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예술 - 15개 도시의 운명을 바꾼 예술의 힘
캐럴라인 캠벨 지음, 황성연 옮김, 전원경 감수 / 21세기북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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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예술은 새로운 발명품이 아니라 인간이 존재하기 시작한 이래 함께 해온 것이다. 우리가 살고 일하는 건물과 우리가 걷는 거리, 아침부터 밤까지 사용하는 물건을 포함하는, 우리 삶을 구성하는 것의 일부이다. 우리는 모두 예술을 바라보고 그 의미를 분석하는 데에 고도로 훈련되어 있다(52)."

해외여행을 하다보면 여러 도시의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방문한다. 그러나, 그저 길에 보이는 건물, 식당, 공원의 모습 자체가 그 도시의 예술이 아닌가 한다. 도시 자체가 예술이다. 15개의 도시와 예술을 연결한 이 책이 궁금하다.

저자는 아일랜드 국립 미술관이 생긴 이래 158년 만의 첫 여성 관장이다. 미술의 대중 참여를 위해 노력하고, 강연과 SNS를 통해 미술사의 다양한 주제를 소개하고 있다.

책은 15장으로 되어 있다. 1장 바빌론: 회복 탄력성, 2장 예루살렘: 믿음, 3장 로마: 자기 확신 4장 바그다드: 혁신 5장 교토: 정체성 6장 베이징: 결단력 7장 피렌체: 경쟁 8장 베냉: 공동체 9장 암스테르담: 관용 10장 델리: 시기심 11장 런던: 탐욕 12장 빈: 자유 13장 뉴욕: 반항 14장 브라질리아: 사랑 15장 평양: 통제이다. 각 도시를 하나의 단어로 표현한다. 원제는 <The Power of Art(예술의 힘)>이다.

책 앞부분에는 제목도 없이 여러 장의 사진과 간단한 해설이 있다. 사진은 각 도시를 대표하는 건물이나 그림, 유물, 인물을 찍은 것이다. 사진을 넘기며 분위기가 달라지는데 이 책이 담을 내용에 기대감이 오른다. 본문에 언급하는 자료를 한군데 그 것도 앞에 모아 두어서 한번에 볼 수 있는 점이 좋다.

예술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도시가 메디치 가문의 이탈리아 피렌체다. 저자가 1430년에서 1500년까지 르네상스 시대의 피렌체를 묘사하는 단어는 '경쟁'이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라이벌은 기베르티와 브루넬레스키다. 1400년 피렌체 세례당 청동문을 만들 사람으로 기베르티가 결정되자, 브루넬레스키는 로마로 떠난다. 20년 후 브루넬레스키는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의 돔 프로젝트를 맡으며 로마의 벽돌 사용법을 사용한다. 피렌체는 금융업으로 부가 축적되었지만, 정치적으로 불안정했다. 15세기 초 메디치 가문이 권력을 쥐고 예술적 후원으로 권위를 확고히 하고자했다. 메디치 궁 안에 도나텔로의 조각상 <다비드>와 <유디트>와 같은 작품이 있을 정도로 피렌체는 예술가들에게 돈을 벌 수 있는 곳이었다. 보티첼리의 <봄>, 마사초의 <삼위일체>의 작품이 만들어질 뿐 아니라 화가를 정치, 외교적으로 이용한다. 파치 가문의 음모로 교황청과 나폴리에 대립각을 세우게 된 메디치 가문은 화가를 보내 그림을 그려 화를 풀게하고, 로렌초의 아들 조반니를 추기경으로 만들기도 한다. 미켈란젤로가 원치 않았던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를 그려야했던 것이나, 레오나르도가 보르자의 수석기술자로 '외교적 볼모'로 쓰였다. 충분한 자금을 바탕으로 예술가들의 경쟁으로 피어난 작품들이 현재까지 피렌체를 화려하게 장식한다.

