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동물원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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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리우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은 최근이었다. 테드 창처럼 중국계 SF 작가라는 것만으로 작품 스타일도 비슷하지 않을까 어림짐작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하지만 이 책 <종이 동물원>을 읽어 보니 둘은 꽤 성향이 다른 작가였다. 테드 창은 무척이나 철학적이고 톱니바퀴처럼 정밀한 플롯을 구사하는 작가이지만, 켄 리우의 단편들은 SF 답지 않게 독자의 감정을 자극하는 바가 크다. 또 테드 창은 그의 작품만 읽어서는 중국계라는 걸 전혀 알 수 없지만, 켄 리우는 중국인, 나아가 동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표출한다. 다수의 단편 주인공 이름이 중국계라는 걸 넘어 근대 동아시아의 어두운 역사를 작품의 소재로 활용한다. 켄 리우를 소개할 때 마이크로소프트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했고, 하버드 법학 전문 대학원을 졸업한 후 변호사로 활동했다는 독특한 이력을 강조하는데, 막상 그의 작품들을 읽어 보면 직업적 경험이 소설 속에 녹아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켄 리우 작품의 독특한 점으로 꼽고 싶은 것은 소재 조합의 의외성이다. <즐거운 사냥을 하길>에서는 동양의 고전적인 구미호 이야기와 서구 산업혁명의 스팀 펑크를 기묘하게 결합하고, <파(波)>에서는 영생을 통해 진화와 신(神)의 개념을 진지하게 고찰한다.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들>에서는 양자역학과 역사 실증이라는 상상하기 힘든 조합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 단편집의 가장 큰 미덕은 단순한 SF에서 그치지 않고 비극적인 동아시아 역사를 주제로 긴 여운을 남기는 이야기들을 만들어 냈다는데 있다. 위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들>에서는 글자를 따라 읽는 것조차 괴로운 731 부대의 만행을 생생하게 재연하는데, 중일 전쟁 당시의 난징대학살을 다룬 아이리스 장의 <난징의 강간>을 연상케 한다(아이리스 장은 이 논픽션을 내고 일본 극우 세력의 집요한 괴롭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파자점술사>에서는 국공내전 패배 후 대만으로 건너간 장제스 정부가 미국과 합작하여 본성인(명·청 시대에 대만에 정착한 중국인)들을 대대적으로 탄압한 역사의 비극을 다룬다.

‘만약 1930년 런던해군군축조약이 발효되지 않았다면? 그래서 일본 군부가 자극 받지 않아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지 않았다면? 대공황을 미국과 일본이 합작하여 태평양 횡단 터널을 뚫는 것으로 해결했다면?‘이라는 가정으로 출발한 대체역사, <태평양 횡단 터널 약사(略史)>에서는 얼핏 평화가 유지되는 것처럼 보이는 이 세계에서도 일본 군부는 수없이 많은 아시아인들의 인권을 유린한다. 중국 공산당과의 전쟁을 통해 얻은 포로에게 비참한 강제 노역을 시키고, 인부들을 위해 조선인 위안부를 동원한다. 일제 강제 징용 피해자들과 위안부 할머니들의 절규가 눈앞에 어른거릴 수밖에.

이 밖의 단편들에서도 켄 리우 특유의 빼어난 창의력을 흠뻑 만끽할 수 있다. 우리가 미처 상상하지 못한 것을 상상하게 만들고, 그 상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수 있도록, 그리하여 새로운 현실을 꿈꿀 수 있도록 영감을 불어넣어 주는 게 SF의 역할이자 매력이라고 한다면, 켄 리우의 작품만큼 그 역할에 충실한 SF가 또 있을까 싶다. 그의 작품을 오래오래 잔뜩 읽고 싶은 소망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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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 연대기 - 유인원에서 도시인까지, 몸과 문명의 진화 이야기
대니얼 리버먼 지음, 김명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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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건강한 생활방식을 선택하도록 진화하지 않았다.

