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를 바꾼 물고기 이야기 - 개정판
오치 도시유키 지음, 서수지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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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이 책은 청어와 대구의 어업사를 중심으로 다룬다." 15

책은 총 6장으로 되어있다. 1, 2장은 청어에 관해 3, 4장은 대구에 관해, 그리고 5, 6장은 청어와 대구가 기독교에 미친 영향에 대해 다룬다.

육식만 했을 것 같은 서양은 18세기 농업혁명 이후에야 고기가 주요 음식으로 자리한다. 그 이전에는 생선 소비량이 훨씬 많았는데, 카톨릭 교회가 한해의 절반을 단식일로 지정하였는데, 고기는 금지하였지만, 생선은 허용했기 때문이다. 청어와 대구가 그 중심에 있었다. 회유어인 청어는 경로를 바꾸면서 유럽 국가의 흥망성쇠에 영향을 주었다. 13-15세기는 발트해 연안 도시 중에서 독일 뤼베크를 중심으로 결성한 한자동맹이 강력히 부상하다가, 15세기 이후로는 청어가 북해 연안으로 경로를 바꾸자 네덜란드가 헤게모니를 쥐게 된다. 반면, 대구는 회유어가 아니므로 같은 장소에서 잡히는데, 바이킹이 활동하던 시대부터 말린 대구로 장거리 항해를 가능하게 하였다. 17세기에 잉글랜드의 신항로 개척으로 신대륙을 발견하게 되는 원동력이었고, 미국의 독립에 영향을 미쳤다.

청어가 중요해진 것은 중세 13세기 기독교가 확산되며 '피시데이'가 자리잡으면서이다. 인구도 급증하며 청어수요가 증가했다. 독일 뤼베크를 중심으로 한 '한자동맹'은 청어의 가공,보존, 운송수단을 개발하고, 뤼베크는 북해와 발트해 무역 중계 도시로 발전했다. 그러나 15세기 중반 청어가 북해로 이동하며 네덜란드가 급부상한다. 네덜란드는 연안으로 몰려오는 청어를 잡는 것이 아니라 배를 타고 나가 청어떼를 앞질러 조업을 했다. 기존 코그선 대신 새로운 바위스선을 개발해서 갑판에서 바로 염장을 해서 신선도를 높이고 적재량도 늘렸다. 암스테르담은 '청어 뼈 위에 세워진 도시'이고, 16세기말 막대한 부를 쌓은 네덜란드 상인들은 동아시아 무역을 독점하기 위해 '동인도회사'를 세운다.

대구는 스톡피시로 유명한데, 노르웨이에서 처음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으로, 소금을 사용하지 않고 장시간볕에 말려 망치로 두드린 다음 물에 불려 요리한다. 사진을 보니 우리나라 덕장의 명태 같다. 이렇게 말린 대구(스톡피시)는 10세기에 장거리 항해를 했던 바이킹에게 적합한 식량이었고, 염장 대구와 함께 선원들에게 단백질 공급을 통해 장거리 신항로 개척을 가능하게 했다.

신대륙 미국에 관한 초기 역사가 흥미롭다. 잉글랜드에서 종교의 자유를 찾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온 사람들은 종교적 신념만 있었지, 할 수 있는 것도, 가지고 온 것도 변변치 않았다. 신대륙의 넓은 토지와 대구가 가득한 바다를 두고서도 굶어 죽어갔다. 소수만 간신히 살아남았는데, 원주민의 도움으로 첫 추수감사절을 지내게 된다. 인구가 늘어나고 대구잡이로 수익이 늘어나자 노예를 사서 설탕, 담배 플렌테이션을 한다. 뉴잉글랜드, 서인도제도, 서아프리카를 연결하는 삼각무역을 하고, 말린 대구로 흑인노예를 사는데 지불했다. 셰익스피어는 <템페스트>에서 말린대구를 '부정한 생선'으로 은유하며 가혹한 식민정책을 비판했다.

네덜란드가 청어잡이로 큰 수익이 나자 국력이 강해지며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했듯이, 미국은 대구로 수익을 내며 잉글랜드로부터 독립한다. 영국인은 젠틀맨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잉글랜드 어민은 그렇지 못했다. 그들의 횡포는 신대륙 뉴잉글랜드에서도 변함없이 거칠었고, 통제되지 않았다. 이러한 공격적인 성향은 프랑스와 식민지를 두고 벌이는 경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나아가 세수를 늘리려는 잉글랜드 본국에도 격렬히 저항해서, 결국 독립전쟁으로 이어졌고, 승리했다. 잉글랜드 어민의 터프함이 미국의 바탕이 된 셈이다.

