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재즈를 듣게 되었습니다 - 인문쟁이의 재즈 수업
이강휘 지음 / 42미디어콘텐츠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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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정한 건 아니지만, 출퇴근 길이 길어서 오가며 재즈를 듣게 되었다는 저자는 오래 전부터 재즈를 즐겨 듣는 국어 선생님이다. 아이들의 지적 호기심을 높여주는 것이 교육의 목표라는 교육관을 갖고 있다. 다양한 방면으로 지적 호기심을 높여주기 위해서였을까? 국어 선생님이 만든 '재즈 듣는 소녀들'이라는 방과후 교실이 흥미롭다. 재즈를 감상하며, 미국의 역사를 배우고, 인종차별에 대해 공부를 하고, 감상문을 써보는 수업이다. 이상적인 융합교육으로 들린다. 낭만적이다. 뭔가 고상하면서도 공부로 힘든 영혼을 위로해 줄 것 같다.

재즈는 흑인의 음악으로 알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미국으로 노예로 잡혀와 죽도록 일만 해야했던 고달픈 인생에 지친 그들만의 음악. 미국이 사들이기 전 프랑스 식민지였던 루이지애나의 도시 뉴올리언스에서 재즈가 시작되었다. 누구나 아는 루이 암스트롱이 이곳 출신이며, 그의 'what a wonderful world'는 우리나라 광고음악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재즈의 시작은 고달픔을 달래기 위한 흑인들이었지만, 시대에 따라 느릿한 백인의 쿨 재즈도 생기고, 연주뿐 아니라 가사를 입혀 노래하는 재즈 가수도 생기며 다양해진다.

재즈는 1930년대 춤을 추기 위한 스윙 재즈(Swing Jazz)에서 시작하여, 1940년대 즉흥 연주 중심의 비밥(Bebop), 1950년대 서정성이 가미된 백인들의 재즈라 불리는 쿨 재즈(Cool Jazz), 이에 분발한 흑인들의 하드 밥(Hard bop), 그리고, 퓨전재즈(Fusion Jazz)까지 시대에 따라 다양한 종류를 파생시켜 왔다.

스윙재즈의 상징인 '콜먼 호킨스'의 묵직한 테너 색소폰 연주, 비밥의 아버지 '찰리 파커'의 알토 색소폰 연주는 트리오(3중주), 콰트로(4중주), 퀸텟(5중주) 속에서 다양한 악기와 합주를 한다. 쿨 재즈의 왕이라 불리는 '마일스 데이비스'는 오만하고 욕을 달고 사는 사람이었다는데, 그의 트렘펫 연주는 묵직하고 고독하다고 묘사한다. 하드 밥을 대표하는 천재적 트럼펫 연주자 '리 모건' , 드럼의 '아트 블래키' , 알토 색소폰의 '아트 페퍼', 트럼펫의 '클리퍼드 브라운'의 연주를 소개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데이브 브루벡의 Blue Rondo a La Turk와 챗 베이커의 My Funny Valentine이 들어 있는 Chet Baker Sings 앨범곡들을 좋아한다. 쳇 베이커역을 맡은 에단 호크의 영화 <Born to be blue>도 찾아봐야겠다. 앞니 없이 부르는 Born to be blue를 부르는 젊은 날의 쳇 베이커와 마약으로 너무 말라버린 나이든 그의 마지막 인터뷰 모습을 인터넷으로 보니 마음이 아프다.

재즈 연주자이든 가수든 그들의 생애는 재즈의 발생처럼 불우하고 어둡다. 성공해서 스타가 되어도 마약과 술에 빠져 죽어가는 걸 보면 안타깝다. 그 한 예가 빌리 홀리데이다. 빌리 홀리데이에 관한 EBS 지식채널e 영상이 있어 잠시 시청해보니, 20세기 초의 미국에서 흑인에 대한 차별이 가슴 아프다. 그녀가 공연의 마지막에 늘 부른다는 'Strange fruit'은 백인들의 린치로 나무에 매달려 죽은 흑인에 대한 묘사인데 가슴이 먹먹하다. 영화 <그린 북>에서도 보여지는 흑인 차별은 연주자들의 정체성에 혼란을 주고 술과 마약에 빠지게 하지 않았을까 한다. 당시 흑인 연주자들은 백인들을 위해 연주를 하고 무대에서 내려오면, 자신이 연주한 호텔에서는 식당을 이용할 수도, 숙박을 할 수도 없다. 흑인을 위한 호텔을 찾아가야한다. 그린 북은 그 호텔 리스트를 적은 책자이다.

