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이 고인다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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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에 출간된 김애란의 단편집. 작년에 읽었던 <바깥은 여름>이 워낙 인상깊었던지라 김애란에 대한 기대감이 너무 컸나 보다. 단편들의 밀도도 떨어지고, 각 작품들에 등장하는 키워드들이 지나치게 중첩된다. 노량진 또는 신림동, 공시 학원 또는 재수 학원, 고시생 또는 재수생, 아니면 학원 강사. 반지하 단칸방 또는 옥탑방. 비슷비슷한 청춘의 비루함.
시험에 미래를 저당잡힌 초라한 인생들의 이야기가 죽 나열되는 느낌이다. 비스무리한 배경과 분위기의 작품들이 계속 등장하니 특색도 개성도 없다. 그러니 당연히 기억에 남는 장면도 드물다.
김애란의 다른 작품을 읽어봐야할 지 망설여진다. 이 책만 봐서는 김애란이 왜 그리 문단의 찬사를 받는 소설가인지 납득이 안 갈 정도이니. 정말로 <바깥은 여름>이 그녀의 최고작이 될지, 또다른 걸작을 들고 나타날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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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독서
김경욱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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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서사를 중시하는 이에게 단편은 마뜩치 않다. 장편은 인물들의 성격, 갈등, 상황이 켜켜이 쌓여 충분한 질감을 가진 덩어리를 이루나, 단편은 채 익지 않은 풋과일 마냥 미성숙한 세계에 갇혀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독자가 푹 빠질 만한 세계관을 구축하기엔 단편은 너무 짧다.
그래서 난 단편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사랑하는, 단편을 잘 쓰기로 소문난 작가들(하루키라든가, 김연수라든가...)의 작품들도 읽는 내내 감탄했지만 몇 달만 지나도 기억이 가물가물해진다.
그런데 김경욱의 단편집 <위험한 독서>는 좀 다른 느낌이다. 농후한 세계관 구축이 힘들다는 단편의 한계는 어쩔 수 없지만, 그가 만들어낸 이야기의 매력이 이를 상쇄하고도 남는다. 게다가 단편답지 않게 뛰어난 디테일 - <고독을 빌려드립니다>의 홈쇼핑 전화 상담 지침이나 <맥도날드 사수 대작전>에 묘사된 알바생 업무 프로세스를 보고 있자면 작가가 진짜 이런 일을 해본 게 아닐까 하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 은 작품의 설득력을 배가시킨다.
김경욱의 문장은 간결하고 자연스럽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공력이 만만치 않다. 잘 훈련된 운동선수처럼 능수능란하고 거침없다. 소설 속 인물들의 감정과 상황을 이렇게 적확한 단어와 문장으로 표현하는 작가를 참 오랜만에 만났다.
소설의 가치는 소설을 읽을 때가 아니라 소설을 읽고 난 뒤 그 내용을 곱씹어 되새길 때 비로소 그 속살을 드러낸다. 등장 인물들의 심리를, 그들의 뒷이야기를 상상하면서 소설 속을 유유히 헤엄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머릿 속은 희열로 가득해진다. 김경욱의 단편들은 제법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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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 에이지 -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의 지구사용법
다이앤 애커먼 지음, 김명남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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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지구 정복은 급기야 지층에 인간의 발자취를 남기기 시작했다. 핵실험으로 인한 방사능, 지구온난화의 흔적인 이산화탄소, 각종 플라스틱, 폐기물, 쓰레기 등등... 이처럼 지구 역사에 유례없는 대규모의 변화를 가져온 인류라는 종의 힘은 마침내 현재의 지질학적 분류인 홀로세를 ‘인류세‘로 바꾸자는 주장에 이르게 된다. 고생대, 중생대처럼 인류의 역사가 지층에 화석처럼 새겨질 정도의 막대한 지구 변화를 가져왔다는 것.

<휴먼 에이지>는 이토록 강력한 힘을 갖춘 인류가 앞으로 지구와, 자연과 어떻게 공존할지를 모색하는 책이다. 다이앤 애커먼은 우리가 산업혁명 이후로 지구를 정복해가면서 저지른, 재앙에 가까운 혼란상(환경 오염, 기후 변화, 생태계 파괴 등)을 뒤돌아보고 이를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그 해법은 다름 아닌 기술. 지금 와서 과거의 자연으로 완전히 돌아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도시와 함께 할 수 있는 자연 생태계를 조성해야 하며, 급속히 발전하는 에코 테크놀러지, 나노 기술, 생명공학, 미생물학, 3D프린팅 기술, 로봇 공학, 심지어는 인터넷이 인간과 나머지 생물 종의 공존을 도울 수 있다고 그녀는 말한다. 70에 가까운 나이에 세계 각지의 연구자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연구를 체험하고 정리하여 그 기술로 가능한 미래를 꿈꾸는 그녀의 상상력이 놀랍다. 거기에 그녀 특유의 미려한 문장이 결합된 이 책은 가히 자연과학과 첨단기술의 서사시라 부를만 하다(그녀는 실제로 코넬에서 영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시인이다).

