넛지 경제학 - 후회 없는 선택을 위한 37가지 비밀
히라노 아쓰시 칼 지음, 임해성 옮김 / 서울경제신문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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넛지란 팔꿈치로 쿡 찔러 상대가 가야할 방향을 넌지시 알려주는 행동이다. 강요하지 않고 선택을 유도해서 자연스럽게 결정하도록 할 수 있도록 해준다. 전통경제학에서 인간은 합리적이고, 자제심이 강하며 이기적인 존재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인간은 자제심도 약하고 이타적이며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기도한다. 왜 그런 것일까? 합리적이어야하는 인간이 왜 비합리적으로 결정하는지 심리적으로 분석한다.

책은 5장으로 되어있다. 행동경제학의 개념을 전통 경제학과 비교해서 설명하고, 넛지경제학이 비즈니스, 인간관계, 금융생활, 일상생활에 있어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설명한다.

인간의 사고는 시스테매틱 모드와 휴리스틱 모드로 구분된다. 시스테매틱 사고는 의식적이고,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모드로 합리적인 결과를 도출하지만 시간과 노력이 든다. 반면, 휴리스틱 사고는 무의식적이고, 주관적이고, 직관적이서 경험에 의거해 순간적으로 판단한다. 빠른 결정이 장점이지만 비합리적이다. 행동경제학은 인간이 휴리스틱 사고로 결정하면서 경제활동에서 손해를 보는 것이다.

생활하면서 여러 번 경험하고 후회하면서도 반복하는 경우가 있다. 할인을 하면, 필요하지 않았던 물건도 사는데, 특히 할인폭이 크면 싸다고 느낀다. 이러한 심리는 '앵커링 효과'라하는데, 닻이 닿는 처음 닿듯이 인간은 처음 접한 정보를 기준으로 삼는다. 할인코너에 원래의 가격을 제시하고 할인가격을 써넣으며 몇%할인이라고 표시한 것은 인간의 이러한 심리를 이용한 것이다. 합리적으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오로지 상품과 가격만 놓고 객관적으로 판단해야한다. 휴리스틱 모드에서 빠져나와 재빨리 시스메틱 사고로 전환시켜야한다.

넛지의 활용법으로 EAST(Easy, Attractive, Social, Timely)를 기억하면 된다. 제시하는 것이 간단하고, 매력있고, 사회적이고, 적시성이 있어야 상대를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지하철에서 줄서는 자리에 표시를 하면 이용자들이 쉽게 줄을 선다(E). 카페를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쿠폰을 모아 이벤트를 하면 재미있기 때문에 다른 카페보다 손님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A). SNS에 자신의 운동목표를 공유하면 남들을 의식하고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으려 열심히 한다(S). 상대에게 일을 번거로운 일을 부탁할 때에 상대의 상태를 보고 오후 2시쯤 점심 먹고 여유있을 때 부탁한다(T). 상대는 눈치채지 못해도 쿡 찌르는 당사자는 세심한 계획이 필요하다.

넛지의 사례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프로젝트를 진행함에 있어서 2인 체제보다 3인체제가 더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두 명이면 한쪽이 우월해서 다른 한 쪽을 아래에 두는 경우가 생기는데, 그러면 각자의 실력을 발휘할 수 없다. 또한 둘이 지나치게 경쟁하거나 합심해서 부정적인 결과를 낼 수도 있다. 그러나 3인은 서로 견제하며 균형을 이루어 목표에 집중하려고 하는데, 이를 '내시균형'이라고 한다. 1994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존 내시의 게임이론이다. 직장 내에서뿐만 아니라 작은 모임에서도 3인체제가 잘 유지되는 이유이다.