이 한 문장이 바로 이 책이 독자에게 내미는 화두라 볼 수 있겠다. 현대인이 겪는 수많은 질병들의 원인을 지금까지의 의학적 관점이 아니라 진화론적 관점에서 추적하려는 게 이 책의 목표다. 저자 대니얼 리버먼은 2형 당뇨병, 골다공증, 심장병, 뇌졸중, 알레르기, 요통, 족저근막염, 근시, 관절염 등의 질환을 불일치 질환이라 칭한다. 최근까지 인류를 괴롭혀온 전염성 질환 - 천연두, 장티푸스, 말라리아, 소아마비 등 - 들은 의학 기술과 약학의 눈부신 발달로 인해 거의가 정복되었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불일치 질환들은 농업혁명과 산업혁명을 거쳐 변화한 우리의 생활 습관과 우리 몸의 진화적 특성이 맞지 않아서 생기는 병이다. 생물학적 진화의 속도는 무척 느리기 때문에 우리의 몸은 여전히 수백만년 전 인류의 신체에서 그다지 변한 게 없다. 하지만 인간의 문화적 진화는 생물학적 진화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 그 옛날 아프리카의 사바나에 살던 우리의 조상과 지금의 우리의 삶은 한 점의 비슷한 구석도 없지만, 신체는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를 괴롭히는 수많은 질병들을 이해하려면 인류 역사를 진화론적 관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그래서 대니얼 리버먼은 이 책의 거진 3분의 1을 인간이 유인원에서 현생 인류로 진화하는 수백만년의 과정을 개관하는데 할애한다. 호미닌 - 침팬지 등 여타 유인원들보다 현생 인류에 가까운 모든 종 - 에서 출발하여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호모 에렉투스,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 호모 사피엔스, 호모 사피엔스와 경쟁한 네안데르탈인들의 생태와 신체적 진화를 추적하고 세밀히 탐구한다. 인간은 어떻게 직립 보행을 하게 되었는지, 또 어떻게 열대 우림에서 과일을 먹던 유인원이 사바나를 달리는 호모 사피엔스로 탈바꿈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에서 뇌와 골격, 장기들은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살핀다.

진화를 거칠게 요약하면 변화된 환경에 적합한 개체가 살아남아 자신의 형질을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불일치 질환은 진화를 거스르는 요인이라 할 수 있다. 생존에 불리한 불일치 질환을 가진 개체가 의학 발달에 힘입어 생명을 연장하고 자손을 가져 불일치 질환의 요인을 후대에 물려주는 것이니까. 수렵채집 시대였다면 족저근막염을 앓는 것 만으로도 생존에 큰 위협이 되었겠지만, 지금은 조금 불편한 질환일 뿐이다. 충치도 마찬가지. 저자는 이런 현상을 ‘역진화‘라고 칭한다. 문화적 진화가 생물학적 진화를 거스르는 것이다. 문제는 이 역진화가 점점 가속된다는 점이다. 비만을 야기하는 고칼로리 식단과 신체 활동 부족을 근원적으로 해결하지 않아도 어떻게든 의학이 생명을 연장해 주기 때문에, 그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급격히 증가하는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저자는 말한다. 다시 한 번, ˝우리는 건강한 생활 방식을 선택하도록 진화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불일치 질환에 걸리기 쉬운 환경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 많이들 들어보았을 이야기지만 미국의 빈곤층은 신선한 채소보다 가공식품이, 물보다 콜라가 싼 환경에 살기를 강요받고 있다. 차가 없으면 살 수 없으니 하루에 걷는 거리가 1km도 안 되는 사람이 허다하다. 이런 환경을 바꾸지 않는 한, 우리는 나이가 들어 만성질환에 걸리고 그 병을 치료하기 위해 약물과 값비싼 기술에 의존하는 수 밖에 없다. 우리가 만들어낸 이 환경을 자식들에게 물려주는 역진화의 악순환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이 환경을 바꿀 방법을 찾아야 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몸을 더 잘 사용할 수 있도록 공공 교육을 강화하고 저렴하지만 건강에 해로운 식품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우리 몸은 생물학적 진화 과정을 거쳐왔고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는 문화적 진화의 방향을 어떻게 설정할지에 우리 몸의 미래가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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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스푼 - 주기율표에 얽힌 광기와 사랑, 그리고 세계사
샘 킨 지음,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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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에세이스트 샘 킨의 데뷔작. 번역은 믿고 보는 이충호. 여느 샘 킨의 저작과 마찬가지로 과학사의 에피소드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이 책은 원소 주기율표를 소재로 하는데, 샘 킨의 다른 책들에 비해 특이한 점이라면 주기율표 상 비슷한 성격의 원소들을 묶어서 챕터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아연(Zn), 금(Au), 텔루륨(Te), 유로퓸(Eu), 알루미늄(Al)을 한데 묶어 ‘돈으로 쓰이는 원소들‘이라는 챕터를 만드는 식이다. 주기율표에 등장하는 원소가 너무 많으니 이런 형식을 택한 게 아닌가 싶은데, 주기율표 순서대로 차례차례 서술하는 것보다 훨씬 다채롭게 읽힌다.

