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의 희망 수업 - 그럼에도 오늘을 살아가고 내일을 꿈꿔야 하는 이유
최재천 지음 / 샘터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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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처음부터 결과를 알고 달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나한테 주어진 일을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하다 보면, 거기서 다른 것으로 연결되고 또 다른 걸로 연결돼서 언젠가 성공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256)."

동물행동학을 연구하면서도 따뜻한 말솜씨가 인문학자같은 최재천 교수의 에세이집이다. 구름 사이로 떠오르는 해처럼 우리나라와 세계가 직면하는 문제점 사이에서 희망과 해결을 찾으려는 저자의 에세이가 밝고 온화하다.

책은 11개의 Lesson으로 나뉘어져 있다. AI, 통섭형 인재, 진짜 공부, 책 읽기, 글쓰기, 토론 대신 숙론, 방황, 어느 길을 갈 것인가, 한국의 출생률, 공생, 생태적 삶의 전환을 이야기한다. 과학과 인문학을 합친 통섭의 에세이다.

AI 기술이 발달하면 일자리를 잃지 않을까 걱정하는 우리들에게 AI에게 일을 맡기고 인간은 좀 놀아도 된다고 조언한다. 단, 우리가 노동을 재정의하고 사회를 재구성해야한다. 소수의 독점기업과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승자독식을 하는 현상이 벌어지고있는데, 과연 많은 사람들에게 이득을 고르게 나눌 수 있는 사회체제를 갖출 수 있을까? AI 개발자의 노력으로 얻은 이익을 모든 사람에게 나누기가 쉬울까? 과거 산업혁명 때도 그랬듯이 인간이 현명한 결정을 하리라 믿어본다.

우리나라 제조업에 대한 평가가 따끔하지만 옳다. 우리 제조업은 출제는 못해도 숙제는 잘 하는 학생에 비유한다. 창의적인 개발은 애플이 하고 우리는 뒤따라 하면서 속도나 해상도는 우리가 더 좋다고 '궁시렁'댄다. 영화 <아바타>처럼 창의적인 작품에 한국인 컴퓨터 그래픽 디자이너가 여럿 참여했다. 이제는 더이상 시키는 것만 잘하기 보다 스티브 잡스나 제임스 카메론과 같이 새롭게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나와줘야한다. 우리는 섞어서 아주 새로운 맛을 내는 비빔밥을 만든 것처럼 통섭에 능하므로 충분히 잘 할 수 있다고 용기를 준다.

특별한 독서법을 소개하는데 설득적이다. 취미삼아 하는 독서와 달리 '기획독서'를 제안한다. "기획독서는 몇 가지 분야를 정해 놓고 계획성있게 공략하는 독서(116-117)"이다. 읽으나마나한 책을 읽느니 읽기 어려운 책을 잡고 소리내어 천천히 읽으며 두세권 확장독서를 통해 지식의 범위를 넓혀간다. 새롭고 낯설고 모르는 분야의 책을 붙들고 씨름하다보면 내 지식의 수용 범위가 조금씩 넓어지고, 그렇게 낯선 분야들이 점차 익숙해진다. 시간을 가치있게 쓰고 싶어진다.

저출산문제에 대한 해석도 독특하다. 상황이 어려운데 새끼를 낳아 기르는 동물은 선택받지 못한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새끼를 먹어치우고 때를 기다리는 뒤쥐나 임신후 상황이 안좋으면 몸 안에서 자동유산 후 흡수하는 진화가 덜 된 동물을 예를 들면서, 치열하게 사는 한국 젊은이들이 치밀한 계산에서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은 진화론적으로 타당하다고 변호한다. 아이를 낳아 잘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든가, 있는 인구만으로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면 어떻겠느냐는 조언에 공감한다.

저자의 전작 <다윈의 사도들>에서도 느낀 점이지만, 저자는 한 번 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에 매우 적극적이다. 하버드 대학의 에드워드 윌슨 교수에게 편지를 써서 면담을 잡고, 만나서 15분밖에 내줄수 없다는 면담을 3시간 이야기하고 그의 제자로 받아들여진 이야기는 정말 흥미진진하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과감히 뛰어들어보라고, 행복하게 살라고 하는 조언이 진실돼다.

