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경사 바틀비 열린책들 세계문학 295
허먼 멜빌 지음, 윤희기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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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허먼 멜빌(1819-1891)은 미국의 소설가이자 시인이다. 생전에 작품만으로 먹고 살기 어려워 19세부터 상선이나 포경선을 타고, 해군의 수병으로 승선하기도 하고, 결혼 후 세관검사관직으로 생활하였다. 사후 재평가되어 에밀리 디킨슨, 마크 트웨인과 더불어 미국 문학의 거장으로 인정받는다. 대표작으로 <모비딕>(1851)이 있다. 


이 책은 '필경사 비틀비'(1853)를 포함해 5편의 단편을 수록했다. 다른 4편은 '총각들의 천국, 처녀들의 지옥', '빈자의 푸딩, 부자의 빵 부스러기', '행복한 실패', '빌리버드'이다. 


표제작인 '필경사 바틀비'는 "안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는 말로 유명한 작품이다. 변호사인 화자는 법률 문서를 필사하는 필경사 바틀비를 고용한다. 기존의 필경사인 터키는 오전에 능률이 오르고, 니퍼스가 오후에 얌전해지는 스타일이라 하루 종일 차분하고 조용한 바틀비가 마음에 든다. 그러나 필사를 대조하자고 하니 바틀비는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라고 답한다. 나아가 더 이상 필사마저 하지 않겠다고 한다. 화자는 그를 떼어내기 위해 사무실을 옮긴다. 건물주는 여전히 그 사무실에서 꼼짝하지 않는 바틀비를 경찰에 신고하고 바틀비는 구치소에서 아무것도 먹지 않고 죽는다. 바틀비는 배달 불능 우편물 취급소에서 조직개편으로 갑자기 해고되는 바람에 이상해진 것이라는 얘기를 나중에 듣게 된다. 독특한 직업도 흥미롭지만, 개인의 상황을 이해하지 않고 기계부품처럼 쓰고 버리는 사회가 냉정하다.   


계급 간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낸 두 작품이 인상적이다. '총각들의 천국, 처녀들의 지옥'은 귀족 독신남들이 좋은 술과 음식을 즐기며 흥겨운 시간을 보내는데, 돌풍이 몰아치는 추위 속에 말을 달려 도달한 분지에 위치한 제지공장에서는 창백한 얼굴로 1년 365일 하루 12시간 일을 하는 처녀들의 비참함이 있다. 이러한 대조는 '빈자의 푸딩, 부자의 빵 부스러기'에서도 나타난다. 가난한 집주인이 대접한 '빈자의 푸딩'을 맛보고 짜고 곰팡네 나는 그 맛이 기대와 다르다는 화자는 왕족의 자선행사가 전 날 부자들이 먹고 남긴 음식을 걸인들이 들어가 청소하듯 먹어치우는 것임을 경험한다. 화자는 이처럼 하층민의 삶을 일회성으로 '경험'하고 끝나지만, 하층민의 삶은 지속된다. 멜빌은 이야기만 던질 뿐 하층민을 위한 동정이나 방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수록된 다섯 작품 모두 비극적이다. 바틀비의 죽음, 호화로운 상류층과 대비해서 더 열악하게 느껴지는 하층민의 삶, 발명품의 실패, 순수한 빌리 버드의 죽음이 그렇다. 생계를 위해 글을 쓰지만 가난했던 멜빌의 삶이 힘들었기 때문에 작품도 비극적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가난한 그에게 사회의 격차가 크게 다가왔고, 다시는 발명을 하지 않겠다는 늙은이의 말대로 초창기 작품의 성공을 잊지 못해 계속 글을 쓰는 것이 옳은 것인지에 대한 회의가 밀려온 것이 아닐까. 순수한 생각만으로 사회에 적응할 수 없었던 빌리 버드처럼 작가로서 사회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았던 것은 아닌가한다.   


적절한 주석이 있어서 시대배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역자해설 역시 낯선 시대와 사회 배경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이 저자와 작품을 이해하는데 빼놓을 수 없다. 미국인임에도 소설의 배경이 영국과 유럽인 것이 독특한 작품집이다. <모비딕>을 읽기 전 이 작품집으로 허먼 멜빌을 먼저 만나보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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