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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없이 그림 여행 - 화가의 집 아틀리에 미술관 길 위에서 만난 예술의 숨결
엄미정 지음 / 모요사 / 2020년 12월
평점 :
저자는 서양미술사를 전공하고 프리랜서 번역가, 편집자로 일하며 주말에는 박물관, 미술관, 유적지를 답사하는 여행자로 살고 있다. 그냥 듣기만 해도 일상에서 좀 떨어져 사는 멋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술과 여행은 언제 들어도 멋진 조합이고 그것을 찾아 나서는 삶은 참으로 이상적이다. 이 책은 화가들의 그림을 따라 그들이 살던 집부터 그림의 배경이 된 곳을 따라 걸어가며 고스란히 화가의 삶을 느끼는 여행 에세이이다.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괜찮다, 다 괜찮다(독일, 네덜란드,오스트리아), 2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이탈리아, 스페인), 3부 원하는 건 오로지 빛과 바람뿐(프랑스).
들어가는 글에 볼프강 라이프의 <오르지 못하는 다섯 개의 산>을 보면 '아름다운것에 가슴이 뻐근해지는 순간'이라고 설명하는데 도저히 그 느낌이 궁금해서 인터넷을 찾아보았다. 동영상과 그 작품을 볼 수 있는데, '아! 이런 느낌이구나'하는 감이 온다. 링크를 타고 들어간 곳은 저자의 블로그였고, 그 안에는 책을 쓰며 보여주지 못한 동영상과 사진이 들어 있어서 좀 더 둘러볼 수 있다.
'화가의 길'을 찾아 떠날만큼 좋아하는 예술가는 누구일까? 그 12명의 화가는 독일, 네덜란드, 오스트리아편에서 다루는 뒤러(1471-1528), 얀 페르메이르(1632-1675), 클림트와, 이탈리아 스페인 편의 조토 디본도네(1267-1337), 여성화가 소포니스바 앙귀솔라(1532-1625), 카라바조(1573-1610), 엘 그레코(1541-1614)과, 프랑스 편의 클로드 모네(1840-1926), 빈센트 반 고흐(1853-1890), 폴 세잔(1839-1906), 폴 시냐크(1863-1935), 앙리 마티스(1869-1954)이다. 익히 들어본 인물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여행인 만큼 지도위에 이동경로를 표시해주는 점이 마음에 든다.
'뒤러의 길'은 16세기에 활동한 독일화가인 뒤러의 첫 이탈리아 여행길이다. 그의 여행이 의미 있는 것은 북쪽 국가의 화가가 남쪽 여행을 통해 북유럽 국가들에게 르네상스를 전파한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도 화가들의 여행을 재현해볼 수 있도록 관광지 코스가 개발되어 있다는 점이 부럽다. 인상적인 것은 뉘른베르크에 있는 '뒤러의 집' 박물관 방문이다. 그의 작업실을 비롯해 여러 공간을 직접 돌아다니며 그의 일생의 흔적을 체험할 수 있다.
여행기를 읽으면 꼭 가보고 싶게 만든다. <키스>로 유명한 클림트가 활동한 오스트리아 빈의 벨베데레 미술관과 아터 호숫가의 '클림트의 길'과 '구스타프 클림트 센터'다. 특히 '클림트의 길'은 호숫가를 따라 나 있어서 걸어가며 클림트의 삶과 풍경화를 그린 배경을 만끽할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된다.
화가의 거친 삶을 알게 되기도 한다. 이탈리아 초기 바로크 대표적 화가인 카라바조다. 바탕색을 검게 사용하고 빛과 어둠을 대비시켜 그린 그의 그림은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그가 밑그림을 그리지 않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살인을 저질러 도망다닌 이야기가 놀랍다. 나폴리로, 시칠리아 섬으로 도망가며 그린 그림을 보며 점차 어두워지는 그의 그림이 안타깝다. 결국 로마로 돌아오지 못하고 중간에 말라리아로 죽는다. 카라바조의 시대와 저자의 시점이 교차하면서 과거와 현대가 흥미진진하게 전개되어서 푹 빠져 읽을 수 있다.
살아서 인정받은 화가들은 재력을 이용해 더 나은 환경을 조성하기도 한다. 그 중 하나가 인상파 화가인 모네다. 그의 화폭에 가득찬 꽃들은 그가 직접 설계하고 가꾼 정원에 심은 것을 그린 것이다. 또한 인공 연못을 파서 만든 '물의 정원'에는 일본에서 들여온 수련을 심어 일본스러운 느낌을 내고자 했다니 대단한 정열이다. 이 '물의 정원'을 거닐며 물에 비친 풍경과 수련을 바라보며 모네의 느낌이 어떨지 느껴보고 싶어진다.
혼자서 여행하며 고군분투하다가 목적지까지 가지도 못하고 길을 잃기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깝다가도 화가의 삶이 그대로 드러난 집과 화실, 그림의 배경이 되었던 곳에서 흠뻑 취하는 저자가 부럽기만 하다. 혼자하는 여행이다보니 더 무서웠을 것 같은 길도 많던데, 용감하다.
<기획자의 여행>라는 책에서 제안한 것처럼 여행을 '화가의 길'이라는 주제를 잡고 프레임을 만든 후 떠나 기록하고 공부한, 정성이 가득 들어간 여행기다. 그림 감상과 여행이라는 두가지 목적을 다 성취한 책이다. 서양화와 여행에 관심이 있다면 꼭 읽어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