추리소설이나 스릴러 같은 제목을 갖고 있지만, ‘사라진 스푼‘은 과학자들이 즐겨 하는 장난을 지칭하는 말이다. 갈륨은 실온에서 고체로 존재하지만 녹는점이 29.8℃로 낮은 편이다. 그래서 손님에게 뜨거운 차와 함께 갈륨으로 만든 찻숟가락을 내놓고, 찻숟가락이 차에 녹아서 사라지는 걸 보고 깜짝 놀라는 손님을 보며 즐거워한다는 이야기다. 원소의 특성을 이용한 경쾌한 트릭을 제목으로 삼은 것이 이 책의 성격을 잘 나타내준다 하겠다.

<사라진 스푼>은 주기율표의 원소들에 얽힌 이야기들을 풀어내는데 하나같이 흥미롭고 기이하다. 원소들이 인류의 역사와 경제, 문화, 전쟁, 심지어 철학에 미친 영향을 읽고 있으면 ˝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주기율표의 산물인 셈이다˝라는 책 속의 글귀가 실감된다. 에피소드 하나를 살펴보자. 영국은 인도를 식민통치하면서 소금에 8.2 퍼센트의 높은 세금을 부과한다. 간디는 이에 항의하기 위해 ‘소금 행진‘을 벌이며 인도 국민들에게 스스로 소금을 만들어 세금을 내지 말라고 촉구한다. 이로 인해 인도에서는 주민들이 집에서 바닷물을 증발시켜 만드는 소위 보통 소금이 널리 퍼진다. 문제는 이 보통 소금에는 요오드가 거의 들어 있지 않다는 것. 서구 국가들은 건강에 아주 중요한 원소인 요오드를 소금에 반드시 첨가하도록 법제화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인도는 독립 이후 수십 년이 지나도록 요오드가 없는 보통 소금이 주류였고,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은 주 정부들이 보통 소금을 금지하려 했지만 큰 저항에 부딪힌다. 요오드를 섭취하지 않으면 갑상선에 문제가 생기고, 갑상선은 여러 호르몬의 생산과 분비를 조절하기 때문에 신체와 정신의 기능이 급격히 떨어져 심지어 정신 지체를 유발하기도 한다.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이 역사적 사실을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어 있지 않은 증거로 들었다. 러셀은 말한다. ˝생각하는 데 쓰는 에너지는 화학적 기원이 있는 것 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요오드 결핍은 똑똑한 사람을 바보로 만든다. 정신적 현상은 물질적 구조에 속박돼 있는 것 같다.˝ 즉, 인간의 이성과 감정과 기억이 뇌 속에 있는 물질적 조건에 의존한다고 본 것이다.

주기율표의 순서는 해당 원소 원자핵의 양성자 수에 의해 결정되는데, 그렇기 때문에 주기율표 아래로 가면 방사성 원소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따라서 원소 연구의 주체가 화학에서 물리학으로 옮겨가는 것이 곧 19~20세기 과학의 역사와 맞닿아 있다. 마리 퀴리가 노벨 화학상과 노벨 물리학상을 차례로 수상한 진기록을 남긴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책의 구성상 이 역사가 잘 정리되지 않은 채로 책 곳곳에 흩어져 있는 점은 못내 아쉽다.