가장 가보고 싶지만 갈 수 없는 도시는 평양이다. 저자는 1953년에서 2000년까지의 평양을 '통제'라고 표현한다. 첫 사진에는 김일성 광장과 멀리 보이는 주체사상탑이 보이는데, 낯설지가 않다. 미국의 링컨기념관 앞에서 바라보이는 워싱턴 기념탑과 같은 느낌이다. 평양을 조지 오웰의 <1984>에서 묘사한 빅브라더가 통제하는 도시라고 하는 이유는 기념비와 광장, 공공건물들이 '김씨 왕조'를 숭배하기 위한 국가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반영하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건축은 강압과 통제의 수단으로서 그 가치가 인정된다. 하지만 이 비뚤어지고 부패한 국가에도 아름다움은 존재한다. 평양의 사회주의 낙원은 운이 좋은 소수만을 위하는 북한 버전의 <트루먼 쇼>로, 엘리트들을 김씨 일가에 충성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495)." 뭔가 자유롭지 않고 건축물에 인간이 위압감을 느끼게하는 도시 평양을 보고 저자가 느낀 점이 조금은 야박하다. 남한의 서울을 보고 무어라 말할지 궁금하다.

도시와 예술을 구경할 수 있는 책이다. 역사의 한 시기를 툭 잘라내 그 당시 그 도시의 예술적 특징을 이야기한다. 사회 상황이나 정치, 경제에 관한 배경 설명은 기본이다. 베냉처럼 낯선 곳에 대한 설명은 한 번 읽어도 잘 모르겠어서 인터넷 도움을 받기도 한다. 한 도시를 전방위적으로 이해하고 단 하나의 단어로 뭉뜨그려낼 수 있는 능력이 부럽다.

어느 도시가 특별하게 다가올 때, 역사를 거슬러 그 도시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보고 싶을 때 읽으면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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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심경 - 근심과 걱정이 사라지는 마음공부 한 권으로 끝내는 인문 교양 시리즈
정보현 옮김, 미야사카 유코우 감수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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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심경은 종파를 초월해 누구에게나 친숙한 경전이다. 불교에는 모든 종파가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경전은 없지만 모든 승려가 알고 있는 경전은 반야심경이 유일할 것이다(서문)."

<서유기>에 나오는 삼장법사 현장이 인도에 구하러간 불경이 반야심경이다. 삼장법사는 불경을 번역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반야심경은 현장이 평생 번역에 몰두한 600권에 달하는 <대반야경>에서 발췌한 것이다. 총 292자로 되어있다. 짧은 경전이지만 방대한 내용을 품고 있어 '작은 대경전'이라 불린다.

책은 2장으로 되어있다. 1장에서는 반야심경의 역사를, 2장에서는 반야심경의 번역과 그 의미를 설명한다. 부록으로 독송과 사경을 위한 원문과 독송시 예절을 실었다. 저자는 일본 진언종 지산파 쇼코지의 주지이며 지산전법원의 원장이다.

반야심경은 반야바라밀다의 만트라(진언)를 설하는 경전이다. '반야'는 지혜, '바라밀다'는 완성을 의미한다. 지혜가 완성된 진언을 관자재(관세음, 관음) 보살이 설법하는 내용으로 경전 전체가 기도문이다. 소승불교가 출가한 승려들만을 가르치지만, 대승불교는 승려뿐 아니라 일반 신도도 가르치면서 누구든 성불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불교의 성취를 보면 1층에 유아수준, 2층에 세속 수준, 3층에 소승수준, 4층에 대승수준이 있다. 4층의 대승수준이 도달해야할 경지이다.

괴로움(고)은 뜻대로 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생로병사는 인간의 근본적인 괴로움이다. 애별리고(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괴로움), 원증회고(미워하는 사람과 만나야하는 괴로움), 구부득고(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괴로움), 오취온고(육체와 정신이 뜻대로 되지 않는 괴로움)는 살면서 겪는 정신적 괴로움이다.