긍정적이고 유쾌한 사람이 곁에 있으면 그렇게 물든다. 희망을 이야기하는 이 책이 따끔한 비판을 포함하면서도 긍정적인 것은 이야기 마지막마다 희망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저자 특유의 동물도, 식물도, 바이러스도 의인화하는 말투와 은어에 가까운 말들이 잘 어우러져 코믹하면서도 자유로운 생각에 빠져 들게한다.

저자는 25년간 70권의 책을 냈고, 앞으로 쓸 책 제목도 달아둘 정도로 책에 진심이다. 이 책에서 그 간 책을 쓰게 된 경유나 미국 유학생 시절 이야기, 국내외 여러 기관에서 활동한 이야기, 나아가 현재 우리나라의 문제와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통찰력있는 조언이 빛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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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망 붕괴의 시대 - 반도체칩부터 생필품까지, 글로벌 공급망의 숨겨진 이야기
피터 S. 굿맨 지음, 장용원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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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망 문제의 직접적 원인이 된 충격을 일으킨 것은 코로나19였다. 하지만 코로나19는 단지 수십 년에 걸쳐 누적되어온 취약성의 가면을 벗겨낸 것뿐이었다(28)."

중국의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은 컨테이너 배에 실려 태평양을 건넌다. 미국에 도착하면 하역을 하고 화물차나 열차로 전 지역으로 배송된다. 장난감부터 반도체에 이르기까지 중국은 거의 모든 것을 만든다. 미국은 1980년대 이래 제조업에서 경쟁력을 잃고 코로나19에 마스크 하나 만들지 못하고 구할 수 없게 되자 패닉에 빠진다. 무엇이 문제일까?

<뉴욕타임즈>기자인 저자는 이 책에서 글로벌 공급망 붕괴의 과정과 향후 미국이 미래기술과 국가안보와 관련된 제품은 리쇼어링 정책을, 그 외의 제품에 대해서는 멕시코를 비롯한 중남미 국가로 니어쇼어링을 할 것임을 밝힌다.

헨리 포드는 모든 부품을 일정량 생산하고, 이익은 생산시설에 투자하고자 하였으나, 배당을 통해 투자자를 만족시켜야했다. 토요타의 오노는 적정한 재고 이상은 낭비라는 생각에 적기공급생산방식을 통해 원가를 낮추고 수익을 높였다. 이 방식은 1970년대 오일 쇼크를 겪으면서 더욱 각광받았고 급기야 미국에게 가르침을 전수한다. 맥킨지의 컨설턴트들은 오노의 방식을 '린생산'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비즈니스에 적용한다. 그러나 과도한 적기공급생산방식은 부족한 부품 때문에 제품생산이 지연되고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하며 문제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점은 팬데믹 동안 글로벌공급망의 붕괴로 드러난다. 중국 공장노동자들은 고향에서 돌아오지 않아 생산이 저조하고, 해운사는 엄청난 비용을 요구하고, 선적시간도 무한정 길어진다. 적정재고만을 보유한 기업은 부품 하나가 없어 제품을 출고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다.

지나치게 높은 중국 의존도, 해운사의 횡포, 열악한 노동조건과 저임금에 시달리는 화물차와 열차 노동자들의 현실이 부각되면서 글로벌 공급망이 옳은지 재고되었다. 미국이 자국내에서 제품을 생산하지 않는 이유는 가격경쟁력이 없기 때문이므로, 이를 보완하기 위해 리쇼어링 기업에게 세제혜택과 보조금을 지원한다. 자국 내에서 공장을 지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은 정치적으로도 유리하다. 또한 선박에 재생에너지를 사용하지 않는 한 지구온난화를 부축이는 요인이므로, 먼 중국 대신 이웃국에서 물품을 받으면 된다. 이제 중국 중심의 세계화는 지역 허브로 변화하고 있다. 유럽은 동유럽과 아프리카에, 미국은 중남미 국가에, 중국은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에 공장을 지어 가까운 곳에서 물품을 공급받는다. 이러한 니어쇼어링으로 적기공급생산방식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것이다.

