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트 - 가장 민주적인 나라의 위선적 신분제
이저벨 윌커슨 지음, 이경남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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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로 미국 언론사상 퓰리처상을 받은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이다. 이 책의 원제는 <Caste: the origins of our discontents>다. '카스트'는 포르투갈어 카스타(Casta)에서 나온 것으로, '세계 각지의 정교하게 고착화된 신분 질서제도'를 의미한다.

"오래된 집들이 다 그렇듯, 미국에도 보이지않는 골격이있다. 바로 카스트 체제다. 카스트 체제는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샛기둥이나 바닥장선처럼 집의 핵심 구성요소로 작용한다. 카스트는 분열의 기반을 이루는 미국의 하부구조다. 그것은 인간을 나누는 위계 구조로, 미국의 경우 400년 된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잠재의식 속 규약이다. 카스트를 들여다본다는 것은 이 나라에 엑스레이를 들이대는 일이다." (36)

저자는 미국의 카스트는 겉으로 보이지 않지만 미국사회에 깊이 박혀있다고 주장한다. 17세기 초 유럽계 백인들이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아프리카에서 데려온 흑인을 노예로 최하층 카스트에 가둔 이래 1865년 노예해방이 되었지만, 지금까지도 흑인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숨어있다.

인류 역사상 세 개의 카스트가 있다고 말하는데, 인도의 카스트, 나치의 카스트와 미국의 카스트 체제이다. 인도의 카스트는 조상에 의해 구분되지만, 미국의 경우 피부색이라는 신체상의 특징으로 구분한다. 놀랍게도 나치는 미국의 인종간 결혼금지법을 참조해서 유대인과 차별을 두는 '아리안 혈통 보호법'을 만들었다고 한다. 처음 듣는 얘기라 적잖이 충격이다. 저자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인도의 불가촉천민과 같은 집단으로 뼛속깊이 차별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퍼 리의 1960년 작인 <앵무새 죽이기(To Kill a mocking bird)>의 장면들이 떠오른다. 백인 처녀를 성폭행했다는 누명을 쓴 흑인의 무죄를 백인 변호사가 증명하지만, 백인 배심원단은 유죄 판결을 내린다. 20세기 중반까지도 흑인에 대한 차별은 심했고, 평등해야할 법원에서도 평등하지 못했던 흑인들은 이 책에서 언급한 대로 법원 2층에서 판결을 지켜봐야했다. 소설의 배경이 남부인 앨러버머로 인종차별이 심했던 지역이었다는 것을 감안해도, 지금으로부터 불과 60여년 전에 이렇게 노골적인 차별이 존재했고 지금까지도 이어진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이 소설에서 강조하는 것이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어보는 것,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것'이다. 특히 지배 카스트인 백인의 공감능력을 발휘해야 이러한 차별이 없어질 것이다.

여러모로 독일의 태도는 바르다. 나치의 잘못을 철저히 반성한 독일은 가해자는 교수형에 처하고,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에겐 배상금을 지불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흑인 가해자들이 처벌받지 않고 활개치고 다니거나 미국 남부는 남부연합기념물을 철거하는데에도 강력한 반발에 부딪치곤한다. 반성할 줄 모르는 나라인 미국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일제강점기의 일본과 우리나라의 상황이 연상된다.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고 은폐 왜곡하려는 일본과 친일세력이 처벌받지 않고 현재에도 권력을 유지하는 우리나라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글의 흐름이 좋아 잘 읽히는 편이지만 진도가 팍팍 나가지는 않는다. 딱딱한 내용인데다 봇물터지듯 쏟아내는 다양한 에피소드가 소설처럼 상세한 묘사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어려운 부분은 쉽게 비유를 들고 예를 들어 설명하여 이해를 돕지만, 사례가 좀 많은 편이다. 저자역시 최하위 카스트에 속해 있기 때문에 사소한 생활 속이나 공식적인 업무에서 그 차별을 자주 느꼈을 것이라 미루어 짐작한다.

미국인이라면 어느 정도 기본 지식을 깔고 읽을 내용이라 가슴에 와 닿겠지만 우리는 피부색이 그리 다르지 않은 민족이라 그 차별을 이해하는데에 노력이 필요하다. 미국 흑인이 가지는 최하층 카스트의 개념이 사라지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행동이 필요해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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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기억은 과거를 편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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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알고 싶은 영어책 : 매운맛 Vol.1 - 수백만 영포자가 믿고 배우는 유진쌤 영문법 수업 바른독학영어(바독영) 시리즈 2
피유진 지음 / 서사원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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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는 글에서 저자가 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크라센을 언급한 것을 보면, 이 책이 문법책이지만 독해를 위해 알아야할 문법을 다루고 있다고 보인다. 말하고, 듣고, 읽고 쓰는데 어휘와 문법은 기본이지만, 문법에만 매몰되지 않고, 활용에 중점을 둔 것 같다. 저자의 전작인 '순한 맛'이 초급단계라면, 이 책은 중고급 단계 학습자를 위한 책이다. 난이도를 불꽃 1,2,3단계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Vol.1에서는 명사, 관사, 대명사, 형용사, 동사까지만 다루고, Vol.2에서 구와 문장, 부사, 전치사, 조동사,가정법, 접속사, 관계사,의문사, 특수구문을 다룬다.