공불이색, 색불이공. 공은 색이고, 색은 공이다. 여기서 '공'은 공성(空性)으로 반야심경과 불교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공은 비어있다는 의미로 없다는 의미와 구분한다. 컵이 비어있다면, 컵은 '물의 무'의 장소이다. '무의 장소'가 공이다. 공성은 공간이다. '색'은 모든 물질을 의미한다. 컵에 공성이 있기에 그 안에 물질을 담을 수 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은 컵에 공간이 없으면, 그 안에 물은 존재할 수 없고, 반대로 물을 담지 않는다면 공간의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형체있는 모든 것은 공성(공간)과 불가분의 관계이다. 색은 공성이라는 말이다. 틀안에서만 사물을 바라보다가 비누방울이 터지듯 공이 확장되면 이것이 공의 진짜 의미다.

이 책은 반야심경의 독송을 위해 뜻을 풀이한 책이다. 산스크리트어 음역과 훈역이 있어서 혼자의 힘으로 불경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깔끔한 구성과 알기 쉬운 삽화를 넣어서 편안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 책이다. 그러나 불교 신자가 아니라면 처음 보는 용어와 깊은 이해가 필요한 불교의 철학을 한 번 읽고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좀더 상세한 설명이 있었으면 좋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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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냥팔이 소녀는 누가 죽였을까? - 세상에서 가장 기묘한 22가지 재판 이야기
도진기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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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를 보면, 헨젤과 그레텔의 집같아 보이는 건물 앞 길에 성냥팔이 소녀가 태우다 죽어갔을 성냥개비가 하나 떨어져있다. 뭔가 동화이면서 실마리를 던져주는 추리 소설같다. 전직 판사이자 현직 변호사이자 추리소설가인 저자의 법 설명을 익히 아는 동화와 영화, 실재 사건을 바탕으로 풀어내는데, 그 해석이 궁금하다. 이 책은 2013년 작품의 개정판이다.

500년간 지옥을 지키던 염라대왕은 하데스와 자리를 바꾸며 연옥에서 죄를 판결하는 판사가 된다. 법률지식이 없는 염라는 변호사로 소크라테스를 선임하고, 법과 논리에 뛰어난 변호사 소크라테스는 22건의 사건을 변호한다. 법에 대한 무지했던 염라 판사는 처음에 불쌍하다는 이유로 장발장을 풀어주고 사람들의 항의를 받기도 하고, 나쁜 짓인지 아닌지를 투표로 결정하자는 엉뚱한 말을 하지만, 재판이 진행되면서 점차 법을 알아가고, 증거재판주의를 내세워 춘향이를 무죄판결내리게 하는 폭풍 성장을 하면서 재판의 어려움과 신중함을 깨닫는다.

설정이 흥미롭다. 법을 모르는 염라 판사와 이를 살짝 무시하는 검사와 변호사 소크라테스가 연옥계의 법정에서 재판을 한다. 피고는 동화, 영화, 실재 사건의 주인공들이다. 저자는 재판을 통해 법의 범위, 죄가 되는 행위, 죄와 무죄 사이, 형사 재판의 원칙, 민사 재판의 원칙, 형사와 민사의 차이를 설명한다.

나라마다 다른 법체계로 '착한 사마리아인법'이 있는 곳에서는 성냥팔이 소녀를 보고 지나치면 유죄이지만, 우리나라에는 해당 법이 없으므로 무죄이다. 민사와 형사의 구분은 의외로 쉬운데, 돈 문제에 관한 다툼이면 민사이고, 죄 지은자를 처벌하는 것이 형사라는 말은 명쾌하다. 형사는 민사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고, 결과도 같은 경우가 많다. 그러나 형사재판이 한 사람의 운명이 걸린 것이므로 매우 신중한 결정이 요구되지만, 민사는 상대보다 많은 증거로 이길 수 있기 때문에 간혹 결과가 다를 수 있다. O.J 심슨 사건처럼, 심슨은 형사에서 무죄, 민사에서는 유죄를 받았다.

재판의 기본이 되는 원칙만 소개한 것인데도 판단이 쉬워보이지 않고, 절차까지 합법이어야하는 것이 꽤 까다롭다. '고의와 과실'은 일부러 그런 것 인지, 실수로 그런 것인지를 판단하기 쉽지 않다. 이로인해 검사와 변호사의 논쟁이 치열해지는 것이겠다. 형사재판에서 절차의 중요성은 다 잡은 범인도 무죄로 풀려나는 안타까운 상황을 일으킨다. 대표적으로 여아를 납치한 미란다를 체포할 때 경찰이 '묵비권과 변호사 선임권'에 관한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무죄판결이 났다. 이후로 이 절차를 엄격히 지키게 되었다.