재즈와 판소리를 비교해서 설명하는 부분이 흥미롭다. 판소리에서 더늠(기존 서사에 살을 붙임)을 할 정도면 경지에 오른 소리꾼이어야 하듯, 재즈의 임프로비제이션(improvisation, 즉흥연주)도 이와 같다. 추천한 키스 재럿의 영상을 보니 당황스럽다. 1시간 반이 넘어가는 피아노 즉흥연주를 악보없이 정말 온 얼굴의 표정과 온 몸짓으로 연주한다. 괴이한 소리도 내고, 암튼 독특한 모습이 당황스럽다. 재즈라는 느낌보다 피아노 즉흥연주곡 같다.

책은 한 명 한 명 재즈 연주자를 소개하면서 그들의 사진을 실어 준다. 연주자와 관련된 다큐멘터리나 영화를 소개하거나, 그들의 일생에 대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려준다. 중간중간에 있는 QR코드를 찍어 해당 연주자의 음악을 바로 바로 들어볼 수 있어 편리하다. 또한, 각 연주자들의 앨범을 하나씩 추천하는데, 앨범에 참여한 연주자들의 이름과 악기명을 적어 두었고, 언제 들으면 좋은지 멘트도 달아주었다.

이 곡을 들어보면 어떤 느낌일 것이다라는 작가의 말에 자꾸 QR코드로 연결된 재즈곡을 들으며 책 읽는 속도가 느려진다. 그럼에도 좋다. 거친 트럼펫의 날카로운 재즈부터 피아노가 리드하는 부드러운 재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재즈를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즈를 소개하는데 유머와 위트로 가득차 입가에 미소 띄우며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재즈 대가들의 음악을 들으며 해박해져가는 것은 저절로 따라오는 보너스다. 재즈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꼭 읽으라고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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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위 있고 매혹적인 고대 이집트 - 전 세계의 박물관 소장품에서 선정한 유물로 읽는 문명 이야기 손바닥 박물관 3
캠벨 프라이스 지음, 김지선 옮김 / 성안북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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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손바닥 박물관 시리즈 3권이다. 고대 이집트 유물을 소개한다. 유럽 여러 나라와 미국, 러시아, 이스라엘, 헝가리 박물관에 흩어져 있는 유물 200여 점을 이 책 한 권에서 다 볼 수 있다. 유물의 사이즈도 손바닥으로 표시해서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있게 한 재치도 돋보인다.

고대 이집트는 기원전 5300년전부터 로마지배가 끝나는 서기 395년까지로 근 6천년에 가까운 긴 시간이지만, 그 유물은 잘 보존되지 못한 듯 하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이집트 정부가 1880-1890년에 고고학자들이 발굴한 유물 중 일부를 해외로 가져갈 수 있도록 허가한 것이 큰 이유일 것이다. 그 외에 발굴 중에 손상되거나 망가지는 것도 있었을 것이고, 도굴꾼에 의해 약탈되기도 하였을 것이다. 게다가 이집트의 현대 도시들이 고대 유적지 위에 세워진 것도 안타까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일강을 따라 형성된 이집트 문명이 보여주는 고대 이집트 문화는 신비롭고 현존하는 유물이 이를 설명해준다. 내세신앙을 믿어 정성을 쏟은 미라와 관, 거대한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파피루스에 새겨진 상형문자로 대표되는 고대 이집트의 유물은 상당히 세련된 문명의 발달을 보여주며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게 된다.

책은 연대에 따라 7장으로 나뉜다. 왕조 이전 시대와 초기 왕조시대(BC5300-2700년), 구왕국(BC2700-2055년경), 중기 왕국(BC2055-1550년경), 신왕국(BC1550-1069년경), 제3 중기(BC1069-747년경), 후기(BC747-30년경), 로마시대(BC30-AD395년경)이다.