관사는 가장 까다로운 품사다. 우리나라 말에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정해진 규칙에서 벗어나는 예외가 많기 때문에 문맥을 잘 살펴 써야한다. 기본 문법에만 머물렀다면 two fish와 two fishes의 차이 구분없이 그냥 넘어갔을 것이다. two fish는 생선 두 마리의 뜻이지만, two fishes는 두 종류의 생선이라는 뜻이다. 기본 문법에서 서수에는 반드시 the를 쓴다는 것을 배운대로 "the first step 첫 단계"만 맞는 것이고, "a first step 첫 걸음"에 대해서는 아마도 a를 the로 고쳤을 법하다. a와 the, 무관사(fly first class 일등석을 타다)에 대한 설명이 유익하다. 관사는 역시 어렵구나를 느끼는데, 이에 답하듯 저자는 다독을 통해 배우라고 넌지시 이야기한다.

연습문제로 조지오웰의 <동물농자> 챕터1을 가져와 관사를 지우고 그 자리에 알맞은 관사를 채워넣으라는 액티비티는 흥미로운 작업이다. 학생들에게 전치사 연습을 시킬 때 써봤었는데, 효과가 좋았다. 또한 책 뒷편에 있는 정답을 펴면, 답만 적은 것이 아니라 관사를 넣은 전문을 적었다. 본문을 끊어 읽고 사이사이 직독직해도 덧붙였다. 답을 맞추려면 다시 한번 본문을 읽어야하는 수고를 해야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좀더 치밀하고 분석적으로 문장을 이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여러번 읽게 하므로 좋은 방법이다.

저자의 의견에 동의하는 것도 있고,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 같은 의견도 있다. 책을 읽으며 완벽한 독해를 하느라 진도를 나가지 못하기 보다 여러사람과 의논해가면서 줄거리를 요약하고 모르는 것을 확인해가며 약간 오해하더라도 재미있게 읽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낫다는 의견에 크게 동의한다. 하지만 학생들에게 단문 읽기부터 시키라는 부분은 좀 어렵지 싶다. 저학년은 괜찮지만 고등학생 이상이면 바로 시험을 봐야하므로, 끊어읽기 원칙을 숙지하고 연습을 통해 체화시키는 것이 효과적이지 싶다.

중급 이상의 문법이라고는 하지만 불꽃 1~2개에는 기본적인 설명을 담고 있다. 차라리 불꽃 세 개짜리만 모아서 두 권을 한 권으로 만들고, 관사 파트에서 제시한 대로 원서에서 가져온 지문에 관사 채워넣는 액티비티를 더 늘렸으면 어떨까한다. 저자가 중요시하는 많이 읽기와 문법을 결합한 좋은 연습방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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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룰렛 - 중국공산당의 부, 권력, 부패, 보복에 관한 내부자의 생생한 증언
데즈먼드 슘 지음, 홍석윤 옮김 / 알파미디어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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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정치는 부를 이루는 지름길이었다." (278)

"공산당이 권력을 독점하는 중국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실종 사건이 심심찮게 일어난다." (12)

중국은 정치적으로 공산주의를 표방하지만, 경제적으로 자본주의를 인정한다. 서로 조화를 이룰 것 같지 않은 두 이념이 어떻게 공존하는가? 정치가 압도적 우위에 있고, 경제는 그 영향을 받는다. 중국에서 사업을 하려면 중국의 정치체제를 제대로 이해해야하는 이유다. 공산당 고위급 원자바오 총리 아내와의 꽌시를 업고 사업을 하던 저자의 전처가 사라졌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저자는 상하이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홍콩과 미국에서 공부한다. 홍콩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본토에서 아내를 만나는데, 평범한 회사원인 저자에 비해 아내는 원자바오 총리의 아내를 업고 거대한 프로젝트를 시행한다. 중국 비즈니스 방법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아내로부터 배우는 저자는 점차 꽌시로 이루어지는 투명하지 않은 경영방식에 갈등한다. 거대한 자금이 들어가는 베이징 수도 국제공항에 물류거점을 건설하고, 호화로운 불가리 호텔과 비즈니스 센터를 건립하는데에 공무원들의 승인을 위한 접대와 선물공세, 해외여행 등이 이뤄진다. 그들의 승인이 없이는 아무일도 진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투명한 법과 절차가 없기 때문에 꽌시를 통해 일을 해결하는 것이 중요한데, 위로부터 일선 공무원까지 뒷돈을 챙긴다. 구조적으로 잘 못되어 부정부패가 만연할 수 밖에 없지만, 쉽게 고쳐질 것 같지는 않다. 어찌보면 개인의 능력대로 부를 끌어모을 수 있는 신자본주의 국가들보다 더 양극화가 심화된 사회다.

