사회의 미래가 심히 걱정스럽다.

유아기 문해 능력의 발달에 관한 광범위한 연구를 진행한 하버드 대학의 캐서린 스노우(Catherine Snow)와 동료 학자들은 독서 교재 외에 후일 독서 능력에 기여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인으로 그리 유별날 것도 없는 저녁식사 때 나누는 `밥상머리 대화`의 양을 꼽는다. 그저 아이에게 말을 걸고, 책을 읽어 주고 아이의 말을 들어 주는 것이 유아기 언어 발달에 중요한 전부다. 그런데 (경제적으로 불우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많은 가정에서 아이가 다섯 살이 될 때까지 이렇게 기본적인 요소에 할애되는 시간이 너무 적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뇌의 설계는 독서를 가능하게 했다. 그리고 독서의 설계는 뇌를 다양하게, 결정적으로 그리고 계속 진화해 나가도록 변화시켰다. 이러한 상호 역학은 인류 역사상 문자의 탄생과 아이의 독서 학습을 통해 빛을 발한다. 인간은 독서를 배움으로써 과거에 경험했던 기억의 한계에서 해방되었다. 인류의 조상이 어느 날 갑자기 지식에 접근하기 위해 그것을 끊임없이 반복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 결과, 지식이 어마어마하게 확장되었다. 문식성을 통해 바퀴를 매번 다시 발명할 필요가 없어지자 점점 더 복잡하고 정교한 발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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