1장. 왕조 이전 시대와 초기 왕조시대(BC5300-2700년): 나일강을 중심으로 이집트 역사가 시작된다. 기원전 3100년 통일로 초기 왕조시대가 시작된다. 가장 먼저 소개되는 주름잡힌 V자 리넨 옷은 기원전 3천년경 것으로 추정되는데 썩지 않고 보존된 것이 놀랍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직조 의복이다. 또한, 뜨거운 태양을 피하고, 항균기능을 위해 남녀 모두 화장을 했던 이집트인들의 다양한 화장용 팔레트가 소개되는 것도 흥미롭다.

2장. 구왕국(BC2700-2055년경): 이 시기에는 파라오가 태양신 라의 아들이라는 믿음이 등장하였고, 신을 모시는 신전보다 왕의 피라미드 건설에 초점을 두었다. 다양한 조각상과 상형문자가 새겨진 부조들을 볼 수 있다.

3장. 중기 왕국(BC2055-1550년경): 이 시기에는 남부 '테제'를 중심으로 통일하였고, 아문신을 숭배한다. 파라오 조각의 얼굴이 좀더 인간다운 모습으로 변화하고, 피라미드의 규모는 구왕국시기보다 좀 작아졌다. 신화와 의학적 파피루스 문헌(아래 사진 1)이 발견되었다.

4장. 신왕국(BC1550-1069년경): 이 시기는 힉소스인들을 몰아내고, 이집트의 황금기를 맞이한다. 동지중해의 국제무역 중심지가 된다. 태양을 상징하는 오벨리스크와 기둥이 세워진 거대한 신전이 세워지고, 왕의 거주지는 소박하였다. 하트셉수트 여왕, 투트모스3세, 아멘호테프3세, 람세스2세와 같은 친숙한 파라오들의 시대다. 유리는 사치를 상징하는데 향유를 담은 병들이 발견되고, 샌들이 온전하게 발견된다. 거의 완벽하게 보존된 투탕카멘의 무덤과 도굴로 사형시킨 남자들에 관한 기록이 파피루스에 남아있다. 이집트 카이로 박물관에 있는 '투탕카멘의 미라 가면(아래 사진 2)'은 보존 상태가 우수하다.

5장. 제3 중기(BC1069-747년경) : 이 시기에 이집트는 정치적으로 분열되어 지방분권화가 나타나고, 나일강의 경로 변경으로 수많은 조상(조각상)들이 북동부의 타니스 지역으로 옮겨가 재활용되었다. 신왕국을 황금기라 한다면, 이 시기를 '은시대'라 한다. 리비아 왕들은 타니스에 신왕국의 황금시대를 모방한 예술형식과 관에 은을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미라화 기술이 정점에 이르고, 관 디자인에 변화가 일어났다. 관을 재활용하는 풍습이 유행해 아메넴헤트 왕자의 관(아래 사진 3)을 보면 시커멓게 지우고 아매넴헤트의 이름을 써넣은 흔적을 볼 수 있다.

6장. 후기(BC747-30년경): 이 시기는 쿠시인의 도래를 시작으로 외세의 지배가 시작된다. 천 년 가까이 누비아인, 아시리아인, 페르시아인, 그리스인과 로마인들의 통치를 받게 된다. 다문화적 성격을 볼 수 있다.

7장. 로마시대(BC30-AD395년경): 기원전 31년 악티움 전투에서 클레오파트라가 패배한 후 이집트는 로마의 지배하에 들어간다. 많은 유물이 로마로 이송되었고, 영국의 페트리는 상당한 양의 로마 미라와 미라 초상화를 발견하였다. 이집트는 대체로 기독교화되었고, 파라오의 사회 관습은 이슬람시대로 이어졌다.

이 책은 무엇보다 유물 사진의 해상도가 좋아 생생한 점이 좋다. 또한, 고대 이집트 역사를 7개의 시기로 구분하고, 각 장의 초반에 정치적, 문화적 특징을 간단히 소개하고 있어 시대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게 하였다. 각 유물에 대한 설명도 비교적 흥미로워서 재미있는 박물관 해설자의 이야기를 듣는 듯 읽어 나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기 전 이집트 역사 개관을 인터넷을 통해 어느 정도 이해하고 책을 읽기를 권한다. 그러면, 좀더 친근하게 고대 이집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쉬운 점은 번역이 매끄럽지 못하다. 문단 전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지 못해 반복해서 여러 번 읽다보니 흐름이 끊기고, 내용연결이 부자연스러워 이해가 힘든 부분이 많다.