특히 중국 지도자의 자녀들은 세상 어느 그룹보다 혜택을 누리며 산다. 정치적 연줄을 팔아 막대한 부를 챙기고 해외에 자신의 부를 보관한다. 사치스럽고 호화롭게 살면서도 부정부패척결의 대상에서도 예외가 된다. 중국은 인민을 위하는 공산국가가 아니라 정경유착이 강한, 과거 혁명의 후손들에게 특권을 주는 나라다. 평민출신인 저자의 아내는 출신의 한계 때문에 사라져버린다.

중국의 상류층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상상을 초월한다. 접대를 위해 프랑스 여행에 전용기를 빌리는 것은 물론이고, 카드판의 판돈이 한판에 10만 달러를 잃을 정도로 크고, 프랑스에서 하룻밤에 마신 와인값만 10만 달러 이상이다. 상식의 수준을 넘어선다.

중국의 미래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말한 저자의 애국심이 사라졌다. 노력하면 할수록 정당하지 않은 방법이 늘어나 일이 잘못되는 경우 개인의 안전이 위협받게 되는 사회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중국의 진실을 알게된 이상 다시 어릴 때 품었던 애국심때문에 중국으로 돌아갈 것 같지는 않다.

개인의 회고록이다. 마오쩌둥이 죽고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추진하며 중국이 엄청나게 발전하는 시기를 거쳐왔기 때문에 개인의 이야기지만 중국 현대사의 격정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부동산과 주식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하는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라 정보를 쥐고 있는 고위층과 이들과 꽌시를 갖고 있는 그룹이다. 부정부패가 왜 만연한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다른 책에서 들을 수 없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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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순간을 놓치지 마 - 꿈과 삶을 그린 우리 그림 보물 상자
이종수 지음 / 학고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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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보물과 국보로 지정된 것은 물론 보물에는 들지 않지만 그에 못지 않는 회화를 골라 26개의 작품을 설명하는 책이다.

주로 조선시대 후기의 작품이 대거 등장하는데, 그림에 사용된 테크닉 뿐 아니라, 그림을 그리게 된 사연, 화가 혹은 문인화가의 일생, 주문한 사람에 관한 이야기들을 여러 각도로 풀어낸다. 거기다 이 그림을 찾아내 구입하고, 복원하는데 금전을 아끼지 않았던 현대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총체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그림을 4개의 주제로 나누어 설명한다. 이상, 현실, 역사, 보물 아닌 보물들. 익히 들어 알고 있는 화가의 것도 있고 처음 들어보는 것도 있다. '이상향'을 상징하는 매화를 그린 유숙의 <홍백매팔폭병>, '현실'의 눈에 보이는 풍경을 그대로 그리는 진경산수화의 대표인 정선의 <금강전도>, '역사기록'으로서 정조의 수원화성 행차를 김득신, 이인문 등 도화원 화가들이 그린 <화성행행도병풍>과 '보물은 아니지만' 일본 신사에 모셔져있는 고려시대의 불화<수월관음도>가 내 마음을 흔든다.

조선시대 남종화에 대한 설명을 한 챕터로 앞에 배치하였다면 시대에 따른 회화의 흐름을 감상하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 같아 아쉽다. 남종화는 북종화에 대비되는 산수화를 의미한다. 조선 후기에 크게 유행하였으며, 진경산수화와 서민의 삶을 묘사한 풍속화를 많이 볼 수 있다. 18세기의 화가로 윤두서, 정선, 심사정, 이인상에서 김홍도와 이인문을 거쳐 19세기 추사 김정희로 이어진다.

김홍도의 <병진년화첩>은 의외다. 늘 그림 속에 사람들이 등장하는 익살스러운 그림만 보아오다가, 풍경화를 그린 김홍도는 낯설다. 성근 숲 사이로 떠오른 달을 그린 <소림명월>과 정선의 <금강전도>와는 달리 소박해보이는 <옥순봉>은 바라보는 지점이 낮아 더 현실적인 느낌이다. 정선의 <금강전도>가 너무 압도적이어서 후대 화가들이 금강산을 그릴 때 이를 극복하고자 노력하였다는 이야기가 흥미롭다.

이 책의 제목대로 순간포착을 제대로 한 그림은 김득신의 <야묘도추>다. 들고양이가 병아리를 훔쳐가는 장면, 장죽을 들고 쫓아가려다 마루에서 떨어지려는 남자와 그를 잡으려는 여자의 긴박한 순간이 포착되었다. 새끼를 뺏긴 어미닭이 한 켠에서 파닥거리고, 그 뒤에는 병아리들이 한가로이 모이를 쪼고 있다. 구석구석 살펴보면 각각의 상황이 펼쳐져 있어 입가에 웃음이 떠오른다. 잠시 김홍도의 그림이 아닐까했다. 김홍도의 영향을 받았지만, 김득신도 김홍도, 신윤복과 더불어 조선 3대 풍속화가 중 하나다. 이러한 순간을 화폭에 옮긴 김득신은 유머러스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익살스럽고 사람과 동물의 표정이 살아있다.

읽다보면 시간가는 줄 모르는 책이다. 우리나라 회화에 관심이 있다면 저자의 풍부한 식견을 들으며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소개된 그림이 전시되어 있는 미술관인 간송미술문화재단, 삼성미술관 리움, 국립박물관을 비롯한 대학박물관을 직접 찾아 감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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