열악한 운송 노동자에 대한 해결책은 시원하지 않다. 다국적 기업들은 중국에서 저임금으로 만들어진 제품에서 얻는 이익을 투자자의 배당금과 자신들의 성과급으로 가져가고, 낮은 비용을 유지하기 위해 운송노동자들을 착취한다. 맥킨지가 컨설팅했듯이 노동유연화를 위해 필요한 작업에 노동자를 쓰는 비정규직으로의 전환해 운송노동자의 일이 안정적이지 못하다. 문제는 향후 AI와 로봇이 긱 노동자들의 일을 대체할 것이라는 점이다. 긍정적으로 바라보면, 3D의 일을 기계에게 주고 인간은 재교육을 통해 기계를 통제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비용 효율을 위해 저임금으로 착취당하는 노동자가 얼마나 성공적으로 새 업무를 맡게 될지 의문이다.

미국시장을 잃고 싶지 않은 중국기업들은 멕시코에 공장을 짓고 있다. 미국의 정책만큼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중국에 대해 미국은 어떤 대책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아직 인프라와 인적, 물적 자원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멕시코에서 중국이 공장을 지으면 물리적 거리만 가까워지고 변한 것은 없어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 트럼프가 멕시코와 캐나다에 25%의 관세를 매기겠다고 했다가 주가가 폭락하는 바람에 30일간 보류 중이다. 또한 중국은 미국의 10% 관세부과에 대해 WTO규정을 위반한 것이라며 분쟁절차를 개시했다. 미중무역전쟁과 관세전쟁이 소리소문 없이 과격해지고 있는 중이다.

저자는 세계가 팬데믹으로 과도한 린생산방식의 문제점을 자각하였고, 기업이 소비자보다 투자자와 월가의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된 재고와 생산설비투자를 하지 못하는 것을 꼬집는다. 대차대조표에 자산을 줄이고 이익을 많이 내서 배당을 주는 건전한 회사처럼 보이기 위한 노력은 과연 옳은것인가? 자동화처럼 효율이 높아지면서 관련된 노동자들의 수와 혜택이 줄어드는데 노동자이면서 소비자인 이들을 보호할 기업은 없는 것인가? 의문이다.

현재 세계 경제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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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 명카피 핸드북 - 家族は、面倒くさい幸せだ。 가족은 귀찮은 행복이다 일본어 명카피
정규영 지음, 오가타 요시히로 감수 / 길벗이지톡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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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저자는 광고인이다. 일본 노래가 좋아 일본어 공부를 시작하였고, 일본 광고카피를 번역하고 감상을 기록하면서 몇천 개의 카피를 모으게 되었다. 직접 번역한 카피를 인스타그램에 공유하고 브런치에 글을 쓰다가 책을 내게 되었다. 이 책에는 창의적이고 공감을 주는 완성도 높은 문장들만 모았다고 밝힌다.

책은 5개의 파트로 되어있다. 인생, 일상, 꿈, 일, 관계의 5개 주제로 200개의 광고 카피를 소개한다. 각 파트에는 QR코드가 있어 원어민의 낭독을 들을 수 있다. 각 카피는 우리말 번역과 일본어를 적고, 어떤 광고에서 나온 것인지 연도와 함께 표시한다. 짧은 해설은 광고의 배경과 문장의 이해를 돕는다. 깔끔한 구성이 돋보인다.