고대 이집트 유물에 대한 시대별 설명이 궁금하다면 추천한다.


의학적 파피루스

투탕카멘의 미라 가면

아메넴헤트 왕자의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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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스쿨 인도네시아어 OPI - 4주 만에 끝장 내기
하영지 지음 / 시원스쿨닷컴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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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Oral Proficiency Interview)는 일상생활에서 해당언어(인도네시아어)를 얼마나 구사할 수 있는가를 측정하는 전화 인터뷰 시험이다. 전반부는 자기소개, 가족, 회사, 취미, 관심사에 관한 질문과 후반부는 롤 플레이로 구성되어 있다. 시험시간은 30분이다. 10개의 등급 중에서 이 책은 인도네시아 출장 시 요구되는 IL(Intermediate Low)과 주재원 및 취업에서 요구되는 IM(Intermediate Mid)를 목표로 한다.

책은 4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Part1은 Basic question으로 자기소개부터 날씨표현까지 기본 질문에 대한 답을, Part2는 Role play로 예약하고 컴플레인하는 등의 상황연습을, Part3은 Issue question으로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현안과 의견 말하기 연습을, Part4는 이 시험이 끝나고 무엇을 할것인지에 대한 마무리 질문연습으로 되어 있다. 각 파트는 필수어휘, 패턴, 문법으로 기초를 다지고, IL, IM타겟 별로 예시를 공부한 후 실전 연습하기로 나만의 답안을 준비할 수 있도록 했다. IL과 IM의 차이는 한 문단 정도를 더 자세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정도이다. IL이 한 문단 정도를 말할 수 있다면, IM은 두 문단은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문법'은 이미 회화가 어느 정도 되는 중급 학습자들을 위한 교재이므로 ber동사나 me동사와 같은 동사 변화는 숙지한 상태이어야한다. 왜냐하면, 교재에서 소개하는 필수 문법은 주로 접속사 위주이고, 뒤로 갈 수록 문법의 분량이 줄어들면서 두 단어의 차이, 단어들끼리의 뉘앙스 차이, 자주 쓰는 부사와 전치사에 대한 간단한 문법소개가 전부다. '필수 어휘'는 각 주제에 맞게 정리되어 있으나, 충분하지는 않아 보인다. 자신의 스크립트를 쓰려면 더 많은 단어를 알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OPI시험을 위한 교재이지만, 실재 현지인과 회화에서도 바로 사용할 수 있어서 실용적이다. 이를 테면, 파트2 Role play는 실재로 예약하고, 구매하고, 불만을 표시할 때 사용할 수 있는 회화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인도네시아 현지인과 양국의 현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면, 뉴스를 찾아 읽거나 본 것을 이야기해야하는데, 파트3에서 한국의 남북문제, 한류와 인도네시아의 자연재해와 최근 진행되고 있는 수도이전에 관한 예시가 잘 정리되어 있어서 이용해 볼 수 있겠다.

책 구성이 깔끔하고 보기 편하다. 모든 파트가 같은 구조로 반복되기 때문에 심플하면서 편하게 공부할 수 있도록 하였다. 다양한 예시와 연습문제를 통해 나만의 스크립트를 쓸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어서 시험을 처음 치루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구체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다. 단지 mp3파일은 명시된 홈페이지에서 찾을 수가 없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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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은 어떻게 권력이 되었는가 - 우리를 교묘하게 조종하는 경제학에 관한 진실
조너선 앨드리드 지음, 강주헌 옮김, 우석훈 해제 / 21세기북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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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경제공부를 하고, 우리에게 '88만원 세대'의 저자로 알려진 우석훈님의 서문이 시니컬하다. 치과의사만도 못한 경제학자에 대한 평가에, 자조 섞인 농담으로 대학에서 경제는 안 가르치고 경제학만 가르치는가?라는 물음이 현재 경제학의 위치를 비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 공군 산하 비밀 연구조직인 랜드(Research ANd Development: RAND) 연구소의 인턴들이 노벨 경제학상을 줄줄이 수상하였다는 조롱섞인 비난도 한다. 제목에서부터 심각해 보이는 이 책의 무거움이 초장에서 흥미를 갖게 해준다. 사실 이 책의 원제는 'How Economics Corrupted Us(경제학이 우리를 어떻게 부패시켰는가)'다. 경제학에 대해 좋은 이야기가 나오지 않으리라는 예감이다.