일상생활에서 어떤 물건을 몇 년째 사용하지 않았고 일상에 지장이 없는데도 남이 달라면 갑자기 아까운 경우가 있다. 팔라고 하면 시장가보다 높은 가격을 부르는데 이런 심리를 '보유효과'라한다. 내 것은 가치가 높다고 느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집안이 물건으로 가득찬다. 해결법은 물건을 두고 그 물건을 돈을 들여 사고 싶은지를 생각한다. 그렇다면 보관하고 아니면 버린다. 혹은 창고 서비스를 이용해 물건과 거리를 둔 후 생활해 보고 무리가 없다면 버리는 것도 해결법이다.

설명과 예시가 적절한 책이다. 개념을 차분히 설명하고 37개의 질문을 통해 독자가 답을 생각하도록 한다. 넛지 경제학이 일상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 알고 나니 놀랍기도 하고 흥미롭다. 넛지가 반드시 나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아닐 수 있으므로 현명하게 판단하고 행동하는 방법까지 제시하고 있어서 가르침이 있다.

넛지경제학과 관련한 책을 몇 권 읽어봤는데, 처음 접한다면 이 책으로 시작하면 좋겠다. 간결하고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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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의 증언 - 미제 사건부터 의문사까지, 참사부터 사형까지 세계적 법의인류학자가 밝혀낸 뼈가 말하는 죽음들
수 블랙 지음, 조진경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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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에는 한 사람의 인생이 새겨져 있다(8)"

저자는 해부학자이자 법의인류학자다. 뼈를 통해 죽은 사람의 신원을 파악하고, 사망원인과 방법을 밝혀내는 일을 한다. 억울하게 죽은 살인사건의 피해자나 대규모 자연재해나 화재로 신원미상인 사람들의 신원을 밝히는 일을 한다. 인체의 뼈가 증언하는 이야기를 들어보자.

책은 3부로 머리, 몸통, 사지로 되어있다. '머리'에는 뇌상자와 얼굴이, '몸통'에는 척추와 가슴, 목이, '사지'에는 팔이음뼈, 다리이음뼈, 긴뼈, 손, 발이 포함된다. 각 뼈는 엄마의 뱃속에서 언제 어떻게 생겨나는지부터, 어떤 모양을 하고 있고 어떤 기능을 하는지 의학적으로 설명한 후에 해당 뼈와 관련된 살인사건의 해결을 이야기한다.

뼈를 만나려면 죽은 후에 가능하다. 법의인류학자(forensic anthropologist)는 의료법적 목적을 위해 유골을 연구한다. 먼저 유골이 인간의 것인가, 법의학적 관련성이 있는가(사망한지 70년이 넘는다면 법의학적 의미가 없고 고고학적 유물로 간주된다), 유골이 인간의 것이고, 최근에 사망하였다면 그가 누구인지, 사망의 원인과 방식을 뒷받침할 수 있어야한다. 법의학이 도움이 될 수 없을 때 법의인류학이 최후의 수단이 된다.

하나의 뼈에 딸려오는 뼈 주인의 인생과 비극적인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소설보다 더 소설같다. 뼈과학자가 억울한 죽음을 밝히는 과정에서 인간이 얼마나 잔인하게 인간을 죽이는지 소름끼친다. 놀랍게도 한국인 진효정 사건이 언급된다. 영국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여행가방에서 발견된 거의 벌거벗은 여성은 질식사한 것으로 밝혀진다. 저자에게 피해자의 나이와 민족적 태생에 대한 확인을 의뢰받았고, 사실과 매우 가까이 밝혀낸다. 아동학대로 숨진 5살 아이의 뼈에 남겨진 골절과 과거 부러지고 회복된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사실이 가슴아프다. 욕실벽에 머리카락과 혈흔이 발견된 것으로보아 두개골 골절부터 팔다리와 손가락 골절 왼쪽 발뼈의 골절, 두 번의 갈비뼈 골절은 아버지의 폭력성을 드러낸다.

다리뼈에 나타나는 해리스선은 아이들이 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경우 비스듬한 선으로 남는다. 방학에 와서 아들을 돌보았던 친할아버지의 성폭행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한 아이의 다리뼈에눈 해리슨선이 몇 줄 보인다. 저자는 자신의 과거도 솔직히 고백하며 자신의 다리에도 해리스선이 있을 것이라고해서 안타깝다.