이 책에 실린 일본 광고카피가 일본광고카피를 전체를 대표하지는 않겠지만, 마치 명언처럼 교훈적이고 철학적이고 심오하다. "마음을 움직인다, 사람의 힘으로(33)"과 같은 카피는 언뜻 들어서 무엇을 선전하려는지 알 수 없다. 백화점 광고로 '사람의 힘'을 중시하는 기업철학이 담겨있다. "여행의 목적지가 길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27)"는 카피는 오토바이 전문 레드바론의 2009년 인쇄광고이다. 길과 오토바이의 관계를 인생의 여정과 목적지 혹은 결과보다 과정을 잘 살아야한다는 의미로 이어지며 심오하다. "자유는 혼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누구와 함께 있어도 자기자신으로 있을 수 있는 것(오츠카 이온워터 포스터 2020)(166)"은 심오한 철학이다. 사회생활을 하며 내 자신으로 온전히 있기가 어려운 시대에 나를 돌아보게하는 카피이다.

당연한데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가 카피를 보며 새삼 맞장구 치며 공감하게 되는 것도 있다. "피부는 내가 보는 것보다 남이 보는 시간이 더 길다 (NOV포스터 2014)(57)"는 기능성 화장품 NOV의 카피인데 내 것이지만 남들에게 보여지는 피부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한다. "옷을 사러갈 옷이 없다(소고.세이부 백화점 포스터 2006)(62)"는 여자라면 누구나 '그래, 맞아'라고 감탄하며 웃을 수 있는 카피다.

취업을 준비하거나 새로운 일을 시도하는 사람에게 힘을 주는 "내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벽이 아니라 문일지도 모른다(리쿠르트 브랜드 메시지 광고 2017)(106)"일 듯하다. 시도해 보지 않고 마음을 접었던 일을 후회한다면, 혹은 입사하고 싶었지만 문턱이 높아서 시도 조차 해보지 않았다면 이 문구가 얼마나 용기를 주는지 자주 보이는 곳에 포스트잇에 붙여놓아야할 정도로 좋다. 뚫을 수 없는 벽이 아니라 조금만 노력하면 열리는 문인 상황이 취업 뿐 아니라 인생을 살며 얼마나 많을지. 뭐든 하고 싶다면 용기를 내어 도전하면 길이 열릴 것이다. 멋진 카피이다.

일본 회사를 많이 알지 못하고, 일본어의 묘미도 저자가 설명하는 만큼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이지만, 다 읽고 나면 행복해진다. 광고카피는 세계 어디서나 통하는 것도 신기하다.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좋아 어떤 회사인지도 궁금하다. 몇몇 광고 사진이라도 실어주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일본 광고 카피가 궁금하다면, 일본어 공부를 하는 중이라면, 일본 문화에 관심이 있다면 이 작은 핸드북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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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메리골드의 처방전
찰스 디킨스 외 지음, 이주현 옮김 / B612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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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찰스 디킨스(1812-1870)가 세 편의 단편을 쓰고, 동시대 다섯 작가들이 각 한 편씩 쓴 단편을 모은 책이다. 디킨스가 처음과 끝을 장식하여 이야기가 이어진다. 중간의 여섯 단편은 닥터 메리골드가 딸에게 줄 책 속에 넣을 이야기들로 처방전 형식으로 되어있다.

닥터 메리골드는 떠돌이 행상인이다. 그의 이름에 닥터가 들어가는 것은 길 위에서 태어난 자신의 출생을 도와준 의사에 대한 경의의 표시로 아버지가 지어주었다. 닥터 메리골드는 아버지처럼 수레에서 생활하며 행상을 한다. 결혼을 하고 딸 소피가 태어나지만, 아내가 힘들 때마다 딸 소피에게 폭행을 가하고 아이는 죽고 만다. 아내도 강에 투신해 죽는다. 닥터는 청각과 언어장애가 있는 소녀를 의붓딸로 데리고 있는 밈에게서 멜빵을 주고 데려와 딸 소피처럼 키운다. 글을 가르쳐 주고 16세가 되자 2년간 농아시설에 보내 지적으로 성장한 사람이 되도록한다. 딸아이가 돌아오기 전에 아무도 읽은 적 없는 이야기를 책으로 선물하고자 한다. 이야기의 처음과 끝이 이어지면서 따뜻한 마음을 가진 닥터 메리골드와 의붓딸이 행복한 끝을 맺는다.

