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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재즈를 듣게 되었습니다 - 인문쟁이의 재즈 수업
이강휘 지음 / 42미디어콘텐츠 / 202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작정한 건 아니지만, 출퇴근 길이 길어서 오가며 재즈를 듣게 되었다는 저자는 오래 전부터 재즈를 즐겨 듣는 국어 선생님이다. 아이들의 지적 호기심을 높여주는 것이 교육의 목표라는 교육관을 갖고 있다. 다양한 방면으로 지적 호기심을 높여주기 위해서였을까? 국어 선생님이 만든 '재즈 듣는 소녀들'이라는 방과후 교실이 흥미롭다. 재즈를 감상하며, 미국의 역사를 배우고, 인종차별에 대해 공부를 하고, 감상문을 써보는 수업이다. 이상적인 융합교육으로 들린다. 낭만적이다. 뭔가 고상하면서도 공부로 힘든 영혼을 위로해 줄 것 같다.
재즈는 흑인의 음악으로 알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미국으로 노예로 잡혀와 죽도록 일만 해야했던 고달픈 인생에 지친 그들만의 음악. 미국이 사들이기 전 프랑스 식민지였던 루이지애나의 도시 뉴올리언스에서 재즈가 시작되었다. 누구나 아는 루이 암스트롱이 이곳 출신이며, 그의 'what a wonderful world'는 우리나라 광고음악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재즈의 시작은 고달픔을 달래기 위한 흑인들이었지만, 시대에 따라 느릿한 백인의 쿨 재즈도 생기고, 연주뿐 아니라 가사를 입혀 노래하는 재즈 가수도 생기며 다양해진다.
재즈는 1930년대 춤을 추기 위한 스윙 재즈(Swing Jazz)에서 시작하여, 1940년대 즉흥 연주 중심의 비밥(Bebop), 1950년대 서정성이 가미된 백인들의 재즈라 불리는 쿨 재즈(Cool Jazz), 이에 분발한 흑인들의 하드 밥(Hard bop), 그리고, 퓨전재즈(Fusion Jazz)까지 시대에 따라 다양한 종류를 파생시켜 왔다.
스윙재즈의 상징인 '콜먼 호킨스'의 묵직한 테너 색소폰 연주, 비밥의 아버지 '찰리 파커'의 알토 색소폰 연주는 트리오(3중주), 콰트로(4중주), 퀸텟(5중주) 속에서 다양한 악기와 합주를 한다. 쿨 재즈의 왕이라 불리는 '마일스 데이비스'는 오만하고 욕을 달고 사는 사람이었다는데, 그의 트렘펫 연주는 묵직하고 고독하다고 묘사한다. 하드 밥을 대표하는 천재적 트럼펫 연주자 '리 모건' , 드럼의 '아트 블래키' , 알토 색소폰의 '아트 페퍼', 트럼펫의 '클리퍼드 브라운'의 연주를 소개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데이브 브루벡의 Blue Rondo a La Turk와 챗 베이커의 My Funny Valentine이 들어 있는 Chet Baker Sings 앨범곡들을 좋아한다. 쳇 베이커역을 맡은 에단 호크의 영화 <Born to be blue>도 찾아봐야겠다. 앞니 없이 부르는 Born to be blue를 부르는 젊은 날의 쳇 베이커와 마약으로 너무 말라버린 나이든 그의 마지막 인터뷰 모습을 인터넷으로 보니 마음이 아프다.
재즈 연주자이든 가수든 그들의 생애는 재즈의 발생처럼 불우하고 어둡다. 성공해서 스타가 되어도 마약과 술에 빠져 죽어가는 걸 보면 안타깝다. 그 한 예가 빌리 홀리데이다. 빌리 홀리데이에 관한 EBS 지식채널e 영상이 있어 잠시 시청해보니, 20세기 초의 미국에서 흑인에 대한 차별이 가슴 아프다. 그녀가 공연의 마지막에 늘 부른다는 'Strange fruit'은 백인들의 린치로 나무에 매달려 죽은 흑인에 대한 묘사인데 가슴이 먹먹하다. 영화 <그린 북>에서도 보여지는 흑인 차별은 연주자들의 정체성에 혼란을 주고 술과 마약에 빠지게 하지 않았을까 한다. 당시 흑인 연주자들은 백인들을 위해 연주를 하고 무대에서 내려오면, 자신이 연주한 호텔에서는 식당을 이용할 수도, 숙박을 할 수도 없다. 흑인을 위한 호텔을 찾아가야한다. 그린 북은 그 호텔 리스트를 적은 책자이다.
재즈와 판소리를 비교해서 설명하는 부분이 흥미롭다. 판소리에서 더늠(기존 서사에 살을 붙임)을 할 정도면 경지에 오른 소리꾼이어야 하듯, 재즈의 임프로비제이션(improvisation, 즉흥연주)도 이와 같다. 추천한 키스 재럿의 영상을 보니 당황스럽다. 1시간 반이 넘어가는 피아노 즉흥연주를 악보없이 정말 온 얼굴의 표정과 온 몸짓으로 연주한다. 괴이한 소리도 내고, 암튼 독특한 모습이 당황스럽다. 재즈라는 느낌보다 피아노 즉흥연주곡 같다.
책은 한 명 한 명 재즈 연주자를 소개하면서 그들의 사진을 실어 준다. 연주자와 관련된 다큐멘터리나 영화를 소개하거나, 그들의 일생에 대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려준다. 중간중간에 있는 QR코드를 찍어 해당 연주자의 음악을 바로 바로 들어볼 수 있어 편리하다. 또한, 각 연주자들의 앨범을 하나씩 추천하는데, 앨범에 참여한 연주자들의 이름과 악기명을 적어 두었고, 언제 들으면 좋은지 멘트도 달아주었다.
이 곡을 들어보면 어떤 느낌일 것이다라는 작가의 말에 자꾸 QR코드로 연결된 재즈곡을 들으며 책 읽는 속도가 느려진다. 그럼에도 좋다. 거친 트럼펫의 날카로운 재즈부터 피아노가 리드하는 부드러운 재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재즈를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즈를 소개하는데 유머와 위트로 가득차 입가에 미소 띄우며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재즈 대가들의 음악을 들으며 해박해져가는 것은 저절로 따라오는 보너스다. 재즈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꼭 읽으라고 권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