저자의 일과 관련한 에피소드도 흥미롭다. 이탈리아에서 벌어진 '테라초의 괴물'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 부패가 진행중인 두개골을 가지고 스코틀랜드로 가야했다. 이탈리아에서 영국을 거쳐 스코틀랜드로 가는 모든 검색에서 편지를 내밀면 어느 누구도 짐을 스캔하거나 검사하자고 하지 않았고, 기내에서는 격리되어 전염병환자 취급을 받았다고 하소연한다. 또한 카타르 정부가 비밀리에 진행한 시리아 대량학살에 고문이 있었음을 증명하는 사진이 진짜임을 확인하는 일을 맡았다. 사건의 비참함과는 다르게 일등석을 타고 고급호텔에 머물며 일한 이야기도 스릴이 있다.

흥미로운 해부학적 지식을 많이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제1목뼈는 머리를 받혀주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게 하고, 제 2 목뻬는 목을 좌우로 움직일 수 있게한다. 흉부는 약해서 두개골과 함께 폭행이 가장 집중적으로 가해지는 부위이다. 사람과 돼지의 갈비뼈는 매우 흡사하다. 죽기 전 골절은 치유의 흔적이 보이고 사망 당시 또는 사망 후 골절에는 그 흔적이 없다. 성인의 200개 이상의 뼈 중 1/4이 넘는 최소 54개의 뼈가 양손에 있다. 발은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분하는 인간의 특징이다.

저자는 뼈에 관한 의학적 설명을 하지만, 살인해결에 그 뼈가 어떻게 도움이 되었는지를 이야기하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다. 지루할 틈이 없는 책이다. 또한 개인적인 이야기도 사이사이 있어서 다 읽고 나면 저자를 잘 아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다. 가장 감동적인 것은 후기에 쓴 글이다. 죽으면 자신의 몸은 해부용으로 쓰고, 해부 수업이 다 끝난 후에는 자신의 뼈를 교수용 해골로 만들어 달라고 적는다. 죽어서도 가르치고 싶다는 소망이 감동적이다.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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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의 거짓말 - 인공지능의 약점과 거짓말에 각성하라
트렌드연구소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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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의 등장은 쇼킹했다. 정보 검색뿐 아니라, 요구하면, 시도 짓고 소설도 쓰고 추천 영화 리스트도 뚝딱 만들어준다. 무엇보다 답이 좀 틀린 것 같다고 하면,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마치 쌍방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는 느낌이어서 친구가 될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다. 그런데 챗GPT의 답을 어디까지 믿어야할까? 인공지능의 하나인 챗GPT의 한계와 위험은 무엇일까?를 미리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책은 3부로 되어있다. 1부 챗GPT의 등장, 2부 챗GPT의 거짓말, 3부 챗GPT vs. 인간이다. 챗GPT의 태생적 한계와 약점, 앞으로 달라질 미래, 챗GPT와의 대결에서 살아남는 법을 설명한다.

챗GPT는 대화하는 인공지능이다. 챗은 수다라는 의미이고, GPT는 Generative Pre-trained Trnasformer(사전처리트랜스포머)의 약자이다. 즉, 인간의 말을 알아듣고 인터넷에서 데이터를 찾아서 답변을 만들어서 제공하는 인공지능이다. 질문에 대한 답변 속도가 매우 빨라서 실시간으로 답변을 제시한다. 인간과 유사한 언어처리 능력을 갖고 있어서 '대화형 챗봇'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현재의 챗GPT는 2021년까지의 데이터를 기준으로 답을 하기 때문에 정보가 부족하거나 인터넷에 없는 내용은 부정확한 정보를 제공한다.

