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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의 증언 - 미제 사건부터 의문사까지, 참사부터 사형까지 세계적 법의인류학자가 밝혀낸 뼈가 말하는 죽음들
수 블랙 지음, 조진경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3년 8월
평점 :
"뼈에는 한 사람의 인생이 새겨져 있다(8)"
저자는 해부학자이자 법의인류학자다. 뼈를 통해 죽은 사람의 신원을 파악하고, 사망원인과 방법을 밝혀내는 일을 한다. 억울하게 죽은 살인사건의 피해자나 대규모 자연재해나 화재로 신원미상인 사람들의 신원을 밝히는 일을 한다. 인체의 뼈가 증언하는 이야기를 들어보자.
책은 3부로 머리, 몸통, 사지로 되어있다. '머리'에는 뇌상자와 얼굴이, '몸통'에는 척추와 가슴, 목이, '사지'에는 팔이음뼈, 다리이음뼈, 긴뼈, 손, 발이 포함된다. 각 뼈는 엄마의 뱃속에서 언제 어떻게 생겨나는지부터, 어떤 모양을 하고 있고 어떤 기능을 하는지 의학적으로 설명한 후에 해당 뼈와 관련된 살인사건의 해결을 이야기한다.
뼈를 만나려면 죽은 후에 가능하다. 법의인류학자(forensic anthropologist)는 의료법적 목적을 위해 유골을 연구한다. 먼저 유골이 인간의 것인가, 법의학적 관련성이 있는가(사망한지 70년이 넘는다면 법의학적 의미가 없고 고고학적 유물로 간주된다), 유골이 인간의 것이고, 최근에 사망하였다면 그가 누구인지, 사망의 원인과 방식을 뒷받침할 수 있어야한다. 법의학이 도움이 될 수 없을 때 법의인류학이 최후의 수단이 된다.
하나의 뼈에 딸려오는 뼈 주인의 인생과 비극적인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소설보다 더 소설같다. 뼈과학자가 억울한 죽음을 밝히는 과정에서 인간이 얼마나 잔인하게 인간을 죽이는지 소름끼친다. 놀랍게도 한국인 진효정 사건이 언급된다. 영국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여행가방에서 발견된 거의 벌거벗은 여성은 질식사한 것으로 밝혀진다. 저자에게 피해자의 나이와 민족적 태생에 대한 확인을 의뢰받았고, 사실과 매우 가까이 밝혀낸다. 아동학대로 숨진 5살 아이의 뼈에 남겨진 골절과 과거 부러지고 회복된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사실이 가슴아프다. 욕실벽에 머리카락과 혈흔이 발견된 것으로보아 두개골 골절부터 팔다리와 손가락 골절 왼쪽 발뼈의 골절, 두 번의 갈비뼈 골절은 아버지의 폭력성을 드러낸다.
다리뼈에 나타나는 해리스선은 아이들이 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경우 비스듬한 선으로 남는다. 방학에 와서 아들을 돌보았던 친할아버지의 성폭행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한 아이의 다리뼈에눈 해리슨선이 몇 줄 보인다. 저자는 자신의 과거도 솔직히 고백하며 자신의 다리에도 해리스선이 있을 것이라고해서 안타깝다.
저자의 일과 관련한 에피소드도 흥미롭다. 이탈리아에서 벌어진 '테라초의 괴물'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 부패가 진행중인 두개골을 가지고 스코틀랜드로 가야했다. 이탈리아에서 영국을 거쳐 스코틀랜드로 가는 모든 검색에서 편지를 내밀면 어느 누구도 짐을 스캔하거나 검사하자고 하지 않았고, 기내에서는 격리되어 전염병환자 취급을 받았다고 하소연한다. 또한 카타르 정부가 비밀리에 진행한 시리아 대량학살에 고문이 있었음을 증명하는 사진이 진짜임을 확인하는 일을 맡았다. 사건의 비참함과는 다르게 일등석을 타고 고급호텔에 머물며 일한 이야기도 스릴이 있다.
흥미로운 해부학적 지식을 많이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제1목뼈는 머리를 받혀주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게 하고, 제 2 목뻬는 목을 좌우로 움직일 수 있게한다. 흉부는 약해서 두개골과 함께 폭행이 가장 집중적으로 가해지는 부위이다. 사람과 돼지의 갈비뼈는 매우 흡사하다. 죽기 전 골절은 치유의 흔적이 보이고 사망 당시 또는 사망 후 골절에는 그 흔적이 없다. 성인의 200개 이상의 뼈 중 1/4이 넘는 최소 54개의 뼈가 양손에 있다. 발은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분하는 인간의 특징이다.
저자는 뼈에 관한 의학적 설명을 하지만, 살인해결에 그 뼈가 어떻게 도움이 되었는지를 이야기하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다. 지루할 틈이 없는 책이다. 또한 개인적인 이야기도 사이사이 있어서 다 읽고 나면 저자를 잘 아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다. 가장 감동적인 것은 후기에 쓴 글이다. 죽으면 자신의 몸은 해부용으로 쓰고, 해부 수업이 다 끝난 후에는 자신의 뼈를 교수용 해골로 만들어 달라고 적는다. 죽어서도 가르치고 싶다는 소망이 감동적이다.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