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지 않고도 행복할 수 있다면 - 여행자 오소희 산문집
오소희 지음 / 북라이프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겠지!>로 처음 저자를 만났다. 해외 여행지에서 개미를 한참 들여다 보고 있는 아이를 재촉하지 않는 엄마의 모습에 놀랐다. 하나라도 더 보여 주려고 아이를 재촉했을 나였기에 이 사람 특이하다는 기억이 었다. 그 것이 2009년 작이었는데 십 년도 넘어서 다시 만나게 된 작가는 어떨까? 어떻게 변해있을까? 그 아들은 얼마나 컸을까?

긴 여행에서 돌아와 정착할 자기 집을 짓는 사람처럼 이야기는 혼자서 집을 짓는다는 것으로 시작한다. 혼자서 디자인하고 인테리어해나가는 과정이 이야기의 진행에 따라 살짝씩 곁들여진다. 그간 어디를 더 다녔을까 궁금해서 책 날개의 작가 소개를 보니 여러 곳을 다녔고, 여러 책을 펴냈다. 이제 자기 집을 지으며 떠나지 않고도 행복할 수 있기를 소망하는 것 같다. 집은 작년 말에 완성되었으니 완성된 집 전경 사진을 은근히 기대했으나 결국 보여주지 않는다. 이야기에 나오는 부분 부분만 볼 수 있을 뿐이다.

무엇보다 달라진 저자가 놀랍다. 뭔가 할 말은 많지만 많이 하지는 않겠다는 우수에 젖은 듯한 여운이 느껴지는 것이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겠지!>였다면, 이 책에서는 적극적이고 발랄한 모습이다. 우붓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현지인처럼 살았고, 지금은 적극적으로 집을 짓는다. 전문가가 손사레치는 타일을 고르고, 천장의 전구를 수십 개 다는 것으로 과거 여행의 좋았던 느낌을 집으로 옮겨오는 작업을 하는 듯하다. 완공 후에도 1층을 공유하는 공간으로 만들어 모임을 만들고, 잠시도 쉬지 않고 활동하는 것 같다. 작가의 말대로 열심히 자신을 굴리는 중이다.

이야기의 구성은 현재에 무엇인가가 과거 여행에서 있었던 일을 떠오르게 하는 식으로 전개된다. 집짓기를 하면서 운동기구로 무엇을 들여놓을까 고심하다 해먹을 설치한다. 우붓에서 했던 여러 요가 중에서 플라잉 요가를 하며 복받쳤던 느낌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해먹만 보면 그 감상을 떠올리고, 떠나온 여행지이지만 언제고 그 시간을 떠올릴 수 있는 매개체가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일 것이다.

철학적이고 인생에 대한 이야기도 한다. 한국에서 무엇하나 불편함 없이 살다가 조금 불편한 해외에 나가 살다보면 처음에는 현지의 불편함에 투덜거리다가도 곧 적응하며 떠나온 곳에서 누릴 수 없는 것들을 만끽한다. 우붓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처음에는 느린 인터넷과 부족한 듯 적은 양의 음식으로 결핍과 불편을 느끼다가 이러한 간촐함이 24시간 빠른 인터넷과 온라인 배달 앱에 빠져 과잉의 삶을 살았던 한국에서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서울에 돌아와서 스마트폰에서 벗어나 걷고자 하고 사람들과 만나려는 노력으로 변화한다.

궁금했던 아들의 이야기는 조금 나오고 말아 아쉽다. 이미 대학생이 되었고, 우붓 보육원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일도 하는 의젓한 20대가 된 듯하다. 둘이서 하는 여행이 그 후에도 많았던 듯한데, 아들에게 좋은 여행 동반자여서 고마웠다는 편지가 쿨하다.

이 책은 사이즈조차 평범함을 거부한다. 일반책을 길이로 반을 자른 듯 폭은 좁고 길이는 길다. 중간 쯤 읽으면 잘 펴지지가 않아 요리조리 돌려가며 읽어야한다. 그 안에 운문처럼 짧게 끊어 쓴 문체와 아하!를 연발하게 하는 통찰력이 곳곳에 있어서 즐겁다.

떠나지 않고도 행복할 수 있다면? 떠나야 행복했던 사람이라도 여태 떠나온 길에서 있었던 일들을 반추하며 추억에 잠길 수 있다면 떠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 저자는 언제 떠날 지 모르겠지만 현실에 정착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는 듯하다. 오랜만에 만난 저자의 책이라 반갑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