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냥팔이 소녀는 누가 죽였을까? - 세상에서 가장 기묘한 22가지 재판 이야기
도진기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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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책표지를 보면, 헨젤과 그레텔의 집같아 보이는 건물 앞 길에 성냥팔이 소녀가 태우다 죽어갔을 성냥개비가 하나 떨어져있다. 뭔가 동화이면서 실마리를 던져주는 추리 소설같다. 전직 판사이자 현직 변호사이자 추리소설가인 저자의 법 설명을 익히 아는 동화와 영화, 실재 사건을 바탕으로 풀어내는데, 그 해석이 궁금하다. 이 책은 2013년 작품의 개정판이다.

500년간 지옥을 지키던 염라대왕은 하데스와 자리를 바꾸며 연옥에서 죄를 판결하는 판사가 된다. 법률지식이 없는 염라는 변호사로 소크라테스를 선임하고, 법과 논리에 뛰어난 변호사 소크라테스는 22건의 사건을 변호한다. 법에 대한 무지했던 염라 판사는 처음에 불쌍하다는 이유로 장발장을 풀어주고 사람들의 항의를 받기도 하고, 나쁜 짓인지 아닌지를 투표로 결정하자는 엉뚱한 말을 하지만, 재판이 진행되면서 점차 법을 알아가고, 증거재판주의를 내세워 춘향이를 무죄판결내리게 하는 폭풍 성장을 하면서 재판의 어려움과 신중함을 깨닫는다.

설정이 흥미롭다. 법을 모르는 염라 판사와 이를 살짝 무시하는 검사와 변호사 소크라테스가 연옥계의 법정에서 재판을 한다. 피고는 동화, 영화, 실재 사건의 주인공들이다. 저자는 재판을 통해 법의 범위, 죄가 되는 행위, 죄와 무죄 사이, 형사 재판의 원칙, 민사 재판의 원칙, 형사와 민사의 차이를 설명한다.

나라마다 다른 법체계로 '착한 사마리아인법'이 있는 곳에서는 성냥팔이 소녀를 보고 지나치면 유죄이지만, 우리나라에는 해당 법이 없으므로 무죄이다. 민사와 형사의 구분은 의외로 쉬운데, 돈 문제에 관한 다툼이면 민사이고, 죄 지은자를 처벌하는 것이 형사라는 말은 명쾌하다. 형사는 민사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고, 결과도 같은 경우가 많다. 그러나 형사재판이 한 사람의 운명이 걸린 것이므로 매우 신중한 결정이 요구되지만, 민사는 상대보다 많은 증거로 이길 수 있기 때문에 간혹 결과가 다를 수 있다. O.J 심슨 사건처럼, 심슨은 형사에서 무죄, 민사에서는 유죄를 받았다.

재판의 기본이 되는 원칙만 소개한 것인데도 판단이 쉬워보이지 않고, 절차까지 합법이어야하는 것이 꽤 까다롭다. '고의와 과실'은 일부러 그런 것 인지, 실수로 그런 것인지를 판단하기 쉽지 않다. 이로인해 검사와 변호사의 논쟁이 치열해지는 것이겠다. 형사재판에서 절차의 중요성은 다 잡은 범인도 무죄로 풀려나는 안타까운 상황을 일으킨다. 대표적으로 여아를 납치한 미란다를 체포할 때 경찰이 '묵비권과 변호사 선임권'에 관한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무죄판결이 났다. 이후로 이 절차를 엄격히 지키게 되었다.

실재 발생했던 이태원 햄버거집 살인사건의 두 용의자에 대해 무죄판결이 내려진 이유가 '합리적 의심없는 증명'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서로를 범인이라고 지적하는 상황에서 한 사람이 범인이라는 충분한 증거가 부족했기 때문에 둘 중 한 명이 반드시 범인이지만, 억울한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둘 다 무죄가 된 것이다. 사건만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던 판결을 이해할 수 있다.

<베니스의 상인>에서 샤일록이 피를 한방울도 흘리지 않고는 1파운드의 살을 가져갈 수 없기 때문에 패배하지만, 이는 문학적 결말이다. 저자는 변호사 소크라테스의 변론을 빌어 '살을 1파운드 가져간다'는 계약이 '사회질서에 어긋나는 행위'이기 때문에 무효라고 법적인 원칙을 들어 변호한다. 현대에 신체포기각서를 받고 돈을 빌리거나, 불법인 도박으로 진 빚은 같은 법적 원칙에 따라 무효이기 때문에 갚지 않아도 된다.

대화체라 술술 잘 읽힐 뿐 아니라 유머와 반전이 있어서 흥미롭다. 재판장에서 염라 판사와 소크라테스 변호사, 검사 간의 대화가 캐주얼하면서 톡톡 튀는 재미가 있다. 흥미로운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중요한 내용은 굵은 글씨로 표시하고 있어서 핵심을 놓치지 않도록 강조하고 있다. 어려운 법률용어를 이보다 쉽고 재미있게 풀어쓰기는 쉽지 않겠다. 재미와 지식을 함께 잡은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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