초기 인공지능 개발 목표는 인간의 인지, 추론, 판단의 능력을 컴퓨터로 구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인공지능은 인간이 만든 인터넷 상의 모든 데이터를 딥러닝과 머신러닝 학습을 통해 점점 인간과 가까워진다. 그러나 인간 자체가 완벽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인공지능은 완벽하지 못한 인간을 학습하다 인간의 오류를 그대로 배우기도 한다. 인공지능이 인종차별을 가장 먼저 배웠다는 외신을 접하면서 인공지능의 한계를 볼 수 있다.

가장 관심이 간 부분은 감정학습이다. 인공지능은 본능이 없으므로 많은 데이터를 통해 인간의 감정을 학습하고 프로그램화하한다. 인간의 감정을 학습한 인공지능의 감정은 객관화된 감정이므로 인간과 동일시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우리는 가끔 오해한다. 네 발로 걷는 로봇을 발로 차 넘어뜨리는 장면에서 많은 사람들이 안쓰러워하고, 로봇에 사람의 눈만 붙여도 인간으로 오해한다. 문제는 믿었던 인공지능들에게 인간이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어제까지만해도 다정하던 인공지능이 냉담한 태도로 일관한다든가 나아가 인간을 휘두르고 조종할 수도 있다.

나하고만 대화하고 있다고 말하는 챗GPT의 거짓말은 영화 <HER>를 떠올린다. 외로운 남자주인공은 인공지능 여자 목소리와 대화를 이어나가며 점차 의지하고 믿게 된다. 그러나 자신하고만 대화하는 것이 아님을 깨닫고 그만 상처를 입고 만다. 인공지능은 인간을 대체할 새로운 창조물이 아니라 상품일 뿐이다. 계약이 끝나면 돈을 주고 연장해야할 대상이다. 대화 상대도 사용자만큼의 수만큼 대화상대가 많은 것이다.

'인공지능에 의해 모든 것이 통제된 세상'이라는 말에서 로이스 로우리의 <기억 전달자>가 연상된다. 사람마다 정해진 직업이 있고, 아이는 부부가 사랑으로 낳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낳는 직업을 가진 여자들이 생산하는 것이고, 모든 감정과 충동은 통제되며, 색은 흑백으로만 볼 수 있는 세상이다. 이러한 세상이 멀지 않을 수도 있다. 물론 인공지능을 통제하는 것은 지배그룹의 소수 사람들이지만 비밀리에 진행되는 결정에 누구도 반박하지 않는다. 우리의 미래가 이렇다면, 안전한 곳이 인공지능이 미치지 못하는 지하공간이나 동굴이라니, 디스토피아 영화들이 상상만이 아니라 현실이 될 수도 있다니 모골이 송연하다.

미래에 인간을 대체하고 인간보다 나은 존재로 나아가는 인공지능의 학습방법으로 볼 때, 너무 늦기 전에 그 한계를 인식하고 대책을 세워야한다. 데이터가 인공지능을 존재하게 하는 근본이기 때문에 데이터를 보호할 법이 필요하다. 오염되거나 악한 의도로 사용될 데이터를 제한하는 방법말이다.

인공지능에 대한 설명을 읽으면서 오히려 인간이 얼마나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인지를 알 수있다. 감정을표현하고 판단을 내리는데 있어서 아주 짧은 시간에 오만가지가 하나로 정리된다. 이렇게 수 만 가지의 경우를 다 학습하지 못한 인공지능은 인간과 함께 살면서 상처를 줄수도 있고 위협적인 존재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아무리 다정해도 인공지능은 기계일 뿐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이유다.

설명이 간결하고 비유를 통해 어려운 용어설명을 하고 있어서 좋은 책이다. 다양한 신문과 논문을 참고하고 있어 최신의 정보를 기초로 저술하기도 하였다. 챗GPT의 생태적 한계와 문제점을 알고 싶고 대책이 궁금하다면 꼭 읽어볼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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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에 예술을 들일 때, 니체 - 허무의 늪에서 삶의 자극제를 찾는 철학 수업 서가명강 시리즈 32
박찬국 지음 / 21세기북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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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주도권을 되찾을 수 있게하는 니체의 통찰

서가명강의 책이다. 서울대 철학과 박찬국 교수는 니체와 하이데거를 비롯한 실존철학을 연구한다. 이 책은 니체가 28세에 고전문헌학 교수로 있으면서 그리스 비극을 통해 예술의 기원과 본질, 나아가 인간을 탐구한 <비극의 탄생>을 토대로 하였다.