저자 조너선 앨드리드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토지경제학과 강사다. 이렇게 낯선 외국 학자의 책을 읽게 된 것은 저자가 이 책을 쓰는데 장하준 교수의 영향을 받았다는 언급 때문이다. 저자는 장하준 교수가 경제이론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언어로 표현해야한다든가, 뜬구름잡는 이론보다 현실의 구체적 상황에 역점을 두어야한다는 경제학자의 자성적 태도에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또한, 이 책을 쓰게 된 것은 대니얼 로저스의 <균열의 시대>와 리처드 턱의 <무임승차>를 읽고서라고도 밝힌다.

책은 10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1장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2장 누구도 믿지 마라, 3장 욕망이 정의를 이기다, 4장 민주주의는 불가능한가?, 5장 무임승차의 경제학, 6장 경제학 제국주의의 탄생, 7장 누구에게나 가격이 있다, 8장 불가능한 사건의 가능성, 9장 왜 불평등해졌는가?, 10장 평등의 경제학을 위하여.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경제인간이다. 이는 현실세계의 인간과 전혀 닮지 않았는데, 인간은 오류가 있고, 경험과 직관, 충동, 타성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이다. 또한 의사결정에 있어 도덕적으로 결여된 효율성의 최대화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 인간이다.

이 책은 불평등의 격차를 가속화시키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결함을 파헤친다. 50년 전 '하이에크'의 작은 정부와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경제이론을 영국과 미국의 대처와 레이건이 수용하면서 1980년대 이래 신자유주의 경제학이 세력을 키워나가게 되었다. 신자유주의의 요지는 소득과 재산의 불평등은 능력과 재능의 불평등에서 기인한다는 것인데, 유능한 인재에게 경제적 보상이 돌아가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사회에 팽배하게 된다.

하이에크를 잇는 미국 '시카고 학파'의 프리드먼과 게리 베커의 제국주의 경제학은 마치 제국주의가 식민지를 개척하듯이 경제학이 경제학 이외의 학문에도 참견을 하고, 나아가 일반인들의 사고방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그들의 경제학은 합리성을 강조하므로, 도덕적 상식과 어긋나게 행동한다는 점에서 사람들을 타락시킨다. 게다가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을 의식조차 하고 있지 못하다. 왜냐하면 경제학 이론은 과학을 표방하고, 수학적 자료를 이해하여야 하므로, 이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경제학자들만이라는 오만함 때문이다.

베커의 영향을 받아 경제학자가 새로운 주제를 광범위하게 다룬 행동경제학자들의 책들 <괴짜경제학>, <경제학 콘서트>, <경제학 콘서트 2>가 인기를 끌었다. 이러한 책들은 경제학이 거의 모든 인간의 행동을 규정하는데 사용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괴짜 경제학>에서 많이 언급되었던 '인센티브'는 동기부여를 의미하나, 이 것이 인간의 모든 행동을 설명할 수 는 없다. 다양한 행동의 동기에는 사랑과 책임감 의무감일수도 있고, 호기심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금전적 인센티브는 잘 못 사용하게 되면, 내재적 동기 중요성을 잃게 한다. 이를 테면, 아이에게 책 한권을 읽으면 돈을 준다는 방식은 부모가 아이에게 글을 깨우치려는 의도에서 주는 인센티브지만, 아이는 책 읽는 즐거움이 '일'이 되고, 금전과 수고를 비교한 후 힘들다고 생각하면, 금전적 인센티브를 포기하여 책읽기를 망치게 된다. 행동경제학에서 주장하는 인센티브 이론을 조심히 적용해야하는 이유다.

