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염소의 축제 2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2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평점 :
마침내 암살자들은 성공했다. 31년 동안 도미니카공화국 국민들을 숨도 못 쉬게 억압하고 그들의 신음하는 몸뚱이 위에 군림했던 독재자 트루히요. 그 ‘염소‘를 길가에 널부러진 시체로 만드는데 성공했단 말이다. 염소 사냥에 성공한 지금, 이 히스파니올라 섬 동쪽 절반의 독재는 종식되고 민주주의의 봄이 꽃필 수 있을까?
1권과 마찬가지로 2권도 챕터별로 우라니아, 트루히요, 암살자들의 시선을 따라간다. 하지만 트루히요의 시점으로 전개되던 챕터가 마침내 암살자들과 조우하여 총격을 받은 이후엔 본격적으로 트루히요 사후의 아수라장이 숨막힐 듯 펼쳐진다. 암살자들은 성공했지만 그들이 사전에 모의했던 암살 이후의 계획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원래는 트루히요 암살에 성공한 후 국방부장관인 푸포 로만이 트루히요 정권의 핵심 추종자들을 체포하고 권력을 장악한 후 민주적인 정권 이양으로 나아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김재규가 박정희를 살해한 다음 중정으로 가지 않고 육본으로 가는 일생일대의 실수를 저질렀듯이, 푸포 로만은 트루히요의 죽음을 확인하고도 잘못된 결정을 거듭한다. 트루히요의 오른팔인 첩보부대장 아베스 가르시아를 체포하지도 않았고, 트루히요의 가족들이 권력을 차지하는 걸 방조했으며, 군대를 장악하지도 못했다. 트루히요는 평소에도 툭하면 푸포 로만을 모욕하고 겁박했는데, 그 앞에서 쩔쩔 매던 국방부장관은 트루히요가 죽은 후에도 독재자의 망령에 주눅이 든 것이다. 이처럼 독재는 권력에 아무리 가까이 있는 이도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속성이 있다.
암살 후 신속하게 행동을 개시했어야 할 푸포 로만이 우유부단하게 허둥지둥하는 바람에 암살자들은 큰 위험에 빠지게 된다. 암살에 성공하고 이곳저곳에 은신하여 몸을 의탁하고 있던 그들은 하나 둘씩 칼리에(아베스 가르시아의 첩보부대원)들에게 발각되어 총격전을 벌이다 스러지거나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게 된다. 이 중 백미는 푸포 로만의 최후인데, 아베스 가르시아의 집요한 추적 끝에 암살 음모 속 푸포 로만의 역할이 발각된다. 그 자리에서 바로 체포된 로만은 고문실로 끌려가 인간으로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고문을 당한다. 이 과정이 소설 속에서 무척 길고 자세하게 묘사되는데, 트루히요의 아들들이 벌이는 이 피의 ‘축제‘는 다시 떠올리기도 두려울 정도로 잔인하다. 독재가 어떻게 국민을 망가뜨리는지를 은유적으로, 그리고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라 하겠다.
독재에 시달리던 국민들이 독재자의 죽음을 열렬히 추모하는 이해하기 힘든 상황 속에서도 균열은 시작되고 있었다. 트루히요의 동생들과 아들들에겐 군대의 총칼만 있었지, 그걸 권력을 연결시킬 머리는 없었다. 결정적으로 그들을 무너뜨린 건 트루히요가 꼭두각시 대통령으로 세웠던 호아킨 발라게르였다. 허수아비인 줄만 알았던 발라게르는 탁월한 상황 판단으로 트루히요의 아내와 장남을 구슬리고 그 가족들을 서로 이간질시키며 서서히 권력을 장악해 간다. 이 소설에서는 미국의 도움을 받은 발라게르가 트루히요 일가를 축출하는데 성공하고 암살자들을 복권하는 것까지만 보여주지만 사실 그 이후에도 혼란은 계속된다. 발라게르는 군사쿠데타로 권좌에서 쫓겨나지만 우여곡절 끝에 다시 대통령이 되는데 성공하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후 독재자로 장기집권하게 된다. 독재의 종식과 민주주의 정착은 이렇게나 어렵다.
이 책에서 묘사되는 고문이 남성적 폭력이라면, 우라니아에게 행해지는 폭력은 여성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악몽이다. 바르가스 요사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 독재는 특히 여성에게 잔인했습니다. ...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권위주의 체제는 실제로 여자를 허약한 대상으로 만들어 마구 짓밟습니다. 트루히요에게 섹스는 권력과 남성성, 그리고 남성우월주의 사회의 최고 가치를 보여주는 상징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여성은 항상 대상이 되는 겁니다. 부모들은 딸을 트루히요에게 선물하고, 그는 가장 가까운 협력자들의 아내와 잠자리를 하면서 치욕을 줍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그의 권력과 권위를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트루히요의 최측근이었다 하루 아침에 모든 권력을 잃은 상원의장 아구스틴 카브랄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여기저기 쫓아다니다, 트루히요의 채홍사인 마누엘 알폰소에게까지 도움을 구하게 된다. 그는 고뇌와 번민 끝에 알폰소의 조언에 따라 하나 밖에 없는 사랑하는 딸 우라니아를 트루히요에게 바치기로 한다. 열 네살 밖에 안 된 우라니아가 트루히요가 여자와 밀회를 즐기기 위해 만든 ‘마호가니의 집‘으로 불려가 트루히요와 잠자리를 갖게 되는 과정을 보는 건, 푸포 로만이 끔찍한 고문 끝에 최후를 맞는 과정보다 훨씬 견디기 힘들다. ‘욕망과 본능과 권력에 대해서 완전히 무지‘한 소녀가 독재자에게 처절하게 유린당하는 광경은 그 자체로 국가 권력이 국민을 어떻게 수탈하는지 보여주는 메타포라 하겠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책을 읽은 기분이다. 만약 작년 12월 3일의 그 밤에 우리 국민들이 나서서 쿠데타를 막지 못했다면, 그 이후에 벌어졌을 일들은 이 책에 묘사된 것보다 훨씬 더했을 터이다. 민주주의는 이토록 힘겹게 키워나갈 수 밖에 없으며, 내란의 뿌리는 뽑아내기가 지독히도 어렵다. 도미니카 공화국 역시 한 명의 독재자를 제거해도 또 다른 독재자가 들어서지 않았나. 부디 다음 달엔 새로운 세상, 새로운 시대가 펼쳐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