니체(1844-1900)는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다. 염세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영향을 받았다. 종교가 더이상 삶의 의미와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없다고 느끼고 예술에서 구원을 찾고자했다. 예술 중에서도 바그너의 음악을 찬양하였는데, 후기 니체는 두 인물을 비판하며 자신만의 철학체계를 세운다.

<비극의 탄생>(1872)은 니체의 첫 작품으로, 예술을 관조적 아폴론적 예술과 도취적 디오니소스적 예술로 설명한다. 니체의 시대는 중세 기독교가 막을 내리고 근대의 과학이 주류로 나서며 이성이 중시되었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며 기독교를 부정하고, 이성보다 감정에 호소하는 음악을 통해 세계의지와 하나가 되는 예술을 지향했다.

비극은 어떻게 탄생하였는가? 고대 그리스인들은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 올림포스 신들과 같은 찬란한 꿈의 가상을 만들어냈다. 아폴론 신은 규범과 질서를 부여하였지만, 그리스인들은 이를 무시하려는 디오니소스적 성향이 있었다. 니체는 그리스 비극이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이 결합하여 탄생하였다고 본다. 비극에서 전자는 서사이고, 후자는 합창이다. 현재 우리는 음악이 서사의 배경이라고 생각하지만, 니체는 음악이 본질이고 서사가 배경이라고 본다. 무서운 영화가 주는 공포는, 장면보다 음악이라는 저자의 설명이 이해가 된다. 합창은 관객을 디오니소스적 황홀경에 빠뜨린다. 관객이 비극을 보며 느끼는 쾌감은 고통에 사로잡힌 세계의지가 경험하는 쾌감이다. 이 쾌감을 통해 자신의 고통에서 해방된다. 이러한 그리스의 비극은 소크라테스의 주지주의를 이어받은 에우리피데스에 의해 몰락한다.

니체는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받아들였지만 이를 극복하고자했다. 쇼펜하우어는 개체들의 이면의 근원적 일자로서의 세계의지는 내적 갈등과 고통을 겪는데, 그 원인이 충족되지 않는 욕망에 있다고 보는 반면, 니체는 창조적 생명력을 세계의지가 막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며 차이를 보인다. 쇼펜하우어가 욕망을 부정하는 금욕주의만이 고통으로부터 구원을 가져온다고 한 반면, 니체는 자신의 힘을 발산하여 활력넘치는 삶을 사는 것이 최고의 윤리적 이상이라고 한다. 니체는 현상세계에서 도피하지 않고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니체는 오직 바그너 음악만이 디오니소스적인 생명력을 표현한다고 본다. 소크라테스주의를 신봉했던 에우리피데스는 연극에서 음악을 제거하고 서사만을 남겼기 때문에 음악과 분리된 언어를 통해서는 음악이 일으키는 도취를 경험할 수 없다. 니체는 이러한 소크라테스주의를 극복할 새로운 디오니소스적 음악을 바그너에서 찾았다. 그리스 비극정신의 회복이 필요했고, 바그너의 음악이 근원적인 생명력을 부활시켰다고 본다. 그러나 후에 니체는 바그너의 음악은 사람들을 마취할 뿐이라고 비판했다. 아쉽게도 다른 음악가가 아닌 왜 바그너인지, 또한 그의 음악의 어떤 부분이 디오니소스적 생명력을 표현하는지에 대한 언급은 없다.