실재 발생했던 이태원 햄버거집 살인사건의 두 용의자에 대해 무죄판결이 내려진 이유가 '합리적 의심없는 증명'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서로를 범인이라고 지적하는 상황에서 한 사람이 범인이라는 충분한 증거가 부족했기 때문에 둘 중 한 명이 반드시 범인이지만, 억울한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둘 다 무죄가 된 것이다. 사건만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던 판결을 이해할 수 있다.

<베니스의 상인>에서 샤일록이 피를 한방울도 흘리지 않고는 1파운드의 살을 가져갈 수 없기 때문에 패배하지만, 이는 문학적 결말이다. 저자는 변호사 소크라테스의 변론을 빌어 '살을 1파운드 가져간다'는 계약이 '사회질서에 어긋나는 행위'이기 때문에 무효라고 법적인 원칙을 들어 변호한다. 현대에 신체포기각서를 받고 돈을 빌리거나, 불법인 도박으로 진 빚은 같은 법적 원칙에 따라 무효이기 때문에 갚지 않아도 된다.

대화체라 술술 잘 읽힐 뿐 아니라 유머와 반전이 있어서 흥미롭다. 재판장에서 염라 판사와 소크라테스 변호사, 검사 간의 대화가 캐주얼하면서 톡톡 튀는 재미가 있다. 흥미로운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중요한 내용은 굵은 글씨로 표시하고 있어서 핵심을 놓치지 않도록 강조하고 있다. 어려운 법률용어를 이보다 쉽고 재미있게 풀어쓰기는 쉽지 않겠다. 재미와 지식을 함께 잡은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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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와 함께 춤을 - 시기, 질투, 분노는 어떻게 삶의 거름이 되는가
크리스타 K. 토마슨 지음, 한재호 옮김 / 흐름출판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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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적 감정과 잘 지내는 핵심은 자신이 느끼는 감정에 솔직해지고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129)"

일반적으로 감정은 이성보다 부정적으로 인식되고, 감정 중에서도 부정적 감정은 긍정적 감정보다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부정적 감정은 나쁜 것'이기 때문에 되도록 긍정적인 감정을 갖도록 노력하거나 부정적 감정이 올라올 때마다 이를 잘 관리하고 통제하는 것이 좋다고 알고 있다. 감정적으로 행동을 했을 때 파괴적이거나 나중에 후회할 일을 만들ㅍ수도 있기 때문이다. 부정적 감정이 나쁘기만 할까?

저자는 스와스모어대학교 철학과 부교수로 감정철학, 도덕철학, 철학사, 정치철학 등을 연구한다.

감정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감정통제형 성인, 감정수양형 성인으로 나누어 그 문제점을 설파한다. 감정통제형 성인들인 간디나 스토아학파의 금욕주의자들에게 나쁜 감정은 억제해야하는 것이다. 그러나 감정수양형 성인은 나쁜 감정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수양하거나 변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자가 애제자 안회가 죽었을 때 슬픔을 표현한 것이나, 아리스토텔레스가 모욕에 대한 반응인 분노를 제대로 표현해야한다고 말한다. 무작정 화를 낼 것이 아니라 이유를 생각해보고 이해가 된다면 화를 내지 않는다. 올바른 성품과 올바른 사고를 지니면 올바른 감정을 적절히 느끼고 표현할 수 있고, 날 것의 감정을 표출해서는 안되고 길들여야한다고 믿는다. 감정 통제형과 수양형 모두 모범적으로 알고 있는 것의 사례를 정리하고 있다.

