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우리 모두의 이야기 - 지금까지 모든 역사는 생존투쟁의 역사이다
패멀라 D. 톨러 지음, 안희정 옮김 / 다른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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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금까지 모든 역사는 생존투쟁의 역사이다’라는 명제가 이 책의 부제이다. 딱 봐도 인류의 역사를 생존투쟁의 관점에서 개괄하려는 책이라는 느낌을 폴폴 풍긴다.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나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처럼 몇 개의 대전제를 세워서 역사의 흐름을 통찰하는 명저들과 궤를 같이하는 책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럼 과연 이렇게 당당하고 자신있게 출사표를 던진 값을 하느냐고 물으면, 글쎄다.

위에서 예시한 두 저서의 명성을 좇으려면 잘 알려진 인류의 역사를 저자가 의도한 관점으로 해석해 내어야 한다. 그 과정이 얼마나 정치하며 명확한 논거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 독자들은 저자가 제시한 대전제를 납득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그런데 이 책은 거창한 전제를 내세운 것에 비해 그리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지 못한다. 인간의 탄생부터 현재까지의 인류 역사 전체를 다루고 있으나, ‘생존투쟁의 역사’라는 명제에 독자들이 설득되기엔 부족하다. 저자는 동 시대의 여러 사건들을 보여주면서 이런 사건들이 생존투쟁의 증거라고 주장하지만, 그 사건들 간의 연결고리가 크게 새롭지 않다는 게 문제다. 한 마디로 다들 아는 내용을 갖고 새로운 것이라고 주장하는 셈이라 다 읽고 나면 ‘이게 다야?’라는 허탈함이 밀려온다.

중간중간 개인의 일화나 소소한 사건들이 들어가 있어 잔재미를 주지만, 그런 면에서는 빌 브라이슨의 저서들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 시작은 창대하나 끝은 미미하리라. 역사서를 좀 읽은 사람에게는 이도저도 아닌 책이라는 감상이 든다. 그 이야기는 거꾸로 말해, 인류 통사에 호기심을 느끼는 사람에게는 좋은 입문서가 될 만한 책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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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양장, 어나더커버 특별판)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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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전작 <당신 인생의 이야기> 이후 무려 17년 만에 출간된 테드 창의 단편집. ’현존하는 최고의 SF 작가’라는 세평에 손색없는 작품집이다. 여러 단편이 수록되어 있으나 특히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과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가 눈에 띈다.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은 이슬람 배경의 타임 리프물인데 얼핏 굉장히 이질적일 것 같지만 작품 내에서는 전혀 위화감을 느낄 수 없을 정도의 핍진성을 보여준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테넷>과 매우 유사한 모티브를 갖는 작품인데, 테드 창 본인이 밝히길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은 놀란 감독의 작품 <인터스텔라>를 감수한 물리학자 킵 손의 강연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하니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과거와 현재, 미래는 분리 불가능하게 점착되어 있고 시간은 단방향으로 흐르지 않기 때문에 미래가 과거에 영향을 미친다는 아이디어는 이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을 읽으면서 자연히 <테넷>을 떠올리게 만드는 주된 요인이다.

AI의 영향력과 반려동물의 권리라는 요즘 핫한 두 가지 사회적 주제를 절묘하게 섞은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는 단편 작가인 테드 창의 작품 중 가장 긴 소설이다. 중편에 가까운 이 소설은 SF 라기 보다 멀지 않은 미래의 르포르타주처럼 읽힌다. 요즘 AI에 대한 우려는 거개가 강인공지능이 불러올 인류에 대한 위협이나 AI가 인력을 대체하는 세계의 새로운 직업 패러다임에 대한 것들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반려동물로서의 AI, 그리고 그들의 생존과 인격을 보장하고자 노력하는 인간 반려자들의 고민과 논쟁이 독자에게 무척이나 깊이 있는 울림을 준다. 꼭 10년, 20년 안에 반드시 일어날 법한 일이어서 더욱 그렇다.

이외에도 <옴팔로스>는 그의 전작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 수록된 <바빌론의 탑>이나 <지옥은 신의 부재>의 계보를 잇는 “신”을 주제로 한 SF이다. 물과 기름 같은 두 장르, 신학과 SF를 절묘하게 섞어 독자에게 철학적 화두를 던지는 테드 창의 뛰어난 역량은 그가 왜 최고의 과학소설 작가로 불리는지 단박에 이해하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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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 - 우리 몸 안내서
빌 브라이슨 지음, 이한음 옮김 / 까치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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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이 이번에 택한 주제는 바로 우리의 “몸”이다. 그는 과학사(‘거의 모든 것의 역사’), 영어의 역사(‘발칙한 영어 산책’), 사회사(‘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에 이어서 신체에 대한 백과전서를 만들어 냈다. 빌 브라이슨의 저서들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뉘는데 위의 백과사전 류의 박학다식을 뽐내는 책들과 여행기(‘발칙한 유럽산책’, ‘나를 부르는 숲’ 등) 류가 그것이다. 어찌됐든 두 종류의 책 모두 대단히 재미있고 또 가볍게 읽을 수 있다.

