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홉 명작 단편선 2 체홉 명작 단편선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지음, 백준현 옮김 / 작가와비평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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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파블로비치 체홉(1860-1904)은 러시아의 사실주의 소설가이자 극작가이다. 의대생 시절부터 용돈 벌이로 단편을 쓰다가 중편, 희곡으로 영역을 넓혀갔다. 르포르타주 <사할린 섬>을 통해 제정러시아의 감옥제도의 실태를 담은 작품도 내놓았다. <갈매기>, <바냐 아저씨>, <세 자매>, <벚꽃 동산>은 그의 4대 희곡으로 무대에 올려 성공을 거두었다. 500여 편의 작품을 남기고, 44세에 결핵으로 사망하였다.

이 책에는 체홉의 단편 7편을 실었다. <뚱뚱이와 홀쭉이>, <카멜레온>은 관료주의에 복종하는 인간상을 풍자하였고, <아뉴따>, <약사의 아내>, <불행>에서는 자아실현을 하지 못하고 답답해하는 여성상을 그리고, <목위의 안나>에서는 어느 정도 자아를 실현한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고, <약혼녀>에서는 마침내 전통을 뿌리치고 공부를 하기 위해 도시로 탈출하는 여성을 그렸다.

인간의 모습을 관찰하며, 어리석음을 꼬집는 체홉의 글은 노골적이지 않고 그저 던져만 준다. <뚱뚱이와 홀쭉이>에서는 아무리 격이 없던 친구라도 오랜만에 만나 직급이 자신보다 높음을 확인한 후에는 바로 비굴해지는 모습을 보며 안타깝다. <카멜레온>에서는 사람의 손가락을 문 개의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 잘잘못의 책임을 바꾸는 경찰서장의 태도가 우스꽝스럽다. 독자는 가만히 읽으면서 판단을 내리지만 체홉은 그저 제시만한다. 그래서 19세기 말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진부하지 않고 세련되어 보인다.

무엇보다 여성의 이야기를 많이 다루는 점이 특이하다. 경직된 19세기 말 러시아 사회에서 저자는 여성의 지위가 높지 않다고 생각한 듯하다. 여성들은 지위를 높이기 위해 능력을 길러야하고, 그러기 위해 여성 역시 배워야하고 일해야한다는 저자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약혼녀>의 나쟈는 결혼을 앞둔 처녀이다. 전통적으로 결혼해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살아가는 할머니, 어머니 세대를 보면서 답답함을 느끼던 차에 싸샤의 조언으로 갈등을 하다가 그와 함께 모스크바로 떠난다. 문득 영화<맘마미아>의 마지막 장면에서 결혼을 앞둔 딸이 섬을 떠나는 모습이 연상된다. 나쟈는 모스크바에서 더 성숙해지는 자신을 느끼며 다시는 고향에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 다짐한다.

러시아 문학은 읽은 적이 없어서 러시아 인명과 지명에 낯설었지만 신선하다. 19세기 말 러시아인들의 삶의 모습을 단편으로 응축적으로 재치있게 표현한 체홉의 작품은 뭔가 이야기마다 숨겨둔 교훈이 있어 보인다. 매 작품마다 작가가 말하려는 것이 무엇일까를 잠시 생각하게 한다. 유머와 재미를 잃지 않는 작품이어서 누구든 즐길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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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지 않고도 행복할 수 있다면 - 여행자 오소희 산문집
오소희 지음 / 북라이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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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겠지!>로 처음 저자를 만났다. 해외 여행지에서 개미를 한참 들여다 보고 있는 아이를 재촉하지 않는 엄마의 모습에 놀랐다. 하나라도 더 보여 주려고 아이를 재촉했을 나였기에 이 사람 특이하다는 기억이 었다. 그 것이 2009년 작이었는데 십 년도 넘어서 다시 만나게 된 작가는 어떨까? 어떻게 변해있을까? 그 아들은 얼마나 컸을까?

긴 여행에서 돌아와 정착할 자기 집을 짓는 사람처럼 이야기는 혼자서 집을 짓는다는 것으로 시작한다. 혼자서 디자인하고 인테리어해나가는 과정이 이야기의 진행에 따라 살짝씩 곁들여진다. 그간 어디를 더 다녔을까 궁금해서 책 날개의 작가 소개를 보니 여러 곳을 다녔고, 여러 책을 펴냈다. 이제 자기 집을 지으며 떠나지 않고도 행복할 수 있기를 소망하는 것 같다. 집은 작년 말에 완성되었으니 완성된 집 전경 사진을 은근히 기대했으나 결국 보여주지 않는다. 이야기에 나오는 부분 부분만 볼 수 있을 뿐이다.

