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 사회적 트라우마의 치유를 위하여
정혜신.진은영 지음 / 창비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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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 정혜신과 시인 진은영이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사회적 트라우마를 치유할 방법에 대해 논한 대담집. 광주민주화운동 피해자, 고문 피해자, 쌍용차 해고노동자, 세월호 유가족 등 우리 사회가 안긴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를 말한다.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트라우마를 마음을 강하게 먹으면 극복할 수 있는 생채기 쯤으로 생각한다는 것. 정혜신은 트라우마를 자기 존재보다 더 큰 상처를 홀로 떠안고 견디며 살아갈 상처이지 극복이 되는 상처가 아니라고 말한다. 흔히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라고 하지만, 트라우마는 `아픈 만큼 파괴되는 것`이다. 트라우마는 `삶의 전반적인 판이 다 깨어지는 것`이고 `인간이 통제 가능한 영역 바깥에 있는, 인간의 의지나 한계를 벗어나는 것`이다.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들은 피해를 입은 사건 당시에 일생의 시간이 멈춰 있기 때문에 `이제 그만 하고 돌아와라`라는 주위의 권유가 쓸모없다. 세월호 유가족에게 봄은 아이와 함께 했던 추억이 날아와 가슴에 박히는 `봄꽃이 총알이 되는` 계절인 것이다.
정혜신은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한 방법으로 치유 공간을 제안한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를 위한 `와락`, 세월호 유가족을 위한 `이웃`을 세워 피해자들이 일상을 복원할 수 있도록 돕는다. 최신 기법을 동원해 심리치료를 하는 게 아니라, 따뜻한 밥을 먹이고, 뜨개질을 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하여 이들이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서서히 치유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치유된 사람들이 다른 트라우마 피해자들을 도울 수 있는 `상처입은 치유자`가 될 수 있게 돕는다. `상처입은 치유자`란 상처를 입어 본 사람이 그 상처를 치유받아 본 경험을 바탕으로 최고의 치유자가 된다는 개념이다. 고문 피해자들이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의 치유를 돕고, 쌍용차 피해자들이 세월호 유가족을 돕는다.
트라우마가 제대로 치유되지 않으면 너무나 큰 충격 때문에 마음의 문을 닫고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지 경향이 있다고 한다. 여기서 박근혜에 대한 흥미로운 분석이 도출된다. 박근혜는 아버지가 암살되는 거대한 트라우마를 제대로 치유하지 못해서 세월호 유가족을 만나도 그토록 냉담했다는 것이다. `나는 당신들보다 더한 고통 속에서도 나 혼자 힘만으로 여기까지 왔다. 당신들 정도의 고통이면 충분히 견딜 수 있는 거다. 엄살떨지 마라.` 이 정도면 트라우마를 이해하고 치유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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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 숟가락 하나 - MBC 느낌표 선정도서, 개정판
현기영 지음 / 실천문학사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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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에 집에 내려가서 책 정리하다 발견한 책. 현기영 선생의 책은 대학 1학년 때 읽은 <순이 삼촌> 이후 두 번째다. 장편 소설이라고 표지에 떡하니 박혀 있지만 사실 작가 본인의 유소년 시절 회고록에 가깝다. 제주라는 섬의 정서, 조금은 쓸쓸하고 우울하나 선명한 아름다움과 강건함이 깃들어 있는 곳에서의 삶을 날 것 그대로 묘사한다. 4.3과 6.25를 거치면서 무너지고 망가지는 민초들, 그렇지만 어쨌든 삶은 계속되어야 하기에 사람들은 슬프고 고통스러운 나날들을 견뎌낸다. 아마 이 책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건 제주에 살았던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종종 등장하는 제주 사투리의 독특한 뉘앙스를 이해해야 글 속의 상황을 선명하게 상상할 수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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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주노 디아스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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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주인공 오스카는 SF와 판타지, 만화에 집착하는 전형적인 Nerd, 오타쿠다. 도미니카에서 미국으로 온 이민자 출신 집에서 태어난, 140kg의 비대한 몸을 가진 흑인. 작가의 말에 따르면 소설의 주인공으로는 지극히 매력이 떨어지는 인물이다. 제목과 달리 오스카의 삶은 전혀 놀랍지 않다. 끝까지 외로운 Nerd의 삶을 살았던 보잘것없는 오스카. 사실 이 책의 진정한 주인공은 오스카의 엄마 벨리시아이다. 도미니카의 유력자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아버지가 독재자 트루히요의 눈 밖에 나서 가족이 철저히 피괴되고 삶이 엉망으로 망가진 벨리시아. 중남미의 전형적인 독재의 단면들이 소름끼치게 묘사된다. 이 책의 진정한 가치는 문장들에 흘러넘치는 끝모를 생명력이다. 천명관의 <고래> 이후로 이렇게 에너지가 가득 찬 소설은 처음이다.