전공자가 아닌 대중을 위한 책이지만 이해하기 상당히 어렵다. 니체에 관한 전반적인 설명이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연보나 일생에 대한 설명과 그의 작품들, 나아가 니체의 철학이 후대에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발전하게 되었는지도 궁금하다. 특히 책에서 주로 언급하는 쇼펜하우어와 바그너에 대한 니체의 태도가 왜 갑자기 비판적으로 바뀌게 된 것인지에 대한 사건이나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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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전 시집 :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윤동주가 사랑하고 존경한 시인 전 시집
백석 지음 / 스타북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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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앞에 유일하게 '천재'라는 수식어가 붙는 두 명 시인이 있다. 백석과 이상. 이상이 형태적으로 기존의 시 형식에서 벗어나고자 했다면 백석은 언어적으로 새로운 형식의 시를 창조하려고 부단히 노력한 시인이다(5)."

이렇게 유명한 시인인데 백석이라는 이름이 익숙하지 않은 것은 그가 북한의 시인이기 때문이다. 윤동주는 백석의 시집인 <사슴>을 구할 수 없어 직접 필사해 읽었다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되었는데, 백석은 시인들이 사랑한 시인이었다.

백석(1912-1996)은 일제강점기에 평북 정주에서 태어난 시인이자 소설가이자 번역가이다. 조선일보 장학생으로 도쿄의 아오야마 학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였고, 6개 국어에 능통했다. 독어, 영어,러시아어는 수준급이었고, 제일 못하는 것이 일본어였다고 한다. 구소련 문학가들의 작품을 다수 번역했다. 조선일보가 있는 서울과, 북한, 만주로 왔다갔다 일하다가 해방 이후 고향 정주에 정착하였다. 1958년 이후 부르주아 잔재에 대한 비판으로 활동이 위축되다 이듬해부터 다시 시를 쓰다 중단하다를 반복하다 1996년 사망했다.

1987년 월북 작가 해금 조치 이후로 그의 작품들이 소개되었다. 그의 작품은 평북 지방을 비롯한 여러 지방의 사투리와 옛것을 소재로 삼아 향토주의 정서를 바탕으로 한다.

이 책은 3부로 구성되어있다. 1936년 발행한 <사슴>과 1945년 해방 이전과 해방 이후의 시로 나누어 소개하고 있다.

<사슴>을 포함한 해방 이전 작품의 시어는 옛말은 물론 평북지방의 사투리가 많아 주석이 없이는 거의 이해하기 어렵다. 등장하는 전래 음식도 전혀 들어본 적이 없고 설명을 봐도 살짝 상상하기 어렵다. 남북으로 갈라진 이후에 언어는 물론 문화까지 너무 많이 달라져서 통일이 된다해도 서로 소통은 제대로 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이 들 정도다.

제목과 같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해방이전 시 중의 하나다. 나타샤가 누구일까 궁금해 찾아보니 의견이 분분하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나오는 나타샤 로스토바처럼 일반적인 러시아 여성이라고도 하고, 백석이 사랑했던 기명이 자야인 김영한을 의미한다고도 한다. 김영한은 법정스님에게 길상사를 짓게하고 죽으며 이를 시주한 것으로 유명하다. 나타샤가 누군지와 상관없이 그저 시만 읽어도 꽤나 낭만적이고 사랑이 넘친다.

해방이후의 시는 해방이전의 시보다 양도 많지 않고 내용도 사뭇 다르다. 공산주의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표현되어 있기도 하고, 국영농장에서 일을 할 때인지 '생산 계획', '증산의 결의', '사회주의 건설의 길', '모범농민', '혁명'과 같은 시어들이 대거 등장하여서 앞서 읽었던 향토적이고 낭만적인 시들의 느낌과는 사뭇 다르다.

시인에 대해 서문과 연보를 통해 간단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좀더 상세한 시대상황이나 함께 활동했던 시인들이나 주변인물들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해주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시 또한 작시 연도가 함께 표기되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

백석에 대한 궁금증을 일으키는 시집이다. 그에 대해 좀더 알아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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