무엇보다 달라진 저자가 놀랍다. 뭔가 할 말은 많지만 많이 하지는 않겠다는 우수에 젖은 듯한 여운이 느껴지는 것이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겠지!>였다면, 이 책에서는 적극적이고 발랄한 모습이다. 우붓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현지인처럼 살았고, 지금은 적극적으로 집을 짓는다. 전문가가 손사레치는 타일을 고르고, 천장의 전구를 수십 개 다는 것으로 과거 여행의 좋았던 느낌을 집으로 옮겨오는 작업을 하는 듯하다. 완공 후에도 1층을 공유하는 공간으로 만들어 모임을 만들고, 잠시도 쉬지 않고 활동하는 것 같다. 작가의 말대로 열심히 자신을 굴리는 중이다.

이야기의 구성은 현재에 무엇인가가 과거 여행에서 있었던 일을 떠오르게 하는 식으로 전개된다. 집짓기를 하면서 운동기구로 무엇을 들여놓을까 고심하다 해먹을 설치한다. 우붓에서 했던 여러 요가 중에서 플라잉 요가를 하며 복받쳤던 느낌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해먹만 보면 그 감상을 떠올리고, 떠나온 여행지이지만 언제고 그 시간을 떠올릴 수 있는 매개체가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일 것이다.

철학적이고 인생에 대한 이야기도 한다. 한국에서 무엇하나 불편함 없이 살다가 조금 불편한 해외에 나가 살다보면 처음에는 현지의 불편함에 투덜거리다가도 곧 적응하며 떠나온 곳에서 누릴 수 없는 것들을 만끽한다. 우붓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처음에는 느린 인터넷과 부족한 듯 적은 양의 음식으로 결핍과 불편을 느끼다가 이러한 간촐함이 24시간 빠른 인터넷과 온라인 배달 앱에 빠져 과잉의 삶을 살았던 한국에서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서울에 돌아와서 스마트폰에서 벗어나 걷고자 하고 사람들과 만나려는 노력으로 변화한다.

궁금했던 아들의 이야기는 조금 나오고 말아 아쉽다. 이미 대학생이 되었고, 우붓 보육원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일도 하는 의젓한 20대가 된 듯하다. 둘이서 하는 여행이 그 후에도 많았던 듯한데, 아들에게 좋은 여행 동반자여서 고마웠다는 편지가 쿨하다.

이 책은 사이즈조차 평범함을 거부한다. 일반책을 길이로 반을 자른 듯 폭은 좁고 길이는 길다. 중간 쯤 읽으면 잘 펴지지가 않아 요리조리 돌려가며 읽어야한다. 그 안에 운문처럼 짧게 끊어 쓴 문체와 아하!를 연발하게 하는 통찰력이 곳곳에 있어서 즐겁다.

떠나지 않고도 행복할 수 있다면? 떠나야 행복했던 사람이라도 여태 떠나온 길에서 있었던 일들을 반추하며 추억에 잠길 수 있다면 떠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 저자는 언제 떠날 지 모르겠지만 현실에 정착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는 듯하다. 오랜만에 만난 저자의 책이라 반갑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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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 힐링에서 스탠딩으로!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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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에서 추천한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읽다가 잠시 쉬는 마음으로 집어든 것이 이 책이다. 어찌된 일인지 이 책은 <자유론>의 해설서같다. 밀이 말하는 자유는 자기 식대로 사는 것이다. 누가 시키는 대로, 혹은 무엇인가에 얽매어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진두지휘할 수 있는 인생을 사는 것이다. 유시민은 이 책에서 줄곧 자유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 화두처럼 질문을 던진다. 유시민은 나답게 살기 위해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지식과 정보를 나누는 일을 하며 살겠다고 답한다. 오래 전부터 정치는 하지 않겠다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한 대로 정치는 자기와 맞지 않는다고 고백한다. 글쓰는 일이 마음 설레고 하고 싶은 일이란다. 그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내리는데 도움을 준 것이 <자유론>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아가 과연 나는 내가 무엇을 할 때 가장 즐거우며 가슴 설레일까를 고민해본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죽음은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준비하는 것이라는 말이 와 닿는다. 의술의 발달로 연명치료가 이루어지고 있다. 철학적 사고를 하는 나는 죽었는데 생물학적 나는 살아있을 때 의료기술의 도움으로 몇 년이고 연장해서 산다. 과연 의미가 있을까? 스티븐 호킹박사와 라몬 삼페드로의 결정을 비교한다. 호킹 박사는 루게릭병으로 사지가 마비되어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우주에 대한 호기심으로 50세까지 살았다. 반면 라몬 삼페드로는 사고로 사지가 마비되자 자신의 존엄을 위해 안락사를 요구한다. 두 경우 모두 개인의 결정이다. 자살이나 안락사는 종교지도자, 의사, 지식인에 의해 옳지 않은 것으로 반박되지만, 인간은 신의 뜻을 구현하는 도구도 아니고, 도덕과 법률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도 안된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자유결정을 존중해줘야한다. 안락사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수긍하고 있었지만, 자살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못하고 비난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럴 필요가 없음을 이해한다. 남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다면 개인의 자유로운 결정은 비난받기 보다 존중되어야 한다. 조목조목 논리적이다.