가볍게 술술 읽을 수 있다는 건 이 두꺼운 책이 지닌 큰 미덕이다. 어차피 이런 류의 책에서 심오한 진리를 얻으려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독자의 지적 호기심을 살짝 자극하고 순간의 놀라움을 주는 지식을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 지금 나열하는 종류의 지식들 - 뇌는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 상관 없이 일정한 속도로 하루에 400 칼로리를 소모한다, 코코넛 기름은 건강에 좋다는 일반적인 믿음과 달리 액체 형태의 포화지방에 불과하다, 겨울잠과 잠은 다른 것이며 곰은 사실 겨울잠을 자지 않는다, 뉴욕의 30세 흑인 남성은 방글라데시의 30세 남성보다 사망할 확률이 높은데 이는 마약이나 폭력 때문이 아니라 뇌졸중, 심장병, 암, 당뇨병 때문이다 등등 - 이 가득 차 있는 이 매력적인 책을 그냥 지나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인체를 다루는 이 책은 필연적으로 의학의 역사이기도 하다. 인류의 평균 수명을 극적으로 늘린 수많은 선각자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마취제를 개발하고, 항생제를 발명하고, 각종 위생 수칙을 수립하고, 다양한 수술 기법들을 고안한 사람들. 인류에 대한 그들의 공헌에 걸맞은 영광을 얻은 이들도 있지만 얄궂은 운명으로 비극적인 말년을 맞은 이들도 많았다. C’est la vie!

거대한 화학 기계인 동시에 전자 장치인 인간의 신체는 아직도 탐험할 것이 무수히 남은 미지의 세계이다. 그래서 이 책은 역설한다. 우리의 존재는 경이 그 자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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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이 세계라면 - 분투하고 경합하며 전복되는 우리 몸을 둘러싼 지식의 사회사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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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에드워드 윌슨이 지금은 고전의 반열에 오른 저서 <사회생물학>을 출간했을 때 그가 학계에서 받은 비난은 상상을 초월했다. 동물을 비롯한 인간의 제반 행동이 환경보다 유전의 영향을 크게 받을 수 있다는 그의 이론이 68세대의 영향이 아직 가시기 전인 당시의 사회 분위기에서는 받아들여지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회생물학이 감수해야 했던 무수한 공격들이 학문적 엄밀성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이념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판단에 의거하였다는 것이다. 그것도 동료 학자들에게서! 고생물학계의 슈퍼스타인 스티븐 제이 굴드(리처드 도킨스의 맞수로도 유명하다)와 리처드 르원틴은 윌슨의 이론이 우생학과 파시즘의 이론적 토대가 된다고 맹렬히 비난했다. 하버드에서는 연일 윌슨의 퇴진 운동이 벌어졌고, 윌슨은 강연 도중 물세례를 받는 수모를 겪기도 한다.

이 사태의 문제는 과학 이론을 학문적 허점을 가지고 공격한 것이 아니라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며 마녀사냥을 했다는 데 있다. 과학은 그 자체로 가치 중립적이다. 자연과학에 이념과 윤리의 문제를 갖다 붙이는 것은 종교적 신념으로 지동설을 부정하는 중세 시대와 다를 바 없는 짓이다. 핵폭탄이 문제가 된다고 원자물리학을 연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과 대체 뭐가 다른가? 물론 연구 방법의 윤리적 문제는 - 731 부대의 생체 실험 같은 - 당연히 지탄받아 마땅하지만, 과학 그 자체는 이념과 윤리의 영역이 아니다.

<우리 몸이 세계라면>은 충분히 좋은 책이다. 김승섭이 전작 <아픔이 길이 되려면>에서 보여줬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따스한 시선과 구조적 불합리에 대한 저항의 정신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선 조금 도가 지나치다는 느낌이다. 과학적 연구를 이념의 색안경을 통해 검증하려 든다는 느낌이랄까? 물론 우리 사회와 우리 몸에 스며든 사회적 차별과 소외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비판해야 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에 너무 경도되어 모든 것을 하나의 단일한 기준으로 바라보는 것은 또다른 위험을 낳는다. 남성과 여성이 동일한 심장병 증상을 호소할 때, 의사가 여성보다 남성을 관상동맥질환이라고 판단할 확률이 높다는 논문을 가지고 의사가 성별에 따른 편견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대목에선 할말을 잃었다.

