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성주의 - 우리의 자화상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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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책인 정치적 올바름(PC)도 그랬지만, 이번 책도 자주 사용하지만 애매한 의미를 가진 반지성주의라는 말과 세 명의 인물평으로 구성되어있다.

먼저 반지성주의에 대한 개념은 확실하게 정해지지 않고 시대와 국가에 따라 변하고 있다. 미국의 호프스태터가 1963년 자신의 책에서 처음으로 언급한 이 말은 '지식인에 대한 경멸과 증오'를 의미하는 것이었는데, 올해 윤석렬 대통령의 취임사에서는 "각자가 보고 듣고 싶은 사실만을 선택하거나 다수의 힘으로 상대의 의견을 억압하는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린다(17)"고 언급함으로써 다른 의미로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반지성주의는 정치의 진보와 보수, 페미니스트들과 비판자들, 감성주의자들과 비판자들 등이 서로를 공격할 때 사용하고 있는데, 마치 한 이슈에 대해 두 개의 반대되는 그룹이 서로를 반지성주의라 공격하면서 상대의 말에는 귀를 막고 들으려 하지 않는 것같다. 왜 이러한 대립이 지속되는 것일까.

요즘과 같은 디지털 사회에서 알고리즘은 내가 관심있는 분야를 지속적으로 연결해준다. 내 관심 밖의 분야에는 자연적으로 점점 낯설고 적대감을 느끼게 한다. 정치, 사회현상, 종교 등 여러 방면에서 우리편과 반대편으로 나누어 자기가 듣고 싶은 말을 하는 사람의 말만 듣고 굳게 믿음으로써 합리적 논증을 받아들이지 않으려한다.

이러한 반지성주의를 유발하는 다섯 가지 인지적 편향은 행동 편향, 가용성 편향, 확증 편향, 부정성 편향, 이야기 편향이다. 말보다 행동을 중시하는 행동 편향, 개인의 경험과 자주 들어본 익숙한 것을 중시하는 가용성 편향, 부정적인 정보에 비중을 둬서 정보처리를 하는 부정성 편향, 진실보다 음모론 같은 이야기를 믿는 이야기 편향은 모두 한쪽으로 치우쳐 귀를 닫고 나와 다른 사람의 말은 거부하거나 공격한다.

탁현민이 연출한 문재인의 이미지 정치에 대해 비판한다. 실재의 성과보다 보여주기식의 정치를 잘 했다고 하는데, 글쎄 그렇다면 나도 이미 그 이미지 정치에 편향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최소한 소통에 있어서 이전 정부보다 열심이었다고 평가한다. 예를 들어 문재인 대통령이 제천화재 희생자 앞에서 일일이 엎드렸다는 것, 코로나를 겪으며 국민에게 적극적으로 협조를 요청하였다는 것은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소통하려했다고 생각한다. 현정권은 이태원 참사에 대해 무릎꿇고 애통해하지도 책임자가 나서서 사과하는 모습도 찾아볼 수 없다. 국민은 대통령에게 미안한 일에 대해서는 미안하다고 하고, 잘못한 일엔 잘못했다고 인정하는 그렇게 소통하는 모습을 바라지 않을까. 수많은 학생이 죽었는데도 제때에 나타나지 않는 대통령, 수많은 젊은이들이 압사했는데 책임자를 문책하지 않는 현정권에 답답한 마음이 드는 것은 나뿐일까. 연애인들을 동반하였다고 비판하는 부분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배우 윤여정 좀 청와대에 부르지 마라는 내용에 대해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손흥민을 비롯한 16강에 오른 축구팀을 영빈관에 불러 축하한 것은 어떻게 설명하려는지 궁금하다. 자랑스러운 사람들을 대통령이 불러 격려하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고 새삼스럽다. 읽다보면 저자가 부정성 편향과 확증 편향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이번 책은 반지성주의를 설명하는 방식도 조금 이해하기 어려워 인터넷을 많이 찾아보며 이해했고, 예시 또한 독자를 설득하기에 적절했는지 의문스럽다. 읽으며 설득되기보다 "어? 아니지않나?"라는 생각이 드는 것을 보면 내가 이미 편향되어있거나 저자의 근거 제시에 좀 무리가 있거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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