이렇게 심각한 이야기도 있지만, 저자 개인의 이야기도 많이 등장한다.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을 학생운동 시절 잡혀서 고문을 당하며 맞지 않기 위해 엄청 써내려간 글을 읽고 고문관이 칭찬한다. 그 때 자신이 글쓰기 재주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는 것이 흥미롭다. 그 후 그 유명한 항소이유서를 쓰고, 온갖 성명서도 쓰다가 자신이 글쓰기를 즐긴다는 것을 각성하는 과정이 흥미롭다.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명감으로 보낸 젊은 시절이지만 광주에서 죽어간 이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비출 때에는 짠하다.

다양한 철학자, 소설가, 정치가, 과학자들의 이야기가 등장하지만 박식하고 잘 정리된 문체로 이해가 쉽다. 가족이야기, 유학 이야기, 취미이야기, 노화이야기를 들으면 또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처럼 가까워진 느낌이다. 노년의 롤모델로 리영희와 버나드 쇼를 꼽는다. <전환시대의 논리><우상과 이성><대화>와 같은 저서를 남긴 언론인 리영희는 자기 주장을 하기 보다 남의 말에 경청했다. 버나드 쇼는 글쓰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88세에 <쇼에게 세상을 묻다>를 썼다. 그 들의 책을 찾아 읽어봐야겠다.

이 책을 통해 사는 것과 죽는 것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었다. 저자가 질문을 던지고 자신의 답을 찾아 나가듯 독자도 내 답을 찾아나가는 시간이다. 한국 현대사의 파란만장했던 한 부분 속에서 외면하지 않고 동참했던 개인의 고뇌와 갈등을 이해할 수 있다. 젊어서 진보였다가 보수로 바뀌는 사람이 많지만 계속 진보이고 싶다는 저자의 고백이 멋지다. 여러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자기와 만날 수 있는 책이다.

"세상에 대해, 타인에 대해, 내가 하는 일에 대해, 내 자신에 대해서도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한다. 그러면 좌절감, 패배의식, 상실감, 절망감 등 부정적 감정을 통제하고 조절하는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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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질병을 찾아내는 책 - 1분 자가진단 테스트
시미즈 키미야 지음, 장은정 옮김 / 쌤앤파커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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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질환의 대표적인 것이 녹내장, 백내장, 망막박리, 황반변성이다. 이들은 소리 없이 찾아오기 때문에 자주 검사를 해서 내 눈이 괜찮은지 여부를 판단해야한다. 그렇다고 안과를 자주 방문하기도 그렇고, 스스로 진단할 수 있는 테스트지가 있다면 좋겠다. 이 책은 그런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이 책으로 주기적으로 진단해보고 의심된다면 안과에 가면 된다.

책은 7개의 파트로 구성되어있다. 1 실명에 이를 수 있는 안질환, 녹내장, 2 안개가 낀 것처럼 흐리게 보인다면, 백내장, 3 노화 외에도 원인은 있다, 노인황반변성, 4 시력이 갑자기 뚝 떨어진다면, 망막열공/ 망막박리, 5 단순히 눈의 피로 때문이 아니다, 안구건조증, 6 어깨 결림, 두통, 피로를 동반하는 눈꺼풀 처짐, 7 결코 가벼울 수 없는 불편함, 노안. 파트1에서 4까지는 심각한 안질환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고, 5에서 7까지는 노화로 인해 발생하는 증상정도에 대해 설명한다.

30세 부터 눈의 노화가 시작된다. 눈의 노화에 따른 안질환을 조기 발견하려면 이 책으로 매달 1회씩 테스트해보라고 권한다. 반드시 한쪽 눈을 가리고 한쪽 눈으로 검사한다. 백내장, 망막열공, 망막박리 등은 조기 발견하여 수술하면 대부분 본래의 시력을 되찾을 수 있고, 녹내장과 노인황반변성은 증상의 진행을 막을 수 있다. 반면, 안구건조증은 점안액으로, 눈꺼풀처짐은 눈꺼풀을 올리는 수술로, 노안은 안경으로 비교적 간단하게 불편함을 해결할 수 있다.