에드워드 윌슨이 비난받던 시대에는 인종과 성별로 인한 차별을 타파하자는 진보적 색채가 미국 사회를 뒤덮고 있었다. 때문에 인간은 유전적 요인 보다 후천적 환경과 교육에 의해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이 강했다. 그렇지 않다면 인종과 성별로 인한 계급적 차이는 영원히 극복할 수 없을 테니까. 이런 풍조가 심해지다 보니, 연쇄살인범도 환경의 영향 때문에 범죄를 저질렀으며 적절한 교육을 통해 교화할 수 있다고 심리학자들이 확신할 지경이었다. 사람이 나쁜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사회적 환경이 문제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다 보니 연쇄살인범이 옥중에서 자서전을 써서 베스트셀러가 되고, 형이 경감되어 풀려나자마자 다시 살인을 저지르는 황당한 사건이 연이어 터졌다. 모든 문제를 하나의 이념과 시선으로만 재단하려 하면 종국엔 극단적 교조주의에 이르게 됨을 우리는 항상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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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해의 마지막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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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더 이상 시를 쓰지 못하는 시인의 이야기.

김연수의 예전 작품 <꾿빠이, 이상>이 시인 이상을 소재로 했다면, 최신작 <일곱 해의 마지막>은 시인 백석의 삶을 소재로 한다. 그러나 <일곱 해의 마지막>은 잘 알려진 일제 시대 백석의 행적을 다루지 않는다. 백석은 북에서 시 창작이 아닌 번역가로 살았는데 (백석은 영어, 러시아어, 프랑스어, 독일어, 중국어, 일본어를 능숙하게 썼으며, 그 중 가장 못하는 게 일본어였다고 한다. 참고로 백석은 일본에서 유학한 사람이다.) 스탈린 사후 흐루시초프가 집권하면서 불어 온 우상화 비판과 해빙의 바람을 타고 다시 시를 쓰게 된다. <일곱 해의 마지막>은 이렇게 백석이 다시 시를 발표하기 시작한 1957년부터, 그의 ‘시에는 문학성이 담보되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인해 북한 문단에서 숙청되어 멀고 먼 삼수로 떠나 생활하는 1963년까지의 7년 간을 다룬다.

엄혹하기 그지 없는 체제 하에서 시인으로서의 영혼을 숨기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조선작가동맹의 초청으로 북한을 방문한 소련 시인 벨라에게 자신이 그 동안 몰래 써온 시 묶음을 건넨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소리없는 아우성을 지르고 싶었던 걸까. 그 시들은 기막힌 우연으로 인해 백석이 나중에 삼수로 추방되는 이유 중 하나가 되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았다면 백석은 북에서 제대로 숨이나 쉴 수 있었을까?

백석의 시를 읽어보면 거개가 평화로운 고향의 정경을 배경으로 토속적인 것들, 순하고 여린 것들에 대한 애정을 담뿍 느낄 수 있다. 이런 사람이 삭막하고 냉랭한 시절을 견뎌낼 수 있었을까? 언제 어떤 이유로 숙청당할지 모르는 숨막히는 삶을 살아낼 수 있었을까? 오히려 그는 서툴지만 삼수에서 양을 치고 농사짓는 게 더 행복했을지 모른다. 비록 거기서도 시인의 영혼은 어두운 골짜기에 버려야 했지만.

지금까지의 김연수 소설은 대체로 근대를 배경으로 할 때 찬란히 빛을 발했다는 느낌이다. 내가 김연수 소설 중 최고로 치는 <밤은 노래한다>가 그랬고,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이 그랬다. 그런데 이 <일곱 해의 마지막>은 조금 결을 달리한다. 소설적 재미는 위 두 작품에 미치지 못하나, 시인으로서의 삶이 죽어버린 백석이 느꼈을 법한 절대적인 고독과 두려움, 그리고 먹먹한 체념의 감정을 눈에 보이듯 그려낸다.

다음의 대목이 이 작품의 백미가 아닐까 한다. 숙청당한 백석이 삼수로 가기 위해 기차를 기다리던 혜산역 대합실에서 우연히 만난 서희가 백석의 시를 읊을 때, 백석은 지금의 세상과 자신이 평화로이 공존할 수 없음을 비로소 깨닫는다. ‘이제 시는 자신의 것도, 그 누구의 것도 아니었다. 자신의 불행과 시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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