사실 이 책의 서평을 어떻게 써야 할지 좀 난감했는데, 책이 온통 원소에 얽힌 자잘한 에피소드와 이에 딸린 소소한 지식들로 가득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주기율표라는 소재만 있을 뿐, 책을 관통하는 확실한 주제가 있는 게 아니라 감상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원소에 대한 과학적 트리비아 덩어리인 이 책이야말로 내 지적 허영을 가뿐히 채워 줄 수 있었지 싶다. 적어도 책을 읽는 동안에는 내 머릿속이 순수한 즐거움으로 가득 찼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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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룰루 밀러 지음, 정지인 옮김 / 곰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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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전 세계를 돌며 어류를 연구하고 분류한, 미국이 자랑하는 이름난 생물학자. 당시 인류에게 알려진 어류의 5분의 1을 그와 그의 동료 연구자들이 발견했을 정도로 조던은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그의 보금자리인 스탠퍼드 대학 연구실엔 세계 각지에서 수집한 수천 종의 어류 표본이 몇 층 건물 높이로 보관되고 있었다.

1906년의 어느 날, ˝지구가 어깨를 들썩였다˝.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이었다. 진도 7.9의 지진은 대지를 쪼개고, 수많은 건물을 주저앉히고, 그보다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다. 조던의 어류 표본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에탄올로 가득 찬 유리병들이 산산이 조각나, 몇 천 마리의 물고기들이 바닥을 뒹굴고 있는 모습을 본 조던의 심경이 어떠했을까. 30년 동안의 컬렉션이, 평생의 업적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 그 순간이.

하지만 조던은 바로 그 순간, 바늘을 구해와 가장 가까운 물고기를 집어들더니 그 물고기의 이름이 적힌 이름표를 표본에 직접 꿰매어 붙이기 시작한다. 자신이 평생 탐구하고 명명한 물고기들의 학명을 다시는 잃어버리지 않겠다는 다짐인 양, 그는 그렇게 몇날 며칠에 걸쳐 - 물고기들이 말라서 부패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물을 뿌려 가며 - 자신의 컬렉션을 복원한다.

저자 룰루 밀러의 아버지는 이온을 연구하는 생화학자였다. 룰루 밀러가 일곱 살 때, 아버지에게 물었다. ˝인생의 의미가 뭐예요?˝ 아버지는 씩 웃으며 말했다. ˝의미는 없어!˝ 인생에는 의미도 없고, 신도 없고, 내세도, 운명도, 아무런 계획도 없다고 그녀의 아버지는 말했다. 이 광대한 우주를 지배하는 것은 오직 혼돈 뿐, 나머지 것들은 아무 의미도 없다고. ˝넌 중요하지 않아. 그러니 너 좋은 대로 살아.˝ 과학자 다운, 그러나 보통의 아버지 답지 않은 참으로 비범한 대답이었다. ‘너의 무의미함을 직시하고, 그런 무의미함 때문에 오히려 행복을 향해 뒤뚱뒤뚱 나아가‘라는 충고.

이 충고가 역효과를 발휘했는지, 룰루 밀러의 자아는 점점 약해졌다. 특히 학창 시절을 겪으면서 자존감이 작은 아이가 되어 갔다. 미성년들의 악의는 그녀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고, 밀러는 죽음까지 생각할 지경이 되었다. 그때 나타난 곱슬머리 남자. 그는 밀러를 구원해 주었고 7년을 함께 했지만, 밀러의 실수로 모든 것이 망가졌다. 남자는 밀러를 떠났고 밀러는 그가 다시 돌아올 것을 기대했지만 그는 끝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혼돈이 다시 그녀를 덮쳤다.

룰루 밀러가 19세기의 생물학자인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게 관심을 갖게 된 건 위의 에피소드 때문이다. 조던은 어떻게 그런 초인적인 의지를 갖게 되었을까? 조던의 생애를 좇아가면 내 인생도 혼돈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어렸을 때 아버지가 말했던 것과는 다르게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룰루 밀러는 이 책을 시작하게 된다.