중간에 실린 여섯 가지 이야기는 19세기 영국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원수가 된 집의 딸을 얻고자 사랑의 묘약을 잘 못 쓴 이야기, 모임에서 시선을 끌기 위한 신사들을 위해 수수께끼를 만들어 파는 남자의 이야기, 리어왕과 세 딸을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 금괴를 옮기는 업무를 맡은 은행원과 이를 뺏으려는 사람의 이야기, 재판에 나타나 살인자를 유죄판결하려는 살해당한 유령의 이야기, 돈으로 사랑을 사려는 자와 진정한 사랑 이야기가 흥미진진하다. 신화나 전설처럼 믿기 어려운 환상적인 이야기도 있지만, 추리소설처럼 사건의 진상을 밝혀나가는 스릴과 박진감이 넘치는 현대물도 있다.

슬픈 유머가 곳곳에 있다. 주인공 이름이 닥터이지만 닥터와는 거리가 먼 잡상인 메리골드의 가난한 삶이 애잔하다. 닥터가 행상으로 물건을 팔 때 되지도 않는 이야기를 줄줄이 늘어놓으며 강매를 하고, 그나마 사려고 하는 사람이 없을 때면 말이 청산유수로 많아지면서 가격을 계속 내리며 요란하게 선전할 때 왠지 서글프다. 사랑하는 딸을 잃고 멜빵 하나만 주면 데리고 가도 된다는 밈에게서 청각장애와 언어장애인 아이를 입양하는 대목도 슬프다.

짧은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작가의 작품을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짧은 양에 응축된 이야기가 흠잡을 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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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섬산 20 - 감성과 정보를 한 권에 담은
신준범 지음, 주민욱 사진 / 조선뉴스프레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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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섬에 있는 산을 오를 때는 바다를 느낄 수 있어 특별하다. 녹음이 짙고 나무가 빽빽한 여름에는 바다의 내음을 느끼다가, 산 정산에 이르러 확 트인 바다를 보는 시원함이 있다. 여름을 제외한 계절에는 바다를 보면서 산을 오르면 육지와는 다른 풍경의 즐거움이 있다. 아름다운 해변가를 만나는 것은 덤이다.

책은 20개의 인천 섬산을 소개한다. 구성은 섬 이름을 따라 가나다순으로 배치했지만, 섬의 특성에 따라 차로 갈 수 있는 섬, 북한조망이 가능한 섬, 모래해변이 아름다운 섬, 백패킹을 위한 섬, 산행이 즐거운 섬으로 나누었다. 또한, 숙박여부에 따라 당일치기, 1박2일, 2박3일 섬, 여행사를 이용하면 좋을 섬으로 제시해서 일정을 짜기에 편리하도록 하였다.

각 장마다 첫 장에는 교통편은 물론, 산의 높이와 매력, 주의사항, 산행 난이도를 별점으로 표시하여 한 눈에 섬을 파악하도록 했다. 각 장의 뒷편에는 일정 설명과 등산지도는 처음 방문하는 사람에게 매우 유익한 정보이다.

저자는 월간 산의 취재팀장으로 등산기자라는 독특한 직함과 종주 내역이 인상적이다. 사진기자들의 이력 또한 전문 산악인 수준이다.

세 명의 사진기자가 촬영한 사진이 인상적인데, 사진만 보아도 섬의 분위기를 바로 알수 있다. 갓파른 돌산인지, 완만하게 바다를 보며 걸을 수 있는 산인지, 모래사장을 밟으며 걸을 수 있는 산인지, 데크가 잘 갖춰져 있는 산인지, 아이와 함께 갈 수 있는 산인지, 산보다 해안의 풍경이 더 아름다운지, 인적드문 산인지를 보여준다.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섬산의 공통점은 바다에 둘러싸인 풍경으로 어느 계절이든 푸르다.

