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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사로 본 중국왕조사 - 한 권으로 읽는 오천년 중국왕조사
이동연 지음 / 창해 / 2022년 11월
평점 :
삼황오제부터 청나라까지의 오천년 중국사를 사상과 함께 살펴본다. 중국사는 여러나라가 각축을 벌이다가 하나의 나라로 통일되었다가 다시 여러나라로 분열하는 것이 교차반복된다(분구필합 합구필반). 진시황의 전국통일 이후 통일국은 한, 수, 당, 송, 원(몽고), 명, 청(여진족)이다. 혼란을 정리하며 통일을 하여도 점차 왕권이 약해지면 외척이나 환관이 득세하거나 주변국의 침입으로 다시 혼란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은 우리의 역사와도 비슷하다.
"화이트헤드가 서양철학을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고 했지만, 중국 철학이야말로 제자백가, 특히 유가와 도교의 재해석사라 볼 수 있다. 장강유역에서 시작된 도가는 서민에 기반을 두고 발전했다. 이에 비해 황하 유역에서 출발한 유가는 사대부 등 지배층 중심으로 전개되며 동양인의 집단 무의식에 도가, 집단 초의식에 유가가 자리잡은 것이다." 6-7
중국의 축의 시대에 해당하는 춘추전국시대에 제자백가의 여러 사상이 나오지만, 유가와 도교가 중심이다. 남북조시대에 불교가 들어오면서 이후 왕조는 주로 이 세가지 사상이 섞여서 발전하는데 불교와 도교가 해탈이나 신선이 되는 것에 집중했다면, 유가는 현실적인 정치사상의 성격을 띤다. 특히 유가는 공자 이후 한 무제의 동중서, 당의 한유, 송의 주자에 의해 완성되는 반면, 불교는 10세기 오대십국 후주의 세종이 폐불령을 내리며 절이 소유한 불상과 승려를 환속시켜 생산에 종사하게 한 이후 더이상 크게 번창하지 못한다.
첫 통일국인 진나라는 사상의 통일을 위해 유교 서적을 불태우고 유학자 460명을 매장한 분서갱유로 유명하다. 법가에 따라 제도개혁을 시행하였으나 지나치게 엄격해서 불만이 쌓여간데다 황제가 방술사들에게 속아 불로초를 구해오게 하거나, 노쟁이 신선에게 받았다는 책에서 오랑캐가 진을 패망시킨다고 오해해 30만 대군을 보내 흉노를 공격하고 만리장성을 쌓는 어리석은 일을 저지른다. 그렇게 진은 천하를 통일하고도 15년이라는 단명의 왕조로 그치고 만다.
초한지의 배경, 삼국지의 인물들, 수많은 사자성어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만날 수 있다. 역발산기개세(산을 뽑고 세상을 덮을 기개)를 가진 항우는 귀족출신의 영웅이었으나 주위사람들의 조언을 듣지 않는 독단적인 인물이었다. 사람들을 끌어 안기보다 정복자로서 과시하려는 태도 때문에 폭력적이고 민심을 얻지 못한 후 결국 라이벌인 유방에게 패한다. 반면, 천한 농민 출신의 유방은 길거리에서 배운 특유의 친화력으로 현인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조언을 귀담아 듣고 따르며, 혼란의 시대 속에서도 민심을 얻어 결국 항우를 이기고 중국의 두번째 통일국인 한나라의 초대황제가 된다. 어느 시대 정치에라도 적용되는 이 둘의 이야기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 역사와의 연결도 흥미롭다. 요순시대를 본받아 검소하고 백성을 잘 다스린 수문제의 '개황의 치'와 당태종의 '정관의 치'로 유명한 두 왕은 모두 고구려 침공에 실패한다. 수문제와 양제는 을지문덕에 패하였고, 당태종 역시 연개소문에 패한다. 후에 포악하기는 하지만 백성들을 잘 보살펴 '무주의 치'를 이룬 측천무후가 고구려를 치는데 성공하지만, 이후 당은 쇠락의 길을 걷는다.
몽골족이 차지했던 원나라가 매우 이색적이다. 4등급으로 나누어 인종차별 정책(몽고인, 색목인, 한인, 남인)을 실시하면서도, 과거는 <사서집주>를 봤고, 3%도 안되는 지배층이 97%를 차지하는 한족을 다스리면서 한족의 말을 배우려하지 않았다는데 소통은 어떻게 하였을지 궁금하다. 중국 땅에서 몽골인, 터키인, 아랍인, 유럽인들이 거리를 활보하는 장면은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다. 종교 역시 자유로워서 지배층의 라마교, 이슬람교를 비롯해 한족의 유교와 도교를 비롯한 다양한 종교가 수용되었다니 국제적인 분위기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아주 단편적인 정리일 수도 있겠지만 중국의 역사는 어떤 사상이 지나치게 두각되면 그 폐해가 발생하는 것같다. 도가의 폐해는 왕조가 불로장생이나 도사들의 헛된 조언을 받아들여 나라를 망치게 되고, 유교주의를 내건 송은 학문하는 자들만 높이 사고 나라를 지킬 무관을 차별하니 국력이 약해져서 주변국 정벌은 커녕 그들의 침입에 돈으로 평화를 사야했다. 불교가 지나치게 성하면 절과 승려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이 높아져 생산성이 떨어졌다. 적절한 수용과 조화가 필요한 듯하다.
사상사 중심으로 중국사를 기대했는데 중국의 왕조사의 비중이 더 크지 않나싶다. 왕과 영웅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왕조가 추구한 철학을 소개하는 식이다. 사상사의 흐름을 따르기보다 왕조사의 흐름을 따라 읽게 된다. 서양사의 두 축인 합리론과 경험론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처럼 중국철학의 흐름도 잡고 싶었는데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역사를 이 한 권에 녹여냈다니 대단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