기독교와 물고기는 긴밀한 연관이 있다. 에덴동산에서 과일과 허브만 먹던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으며 쫓겨났다. 기독교는 단식을 통해서 에덴동산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카톨릭교는 금식기간에는 성욕을 일으키는 '고기' 는 금하고, 성욕을 누르는 '생선'은 허용했다. 이에 따라 생선의 수요가 확대되고 어업이 발달하고 해군력이 상승하였다. 반대로 종교개혁으로 피시데이를 폐지하자 어업이 쇠퇴하고 해군력이 약해지게 된다.

저자가 역사학자도 아니면서 하나의 주제를 잡아 여러 도서와 논문을 읽고 책을 냈다는 것이 대단하다. 물고기에 의해 국가의 흥망성쇠와 헤게모니의 변화를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물고기가 어떻게 세계사를 바꾸겠냐는 의심스러운 마음으로 시작하지만, 읽다보면 저자의 이야기에 푹 빠져서 엄연한 사실임을 인정하게 된다. 책 속에 처음 알게 되는 지식이 많을 뿐더러, 문체도 가벼워서 읽기 편하다. 어렵지 않게 흥미를 유지하며 읽을 수 있는 책이 많지 않은데 그런 면에서 매우 좋은 책이다.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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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 하다 앤솔러지 1
김유담 외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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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 '하다' 시리즈 중 '걷다'를 주제로 한 앤솔러지다. 앤솔러지는 여러 작가가 하나의 주제로 쓴 글을 모은 작품집으로 주로 단편이 수록된다. 5명의 작가(김유담, 성해나, 이주혜, 임선우, 임현)의 작품 5편( '없는 셈 치고', '후보', '유월이니까', '유령 개 산책하기', '느리게 흩어지기')을 담았다.

'걷는다'는 것을 제목에서 정면으로 드러내는 '후보'나 '유령 개 산책하기'와 같은 작품도 있지만, 대부분 작품 속에 스며있다. 뒤로 걸으면서 옛 일을 회상하는 '후보'와 죽은 개의 유령과 산책하면서 개 유령이 보이는 사람과의 만남 이야기인 '유령개 산책하기'를 비롯해서, 고아로 고모 가족과 함께 살지만 고모에게 사랑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없는 셈 치고', 방패연을 죽은 아내라 여기는 남자를 우연히 만나면서 깨닫게 되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 '유월이니까', 산책이 한자로 '느리게 흩어지기'라는 뜻이고 제목으로 삼은 작품까지 모두 참신하고 독특하다.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김유담 작가의 '없는 셈 치고'이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선화를 고모 가족이 받아준다. 동갑의 고모 딸 민아는 일탈을 일삼으며 사고를 치는 반면 선화는 어른들이 바라는대로 모범적으로 자란다. 어려서 고모를 엄마라 부르고 싶어했지만 고모는 냉정하게 아니라고 정정해준다. 그런 고모가 나이들어 유방암에 걸리자 행방을 알 수 없는 민아 대신 선화가 고모를 돌본다. 병원에서 선화가 딸이냐는 질문에 고모는 정정하지 않는다. 엄마없는 아이라는 것을 들키기 싫었듯, 고모도 자신의 처지를 들키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늘 거리를 두는 고모를 보면서 선화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서로의 입장이 바뀌자 고모처럼 하지 않는 선화의 마음이 대견하다.

'걷는다'는 행동이 밝고 역동적인 것과는 달리 수록된 작품들은 상실과 외로움을 표현한다. 단편이지만 캐릭터를 통해 각기 다른 작품 속에서 상실과 외로움을 극복하는 과정이 다양하게 그려진다. 고모에게 엄마의 사랑을 구했지만 받지 못한 선화, 퇴물이 된 듯한 철물점 주인 근성, 아이를 잃은 아내를 이해하지 못한 남편, 죽은 개를 잊지 못하는 화자, 불륜과 불법을 버젓이 저지르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는 명길. 단절된 사회 속에서 잠시 남의 이야기를 들은 듯, 그 이야기에 어떻게 조언을 해 줘야 좋을지 생각에 잠기게 하는 작품들이다

여러 작가들이 '걷다'라는 하나의 주제를 어떻게 풀어나가는지 궁금하다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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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미래 - 거대한 변곡점, 마지막 부의 기회를 잡아라
박석중 지음 / 페이지2(page2)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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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신한투자증권 리서치센터와 미래에셋 중국법인을 거쳐 글로벌 전략을 맡아왔다. 거시경제부터 개별 산업과 기업분석까지 정통하다. '삼프로 TV'를 통해 차분하게 자신의 통찰을 설명하는 금융인으로 만나보곤 했다. 지금이 거대한 변곡점의 시기이며 마지막 부의 기회라는 부제가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책은 3부로 되어있다. 1부 미국주도의 세계경제질서의 변화, 2부 골든타임의 문턱에 있는 한국의 미래, 3부 AI 기술혁신을 설명한다.