조던은 그의 스승 루이 아가시의 가르침 대로 ‘자연 속에 신의 계획이 숨겨져 있다고, 신의 피조물들을 모아 위계에 따라 잘 배열하면 거기서 도덕적 가르침이 나오리라고 믿었‘던 사람이었다. 자연의 사다리 맨 꼭대기엔 인간이 있고, 그 아래를 순서대로 고등한 생물부터 열등한 생물까지 나열할 수 있다고. 그리고 그 순서는 그 생물 종의 도덕성에 기반하고 있으며, 나쁜 습관은 생물 종의 쇠퇴를 불러오며 그게 곧 ‘퇴화‘라고 주장했다. 그게 바로 조던이 평생을 물고기의 분류에 몸바치게 했던 이유였다. 분류를 통해 신이 세계에 부여한 질서를 깨닫는 것이 목표였다는 말이다.

과학과는 전혀 부합하지 않는 이런 광신적 목표는 조던을 사이코패스로 만들었다. 조던을 스탠퍼드 대학 초대 학장으로 만들어 준 릴런드 스탠퍼드의 부인, 제인 스탠퍼드를 독살했다는 의혹을 짙게 받았지만 이건 약과였다. 그는 자신의 이론을 더더욱 확장시켜 결함있는 인간들을 모두 없애야 인류가 열등한 종으로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 믿게 된다. 당대에 움트기 시작한 우생학의 열렬한 신봉자가 된 것이다. 스타 생물학자였던 조던의 전방위적인 노력으로 인해 ‘부적합한 자‘들에 대한 강제 불임 시술이 미국 연방법으로 제정되기에 이른다. 그렇다면 누가 ‘부적합한 자‘인가? 조던에 따르면 ‘성적으로 문란하다고 판단된 젊은 여자들, 멕시코와 이탈리아, 일본 이민자의 아들과 딸들... 그리고 성적인 전형에서 벗어난 남녀들‘이었다. 이들을 ‘집에서 끌어내 배를 칼로 긋고 혈통을 끊어버릴 권리를‘ 정부에 부여하도록 만든 게 바로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었다.

조던이 ˝자연의 사다리˝에 그토록 매달린 건 아마 혼돈이 두려웠기 때문이리라. ‘이 세상에 너의 의미 따위는 없어, 너는 중요하지 않아‘라는 진실을 마주하기 두려웠던 그는 자연에 부여된 질서를 통해 자기의 위치를, 높은 성의 주인인 자신을 찾고 싶었던 게 아닐까. 조던을 따라가는 여정의 끝에서 룰루 밀러는 마침내 깨달음을 얻는다. 자연의 관점에서, 우주를 지배하는 혼돈 속에서 한 사람의 생명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 한 사람은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방식으로 이 지구에게, 이 사회에게, 서로에게 중요하다. 민들레가 어떤 사람에겐 잡초일 수 있으나, 다른 사람에겐 약재이고 염료이며 소원을 빌게 해주는 존재일 수 있는 것처럼.

하지만 책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마지막 장에서 우리는 거대한 반전, 마치 혹성탈출의 마지막 장면처럼 심장을 덜컹 내려 앉게 만드는 결말을 보게 된다. 샌프란시스코 대지진보다 확실하게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세계를 짓밟아 버린 그것을 확인하고 싶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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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 시대의 여행자들
줄리아 보이드 지음, 이종인 옮김 / 페이퍼로드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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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흥미로운 제목이다. ‘히틀러 시대의 여행자들‘이라니. 후행의 역사를 사는 우리에겐 1930년대 나치가 집권한 시대의 독일이 야만의 정서로 점철되었을 것만 같다. 이때 나치의 만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사실이나, 그럼에도 이 시기에 많은 외국인들이 독일 전역을 여행했다. 특히 1차 대전 당시 독일의 적국이었던 영국과 미국에서 엄청난 수의 관광객이 독일을 방문했다. 1937년에만 50만 명의 미국인들이 제3제국을 찾았다니 말이다. 대체 왜 그리 많은 사람들이 독일을 찾았을까? 그들은 당시의 나치 독일을 어떻게 느꼈을까?

