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동산이 현대사 1 : 일상ㆍ생활 - 전우용의 근현대 한국 박물지 잡동산이 현대사 1
전우용 지음 / 돌베개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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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산이‘는 원래 조선 후기 실학자 안정복이 지은, 당시 떠도는 잡다한 이야기와 지식들을 정리한 책의 제목이었다. 하찮고 쓸모없는 물건들을 이르는 말인 잡동사니는 여기서 유래했다. 전우용 교수는 잡동사니처럼 우리 주변에 널려 있는 사소한 물건들과 한국의 근현대사를 연결한다. 별 것 없어 보이는 물건이 우리의 삶과 의식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 우리는 어떻게 현대인으로 변해 왔는지를 말한다.

새로이 등장한 물건은 사람들의 습관을 바꾸고, 새로운 습관은 의식에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보자. 조선 시대 까지만 해도 장보기는 남자의 일이었다. 집에서 장까지의 거리가 멀었고, 장에 가서 팔고 사는 짐이 무거웠고, 장사꾼 대부분이 남자였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나귀타고 장에 가시고‘라는 동요도 있잖은가. 1910년대 말까지만 해도 양가집 부인이 장 보러 다니는 것은 창피한 일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1920년대부터 양상이 달라진다. 전차나 기차 같은 교통수단이 발달하고 극장 등 대중이 이용하는 시설이 늘면서 남녀유별은 구시대의 유물이 되었다. 게다가 일제 치하에 들어간 조선에선 대다수의 조선인 관리들이 해직되었다. 경제적으로 궁핍해진 관리들은 행랑채의 하인들을 내보냈고, 하인의 일은 주인 마님에게로 돌아갔다. 자연히 도시의 부잣집 마나님은 장보러 시장에 나가야 했다. 식민지 조선에서 남자들은 일제에 저항하거나 일제에 봉사하는 양자택일을 강요받았다. 남자는 어느 방향으로든 ‘국가와 민족‘을 위한 일을 해야지 장보기 같은 시시한 일을 하면 안 된다는 의식이 퍼져나갔다. 이렇게 시장은 여성들만의 공간이 되었다.

최근 남자들이 다시 장을 보게 된 건 양성 평등 의식의 대두라기 보다는 대형 할인점이 등장한 탓이 컸다. 자가용을 몰고 마트에 가서 생필품을 카트 한가득 구매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쇼핑 양태는 어느 정도 남자의 완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러다보니 남성이 혼자 마트에 가서 장을 보아도 아무렇지 않게 대중의 의식이 변하게 된다. 이처럼 ‘장보기‘에 대한 대중들의 의식을 바꾼 건 교통수단의 발달이었고 그에 따른 생활 습관의 변화였다.

<잡동산이 현대사 1>에서는 우리의 일상과 생활에 관한 물건들을 다룬다. 거울, 비누, 냉장고, 커피, 지갑, 슬리퍼, 형광등, 의자처럼 우리의 의식주에 관련된 소소한 물건들이 이 책의 주인공이다. 책을 읽다 보면 물건들 하나 하나에 어떻게 우리의 근현대사가 담겨 있는지를 그의 평소 말투처럼 조곤조곤 알려주는 전우용 교수의 글발과 지식에 탄복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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