노화로 인한 안질환이 왜 생기는지, 어떠한 증상이 있는지를 알려주는 것은 기본이고, 테스트 후에 이상증상이 발견되었을 때 병원에 가면 어떠한 식으로 치료/수술을 하는지도 상세히 그림으로 알려주는 점이 독특하다. 알고 가면 불안감을 덜 수도 있겠다. 무엇보다 눈이 피로하지 않도록 스마트폰/컴퓨터 사용을 줄이거나, 눈을 다치지 않도록 조심해야한다.

나이든 사람들을 위한 자가진단책이어서인지 글자체도 크고 글밥도 그리 많지 않아 읽기 쉽다.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볼드체로 되어 있어 핵심만 파악하기도 편하다. 무엇보다 가까이 두고 눈과 관련된 병이 발생하기 전에 진단을 해 볼 수 있다는 것이 편리하다.

노화로 인한 눈의 질병을 자가 진단하고 싶다면 필요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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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 갔었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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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신경숙의 여덟 번째 장편소설이다. 신경숙의 작품은 처음이다. 그 유명한 <엄마를 부탁해>도 읽지 않은 상태에서 <아버지에게 갔었어>를 읽는다.

글을 읽을 수록 저자의 '자전적 수필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너무나 상세한 인물과 주변 묘사가 자연스럽다.

아버지가 우셨다는 말에 나는 아버지가 계신 고향 J시에 간다. 엄마는 위암으로 서울에서 치료 중이다. 나는 딸 아이를 잃은 지 5년이 넘었는데도 일상이 힘들다. 과묵한 아버지 곁에 지내면서 아버지를 지켜보고, 집안에 있는 나무 궤짝에 든 편지와 아버지에 대한 가족들의 인터뷰를 통해 몰랐던 아버지에 대해 하나둘 알아간다. 대를 잇기위해 6.25 전쟁터에 나가지 않도록 아버지의 검지를 자른 어른들, 빨치산과 국군 사이에서 죽어가는 사람들, 4.19혁명에서 실탄에 쓰러지는 사람들을 목격한 아버지는 밤마다 무언가에 쫓기듯 집안 여기저기 숨을 곳을 찾아 잠이 든다. 역사의 아픔이 개인의 머리에 그대로 각인되어 뇌가 늘 깨어 있는 것이다. 엄마 외에 다른 여성이 있었다. 젊은시절 아버지는 돈 벌러 간 서울에서 데모를 하던 대학생 순옥이를 구해주며 로맨스가 있었고, 잠시 그녀와 살림을 차렸다가 큰 오빠를 대동한 고모의 손에 이끌려 돌아온다. 아버지의 심정과 순옥이의 그 후의 삶은 끝까지 묘사가 없다.

아버지는 엄격하지만 의리가 있는 사람이다. 세째가 고등학교에 떨어지고 가출하자 찾아내 밥을 먹인 후 회초리를 들며 다시는 도망치지 말라고 이를 때는 엄하다. 그러나 느리고 모자란 웅이와 낙천이 아저씨를 일군으로 들인다.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에게 소 한 마리씩을 주고 혼자 설 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자신 때문에 6.25때 다친 무릉이 형을 말없이 보살핀다.

여섯 명의 자식들에게 감사하고 미안하다는 말을 적게하는 아버지의 말이 인상적이다. 늘 잘 해주고자 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고 여러 형제 중에서 쳐지는 자식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 또한 부모의 마음이다. 여섯 명의 아이들에게 연관된 추억의 물건을 남기는 장면이 뭉클하다.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목이 메이거나 격한 감정을 일으키거나 하지는 않는다. 담담하다. 아버지도 한 때 꿈많은 젊은이었고, 가족을 위해 고군분투하였지만, 늦게 찾아온 사랑을 접어야만 했다. 이러한 이야기를 우회하여 알게 된 주인공은 자신이 아버지에게 많이 무심했음에 마음 아파한다. 자신의 죽은 딸 아이에만 집중되어 있던 아픔이 아버지를 통해 치유되는 것이 아닌가한다.

이야기가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를 찾아가는 스타일이라 이야기의 궁금증을 초반에 배치하고 이유는 나중에 알려준다. 궁금함을 안고 책을 읽다보면, 무심하게 어느 구절에서 힌트를 주거나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마지막장에 이르러서야 공개한다. 추리를 하며 읽어야하는 점에서는 책을 놓을 수 없지만 답답한 느낌이 든 것은 사실이다. 왜 아버지가 밤마다 숨어야한다고 피해다니시는지, 주인공 헌이는 딸을 어쩌다가 잃었는지, 무릉이 형과의 관계는 어떻게 형성된 것인지... 궁금증을 가지고 끝까지 읽게하는 장치이지만 적응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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