저자의 반박은 나쁜 감정을 통제하거나 수양하려하지 말고 느끼라고 한다. 부정적 감정은 자기애에 대한 발로이므로 자연스러운 것이다. 다윈이 정원의 지렁이가 땅을 비옥하게 하듯, 저자는 나쁜 감정이 인간을 비옥하게 한다고 주장한다. <실락원>의 사탄이 하나님의 사랑을 더 받는 아담과 하와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이 오히려 더 인간적이고, 몽테뉴의 말대로 자신에게 결점이 있어도 삶과 자신을 사랑하라는 것, 니체의 아모르 파티(운명에 대한 사랑)를 강조한다. 나쁜 감정도 그냥 그대로 느끼고 삶의 일부라고 인정한다. 저자의 반박이 더 편하게 받아들여진다.

저자의 예가 이해를 돕는다. 이웃의 새 차가 부러우면 그대로 받아들인다. 부러움을 없애기 위해 자신이 물질주의적이라고 질책하거나, 이웃이 과시한다고 여기고 분노로 바꾸거나, 자기 계발의 동기로 삼지 않는다. 그저 '옆집 차가 부럽다'고 소리내 말하고 멈춘다. 왜 부러운가? 자신이 저 차를 살만큼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고통을 감내하라. 화풀이하고 감정을 밀어내려하거나 합리화하며 감정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결국, 부정적 감정이 생기면, 억제하거나 변화시켜 벗어나려 하지 말고 있는대로 느끼는 것에서 멈추는 것이 필요하겠다.

부정적 감정 중에서 분노, 시기와 질투, 앙심과 쌤통, 경멸을 고전과 철학 사상을 바탕으로 설명하는데 저자의 저력을 느낄 수 있다. '분노'는 로마황제 네로의 가정교사였다가 자결하라는 명을 받았던 세네카와 불교의 샨띠데바의 이야기를 들어 설명하고, 이와는 대조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와 공자, 페미니즘의 사상을 비교한다. '시기와 질투'는 그리스신화의 메데이아와 베이컨을 들어 설명하고, '앙심과 쌤통'은 스피노자와 몽테뉴를, '경멸'은 루소와 울스턴크래프트, 듀보이스와 같은 인물을 들어 설명한다. 올바른 분노와 정의로운 경멸처럼 나쁜 감정이 부정적이지만은 않다는 지적이 흥미롭다. 또한, 앙심은 그저 치졸하고 무례한 행동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동서양의 철학자, 성인, 과학자, 문학가들을 대거 인용하며 부정적 감정들을 어떻게 다루어야하는지를 설명하는 책이다.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여러 인물의 사상과 철학과 문학을 인용할 수 있다는 것은 저자가 이미 그들에 대해 숙지하고 있기 때문인데 저자의 학문적 넓이와 깊이가 느껴진다.

초반부에 가벼운 에세이라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밑줄을 그으며 읽어야하는 책이다. 많은 인용이 있고, 고전이나 철학적 배경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잠시 길을 잃을 수도 있다. 그러나 결론에서 다시 정리해주므로 걱정할 필요는 없다. 꼼꼼한 비유와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어 빨리 읽히지는 않지만 어렵지는 않다.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논리 전개가 압도적이다. 시간을 두고 읽고 또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다.

"지렁이가 정원의 일부인 것처럼 나쁜 감정도 좋은 삶의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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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시대에 오신 것을 애도합니다 - 더 늦기 전에 시작하는 위기의 지구를 위한 인류세 수업 서가명강 시리즈 39
박정재 지음 / 21세기북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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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세 위기는 전적으로 인간의 과오와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207)."

4계절이 있었던 우리나라가 어느 순간 여름과 겨울만 남은 느낌이 든지 꽤 오래다. 특히 올해 여름은 매우 더웠고, 그 더운 날이 오래도록 식을 줄을 몰랐다.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가 바라보는 기후 변화와 이로 인한 지구의 위기 상황이 어떠한지, 그 극복방안은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자.

책은 4부로 나누어 인류세의 유래와 기후위기, 생물종 다양성 문제와 환경위기의 극복방안을 설명한다.