30년 주기로 변화를 겪는 미국은 변곡점에 제조업 약화, 인플레이션, 국제정세불안과 지정학적 위험, 새로운 기술혁신이 나타난다. 현재가 그렇다. 이러한 변곡점에 있는 트럼프 정부는 새로운 경제질서를 제시하며 주도권을 유지하려한다. 기존 글로벌 공급망을 해체하고, 미국이 제조에 뛰어든다. 중국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저부가가치의 제조에서 벗어나 미국의 영역으로 확대를 꾀하고 있다. 그 사이에서 중간재를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한 한국에게는 위협적인 상황이다.

한국은 과거 일본의 선례를 검토하고, 기업의 혁신을 꾀해야 할 때이다. 일본은 플라자협의 후 좀비기업의 구조조정과 혁신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결과 잃어버린 30년을 보내야했다. 정부의 재정 확장과 구조개혁, 제조업 고도화에 성공한 아베노믹스는 일본이 장기불황에서 탈출하게 했다. AI가 5차 산업혁명으로 향후 50여년을 지배할 것이다. 우리 기업은 과거에 잘했던 범용산업의 구조조정과 AI 기술혁신을 통해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구조개혁이 필요하다.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는 미국과 중국처럼 정부주도하에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구조전환이 필요하다. 이재명 정부의 경제정책 아젠다가 AI, 산업혁신, 신재생에너지, 외교/안보, 금융정책에 걸쳐 있으므로, 실행 과정을 지켜볼 일이다.

개인 투자자로서 AI 생태계를 잘 이해하고 투자할 것을 조언한다. 장기파동을 타는 기업은 현재 경제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고 성장한다.엔비디아, 테슬라, 마이크로소프트는 미국 고용지표, 연준 통화정책, 트럼프의 관세 영향을받지 않는다.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현재 AI 주도의 주식시장은 강세장 2년차 후반부이고 향후 2년 이상의 강세장 여력이 남아있을 수 있다. 주도주의 교체가능성을 고려한다. 초기에는 반도체, 전력 등 데이터센터 중심의 종목이 앞으로는 AI보급률이 확대되면 응용, 활용기업들이새로운 수혜주가 될 것이다. 개별기업보다 미국과 중국 지수추종하는 투자와 테마형 ETF로 수익을 극대화할 것을 조언한다.

저자의 통찰력을 바탕으로 한 여러 조언이 의미심장하다. 해외생산기지 구축은 불가피해도 핵심공정과 고도화 설비는 국내에 유치할 수 있어야한다. 부동산에 편중된 가계자산을 금융시장으로 대전환시키려면 부동산 세제 인상보다 금융자산 세제감면이 더 강력한 유인책이다. 놀라운 사실은 서울 부동산보유수익률이 미국국채 장기 수익률과 큰 차이가없으며 주식보다 현저히 낮다는 것이다.

세계 속에서 한국의 위치를 이해하고, 앞으로 정부, 기업, 가계가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지 일깨워주는 책이다. 미국의 패권 쇠락으로 트럼프가 벌이는 관세정책의 바탕을 이해하고 싶다면, 강력해진 G2 중국이 생각보다 AI 기술혁신에서 어떻게 성공을 거두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정부차원의 미래산업에 집중할 방법이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필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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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사 바틀비 열린책들 세계문학 295
허먼 멜빌 지음, 윤희기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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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먼 멜빌(1819-1891)은 미국의 소설가이자 시인이다. 생전에 작품만으로 먹고 살기 어려워 19세부터 상선이나 포경선을 타고, 해군의 수병으로 승선하기도 하고, 결혼 후 세관검사관직으로 생활하였다. 사후 재평가되어 에밀리 디킨슨, 마크 트웨인과 더불어 미국 문학의 거장으로 인정받는다. 대표작으로 <모비딕>(1851)이 있다. 


이 책은 '필경사 비틀비'(1853)를 포함해 5편의 단편을 수록했다. 다른 4편은 '총각들의 천국, 처녀들의 지옥', '빈자의 푸딩, 부자의 빵 부스러기', '행복한 실패', '빌리버드'이다. 