무임승차의 경제학은 또 다른 문제를 갖고 있다. 무임승차란 승차권을 사지 않고 기차를 타는 것이다. 맨서 올슨은 1965년 <집단행동의 논리>에서 '당신의 몫을 하든 않든 달라지는 게 없다면 쓸데 없는 희생은 필요없다. 무임승차는 부도덕한 게 아니라 합리적 행동이다'라고 하는데, 이 주장은 옳지 않다. 내가 내몫을 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이 대신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이를 테면, 내가 하지 않아도 남들이 투표를 할 것이므로 그 들에게 무임승차한다. 그러나, 내 한 표가 원하는 후보를 당선시킬 수도 탈락 시킬수도 있음을 깨달아야한다. 작은 기여는 중요하고, 그 기여의 간접적인 영향도 중요하다.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인간의 도덕적 가치관을 배제하고, 경제적 합리성에 집착했다. 범죄가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임을 이해하지 못하는 베커의 사고와 기업의 유일한 책임은 이익을 극대화하는 프리드먼의 사고가 결합되면, 2016년 폭스바겐이 디젤 자동차 배출가스 조작도 이해된다. 경제학자들의 윤리의식 점검이 필요한 이유다. 결국 경제학자는 현실에서 동떨어진 실험실에서 이론을 만들어내기보다 치과의사처럼 현실세계에서 직면하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집중해야한다. 그리고, 수학적으로 표현하지 말고 쉬운 언어로 설명해야한다.

50년 전부터 현재까지의 경제사를 볼 수 있는 책이다. 대표적 경제학자들의 주장을 비판적으로 설명한다. 스스로 경제학자면서도 주류 경제학의 흐름에 있어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합리성'보다 '윤리의식'의 기준을 중시한다. 앞으로의 경제학의 방향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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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를 걷는 여자
거칠부 지음 / 더숲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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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를 다녀오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간단히 준비해서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므로, 무사히 다녀온 그들을 존경한다. 나도 일생에 한 번은 가보고 싶은 곳이다. 그래서 늘 히말라야 책이 나를 부른다. 히말라야가 부르면 더 좋을텐데 말이다.

체계적으로 산을 타온 저자의 이력이 눈길을 끈다. 20대에 등산학교에서 독도법, 배낭 꾸리는 법, 야영, 암벽 기본을익히고, 홀로 2박3일 야영산행을 한다. 산도 무섭지만 사람이 무서운 나이였을텐데, 여자 혼자 대단하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주말마다 산행을 하고, 결국 17년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나이 서른 아홉에 히말라야에 가기로 한다. 90일간의 긴 트레킹 후 다시 돌아와 삭발을 하고, 다시 히말라야 횡단에 2년여간을 끝냈다. 한국인 최초의 히말라야 횡단이라고 한다. 무엇이든 최초는 그 영광만큼 위험과 고통이 따를텐데 무엇이 그렇게 저자를 끌어당겼을지 흥미가 밀려온다. 이책은 2018년 봄과 가을에 히말라야 오지를 걸으며 쓴 글과 사진으로 구성되어있다.

10개의 챕터는 10개의 트레킹 코스별로 정리하였는데, 제목만 봐도 두렵다.

챕터1 17시간 30분 만에 눈속에서 탈출: 안나푸르나 3패스,

챕터2 낙석의 공포: 랑탕 간자 라-틸만 패스,

챕터3 길을 잃는 즐거움:마칼루 몰룬 포카리,

챕터4 위험하고 환상적인: 마칼루 하이패스(3콜),

챕터5 가이드와의 갈등: 쿰푸 2패스 1리,

챕터6 최후의 오지 무스탕: 무스탕 테리 라-사리붕 라,

챕터7 다시 안나푸르나로: 아나푸르나 나문 라,

챕터8 구르자 히말을 바라보며:잘자라 패스-도르파탄,

챕터9 춤고, 배고프고: 하돌포 카그마라 라,

챕터10 108호수를 찾아서:고사인 쿤드 18호수.

목차만 읽어도 숨이 차다. 1장부터 5장까지는 트레킹 난이도가 상당히 높다. 4월에 시작된 트레킹인데 추위를 견뎌야하고, 눈으로 덮인 사막과도 같은 길이 끝없이 이어지고, 고지를 오르락 내리락하며 없는 길을 새로 만들어 가야하고, 가느다란 철사줄에 의지해 빙벽을 내려와야하는 것이 한바탕 사투다. 막연히 히말라야를 상상하며 생길 수 있는 일들이 펼쳐진다. 그러나, 히말라야가 보여주는 모습은 저자의 호기심과 궁금함을 채워주고도 남는다. 6장의 무스탕을 가기 전 60일간 파키스탄에서 빙하 트레킹을 한다. 다시 시작되는 히말라야 트레킹은 전반에 비하면 가이드 없이 비교적 수월해보인다. 그러나 히말라야는 히말라야다. 유명한 안나푸르나의 장관도 사진으로 그 느낌을 그대로 전달 받을 수 있다.

