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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에 예술을 들일 때, 니체 - 허무의 늪에서 삶의 자극제를 찾는 철학 수업 ㅣ 서가명강 시리즈 32
박찬국 지음 / 21세기북스 / 2023년 8월
평점 :
마음의 주도권을 되찾을 수 있게하는 니체의 통찰
서가명강의 책이다. 서울대 철학과 박찬국 교수는 니체와 하이데거를 비롯한 실존철학을 연구한다. 이 책은 니체가 28세에 고전문헌학 교수로 있으면서 그리스 비극을 통해 예술의 기원과 본질, 나아가 인간을 탐구한 <비극의 탄생>을 토대로 하였다.
니체(1844-1900)는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다. 염세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영향을 받았다. 종교가 더이상 삶의 의미와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없다고 느끼고 예술에서 구원을 찾고자했다. 예술 중에서도 바그너의 음악을 찬양하였는데, 후기 니체는 두 인물을 비판하며 자신만의 철학체계를 세운다.
<비극의 탄생>(1872)은 니체의 첫 작품으로, 예술을 관조적 아폴론적 예술과 도취적 디오니소스적 예술로 설명한다. 니체의 시대는 중세 기독교가 막을 내리고 근대의 과학이 주류로 나서며 이성이 중시되었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며 기독교를 부정하고, 이성보다 감정에 호소하는 음악을 통해 세계의지와 하나가 되는 예술을 지향했다.
비극은 어떻게 탄생하였는가? 고대 그리스인들은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 올림포스 신들과 같은 찬란한 꿈의 가상을 만들어냈다. 아폴론 신은 규범과 질서를 부여하였지만, 그리스인들은 이를 무시하려는 디오니소스적 성향이 있었다. 니체는 그리스 비극이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이 결합하여 탄생하였다고 본다. 비극에서 전자는 서사이고, 후자는 합창이다. 현재 우리는 음악이 서사의 배경이라고 생각하지만, 니체는 음악이 본질이고 서사가 배경이라고 본다. 무서운 영화가 주는 공포는, 장면보다 음악이라는 저자의 설명이 이해가 된다. 합창은 관객을 디오니소스적 황홀경에 빠뜨린다. 관객이 비극을 보며 느끼는 쾌감은 고통에 사로잡힌 세계의지가 경험하는 쾌감이다. 이 쾌감을 통해 자신의 고통에서 해방된다. 이러한 그리스의 비극은 소크라테스의 주지주의를 이어받은 에우리피데스에 의해 몰락한다.
니체는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받아들였지만 이를 극복하고자했다. 쇼펜하우어는 개체들의 이면의 근원적 일자로서의 세계의지는 내적 갈등과 고통을 겪는데, 그 원인이 충족되지 않는 욕망에 있다고 보는 반면, 니체는 창조적 생명력을 세계의지가 막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며 차이를 보인다. 쇼펜하우어가 욕망을 부정하는 금욕주의만이 고통으로부터 구원을 가져온다고 한 반면, 니체는 자신의 힘을 발산하여 활력넘치는 삶을 사는 것이 최고의 윤리적 이상이라고 한다. 니체는 현상세계에서 도피하지 않고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니체는 오직 바그너 음악만이 디오니소스적인 생명력을 표현한다고 본다. 소크라테스주의를 신봉했던 에우리피데스는 연극에서 음악을 제거하고 서사만을 남겼기 때문에 음악과 분리된 언어를 통해서는 음악이 일으키는 도취를 경험할 수 없다. 니체는 이러한 소크라테스주의를 극복할 새로운 디오니소스적 음악을 바그너에서 찾았다. 그리스 비극정신의 회복이 필요했고, 바그너의 음악이 근원적인 생명력을 부활시켰다고 본다. 그러나 후에 니체는 바그너의 음악은 사람들을 마취할 뿐이라고 비판했다. 아쉽게도 다른 음악가가 아닌 왜 바그너인지, 또한 그의 음악의 어떤 부분이 디오니소스적 생명력을 표현하는지에 대한 언급은 없다.
전공자가 아닌 대중을 위한 책이지만 이해하기 상당히 어렵다. 니체에 관한 전반적인 설명이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연보나 일생에 대한 설명과 그의 작품들, 나아가 니체의 철학이 후대에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발전하게 되었는지도 궁금하다. 특히 책에서 주로 언급하는 쇼펜하우어와 바그너에 대한 니체의 태도가 왜 갑자기 비판적으로 바뀌게 된 것인지에 대한 사건이나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