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죄
이언 매큐언 지음, 한정아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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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소녀의 미숙한 확신이 가져온 커다란 파문, 그로 인해 평생을 고통받는 세 사람. 죽음이 넘쳐 흐르는 전쟁터보다 고통스러운 것은 인간의 마음 속에서 끝나지 않는 지옥이다. 그릇된 상상력으로 말미암은 죄를 상상력으로 씻는다는 이언 매큐언의 놀라운 상상력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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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서 시작하여 침팬지, 설치류, 유대류, 양서류, 어류, 무척추동물, 균류, 식물, 고세균을 거쳐 생명의 기원까지 진화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생물 역사의 순례 여행. 도킨스는 이 순례길에서 진화가 분기되는 지점-인간과 침팬지의 분화가 예가 될 수 있겠다-을 ‘랑데부‘라 칭하고 랑데부마다 다윈 이후 현재까지의 진화론의 주요 주제들을 다룬다. 몇 천만 종의 생물들이 하나의 공조상으로 수렴되는 이 긴 여정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경이로 가득 차 있음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탄생 이후에 물리학과 화학만 존재할 수 있던 지구에 천문학적으로 낮은 확률을 뚫고 최초의 생명이 발아하여 아득한 세월 동안 진화를 거쳐 지금의 나와 내 가족, 지구의 모든 생물들을 만들어 냈다는 게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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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 (무선본) -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 옮김, 이태수 감수 / 김영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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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 화폐, 제국, 종교. 아프리카 사바나의 일개 유인원에 지나지 않던 호모 사피엔스가 어떻게 다른 종을 압도하고 지구를 지배하는 존재가 되었는지 설명하기 위해 저자가 빼어든 핵심 키워드들이다. 이 중 단연 핵심은 저자가 7만년 전에 일어났다고 주장하는 인지혁명이다. 호모 사피엔스의 뇌 속에서 어떤 극적인 돌연변이가 발생하여 새로운 방식으로 사고하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이론이다. 인지혁명이 중요한 이유는 이로 인해 인간은 실재하지 않는 허구를 믿는 능력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것이 종교가 됐든 정치가 됐든 화폐가 됐든, 실체가 없는 것을 믿고 따르며 전혀 모르는 사람끼리도 협력하고 희생할 수 있게 되면서 비로소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사실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은 허구다. 우리가 돈을 버는 회사도 물리적 실체가 있는 게 아니고 국가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절대적으로 믿는 자유, 평등, 권리 같은 개념도 생물학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런 수많은 허구를 차곡차곡 쌓아 올린 우리의 문명은 분명 다른 종이 절대 흉내낼 수 없는 것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교과서적인 상식의 세계를 산산히 깨부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꽤 불편한 구석이 많다. 제국주의가 식민지를 건설하면서 사회 인프라를 확충하여 후손들이 그 덕을 보고 있다는 식민지근대화론 비슷한 얘기도 그렇고, 현대의 자유민주주의가 중세에 비해인간의 행복에 기여한 바가 없다는 주장도 받아들이기 힘들다. 지나친 문화상대주의처럼 보여 ‘인간에게 진정 가치있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과 회의가 든다.
또 이 책은 지나치게 단편적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위에서 말한 키워드들로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를 설명하기 위해 그런 것 같은데, 한 가지 사건을 두고 여러 해석이 있을 수 있는데도 저자는 자기 입맛에 맞는 시각만 소개한다. 이를테면 자본주의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프랑스 대혁명은 ‘미시시피 버블‘이라는 당대 최대의 금융 버블 사태로 인해 야기되었다는 식이다. 수많은 원인 중 하나만 소개하는 저자의 나쁜 버릇은 많은 논쟁거리를 만들 것 같다.
거칠게 말하면 <총, 균, 쇠>와 <특이점이 온다>를 짜집기 해놓은 듯한 책이다. 워낙 방대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늘어놓으니 그럴듯해 보이는데, 다 읽고 나면 절로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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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두 사람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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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신작 단편집. 지난 7년 동안 발표한 일곱 편의 단편을 엮었다. 그 중 표제작인 <오직 두 사람>보다 <아이를 찾습니다>라는 작품이 아주 인상깊다. 마트에서 잠깐 한 눈 파는 사이 세 살 난 아들을 잃어버린 부부의 이야기다. 부부는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전 재산을 들여 전단지와 현수막을 찍고 아들을 찾는데 인생을 바친다. 그러길 십일 년, 아내가 점점 미쳐가고 있을 때 쯤, 경찰에게서 아들을 찾았다는 연락이 온다. 아들은 유괴되어 낯선 여자를 엄마로 알고 살았던 것이다. 아들을 찾을 날을 기다리며 지옥 같은 나날을 견뎌왔지만, 정작 아들이 돌아오면서 주인공에겐 진짜 지옥이 시작된다. 무너진 관계는 다시 돌아오지 않고, 인생의 상실은 보상받지 못한다. 아들을 다시 찾는데 모든 재산과 시간을 바쳤지만, ‘그리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같은 동화 같은 이야기는 없었다. 아내의 정신은 이미 제자리로 돌아오기엔 너무 망가졌고, 남은 건 단칸방과 불안정한 일자리, 자기가 부부의 아들임을 믿지 못하는 사내아이가 전부다. 지난 십일 년 동안 불행했지만 그래도 언젠가 아들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라도 있었으나, 이제 가혹한 현실의 장벽 앞에 주저앉은 주인공은 어떻게 해야 하나? 소설은 지극히 김영하다운 결말로 끝을 맺는다. 살면서 잃어버린 어떤 것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저 견디며 살아나갈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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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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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병사‘. 소년병과는 다른 느낌의 슬픈 단어. 독소 전쟁 초기에 동부전선의 소련군은 독일군의 전격전에 휘말려 연전연패, 궤멸 직전의 상황까지 몰린다. 모스크바가 함락될 위기에 몰린 이 때, 애국심에 불타는 수없이 많은 소련 여성들이 너도나도 자원하여 지옥 같은 전쟁터로 떠난다. 열 다섯 소녀부터 아기 엄마까지. 저격수로, 보병으로, 간호병으로, 공병으로, 취사병으로.
그러나 아수라 지옥도에서 살아남아 전쟁을 끝낸 그녀들에게 돌아온 것은 환대가 아니었다. 그녀들이 전쟁터에서 뭘 했을지 의혹에 찬 시선을 보내는 이웃들, 전쟁의 참상에 침묵할 것을 강요하는 남성 중심의 사회. 최전방에서 보초를 서다 새벽녘에 들리는 맑은 새소리에 눈물짓고, 군율이 엄격한 영내에서도 남는 군복으로 몰래 원피스를 만들어 입으며, 잔인한 적인 독일군 부상병도 가엾게 여겨 정성껏 돌봐주던 그네들의 감수성을 이해받기에 전쟁은 너무 잔인했다.
위화의 소설 제목처럼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저자의 인터뷰 요청에 응한 200여명의 참전 여성들의 목소리는 전쟁에 관한 어떤 기록보다도 고통스럽다. 저자가 찾아오기 전까지 몇 십년을 숨겨온 기억을 어렵게 토해내는 그녀들의 눈물이야말로 지금을 사는 우리가 깊이 새겨야할 절박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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