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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선언 - 더 나은 인간 더 좋은 사회를 위한
피터 바잘게트 지음, 박여진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9년 3월
평점 :
절판
‘공감[Empathy]’이란 사전적으로는 ‘대상을 알고 이해하거나, 대상이 느끼는 상황 또는 기분을 비슷하게 경험하는 심적 현상’을 말합니다. 이 용어는 1909년 미국의 심리학자 에드워드 티치너(Edward B. Titchener)가 도입한 용어로, ‘감정이입’을 뜻하는 독일어 'Einfühlung'의 번역어입니다.
요즘은 공감의 시대라고도 하듯이 유튜브나 페이스북 블로그 등 소셜 네트워크 등을 통해서 한 번도 만나지 못한 타인끼리 서로 교감을 나누고 각종 사회 문화 경제적 활동을 합니다. 그렇지만 한 편으로는 정치판에서는 천박하고 노골적인 비난이 난무하고, 돈과 지위의 권력으로 약자를 괴롭히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또 인터넷에서는 익명을 무기로 인간의 존엄성을 떨어뜨리고 있으며 사회적 리더와 공인들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고 자기 잇속만 챙기는 뻔뻔한 모습을 보이면서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이러한 현상이 발생한 이유가 우리가 역설적으로 공감 상실의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합니다. 공감 능력이 작동하지 않을 때 사회는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다는 것이죠.
저자에 따르면 공감은 ‘감정적 공감(Emotional Empathy)’과 ‘인지적 공감(Cognitive Empathy)’으로 나눠지는데, 감정적 공감은 타인의 감정을 ‘경험’하는 것이며, 인지적 공감은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이해’하려는 시도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사이코패스는 인지적 공감이 예민하게 발달해서 다른 사람을 잘 이해하지만 연민을 느끼지는 못해 끔찍한 범죄를 태연히 저지른다고 합니다.
저자는 인간은 본성과 양육의 산물이며, 이 둘의 상호작용이 중요하기 때문에, 양육에 관한 최신 이론과 방법에만 초점을 맞추기 전에 우리가 무엇을 타고났으며, 미래 세대에 무엇을 물려줄 수 있는지에 관한 깊은 성찰이 우선시돼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실제로 뇌가 사이코패스의 뇌와 완벽하게 일치하고 수많은 살인마들을 조상으로 둔 무서운 가족력이 있더라도 어린 시절 가정에서 받은 사랑과 긍정적인 영향으로 휼륭한 학자가 된 사례를 제사하며 양육 환경과 공감 교육의 중요성을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과잉보호가 아이들에게 미치는 부정적인 결과를 열거하며 맹목적인 양육주의를 지적하기도 합니다.
공감이 발화돼 상호작용을 하려면 뇌에 있는 수많은 다양한 회로들이 동원되며 이 기능이 얼마나 잘 작동하는지 여부에 따라 어떤 사람은 공감 능력이 뛰어나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못한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공감으로 비롯된 이타심과 공정성의 발현을 fMRI(기능적 자기 공명 영상)를 통해 활성화되는 뇌의 ‘공감 회로’를 확인했으며, 신경과학을 비롯한 유전학, 심리학 등의 연구에서 공감을 가르치거나 향상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입증되었다고 합니다.
영국 홀로코스트 추모 재단의 회장인 저자는 홀로코스트를 공감 본능의 부정적인 면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사례로 다루며, 나치뿐 아니라 마오쩌둥, 스탈린 같은 독재자들에게는 인간에게 결정적인 요소인 공감 능력이 결여돼 있다고 분석합니다. 저자는 인간은 생존을 위해 공동체를 형성하며 진화한 종”이라는 견해에 동의하면서, 자신이 속한 집단 외부에게 적대적인 성향을 보이는 인간의 본질이 극단적으로 나타날 때 이처럼 공감 없는 사회가 된다고 설명합니다.
즉 사람은 자신과 피부색이 같은 사람,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 심지어 같은 사투리를 사용하는 고향 사람을 무의식중에 선호하는데, 이들 학살자들은 인간의 본능을 교묘하고도 기술적으로 이용하여 적을 만들고, 불공정하다는 인식과 소외감, 철저한 혐오를 부추기면서 대학살의 조건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공감 능력을 발휘해 목숨 걸고 피해자들을 도운 소수의 용감한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의 이야기는 미래 세대에게 귀감이 되었다고 합니다. 저자는 이것이야말로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공감 본능의 긍정적인 힘이라 강조하면서, 이 힘을 키우기 위한 ‘공감헌장’을 책 말미에 제시해 놓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