그러면서도 중간중간 인류의 미래에 대해 철학적 질문(‘인간은 어디까지 사이보그화되어도 인간일까?‘ 같은)을 던지는 그녀의 지성이 부럽다. 나는 그 나이가 되어서도 그렇게 또렷한 사유를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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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 꼬마 니콜라 (합본) 앙코르 꼬마 니콜라
르네 고시니 지음, 이세진 옮김, 장 자크 상페 그림 / 문학동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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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 속의 첫 번째 독서는 여섯 살 때 아버지의 <꼬마 니콜라>를 읽은 것이었다. 국민학생 시절까지 내내 그 책을 읽고 또 읽었기 때문에 기억이 중첩되고 왜곡되었을 수 있겠지만, 내 기억에 여직 남아 있는 건 그 누런 표지의 얇은 책이 어린 나이에 보기에도 퍽이나 우습고 재미났다는 사실이다. 니콜라와 친구들이 겪는 일상의 소소한 모험담과 나름 심각한 다툼, 그 나이 또래가 간직한 세상을 바라보는 순진한 시선들이 얽혀 유쾌하기 짝이 없는 에피소드들을 만들어낸다.

어린아이일 때 읽은 꼬마니콜라와 부모가 되어 다시 본 꼬마니콜라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어린 시절엔 알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던, 에피소드의 행간에 숨은 어른들의 고충이 보인다. 어릴 적 둘리의 고길동은 둘리 일행에게 사사건건 간섭을 일삼는 심술궂은 아저씨일 뿐이었지만, 나이 들어서 보니 그는 사실 둘리 일당들의 만행에 시달리는 생불이었음을 알게 된 것처럼.

아이러니한 건, 이 책 속에서 어른들은 매번 아이들을 훈육하려 하지만 정작 그 어른들이 전혀 어른답지 않다는 거다. 특히 니콜라의 아빠와 이웃집 블레뒤르 아저씨가 그런데, 마주칠 때마다 알량한 자존심 싸움을 하는 게 니콜라 친구들과 그 수준이 별반 다를 바 없다. 학교주임 부이용 선생도 조프루아의 롤러스케이트를 압수해서 몰래 타다 다리를 다치는 대목을 보면 어른이 참 우스워 보인다. 사실 이렇게 희화화된 어른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희한한 에피소드들이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내 착각일 수도 있겠으나, 이 책을 보니 우리 아들 산하의 마음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산하가 가끔 장난을 심하게 치면 나무랄 때가 있다. 이 때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화를 내거나 울어대서 애가 별난가 싶었는데, 이 책에서 니콜라 패거리는 한 술 더 뜬다. 선생님한테 꼬박꼬박 말대꾸하고, 걸핏하면 친구끼리 치고박고, 엉엉 울고 떼굴떼굴 구르며 꽥꽥 소리를 지르는 게 매 에피소드마다 몇 번씩 등장한다. 니콜라와 친구들이 사냥꾼 공놀이라는 걸 하는 장면을 보면, 공을 맞은 아이는 막 울고 사냥꾼과 아이들은 한바탕 싸운다. 전부 돌아가면서 사냥꾼이 되고 모두 소리지르고 난장판을 만드는데, 어른들에게는 상상만 해도 골치 아픈 무질서한 광경이지만 니콜라는 이런 걸 ‘진짜 끝내주게 재미있다‘고 말한다. 아이들의 심리가 그런 것 같다. 부모들에게 시끄럽고 어지러운 난장판은 수습해야 할 뒤치다꺼리이지만, 아이들에겐 신나는 놀이이자 일탈의 해방 공간이니까. 우리 아들 너무 야단치면 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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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
빌 브라이슨 지음, 박중서 옮김 / 까치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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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소수의 권력 의지? 생산력 증대에 따른 경제 발전? 계급 투쟁에 의한 혁명? 딱 하나만 고르기 힘들 것이다. 역사는 복잡다단한 요소들의 다양한 상호 작용에 의해 짜여진다. 그래도 한 가지 요소를 꼽으라면 ‘개인의 편안함과 행복‘에 대한 욕망이 역사를 추동해왔다고 빌 브라이슨은 말한다. 사실 우리 인생의 대부분은 먹고 자고 노는, 지극히 일상적인 행위들의 반복이다. 역사도 그러하다. 주요 사건들 사이사이는 엄청나게 많은 개인의 일상으로 채워져 있다. 그렇다면 그 일상의 역사를, 일상의 행위를 편안하고 행복하게 영위하기 위해 인류가 걸어온 길을 찾는 것도 의미있을 터이다.
빌 브라이슨은 그가 살고 있는 영국 시골의 오래된 목사관을 역사의 무대로 바꾸어 놓는다. 욕실에서는 위생학의 역사를, 침실에서는 성(性)과 죽음의 역사를, 부엌에서는 요리의 역사를, 탈의실에서는 의복의 역사를 탐구한다. 그야말로 집구석의 세계사인 것이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에서 잘 보여주었듯, 빌 브라이슨은 어마어마한 양의 정보를 흥미진진하게 엮어 독자의 지식욕을 끊임없이 자극한다. 거기에 특유의 능글맞으면서도 은근한 유머가 곁들여지면 500 페이지가 넘는 이 두꺼운 책도 참 쉽게 읽힌다. 빌 브라이슨의 저작 중 보기 드물게 그의 유머를 잘 번역한 책이라는 점도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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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8-03-07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의 모든 것의 역사」가 큰 규모의 역사를 다룬 책으로 기억되는데, 이 책은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역사를 다룬 것 같습니다^^:)

지하철 독서가 2018-03-08 0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규모는 작지만 일상을 사는 우리에겐 훨씬 중요하고 의미있는 역사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