저자는 당대에 독일 여행이 유행한 이유로 몇 가지를 꼽는다. 저렴한 여행 경비,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도시들, 관광객들에게 친절하고 우호적인 독일인들의 품성, 독일 특유의 비범한 예술과 문학, 철학 등등. 여행객들은 곳곳에서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 유대인 혐오와 탄압을 목격했지만, 그들은 즐거운 휴가를 유대인에게 신경을 쏟으며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큰 돈 들이지 않고 이토록 맛있는 식사와 훌륭한 체험을 할 수 있는데 그깟 유대인이 무슨 문제라고. 대다수의 여행객들은 그렇게 나치의 만행을 외면했다.

독일을 여행한 건 평범한 관광객들만이 아니었다. 영국과 미국의 정치가, 기업가, 군 장성, 왕족, 심지어는 전 영국 국왕까지 독일에 매료되었다. 독일의 자연과 문화 만이 아니라 히틀러의 주장에도 말이다. 그들은 나치즘을 일종의 모더니티, 낡은 유럽과 대비되는 신세계로의 관문으로 인식했다. 항상 청결한 거리, 자부심 넘치고 근면성실한 국민들, 믿기지 않는 속도로 발전하는 사회 인프라. 독일에 매료된 영국과 미국의 상류층들은 이 모든 것들을 히틀러와 나치가 일구어낸 성취로 보았다. 이들은 직전의 바이마르 공화국의 혼란상과 대비되는 독일의 변모를 보며 나치즘의 열렬한 신봉자가 되어 갔다.

사실 이러한 현상의 이면엔 나치의 교묘한 프로파간다가 있었다. 나치는 순수 아리안계 혈통만 인정하기 때문에 국제주의를 증오했지만, 관광이 나치의 부정적 이미지를 불식시킬 수 있는 수단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외국인들이 제3제국에서 인상 깊은 체험을 하여 귀국 후에 독일을 자연스럽게 칭송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말이다. 그래서 나치는 영미의 지도계급을 적극적으로 초청하여 나치 독일의 근대화된 모습을 시찰하게 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베를린 올림픽을 개최하여 철저한 통제 하에 나치 독일에 평화의 이미지를 덧칠했다. 독일은 ˝평화를 사랑하고 믿을 만하며 진보를 지향하는 나라˝라고. 당시 막 등장한 동방의 공포 - 볼셰비즘 - 로부터 유럽을 지키는 방파제라고.

그리고 그 중심에는 히틀러가 있었다. 히틀러를 만나본 사람들은 그를 정중하고, 조용하고, 인내심이 많으며 ˝술 담배를 하지 않고 여자들이 겸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포르노그래피를 적극 반대˝하는 좋은 지도자라 평했다. 그리고 여행을 통해 호감을 갖게 된 독일 국민들이 히틀러를 그토록 숭배하는 것을 보며 히틀러가 니체 철학의 초인, 진정한 위버멘쉬라고 우러르기까지 했다.

2차 대전이 발발하기까지 몇 년 동안 전개된 유럽 역사를 읽을 때마다 항상 궁금했었다. 히틀러가 전쟁을 일으켜 유럽을 참화에 몰아넣을 게 뻔히 보였는데 유럽과 미국의 최고위층은 왜 히틀러를 억제하는데 미적거렸을까? 이 책을 읽고 나니 의문이 조금 풀린 기분이다. 유럽과 미국의 수많은 시민들, 그리고 지도자들은 독일을 여행하며 나치의 눈속임에 철저히 당했고, 나치의 국가사회주의가 소련의 공산주의의 대항마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이 광범위한 수년 간의 공작이 정치인들의 판단력을 흐리게 했음을 이제 알겠다.

기시감이 든다. 지금 일본은 전후 어느 때보다 급격히 우경화되고 있으며 군사대국으로의 길을 걷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 시대가 끝나가면서 내 주변에서도 일본 여행을 가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 들어 보면 이들이 일본을 가는 건 히틀러 시대 독일을 여행한 이유와도 비슷하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 맛있는 음식, 친절한 국민들, 깨끗한 도시. 개인의 사적인 선택은 존중받아야 마땅하지만, 역사의 교훈까지 무시해서는 절대 안 된다. 특히나 무능하고 어리석은 지도자가 있을 때는 더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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