표제작인 '필경사 바틀비'는 "안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는 말로 유명한 작품이다. 변호사인 화자는 법률 문서를 필사하는 필경사 바틀비를 고용한다. 기존의 필경사인 터키는 오전에 능률이 오르고, 니퍼스가 오후에 얌전해지는 스타일이라 하루 종일 차분하고 조용한 바틀비가 마음에 든다. 그러나 필사를 대조하자고 하니 바틀비는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라고 답한다. 나아가 더 이상 필사마저 하지 않겠다고 한다. 화자는 그를 떼어내기 위해 사무실을 옮긴다. 건물주는 여전히 그 사무실에서 꼼짝하지 않는 바틀비를 경찰에 신고하고 바틀비는 구치소에서 아무것도 먹지 않고 죽는다. 바틀비는 배달 불능 우편물 취급소에서 조직개편으로 갑자기 해고되는 바람에 이상해진 것이라는 얘기를 나중에 듣게 된다. 독특한 직업도 흥미롭지만, 개인의 상황을 이해하지 않고 기계부품처럼 쓰고 버리는 사회가 냉정하다.   


계급 간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낸 두 작품이 인상적이다. '총각들의 천국, 처녀들의 지옥'은 귀족 독신남들이 좋은 술과 음식을 즐기며 흥겨운 시간을 보내는데, 돌풍이 몰아치는 추위 속에 말을 달려 도달한 분지에 위치한 제지공장에서는 창백한 얼굴로 1년 365일 하루 12시간 일을 하는 처녀들의 비참함이 있다. 이러한 대조는 '빈자의 푸딩, 부자의 빵 부스러기'에서도 나타난다. 가난한 집주인이 대접한 '빈자의 푸딩'을 맛보고 짜고 곰팡네 나는 그 맛이 기대와 다르다는 화자는 왕족의 자선행사가 전 날 부자들이 먹고 남긴 음식을 걸인들이 들어가 청소하듯 먹어치우는 것임을 경험한다. 화자는 이처럼 하층민의 삶을 일회성으로 '경험'하고 끝나지만, 하층민의 삶은 지속된다. 멜빌은 이야기만 던질 뿐 하층민을 위한 동정이나 방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수록된 다섯 작품 모두 비극적이다. 바틀비의 죽음, 호화로운 상류층과 대비해서 더 열악하게 느껴지는 하층민의 삶, 발명품의 실패, 순수한 빌리 버드의 죽음이 그렇다. 생계를 위해 글을 쓰지만 가난했던 멜빌의 삶이 힘들었기 때문에 작품도 비극적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가난한 그에게 사회의 격차가 크게 다가왔고, 다시는 발명을 하지 않겠다는 늙은이의 말대로 초창기 작품의 성공을 잊지 못해 계속 글을 쓰는 것이 옳은 것인지에 대한 회의가 밀려온 것이 아닐까. 순수한 생각만으로 사회에 적응할 수 없었던 빌리 버드처럼 작가로서 사회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았던 것은 아닌가한다.   


적절한 주석이 있어서 시대배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역자해설 역시 낯선 시대와 사회 배경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이 저자와 작품을 이해하는데 빼놓을 수 없다. 미국인임에도 소설의 배경이 영국과 유럽인 것이 독특한 작품집이다. <모비딕>을 읽기 전 이 작품집으로 허먼 멜빌을 먼저 만나보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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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지 않은 삶도 명작이 된다 - 이주헌 미술 에세이
이주헌 지음 / 쌤앤파커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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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가를 아는 것이 미술을 아는 지름길이다"(프롤로그 제목)

사조를 외우고 그에 속하는 화가들의 이름과 화풍을 외우고, 누구에게 영향 받아 누구에게 영향을 주었는지를 외우는 것이 미술사 공부였다. 이 책은 화가 25명의 삶에 주목하여 그림을 이해하는 미술 에세이다. 카라바조, 에곤 실레, 폴 세잔, 폴 고갱, 조르주 쇠라, 앙리 마티스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화가가 낯설어서 새로 알게되는 화가가 많아져 즐거워진다.