'인류세(人類世·Anthropocene)'는 인간이 만들어가는 지질시대를 의미한다. 미국 고생태학자가 1980년대 자신의 논문에서 처음 사용했으나,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네덜란드 대기화학자 파울 크뤼천(1933~)에 의해 크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산업혁명 이후로 기후가 급변했음을 의미한다. 이후 지구과학자인 윌 스테펀이 핵폭발 실험이 활발했던 1950년대 이후 다양한 지표가 급변하는 것을 '대가속시대'라 하고 인류세의 시작이라 주장하기도 했다. 자연의 힘에 무력했던 인간이 자연을 개발하며 생태계를 급속하게 위협하였고, 임계점을 넘어선다면 앞으로 다시 자연의 힘에 의해 인류와 자연 모두가 위기에 처할 것이다.

인류세를 상징하는 네 가지 중요한 속성으로 기후 위기, 생태계 위기, 환경오염, 기후 난민을 꼽는다. 모두 부정적인 이 네 가지 속성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하나를 강조하는것이 아니라, 함께 개선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지구온난화가 지속되면 가뭄, 홍수, 태풍, 폭염, 산사태, 산불, 해수면 상승, 전염병과 같은 자연재해가 더욱 빈번하게 발생하고, 생물종 다양성 감소, 식량 위기, 기후난민과 같은 환경 문제도 점차 심화된다.

서구 선진국이 산업혁명과 핵폭발 실험을 통해 지속적으로 야기한 결과 발생한 기후위기의 피해는 미개발국 가난한 사람들에게 돌아간다. 기후 난민은 남아시아의 방글라데시와 태평양 섬국가와 같은 침수지와 가뭄으로 굶주림에 지친 아프리카 지역에서 발생한다. 난민들은 좀더 잘 사는 선진국으로 이민을 원하지만, 받아들이는 나라에서는 인도주의 차원에서 받아들일지 안보 위기로 간주하고 봉쇄할지, 공존하느냐 공멸하느냐의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2009년 지구의 한계를 9가지 부문(기후변화, 생물 다양성 손실, 질소.인 순환, 해양산성화, 토지 시스템 변화, 담수 사용, 오존층 파괴, 대기오염, 화학물질 오염)으로 나누고, 어떤 부문이 위험한지를 과학적 근거로 논했다. 2023년 이 중 이미 6개부문(기후변화, 생물 다양성 손실, 질소.인 순환(비료), 신물질의 양(예: 플라스틱), 토지 시스템 변화, 담수 사용)이 경계를 초과하여 안전하지 않은 상태에 있다고 하는데 섬짓하다. 특히 만성적인 물부족에 시달리는 지역에 비해, AI수요증가로 데이터센터의 확장은 물 수요를 더욱 필요로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인류는 공룡이 멸종했던 다섯 번째의 대멸종 이후 이제 여섯 번째 대멸종의 위기에 있다. 다섯 번의 대멸종으로 전체 종의 70% 이상이 사라졌다. 원인은 화산 폭발로 인한 온실가스의 증가였는데, 온실가스의 증가는 대기 기온 상승과 해양의 산성화를 유도하여 대량멸종의 직접적 원인을 제공했다. 이미 열대우림훼손과 산호초 군락의 폐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해결방법은 무엇일까?

지구공학적으로 성층권에 황산염 입자로 에어로졸 막을 만들어 온난화를 늦추기는 하지만, 물순환에 이상을 가져오는 부작용이 심하므로 최후 수단으로 이용하여야한다. 그보다 인간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자연과 공생한다는 생각, 자연을 개발의 대상이 아니라 보호하고 보존할 대상으로 여겨야한다.

서가명강 시리즈의 39번째 책이다. 작은 크기인데다 250쪽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그 내용이 가볍지 않다. 현재 신생대 제4기 홀로세 메갈라야절에 살고 있는 우리가 굳이 인류세라는 이름을 붙여가며 신경써야하는 이유는 임계점을 넘지 않고 후손에게 우리가 살고 있는 상태 정도의 지구를 물려주기 위해서이다.

인간에게서 비롯된 지구의 위기를 역사적으로 지리적으로 고찰하면서 왜 문제의식을 가져야하는지 일깨워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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