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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주의자의 양심
배리 골드워터, 박종선 / 열아홉 / 2019년 2월
평점 :
보수주의는 사전적으로는 급격한 변화를 피하고 현 체제를 유지하려는 사상이나 태도를 의미합니다. 주로 이데올로기적인 근대 정치사상의 특정 조류를 가리키고 사회심리학적 의미에서 인간의 어떤 심리적 태도 또는 성향(性向)을 가리키기도 하는데 여기서는 물론 정치적 지향점으로서 보수주의를 의미합니다.
근대에 보수주의라는 사상적 조류를 최초로 정식화한 사람은 E.버크로 프랑스대혁명의 영향을 받은 영국의 급진적 민주주의운동에 대한 '능동적인 공포심'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방어적인 목적으로 쓰여졌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도 어떻게 보면 ‘자유’를 중시했던 미국의 가치를 지킬 목적으로 보수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책에 따르면 보수주의자는 ①모든 사람은 독특한 창조물이며 사람을 다수의 일부로 간주할 때 노예 상태에 빠진다. ②사람이 정치적으로 노예가 되면 경제적으로 자유롭거나 효율적일 수 없다. ③사람의 발전은 외부의 강제로 좌우되는 것이 아니며 자신의 삶을 관장하는 선택은 자신이 해야 한다는 세 가지 사실을 아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원칙에 따라서 자연스럽게도 진정한 보수주의는 군주의 폭정 아래에서 불행을 겪는 농노의 곤경에 동정을 느끼는 것과 아울러 평등주의 집단 폭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에 대해서도 반대한다고 합니다. 즉 보수주의자의 양심은 그가 누구든 간에, 개별적 인간 존재의 존엄성을 떨어뜨리려는 사람에 의해 상처를 받으므로 오늘날 보수주의자는 공포로 다스리는 독재자들이나 인간에게 신처럼 군림해도 좋다는 우리의 허락을 요구하는 비교적 점잖은 집단주의자들과 싸우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자칭 보수주의자들의 상당수는 오히려 자유를 억압했던 군사독재정부를 경제를 발전시켰다는 이유로 찬양하거나 동조하고 자신들의 기원에 그러한 권위에 바탕하다고 공공연히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한 군사독재정부는 자유를 억압하는 독재자일 뿐 아니라 국가 중심의 집단주의적인 태도를 보여서 저자의 정의에 따르면 보수주의자의 최대의 적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또 저자는 무엇보다 보수주의는 인간이 각자 독특한 영혼을 지니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주체이므로 한마디로 인간의 본질은 자유인데, 자유가 위축되면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되어 “보수주의자의 양심”은 상처를 입게 된다고 강조합니다. 그래서 국가가 개인 자유를 침해하면 안 된다는 보수주의의 원칙과 양심에 따라 낙태와 동성애자 군 복무 등에 찬성하였다고 합니다.
또 저자는 권력은 커질수록 스스로 점점 더 증식하려는 속성이 있다고 하면서,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금언을 강조합니다. 건국의 아버지들도 이 점을 정확히 인식하고 ‘절대주의의 방향으로 팽창하려는 정부의 자연스러운 경향성에 대한 억제제도’를 헌법에 반영했다고 강조합니다.
이러한 논리에 따라 무분별한 기업 활동을 반 독점법 등으로 효과적으로 규제했듯이, 노조의 과도한 권력을 법적으로 분산, 억제시킬 필요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즉 기업의 권력 집중에 대해서는 다양한 규제를 하면서, 노조의 권력 집중에 대해서는 아무 조치도 하지 않는 것은 모순이라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저자는 ‘큰 정부’가 개인의 자유를 크게 위축시킨다고 주장하며, 대공황을 계기로 민주당이 20년간(1932-1952) 집권하며, 뉴딜정책을 통해 국가의 기능을 확대한 상태에서 아이젠하워 공화당 정권이 8년간(1952-1960) 집권했으나, 골드워터가 보기에는 뉴딜정책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다시금 민주당으로 정권이 넘어갈 지경이 되었다. 실제로 1960년에 케네디를 앞세워 민주당이 다시 집권에 성공했습니다.
이러자 저자인 이를 개탄하며 대통령 선거전에 뛰어 들었고, 보수 철학을 정립함으로써 '보수 아이콘'으로 떠오른 덕분에 1964년 대선에서 록펠러 등 명망가들을 꺾고 공화당 후보로 선출되지만 '극우주의자'라는 오명과 함께 대패했습니다. 원서가 123페이지에 불과하여 선언문처럼 짧은 이 책은 미국에서 350만권이 팔렸고 학문적 사상서인 러셀 커크의 ‘보수주의의 정신’과 함께 지금도 널리 읽힌다고 합니다.