사진을 먼저 훑어보면서 가장 눈에 들어온 것은 굴업도의 첫장 사진이다. 가을 억새가 빼곡한 길을 세 명의 백패커가 걸어가는 풍경이 가슴 설렌다. <폭풍의 언덕>을 떠올리게 하는 '개머리언덕'은 바람과 바다향기와 풀냄새가 황량하면서 아름답다고 표현하는데 꽤나 문학적이어서 한 번 가보고 싶어진다. 등산지도를 보니 동서로 길어서 서쪽 끝에 백패킹 명소인 개머리언덕이 있고, 동북쪽 끝에 연평산과 덕물산이 있다. 덕물산은 높이가 137m밖에 안되지만, 가파른 흙길과 바윗길을 올라야해서 산행 난이도가 별2개이다. 인천항에서 70km 떨어진 굴업도는 배를 타고 3시간 혹은 4시간을 가야하는 이 섬이 한때 핵폐기장이 될 뻔했다거나, 대기업의 골프장과 리조트가 세워질 뻔 했으나 무산되어서 현재의 아름다움을 간직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에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다. 사진만으로도 아름다운데 직접 대면하면 어떠할지 두근거린다.

차로 갈 수 있는 섬 중에 무의도는 서울에서 접근하기가 비교적 쉽겠다. 2019년에 영종도와 무의도 사이에 무의대교가 생기면서,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에서 버스로 20분이면 무의도 큰무리 선착장에 도착한다. 무의도는 '춤추는 옷 섬'이라는 뜻인데, 안개 낀 날 배에서 보면 아름다운 춤사위인 듯하다하여 붙여졌다. 호룡곡산이라는 독특한 이름의 산이 있고, 북파공작원 훈련장소인 실미도, 산책하기 좋은 소무의도, 모래해변과 바다 위를 걸을 수 있도록 한 데크길로 유명한 하나개해변, 백패킹 성지인 세렝게티까지 다양한 즐길 거리가 있다. 하산하고나서 영종도 을왕리해수욕장에서 회를 먹거나 카페에서 즐길 수도 있겠다.

여행사를 이용하면 좋을 세 개의 섬은 인천항에서 100km 떨어져 2시간 배를 타야하는 연평도, 200km 떨어져 4시간 정도 배를 타야하는 백령도와 대청도이다. 연평도와 백령도는 걸어서 둘러보기에 넓고, 출입통제구역이 많아 차량으로 둘러보는 것이 효율적이다. 대청도역시 걸어서 둘러보기 어렵다. 여행사를 통하면, 배편, 숙소, 식당 예약과 차량이동을 한번에 해결할 수 있다는 조언은 실속있다.

이 책은 처음부터 차례로 읽어도 좋지만, 먼저 사진을 훑어본 다음 마음에 드는 섬산을 자세히 읽어보는 것도 좋고, 테마별로 추천하는 섬산에서 마음에 드는 곳을 찍어 먼저 읽어보는 것도 좋다. 그리고 각 장마다 맨 뒤에 배치한 등산지도를 함께 보며 본문을 읽으면, 저자가 이 섬의 어디를 설명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인천에 있는 섬산 20개를 모은 것도 참신한 시도인데다가 섬과 산에 관한 거의 모든 정보를 담고 있다. 의외로 육지와 연결된 섬이 많아 진입 장벽이 어렵지 않지만, 가끔은 배를 타고 두세시간 달려 도착한 곳의 산을 올라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겠다.

섬산을 설명하는 저자의 설명이 구태의연하지 않다. 문학적인 표현뿐 아니라 지면에 좁은데도 중요한 정보를 다 배치하고 설명한다. 각 섬산에 찍힌 사진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그들의 이야기도 전해주는 식이 독특하다. 무엇보다 섬산을 방문할 사람들에게 쓰레기를 버리지 말고, 주민들이 잠든 밤에 시끄럽지 않도록 당부하는 말을 앞에 배치하여서 저자가 섬산을 아끼는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글과 사진이 상당한 수준인데다 내용도 알차게 잘 만든 책이다. 곁에 두고 섬산 여행에 참고할 필수도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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