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랑은 왜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1년 2월
평점 :
품절


밀양 군수의 딸 아랑이 그녀에게 음심을 품은 관노에게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여 대밭에 버려져 원혼이 된다. 새로 부임하는 군수들은 내려오는 족족 하룻밤을 넘기지 못하고 죽어나가고 아무도 밀양 군수직에 지원하지 않게 된다. 한 배짱 좋은 사내가 자원하여 군수로 부임한 첫날 밤, 아랑의 원혼이 나타나 억울한 죽음을 호소하고 군수는 그녀의 원한을 풀어주리라 약속한다. 관노를 잡아 엄벌하고 아랑의 시체를 찾아 고이 장사지내자 그 후로는 아랑의 원혼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이야기. 이것이 우리가 흔히 아는 아랑의 설화다.
<아랑은 왜>는 이 아랑의 설화를 바탕으로 한다. 하지만 이 책을 과연 소설이라 할 수 있을지... 아랑 설화를 가지고 어떻게 차근차근 소설로 만들어가는지를 보여주는 소설 작법이라고 하는 게 맞겠다. 설화에 나오지 않는 허구의 인물들을 등장시켜 아랑의 이야기를 재구성하고, 아랑 설화에 짝을 맞춘 현대의 인물들의 이야기를 짜맞춘다. 작가가 허구의 인물 역할을 맡은 사람들의 오디션을 보고 인물의 성격을 설명하는 구절을 보고 있으면, 김영하가 이 책이 소설처럼 보이지 않게 하려고 애를 쓴 흔적 같아 웃음이 나온다.
조선 명종조 아랑 살인사건과(사실 이 이야기의 전말에서 아랑은 중요하지 않다) 1997년 서울의 이야기를 번갈아 보여주며 플롯을 어떻게 짤지, 결말을 어떻게 정할지 독자와 대화하듯 써나가는 게 참으로 색다르다. 설화라는 전근대의 이야기를 근대적 추리소설로, 합리적인 탈근대 소설로 변주하는 김영하의 상상력과 글솜씨가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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