가장 인상적인 화가는 제임스 앙소르(1860-1949)이다. 그는 벨기에 화가로 그림은 어둡고 그로테스크하다. 불안과 공포, 해체된 정서는 그의 성장배경과 관련이 있다. 의학을 공부할 정도로 인텔리인 아버지와는 달리 엄마는 빈한한 집 출신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일을 하지 않고 어머니와 외가 식구가 잡동사니를 파는 기념품 가게로 생계를 이어갔다. 가면과 해골을 모티브로 어두운 그림을 그리는 그의 그림은 인간의어두운 면을 부각시킨다. <아연실색한 가면들>(1883), <몸을 데우려는 해골들>(1889)은 아름답다기 보다 으스스하다. 앙소르는 표현주의, 초현실주의 미술의 시작으로 보지만, 은둔자처럼 활동하지 않아 독자적이고 개성이 넘친다. <음모>(1890)는 그로테스크한 가면을 쓴 사람들을 화려한 색채로 그려내고 있는데 괴이하다. 평론가에 의해 비판받던 그의 작품은 20세기 들어서며 호의적으로 평가받기 시작했다.

그림 속에 숨겨진 상징들은 알지 못하면 보이지 않는다. 얀 스텐(1626-1679, 네덜란드 공화국 레이던)은 렘브란트와 동시대에 살았지만 그와 다르게 가정과 일상을 주제로 한 그림을 많이 그렸다. <아기 탄생 축하>(1664)를 보면 단순한 손짓이지만 엄청난 사실을 폭로한다. 아내의 출산으로 아이를 안은 남편 뒤에 한 남성이 아이 머리 위에 두 손가락을 펼치고 있다. 이는 그 아이가 젊은 아내가 불륜으로 낳은 아이이고 친아버지만 이 사실을 모른다는 표시이다. 그림 곳곳에 다양한 상징들을 넣었는데 저자의 설명을 읽어야 보인다. 미술 에세이를 읽는 재미이다. 얀 스테는 세태를 꼬집는 속담을 주제로 그림을 많이 그렸는데, 그림 안에 번잡할 정도로 많은 사람과 이야기가 숨어있는 것이 흥미롭다.

명암대비를 잘 구사하는 카라바조(1571-1610)는 성격자체가 극단적이었다. 그가 살던 로마는 성공과 출세를 바라는 사람들이 경쟁하는 도시로, 예술가들 역시 경쟁해야했는데, 폭력이 오가기도 했다. 카라바조는 여럿의 전과가 있는데, 테니스장에서 살인을 하고 결국 도망치는 신세가 되었다. 그의 삶처럼 그림은 전통을 무시하고 개성적이다. 르네상스의 우아하고 고전적인 모델보다 구체적이고 사실적이고 강렬함을 추구하였다. <성모마리아의 죽음>(1604-1605)에서 성모마리아는 우아하고 성스러운 모습이 아니라 죽어서 몸이 부은 인간 시체의 모습으로 그려 논란이 되었다. 빈민과 서민들을 즐겨 그렸는데, 그의 작품을 천박하고 품위가 없다고 하는 부류와 박진감과 생동감이 넘쳐 애호하는 부류로 나뉘었다.

현대로 오면서 점차 무엇을 그린것인지 이해할 수 없는 작품들이 등장한다. 현대미술의 뿌리가 된 화가는 폴 세잔(1839-1906)인데, 그는 우리가 실제로 보는 것은 색채의 면이나 조각이고 뇌가 이를 조합하여 대상을 완성하므로 화가는 실제 보는 것을 그려야한다고 주장한다. 회화의 본질을 탐구하는데 평생을 보냈던 그는 사물을 원기둥, 구, 원뿔로 표현하고, 구성도 전통에서 벗어나 인위적이다. <레로브에서 본 생트빅투아르산>1904-1906)은 거친 붓터치로 미완성의 느낌이고, <푸른 화병>1887은 정물화의 전통적인 구도를 깨고 인위적이다. 세잔의 영향으로 현대미술의 입체파, 미래파, 구축주의, 오르피즘, 추상미술 등이생겨났다. 평생 실제 보는 것을 그리겠다는 일념으로 살았던 화가의 삶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화가들의 삶은 그리 아름답지 않다. 대부분 경제적으로 윤택하지도 않고, 복잡한 여자 관계를 가지고도 있고, 심지어 범죄를 짓고 도망다니기조차 한다. 그러나 그들의 그림은 명작이 된다. 시대와 자신의 삶이 작품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화가의 삶과 그림을 분리해서 이해할 수 없는 이유이다.

상당히 많은 작품을 사진으로 감상할수 있어서 좋다. 저자가 서문에서 언급한 대로 화가의 인생과 작품을 주로 설명하지만, 그림의 기술적 요소와 사조에 대해서도 간단히 설명을 하고 있어서 화가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화가가 그림을 그리면서 고민했을 것과 수고와 감정을 설명하고 있어서 완성된 작품도 좋지만 그 과정을 생각하게 해서 좋은 책읽기 경험이 된다.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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