마치 천국의 한 조각을 삼킨 기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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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크는 아이 - 제주 토박이가 본 제주 교육 이야기
김유경 지음 / 장천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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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이상하기도 하지. 제주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닐 때엔 제주에 사는 게 그렇게 싫었다. 꽉 막힌 좁은 섬에 갇혀 사는 삶이 너무 답답했으니까. 그래서 대학에 와서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도 별로 외롭지 않았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있노라니 도로 제주에 가서 살고 싶어진다. 그렇게나 도망치고 싶던 곳인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국민학교 때 학교 뒷산에서 메뚜기 잡고 열매 따먹던 시절의 기억이 참 그립다. 이렇게 말하니 내가 아주 시골에서 큰 것 같은데, 우리 집은 나름 제주 시내 한복판에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러니 아파트 좁은 놀이터에서 놀 수 밖에 없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제주에 가서 사는 게 어떨까 싶기도 하고...
이 책에서는 제주에서의 삶과 제주인들의 교육 철학을 아름답게 그려내지만, 내가 경험했던 학창시절은 이 책의 내용과는 좀 거리가 있어서(물론 내가 제주를 떠난 사이 많이 변했겠지만), 읽다보면 의구심이 드는 부분도 많다. 당장 먹고 사는 터전이 여기 있으니 제주에서 사는 것은 이루어지지 않을 꿈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아이들을 이 삭막한 아파트 숲에서 경쟁의 한복판에 밀어 넣으며 사는 건, 아이들에게 너무나도 미안한 일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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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 (2015년판) - 김영하와 함께하는 여섯 날의 문학 탐사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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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는 책을 읽는다는 것, 그 중에서도 소설을 읽는다는 행위에 대한 깊은 고찰을 여섯 꼭지의 강연으로 풀었다. 소설을 읽는 강렬한 경험을 통해 내 자아의 일부가 해체되고 다시 재구축된다. 그러한 경험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나의 내면엔 나만의 고유한 작은 우주가 건설된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이 물질만능의 시대에 맞설 수 있는 존엄성과 힘을 가질 수 있다. 김영하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짧은 생물학적 생애를 넘어 영원히 존재하는 책의 우주에 접속할 수 있는 것, 이것이야말로 독서의 가장 큰 보상이라고.

독서는 왜 하는가? 세상에는 많은 답이 나와 있습니다. 저 역시 여러 이유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독서는 우리 내면에서 자라나는 오만(휴브리스hubris)과의 투쟁일 겁니다. 저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와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을 읽으며 ‘모르면서도 알고 있다고 믿는 오만’과 우리가 고대로부터 매우 발전했다고 믿는 자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독서는 우리가 굳건하게 믿고 있는 것들을 흔들게 됩니다. 독자라는 존재는 독서라는 위험한 행위를 통해 스스로 제 믿음을 흔들고자 하는 이들입니다. 비평가 해럴드 블룸은 <교양인의 책 읽기>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독서는 자아를 분열시킨다. 즉 자아의 상당 부분이 독서와 함께 산산이 흩어진다. 이는 결코 슬퍼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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