히말라야는 인도, 파키스탄, 네팔에서 접근 가능하다. 저자는 네팔의 히말라야를 선택했다. '네팔은 다민족, 다문화국가로 100여개의 민족이 공존하고 있다. 네팔어가 공용어지만, 민족만의 언어를 갖고 있다. 또한 이름이 있는 신들만 300이 넘는다. '나마스테'라는 네팔의 인사말에는 '내 안의 신이 당신 안의 신께 인사드립니다'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46).' 표고차가 큰 네팔은 높이에 따라 봄부터 겨울까지 모두 존재한다.

10개의 코스 중에 동행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거의 혼자 걷는다. 동행이 있더라도, 각자 자기 페이스대로 걸어가기 때문에 따로 가는 풍경도 희한하다. 보통 스테프는 가이드 한 명과 셰르파 한 명, 짐을 지는 포터 여러 명으로 구성된다. 저자는 믿을 만한 셰르파 '겔젠'에게 많이 의지하고 신뢰를 하는데, 간혹 지도와 눈 앞에 펼쳐지는 길이 다르면, 신뢰하는 사람의 말을 믿어야하기 때문이다. 돈이 들더라도 어느 정도 능력이 있는 스테프를 구해야하는 이유다.

하산 거리만 30km, 13시간을 걷는다는 글을 읽으며 보통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왜 갈까? 저자에게 물어보면, 저자는 군데군데에서 '힘들다고 하면서도 다시 가게 하는 이유는 무얼까? 고개를 넘으면 바뀌는 풍경이 궁금해서 히말라야를 걷는다'라고 대답해준다. 그러면서, '일생에서 한 번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전부를 바쳐보는 것도 좋다(60)'고 용기를 북돋아 준다. 히말라야에서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고 고민해서일까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이 정리된 글을 보면서 많이 공감한다. '나는 욕을 먹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내키는 대로 살고 싶다. 어차피 뭘 하든, 누구한테라도 욕을 먹게 되어 있다. 관심에 굶주린 사람처럼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지 않다. 나다움을 지니면서, 적당히 욕도 먹어가면서 그렇게 살고싶다(279)'라고.

히말라야 트레킹에 대해 새로 알게 된 것들도 많다. 천천히 걸으면 고산병 증상이 없다든가, 네팔인들의 시력은 놀랄만큼 좋아서, 멀리서 누가 오는지 금방 알아챈다. 그리고, 의외의 반찬이 등장하는데, '젓갈'이다. 그저 신기하다. 물론 신라면은 현지인에게도 인기가 있다고 한다. '환상방황'이란 계속 전진하고 있지만 실제로 같은 곳을 계속 맴도는 것이다. 또한, 구름은 3천500m이상은 올라오지 않아서, 그 위에서는 구름바다를 보며 걸을 수 있단다. 무엇보다, 현지 사장의 말이 여운을 남긴다. '유럽인을 상대하던 가이드는 한국인과 다니기 힘들지만, 한국인을 상대하던 가이드는 어느 나라 사람과도 같이 다닐 수 있다'고. 뭔가 설명할 수는 없지만, 한국인이 갖고 있는 어떤 까다로움이 있는 것이 아닐까 여운을 남긴다.

정성스러운 책이다. 각 챕터마다 지도와 진행경로는 물론이고, 각 코스 별 간단한 특징과 주의사항을 두었다. 이 코스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이자 자신을 위한 일기인 듯하다. 사진은 정말 장관이다. 흔하게 볼 수 있는 히말라야의 모습이 아니다. 사진을 보면서 감탄하기는 처음이다. 많은 사람들이 가지 않는 오지 트레킹이어서 이런 장관을 볼 수 있을까 싶은데,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이미 그 가치를 다하고 있다. 술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어서 히말라야가 궁금하다면 한바탕 읽어볼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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